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타지 이야기 2014.07.13 05:05

SF에 다양한 장르가 있듯이 판타지에도 스타일이나 형식, 소재 등에 따라 다채로운 장르가 존재합니다. 그 중 가장 널리 대중적인 것은 역시 '검과 마법 이야기(Sword&Sorcery)'이지만, 그 밖에도 다양한 장르의 작품들이 판타지로서 흥미를 끌고 있지요.


제가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것은 '역사 판타지'입니다. SF에서는 대체 역사나 스팀펑크 같은 장르와 대비할 수 있는 역사 판타지는 역사적 사실을 무대로 판타지의 요소를 넣어서 이야기를 꾸며내는 장르입니다. 당연히 실존 인물이 등장하고, 당시대의 상황을 판타지로서 해석한다는 점이 흥미롭죠.


국내에서 가장 유명한 역사 판타지는 역시 게임으로 잘 알려진, 김진씨의 '바람의 나라'입니다.




고구려 초기를 무대로 한 이 작품은 '고대'에서 연상되는 것과 달리 상당히 화려한 복식이 특징입니다. 하지만 그보다 눈에 띄는건 역시 사신수라는 존재를 의인화하여 왕의 신하로서 등장시키는 등, 판타지 요소의 도입이라고 하겠군요. 이야기의 흐름은 실제 역사에 근거하고 있지만, 여기에 판타지라는 개념이 추가됨으로써 이야기의 내면이 달라지고 그만큼 흥미롭게 만듭니다.


안타깝게도 이를 원작으로 한 드라마에서는 표절 시비가 있었던 모 드라마와의 유사성을 피하려고 했는지, 가장 중요한 이들 판타지 요소를 제외함으로써 그 맛을 살리지 못하고 말았지요.



한편, 퇴마록의 저자인 이우혁씨가 쓴 "왜란종결자" 역시 임진왜란이라는 시대를 무대로 판타지적인 요소를 가미함으로써 흥미를 끈 작품입니다.



하지만 여기까지... 국내에서 역사 판타지를 찾는 건 쉽지 않습니다. 암행어사 같은 작품도 있긴 하지만, 박문수라는 역사적 인물이 등장하긴 해도 역사와는 거리가 너무 멀다는 문제가 있을까요? (물론, 역사 판타지라고 해서 역사 그대로 가야 하는 법은 없는 만큼, 이 역시 역사 판타지의 일종으로 볼 수 있을 것입니다.)




한국의 창작물이 많다고 하긴 어렵겠지만, 역사 판타지나 대체 역사 작품의 비율은 그 중에서도 특히 낮은 편입니다.



반면, 외국에는 역사 판타지가 꽤 많이 존재하는데, 실례로 중국에선 이미 오래전에 은나라와 주나라 전쟁을 소재로 한 '봉신방(봉신연의)' 같은 작품이 나오기도 했으며, 현장법사의 '대당서역기'에서 영감을 얻은 '서유기' 같은 작품이 중국의 4대 기서 중 하나로 호평받기도 합니다.



물론 우리나라에서도 "임진록" 같은게 있긴 합니다. 난데없이 관운장이 나타나 가등청정(가토 키요마사)을 베어버리는 등, 판타지적 요소가 들어 있죠. (기왕이면 관운장 대신 을지문덕 장군이나 강감찬 장군 같은 인물이 나오면 안 되는걸까요? 아니면 태조 이성계가 후손들을 위해 강림하신다거나...)


하지만 "임진록"은 역사 판타지나 대체역사라기보다는 그냥 자위적인 작품이라고 봐야 할 것입니다. 임진왜란이 패전이라 생각한(물론 침공을 용인한 시점에서 이미 지고 시작한게 맞습니다만) 작가가 '아니야. 우린 이겼어.'라고 우기는 내용에 가까우니까요. 판타지적 요소라고 해도 뭔가 그럴 듯한 면이 있어야 할텐데, 뜬금없이 관운장이 튀어나오는 등 그냥 망상에 가까운 느낌이지요.



역사 판타지의 재미는 무엇보다도 역사 속의 상황, 그리고 인물들이 등장하면서, 여기에 환상적이고, 기이한 내용들이 추가된다는 것입니다. 이야기의 흐름 자체는 역사에 가깝게 흘러가지만, 그 뒷면에서는 온갖 종류의 환상과 기담이 넘쳐나는 것이 재미있지요.


'우리는 전쟁에 이겼어.' 같은 자위적인 목적으로 신장인 관운장을 등장시키는 것만으로 역사 판타지라고 부르기는 어려울 겁니다. (비슷한 의미에서 '고구려가 삼국을 통일하면 세계도 정복했어.'라는 이야기를 SF로서의 대체역사라고 부르기는 힘들겠지요.)



대체 역사 작품이 미국에서 많이 나오듯, 역사 판타지는 일본에서 쉽게 접할 수 있습니다. 특히 게임과 애니메이션에서 이들 작품을 수없이 볼 수 있죠.


그 중에서도 인기있는 것은 오다 노부나가가 활약한 전국 시대 말기의 이야기입니다. 일찍이 삼국지, 신장의 야망으로 유명한 코에이에서도 오다 노부나가에게 고향을 잃은 이가 닌자가 오다 노부나가에게 복수하고자 떠난다는, "이인도 타도신장(伊忍道 打倒信長)"이라는 작품에서 오다 노부나가가 서양의 요괴들을 끌어들여 일본을 어지럽힌다는 내용의 '요술사편'을 두어 판타지적인 이야기를 연출하기도 했으며, 그 밖에도 '귀무자'니 '전국바사라'니 하는 작품이 있었고, 만화로도 '브레이브 10'이나 '사나다 10용사 대 팔견전'처럼 다양한 작품이 등장했습니다. 심지어 일본에서는 때때로 '전국 판타지'(전국 시대 배경의 판타지)라는 말까지 사용할 정도니까요.


[ 최근 재미있게 하고 있는 귀무자Soul. 여러가지 할게 많다는게 재미습니다. 역사 대로... 아니 그보다 더 심하게? 악당인 노부나가가 활개치는게 열받지만. ]


물론 전국 시대만이 무대가 되는 건 아닙니다. 실례로 테즈카 오사무의 만화 "불새"의 야마토편은 일본 서기에 등장하는 일본 초기 역사의 이야기에 판타지(물론 전체 내용을 볼때 SF로 볼 수도 있음)를 도입한 작품이거든요. (이 밖에도 이 시대를 무대로 한 일본의 만화, 소설은 적지 않습니다.)


일본에는 상당한 수의 역사 판타지가 존재합니다. 아니, 도리어 하이 판타지(작가가 창작한 임의의 세계에서 이야기를 펼쳐내는 판타지)보다는 역사 판타지를 중심으로 한 로우 판타지(현실 세계나 그와 비슷한 세계를 무대로 한 판타지)가 더 많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겠지요.


어쩌면 이는 이들이 가진 종교나 풍습에서 비롯된 것일지도 모릅니다.


이를테면, 비교적 가까운 원평 합전(겐페이 합전) 시대만 해도, 우시와카마루(훗날의 미나모토 요시츠네)가 텐구에게 무술을 배웠다는 전설 등이 그대로 존재하고 있으니까요. 게다가 곳곳의 신사마다 다채로운 전설과 설화가 있으니 이들이 엮여서 무언가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것은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었을 겁니다.


그 와중에서 역사 판타지는 아니지만, 역사적인 배경을 무대로 한 듯한 이누야샤 같은 작품이 넘쳐나는 것도 비단 이상한 일은 아니겠지요.



그렇다면 우리나라는 왜 역사 판타지를 찾기 어려운 것일까요?


여기에는 아마도 '현실성'을 중시하는 우리네 성향이 반영되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역사적 고증의 문제가 될지도 모르겠군요.


물론 사극에서 역사적 고증은 무시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역사라는 것 역시 소재의 하나라고 가정하면, 역사를 무대로 판타지나, 대체 역사를 펼쳐내는 것도 꽤 재미있지 않을까요?

posted by 별을 좋아하는 표도기
역사 이야기 2014.03.14 22:55

역사 다큐멘터리 전문의 히스토리 채널에서 새로운 방송이 시작했습니다.





제목은 "Going Medieval". 번역하면 "중세로 가는 중?(중세로의 여정)" 정도가 될까요.


실제 중세 시대의 생활을 체험하는 방송으로, 중세 시대의 음식을 먹고 중세 식으로 빨래를 하고, 중세의 치료법을 시험해 보는 등... 그야말로 중세를 여행하는 기록이죠.


다양한 내용이 있는데, 제가 알고 있던 중세에 대한 오해를 많이 바꾸고, 몰랐던 사실을 알게 되는 재미가 있습니다.


가령, 중세 시대에도 빨래와 목욕용 비누가 있었는데, 가격도 비싸지 않아서 누구나 널리 사용했다는군요.


칫솔은 없었지만, 이른바 대체품 같은게 있었고요.



게다가 중세 사람들은 세균 감염은 몰랐지만, 최소한 좋지 않은 공기가 병을 옮기는 원인이 된다는 것은 알았고, 살균 효과가 있는 허브를 가지고 다니며 향기를 맡곤 했다고 하죠.


더 재미있는 것은 바로 이겁니다.(아래 내용은 다른 곳에서 찾은 사진으로 방송에서는 이와 비슷한 모습으로 나옵니다.)




방송에서도 나오긴 하는데, 이건 흑사병이 유행했을 당시 의사의 복장이라고 합니다.


두꺼운 천에 얼굴 부분은 밀납으로 밀봉해서 공기가 잘 통하지 않게 했고, 안에는 식초에 절인 스폰지나 살균 효과가 있는 허브를 넣어두었다고 하죠. 다시 말해 중세 시대의 방독면이나 차폐복인 것입니다.


게다가 환자들에게서 가능한 멀리 떨어지고자 약을 전하는 긴 수저를 가지고 다녔고 말이지요.



물론 저들의 치료가 흑사병을 낳게 하는데는 거의 도움이 되지 않고 그로 인해 유럽 인구의 절반이 죽게 되었습니다만...


이처럼 여기선 중세의 여러가지 이야기를 볼 수 있습니다.



시리즈인지 아닌지 모르겠지만, 정말로 중세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해준 방송인지라 정말로 마음에 드네요.

posted by 별을 좋아하는 표도기
역사 이야기 2014.03.01 23:44



  총포의 발명이 언제 이루어졌는지는 알 수 없으나 그 무기는 이른바 근대라는 시기에 본격적으로 전장에 선보였다.

  이들은 그후 전장에서 다채로운 활약을 보여주게 되는데, 그 중 화포는 특히 당시 최강의 군사력을 자랑하던 오스만투르크에 의해서 공성병기로서 활용되어, 콘스탄티노플 전투 등에서 위용을 발휘하였다.

(* 포의 경우는 중국 송나라 때로 추정되나, 총의 경우는 14세기 중국의 화포가 아랍을 거쳐 유럽으로 전래되는 과정에서 생긴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러한 포는 상당한 대형이었고 운용에 기술이 필요했기 때문에 기존의 병과와는 별개로 운용되었다. 포는 특히 공성전에 있어서 고래로부터 사용되어 왔던 다양한 공성병기들을 대체하였으며(주로, 망고넬(투석기)과 캐터펄트(노포)를 대체하는 형식으로 사용되었다.) 공성부대(혹은 포병)이라고 불리던 병과는 이제 화포라 불리는 최신의 병기로 무장한 부대로 바뀌게 된다.


  처음에는 공성병기로만 사용되던 함포는 동양에서, 그리고 서양에서, 그것의 무게를 견디고 수송할 수 있는 함선과 연결됨으로서 해전(혹은 수전)에 도입되기에 이른다. 초기에 공성 병기로 활용되던 함선의 함포는, 15~16세기에 들어 영국, 조선 등지에서 해전에 도입됨으로서 해상 전투의 전술을 획기적으로 바꾸어 놓는 결과를 낳았다.

(* 우리가 알고 있는 바와는 달리 조선의 화포 기술은 당시 동양권에서 (특히 중국이나 일본과 비교할 때) 그다지 우수한 것이 아니었다. 조선에서 함포는 해군에서 널리 응용되긴 하였으나, 이것은 기술적인 면의 진보가 아니라 단지 함포를 열심히 쓰고자 한 이들의 노력에 의한 것일 뿐이었다.



  신기전이나 비격진천뢰 같은 병기는 이미 중국에서 개발되어 활용되고 있던 것이었으며, 일본의 경우만 해도 이미 오다 노부나가 등이 철제 대포를 도입했던 것과는 달리 우리의 천자총통 등은 아직 청동제로 되어 있어 빠르게, 많이 발사할 수가 없었다.

  게다가, 당시 명나라가 육군에서도 화포를 도입해서 운용했던 것과는 달리(명-청 전쟁 당시 청의 기마 군대는 명의 화포를 두려워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주로 수군에서만 활용되었다. 따라서 우리나라 수군의 이점은 화포 기술이 뛰어났다기보다는 주로 함포전을 목적으로 그에 적합한 함선을 설계하고 이를 충실하게 운용했다는데 있을 것이다.)


  이제 더 이상 성벽에 대한 무모한 돌격은 존재하지 않았다. 공격측은 먼 거리에서 다수의 화포로 성벽을 적중시키고 무너진 성벽을 통해 부대를 돌입시켰다. 기사들의 용맹도 왕의 위엄도 화포 앞에서는 효과를 발휘하지 못했고, 기술자와 시민들이 주역이 되어 활약하기에 이른 것이다.


  결과적으로 고전적인 개념의 높고 위압적인 거성들은 낮고 두꺼운 근대식 성벽으로 바뀌게 되었으며, 더 이상 마을 전체를 둘러싸는 형태의 성곽은 존재할 수 없었다. 자신의 영지를 보호하고 자신의 재산을 보호하기 위해 영주의 의해 만들어지던 성벽들은 점차 사라져 가고, 넓은 차원에서 전략적 거점에 방어용으로 세워지는 요새들이 중심이 되어 갔다. 이런 지역은 영주의 영토 바깥에 있었고, 왕의 권한에 의해 만들어졌기에 성에 의존한 영주들은 더 이상 힘을 가질 수 없었다.



  왕은 화포 기술을 국가 시책으로 독점하였으며 어떤 영주도 그 힘에 저항할 수 있는 군사력을 가질 수 없었기에, 영주들의 성들은 하나둘 해체되어 갔다.



  더욱이 해전에서도 기사와 맹장들이 활약하던 시대는 막을 내리고 있었다. 함포 기술은 가까이 붙을 필요없이 먼 거리에서 적 함선을 격파할 수 있는 힘을 제공하였으며, 대포를 쏘는데는 강철의 갑주와 용맹으로 무장한 기사들은 필요치 않았던 것이다.

  육박전이 사라짐에 따라서 유사시 노수들이 전투병의 역할을 할 수 있는 갈레선이 사라지고, 대형의 갈레온이 이 뒤를 이었지만, 곧 작고 가벼우면서도 함포 공격력에 치중한 프리깃으로 바뀌게 된다.



  이제 배에는 더 이상 육박전용의 해병대가 필요치 않았다. 멀미나 하는 육군을 탐탁치 않게 여겼던 해군 지휘관들은 그들을 기꺼이 배에서 추방하였고, 흔들리는 배 위에서도 정확하게 함포 사격을 가할 수 있는 수병들이 뒤를 이었다. 육체 노동을 하는 수병은 물론 필요하였지만, 무거운 갑주는 배위에서 부담이 될 뿐이었고, 포병들은 이를 거추장스럽게 생각할 따름이었다.


  이에 따라 수병의 지휘관들도 바뀌게 되었다. 전과는 달리 함선에는 오랫동안 배 위에서 생활해온 이들이 지휘관으로 탑승하게 된 것이다. 애꾸눈도, 절름발이도 능력만 있다면 수병의 지휘를 맡을 수 있었고, 활약할 수 있었다.



  14세기 경에 화포의 축소형으로서 개발되었던 소총은 15~16세기에 이르러 본격적으로 도입되기 시작한다. 당초 대포와 마찬가지로 지연 신관(심지)을 이용하여 화약에 불을 붙여 발사하는 스타일로 개발되어, 총이라기보다는 포라고 하는게 어울리는 이 병기는 스프링에 의한 격발 장치의 도입으로 인해 언제든지 발사할 수 있는 화승총으로 변화함으로서 보다 높은 효율을 갖게 되었지만, 실상 전장에서는 그다지 큰 인기를 누리지 못한 것이다.


  화승총은 총구를 청소하고, 화약을 부은 후에 탄알을 넣고(때로는 종이 등을 채워 넣어 총알이 굴러 나오지 않게 하고) 다시 화승의 화약 접시에 화약을 붓는 등의 작업이 필요하기 때문에 발사에 많은 시간이 걸린다는 단점이 있었다.(활의 경우, 익숙해지면 분당 6발 이상, 기계식 노의 경우에도 분당 2발 정도를 발사할 수 있었으나, 화승총은 분당 1발도 발사하기 어려웠다.)


  게다가 비가 오거나 습기가 심하면 화승의 불이 꺼져 발사할 수 없었으며, 고장이 잦고 오발이 많아서 문제가 생기는 일이 많았다. 무엇보다도, 유효 사거리는 100m 정도였지만, 50m에서 사람을 명중시키기가 어려울 정도로 그 정확도가 떨어지는 단점이 있었다.

(* 즉 유효 사거리는 50m 정도였다. 활의 경우 나라에 따라 다르나 45도 각도로 발사시 최대 사거리는 100m를 간단하게 넘겼으며(영국의 장궁병은 유효 사거리가 230m에 이르렀다.), 노의 경우에는 직선 사격을 해도 유효 사거리가 70m를 넘었던 것과 비교할 때 상당히 효율이 떨어지는 병기라고 할 수 있다.)




  초기의 소총은 칼에 비해서 위력이 뒤지는 문제도 있었다. 근접거리에서 그 위력은 절대적이지만, 발사 속도가 느리기 때문에 기병대의 돌격을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대량으로 운용하면 이 문제는 어느 정도 보완이 되겠지만, 활과는 비교할 수 없이 비싼 가격의 소총은 그렇게 다수로 사용할 영주들은 존재치 않았다. (* 총이나 포의 소음은 일단 겪어보면 그다지 위협이 되지 않는다. 심지어 화약조차 본적이 없는 남아메리카의 원주민들도 한번 겪어본 후로 대포나 소총을 그다지 두려워하지 않았을 정도라고. 스페인의 침략자에 의해 잉카 등이 멸망한 것은 화포의 위력도 -유럽에서 전해졌다고 잘못 알려진- 여러 질병 때문도 아니며, 단지 그들 자신의 정치적 내분에 의한 것이었다.)


  이에 따라서, 유럽에서도 그리고 동양에서 최초로 총을 도입한 일본에서도 총은 병기로서보다는 사냥, 혹은 암살 목적에서만 운용되었으며 속칭 ‘비겁한 병기’로 불리며 천시되었다.



  당시 동양과 서양에서 군대의 주력은 기병과 창병이었으며(여기에 궁병과 소수의 포병이 추가되었다.) 총병은 별도의 병과를 갖고 있지 않은 상태에서 극소수로 운용되는 것이 전부였다. 그러나, 오래지 않아 총은 전쟁의 역사에 있어 획기적인 변화를 가져오게 되었으니, 그것은 총이 기존의 활은 갖고 있지 않은 강력한 이점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위에서 보듯 단점 투성이로 보이는 총의 강력한 이점. 그것은 바로 활에 비해 익숙해지기 쉽다는 것이었다.


  100년 전쟁 이후, 시간이 흐름에 따라 전장의 주역은 소수의 용병이나 기사가 아니라 일반 국민들을 주축으로 한 국민군, 그리고 정부군으로 바뀌어 나갔다.

  전장에서 동원되는 군대는 도시 국가 시대처럼 수천, 고작해야 1만에 이르는 게 아니라 많게는 10만, 20만이 동원되기까지 했다.

  왕의 권력은 봉건 시대와는 달리 하늘을 찌르는 것이었기에(사실 여부는 확실치 않으나 ‘짐은 곧 국가다’라고 했던 루이 14세의 말이 전해진다.) 국민 동원령 정도는 어렵지 않았다. 그의 권력에 도전할 영주나 기사들은 이미 가신이나 신사로 바뀌었으며 왕이 모은 군대를 지휘하는 일개 지휘관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문제는 이렇게 대규모로 동원한 군대의 효율성이었다. 군대의 병사라는 것은 -훈련을 받아본 사람이라면 알겠지만- 사실 짧은 기간에 육성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칼이나 창의 훈련에도 상당한 시간이 소요되지만, 무엇보다도 시간이 걸리는 것은 역시 군대에 있어 중요한 한 축을 차지하는 장거리 부대. 즉, 궁병의 육성이었다.



  기사의 쇠퇴와 봉건주의 몰락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한편으로 최초의 국민군 개념이 도입되었던- 100년 전쟁 당시 영국은 대규모 장궁병 부대를 육성하기 위하여 오랜 시간에 걸쳐 궁술을 장려해야만 했다. 지금과 마찬가지로 당시 영국은 안식일(일요일)을 철저하게 지키는 것으로 유명했는데, 국왕은 칙명을 내려 안식일에 모든 놀이를 금지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오직 활쏘기 만은 장려함으로서 장래 국민국의 고용에 있어 필요한 준비를 갖춘 것이다.


(* 일반적으로 알려진 바와 달리 크레시나 아젱쿠르(Agincourt) 전투에서 프랑스군이 패배한 것은 영국의 궁병 부대가 훨씬 많았기 때문은 아니다. 비율적으로 볼 때 영국은 장궁병이 많은 것이 사실이지만, 전체적인 숫자로는 프랑스의 궁병과 노병이 압도적으로 많았던 것이다. 이런 전투에서 프랑스가 패배한 것은 무엇보다도 영국이 궁병을 집중적으로 운용하였던 반면 프랑스는 그들의 장거리 부대를 중기병과 철갑병의 보조 역할로만 생각했던 점. 여기에 영국 지휘관의 유능함과 프랑스 지휘관(양쪽다 국왕)의 무능함에 그 이유가 있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보면 알 수 있듯이 궁병의 운용에는 시간이 걸린다. 특히 조준과 사격은 빠르지만 이를 일제 사격 등으로 체계화시키는데는 상당한 어려움이 필요하다.(활은 몸의 힘을 사용해서 당긴 상태로 유지해야 하기 때문에 정확한 타이밍으로 발사하기가 어려운 병기이다. 여기에 사람마다 그 사거리가 달라서 필요한 지점에 필요한 만큼의 공격력을 집중하기가 어려운 측면도 있다.)


  때문에 궁병은 시간이 흐를수록 -훈련 기간이 짧고 일제 사격과 원하는 지점에 공격력을 집중하기 좋은- 노병으로 바뀌게 된다.

(여담 - 서양의 Crossbow는 흔히 석궁(石弓)이라는 이름으로 잘못 번역되고 있다. 이는 노(弩)라는 무기가 존재하지 않았던 일본에서 번역에 실수가 있었기 때문인데, 우리나라에서도 이를 계승하여 석궁이라고 번역하고 있는 것이다. 석궁은 새총 같은 것으로 돌을 날리는 무기이므로, 화살을 날리는 crossbow는 노나 노궁, 또는 십자궁이라고 번역해야 한다.)


  하지만, 노는 활(특히 장궁)에 비해서 병사 1명이 차지하는 공간이 줄어들기는 했어도, 옆으로 어느 정도 긴 공간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대량의 운용에는 역시 어려움이 있었다. 주변 사람들의 방해가 되지 않도록, 대규모 노병은 진형을 체계적으로 갖출 필요가 있었으며, -특히 방어전의 경우- 활에 비해 넓은 공간을 필요로 하는 단점이 있었다.


  여기에서 노의 여러 가지 이점을 모두 갖고 있으면서 보다 강력한 위력을 갖고 있으며, 여기에 공간마저도 좁게 차지하는 장점을 가진 총이 등장하게 된다.

  이 시기 총은 초기의 심지 타입 핸드건에서 벗어나 개인이 휴대할 수 있는 화승총 방식으로 변모되었기에 -불발 등의 문제가 있긴 했어도- 일제 사격 등을 사용하기도 좋았다.

  더욱이, 정확하게 명중시켜야만 되는 노나 활과는 달리 소총의 탄환은 몸의 어디에 상처를 입혀도 전투력을 확실하게 저하시킬 수 있었다.(격전 중에 다리나 팔에 화살이 맞은 채로 싸우는 병사들은 넘쳐나도록 많았으며 발달된 가볍고도 튼튼한 강철제 전신 갑옷은 이 피해조차 줄여주었지만, 소총 탄환에 대해서는 이 갑옷조차 도움이 되지 않았다.)


  더욱이, 총신이 길고 공간을 좁게 차지하여 그야말로 대량의 집중 운용이 가능하게 되었던 것이다.(이 당시 총기의 가장 큰 문제는 오직 하나 ‘너무 비싸다는 점’ 이었지만, 당시 전장의 주력이었던 기병의 구성과 운용비에 비하면 훨씬 저렴했다.)


  그리하여 총기의 여러 가지 이점에 눈독을 들인 지휘관들은 소총을 도입하기 시작했다. 그것도 소규모가 아닌 대규모로서.(정확히는 소규모의 소총병이라고 해도 과거와는 달리 원하는 지역에 집중배치하는 방식으로 운용되었다.) 기병은 더 이상 전장의 주역이 될 수 없었다.



  파이크병과 장궁, 여기에 노병의 등장으로 사실상 몰락의 길을 걸어가고 있던 기사는 이제 완전히 사라져 버렸으며(그리하여 그 유명한 돈키호테가 탄생하는 것이다.), 일본에서는 낮은 계급의 아시가루(足軽)에 의해 구성되던 장창병과 소총병이 사무라이의 권위를 박살내고 있었다. (* 창병과 소총병의 공통점은 둘 다 좁은 공간에서 집중 운용이 가능하며, 훈련 기간이 짧고 대량 운용시에 큰 효율을 보인다는 점이다.)


  기병은 아직도 기동성이라는 이점을 유지하고 있었지만, 이것은 전장에 도착한 뒤에만 쓸모가 있을 뿐. 먼 거리를 이동하는 경우 말의 유지를 위한 보급품 수송으로 도리어 지체가 되는 경우가 많았다.(* 그리고 일부 평야를 제외할 경우 기병의 이점을 살릴 수 있는 공간은 점차 줄어들고 있었다.)


  더욱 편하고 습한 기후에도 사용할 수 있는 부싯돌 식 점화 장치가 등장하고, 여기에 총 끝에 끼우는 총검이 추가됨으로서 창병조차 의례 행사 속의 유물로 사라져 버렸다. 이제 전투는 더 이상, 경험이 많은 용병이나 일기당천의 맹장에 의해 실시되는 것이 아니라 필요에 따라 징집된 대규모 정부군에 의해서 실시되었다.


  불과 한달 이하의 훈련으로도 수년간 훈련받은 기사 수준의 파괴력과 수개월 이상 훈련받은 궁병 수준의 정확성을 가지고, 창병처럼 좁은 곳에서 대규모로 운용할 수 있는 소총병이 전장의 주력이 될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17~19세기에 이르러 전쟁의 병과는 완전히 바뀌게 되었다. 바로 소총병과 포병으로...(구 시대의 유물인 기병은 그 기동성과 돌격력을 인정받아 2차대전 초기까지 유지되고 있었지만, 그들 역시 소형의 권총이나 장총 등을 들고 전투에 참여했으며 고전적 의미의 기병은 이미 사라져 버린 상태였다.)


  소총과 대포 시대의 지휘관에겐, 더 이상 용맹함이라는 덕목은 필요치 않았다.(아니 도리어 개인적으로는 용맹을 버리고 뒤에 설 필요가 있었다.) 시대는 용맹하기 이를데 없는 술트나 뮈라 같은 지휘관보다, 단신에 수학 성적이 우수한 나폴레옹 같은 지휘관을 필요로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관우나 여포 같은 맹장이 아니라, 제갈량 같은 문약한 선비가 최일선에서 지휘를 맡는 시대가 도래하게 되었다.


  소총과 대포는 병사 개개인에게 들어가는 시간과 돈을 줄여주고, 그 결과 국민군에 이어 정부군의 도입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소규모라고 해도 거의 수천 단위에 이르는 부대의 격전에서 ‘일당백’의 전설적인 영웅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으며 병사 개개인보다는 부대 하나하나가 중시되고 단체가 중시되는 체계로 바뀌게 되었다.



  소총과 대포. 그것은 물론 기존에 비해 강력하기 이를데 없는 힘을 가진 병기이다. 그러나, 그 전술적 의의는 단순히 「강력하기 이를데 없는 힘」으로 그치지 않는다. 그것은 한편으로 볼 때 기존의 권위를 완전히 부셔버리는 혁명적인 역할을 갖게 되는 것이다.



  고대로부터 볼 때 전장은 튼튼한 체격과 강한 힘, 그리고 용기를 가진 전사들의 무대였다. 항우나 여포 같은 장수들이 활약할 때 평범한 농민군은 나설 자리가 없었으며, 화려한 갑주를 갖춘 기사들이 질주할 때 초라한 몰골의 농노들은 뒤에서 응원하는 역할에 그칠 수  밖에 없었다.


  그들은 훈련조차 제대로 받지 못했으며 긍지나 자긍심 따위는 눈 씻고도 찾을 수가 없었다. 그들은 전장의 주역이 아니었으며, 앞에 나서는 입장도 아니었다. 바람에 흔들리는 등불... 그러한 상황이었을지도 모른다. 때문에 500 의군이 -관우, 장비, 유비의 맹활약에 힘입어- 5만 황건적을 물리치는 업적을 세울 수도 있었다.


  그런 전투에서 병사들은 전장의 주역이 되지 못한다. 아니, 어떤 점에서 하나의 말 역할도 하지 못한다.



  기사나 귀족, 사무라이 등은 농노나 농민, 혹은 시민들과 근본적으로 다른, 「푸른 피」를 타고난 존재일 수밖에 없었다. 일반인과 달리 어릴 때부터 무예를 익히고 말타는 훈련을 해 온 그들을, 그리고 고가의 검과 갑옷으로 무장한 그들을 「붉은 피」의 대중이 따라 잡을 수는 없었던 것이다.


  아니, 영국의 장궁병의 경우처럼, 궁병으로서 활약하는 방법이 있었겠지만, 에드워드 시대 영국 같은 극단적인 경우를 제외하면 그들이 「푸른 피」를 이길만한 훈련을 할 시간은 없었다.


  한 명의 기사가 현대의 전투기 수준의 유지비를 소모하고, 탱크 수준의 위력을 발휘하는 상황에서 진정한 평등은 존재할 수 없었다. 그러나 장궁병에서 시작된 일반인 군대의 활약은 소총과 대포에 이르러 그 절대적인 위력을 자랑하게 되었고 「푸른 피」를 뒷전으로 물러나게 만들었다. 국민군과 정부군은 더 이상 귀족이 지휘하는 것이 아니라, 국민이 뽑은(혹은 여러 과정을 거쳐 선발된) 지휘관이 지휘하였고, 전장의 주역은 더 이상 기사도 사무라이도 아닌 평범한 국민들이었다.



  이 같은 변화는 소총이나 대포만에 의해 일어난 것은 아니지만, 소총과 대포는 오랫동안 계속되어온 「푸른 피」의 몰락에 결정적인 기여를 하였다는 점에서 사실상 민주정의 탄생에 큰 힘을 안겨다 주었다. 국가의 운명이 걸린 전쟁에서 「푸른 피」만이 그 주역을 차지할 때 진정한 민주정은 존재할 수 없었다.


  귀족과 무사들이, 그리고 소규모 용병들 만이 전투에 나설 때 진정한 의미에서 애국심은 가치가 없었다. 그러나, 소총과 대포는 일방적으로 당하는 입장에 있던 민중에게 자신을 수호할 수 있는 힘을 가져다 주었다. 전투기 수준의 유지비를 필요로 하는 기병이, 그리고 수대에 걸쳐 명성을 쌓아온 사무라이가 며칠 훈련도 하지 못하고 갑옷조차 변변치 못한 소총병에 의해 쓰러지는 순간, 역사는 변화하게 된 것이다.


  소총과 대포는 전장의 혁신을 가져온 주인공으로 기억될 수 있다. 이들은 지금까지도 전장의 주역으로 활약하고 있으며 분명 미래에도 그럴 것이다.(물론 소총이 플라즈마를 발사하고 대포가 이온 탄환을 쏠 지도 모른다.)


  그리고 소총과 대포가 전장의 주역으로 활약하는 이상, 모든 이들은 그 자신이 이 세계를 수호할 수 있는 힘을 갖고 있다는 것을 기억하고 자긍심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이제 더 이상 「푸른 피」 만이 힘을 가지는 시대가 아니므로...



(* 참고 - 국민군과 정부군은 비슷한 개념이지만, 한편으로 다른 개념이다. 전자는 자신이 사는 지역이나 자신의 민족을 바탕으로 한, 다시 말해 지역적인 개념인 방면, 후자는 정치 체계에 바탕을 둔 개념인 것이다. 자신의 나라를 지키기 위해서 국민들이 모였다면 모두 국민군이라 할 수 있지만(넓은 의미에선 임진왜란 당시 의병도 국민군에 속한다.), 정부군은 국가의 지도 체계인 정부에서 필요에 따라서 국민들을 모으고 지휘하는 체계라고 볼 수 있다.)


p.s) 판타지 세계에서 마법병의 활용이라는 것에 대해서 이야기가 나온 일이 있습니다. 판타지 세계에서 강력한 마법사들은 대포에 필적할만한 효과를 가질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어느 정도의 훈련 만으로 충분히 활용할 수 있는 대포와는 달리 마법사의 훈련에는 시간이 걸리겠지요. 그들이 어느 정도 위력을 발휘할지 모르지만, 혼자서 성을 무너뜨리는 위력을 가진 것이 아니라면, 공성 병기보다도 큰 위력은 발휘할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위에서 이야기했듯이, 소총이나 대포는 그 위력보다는 대중이 쉽게 사용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 그 강점을 가지는 병기이니까요.



- 참고 - 


* 파이크맨(Pikeman) - 많은 이들이 파이크맨(Pikeman)을 창병이라고 잘못 생각하고 있지만, 그들이 사용하는 파이크(Pike)는 일반적으로 알려진 창(Spear)과는 완전히 다른 무기이다.

  판타지 등에서 흔히 등장하는 창은 개인이 쓰기 좋도록 대개는 자기 키 정도(보통 1.5m) 길이에 지나지 않는 무기이지만, 알렉산더 대왕의 자랑 거리인 팔랑크스(Phalanx)의 장창을 닮은 파이크는 최소한 5m, 길게는 6m에 이르는 튼튼한 막대에 창날이 달린 것으로서 완전히 다른 형태의 병기라고 할 수 있다.

  들고 다니기에 거추장스러울 정도로 긴 파이크는 개인이 홀로 사용할 수 있는 병기는 아니다. 이는 여러 명의 병사들이 진형을 갖추고 전투를 벌일 때나 쓰일 수 있는 무기로서 대규모로 운용될 때만 효과를 발휘한다.

  파이크를 앞으로 내밀어 고슴도치 상태가 된 파이크 병은 중기병의 돌격조차도 버텨낼 수 있는 힘이 있기 때문에, 중세 기사들의 시대에 종막을 고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으며, 화포의 등장과 함께 사라져 버렸다.



* 장궁(Longbow) - 미국이 자랑하는 대전차 헬기의 개량형을 부르는 이름으로도 잘 알려진 이 병기는, 100년 전쟁 시대 영국군의 주력 병기로서 활용되었다.

  대략 1.8~2m 길이에 이르는 장궁은 통상적인 활에 비해서 매우 강력한 힘을 발휘할 수 있다,

  유효 사거리가 230m에 이르는 이 병기는 보관이나 관리, 유지 등이 불편하긴 하였으나 기존의 활에 비해 두 배 가까운 유효 사거리로 먼 거리에서부터 공격이 가능했고, 기사들의 철갑을 간단히 꿰뚫을 수 있을 정도로 위력적이었다.

  길이가 길고 탄력이 강하여 사용에는 어려움이 많았으나, 영국에서는 일찍이 활쏘기를 적극 장려함으로서 대규모 장궁병 부대를 양성할 수 있었고, 주로 중산층 농민들로 이루어져 있던 이 병사들은 귀족이나 영주와는 달리 왕에게 절대적으로 충성을 바치며 전장을 주름잡았다.

  개전 초기 막강한 위력을 발휘한 이들은 후일 프랑스에서 국민병을 동원하고 화포를 본격적으로 투입함으로서, -그리고 영국의 정치가 불안해지면서- 차츰 모습을 감추게 되었다.



posted by 별을 좋아하는 표도기
별 작품 이야기 2014.03.01 23:27

히스토리 채널에서는 가끔 여러 방송들을 하루 종일 보여주는 마라톤 방송이 있습니다.


그간 픽커즈(고물 사냥꾼)나, 덕 다이너스티 같은 리얼리티 방송만 보여주었는데, 오늘은 얼마전부터 시작한 "빅 히스토리(과학이 만든 역사)"의 마라톤 방송을 해 주는군요.


빅 히스토리는 정말로 히스토리 채널답고, 히스토리 채널이기에 만들 수 있는 방송이라고 생각됩니다.


하나의 주제를 놓고 관련된 내용들을 소개하고, 역사를 매우 넓고 깊게 살펴봅니다.





소금이라는 것이 역사를 어떻게 바꾸었는가?(1회)


황금이라는 것은 역사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가?(2회)


그리고 말이나, 거대 건축물, 추위, 고기....



각각의 내용을 볼때마다 굉장히 흥미롭고 독특합니다.


황금은 왜 사람들에게 인기를 모았을까? "빅 히스토리"에서는 고대 세계에 갈증에 지친 사냥꾼들이 물의 반짝임을 쫓았던 것에서 그 가능성을 찾고 있으며, 인류에게 알려진 다양한 금속들을 이야기하면서 그들이 왜 황금 같은 위치에 놓일 수 없었는지를 이야기합니다.


가량 철은 너무 무겁고 납은 너무 무르고, 동과 은은 변하고....


오랜 옛날 지구가 탄생할 때 황금을 비롯한 중금속 대부분은 지구 깊숙이 들어가 버렸고, 그 후에 지구에 떨어진 소행성이 현재의 황금을 가져왔다거나...



황금 이야기와 관련하여 특히 흥미로웠던 것은 황금을 구대륙(이라고 불리는 유럽이나 아시아)에서는 거래의 수단으로 사용했던 반면, 신대륙(이라 불리는 아메리카)에서는 오직 종교의 상징으로서만 사용했다는 것입니다.


물론 종교적 상징으로서의 황금에 관심이 없었던 서양인들은 이들을 모두 녹여서 거래의 수단으로 썼지만 말이죠.



가장 특이했던 이야기는 바로 '말'(馬, Horse)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중앙 아시아 지역에서 길들여져 사용된 '말'은 유럽과 아시아에 퍼져 서로 비슷한 언어를 사용하게 되었으며, 말의 도움으로 거대한 제국이 세워졌지만, 동시에 말로 달려서 14일 이상 걸리는 거리까지 성장하기는 어려웠다는 이야기도 흥미로웠죠.


더욱 재미있는 것은 말이 가장 먼저 탄생한 것이 아메리카 대륙이었다는 것인데....


"빅 히스토리"에서는 빙하기 시대 아메리카의 말들이 먹거리로만 사용되었고, 이들이 아시아 지역으로 퍼져나가고 중앙 아시아에서 이들을 활용하면서 거대한 제국의 역사들이 시작되었음을 이야기합니다.


그로부터 오랜 시간이 흐르고 말을 사용하는 구대륙 사람들이 신대륙을 방문했을때 그들은 말이라는 존재에 충격을 받았고, 말이라는 존재를 활용하는 전술에 더욱 더 큰 충격을 받았다고 합니다.



만약에 그렇게 되지 않았다면? 가령 아메리카에서 먼저 말을 활용했다면 어떠했을까요?


그랬다면 아메리카와 유럽의 역사가 반대가 되었을지도 모른다는 상상을 하게 되는군요.


넓은 평야가 펼쳐진 북아메리카에는 몽골 이상의 강대한 제국이 세워졌을지도 모르며, 잉카나 아즈텍도 거대한 제국으로서 군림했을지도 모른다는 것이지요.



역사라는 것이 특정한 기술이나 존재에 의해서만 이루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역사는 어디까지나 인간에 의해서 만들어지고, 변화하는 것이지요.


하지만 이러한 인간의 삶 이면에 다채로운 무언가가 존재한다는 것을 생각할때, 도구나 기술을 통해서 살펴보는 역사의 관점을 부정할 수 없을 것입니다.


히스토리 채널의 "빅 히스토리(과학이 만드는 역사)"는 바로 그러한 점을 충실하게 정리하고 소개한 작품입니다. 그런 면에서 이 작품을 통해서 여러분은 지금까지와는 다른 관점에서 역사를 보고 생각할 수 있을 것입니다.



여담) 제러드 다이아몬드의 "총, 균, 쇠"보다도 좀 더 다채로운 느낌입니다. 다채로운 과학을 통해서 역사를 살펴본다는 점에서 말이죠.


여담) 추위가 나폴레옹의 러시아 원정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도 다시 볼 수 있죠. 바로 프랑스군의 단추가 '주석'으로 되어 있었다는 점... 주석은 날씨가 추워지면 변화하게 되고, 가루가 되어 망가집니다. 그로 인해 프랑스군의 의복은 단추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추위를 막는데 더 취약해진 것이고...


여담) 사실 하나의 주제나 사건을 바탕으로 역사를 넓고 깊이있게 살펴보는건 제가 가장 좋아하는 방식입니다. 하지만 "과학이 만드는 역사" 덕분에 이런 관점을 더욱 넓힐 수 있는 느낌이네요.


  제가 가장 좋아하는(그리고 가장 많은 영향을 받은?) 다큐멘터리는 "하이테크 고대문명"이지만, 이 작품은 그에 못지 않게 좋아하고, 영향을 받는 작품이 될 거 같습니다.^^

posted by 별을 좋아하는 표도기
역사 이야기 2014.02.02 15:32

  교과서를 보면 수많은 용어가 등장하는데, 그 중 상당 수는 결과적으로 같은 뜻이면서도 다른 느낌을 주는 것이 있습니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이 바로 '원정'과 '침공'이지요.(또는 ‘정벌(정복)’과 ‘침략’)


  각각의 말을 사전에서 찾아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원정 : 먼 곳으로 싸우러 감


침공 : 다른 나라를 불법으로 쳐들어가 공격함


  이렇게 보면 분명히 다른 뜻이지만, 실제로 사용되는 것은 별 차이가 없습니다. 그냥 바꾸어도 뜻은 그대로 통합니다.


  예제를 살펴보죠.


‘나폴레옹은 러시아로의 원정에 실패하면서 몰락하였다.’

‘나폴레옹은 러시아로의 침공에 실패하면서 몰락하였다.’





  결국 두 의미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하지만 뭔가 느낌은 다르죠.


  원정이라고 하면 왠지 ‘우리 편’ 같은 느낌이 돌고, 침공이라고 하면 왠지 ‘남의 편’이라는 느낌이 드는...


  결국 이 용어에서는 ‘내편, 니편’을 가르는 차이가 드러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러한 차이는 ‘침공’이나 ‘침략’에 대한 정당성을 부여하는 결과를 낳기도 하지요.


  예를 들어 볼까요?


‘광개토대왕의 북방 원정(정벌)’

‘광개토대왕의 북방 침공(침략)’


  용어만 바꾸었을 뿐인데 참으로 느낌이 달라집니다.


  여기서 ‘광개토대왕이 왜 침공했냐? 거기 우리 땅이잖아.’라고 한다면... 이렇게 바꾸어 보죠.


‘스페인의 잉카 원정’

‘스페인의 잉카 침공’


  아무리 보아도 두 번째는 스페인이 나쁜 놈 같습니다. 앞의 것은 뭔가 개척정신이 느껴지고....


  우스운 말이죠. 스페인의 행동이 ‘원정’이건 ‘침공’이건... 거기에 사는 사람들에게는 민폐이상의 아무 것도 아니잖아요? 거기에 아무도 없었고(이를테면 원주민 조차 살지 않았고) 말 그대로 새로운 영토를 개척한 것이라면 모를까, 거기에 누군가가 있었다면 그 결과 그들이 좋아졌건 나빠졌건 그건 ‘침략’이 아닙니까?


  광개토대왕이라고 해서 다를 게 있습니까? 광개토대왕이 영토를 넓히는 과정은 분명히 ‘전쟁’이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전쟁에는 당연히 피해자가 생겨나게 마련입니다. 그리고 아무리 좋은 말로 포장해봐야 그들에게 있어서는 광개토대왕은 ‘침략자’ 이상의 그 무엇도 되지 못합니다.


  ‘침공 결과 더 좋아지지 않냐?’라는 의문을 던지는 분들도 계실 것입니다. 이를테면 카이사르의 로마가 갈리아를 ‘침공’하여 갈리아 사람들의 삶이 좋아졌다고 가정해 봅시다.


  하지만 카이사르가 로마를 침공하는 과정에서 수많은 갈리아인들이 죽고 상처입은 것은 부정할 수 없는 현실입니다. 가족을 잃은 사람들 앞에 가서 ‘그래도 당신 자손들은 더 행복하지 않겠냐?’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그 자손조차 모두 잃어버린 사람도 있을텐데 말입니다.



  원정과 정벌이라는 표현은 이 같은 피해자의 상황을 완전히 무시하며 잊어버리게 만드는 최면 효과가 있습니다. 그리고 역사를 더욱 객관적으로 살펴보지 못하게 만드는 문제가 있지요. 나아가 




  침략과 침공은 그 결과가 어떻게 되건, 그곳에 사는 이들의 삶을 파괴하고 수많은 희생자를 만드는 전쟁 행위입니다. 그것을 ‘원정’이나 ‘정벌’, 또는 ‘정복’이라는 말로 바꾸는 것은 승자의 변명일 뿐이며, 승자를 칭송하고 동일시키려는 잘못된 인식을 느끼게 한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눈 앞에 역사 책이 있다면 원정이나 정벌, 정복이라는 말 대신에 침략이나 침공이라는 말을 넣어서 다시 읽어보세요. 아마도 이제까지는 보지 못했던 역사의 또 다른 모습을 보게 될 것입니다.


  그것이야 말로 역사를 배우고, 역사로부터 무언가를 배우는 첫 걸음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여담) 사실 이런 말은 한자말로만 있는게 아닙니다. 영어에도 Conquer(정복)과 Invade(침략)은 분명히 구분되어 있거든요. 그리고 그들의 역사를 보면 알겠지만, 자신들의 조상에게는 Conquer를, 남의 조상에게는 Invade를 쓰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이 같은 사진을 보며 우리는 '정복자 나폴레옹'이라고 부르기도 하겠지만, 저 뒤에는 죽어가는 수많은 장병들이, 그 앞에도 수많은 시체가 널려 있는 것이지요. 그러니 나폴레옹은 훌륭한(?) 침략자인 것입니다.


posted by 별을 좋아하는 표도기
과학과 우주 이야기 2012.04.04 19:06

  나일강 유역의 카이로에서 서쪽으로 조금 걸어가다 보면 거대한 삼각형의 물체를 발견하게 된다. 이른바 쿠푸왕의 대피라미드라고 불리는 건축물이다.


 

  바닥 면적 230.5x230.5m에 높이는 146.60m. 전체 체적은 40만m3을 넘는 육중한 동체로 한때 우주에서도 보인다고 할 정도의 크기.(사실, 위성 궤도 상에서 보이는 인류의 창조물은 그 어느 것도 없다. 만리장성 역시 안 보이긴 마찬가지. 그것은 만리장성의 두께가 그다지 두껍지 않기 때문인데, 위성궤도 상에서 만리장성을 보기 위해서는 1km쯤 떨어진 곳에 놓여 있는 실 한가닥을 볼 정도의 시력이 되지 않으면 안 된다. 600만불의 사나이라도 되지 않는 한 불가능한 정도. 피라미드가 크다곤 하지만 면적 자체는 상암동에 세워진 월드컵 경기장보다도 작아 역시 우주에서 맨 눈으로 발견할 수는 없다.)

  사막을 따라 멀리서 다가가는 동안 며칠 전부터 보이기 시작하는 이 거대한 위용에 사람들은 새삼 숙연해지고 의문을 갖는다.

 

  도대체, 그 오랜 옛날, 왜? 그리고 어떻게? 이런 거대한 건축물을 만들었던 것인가?

 

  피라미드에 대한 의문은 그것으로 풀리지 않는다. 피라미드는 동서남북으로 정확한 각도로 세워져 있을 뿐만 아니라, 완전한 직사각형이다. 더욱이 쿠푸왕의 피라미드는 그 각도 역시 50도 20분 25초로 정확한 각도를 유지하고 있다.

 

  도대체 2.5톤에 달하는 돌 230만개를 동원해서 이만한 건축물을 세우게 된 것은 어떠한 이유이며, 또한 누구에 의해서 만들어진 것인가? 그리고, 피라미드의 용도는 과연 무엇인가?

 

  이에 대한 해답이 어떻든 피라미드는 이렇듯 다양한 수수께끼를 남기면서 지금도 카이로 외각에 우뚝 서 있다.

  그렇다면, 이러한 피라미드의 의문에 대한 해답은 어떻게 되는가? 다소 과학과는 동떨어진 듯한 이 주제에 대해서 필자는 현재까지 밝혀진 여러 가지 과학적인 사실들을 바탕으로 이를 소개할까 한다.


 

1. 피라미드는 외계인(혹은 초월적인 존재)에 의해서 만들어진 것이 아닌가? 어떻게 석기 밖에 갖고 있지 않던 고대인들이...

 

  라는 의문은 사실 논쟁의 여지가 없는 낭설에 불과하다. 비록 피라미드가 세계의 7대 불가사의 중의 하나라고 알려져 왔지만, 이것의 거대한 위용에도 불구하고 당시의 이집트인들에게는 이러한 건축물을 만들만한 충분한 여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우선, 이집트인들은 어느 날 갑자기 뚝딱하고 쿠푸왕의 피라미드를 만들어낸 것이 아니다. 그보다 오래전 피라미드의 기원이 되는 마스타파라는 지상묘가 있었으며,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점차 크기를 키워나가면서 피라미드에 가까운 형상을 하게 된다.


 

  그리하여, 쿠프왕의 아버지인 스네푸르 시기에는 거의 쿠프왕의 것과 비슷한 피라미드가 완성되기에 이르지만, 첫번째로 만든 피라미드는 아쉽게도 상부 구조의 구조적 문제로 인해 각도를 낮추어 건설하게 된다. 일명 굴절 피라미드라고 불리는 피라미드를 완성한 것이다.

  그러나 그는 이 성공에 고무받아 새로 2개의 피라미드를 세우게 되며, 이 피라미드는 쿠푸왕의 피라미드와 마찬가지로 삼각형에 가깝게 보이는 형태로 완성되었다.

  그리하여 그의 아들인 쿠푸왕에 이르러 가장 거대한 대피라미드가 완성된 것이다.(그러나 후세의 많은 이들은 계단식 피라미드나 굴절 피라미드를 무시하고 오직 쿠푸왕의 피라미드 만을 생각함으로서 피라미드가 하늘에서 뚝딱하고 떨어진 것으로 생각하고 말았다.)

 

  쿠푸왕의 피라미드는 돌 230만개를 쌓아서 만들었으며, 더욱이 총 중량은 650만톤에 이른다. 그렇다면, 도대체 석기 만을 갖고 있는 이들이 어떻게?

 

  이에 대한 답변은 피라미드가 가공에 가장 쉽다고 알려진 석회석으로 만들어진 것에 기원한다. 시멘트의 원료가 되기도 하는 이 돌의 가공은 놀라울 정도로 쉽다. 그게 어느 정도로 무른지를 확인하고 싶다면 피라미드에 올라가 여러분이 갖고 있는 동전으로 긁어 보기 바란다. 아니, 손톱으로 긁어 보아도 좋다. 여러분의 손톱은 경도 2.5로 경도 2의 석회석을 간단히 긁어낼 수 있을테니까.(그러나, 결코 권하지 않는다. 세계적인 문화 유산을 파괴하는 ' 추한 한국인 '이라고 대서특필되는 것은 곤란하니까.)

 

  마음만 먹는다면 석기가 아니라 나무 망치와 나무 못으로도 충분히 석회석을 잘라내고 처리할 수 있다. 물론 그들이 가진 여러가지 도구를 사용해서 비교적 간단하게 작업했을 것이다.(실제로, 이집트의 채석장에는 절취하지 않은채 미완성인 석재들이 발견되었는데, 여기에는 나무쐐기를 사용해서 작업을 한 흔적이 있다.)



  쿠푸왕의 피라미드 내부에 사용된 화강암은 경도가 높은 돌이지만, 화강암은 결에 따라서 간단히 처리할 수 있다는 특징을 갖고 있다. 때문에 특성만 알고 있으면 간단히 작업할 수 있는 것이기도 했다.

  그렇다면 그들은 2.5톤에 달하는 이 무거운 석재를 어떻게 올렸을까? 외계인의 비행 물체로 띄우기라도 하지 않는한... 이라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이러한 생각을 하는 것은 고대인을 무시하는 현대인의 ' 오만한 천성 '에 지나지 않는다.

 

  피라미드를 세운 이집트인들은 수렵과 채집으로 만족하고 움막을 지어 살고 있던 구석기 시대의 원시인들이 아니다. 그들은 불과 수천km 떨어진 유럽에서 사냥이나 하고 살던 시대에 이미 거대한 왕정 국가를 수립하고 있던 위대한 민족이었던 것이다.

 

  쿠푸왕의 피라미드가 세워진 것은 그것도 제 4왕조. 기원전 2500년 정도의 일이다. 이 시기에는 이미 이집트의 문명이 전래되어 미케네 문명이 시작되고 있었으며, 중국에서는 역사에 남겨진 최초의 왕조 은나라(전설 속의 하나라 유적은 아직 출토된 것이 없으므로)가 수립되어 청동기를 중심으로 번영하고 있었다.

  이들은 -당연하게도- 도르래나 지레대의 원리를 알고 있었으며, 이를 실제로 활용하였다. 2.5톤의 돌은 무시무시한 무게로 생각되겠지만, 바닥에 둥근 나무를 깔아주면, 불과 몇 명의 힘으로도 옮길 수 있는 수준이다.(같은 방법으로 잉카인들은 둥근 자갈을 사용해서 돌을 날라 마추피추와 같은 놀라운 건축물을 완성했다.)

  140m가 넘는 위로 돌을 올리는 것은 어려워 보이지만, 그들은 비탈길의 원리 역시 알고 있었다. 메소포타미아로부터 전래된 벽돌을 사용해서 비탈길을 쌓고 이 비탈길을 통해서 돌을 옮기는 것은 높은 급료에 대한 기대감과 파라오의 신전을 건립한다는 종교적 열성에 가득 차 있는 이집트인들에게 그다지 어려운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실제로 이러한 종교적 열성을 갖고 있지 않은 현대인들조차 고대의 도구 만 사용해서 피라미드를 만들 수 있다. 시카고 대학의 레너 교수가 50명도 안 되는 인원으로 3주일 만에 186개의 돌을 쌓아 8층짜리 피라밋을 건설함으로서 ‘ 석기로는 피라미드를 만들 수 없다. ’는 주장을 일축한 것은 유명한 사례. (50명만으로도 700년 정도면 쿠푸왕의 피라미드를 건설할 수 있다.)


  그런데 최신 연구 결과 이집트인들은 이보다도 훨씬 똑똑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피라미드 주변에서 발굴된 기묘한 나무 조각을 통해서, 도르래만이 아니라 바퀴의 원리도 알고 있었던 이집트인들이 돌 밑에 나무를 까는 -다소 원시적인 방법-이 아니라, 돌 자체를 나무로 둘러싸서 일종의 거대한 바퀴를 만드는 방식을 사용했음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돌은 네모나지만 나무를 대어 둥글게 만들 수 있다. 이렇게 만든 나무 부품은 재활용할 수 있으며 이처럼 커다란 바퀴 구조는 앞에서 가볍게 끌어당기기만 해도 경사를 쉽게 올라갈 수 있다. 이 방법을 따르면 레너 교수의 계산보다도 훨씬 빠르고 간단히 피라미드를 세울 수 있다는 것이 밝혀졌다.


  피라미드 주변의 발굴 결과 피라미드 건설에 동원된 인력은 5000명 정도였다고 하는데(혹자가 추측하듯 10만 명의 노예를 동원한 것은 아니다.), 이정도면 도르래를 쓰는 것만으로도 쿠푸왕의 피라미드를 7년 정도면 충분히 완성할 수 있고, 바퀴 구조를 이용하면 그보다 훨씬 빠르게 완성할 수 있다는 결론이 나온다.

  물론 농업 국가인 이집트에서 열심히 농사 지어야할 농민들을 1년 내내 동원할 수는 없었다.(몇몇 잘못된 견해와는 달리 당시의 이집트는 노예제를 갖고 있지 않았으며, 이른바 노예라고 하는 이들은 집안의 하인이나 가정부 정도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농민들은 농번기에는 바쁘지만, 농한기는 비교적 한가하게 지낼 수 있는 것이 사실.

  더욱이 나일강의 범람은 연례행사로서 이 기간에는 농업을 완전히 쉴 수 밖에 없었기에 그 동안 이집트의 농민들은 할 일이 아무 것도 없었다.(이 나일강의 범람은 주변의 토양을 비옥하게 만들었으며, 이집트 왕조의 수립에 기여하고, 천문학과 수리학이 발달되는 요인이 되기도 했다.)


  쿠푸왕을 비롯한 이집트의 파라오들이 바로 여기에 눈독을 들인 것은 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농한기라 해도 다음 농사 준비를 해야 하는 다른 문명의 농민들과는 달리 이집트의 농민들은 나일강의 범람으로 인한 농한기 때 따로 할 일이 없었다.

 

  일을 쉬고 있는 풍부한 인력...

  파라오는 그 기간 동안 가족들의 생계를 유지할만한 급료를 약속하였으며, 이는 수많은 농민들이 경쟁적으로 피라미드 건설에 매달리게 하는 원인이 되기도 하였다.

(피라미드 건설 참여에 참여하는 일에 대한 경쟁을 의아하게 생각하는 이들이 많겠지만, 과학이 발달한 지금조차 피라미드를 건설하는데 협력하라면 기꺼이(아마도 무급으로) 나설 이들은 넘쳐날 것이다. 하물며 실제로 파라오를 신이라고 생각하고 있던 당시의 국민들은 오죽하겠는가? 게다가 쿠푸왕의 피라미드 이후에는 그 거대한 위용을 보는 것 만으로 경외감과 함께 신의 역사에 참여하고 있다는 기대감을 갖게 하기에 충분했을 것이다.->이는 고대의 거대 건축물이 가진 또 하나의(지배 계층으로서는 더욱 중요한) 목적이었다.)


  더욱이 피라미드 제작에 참여한 이들은 장인으로서 존경을 받는 이들이기도 했다.


 

  실례로 근래에 피라미드 주변에서 발견된 한 무덤은 바로 그들의 사회적인 위치가 어떠했는지를 보여준다. 당시 일반적인 서민들과는 달리, 그는 피라미드에서 비교적 가까운 곳-비록 귀족과 왕족들을 위한 신성한 공간을 나타내는 거대한 방벽 너머에 위치하고 있지만-에 동료들의 무덤에 둘러싸여 누워 있는 것이다.


  신성하기 이를 데 없는 피라미드 주변, 그것도 여러 사람들의 호위를 받듯이 누워있다는 것만으로, 당시 피라미드 건설자들의 위치를 알 수 있게 해 주지 않는가?

 

  일꾼으로서의 여러 가지 혜택, 그리고 파라오에 대한 열정과 책임자에 대한 사회적인 존경. 이를 통해서 끌어모을 수 있는 5000명의 인력은 피라미드의 건설에는 충분한 인원이었다. 그들에게는 매년 4달 정도의 여유가 있었고, 파라오가 죽기 전까지만 완성하면 되었기에 마감에 쫓길 우려도 없었다.

(파라오가 일찍 죽으면 피라미드는 더 이상 세우지 않고 마감해 버리기 때문에 쿠푸왕의 피라미드 이후에도 미완성 피라미드가 종종 등장하곤 했다. 이집트의 국력이 약해져서 피라미드 건설에 투자를 하기 어려운 이유도 있었지만, 왕권이 약해진 만큼 파라오가 천수를 누리기 어려워졌기 때문이기도 하다. 비록 파라오가 신의 아들이긴 했지만, 어느 시대건 신의 아들이라는 거창한 명함을 두려워하지 않고 자신이 차지하려는 사람은 있는 법이니까.)


  그럼에도 그들은 열심히 일을 했을 것이다. 급료도 급료였지만, 피라미드 건설에 참여하는 노동자들은 이집트인들이 너무도 중요하게 생각한 사후 세계의 은총을 받는 것이기 때문에...

 

  미이라 등을 만들 수 있었던 귀족과는 달리 일반 서민들은 사후 세계의 은총을 받을만한 묘지를 만들 여력이 없었다.

 

  그러나, 이집트인들이 사후의 영생을 기린 것은 잘 기억되고 있는 사실이며, 그렇기에, 피라미드 공사에 참여하는 것은 실업자 대책을 위한 공공 사업일 뿐만 아니라, 파라오와 귀족들만이 독점하는 종교적인 은총을 서민들에게 나누어주는 자선 사업이기도 했다.



  물론, 경우에 따라서는 급료가 늦게 지불되는 바람에 파업을 하기도 했지만(이는 노예를 사용하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증거의 하나이기도 하며, 이집트 사회에서 농민들의 위치가 생각보다 높았음을 입증하는 예이기도 하다.) 몇몇 사람들이 남긴 낙서에서 보이듯 스스로를 ‘ 파라오의 친구들 ’이라 생각했던 그들은 자신의 사후 영혼에도 축복을 베풀어 줄 피라미드의 완성에 노력했을 것에 틀림없다.

  몇몇 지식이 부족한 만화가들은 완성된 피라미드에 노예들을 가두는 장면을 연출하기도 했지만 피라미드 건설에 참여한 노동자들 중에는 피라미드에 들어가는 은총을 받을 수 있다면 기꺼이 죽겠다는 이도 있었을 것이다. (사후 세계의 영생을 믿은 이집트인들이 노예에게 피라미드에 묻힐 거창한 권리를 주었을지는 의문이며, 실제로 어느 피라미드에서도 노동자의 시체 따윈 발견되지는 않았다.)

 

  실제로 왕가에 충성한 귀족들은 피라미드 주변에 무덤을 만들어 왕가의 은총을 나누어 받을 수 있는 기회가 있었으니... 피라미드라는 것은 단순한 무덤 이상의 종교적 상징으로서 받아들여지는 존재이기도 했을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상징을 완성하는데 있어 수십년에 걸친 노동은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기도 했다.

 

  실제 20세기인 지금에도 거의 몇백년에 걸쳐서 만들고 있는 사원이나 성당이 있지 않은가?

(*  필자의 생각에는 단순히 돌을 쌓아놓은 것에 불과한 피라미드보다 로마인들이 건설한 거대한 돔형의 건축물, 팡테온 같은 것이 훨씬 더 놀라운 불가사의라고 생각한다.)

 


2. 피라미드의 높은 완성도는 고대인의 능력이 미치지 못한다.

 

  ' 만물의 영장 '을 자부하는 현대인의 오만은 유명한 이야기지만, 이러한 의문(?)에 까지 이르면 그야말로 오만함이 극에 달해 하늘을 찌를 듯 하다.

  피라미드는 동서남북 방향으로 상당히 정확한 각도로 맞추어져 있는 것이 특징이다. 가장 정확하다는 쿠푸왕의 피라미드는 3‘ 6“(1%도 미치지 않는다) 정도, 심한 경우에도 14‘ 정도의 차이를 밖에는 나지 않는다.

  그러나 이러한 정확도가 있다고 해서 그들이 만들지 못했을 거라고 생각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비록 덧셈과 뺄셈 밖에는 하지 못했지만(곱셈과 나눗셈은 이를 응용해서 했다) 그들은 인류 최초로 삼각형의 여러 가지 원리를 이해한 민족이다.(3:4:5의 직삼각형을 완전한 삼각형이라고 생각했다는 것은 유명한 사실이다.)

 


  나일강의 범람은 4개월 정도의 농한기와 함께 풍요로운 곡창지대를 선물하기도 했지만, 여기에 범람해서 경계가 사라진 농토를 분할하기 위한 기하학과 수리학, 그리고 나일강의 범람을 정확히 예측하기 위한 천문학을 낳을 수 있게 했다.

  그들은 당시 세계 최고 수준의 천문학과 수리학, 기하학의 천재였으며, 그것은 후일 카이사르가 율리우스력을 만드는데도 도움을 주었을 정도였던 것이다.

  그러니 동서남북 방향을 정확히 측정하는 것은 그들에게는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며, 이에 맞추어 피라미드를 세우는 것도 큰 문제는 없었을 것이다.

  대대로 이 직업을 물려받는 전문가들이 측량을 마치고 자리를 잡게 되면 여기에 맞추어 돌을 쌓아나가는 것은 아이들조차 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천문학의 전문가들은 수시로 작업 공정을 살펴보고 문제점을 수정해 나갔기 때문에(피라미드 내부의 무수히 많은 공동들은 바로 이러한 수정 작업에서 나온 것이기도 하다) 처음에 조금 틀렸다고 해도 최종적으로 완성되는 시점에서 거의 맞추어진 상태로 완성하는데는 아무런 어려움이 없었다. 그리하여, 주변의 마지막 돌을 놓는 순간 이 수정 작업은 종결되고 피라미드는 동서남북에 정확히 맞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동서 남북의 특징으로 인해서 피라미드를 천문대라고 하는 학설이 있지만, 이집트에서는 굳이 피라미드처럼 거대한 천문대를 만들 필요없이 오래 전부터 다양한 천문 관측 시설을 통해 수립한 놀라운 수준의 천문학을 갖고 있었다.(무엇보다 피라미드는 천문대라고 할 정도로 정확하지는 않으며(피라미드에 따라서 각도가 다르기도 하다) 계단식 피라미드나 굴절 피라미드를 천문대라고 보기에는 억측이 심한 것이 사실이다.)

 

  더욱이, 피라미드는 완성도가 높은 것도 아니다. 피라미드가 여러 단계에 걸쳐서 발전되어 온 것은 이미 이야기 한 바와 같으며, 피라미드 중에서 가장 완성도가 높은 것처럼 보이는 쿠푸왕의 피라미드는 사실 대표적인 불량품 피라미드이기 때문이다.

  피라미드의 과학과 관련된 이야기에서 쿠푸왕의 피라미드의 현실이 무게를 아주 잘 받쳐주기 위한 구조로 되어 있다는 이야기가 있으나, 이것은 과학을 모르는 이들의 단순한 추측에 불과하다.

  그도 그럴 것이, 무려 5단계로 되어 있는 쿠푸왕 현실의 천정은 처음부터 5단계로 할 생각이 아니라 단지 아무리 해도 무게를 버티지 못하고 화강암 천정이 갈라지기 때문에 몇 개를 더 만들어 넣은 것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실제로 쿠푸왕의 피라미드의 현실 천정은 여기저기 금이 가 있으며, 그 위의 5단계 전부가 이리 저리 무너져 있는 상태이다.)


 

  게다가 쿠푸왕의 피라미드는 그 평면만도 3번에 걸쳐서 바꾸었을 정도로 부실 공사의 산물이기도 하다. 쿠푸왕의 현실이 결국 중심에서 삐딱한 위치에 놓여진 것도, 더욱이 다른 피라미드와는 달리 지하가 아닌 지상에 위치하게 된 것도 이러한 반복적인 개축 작업에 의한 것이다.(이와는 달리 처음부터 만들어 넣은 왕비의 방은 본래라면 파라오가 위치해야 할 지하, 그것도 피라미드의 중심부에 위치하고 있으니 재미있는 사실이 아닌가?)

 

  이 신비로운 건축물 안에 다른 피라미드에 비해서 특히 공동이 많은 것은 -그 내부에 비밀 통로가 있기 때문이 아니라- 그만큼 부실하게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1986년 못 미더워하는 이집트 정부에 국제 사회의 압력을 넣어 발굴한 왕비의 방 뒤쪽 공동에서 아무 것도 없는 빈 공간을 발견한 것은 ‘ 이번에야 말로 비밀이 밝혀진다 ’라고 생각한 피라미드 신봉자들의 기대를 산산히 부셔버린 촌극이었지만, 얼마 전에 생방송으로 중계된 로봇에 의한 탐사 역시 또 다른 벽이 있다는 사실로 인해 가벼운 해프닝으로 끝나고 말았다.

(생각해 보면, 쥐새끼나 다닐만한 공동을 ‘ 비밀통로 ’라고 칭하는 것도 코미디가 아니겠는가? 물론, 이를 위해 BBC와 같은 공영 방송이 거창하게 생방송까지 한 것을 보면 피라미드에 대한 신비라는 주제는 그야말로 세기의 특종이 될만한 가능성을 갖고 있다는 것. 즉, 어마어마한 돈벌이가 된다는 것을 입증하는 사례라 할 것이다.)

 

  ‘이번에야 말로 피라미드의 비밀이 밝혀진다.’라는 말은 쿠푸왕의 피라미드가 7대 불가사의 중 하나로 책정된 이래 계속된 일이지만 계속 나온 일이지만, 이제까지 어떤 시도를 통해서도 피라미드에 대한 비밀이 밝혀진 바가 없다.

 

  그것은 쿠푸왕의 피라미드에 숨겨진 비밀이 엄청난 것일지도 모르지만, 반대로 비밀 같은데 존재하지 않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보다 재미있는 사실은 피라미드의 비밀을 밝힌다면서, 보다 완성도가 높아서 조사하기 쉬운 다른 피라미드는 무시되고 있다는 점이다.)

 

  ‘ 피라미드의 신비 ’라는 거창한 이야기에는 사실 고고학에 대한 관심을 끌어내려는 학자들, 뉴스 거리를 만들려는 언론, 심지어 쇼 프로나 외계인 신봉 단체까지 기여하고 있다.

  그들의 머리 속에는 ‘피라미드는 무덤이자 파라오의 위엄을 상징하는 신전이다.’라는 생각은 존재하지 않고 있으며, 부실 공사와 시험적인 시스템의 도입으로 인해 여기저기 공동이나 틈새가 넘쳐나는 쿠푸왕의 피라미드는 그러한 기대감을 더해주고 있다.

 

  사실은 <엑스 파일>의 흔한 대사처럼 "진실은 바로 저기"에 있을지도 모르는데 말이다.

 

(* 쿠푸왕의 현실과 같은 설계는 그 전에도 그 후에도 어떤 피라미드에서도 도입된 바가 없다. 그만큼 쿠푸왕의 피라미드는 독특하지만, 건축이나 기술에 관한한 매우 현실적이기도 했던 이집트인들이 더 이상 사용하지 않은 설계라는 점은, 쿠푸왕의 피라미드가 부실하기 이를데 없다는 것을 증명하는 사례이기도 하다.

  그렇게 거대한 피라미드를 3번이나 개축을 했다는 사실은 쿠푸왕의 권력을 증명하는 사례이기도 하지만, 쿠푸왕의 피라미드가 지극히 부실한 불량품이라는 사실을 입증하고 있다.

  더욱이 쿠푸왕의 피라미드에 사용된 각종 설계(현실의 설계 등)는 그 후 어떤 피라미드에서도 채택되지 않을 만큼 악명이 높았다.)

 


3. 피라미드에는 신비한 효과가 숨겨져 있다.

 

  언제부터인가 '피라미드 파워'라고 하여 피라미드 모양의 부적이나 장신구가 등장하고, 심지어는 피라미드 모양의 방에서 잠을 자는 일까지 유행을 하곤 했다.


 

  그렇다면, 정말로 피라미드에는 놀라운 힘이 숨겨져 있는 것일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피라미드 효과'라는 것은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으며 단지 독일 전기 기술자의 착각과 지식 부족에서 나온 착각에 지나지 않는다.

 

  1859년 전신 케이블을 설치하기 위해 홍해로 온 독일 전기 회사의 사장 지멘스는 떡 본 김에 제사 지낸다는 식으로 마침 이집트 굴지의 관광 명소인 피라미드를 방문하기에 이른다.

 

  전기 회사의 창립자인 만큼 호기심이 왕성하고 시험을 좋아했던 그는 무심코 피라미드 꼭대기까지 올라가서 쉬게 되는데, 이 순간 손가락에 전기가 따끔한 것을 느끼게 된 것이다. 호기심을 느낀 그는 갖고 있던 도구들로 즉석 충전기인 라덴병을 만들었고 여기에 전기가 충전되는 사실을 발견했다.

 

  실제로는 피라미드가 아니라 에펠탑이나 남산 타워 꼭대기에서 실험했더라도 똑같은 결과가 나왔겠지만(피뢰침처럼 뾰족하고 높은 건물은 주변의 전하를 끌어들인다.), 당시에는 이러한 현상이 그다지 잘 알려지지 않았으며 더욱이 피라미드라는 장소의 매력이 겹쳐져 거창하게 ‘ 피라미드 효과 ’라는 명칭을 얻기에 이른다.

 

  피라미드 효과에 대한 ‘ 전설(?) ’은 1930년대 피라미드 내부에서 고양이 등의 시체를 발견했던 프랑스의 철물공 보비에 의해서 증폭되었다. 그는 피라미드 모양을 만들어 동서남북 방향으로 놔두고 그 안에 생선 등을 넣어 놓았는데, 이들이 모두 썩지 않고 미이라 화되어 버렸던 것이다.

  더욱이, 체코 기술자인 칼 드루발에 의해서 피라미드 내부에 둔 면도날이 날카로워지는 현상이 관측되면서(라는 이야기가 나오면서) 피라미드는 놀라운 효과를 갖고 있다는 이야기가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그 후 피라미드 효과에 대한 소문들은 눈덩이처럼 불어나기 시작했다. 상처가 나도 고통이 줄어들고 잠을 잘 자게 된다거나, 심지어 아이들이 말썽을 부리지 않게 되었다는 이야기까지 있었다. 그 중에는 피라미드 안에서 명상을 하면서 초능력을 사용하기도 했다는 이야기까지 나올 정도였다.

  이에 대해서 일부 학자들은 피라미드의 모양이 안테나와 같이 에너지를 끌어들이고 있다는 가설을 발표하기도 했으며, 이를 "피라미드 효과"라고 이야기하였다.

  그러나 현재까지도 사실로서 받아들여지고 있는 이 피라미드 효과는 실제로는 아무 것도 아닌 사기극이나 허구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이 속속 밝혀지고 있다.

  실제로 '과학적인 방식'으로 실시되었던 스탠포드 대학의 실험에 따르면, 피라미드 내부에 넣어둔 달걀은 구역질이 날 정도로 썩어 있었으며 면도날이 날카로워지는 현상도 입증되지 않았을 뿐더러, 피라미드 속에서 초능력을 발휘했다고 말하는 어떤 이들도 그들의 주장을 입증하지 못한 것이다.

 

  더욱이 피라미드 효과는 똑같이 보이는 여러 피라미드들이 사실은 제각기 다른 각도로 서 있다는 점에서도 문제가 되고 있다. 쿠푸왕의 대피라밋은 50도 정도이지만, 그 주변에 있는 그의 아들, 케프렌의 피라미드는 53도로 쿠푸왕의 피라미드에 비해서 조금 높다. 그리고 그의 아들인 미케리노스의 무덤은 이보다도 조금 더 각도가 높은 것이 사실.

(여러 번에 걸쳐서 개축되는 등 부실 공사의 문제가 심각했던 쿠푸왕의 피라미드와는 달리 이 두개의 피라미드는 체계적으로 제대로 완성되어 그 완성도가 훨씬 높다. 심지어 케프렌의 피라미드에는 그 표면을 채워두었던 반들반들한 면이 아직 일부 남아 있어, 피라미드의 완성 당시 모습을 짐작케 하고 있다.)



  혹자들의 추측에 따르면 피라미드 효과를 위해서는 쿠푸왕의 피라미드처럼 50도 각도로 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계산을 해 보면 케프렌의 피라미드 쪽이 제대로 된 피라미드 형태에 적합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유독 '부실 공사로 인해 각도를 낮출 수 밖에 없었던' 피라미드에서만 피라미드 효과라는 것이 등장한다는 건 도대체 무슨 말인가?

  어쩌면 피라미드의 효과가 너무도 우수해서 완성도가 낮은 쿠푸왕의 피라미드에서도 그 효과가 발휘되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지금으로서는 피라미드의 효과라는 것을 입증할만한 어떠한 증거도 존재하지 않는다.


  피라미드 효과에 대한 믿음은 피라미드 안에서 발견된 미이라들의 보존 상태가 너무도 좋다는 것에서 기인하는 바가 있지만 미이라는 피라미드에 의해서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실례로 피라미드와 무관한 왕가의 계곡이나 귀족들의 영묘, 심지어는 로마 시대의 공동 묘지에서조차 미이라를 발견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건조한 이집트의 환경은 본래부터 미이라가 발생할 가능성을 높여주고 있으며, 이를 통해서 이집트인들은 뛰어난 미이라의 제조법을 구축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일부 사람들의 생각과는 달리 파라오들은 무작정 붕대에 감긴채 피라미드 안에 안치되어 미이라화되는 것은 아니다. 그들은 오랜 경험을 가진 기술자에 의해 많은 시간에 걸쳐 「처리」되고 그 결과 "미이라로 완성된 상태"로 붕대에 감긴 채 피라미드 안에 들어가게 되는 것이다.

  우리들이 미이라를 통해서 파라오나 귀족들의 생전의 모습을 떠올릴 수 있는 것은 피라미드가 신비한 힘을 발휘하여 그들을 보호해 주었기 때문이 아니라, 장인 정신을 갖춘 고대의 미이라 제작자들이 파라오들이 사후 세계에서 사용할 육신을 보존하기 위하여 그들의 기술을 총 동원했기 때문이다.

  진정한 피라미드 효과란 바로 고대 이집트 장인들의 정신에서 흘러나온 것이라고 할까?(물론, 학구 정신에 불타는 학자들(이를테면, 스스로 미이라광이라고 말하는 밥 브라이어 박사 같은 사람) 역시 비슷한 방식으로 미이라를 만들 수 있지만 이를 위해서 피라미드 모양의 방이 필요하지는 않다.)


 

  그것이 돌로 되었건 아니면 쇠나 금으로 되었건, 피라미드에는 시체를 미이라로 만드는 효과도 없고, 무엇보다도 미이라를 썩지 않도록 보호하는 힘도 없다.

 

  실례로 피라미드에서 발굴한 여러 미이라들은 고대 이집트인들이 그렇게 다양한 조치를 취했음에도 불구하고 박테리아에 의해서 천천히 썩고 있는 상태였던 것이다.(사람들이 그렇게 신봉하는 쿠푸왕의 피라미드에서 발견된 미이라에서 이러한 증상이 발견됨에 따라, 미이라를 조사하기에 앞서 방사선을 쬐어 소독하는 단계가 추가되었다.)

 

  어쩌면 피라미드 모양에는 혹자들이 주장하듯 ‘ 우주의 기가 모여드는 효과 ’가 있기 때문에 어떤 신비한 증상이 나오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조사 결과를 놓고 보면 피라미드 효과는 다분히 「위약 효과(사탕을 약으로 알고 먹으면 약을 먹은 것으로 착각해서 병세가 호전되기도 하는 효과)」와 같은 심리적인 영향이 큰 것으로 생각되고 있다.

  즉, "나는 피라미드 형태의 방에 들어왔다. 여기에는 우주의 기가 모이고 있기 때문에 마음이 차분해진다."라는 생각만으로 마음이 차분해지고, 머리가 맑아지며 상처의 고통이 줄어드는 것처럼 말이다.

(실제로 이와 관련된 실험에서 눈을 가리고 자신이 피라미드 내부에 있다는 것을 모른 상태에서 들어간 이들은 도리어 「눈을 가린 것으로 인한 불안감」을 호소했을 뿐이다.)


 

  그렇다면, 왜 지금에 이르기까지 피라미드 효과 관련 상품이 인기를 끌고 있는 것인가? 그것은 언론에서 몇 번이고 떠들어대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쿠푸왕의 피라미드라는 거대한 위용이 사람들의 마음속에 잠재되어 있기 때문이 아닐까?

 

  하지만, 누가 뭐래도 피라미드에는 매우 중대한 효과가 남아있다. 그것은 명상이나 수련, 혹은 신비한 기도에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보다 직접적으로 막강한 영향력을 미치는 강력한 효과이기도 하다.

  바로 『피라미드 특집』이라는 말 만으로 천문학적으로 늘어나는 광고비와 시청율, 그리고 이집트 항공과 정부, 호텔, 그리고 상인들에게 쏟아부어주는 관광비와 싸구려 모조품의 구입비용, 그리고 아무 것도 아닌 피라미드 모양의 장신구를 고가에 구입함으로서 상인들의 배를 불리는 효과나 피라미드를 내세운 종교의 교주가 만복을 누리게 하는 효과가 그것이다.

  피라미드라는 말 하나만으로 무한한 돈벌이를 가능하게 하니, 이것이야 말로 현재와 같은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그야말로 가장 강력한 ‘ 피라미드 효과 ’가 아니겠는가?


  피라미드에 숨겨져 있는 신비가 어떤 것인지 현대 과학의 힘을 빌려서도 밝혀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닐 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들이 ‘피라미드의 신비’라고 쉽게 말하는 이면에는 지금은 2등 국가(어쩌면 3등국가)로 전락해버린 이집트의 현재를 바탕으로, 이집트의 고대인들을 멸시하는 자만심이 숨겨져 있는 것이 아닐까?

 

  우리네 현대인들은 고대의 위대한 유산들을 보고 ' 불가사의 '라거나, ' 고대인 주제에 '라는 식으로 엉뚱한 이야기를 늘어놓는 경향이 있다. 이러한 고대인에 대한 멸시에 가득한 고압적인 태도로는 고대인의 신비를 밝히는 것은 어려울 일이 아니겠는가?

 

  진정으로 고대인의 신비에 접근하고 그들의 비밀을 밝혀내려면 그들 역시 지금의 우리가 갖고 있는 지혜를 갖고 있는 인류의 일원이라는 사실, 그리고 그들은 존경받아야 마땅한 우리의 선조라는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고대인들은 결코 우주에서 내려왔다가 어디론가 날아가 버린 존재가 아니기 때문에...

 

 

  ' 피라미드는 고대의 기술로 만들 수 없다. '는 말에 묵묵히 작은 피라미드를 만들어 보인 레너 교수나 '그들에게는 미치지 못하지만...'이라며 멋진 미이라를 남겨준 밥 브라이어 박사의 태도, 그리고 지금도 피라미드에 대한 관심을 버리지 않고 새로운 가능성을 찾아내는 수많은 학자들의 모습은 바로 후손으로서 조상의 위대한 업적을 되새긴다는 겸손한 태도에서 나온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하며 글을 마친다.

 

  결국 인류의 문명은 그러한 겸손하면서도 과학적인 태도를 바탕으로 발전한 것이므로...


(* 이 글은 네이버 블로그에 올렸던 내용으로 최신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일부 수정했습니다.)

(* 여기에 사용한 사진 자료들은 모두 내셔널 지오그래픽과 히스토리 채널 등의 다큐멘터리 자료에서 발췌한 것입니다.)

posted by 별을 좋아하는 표도기
별 작품 이야기 2012.03.28 12:16

  히스토리 채널에서 제작 중인 다큐멘터리입니다. 엄청난 인기로 인해 현재 4시즌까지 나오고 있는 작품으로, 에리히 폰 데니켄을 시작으로 수많은 이들이 주장하는 "외계인 문명설"을 소개하는 다큐멘터리입니다.


  아래에 소개했던 "하이테크 고대문명(Ancient Discoveries)"이 고대인들이 우리 생각보다 뛰어난 기술력을 갖고 있었다는 이야기인 반면, 이 다큐멘터리는 뭔가 뛰어난 것처럼 보이는 고대인의 기술은 모두 외계인이 만들었거나 가르쳐준 것이라는 내용으로 정반대의 입장에 서 있는 작품이라고도 볼 수 있겠습니다. (하이테크 고대문명도 엄청나게 인기를 끌어서 시즌 6까지 나왔다는 점에서도 비교되는 작품이겠군요.)


  저는 외계인 문명설에 대해 비판적인 사람이지만, 이 작품은 상당히 설득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외계인 문명설 주의자의 입장에서만 서술하기 때문에 당연하겠지만(가령 필리레이스의 지도 같은게 실제론 후세에 만들어진 가짜인데다 실제 지도와는 크게 다르다는 점 등은 소개되지 않습니다.) 세계 각지의 매우 다채로운 외계인 문명설을 정리하고 소개함으로써 흥미를 북돋워주지요.


  일전에 '하이테크 고대문명'을 소개할때 "영감이 떠오른다"라고 이야기했는데, 이 작품도 마찬가지입니다. 내용을 보다보면 뭔가 그럴 듯한 이야기로 만들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떠오르죠. (실제로 "스타게이트" 같은 영화가 외계인 문명설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것은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


  이를테면 성경에는 "문을 만들어라."라는 대목이 나오는데, 그것은 어쩌면 스타게이트가 아닐까? 라는 상상을 하게 해 줍니다.


  게다가 '하이테크 고대 문명'과 마찬가지로 특이한 고대 유산을 다수 볼 수 있는 만큼 외계인 문명설이 아니라도 뭔가 재미있는 생각을 떠올리게 해 주기에 충분하죠. 가령 외계인 문명설은 '초고대 문명설'과 비슷한 맥락에 있고, 아틀란티스 같은 이야기와 연결해서 무언가를 떠올릴 수도 있으니까요.


  창작의 소재가 된다는 것 이외에도 이 다큐멘터리는 굉장히 재미있게 잘 엮어낸 작품입니다. 외계인 문명설에 대해 옹호하건 아니건 한번 쯤 볼만한 가치가 있지요.



  많지는 않지만 외계인 문명설에 반대하는 학자들의 말도 나오는데, 이들 역시 곰곰히 씹어볼만 합니다.


  "외계인들이 우리를 방문했다는 발상은 자극적이고 흥미로우며 정말 그런 일이 있었다면 얼마나 멋졌을지 상상하게 됩니다. 그런 식으로 사람들은 호기심을 가지고 생각에 빠지기 시작합니다. 물리학 또는 고고학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하고 마침내 그 과정에 참여하게 되는 것이죠. 이러한 일련의 과정은 인류 문명에 긍정적인 작용을 합니다."

 

  한 물리학자가 이런 말을 하는데, 아마도 이것이 이 다큐멘터리의 목적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외계인 문명설의 관점에서 고대사를 소개하면서 고대사에 대해 흥미를 갖게 하고 창작의 가능성을 펼쳐내게 해 주는 것이겠지요.

  그런 만큼 이 다큐멘터리를 볼 때는 일단 마음을 열고 편하게 받아들이시길 권합니다. 그리고 호기심을 갖고 상상하며 비판하거나 살펴보는 것이지요. 그런 과정을 통해서 무언가 새로운 즐거움을 얻을 수 있고,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낼 수 있다면 그것으로 좋은게 아닐까요?


여담) 이 다큐멘터리는 클럽박스 자료실( http://clubbox.co.kr/SFWAR )에 올려두었습니다.

여담2) 그나저나 하이테크 고대문명의 시즌 4,5,6을 찾고 있는데 안 나오는군요. 에궁...

posted by 별을 좋아하는 표도기
별 작품 이야기 2012.03.28 11:53

  히스토리 채널은 그 이름 그대로 역사물을 중심으로 소개하는 다큐멘터리 채널입니다. 국내에서도 케이블에서 방송했지만, 2008년에 철수하면서 참 아쉬움을 느끼게 했지요. 히스토리 채널에서는 그간 많은 작품이 소개되어 눈길을 끌었습니다.


  히스토리 채널은 이름 그대로 역사를 바탕으로 한 다큐멘터리가 특징인데, "너희들은 이렇게 알고 있지만, 실제로는 이래."라는 것을 보여주는게 특히 재미있을까요?



   엄청난 인기를 끌며 시즌 6까지 만들어진 "하이테크 고대 문명(Ancient Discovery)"이라는 다큐멘터리는 바로 그런 내용을 중심으로 한 것입니다. 고대 세계는 분명히 우리보다 기술력이 떨어졌습니다. 공학 기술은 지금보다 훨씬 뒤졌고 널리 쓰이지도 않았지요.

 

  하지만... 그것이 실제로는 우리가 생각하는 '야만적인 수준'은 아니었다는 것을 이 작품은 보여줍니다.

  고대 세계의 –대중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은 놀라운 기술들... 이를 테면, 그리스, 로마 등의 시대에 동력으로 움직이는 톱이 있어 돌을 잘라 석판을 만들었다거나, 수 십 톤 무게의 돌들을 거중기를 이용해서 쌓았다는 등. 눈길이 가는 내용이 많습니다.

  그 밖에도 고대 세계의 자동 기계나 중국의 –초보적인- 순항 미사일 등….

  이제까지 잘 알지 못했던 이야기들을 CG나 실제로 재현된 모습을 통해 보여준다는 것이 정말로 멋지지요.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사자 로봇, 헤론에 의해 개발된 지저귀는 새 등은 당시의 기술이 매우 뛰어났다는 점을 보여줄 뿐만 아니라, 즐거운 발상 역시 대단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하겠군요. (물론, 이들을 이용해서 신자들을 현혹시킨 고대의 성직자들 이야기에 이르면, 씁쓸한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만...)


  물론 이러한 내용은 다른 책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직접 만들어져 작동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는 것은 역시 영상 다큐멘터리 만의 매력일까요? 

  아직 보지 못하신 분들이 계시다면 한번 쯤 접해 보시길 권합니다. 상당히 즐겁고 재미있는 다큐멘터리니까요. 여러분이 창작자라면 이를 통해 새로운 영감을 얻을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시즌 1의 내용을 간단히 소개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1. 고대의 거대 기계


  그리스, 로마 시대 등에 실제로 제작되었던 구동식 톱, 거중기 등의 장치들에 대한 소개.

  아르키메데스의 다양한 장치 외에도 에펠탑 이전에 가장 높은 건축물이자 거대 장치였던 알렉산드리아의 파로스 등대에 대해서도 함께 소개합니다.

 

2. 고대 로봇 공학

  고대 세계의 자동 장치들. 필론, 헤론으로부터 시작되는 그리스 시대의 여러 자동 장치들과 중국의 자동 인형, 그리고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프랑스 왕에게 선물했다는 자동 사자 인형을 실제로 재현해 보는 이야기

 

3. 이집트의 전쟁 기술

  철퇴를 시작으로 하는 고대 세계의 여러 가지 전쟁 장비에 대한 소개.

  특히 역사에 자세하게 기술된 최초의 전쟁인 카데시 전투를 준비하여 이집트에서 고안했던 수많은 –고대 세계의- 신병기들을 실제 만들어 시험해 보기도 합니다.

 

4. 황하 문명의 전쟁 기술

  근대 이전까지 세계에서 가장 발달했다는 중국의 다양한 병기들에 대해 소개합니다.

  각종 공성 병기 만이 아니라 화약, 화염방사기, 고대의 순항 미사일이라 할 수 있는 화룡에 이르기까지…

  또한 1차 대전 이전의 유일한 연발병기였던 연노 역시 실제 작동 모습을 볼 수 있지요.

(연노는 쏘는 장면은 정말로 처음 보았습니다.^^)

 

05. 고대의 자동차와 비행기


  그리스의 지도를 보면 상당히 기묘한 것을 느끼게 됩니다. 바로 중간에 병목처럼 좁은 육지가 있다는 사실이죠. 이 곳을 질러가면 동과 서를 간단히 갈 수 있다는 느낌이 드는데… 그리하여 19세기 그리스인들은 코린트 운하를 건설하여 이곳을 연결했습니다.

  고대인들은 운하를 세울만한 여력은 없었죠. 하지만 교역의 안전을 위해서는 이곳을 지나는 게 가장 좋았고… 그렇다면 어떻게 했을까요? 바로 ‘육지를 통해 배를 옮기는 작전’이었던 것입니다. 후일 술탄 메메드 3세가 육로로 배를 옮겨 콘스탄티노플을 점령했지만, 그보다 1,000년 이상 앞선 기원전 6세기 그리스인들은 육지로 배를 옮기는 과감한 작전을 시행한 것이지요.

  그 밖에도 로마 시대에 현가 장치가 있었다거나, 다빈치가 설계한 최초의 전차, 그리고 어쩌면 있었을지 모르는 고대의 ‘비행기’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내용이 선보입니다. (고대의 비행기라고 해서, “외계인의 선물”은 아니라는 게 이 방송의 특징이지요.^^)


06. 고대의 거대 선박

  고대 세계에서 전투나 수송 등에 사용한 다양한 선박들… 우리가 생각하는 것에 비해 훨씬 크고 웅장한 전투용의 선박… 당시에 갤리선이 사용했던 충각 공격을 실제로 시험하여 어느 정도 위력이 있는지를 느끼게 해 주는 것이 눈길을 끄는데, 그 중에서 가장 인상적인 것은 그리스 시대에 탄생했다는 거대 전투함입니다.

  최소한 120m 길이에 두 개의 선체를 연결하여 만들어진 4,000톤 규모의 거대 전투함… 산업 혁명 이전의 최대급 함선이라는 이 전함은 자그마치 4,000명의 전투원을 탑재했다고 하지요. 가히 바다의 요새…


07. 트로이 원정대

  

  트로이 전쟁을 다양한 사료에 입각해서 '기술적'으로 해체하여 설명한 이야기.

  특히 트로이 전쟁의 이야기를 분석하면서 당시에 실제로 사용했던 것으로 생각되는 다채로운 무기와 장비들을 소개하는데, 당 시대의 무기를 실제로 제작하여 시험해 보는 등 여러 가지 내용이 있지만, 그 중에서도 호메로스의 이야기에서만 등장하는 ‘목마’가 실제로 존재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점을 시사하는 이야기가 눈길을 끕니다.

  트로이가 실제로 당시 말 교역의 중심지였을 가능성을 제시하며 당시 트로이에서 말 모양의 상징이 매우 높은 위상을 가졌다는 등 다양한 가능성을 소개하고 있죠.

 

08. 고대의 기계 문명


  중국의 지진계를 시작으로 중국에서 번성했던 대규모 산업 기계, 그리고 송나라에서 탄생한 혼천시계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내용을 선보입니다.


09. 동방의 기계 문명

   이제까지는 주로 중국과 서양의 세계를 이야기했지만, 여기서는 아랍 세계의 다채로운 발명품을 소개합니다. 상자에서 나와 자동으로 차를 따라 주는 ‘차 심부름 소녀’라던가 세계 최초로 크랭크를 사용한 펌프… 세계 최초의 어뢰에 이르기까지… 게다가 고대 세계의 방화복도 등장하는군요.


10. 신의 기계

   고대 세계의 종교 문명에서 보여주었던 ‘수많은 속임수’ 기술이 선보입니다.

  <파운데이션>이나 <해황기>에서도 “과학”을 이용해서 사람들을 현혹시키는 종교가 등장하는데 바로 그런 이야기라고 할까요?

헤론을 비롯한 다양한 발명가들이 탄생한 –신관들이 사람들 지배하려고 이용한- “신의 기적”과 관련한 원리를 충실하게 재현하여 보여줍니다.

  고대 세계의 ‘심령 치료’같은 것도 소개되는데, 요즘에도 이런 속임수에 넘어가는 사람들이 많다는 사실이 참 씁쓸하지요. (헤론의 기술은 정말로 놀라운 수준이었는데, 그의 기술 대부분이 실전된 것은 이런 종교에 널리 쓰였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이러한 종교용 기계들은 항상 비밀에 묻혀있었으니까요.)


  앞서 소개했듯 시즌 6까지 제작된 다큐멘터리 시리즈물인데, 안타깝게도 국내에서는 시즌 2의 초반까지만 방영되었고 개인적으로 시즌 3까지 밖에는 구해 보지 못했습니다. 국내에 DVD라도 나와주었으면 했는데 DVD는 고사하고 방송조차 제대로 되지 않았으니...



여담) 히스토리 채널은 은근한 인기가 있는 채널이었다고 아는데 왜 문을 닫았을까요? 아마도 히스토리 채널이 의지하는 '부가 판권 시장'이 국내에서는 전멸 상태이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디스커버리 채널이나 내셔널지오그래픽도 그렇지만, 사실 이들 방송은 방송 그 자체보다는 관련된 콘텐츠를 판매해서 수익을 얻곤 합니다. 국내에서도 디스커버리 채널이나 히스토리 채널, 그리고 내셔널지오그래픽의 다큐멘터리들이 DVD로 판매되기도 했죠.

  하지만, 영화 DVD도 안 팔리는 상황에 다큐멘터리가 팔릴리가 없지요. 1편에 2~3만원짜리 다큐멘터리 DVD를 사는 것은 저 같은 극소수의 사람들 뿐...

  혹시라도 보고 싶어하시는 분들을 위해 클럽 박스 ( http://clubbox.co.kr/SFWAR )에 등록해 두었습니다.

  돈을 내고 보는게 당연하겠지만, 이렇게 불법으로 밖에는 볼 수 없는 현실이 너무 아쉬울 뿐이지요.

  하이테크 고대 문명... 꼭 DVD로 나와주길 바랬는데...-_-;;

posted by 별을 좋아하는 표도기
역사 이야기 2011.05.31 11:45
총과 버터 - 역사의 전쟁
(Gun & Butter - War of History)

[ Copyright © history channel All rights reserved ]

  지금으로부터 800년 전. 오논 강 상류에 세워진 거대한 제단에 한 사람의 사내가 하늘을 마주하고 서 있었다. 강인한 눈길의 그 청년... 아흔 아홉의 계단 아래 펼쳐진 평원, 일제히 나열한 십만의 정병을 바라보며 그는 횃불을 들어 올렸다.

  "징기스칸!"

  누군가의 입에서 흘러나온 목소리에서 시작된 파문은 어느새 십만의 환성으로 이어졌다. 언제까지고 계속되는 소리의 물결... 그것은 방대한 몽골 초원을 넘어 무한히 퍼져 나갔다. 그들이 정복한 세계... 그리고 앞으로


그들이 손에 넣을 광활한 세계를 향하여...


  그렇게 시작된 정복의 꿈. 역사상 가장 넓고도 강대했던 제국의 역사는 이렇게 시작되었다. 한때 수없이 많은 부족으로 갈라져 대결하던 초원의 전사들... 그들이 외치는 하나의 함성과 더불어...

[ 제단 위에서 그는 전 몽골의 칸으로 군림했다. Copyright © history channel All rights reserved ]

[ 대몽골 제국. 역사상 그 누구도 이만한 제국을 세우지 못했다. Copyright © history channel All rights reserved ]


푸른 늑대, 그 위대한 탄생
(* 흔히들 몽골을 한자로 몽고(蒙古)라고 부르지만, 이것은 프랑스를 불란서(佛蘭西), 러시아를 아라사(俄羅斯)라고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낡고 잘못된 표현이며, 중국에서 몽골을 낮추어 부르는 표현이기도 하다. 때문에 이 글에서는 몽골이라는 말을 사용하고 있다.)

[ 푸른 늑대와 흰 사슴의 전설 (원조비사 / Copyright © Koei All rights reserved ) ]

  방대한 유아시아 대륙의 북동쪽, 한족들이 자부심을 갖고 중원(中原)이라 부르는 영토를 지나 죽음의 세계 고비 사막을 넘어서면 세계의 끝까지 펼쳐진 드넓은 초원이 그들을 맞이한다.

  황량한 대지와 낮은 구릉. 사시사철 메마른 바람만이 부는 가운데 기대할 것이라고는 밤하늘의 별 밖에는 존재하지 않는 그 곳에서도 사람들의 역사는 끊임없이 계속되었다. 소와 말, 양과 염소 만을 벗 삼아, 바람가는 대로, 그리고 별이 흐르는 대로 살아가던 이들... 어느 한 곳에 머무르는 일 없이 끝없는 초원 위를 떠도는 사람들... 그들은 눈앞에 펼쳐진 세계를 몽골이라 불렀다.

[ 몽골인. 그들은 여기저기 흩어져 살고 있는 유목민에 지나지 않았다. Copyright © history channel All rights reserved ]

  800년 전, 그들은 다 합쳐봐야 200만에 지나지 않았지만, 제각기 수많은 이름으로 나뉜 채 서로에게 칼을 들이대며 살아왔다. 소와 양에서부터 재물, 심지어 신부마저도 마음대로 빼앗으면서...

  문자조차 없이 그야말로 유목이라는 생활 속에 머물러 있는 사람들. 하지만 그들에게도 전설, 그리고 신화는 존재하고 있었다. 푸른 늑대와 흰 사슴... 바로 몽골인의 위대한 역사를 시작한 두 신성한 존재의 이야기를...

  하지만, 12세기 당시, 그들은 불운한 운명에 놓여 있었다. 동족끼리... 그들은 싸움을 벌여야 했고 그렇게 해서까지 얻은 얼마 안 되는 땅과 재물은 당시 강대한 세력을 자랑하던 여진족의 금(金)... 그리고 그들에게 몰려 몽골로 들어온 잘래어 족에게 빼앗겨야 했다.

  게다가, 금의 책략으로 벌어진 타타르족과의 대결에서 패배함으로서 더욱 큰 재앙이 밀려오고 말았다. 한때 초원을 질주하던 그들은 이제 말을 버리고 숨었고 들판을 기어 다니며 들쥐를 잡아먹고 썩은 고기를 주워 먹어야 했다. 한 끼의 식사를 위해 형제를 내버리고 자식들을 팔아버리는 현실이 계속되는 가운데 그들의 삶은 점차 고달픈 것으로 변해갔다.

[ 당초엔 불길하다 생각된 아이의 탄생에는 패자의 운명이 점쳐져 있었다. Copyright © history channel All rights reserved ]

  보르지긴 테무진... 후일 징기스칸이라는 이름 아래 위대한 제국을 수립한 그 사람은 바로 그런 세상에서 태어났다. 후일 위대한 이름을 얻게 되는 그곳, 몽골을 가로지르는 오논 강의 상류에서.

  사로잡은 타타르인 적장의 이름을 물려받은 아이. 오른손에 핏덩이를 쥐고 태어난 그 아이에겐 세계의 지배자가 되리라는 예언이 있었다고 하지만 당시엔 그 누구도 이런 예언에 관심조차 갖지 않았을 것이다. 테무진이 태어나던 1167년, 여름이 시작되는 당시 몽골족은 그 수많은 종족 중에서 가장 수가 적고 또한 약한 세력이었기 때문이다.

  축복과 더불어 태어난 소년, 테무진은 초원의 아이들이 그렇듯 또래 아이들과 더불어 초원을 달리며 세계를 배웠고, 자연을 통해 영혼과 육체를 키워나갔다. 강인한 전사인 예스게이. 그리고 현명한 정신을 가진 외삼촌 마메이의 도움을 받아... 그렇게 그는 훌륭하게 성장하고 있었다. 미래의 가능성을 기대하게 만드는 훌륭한 소년으로...


늑대의 첫 발걸음

[ 아버지인 예수게이의 사망. 이 사건으로 테무진의 운명은 급격하게 변화되었다. Copyright © history channel All rights reserved ]

  늑대는 아직 어렸고 주변은 너무도 험난했다. 그런 상황에서 그가 가장으로서 독립하게 된 것은 그 만이 아니라 몽골족에 있어서도 불운한 일이었다.

  그것은 부친 예스게이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시작되었다. 폭풍을 만나 헤매던 중 우연히 타타르인의 천막에서 휴식을 취하게 된 그는 길을 잃거나 굶주린 손님은 적과 동지를 가리지 않고 돕는다는 초원의 규율을 어긴 주인에 의해 독을 먹고 만 것이다. 어렵게 자신의 천막으로 돌아온 그였지만, 몸에 퍼진 독을 치료하지 못하고 결국 숨을 거두고 말았다.

[ 안다의 맹세. 그것은 그 무엇보다 소중한 고귀한 형제의 맹세였다. Copyright © history channel All rights reserved ]

  당시 테무진의 나이는 열 살. 그리고 그 어린 나이에 가장으로서 독립한 그 앞에는 너무도 힘든 상황이 펼쳐졌다. 아직 한 가족조차 보호할 수 없는 그를 몽골족 만 오천 가구가 주인으로 받아들일 리는 없었고 어린 그에게 공손할 이는 아무도 없었기에.

  그럼에도 그는 용기를 갖고 가장으로서의 첫발을 내딛을 수 있었다. 오랜 세월 함께 자라난 친구, 그리고 지금은 안다의 맹세를 통해 초원의 의형제라는 인연을 맺은 자무카의 격려를 통해서...

  두려움을 느낀 부족들이 보호를 바라며 떠나버리고 반란으로 인해 지도자로서의 자격까지 빼앗긴 상태에서도 테무진은 굴하지 않았다. 가장으로 그는 집안의 질서를 지키고자 했고 무엇보다 예스게이의 후계자로서 당당한 자세를 지켜야만 했다.

  이를 위해 그는 자신에게 도전할 뿐만 아니라 형제의 사냥감에 멋대로 손을 대기도 하는 배다른 형제, 벡터를 쏘아 죽여야만 했고, 이를 빌미로 그를 암살하려던 자들과 대결해야만 했다.

[ 가장으로서의 권위와 규율을 지키고자, 그는 이복 동생을 죽이고 만다. Copyright © history channel All rights reserved ]

  가난뱅이들이나 손을 대는 들쥐나 마못을 잡아먹으면서도 그는 자신의 이름처럼 강철 같은 사나이로 성장해나가고 있었다. 위기 속에서 그는 동지를 만날 수 있었고, 오랜 약혼녀 보르테와의 혼인을 성사시키는 등 부족을 다시 규합하기 위해 노력했다.

  오랜 만에 만난 보르테는 아름다웠고, 예물로 가져온 검은 담비털은 더 없이 탐스러웠다. 테무진은 양 1000마리 값어치에 달한다는 그 털가죽을 아버지의 의형제였던 토그룰 칸의 환심을 샀다. 힘과 지혜를 입증하여 호감을 얻은 테무진은 토그룰 칸을 양부로 모셨다. 그리고 그의 휘하에서 테무진은 오랜 형제, 자무카와 재회하였다.

  어릴 때 함께 초원을 달렸고, 안다의 약속을 나누었던 자무카. 토그룰 칸의 도움으로 자다라트족의 족장 자리를 되찾게 된 그와의 재회는 단순히 개인적인 기쁨 이상의 가능성을 그에게 가져다주었다.


새로운 바람, 그리고 우정의 종말

  그렇게 테무진은 가능성을 얻게 되었지만, 동료들을 더하여 고작 5채의 집에 불과했던 그의 힘은 미약한 것이었다. 때문에 오랜 원한을 갚기 위해 밀려온 메르키드족의 습격자들 앞에서 그는 아내인 보르테의 손을 놓고 도망칠 수 밖에 없었다.

  단 두 명의 부하와 아홉 필의 말. 테무진에게는 그것 밖에 없었지만, 복수의 일념은 그의 행보를 더욱 빠르게 했다. 6개월에 걸쳐 2천 5백의 병사를 규합한 그는 양부인 토그룰 칸, 그리고 안다 자무카의 군대와 합류하여 전진했다. 아내를 구하고 명예를 되찾겠다는 마음을 다지며...

[ 테무진과 자무카, 그리고 토그룰 칸은 말머리를 함께 하고 메르키드족을 공격했다. Copyright © history channel All rights reserved ]

(* 토그룰 칸, 그리고 자무카에게 있어 그 전쟁은 사실 테무진과의 의리보다는 메르키드라는 기름진 먹이를 노릴 수 있는 기회였다. 테무진의 상황은 바로 이를 위한 명분을 제공해 주었으며, 특히 오래전 그에게 도움을 요청했을 때 어머니를 첩으로 빼앗기는 굴욕을 겪어야만 했던 자무카는 개인적인 원한도 더하여 더욱 기세등등했다.)

  "돌진하라!"

  테무진의 신호와 함께 그의 부대는 상류의 산악 지역을 지나 적의 본진을 향해 달려들었다. 갑작스러운 기습으로 메르키드족이 혼란에 빠진 사이, 자무카와 토그룰 칸의 대군이 강을 넘어 그들에게 달려들었다. 수많은 천막이 불타오르는 가운데 메르키드 족은 처참하게 패배했고, 수많은 피난민들의 소음 속에서 테무진은 그의 사랑하는 여인, 보르테를 구출해 내었다.

  테무진, 그리고 자무카에 있어 진정한 대승으로 손에 넣은 영광,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를 통해 얻은 막대한 재물과 노예는 그들의 마음을 흡족하게 했으며, 그것이 우정의 결과라는 것은 그들을 더욱 기쁘게 해 주었다. 두 번째 안다의 맹세, 그리고 그 후 함께 했던 시간은 그들의 우정을 더욱 굳게 만들어 주었다. 하나의 마음... 그것이 영원하리라 믿어 의심치 않으면서...

[ 미소짓는 두 사람, 그러나, 둘 사이의 골은 점차 깊어져만 갔다. Copyright © history channel All rights reserved ]

  하지만, 그들은 모르고 있었다. 그들이 바라보는 세계가 각기 다르다는 사실을... 그리고 그 사실이 그들에게 어떤 운명을 가져다 줄 지를...


동에서 서까지, 무한한 가능성을 향하여...

  그것은, 메르키드족 포로 처리에 대한 논쟁에서 시작되었다.

  "나를 찾아오는 모든 사람들을 막지 않으며, 또한 나를 떠나는 모든 사람을 막지 않는다."

  아버지 예스게니가 그러했듯, 테무진은 모든 이들을 받아들이기 위해 노력했다. 몽골에 사는 모든 이들이 하나의 부족이라 생각하는 그는, 한때 적이었던 이들조차 자연스럽게 받아들였고 그들이 원하는 것을 모두 주었다. 작은 재물에서부터 노예에 이르기까지 그는 어느 것 하나 아낌없이 그리고 공평하게 분배하고자 노력했다. 재산이나 가축, 땅, 그리고 여자... 그리고 무엇보다도 중요한 자유를...

[ 테무진군. 이렇게 다채로운 깃발에서 알 수 있듯. 그의 군대는 많은 부족으로 구성되었다. Copyright © history channel All rights reserved ]

  그에게는 적도 아군도 존재하지 않았다. 한때 적이었던 존재와 아군이 있을 뿐. 날카로운 지혜로 그는 부하들의 공적과 과오를 정확하게 판단했고 상벌을 명확하게 했다.

  부하들과 같은 옷을 입고 같은 음식을 먹으며 심지어 자신의 말조차 마음대로 타도록 내어주는 그에게 있어 전통이라는 것은 관계가 없었다. 혈통도, 부족도, 그리고 신분도 그에게는 아무런 상관이 없었던 것이다.

[ 탁월한 지도자였던 자무카. 그는 전통에 집착했다. Copyright © history channel All rights reserved ]

  자무카는 달랐다. 자다라트 부족 족장의 아들, 다시 말해 높은 출신으로서 자신의 위치를 항상 인식하고 있던 그는, 귀족과 노예가 존재하지 않고 부족도 존재하지 않는 몽골을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그에게 있어 패권은 어디까지나 기존의 질서를 바탕으로 자신의 부족을 강대하게 키우고 그 힘을 바탕으로 전체의 칸(카칸)에 오르는 것이기에...

  무엇보다 그는 중원을 지배하는 금의 강대한 힘을 알고 있었다. 60만 대군이 군림하는 그 세계의 힘을. 몽고의 독립을, 그리고 통일을 바라지 않는 주변 세력의 위협을... 강자로서 자무카는 권력을 원하고 있었지만, 그로 인해 끝없는 전쟁이 펼쳐지는 것을 바라지 않은 것이다.

  "모든 이들을 평등하게 대하면 자연적으로 따를 것이다."

  이러한 테무진의 생각은 자무카에게 있어 이단 이상의 아무 것도 아니었다. 우정으로서, 그들은 선의의 경쟁을 약속했지만, 서로 상반된 견해를 가진 두 사람의 결별은 이미 결정된 것이나 다를 바 없었다.

  그리고 둘의 동반 관계는 결국 무너지고 말았다. 계급에 따라 막사를 짓도록 하자는 자무카의 제안에 대해 테무진이 그와 함께 야영하기를 포기하고 행군을 계속하면서. 그리고 그런 그의 뒤를 자무카의 부하였던 이들이 따름으로서 두 사람의 결별은 결정적인 것이 되었다.

  주변의 유민들을 받아들이며, 그렇게 테무진의 세력은 급격하게 성장했다. 몇 달 전 만 해도 다섯 채에 불과했던 영토에 수많은 이들이 몰려들고 수년에 걸쳐 그것은 5만 가구로 성장했다. 테무진의 키야트몽골족을 중심으로 몰려든 13개 부족. 그들은 테무진을 자신들의 칸, 테무진 칸으로 선출했다.

  만장일치의 민주적 방식에 의해 선출되는 칸,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형식상의 대표에 불과했다. 권력은 거의 없으며, 독립성이 강한 부족들은 항상 마음대로 행동했기 때문에... 하지만, 그런 형태에 만족할 수 없었던 테무진은 절대적인 군주제를 위하여 보다 명확하고 확고한 체제를 구성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 것은 형태나마 지켜지고 있던 자무카와의 우정을 완전히 깨뜨리는 결과를 낳았다. 아내를 구하는데 도움을 주었던 테무진이 자신과 결별을 선언했을 뿐만 아니라, 자신의 휘하에 있던 많은 무리들을 데리고 간 것에 분노한 그는 테무진의 칸 선언을 승인하지 않았다.

  하지만, 테무진의 양부인 토그롤 칸이 테무진을 지지하고 있었기에 자무카는 테무진을 제거하겠다는 마음을 잠시 감출 수 밖에 없었다. 언젠가 그를 공격할 명분이 생기리라 생각하면서...


달란 발주트, 그 처참한 결별의 현장

[ 그것은 칭기스칸의 최악의 패전이었다. Copyright © history channel All rights reserved ]

  그것은 초원에서 흔한 말도둑 사건에서 비롯되었다. 테무진의 막사에서 멀리 떨어진 사아리 대초원에서 발생한 그 사건은 추적자들의 화살에 맞은 말 도둑의 사망으로 간단히 종료되는 듯 했지만, 바로 그 말 도둑이 자무카의 이종사촌동생으로 친동생처럼 아끼고 있었다는 사실... 그리고 그 당시 그가 비무장 상태였다는 사실이 문제가 되었다.

  "살인자를 양도하라."

  자무카의 요구는 지극히 간단했지만 그것은 결코 테무진이 받아들일 수 없는 요구이기도 했다. 칸으로서 그는 자신의 추종자를 보호해야 할 의무를 갖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이야 말로 자무카가 바라고 있던 전쟁을 위한 구실이기도 했다.

  안다의 맹세는 깨어지고 둘은 군대를 이끌고 맞섰다. 몽골 고원 중심부의 달란 발주트에서 양 쪽을 합쳐 6만에 이르는 대군이 정면으로 격돌한 것이다. 아침에서 시작하여 오후 늦게까지 계속되는 격전, 그 격한 대결에서 보다 우수한 장비와 병력을 이끌고 있던 자무카는 시종일관 테무진의 군대를 압도하였고 저녁 무렵에는 그의 군대를 거의 포위하기 시작했다.

  사방의 활로가 막힌 상태에서 테무진은 험준한 산맥을 뚫고 겨우 겨우 탈출할 수 있었다. 태양처럼 솟아오르던 테무진, 그의 처참한 패전이 결정되는 순간... 그리고 그것은 테무진에 대한 자무카의 복수가 결정되는 순간이기도 했다.

[ 삶아죽이기... 이것이야 말로 몽골 최악의 잔혹한 처벌이었다. Copyright © history channel All rights reserved ]

  산더미 같은 전리품을 수레에 쌓은 그는, 테무진의 포로 대부분의 목을 잘라 버렸고, 그 중 고급 장교들은 산채로 삶아 죽였다. 그것은 사람의 영혼이 피속에 있다고 생각하는 몽골인에게 있어 혼백마저도 죽여 버리는 가장 처참하고도 끔찍한 처벌이었다.

  이제껏 유래를 찾기 힘들 정도의 잔혹한 처벌, 어쩌면 그것은 단순히 복수를 하기 위함이 아니라, 그 자신의 결의를 다지기 위한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형제 없이 자라났기에 인간의 정을 그리워하기도 했던 자무카, 테무진에게 분노하긴 했지만, 마지막까지 그를 설득하고자 했던 그인 만큼, 이렇게 돌아올 수 없는 길을 통해 의지를 다질 필요가 있었던 것은 아닐까? 하지만, 이것은 뛰어난 지도자였던 그의 단점을 보여주는 동시에, 혈통이라는 전통에 집착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를 드러내기도 한다.

  그렇다면, 이에 대해 테무진은 어떻게 반응했을까? 그는 겁을 먹지도 않았고 자무카를 증오하지도 않았다. 단지 자신의 실책을 괴로워하며 "다시는 패하지 않겠다."고 맹세했을 뿐...


  달란 발주트. 그 처참한 전쟁의 결과는 테무진의 성장에 결정적인 타격을 가하고 말았다. 그의 세력은 자무카가 무시할 정도로(아니 달란 발주트에서 최후의 진격을 포기했듯 무시해도 상관없다고 생각할 정도로) 줄어들고 말았다. 모든 이들이 테무진의 종말을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 자신이 믿고 있었듯이 그에게는 가능성이 남아 있었다. 패전 이후에도 변함없는 공정함과 정치력, 그리고 무엇보다도 패기를 통해 그는 사람들을 포섭하였고 그의 세력은 나날이 커져 강대해져 갔다.
  적의 내분이나 자무카가 움직이지 않는 틈을 타서 더욱 강대한 세력을 키우는데 성공한 그는 왕칸으로 추대된 토그톨 칸과 함께 몽골 초원 제압에 나섰다. 타타르를 밀어내고 쥬치족을 장악하는가 하면 타이추트 족을 무너뜨리는 그의 거듭된 행보에 몽골의 수많은 부족들은 두려움을 갖게 되었다. 그것은 과거의 안다, 자무카 역시 마찬가지였다. 달란 발주트에서의 완승 때문인지, 테무진의 재기를 그다지 걱정하지 않았던 그이지만 근처의 타이추트족이 멸망한 사실은 테무진에 대한 자무카의 위기감을 높여주었다. 자무카는 타이추트 족의 생존자를 포섭하면서 반 테무진-왕칸 세력을 집결시켰다.

  "여진족으로부터 왕의 칭호를 받은 배신자." 왕칸과 테무진에 대한 증오심은 자무카를 중심으로 부족들을 뭉치게 했다.

  그리하여, 몽골 고원에서 이제껏 볼 수 없는 대 병력이 집결한 가운데, 그들의 대표자인 자무카는 구르 칸이라는 이름을 받게 되었다. 수많은 부족들이 자발적으로 떠받드는 위대한 자... 자무카의 목적이 달성되는 순간이었다.


개혁과 전통... 대제국을 향하여...

  이렇게 자무카를 중심으로 한 대동맹군이 결성되는 순간, 본거지인 규렐큐 산하의 초원 지대에 머무르고 있던 테무진은 한 사내를 맞이하고 있었다. 동맹군에 속한 부족 출신 사내, 그는 테무진이 심어둔 첩자였다. 과거의 경험, 특히 달란 발주트에서의 패전을 바탕으로 첩보의 중요성을 깨달은 테무진은 몽골리아의 주요 부족에 첩자를 심어두었고 이를 통해 그는 자무카의 움직임을 거의 정확하게 감지하고 있었다.

  5만이 넘는 대군. 그것은 몽골에 인간이 살아간 이래 최대 규모의 병력이었고 이제껏 테무진이 상대한 그 어떤 적보다 강대한 세력이었다. 그리고 이를 지휘하는 것은 테무진 자신조차 참패했던 경험이 있는 탁월한 지휘관, 자무카였다.

  왕칸의 군을 포함하여 4만의 군세를 이끌고 있는 테무진. 그는 이 일생일대의 결전을 맞아 무엇보다도 신속한 기동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목표는 코이텐 지역에 위치한 세 봉우리. 이를 얻기 위해 그는 알탄, 다리타이, 쿠차르에게 각각 2천의 병사를 주고 선발대로 진격하도록 명했다. 그들의 목적은 봉우리를 차지하고 아군의 주력 부대를 맞이하는 것.

  바람을 가르는 듯한 행군으로 그들은 세 봉우리를 점령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직후, 그들 앞에 아추, 쿠투 등이 이끄는 자무카의 선봉이 다가오고 있었다.

[ 테무진의 군은 바람처럼 진격해 나갔다. Copyright © history channel All rights reserved ]

  "본대가 도착하기 전에는 절대로 적과 맞서지 말 것." 이것이 테무진의 명령이었지만, 그대로 두면 적의 선봉이 자신들에게 공세를 가하게 될 것이라 생각한 그들은 밤이 다가온다는 것을 이용하여 크게 함성을 지르며 자신들의 존재를 알렸다. 자무카의 선봉은 예상치 못한 상황에서 적과 대면하게 된 것을 우려하며 그 자리에 멈추어 섰다.
  바로 그 순간 코이텐 전투의 승리는 왕칸-테무진 동맹 진영에 들어가고 말았다.

  더 많은 군대가 있었고 무엇보다도 빨리 이동할 필요가 있었지만, 자무카는 신속한 기동을 포기하고 그 자리에 눌러 앉고 말았다.
   그로부터 고지를 빼앗기 위해 거의 한달 간에 걸친 소규모 격전이 계속되었고 그때마다 번번이 손해를 보는 건 자무카 진영이었다. 높은 곳에 위치한 테무진 진영에서 여유 있게 대처하는 상황에서 낮은 곳의 자무카군은 결사적으로 봉우리를 향해 달려들었지만, 별다른 효과를 보이지 못하고 무너져야 했다. 그렇게 한 달 여의 대결 끝에 결전은 전개되었지만, 분열되고 지친데다 식량도 떨어져가는 자무카의 군세는 더 이상 싸울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 왕칸의 우둔한 아들이었던 상쿤은 자무카의 계책에 말려들고 만다. Copyright © history channel All rights reserved ]

  하지만, 탁월한 지도자이자 외교적 술책을 갖고 있는 자무카는 그대로 무너지지 않았다. 그는 테무진의 성공을 의심하는 왕칸의 아들, 상쿤을 꼬드겨 왕칸과 테무진이 갈라서게 만들었고 이를 이용하여 한때 테무진을 무너뜨리기 직전까지 몰아붙였다.

  테무진은 단순히 군의 숫자가 적다는 것을 비관하지 않고 그것을 더욱 강하게 만드는 것으로 상황을 타개하고자 했다.

  아니, 그것은 단순히 강한 군대 만은 아니었다. 과거의 패배가 군대의 질적 차이에서 나왔다고 생각한 그는 무조건 격렬하게 싸우는 야만족의 전사로서가 아니라 거대한 군대로서의 체제를 구축하고자 했기 때문이다.

[ 몽골의 군세. 그것은 로마 군단 이후 최초로 등장한 근대적이고 지극히 효율적인 전투 집단이였다. Copyright © history channel All rights reserved ]

  체계화된 훈련, 그리고 실적과 실력에 근거한 확고한 계급 체제, 그리고 명확한 군율에 의해 구성되는 그의 군은 이제 더 이상 오합지졸의 떼거리 전사가 아니었다. 바로 훗날 전세계를 공포에 떨게 한 몽골군. 몽골 기병대가 탄생한 것이다.

  그것은 동방 최초의 근대적인 군대였다. 만-천-백으로 내려오는 조직 구성은 현대식 부대 체계를 연상케 하고, 충실한 보급 체제와 장비, 그리고 체계적인 훈련에 의해 구성되는 그들은 로마 군대가 사라진 이래 최초로 등장하는 근대식 군대였다.


자무카, 그 최후의 전장

  왕칸과 상쿤이 쓰러지고, 테무진 칸의 위세는 계속되었다. 그에 맞서기 위해 자무카는 남은 세력들을 모두 집결시키는 한편, 강대한 나이만족과 손을 잡고 일어선다. 나이만 하나 만으로도 5만에 이르는 대군. 여기에 남은 부족들을 합쳐 7,8만에 이르는 군사가 불과 2만에 지나지 않는 테무진의 군세를 막아선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쉽사리 움직이지 못했다. 적이 훨씬 많은데다 자신들은 지쳐있고 말도 쇠약해졌다는 것을 아는 테무진이 그들을 기만하는 전술을 세운 것이다.

  어느날 밤, 테무진 군이 주둔하고 있는 사아리 대초원이 불길에 휩싸인 듯 타오르기 시작했다. 아니, 적어도 산정에서 내려다 보는 나이만의 첩자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 하늘의 별보다 많은 횃불... 허상에 불과한 그것이 전쟁의 승패를 결정지었다. Copyright © history channel All rights reserved ]

  "적의 수가 너무 많아서 그들이 들고 있는 횃불의 수가 하늘의 별보다 많습니다."

  그 보고는 수적으로 우세한 나이만군의 사기를 떨어뜨리는 동시에 그들의 움직임을 멈추었다. 그것이 사실 한 사람당 5개씩 들도록 한, 거짓 횃불... 그리고 허수아비 병사라는 사실을 모르는 채. 나이만군은 나가서 싸우기 보다 유인 계책을 쓰기로 결정했다.

[ 질서 정연하게 나아가는 몽골군. 바로 이것이 그들의 전설이 시작됨을 알리는 행군이었다. Copyright © history channel All rights reserved ]

  그렇게 테무진군은 불과 2만도 안 되는 군세로 나이만의 영토 깊숙이 파고드는데 성공했다. 그제서야 나이만은 테무진군이 자신들의 절반도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들은 속은 것이다!

  결전을 앞두고 테무진은 군을 불러 보았다.

  "하나의 부족은 하나의 화살처럼 쉽게 부러지지만, 많은 부족들이 합치면 절대로 부러질 수 없다."

   어머니로부터 물려받은 화살의 예를 들어 그는 병사들의 단결을 강조하였다.


[ 대군을 이끌고 최후의 결전에 기대한 자무카. 그러나, 테무진의 군세는 그 이상의 힘을 보여주었다. Copyright © history channel All rights reserved ]

  "오늘은 운명의 중대한 갈림길이 될 것이다."

  테무진의 진격 명령과 더불어 2만의 병사들은 일제히 전진하기 시작했다. 수적으로 부족한 아군의 단점을 극복하기 위하여, 그는 밀집 대형으로 전진을 개시했고 이윽고 질서 정연하게 산개하며 적의 허점을 노리고 파고 들었다.


  테무진의 명령 하나하나에 따라 일사 분란하게 움직이는 군대. 그것은 그야말로 하나의 살아있는 생물과 같았다. 하나하나의 전사가 아니라 무리를 지어 군대로 움직이는 테무진군. 그들은 쐐기처럼 적진을 파고들어 혼란을 가중시켰다.

  격렬한 접전이 계속되던 중 갑자기 테무진의 군세 하나가 방향을 틀어 전장을 이탈하기 시작했다. 나이만군은 기세를 타고 추격을 시작했지만, 함정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으리라고는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다.

[ 추적하던 자무카의 군세는 복병에 말려들고 말았다. Copyright © history channel All rights reserved ]

  그리고 그것은 팽팽하던 상황을 완벽하게 뒤집기에 충분한 일격이기도 했다. 무너지는 군세 속에서 자무카는 병사들을 이끌고 도망쳤다.


징기스칸 그 위대한 전설의 시작

  그렇게 몽골의 마지막 군세는 흐트러졌지만, 전쟁을 종결되지 않았다. 나이만과 메르키드의 잔당들이 연합 전선을 형성하고 반격을 준비하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무력하기 이를데없는 그 공세는 순식간에 평정되었고 테무진의 적의 최후를 보기 위해 잔적 소탕을 명령했다.

[ 두사람의 재회. 자무카는 전사로서의 운명을 택한다. Copyright © history channel All rights reserved ]

  해가 바뀌고 테무진의 눈앞에 한 사람의 사내가 끌려왔다. 바로 부하에게 끌려오는 자무카의 쓸쓸한 모습이었다. 주인을 배신한 부하에게 테무진은 처형이라는 상을 내리고 한때 안다였던 이를 일으켜 세웠다.

  "자무카, 나의 오랜 친구여."

  테무진은 다시 자신과 함께 할 것을 부탁했지만, 자무카는 그것을 거절했다. 단지 "피를 흘리지 않는 죽음"을 허락해 달라는 말만을 남기며...


  "나의 영혼은 초원 위를 감돌며 자네와 후손들이 번영하기를 기도하겠네."

  마지막 말을 끝으로 그는 죽음을 맞이하고 말았다.

[ 칭기스칸. 그의 여정은 끝이 없었고, 금나라 수도의 성채조차 그에겐 작은 장해물에 지나지 않았다. Copyright © history channel All rights reserved ]

  자무카의 죽음으로부터 얼마후 테무진은 새로운 칭호를 얻었다. 징기스칸. 하늘에 태양이 하나이듯, 오직 하나 뿐인 몽골의 지배자로서... 그와 더불어 그의 개혁, 그리고 정복의 역사는 계속 되었다. 금나라의 수도 베이징을 공략하고, 서하를 쓸어버리고 페르시아마저 짓밟으며...

  그리고 그는 이루었다. 자신이 이루고자 했던 제국을... 몽골족 하나 만이 아니라, 몽골에 사는 모든 부족들... 그리고 더욱 많은 이들을 하나로 규합하는 세계를...


  그것은, 전통적인 혈연과 신분에 얽매이지 않는 현실적인 발상을 통해서 나온 꿈이며, 자무카로 대표되는 전통 세력과의 대결에서 승리함으로서 얻어진 운명이기도 했다. 자무카와 테무진. 두 사람은 능력 면에서 비교될만한 인재였고 라이벌로서 대결을 펼쳤지만, 결국 테무진의 승리로 종결되고 만 것이다.

  테무진, 그는 달란 발주트에서의 처참한 패배를 자신의 힘으로 딛고 일어서 스스로의 발로 걸음을 걸었다. 역경 속에서 그는 더욱 성장할 수 있었고, 보다 적극적으로 개혁을 실시하며 맞서 나갔다.

[ 의료부대를 창설하는 등, 그의 개혁은 끝이 없었다. Copyright © history channel All rights reserved ]

  자무카는 그렇지 못했다. 신분과 혈통, 전통... 그리고 정에 얽매인 그는 기회를 기회로서 살리지 못했고, 패배를 거름으로 삼지 못했다.

  하지만, 그것은 단순히 자무카가 구세대고, 징기스칸이 신세대이기 때문 만은 아닐 것이다. 그것은 징기스칸이 단순한 야만족이 군사 지도자가 아니라 역사에 길이 남을 뛰어난 정치, 군사적 천재이기 때문이 아닐까? (자무카가 뛰어났던 만큼 더욱...)


  그는 단순히 군 지휘관으로서만 뛰어난 것이 아니라, 한 나라의 체제를 완전히 바꾸어 새로운 가능성을 낳을만한 역량, 그리고 탁월한 이상을 지닌 인물이었다. 하지만, 그러한 역량이 친형제보다 가까웠던 동료에게조차 인정받지 못한다는 것은 역시 천재라는 인물의 숙명... 그리고 무엇보다도 개혁파의 숙명이 아닐까 한다.

  마찬가지로 천재적인 개혁파였던 카이사르가 "브루투스 너마저..."라고 외치며 숨을 거둔 것이나 멍청이라는 별명의 탁월한 개혁자 오다 노부나가가 측근이었던-그리고 구세대의 질서를 중시하던- 아케치 미츠히데에게 당하고 만 것은 바로 그런 개혁자들의 외로움을 입증한다.

  하지만 그들의 죽음에도 불구하고 개혁은 꾸준히 이루어진다는 점을 보면, 결국 그들이 가고자 했던 방향이 틀리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물론, "이기는 편 우리편"이라는 매우 간단한 논리로서 결국 승자가 선지자라는 것으로 귀결하기는 하지만 말이다.


미디어로 살펴보는 징기스칸

[ 고기를 뜯어먹는 야만인. 많은 작품 속에서 징기스칸. 그리고 몽골제국은 야만족으로 희화되어 표현되곤 한다. (엑설런트 어드벤쳐 Copyright © Orion Pictures All rights reserved ) ]

  역사상 가장 위대한 제국의 소유주...라고는 하지만, 징기스칸에 관한 작품은 그다지 많지 않다. 영화가 몇 편 만들어지긴 했지만, 1965년에 미국과 영국에서 만든 영화처럼 징기스칸 자체를 지극히 추하게 희화하는 경우가 많은 것이 문제. 심지어, [엑셀런트 어드벤쳐]([매트릭스]로 유명한 키아누 리브스의 초기작 중 하나.) 같은 작품에선 원시인 같은 복장을 하고 닭고기를 마구 뜯어 먹는 모습이 나오기도 하니 말이다.

[ 할리우드에서 만든 최초의 영화판 징기스칸. 몽골인은 나오지도 않는다. Copyright © Colombia Pictures All rights reserved ]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수 년 전 KBS에서 몽골에서 만든 드라마, "징기스칸"을 방영해 주었고 이와 관련하여 징기스칸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해줌으로서 갈증을 해소해 주었다.물론, 그 전에 방영했던 "이순신" 만큼 길지도 않고 그만큼 인기도 부족했지만 말이다.그 밖에도 소설이나 각종 매체로 수없이 많은 내용이 나오면서 그에 대한 궁금증을 해소해 주고 있다.

  징기스칸을 소재로 한 게임은 뭐가 있을까? 그다지 많다고는 할 수 없지만, 여기서 가장 손꼽을 수 있는 것은 역시 역사 시뮬레이션의 명가, 코에이 사의 '징기스칸' 시리즈이다. 국내에 한글화되어 출시되었던 이 작품은 총 4개의 시리즈가 소개되었는데, 윈도용으로 만들어진 [징기스칸 4]가 비교적 편하게 접할 수 있는 작품이다.

  코에이의 여타 게임과 달리 몽골편과 세계편으로 구분되어 있는 이 작품은 몽골 만이 아니라 다른 여러 나라로 진행할 수 있다는 게 특징이다.
(국내판에선 고려로 진행할 수 있지만, 장수의 능력이 정말 형편없어서 골치 아프게 한다. 그에 반해 일본은 압도적인 우위에 서 있는데, 그 중에서도 플레이 스테이션용 [원조비사]에서는 -사무라이의 위력은 제쳐두고- 아예 일본 내의 통일을 다룬 별도의 시나리오까지 준비하고 있을 정도. 게다가, 징기스칸이 일본인이라는 묘한 설을 입증이라도 하듯, 미나모토 요시츠네와 징기스칸의 능력치를 동일하게 만들어 놓고 있어 황당한 느낌을 준다.)

  각 지역을 점령하면서 후궁을 얻고 그녀들과의 관계를 잘 진행시켜 자녀들을 많이 가지는 게 중요하다는 것도 특징이다.

[ 원조비사의 후궁 모드. 연애 게임에 가까운 느낌도 있었다. Copyright © KOEI All rights reserved ]

  후궁 모드가 지나치게 부각되긴 했지만, 각 국의 다양한 병종과 특색을 잘 살렸고 적당한 수준에서 세계 정복까지 이룩하는 즐거운 게임으로서 기억할만 하다.

(* 징기스칸 일본인설 - 일본 겐페이 합전 시대 유명한 장수, 미나모토 요시츠네(源義經)가 대륙을 넘어가서 징기스칸이 되었다는 설. 그에 대한 일본인의 애정을 드러내는 얘기이지만, 동시에 몰지각성을 드러내는 낭설이다. 요시모토와 징기스칸이 비슷한 세대의 사람이라는 점 외에 어떤 증거도 없는 개그에 지나지 않지만, 의외로 많은 일본 만화,소설에서 다루어졌다.)

[ 원조비사. 코에이의 이 작품에선, 후궁이라는 요소를 흥미롭게 -지나칠정도로- 연출하고 있다. Copyright © Koei All rights reserved ]

  그 밖에 MS사의 "에이지 오브 엠파이어 2"에서 몽골군을 선택하고 진행할 수도 있지만, 여전히 몽골은 주역이 아니라는 것이 다소 아쉽다.

[ 에이지 오브 킹스. 몽골보다 일본이 부각되는 건 역시 상업적 목적일까? Copyright © Microsoft All rights reserved ]

  언젠가는 징기스칸의 매력을 잘 살린, 그런 작품이 나올 수 있을까? 코에이에서 <징기스칸4>이래 시리즈가 더 나오지는 않는 것을 보면 기대하기 어려울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그래도 몽골에서 드라마를 제작했듯 언젠가 그들의 손으로 그들의 역사를 충실하게 살릴 수 있는 작품이 나오기를 기대할 수 있으리라 본다. 물론, 남의 역사를 두고 뭐라고 할 것 없이 우리 자신의 역사를 우리 자신의 손으로 충실하게 살려서 세계에 알리는게 더 필요하겠지만.



여담) 이 글은 오래전 PC 플레이어에서 연재했던 글입니다. 역사적으로 중요한 전쟁이나 전투를 중심으로 역사의 분기점을 살펴보려는 것입니다. 단순히 전술, 전략적 차원에 그치지 않고 경제 등 여러가지 요소를 생각해 보고 싶었습니다.(총과 버터라는 제목은 '총(군사)'과 '버터(경제)'를 함께 살펴보겠다는 뜻입니다.) 물론 지면 한계 등으로 인해 일부 내용에 한정하고 있습니다.
시리즈물로 다른 시대의 다른 전쟁 이야기는 네이버 블로그( http://blog.naver.com/pyodogi )에 등록되어 있습니다만, 역시 보완해서 다시 올릴 예정입니다.


총과 버터 시리즈 전체 목록

01. 알렉산더의 위대한 원정 - 가우가멜라 전투
02. 게티스버그, 그 탄생을 위한 시련
03. 완벽한 승리, 그러나 패망으로의 첫걸음, 진주만 기습전
04. 가장 적은 소수의 가장 큰 영웅담, 배틀 오브 브리튼
05. 위대한 정복자? 살인마? 카이사르의 대원정
06. 나폴레옹 영광의, 그리고 패망의 전장 아우스텔리츠
07. 천년 분쟁의 시발, 예루살렘 공방전
08. 카게무샤의 전설, 다케다 기마군단의 패망
09. 낙양 공방전, 솥발처럼 갈라진 천하
10. 대제국의 꿈, 몽골 초원의 결전
11. 임진왜란 그 변화의 시발전, 진주 전투
12. 승리를 향한 결정타, 행주 전투
13. 전설의 역전극, 명량 해전

posted by 별을 좋아하는 표도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