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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 이야기/오늘의 추천SF

80일만에 세계를 돌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쥘 베른의 80일간의 세계일주)




  지금으로부터 140여 년 전인 1873년 프랑스의 소설가인 쥘 베른은 한 가지 흥미로운 소설을 발표합니다. "80일간의 세계 일주(Le Tour du Monde en Quatre-Vingt Jours)". 제목 그대로의 내용……. 바로 80일만에 세계를 돌 수 있는가 없는가에 대한 '내기'에 대한 작품이었지요.


  제국주의가 극에 달하던 19세기. 영국은 '대영제국'을 표방하며 '해가 지지 않는 나라'라고 장담하고 있었지만, 사실 대다수 사람들의 눈길은 자신의 주변에서 별로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그들에게 세계는 그야말로 끝없이 넓고 광대한 것이었죠.


  그런데 한 소설가가 그들의 인식에 도전한 것입니다. '세계는 그렇게 넓은 게 아니거든? 80일이면 충분히 여행할 수 있거든?'


  이야기는 런던의 사교 클럽에서 한 사람이 신문을 보다가 꺼낸 말에서 시작됩니다. 신문 기사에서는 누군가가 '80일이면 세계 일주가 가능하다.'라고 주장하는 내용이 쓰여 있었고, 기사를 본 신사는 "이런 말도 안 되는 이야기가 있나."라면서 말을 꺼내죠.


  그런데 또 다른 신사... 물론 주인공이 "내가 할 수 있다."라고 했고, 그들은 내기를 겁니다. 80일 뒤 1872년 12월 22일(일요일)까지 사교 클럽에 도착하는지 못하는 지라는 내기였죠. 승부에 걸린 돈은 꽤 큰 것이었지만, 주인공에게는 돈이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실제로 그는 사실상 거의 전 재산을 투자해서라도 여행을 마칠 예정이었거든요. 그리하여 그는 출발합니다. 충실한 하인 한 명과 함께.


  그들이 진행했던 80일간의 여정을 일일이 얘기할 필요는 없겠지만, 그들은 정말 다채로운 모험을 겪게 됩니다. 인도에선 산 제물로 바쳐질 여성을 구하고자 종교 집단과 싸우기도 했고, 주인공을 은행 강도로 오인한 형사에게 쫓기기도 합니다. 이런저런 이유로 그들의 여정은 때로는 빠르게, 때로는 느리게 진행되었고 드디어 그들은 영국의 런던을 향합니다.


  남은 시간은 불과 며칠. 12월 22일 정오까지 사교 클럽에 도착하지 못하면 사실상 알거지가 되는 상황. 그러나 시계는 안타깝게도 정오를 넘어섰고 그는 패배했습니다.


  다음 날. 신사는 이미 자신의 것이 아니게 된 집에서 깨어나 하인에게 ‘결혼식’을 하겠다고 말합니다. 그는 모든 재산을 잃었지만, 인도에서 구한 아름다운 여성과 굳건한 우정만은 남았던 것이지요. 그런데 얼마 뒤 하인이 뛰어 들어옵니다.


  “결혼할 수 없습니다.”

  신사는 어리둥절했겠지요. 결혼할 수 없다니 자신이 결혼할 수 없는 이유라도 있나 하고 말입니다. 다음 순간 하인은 말했죠.

  “오늘은 안식일(일요일)입니다.” 네……. 성공회를 따르는 영국에서는 안식일에는 아무 것도 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당연히 결혼식도 불가능하죠.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그들은 분명히 12월 22일에 도착했고 하루가 지났습니다. 그런데 바로 오늘이 일요일이라니? 그들이 여행을 다녀온 사이 달력이 바뀌기라도 했던 것일까요?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들이 도착한 날은 사실 12월 21일의 토요일이었고, 그 다음 날이 바로 운명의 날이었던 것이지요.


  어리둥절한 상황도 잠시. 두 사람은 재빨리 마차를 잡아타고 질주합니다. 남은 시간은 불과...


  뭐 결과는 어찌되었든, 이 내용은 참으로 흥미로운 이야기를 우리에게 전해줍니다. 80일간의 세계 일주가 가능하다는 결과보다도 흥미로운 이야기 말이죠. 바로 ‘그들이 왜 하루를 착각했는가.’라는 것입니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신사의 시계가 틀린 건 아니라는 점입니다. 현명한 신사는 새로운 지역에 도착할 때마다 현지 시계에 자신의 시계를 맞추곤 했을테니.


  자. 현명한 여러분은 아시겠지요. 그들이 동쪽으로 향했기에 착각이 생겼다는 것을. 신사는 분명히 새로운 곳에 도착할 때마다 시계를 앞당겼겠지요. 하지만 그러다보니 하루가 앞당겨지는 것을 깜빡했을 것입니다.


  지구는 둥글기 때문에 시차가 생겨나며, 동쪽으로 갈수록 -자신을 기준으로- 해가 더 빨리 뜬다...라는 것은 요즘은 상식입니다. 물론 잘 모르는 이도 있겠지만요. 하지만 19세기 후반의 1873년(작품 내용상으로는 1872년)에는 아직 그 사실은 잘 알려져 있지 않았습니다. 고작해야 세계를 여행하는 선원들이나 학자들 정도만 알고 있었겠지요.


  쥘 베른의 “80일간의 세계 일주”가 재미있는 것은 80일이라는 한정된 시간에 목표에 도착하기 위한 과정에서 벌어지는 흥미로운 일들만이 있기 때문이 아닙니다. 바로 이런 ‘당시 상식을 넘어선’ 반전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요. 이 작품을 통해서 독자들은 ‘시간이 절대적이지 않다.’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어쩌면 그로부터 몇 년 뒤에 태어날 알버트 아인슈타인이라는 사람이 이 소설을 보고 그 사실을 깨달았다...라는 상상도 할 수 있을지도 모르지요.^^)


  장소에 따라 시간이 다를 수가 있다는 사실을, 여기서 조금만 걸어가면 시간이 달라질 수도 있다는 사실을...


  그 모든 것은 지금으로부터 139년전의 12월 21일. 두 신사와 한 인도인 여성이 런던에 도착함으로써 일어난 일이지요.


  그런 점에서 오늘은 “80일간의 세계 일주”를 한 번 보시는 것은 어떨까요? 이 작품을 쓴 쥘 베른은 고향과 파리를 제외하면 평생 여행을 하지 않았지만, 이 짧은 이야기 속에 넘쳐나는 상상력을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물론 영화도 좋겠지요. 다만, 성룡 주연의 작품 말고 원작을 가장 충실하게 옮긴 1956년작을 추천합니다.






여담) 쥘 베른은 정말로 SF라는 가능성을 일깨운 선지자였지요. 그의 작품은 '당대의 과학 기술을 활용하면 어린 것도 가능해.'라는 느낌이 많았다는 점에서 현대의 테크노스릴러물을 연상케 합니다. 경이로운 과학의 세계를 일깨운 쥘 베른의 작품 세계에 대한 내용은 다음의 포스트를 봐주세요.


상상 과학의 창시자 쥘 베른(http://www.joysf.com/3867749)


여담) 우연인지 아닌지 소설 속에서 그들이 런런에 도착한 1872년 12월 21일은, 훗날 '15~16세기의 발견 항해 이래 우리 세계에 대한 지식의 가장 큰 진보'라고 알려지는 "챌린저호의 탐사"가 시작된 날이기도 합니다.

  1872년 12월 21일에 출발한 챌린저호는 1876년까지 세계 각지를 돌아다니며 방대한 기록을 남겼습니다. 1,606일에 걸친 항해 기간 중 713일을 해상에서 지내며 1876년 5월24일 귀항한 챌린저호의 총 항해 거리는 68,890해리(127,580km)로, 이 동안 492회의 심해측량과 151회의 개수면에서의 트롤에 의한 해저 조사, 263회의 연속적인 해수온관측, 그리고 4,717종의 해양 생물을 발견했지요.

  쥘 베른이 이런 것을 예측했는지 어쨌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런 점에서 1872년 12월 21일은 또 하나의 기록할만한 시기라 할 것입니다.


HMS 챌린저


여담2) 아시는 분들은 잘 아시겠지만, 오늘은 마야의 달력으로 세상이 멸망하는 날이라고 합니다. 태양이 어쨌는지 모르겠지만, <2012> 같은 영화가 나오기도 했지요. 만일 그렇다면 이 포스트는 제 마지막 포스트가 될까요? 으음.. 인류의 문화사에 뭔가 하나라도 남는 것인지(뭐 지구가 멸망하면 이 포스트가 남을리도 없겠지만.^^)

  오늘 지구가 멸망할지 궁금한 분은 다음 포스트...


  "두개의 태양, 2012년 인류는 멸망할까?"(http://spacelib.tistory.com/5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