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천작'에 해당되는 글 13건

  1. 2012.04.24 :: (오늘의 추천 SF 04월 23일) 미지의 가능성을 향해 뻗어나간 4세기에 걸친 우주개발사, 호시노 유키노부의 2001 야화 (2)
  2. 2012.03.08 :: 마틴 스콜세지의 "휴고", 영화의 마술사 조르주 멜리에스와 영화를 사랑하는 모든 이에게 바치는 찬사
  3. 2012.03.07 :: 브레인웨이브, IQ400 폭주하는 지능이 가져오는 독특한 미래상 (2)
  4. 2012.03.07 :: (오늘의추천작-03월01일) 필립 K.딕의 "두번째 변종", 결말을 떠올릴때마다 소름이 돋아나오는 충격의 여파
  5. 2012.03.07 :: 오늘의 추천작(02월 29일) - 팀 파워즈의 아누비스의 문, 화려함과 음습함이 뒤섞인 빅토리아 분위기를 잘 살린 스팀펑크 대체역사 걸작 (1)
  6. 2012.02.28 :: (오늘의추천작) 조지 오웰의 <1984>. '적'에 대한 두려움이 가져온 효율만을 위한 전제사회의 미래상
  7. 2012.02.28 :: (오늘의SF-02월27일자) 아리카와 히로의 <도서관전쟁>, 모든 판단을 남에게 맡길때 지금 당장 찾아올 수도 있는 미래상 (1)
  8. 2012.02.28 :: (오늘의추천작) 시어도어 스터전의 "인간을 넘어서", 인간이 모여 초인을 만들어가는 모습을 통한 미래상 (02월 26일)
  9. 2012.02.27 :: (오늘의 추천작) 문라이트 마일, 우주시대의 건설 과정에서 벌어지는 다채로운 드라마 (02월 25일) (2)
  10. 2012.02.23 :: (오늘의 추천작) 시미즈 레이코의 월광천녀, 일본 설화를 바탕으로 도너로서 태어난 클론의 운명과 우주의 이야기를 그려낸 작품.

오늘은 우주 개발 역사상 처음으로 '우주 비행 중 사망자'를 낳은 소유즈 1호가 발사된 날입니다. 다음 날 발사될 예정이었던 소유즈 2호와 랑데부하여 소유즈 2호의 승무원 3명 중 2명이 옮겨탈 예정이었기에 소유즈 1호에는 블라디미르 코마로프 혼자만 타고 있었는데, 소유즈 1호는 발사 후 태양 전지가 펼쳐지지 않는 등의 사고가 일어나면서 결국 임무를 포기하고 귀환하게 되었습니다.


  임무를 변경하여 구조선으로 출발할 예정이었던 소유즈 2호는 발사 기지의 날씨가 좋지 않아 쏘아올리지 못했고, 소유즈 1호의 승무원 코마로프는 가족들에게 작별 인사를 남기고 지구 돌입 단계에 들어섰지요. 어쩌면 큰 문제 없이 돌아올 수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주 낙하산이 펼쳐지지 않고, 보조 낙하산조차 엉키면서 소유즈 1호는 엄청난 속도로 지상에 격돌, 폭발하고 말았습니다.


  일설에는 소유즈 1호, 2호의 발사 계획이 전날인 레닌 탄생일을 기념하기 위한 정치적 결정으로 이루어졌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강력한 정치적 압력으로 결함이 있음을 알면서도 발사했다는 거죠. 코마로프 역시 위험을 알았지만, 자기 대신 백업 요원인 유리 가가린이 위험해질 것을 우려하여 탑승했다고 합니다. 이것이 사실인지 아닌지는 알 수 없지만, 결국 보스호트 1호의 비행에 성공하여 최초의 '복수 승무원의 우주 비행'에 성공하였던 코마로프는 돌아오지 못하는 몸이 되었습니다. (보스호트 1호도 본래는 2인용을 정치적 압력으로 3인용으로 무리하게 발사했던 우주선이었습니다.)


  이 사건으로 소련의 우주 계획은 크게 뒤쳐지게 됩니다. 소유즈 2호의 출발은 이로부터 6개월이 지난 10월에야 진행되었지요. 하지만, 이 사건이 아니었다면 더욱 큰 사고가 일어났을지 모른다는 점에서 코마로프의 희생은 큰 의미를 가질 것입니다.


  우주 개발 단계에서 희생되었던, 그리고 우주 개발에 모든 것을 바치며 노력했던 이들을 기리면서 오늘은 호시노 유키노부의 2001 야화를 소개하고자 합니다.




 


  20년도 전에 제작된 이 작품은 21세기 말로부터 4세기에 걸친 인류의 우주 개발 역사를 그려낸 작품입니다. 미소의 냉전과 경쟁으로 급격하게 진행된 초기의 우주 개발 계획과 달리, 미국과 소련의 정치 지도자가 우주에서 만나 함께 우주로의 진출을 꿈꾸는 장면이 매우 인상적인 이 작품은, 오랜 기간에 걸쳐 다양한 형태로 우주로 뻗어나가는 이들의 이야기를 충실하게 그려냈지요.


  매우 사실적인 느낌에 다채로운 내용으로서 거의 30년 가까운 예전에 이런 상상을 했다는 것이 정말로 믿기지 않을 정도입니다. 플라네테스 등 여러 우주 개발 이야기와 함께 최고의 명작으로 손꼽을 수 있지요.


  우주 개발 과정은 순탄하게 진행되지 않습니다. 무수한 위기와 역경이 찾아오고 희생자가 발생하기도 하지요. 하지만 이 작품의 근간에는 그럼에도 우주라는 미지의 세계를 향해 과감하게 뻗어나가는 이들의 희망이 충실하게 녹아 있습니다.


  총 3권으로 발매되었고, 이후 5+1이라는 단편집이 추가로 나와 소개되었지요. 30년 가까운 과거의 작품이지만, 호시노 유키노부의 세밀한 그림, 그리고 사실적이고 충실한 상상력은 더 없는 만족을 줍니다.


  아직 이 작품을 보지 못하신 분들이라면 꼭 보시길 권합니다. 우주라는 신천지에 담겨있는(담겨 있을지 모르는) 미지의 가능성, 그리고 그 가능성을 넘어가고자 애쓰는 무수한 이들의 마음을 절실하게 느끼게 될 것입니다.

posted by 별을 좋아하는 표도기
별 작품 이야기 2012.03.08 05:41

  19세기 말 프랑스에 뤼미에르라는 성을 가진 형제가 있었습니다. 사진 회사를 운영하는 아버지를 따라서 기술을 익힌 그들은 사진 인화 기술을 개량하여 다채로운 발명을 하였는데, 나중엔 필름 카메라를 이용하여 연속적으로 사진을 찍는 기술을 창조하였고 이를 프로젝터와 연결하여 시네마토그라프라는 발명품을 완성합니다.
  그들은 공장을 나서는 노동자들이나 열차가 도착하는 장면 등을 촬영하여 카페에서 상영하였습니다. 난생처음 ‘영화’를 본 사람들은 자신들을 향해 다가오는 열차를 보고 소리를 지르며 달아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뤼미에르 형제는 영화의 가능성을 믿지 않았습니다. 그들보다 앞서 소리를 저장하는 장치(축음기)를 발명한 에디슨이 단지 녹음이라는 용도밖에 생각하지 못했듯, 뤼미에르 형제는 영화를 단순히 영상을 저장하는 장치로만 생각했던 것입니다. 결국, 형제는 2년 뒤 영화에서 손을 떼고 사진 연구에만 몰두하였습니다. 

  그러나 뤼미에르 형제가 촬영한 ‘영상’은 한 사람을 매료하여 운명을 바꾸어 놓았습니다.
  성공한 마술사로서 관객을 사로잡는 솜씨를 가진 조르주 멜리에스는 우연히 들렀던 카페에서 활동사진을 보고 그것이 단순히 영상을 저장했다가 보여주는 것 이상의 가능성을 갖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는 즉석에서 뤼미에르 형제에게 카메라를 팔 것을 제안했지만. 형제는 이를 거절합니다. 포기할 수 없었던 멜리에스는 런던까지 가서 또 다른 발명가였던 로버트 W. 폴의 영사기와 필름을 사오게 되지요. 그는 이 필름을 자신이 소유하고 있던 로베르트 우댕(Robert-Houdin) 극장에서 상영하였고 자신의 영감을 확신했습니다. 수많은 시행착오 끝에 멜리에스는 자신이 촬영한 영화를 선보였으며 영화사를 설립하기에 이릅니다.
  기술자였던 뤼미에르 형제가 ‘기록’으로서의 다큐멘터리 제작에 관심을 뒀던 것과 달리, 마술사였던 멜리에스는 영화를 통해 마술 같은 경이를 보여주고자 했으며 다채로운 마술 기법을 동원하여 영상을 꾸며내었습니다. 그러던 중 한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촬영 중 카메라가 멈추고 만 것이죠. 당장은 카메라를 수리해서 촬영을 마쳤지만, 나중에 필름을 살펴본 멜리에스는 깜짝 놀랐습니다. 필름에 찍힌 합승마차가 한순간에 영구차로 바뀌고, 여자가 남자로 바뀐 것이죠.
  바로 그 순간이었습니다. 멜리에스의 영화적 상상력이 질주하기 시작한 것은. 그로부터 1913년까지 멜리에스는 500편에 이르는 영화를 촬영하였고 엄청난 호평을 거둡니다. 그의 작품 중엔 세계인의 마음에 ‘달’을 향한 꿈을 키워주었던 “달 세계 여행”도 있었지요. 일상의 이야기로부터 환상의 모험, 바다 속에서부터 우주에 이르기까지 멜리에스의 상상력은 그칠 줄을 몰랐습니다. 사람들은 그의 영화를 보며 감탄하며 환성을 질렀으며, 즐거워하고 슬퍼했습니다. 그야말로 ‘경이로운 순간’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의 성공은 계속 이어지지 못했습니다. 1911년에 이르러 여러 작품이 실패하면서 그는 재정적인 위기에 몰렸고 전쟁과 더불어 잊혀지고 말았습니다.




  ‘휴고’의 이야기는 그로부터 한참이 지난 1920년대 말에서 시작됩니다. 제1차 세계 대전이 끝나고도 10년이 넘게 지난 1929년의 파리 시가지. 수많은 열차가 오가는 몽파르나스 역에 한 소년이 있었습니다.

  아버지를 여의고 시계 관리자인 삼촌을 따라 역에서 살게 된 소년은 술에 취해 자리를 비우기 일쑤인 삼촌을 대신하여 역의 수많은 시계를 관리하고 있습니다. 역에 있는 수많은 시계의 움직임은 소년의 손길 하나에 달렸지만, 그 누구도 이를 알지 못하고 그 누구도 이를 신경 쓰지 않습니다. 단지 이따금 시계가 잘 작동하고 있다는 것만 살펴볼 뿐이지요.
  소년에게는 한 가지 꿈이 있는데, 그것은 시계수리공이자 박물관의 큐레이터이기도 했던 아버지가 찾아낸 자동인형(오토마타)을 수리하는 것입니다. 수많은 톱니와 태엽으로 만들어진 자동인형은 녹이 슬고 부품이 망가져 움직이지 않지만, 소년은 그 자동인형에 아버지의 메시지가 남겨 있으리라 생각하며 수리를 위해 노력합니다.

  거의 모든 시간을 역에서 보내는 소년에게 있어 수리를 위한 부품을 얻을 수 있는 것은 역의 한구석에서 사탕과 장난감을 파는 구멍가게뿐. 이곳에서 몰래 태엽 장난감을 훔쳐 부품을 조달하던 소년은 결국 가게 주인 할아버지에게 잡히고 아버지가 남긴 자동인형에 대한 공책을 빼앗기고 맙니다. 그런데 공책을 본 가게 주인은 굉장히 분노하며 이를 태워버리겠다고 하지요. 공책을 잃을 수 없었던 소년은 주인을 쫓아 역을 빠져나가 그의 집 앞까지 가지만 결국 쓸쓸히 돌아오고 맙니다. 그날 이후 소년은 공책을 되찾고자 장난감 가게에서 일하며 가게 주인의 손녀딸과 친해지게 됩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녀가 자동인형의 열쇠를 갖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지요. 그리고 둘 앞에서 마술처럼 작동한 자동인형은 한 장의 단서를 던져줍니다.
  소년의 아버지가 맨 처음 보았다던 영화의 장면과 장난감 가게 주인인 조르주 멜리에스의 이름이 담긴 메시지를….



  이렇게 ‘휴고’의 이야기는 한 소년을 통해 영화의 마술사 조르주 멜리에스의 이야기를 펼쳐나갑니다. 영화의 내용은 허구와 사실이 수없이 뒤섞여 있지만, 그 어느 것이 사실이고 그 어느 것이 거짓인지는 전혀 생각할 필요가 없습니다. 몽파르나스 역의 일상과 함께 펼쳐지는 이야기는 그야말로 모든 것이 진실이라고 생각하게 할만한 설득력을 갖고 있으니까요.
 
  아바타의 제임스 카메론 감독이 “현존하는 최고의 3D영화”라고 극찬한 영상은 우리를 1929년의 파리로 이끌어 이들의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체험하게 해 줍니다. 그리고 처음 영화가 탄생한 그 순간 달려오는 기차에 비명을 지르며 도망쳤던 그들처럼 영화가 주는 경이를 만끽하게 해 줍니다.
  매우 자연스럽게 다가오는 입체 영상은 경이로움(Wonder)으로 가득(Full)합니다. 그야말로 놀랍다(Wonderful)는 감탄사가 어울리는 동시에 이야기에 자연스럽게 몰입하게 해 줍니다.

  한 소년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이야기는 지극히 평범하면서도 독특합니다. 우리는 소년의 눈을 통해 몽파르나스 역의 일상을 바라보고 체험하게 됩니다. 이를 통해 늘 겪는 일상 속에 무수한 드라마와 경이가 가득 넘친다는 것을, 영화라는 것이 이 중에서도 가장 흥미로운 드라마를 뽑아내어 경이로운 마술로 승화해 준다는 것을 깨닫게 되지요.

  1929년의 짧은 일상 속에서 다채로운 드라마를 엮어내는 ‘휴고’는 처음 영화를 보았을 때의 감동과 경이를 다시 떠올리게 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영화를 왜 보고 좋아할 수밖에 없는지를 깨닫게 해 줍니다. 그리고 외치게 하지요. “영화 잘 봤다.”라고.


  ‘휴고’는 반드시 영화관에 가서 보아야 할 작품입니다. 영화에 대한 찬사를 담고 있기 때문이기도, 무엇보다도 ‘자막만 3D’인 여느 영화와 달리 3D로 만들어져야만 했고 3D로 봐야만 하는 영화이기 때문입니다. (‘휴고’를 보고 진한 감동이 채 사라지기도 전에 앞으로 나올 블루레이에 대비하여 3D 안경의 가격을 알아보고 있었을 정도입니다.)

  이제까지 보았던 어떤 3D 영화도 ‘휴고’에 비할 수 없으며 앞으로 나올 3D 영화 중에서도 ‘휴고’와 비할만한 작품을 찾기 어려우리라 감히 장담합니다.

  그만큼 ‘휴고’의 이야기는 –멜리에스의 제작 환경이 그러했듯- 3D의 영상에 가장 어울리고 3D이기에 더욱 자연스럽게 다가옵니다. 그러니 당연히 극장에 가서 보는 것이 좋은 것이지요.


  안타깝게도 ‘휴고’는 개봉한 지 1주일밖에 되지 않은 지금 이 순간에도 볼 수 있는 곳이 많지 않습니다.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저도 밤 11시 50분에 시작하는(광고를 생각하면 12시 넘어서 시작한) 극장에서 보고 왔으니까요.

  그런 만큼 서둘러 영화관을 찾으시길 권합니다. 영화가 진행되고 막을 내리는 그 순간까지 그 결정을 절대 후회하지 않을 것입니다.



여담) 영화를 보신 분들을 위해 조르주 멜리에스의 실제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영화를 보지 않으신 분은 영화의 감동을 위하여 나중에 읽으시는 것을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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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별을 좋아하는 표도기
SF 이야기 2012.03.07 14:50


토끼가 빗장을 열고 덫에서 탈출하고 말은 자신들을 얽매던 쟁기를 발로 밟아 부러뜨리며 원숭이가 산탄총을 쥐고 거리로 나선다. 오랜 기간 멍에나 채찍으로 동물들을 지배하던 인간에겐 지옥 같은 상황이 일어난 것이다.


문제는 인간이 더 지능화되었다는 점이다. 돼지들이 울타리를 뚫고 달아날 때 인간들은 세상보다도 그 자신의 변화에 당황하고 두려워하며 심지어는 노벨상 수상자 평균치보다 몇 배는 똑똑해진 사람들이 광신적인 신흥 종교에 빠져서 무리를 지어 날뛴다...

 


이러한 내용을 담은 폴 앤더슨 SF 걸작 《브레인 웨이브》는 지구 상 모든 동물의-'혹성탈출'에서처럼 원숭이만이 아니라 생쥐까지도- 뇌활동이 활발해져 매우 똑똑해진 이야기다. 


SF의 대표적인 문학상인 휴고상을 7번 네뷸러상을 3번 수상하며 '가장 SF다운 SF를 쓰는 작가'로 이름 높은 작가 폴 앤더슨은 태양계가 원래부터 전자기와 전기화학적 현상을 억제하는 거대한 역장에 둘러싸여 있었다는 독특한 상상을 통해 소설에 설득력을 불어넣는다.


폴 앤더슨의 상상력은 뇌의 활동이 전자기적인 현상이라는 과학적 상식에서 출발하여 흥미로운 이야기를 이끌어낸다. 간단한 과학 상식에서 시작된 가정이 ‘이러면 어떻게 될까?’라는 상상을 통해 다채로운 이야기로 발전하는 모습은 SF 창작을 위해선 단순히 과학적 지식을 쌓는데 그치지 않고 상상력을 길러야 한다는 점을 잘 보여준다.


이 작품에는 크게 네 사람의 이야기가 등장한다. 지적장애자였던 농장 직원 브룩, 생물학자인 코린스, 그의 아내인 실라와, 지역 정부의 대표가 된 맨델바움. . 제각기 입장도 상황도 다른 이들의 모습이 나열되고 교차하는 가운데 미래의 모습이 다채롭게 전개된다.


흥미로운 것은 어떤 이들은 ‘절대’ 지성으로 새로운 존재가 되어 운명을 찾지만, 어떤 이들은 '평범한' 지성 속에서 자연과 손을 잡고 새로운 운명을 발견한다는 점이다.


서로 상반된, 하지만 한편으로는 그들 스스로 행복하다고 여기는 결말은 폴 앤더슨이 뛰어난 상상력만큼 현실을 잘 이해하는 통찰력을 갖고 있으면서도 인류의 미래를 따뜻하게 바라보고 있다는 것을 느끼게 하며, 그만큼 이후의 미래가 어떻게 펼쳐질지 상상의 나래를 펼치도록 이끈다.


이처럼 여러 사람의, 수많은 이야기가 고작 270쪽의 짧은 분량 속에 담겨있다는 사실은 이 작품에서 유일하게 아쉬운 점인 동시에 굉장한 강점이다. 복잡한 설명 없이 폭풍처럼 몰아치는 이야기 덕분에 쉴 틈 없이 이야기 속에 빠져들 수 있으니 말이다.


<타우제로>, <타임패트롤> 등 수많은 걸작으로 ‘절대로 실패하지 않는 작가’라고 불렸던 폴 앤더슨이 자신의 최고 걸작 다섯 개 중 하나로 꼽는 <브레인 웨이브>는 호기심과 두려움, 기대가 뒤섞인 미래사회에 대한 대중의 누적된 상상력을 실감나게 그려내며 독자들의 갈증을 해소한다. 판타지와 SF 작가를 꿈꾸는 이들이라면 폴 앤더슨의 《브레인웨이브》에서 보여주듯 과학상식을 통한 상상력에서 출발하여 다채로운 이야기를 끌어낼 수 있는 힘을 키우는 것도 중요한 덕목이 아닐까.

posted by 별을 좋아하는 표도기

  3월 1일이라면 보통 삼일절을 떠올리게 마련입니다. 1919년 대한민국, 정확히는 대한제국이었던 나라의 사람들이 독립을 선언한 날이지요. 이날 탑골 공원에서 학생들의 독립선언을 시작으로 전국 각지에서 수많은 이들이 독립을 선언하며 시위를 벌였습니다. 이날의 독립 운동은 실패했지만, 이후 독립 운동이 활성화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한편, 1992년엔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가 독립을 선언한 날이기도 합니다. 유고슬라비아 연방의 해체로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는 독립했지만, 그로부터 1달만인 4월 1일부터 시작된 내전이 계속 이어져 큰 피해를 주게 됩니다.
  결국 NATO의 개입으로 보스니아가 독립하고 막을 내렸지만, 내전의 영향은 완전히 끝났다고 볼 수 없습니다.

  세계 각지에는 지금 이 순간에도 분쟁을 벌이는 지역이 많습니다. 분쟁은 많은 이에게 피해를 주고 막을 내리지만, 분쟁이 끝난 뒤에도 그 상처는 길게 이어지곤 합니다. 그것은 사람과 사람의 알력에 의한 것이기도 하지만, 사람의 의지와 관계없이 벌어지기도 합니다. 바로 분쟁 중에 사용된 병기들, 특히 곳곳에 설치된 ‘대인 지뢰’로 인해서 말이지요.

  대인 지뢰는 이름 그대로 사람을 대상으로 한 지뢰입니다. 종류만도 수십, 수백 종에 이르며 설치 방법이나 특성도 다양해서 다양한 피해를 줍니다. 사람을 확실하게 죽이는 것도 많지만, 발만 살짝 날려서 장애인으로 만들거나 파편으로 몸에 계속 고통을 주는 것도 있어서 정말로 끔찍하기 이를 데 없지요.
  문제는 대인 지뢰가 설치는 대단히 쉽지만, 해체가 힘들다는 점입니다.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의 독립 직후에 벌어진 보스니아 전쟁 때도 수백만 개의 지뢰가 매설되었는데, 이로 인해 지금 이 순간에도 매달 수십 명이 지뢰로 인해 사망하거나 부상하고 있습니다.
  지뢰의 문제는 대상을 가리지 않으며 수명이 매우 길다는 점입니다. 총이나 포가 명백하게 목표를 겨누고 발사하는 무기인 반면, 지뢰는 일단 매설해 두면 지나가는 모든 존재를 노립니다. 누군가가 걸릴 때까지 거의 영구히...
  때문에 6.25때, 또는 2차 대전 때 설치된 지뢰가 지금도 죽음의 유산으로서 잠복해 있으며, 세계 각지의 분쟁 지역에서는 분쟁이 끝나고도 오랜 기간 지뢰의 피해가 계속되고 있습니다.

  이 같은 끔찍한 특성으로 인해 세계 각지에서는 지뢰 금지 운동이 진행되었습니다. 그리고 1999년 3월 1일. 드디어 대인 지뢰의 사용 및 생산, 수송, 이전을 금지하고 폐기를 진행하는 내용을 담은 오타와 협약이 발효되었습니다. 이 협약에 가입한 나라들은 더 이상 대인 지뢰를 생산하거나 사용하지 않고 폐기하기로 했는데, 문제는 미국, 러시아, 중국을 비롯한 군사대국 대부분이 이 조약에 참여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물론 대한민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도 참여하지 않았기에 지금도 두 나라 사이에는 수많은 대인지뢰가 생산되어 가설되고 있습니다.

  먼 훗날 한국과 북한이 통일되었을 때, 이들 대인지뢰는 죽음의 유산으로 남게 될 것입니다. 지금도 때때로 대인 지뢰가 흘러내려온다는데, 먼 훗날 통일이 되어 비무장지대가 개방되면 대인지뢰에 의한 피해가 속출할지도 모릅니다. (어쩌면 그 덕분에 비무장지대에 사람이 들어가지 않게 되고 결과적으로 생태계가 보호될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오늘의 추천작 필립 K. 딕의 <두 번째 변종>(“죽은 자가 무슨 말을”(집사재), “세계 SF 걸작선”(도솔)에 수록)은 대인 지뢰처럼 ‘피아를 가리지 않고 계속 위험을 주는 무기’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냉전 끝에 미국과 소련 사이에 전쟁이 벌어지고, 미국은 소련에 밀려 지구를 포기하고 달로 후퇴했습니다. 지구에 남은 일부 미군은 힘겹게 버티는 가운데, 미군은 전세를 역전시키기 위한 신종 병기를 생산합니다. 바로 소련군을 찾아 죽이도록 된 인공 지능 병기입니다. 인공 지능 병기는 무인 공장에서 대량으로 생산되어 큰 성공을 거두고 전세는 점차 미군의 우세로 진행되어 갑니다.
  문제는 이 병기가 ‘진화’를 거쳐 개량된다는 점입니다. 더욱 적을 죽이기 좋게, 그리고 무엇보다도 충격적인 것은 ‘진화’를 거쳐 개량된 병기가 소련군만이 아니라 모든 인간을 목표로 하게 된 것입니다.
  인류의 적이 되어버린 ‘변종’의 공격 앞에서 인간들은 속수무책으로 당하게 되고, 결국 소련군과 미군은 생존을 위해 힘을 합칩니다.

  그런 그들 앞에 새로운 ‘변종’이 모습을 드러냅니다. 인형을 안은 소년의 모습을 한 로봇. 전장에서 피골이 상접한 소년을 만났을 때 ‘인간’으로서 보이는 당연한 반응을 이끌어내기 위한 이 로봇의 정체가 밝혀질 때 이 작품은 클라이막스를 맞이하는 듯 보입니다. 하지만, 부상당한 병사의 모습을 한 또 다른 변종이 등장하면서 공포는 더욱 가속되기만 하지요.

  그리고...


  <두번째 변종>은 그다지 길지 않은 단편이지만, 작품을 읽는 순간만이 아니라 책을 덮은 뒤에도 오랜 기간 소름을 가시지 않게 하는 충격을 줍니다. 그리고 그 이야기를 떠올릴 때마다 다시금 소름을 돋게 할 만한 여파를 지닌 작품이기도 하지요.

  필립 K 딕의 작품은 단편 하나조차 끔찍한 상상을 불러오기에 충분하지만, 이 작품은 그 중에서도 충격이 크고 인상적인 작품입니다.

  이 작품은 <스크리머스>라는 영화로 만들어졌는데, 로보캅 1,2편에서 머피 역을 맡았던 피터 웰러가 주연을 맡아 꽤 흥미로운 연기를 보여줍니다. B급 영화로 제작비는 얼마 되지 않지만, 영화로서의 완성도와 재미는 어지간한 블록버스터는 비교도 안 됩니다.

 

  이 작품은 내용의 진행도 그렇지만, 결말에서도 원작과는 차이가 있습니다. 그만큼 원작에서 보여준 소름끼치는 결과를 느끼긴 어렵지만, 마지막 순간의 반전으로 화룡점정을 찍어서 보여줍니다.

  <스크리머스>를 보고 나면 원작의 결말을 대충 상상할 수 있게 되니, 가능한 원작 <두번째 변종>부터 보시는 것을 권하지만, 어느 쪽을 먼저 보아도, 아니 설사 결말을 알고 보더라도 그 충격과 여운은 결코 작지 않을 것을 장담합니다.

  필립 K 딕의 단편은 물론 결말에서의 반전이 재미를 주지만, 한 줄 한 줄 읽어나가면서 고조되는 긴장의 연출 면에서도 충분한 재미를 갖고 있으니까요.
posted by 별을 좋아하는 표도기

  4년에 한번 뿐인 윤년에만 존재하는 2월 29일은 역사적인 지식을 바탕으로 흥미로운 장르 작품을 창조하는 작가, 팀 파워스(파워즈)의 생일입니다. 근래에는 [캐리비안의 해적 4]의 원작이 되었던 [낯선 조류]로 국내에 알려진 이 작가는 19세기 빅토리아 시대의 영국을 배경으로 한 대체 역사 소설들로 인기를 모았지요.

  팀 파워즈와 친구들(제임스 블레이록, K,W. 지터)은 증기기관이 발달한 산업 혁명 시대를 바탕으로 오컬트나 초자연적 요소, 그리고 다양한 과학적인 상상을 추가하여 독특한 세계를 만들었는데, 지터가 당시의 정치적 운동이자 스타일이었던 ‘사이버 펑크’ 운동에 빗대어 “컴퓨터 대신 증기기관이 등장하는 우리 소설은 스팀펑크라고 불러야 한다.”라는 농담을 했고, 그것이 그대로 ‘스팀펑크’라는 장르로 정착되었습니다.

  당연히 팀 파워즈는 이들 스팀 펑크 장르의 대표적인 작가이지요. 그는 굉장히 많은 작품을 냈지만 국내에 소개된 작품은 얼마 되지 않습니다.

  2월 29일의 추천작은 바로 그의 대표적인 스팀 펑크 작품 “아누비스의 문”입니다. 국내에는 2007년에 소개된 이 작품은 19세기 초의 런던을 배경으로 20세기의 이방인이 활동하는 시간 여행기입니다. 팀 파워즈의 초기 대표작 중 하나로서 스팀 펑크라는 세계를 매우 잘 이해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대체 역사로서도 흥미로운 작품이지요. (시간 여행 작품으로서는 다소 부족한 느낌입니다.)



  이야기는 20세기의 어느 곳, 젊은 영문학자인 도일을 통해서 시작됩니다. 그는 한 괴짜 백만장자로부터 거액을 줄 테니 19세기의 낭만파 시인 콜리지에 대한 강의를 해달라는 얘기를 듣게 되죠. 그런데 그 강의의 목적은 사실 실제의 19세기로 향하여 직접 콜리지를 만나기 위한 준비였다는 것을 알게 되고, 좋아하는 시인을 만나고 싶은 마음에 여행에 동참합니다.
  하지만 그들이 도착한 19세기의 런던은 그들이 생각했던 산업혁명 시대의 영광과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마법으로 생겨난 호문클루스가 등장하고 인간과 동물을 변형하여 만들어진 괴물이 춤추는, 마법과 산업이 뒤섞인 기괴한 세계였던 것이지요.
  그리고 한편으로 이집트의 신 아누비스를 부활시켜 영국을 몰아내려는 이집트 마법사의 음모가 도사리고 있고...


  라는 “아누비스의 문”은 ‘천공의 성 라퓨타’나 ‘스팀보이’ 같은 작품을 보면서 생각한 스팀펑크의 분위기와는 매우 다른 느낌입니다. 산업 혁명의 거창한 모습 이면에 감추어진 암울하고 괴이한 분위기가 흘러넘치는 곳일까요? 더욱이 과학만이 아니라 기괴한 마법과 괴물들이 활동하며 이집트의 신을 부활시키려는 마법사들이 활약하기도 합니다.
  그야말로 과학과 오컬트가 뒤섞인 독특한 세계, 환상과 허구, 상상과 망상이 뒤섞인 듯한 기묘한 이야기가 이 작품의 특징이지요.

  그야말로 뒤죽박죽 이해할 수 없는 상황으로 가득하지만, 팀 파워즈는 풍부한 상상력과 세밀한 조율을 통해 이들 이야기를 잘 엮어내고 충실하게 마무리하고 있습니다. 글을 읽을 때는 뭔가 어지럽고 복잡한 느낌이지만, 읽어갈수록 흥미가 넘쳐나며 마무리에서 모든 것이 정리되어 완성되는 것이지요.

  암울하고 음습한 팀 파워즈의 세계는 19세기 빅토리아 시대의 단면을 매우 잘 드러내기도 합니다. 사실 빅토리아 시대는 그 이름이 주는 분위기처럼 매우 화려하고 장대한 세계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하늘엔 스모그가 자욱하고 거리마다 쓰레기와 부랑자가 넘쳐나는 세계이기도 했으니까요. 증기기관을 비롯한 온갖 첨단 과학이 등장하여 사람들은 미래를 꿈꾸지만 뒷골목에는 잭 더 리퍼로 대표되는 범죄자가 들끓고 셜록홈즈 같은 이들이 열심히 뛰어다녀야만 하는 상황. 동시에 오컬트와 마법이 아직도 남아서 사람들을 유혹하는 세계니까요.

  팀 파워즈의 “아누비스의 문”은 과학과 오컬트가 뒤섞인 빅토리아의 분위기와 당대의 인물들을 잘 엮어서 만들어 놓은 작품입니다. 마법이 당연하다는 듯 등장하고, 이집트의 신이 부활하는 등 SF를 기대한 이들에게는 꽤 불편할지도 모르지만, 이러한 여러 가지 요소들에 적절한 설명으로 설득력을 부여하고 있다는 점에서도 팀 파워즈의 실력을 칭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드 SF를 좋아하는 이들이라면 그다지 권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호러나 스릴러를 즐기고, 독특하고 기묘한 이야기를 바라하는 이들이라면 꼭 읽어보길 권합니다. 그리고 아무런 의문을 떠올리지 말고 끝까지 읽어보세요.

  팀 파워즈의 작품은 수많은 퍼즐이 깔린 느낌을 줍니다. 고개를 갸우뚱하게 하게 만드는 장면도 적지 않지요. 하지만, 기묘하고 독특한 이야기를 따라 페이지를 넘기다보면 어느새 모든 퍼즐이 스스로 맞추어져 즐거움을 주고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될 겁니다.
posted by 별을 좋아하는 표도기

  오늘은 훗날 나치 독일이라 불리는 집단이 탄생한 날입니다. 1933년의 이 날을 계기로 독일에서는 나치당의 뜻에 반대하는 어떤 주장도 허용되지 않게 되었고, 강력한 전제, 독재 체제의 길을 걸어갑니다.
  바로 이 날 히틀러는 공화국 헌법의 인권 조항 대부분을 폐지하였고, 철저한 통제와 억압 정치를 추진하게 됩니다.

  히틀러와 나치당이 이처럼 강력한 정책을 내세울 수 있게 된 것은 바로 전날 ‘독일 국회의사당 방화사건’이 발생했기 때문입니다. 훗날 이 사건은 요제프 괴벨스와 헤르만 괴링 등이 의한 자작극이었음이 밝혀지지만, 당시 독일 의회와 시민들은 히틀러를 중심으로 한 나치당의 협박을 그대로 받아들였고, 일부 반대 목소리가 묻히는 가운데 독일은 나치 독일로 변모하였습니다.

  그로부터 10여 년 간 나치 독일은 온갖 만행을 저질렀고 역사에 남을 끔찍한 사건을 일으켰지만, 한편으로 독일 국민들 역시 큰 고통을 받아야만 했습니다.

  이 같은 사건의 원인은 결국 ‘두려움’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당시 독일 국민들은 실업과 경제 불안으로 두려워하고 있었습니다. 여기에 국회의사당이 불타는 사건은 그러한 두려움에 불을 붙여주기에 충분했습니다.
  사실 나치당의 지지율은 엄청나게 올라가지 않았고, 3월 선거에서도 그들의 기대만큼 지지를 끌어들이지 못했지만, 공포 분위기를 일으키고 협박을 통해 다른 당들도 찬성하게 이끄는 역할을 했습니다. 이후 나치를 제외한 모든 정당은 체포와 강제 수용소 수감이라는 협박을 두려워하며 스스로 해산하였습니다.

  ‘반역죄’. 나치가 첫 목표로 삼은 공산당을 비롯한 여러 정당을 협박하는데 사용하는 것은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이후 나치는 독일 내부의 유대인들을 ‘적’으로 규정했고, 이후에는 ‘폴란드’와 ‘체코슬로바키아’를, 그리고는 독일의 가상 적국들을 ‘적’으로 규정하며 2차 대전을 이끌어갑니다.

  히틀러가 사라지고, 나치 독일이 붕괴한 뒤에는 소련과 미국을 중심으로 이 같은 정책이 진행되었습니다. 미국에선 1950년 조지프 매카시의 주장 이전부터 공산주의에 대한 ‘두려움’으로 소련에 대항하는 각종 조치가 시행되었고, 이러한 분위기는 유럽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리고 소련에서도 -외부에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이 같은 분위기가 대세였죠.


  이러한 역사와 상황은 1948년 한 소설가에게 영감을 주었습니다. 그리고 작가는 작품을 쓰기 시작한 년도의 뒷자리 숫자를 바꾸어 소설의 제목을 지었죠. <1984>라고...



  오늘의 추천작 <1984년>은 공포를 이용해서 전제주의를 구축한 미래 세계의 이야기입니다.

  1984년의 미래. 세계는 크게 3개의 세력으로 나뉘어 대립하고 있습니다. 핵전쟁과 오랜 분쟁을 거쳐 탄생한 나라들은 끊임없이 전쟁을 벌이고 있으며, ‘적국에 대항하고자’ 철저한 통제 정책을 시행하고 있습니다.

  서로 간에 배신과 동맹이 반복될 뿐만 아니라, 여러 가지 이유로서 이 전쟁은 결코 끝나지 않으며 계속됩니다. 사람들은 오직 ‘적국에 대한 두려움’으로 이 삶을 당연시하고 가공의 인물인 ‘대형(빅 브라더)’를 숭배하고 그의 말만을 따르고 있습니다.

  오직 ‘적국에 대한 저주’를 위해서 사회는 돌아가며 이를 위해 효율적인 체제가 유지됩니다. 심지어 성관계조차 ‘생산을 위한 전투’이니까요. 심지어 언어조차 ‘효율’을 위해서 ‘신어’라는 체제로 바뀌어 있습니다. (어휘의 수를 줄이고자 ‘춥다’의 반대인 ‘덥다’ 대신에 ‘안춥다.’라고 하거나. ‘훌륭하다’를 ‘더 좋다’ 등으로 바꾸는 식)

  이러한 모습은 지금 이 순간 대한민국의 북쪽에 존재하는 한 나라의 모습을 떠올리게 하지만, 동시에 9.11 이후의 미국과 같은 상황도 연상케 합니다. 물론 미국은 <1984> 속의 세계와는 많이 다릅니다. 하지만, 누군가를 적으로 규정하고 그에 대한 두려움을 불어넣으면서 사회를 획일화하려는 듯한 모습은 그다지 멀다고 생각되지 않지요.

  이를테면 9.11 이후 미국 사회의 모든 언론은 똑같은 메시지를 내던졌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분위기가 아프카니스탄 전쟁과 이라크 전쟁을 불러왔지요. 세계 최강 대국 미국에서 끊임없이 ‘외부의 적’을 찾아가는 모습은 참으로 흥미롭고도 무시무시합니다만... (어쩌면 그렇기 때문에 최강 대국이 되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조지 오웰의 <1984>는 솔직히 불편한 작품입니다. 누군가의 표현을 빌리자면, ‘끔찍해, 끔찍해, 끔찍해, 끔찍해’로 계속되는 작품이니까요.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이 작품이 단조로운 색채로 가득한 것은 아닙니다. 가령 당에 저항하겠다는 생각으로 주인공이 줄리아와 함께 연애를 하는 이야기 등은 무채색으로 가득한 이 작품에 일시적이나마 다채로운 색채를 불어넣지요. 결국은 모든 것을 다시 칠해서 검은색으로 만들어버리지만....

  <이퀼리브리엄>과는 달리 결국 디스토피아로 종말을 맺는다는 점에서 재미없고 불편할지도 모르지만, 그만큼 이를 통해 느끼는 점도 많습니다. SF를 좋아하고 아니고에 관계없이 한번 쯤은 볼만한 작품입니다.

  이 작품을 통해 많은 것을 느낄 수 있지만, 저는 이런 세계 체제가 “보이지 않는 적에 대한 두려움”에서 만들어졌다는 것에 초점을 두고 싶습니다. 물론 그에 대한 이야기는 별로 소개되지 않지만, 결국 모든 독재, 전제 정권은 사람들의 두려움을 이용해서 만들어졌으며, <1984>의 사회 체제 역시 ‘적’이 있기에 존속된다는 점에서 말이죠.

  그런 점에서 이 작품은 ‘나치독일’만이 아니라 ‘냉전’의 세계를 잘 보여주고, 지금도 적국을 찾아 헤매는 여러 나라의 ‘미래 가능성’을 보여주는 작품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posted by 별을 좋아하는 표도기

  불과 하루 정도 전(현지 시간으로 27일 오전 7시 반 경) 미국의 오하이오주의 한 고등학교에서 총기 난사사건이 일어났습니다. 이로 인해 총 5명이 부상당했고 한 명이 사망, 또 한 명은 중태라고 하는군요.

  미국의 학교에서 총기 난사사건은 새로운 일이 아닙니다. 이제까지 수없이 벌어진 일이죠. 매일 같이 거리 곳곳에서 총기 살인 사건이 벌어지고 수없이 많은 이가 총으로 살해되는 나라니까요.

  하지만, 학교에서까지 총기가 사용되는 사태는 분명히 충격적인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들은 여기서 ‘볼링 포 콜롬바인’이라는 다큐멘터리 영화로 유명한 콜롬바인 학교의 사건이 떠오릅니다. 

  1999년 4월 20일 콜롬바인 학교에 남학생 두 명이 반자동총을 갖고 나타나 무차별적으로 총알을 날렸습니다. 자그마치 900발의 총알을 발사했고 12명의 학생과 1명의 교사가 죽고 수많은 이가 다쳤지요.

  당시 미국의 언론은 이 사건이 인터넷이나 게임, 또는 노래 때문에 생겼다고 떠들었습니다. 그래서 마이클 무어는 이를 풍자해서 다큐멘터리에 ‘볼링 포 콜롬바인’이라는 제목을 붙였죠. “아침 6시에 같이 볼링을 쳤으니, 볼링 때문 아냐?”라는 식으로...

  그렇다면 정말로 총기 난사는 학교 폭력은, 그리고 전쟁은 게임이나 영화, 혹은 볼링이나 야구 때문에 생기는 걸까요?

  마이클 무어의 다큐멘터리에선 콜롬바인 참사 뒤에도 콜롬바인 인근에서 열린 대규모 NRA(전미총기협회) 집회에서 “총은 포기 못해!”라며 장총을 들어 보이는 배우 찰턴 헤스턴의 모습을 보여주며, 9.11 테러 후 미국 사회를 뒤덮은 공포분위기를 그 이유 중 하나로 제시합니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말합니다. “모든 것은 볼링 때문이야.”

  마이클 무어 감독이라면 9.11 테러를 소재로 한 다큐멘터리 ‘화씨911’로도 유명합니다. 그런데 사실 이 제목은 ‘책이 금지된 사회’의 이야기를 그린 레이 브래드버리의 SF소설 <화씨451>을 패러디한 것이기도 하죠.

  하지만, 오늘의 추천작은 이 작품이 아닙니다. <화씨451>은 통제 사회의 문제보다는, 기록 매체를 없애고 즉흥적이고 자극적인 매체만이 넘쳐난 결과 사람들이 생각을 하지 못하게 되고, 장기적인 기억력을 잃어버리는 세계를 그린 이야기이기 때문이죠. (인터넷으로 인해 생각을 깊이 하지 않게 되는 현재의 세태를 잘 보여주는 작품이라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

  그보다는 이 작품에 영향을 받았다고 할 수 있는 다른 작품을 소개합니다. 바로 아리카와 히로의 <도서관 전쟁>입니다.

  <도서관 전쟁>의 애니메이션 6화에서 <화씨451>이 소개됩니다. 바로 ‘금서’로 말이지요. 왜냐하면 <화씨451>은 국가에 의해 서적을 검열하고 그로 인해 사실상 내전 상태에 빠지는 미래를 ‘예언’한 작품이기 때문입니다.

도서관 전쟁


  다시 말해 <도서관 전쟁>의 세계는 바로 그 같은 검열과 그로 인한 싸움이 거의 일상화된 사회의 이야기입니다.

  가까운 미래, 일본에서 ‘미디어 양화법’이라는 것이 만들어졌습니다. 늘어나는 사회 문제를 줄이겠다는 뜻으로 ‘공공질서와 미풍양속을 해치고 인권을 침해하는 표현’이 담긴 미디어들을 규제하기 위한 목적으로 탄생한 이 법률은 책만이 아니라 모든 매체를 검열하고 검열에 걸린 것을 폐기하게 됩니다.
  한편, 이에 대해 일본의 도서관은 ‘모든 검열로부터 자유로울 것’을 명시한 도서관법을 내세워 검열에 맞서고, 공권력을 앞세워 검열을 실시하는 양화특무기관에 맞서는 조직 ‘도서대’를 구성합니다.
  그리고 30여년에 걸친 두 기관의 싸움으로 두 조직은 총기도 휴대한 준군사조직으로 바뀌게 되지요. 양화대는 총기를 난사하며 도서관을 습격하고 도서대는 총기를 들고 이메 맞섭니다. 상대를 살상하는 공격은 가능한 삼가지만 부상은 적지 않게 마련이고, 물론 사상자가 발생하지 말란 법도 없습니다. 
 

  이야기는 이 같은 상황에서 시작됩니다. 주인공 카사하라 이쿠는 고교 시절 양화대원의 검열에 걸려 책을 빼앗기게 되었을 때 한 도서대원의 도움으로 책을 찾게 되고, 이를 계기로 도서대에 지원합니다. 사고뭉치로 불리고 교관과도 충돌하면서도 그녀는 뛰어난 운동실력과 열정을 인정받아 ‘도서 특수 부대’에 배속되고 그곳을 중심으로 다채로운 이야기가 펼쳐져 나갑니다.


  ‘무력’을 내세워 개인이 사려고 집어든 책마저 강제로 빼앗고 불살라버리는 끔찍한 세계이지만, 이 작품의 분위기는 여느 ‘디스토피아 작품’과는 굉장히 다릅니다. 그것은 바로 주인공이 ‘꿈꾸는 소녀(?)’라는 점에서 기인할지도 모르겠군요.
  이를테면 얼굴을 모르는 도서대원을 ‘왕자님’이라고 부르며 동경하는 이쿠의 모습은 가히 순정 만화 속 여주인공 캐릭터이니까요. 그녀가, 또는 그녀를 중심으로 벌어지는 일들은 결코 훈훈한 것이 아닙니다. 도리어 굉장히 불편하고 암울한 내용들이 많지요. 양화대와의 싸움도 그렇지만, 이른바 학부모 단체와의 싸움고 등장하고, 심지어는 도서대와 도서관 내부에서도 알력이나 권력 투쟁, 음모가 횡행합니다.

  하지만, 언제나 앞으로 보고 달려가는 주인공 카사하라 이쿠의 존재, 그리고 그 주변에서 그녀를 믿고 돕는 여러 인물들의 존재가 이 같은 어두운 세계의 모습을 밝게 만들어주고 있습니다.

  물론 이 작품 속의 세계는 <1984>나 <이퀼리브리엄> 같은 끔찍한 세계는 아닙니다. 적어도 기자를 총살하거나 잡아가두고 항상 프로파간다 방송만 흘러나오는 세계는 아니지요. 어떤 점에서 그 사회는 현재의 우리 세계와 별 차이가 없습니다. (총만 안 들었다 뿐, 각종 이유를 대며 검열과 규제를 거듭하는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의 현실과는 거의 차이가 없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런 사회이기 때문에 이 작품은 더욱 끔찍하고 어둡게 느껴집니다. 지금 이 순간이라도 당장 실현될지 모른다는 점에서. 이 안의 사건들은 생명의 위기를 느끼게 할 만큼 위험한 일은 별로 없지만, 도리어 ‘사회적인 매장’을 가져올 수 있는 사건들이라는 점에서 더욱 불편합니다. 그리고 우리 사회에서 지금 이 순간에도 벌어지고 있을지 모른다는 점에서 말이죠.

  한 가지 예로 한 도서관원이 제멋대로 자기 맘에 들지 않는 책을 폐기한 혐의로 심문을 받다가 주인공이 공범이라고 얘기했습니다. 정작 그 자는 ‘요양’을 위해서 빠지고 주인공이 심문을 받게 되지요. 하지만, 심문보다 끔찍한 것은 그런 그녀를 바라보는 도서관원들의 눈길입니다. 이른바 ‘집단 따돌림’이라는 모습으로 말이죠.

  <도서관 전쟁>에서 또 하나 흥미로운 점은 양화법에서 내세우는 ‘인권을 침해하는 표현’이라는 것에도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가령 ‘이발사’라는 표현이 ‘차별 용어’라고 제기되는데, 실제론 거리마다 수많은 이발소에서 ‘이발사’가 근무하고 있습니다. 이발사들 자신은 그것이 차별 용어라는 것을 전혀 모르고 있었고, 양화법 위원회에서 일방적으로 그렇게 판단하여 결정하고 규제한 것입니다.


  이 작품은 라이트 노벨처럼 쉽게 읽을 수 있습니다. 애니메이션과 만화도 나왔으니 더욱 편하게 볼 수 있겠지요. 하지만, 그 안의 내용을 곰곰이 씹어보면, 굉장히 잘 짜여졌으면서도 많은 생각을 하게 합니다.

[ 애니메이션으로 나온 도서관 전쟁. 총 13화(12화+1화) 짧지만 내용을 잘 옮겨주었다. ]



  왜냐하면 <1984>나 <이퀼리브리엄> 같은 미래는 쉽게 찾아오기 힘들지만(적어도 현대의 민주국가에선), ‘미디어 양화법’은 지금 당장이라도 시행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테스트용 게임 배포’ 만으로 징역형을 부여하려는 법안까지 이야기되는 상황이니까요.


  양화법이 탄생한 것은 시민의 사상을 멋대로 재단하려는(즉 옳고 그른 것을 마음대로 판단하는) 누군가가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 이를 방조한 시민이 있었다는 것... 그것이 이 작품이 보여주는 가장 중요한 주제라고 생각됩니다.


  양화법이 교묘한 것은 ‘개인 소유 재산’에 대해서는 함부로 건드리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즉, 돈을 내고 구입한 책은 압수하지 못합니다. 하지만, 계산전에는 얼마든지 압수할 수 있지요.

  이쿠의 고교 시절, 오랫동안 기다린 신간을 서점에서 집어든 순간 양화대가 도착하여 책을 압수하려 합니다. 양화대는 “그 책은 검열대상이므로 수거한다. 내놓지 않으면 절도죄가 된다.”라고 얘기합니다.
  이에 대해 주인공은 “차라리 도둑이 될 테니, 경찰을 불러 달라.”라고 말하지요. 그 순간 도서대원이 도서대의 권한으로 책을 빼앗기지 않게 해 주었지만, 이 장면은 양화법이라는 것이 생기지 않으려면 시민이 이처럼 적극적으로 나서고 용기를 내야 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부당한 탄압과 억압에 맞서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것이 필요하다는 점을...

  또 하나, 사회 문제에 대해 두려움을 느낀다고 해서 그것에 대한 판단을 남에게 맡기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여담) 한편 총기 난사 사건으로서 작년엔 노르웨이에서 한 청년이 노동당 청소년 캠프 행사장에서 수많은 이를 ‘학살’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그는 기독교 근본주의자였는데, 당시에도 일부 언론은 ‘게임 때문’이라는 의견을 제기하기도 했지요.

  하지만, 당시 노르웨이에서는 미국과 다른 분위기를 보여주었습니다. 그들은 이것이 그의 개인적인 문제이며, 이를 이유로 사회를 공포분위기로 몰아가서는 안 된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들에게 관용을 베풀고, 사상을 억압해서는 안 된다고 말입니다.

  그러한 사회 분위기가 있다면, 양화법 같은 황당하고도 끔찍한 법은 만들어지지 않겠지요.


posted by 별을 좋아하는 표도기
  오늘은 1950년대의 SF 작가 중 가장 영향력 있는 작가 중 하나인 시어도어 스터전이 태어난 날입니다. 그는 “SF 소설의 90퍼센트는 쓰레기다. 하지만, 모든 것의 90퍼센트 역시 쓰레기다.”라는 말을 남겼는데, 이는 SF가 쓰레기라는 얘기보다는 아무리 쓰레기가 많아도 항상 명작이 있다는 이야기로서 받아들일 수 있을 것입니다.‘장르 작품은 모두 쓰레기’라고 생각하는 이들에게 꼭 들려주어야 할 이야기일지도 모릅니다. 특히 이 말을 한 스터전이 당대의 작가로서는 보기 드물게 '일반 문학 작품‘으로 인정받을만큼 완성도 높은 SF 작품을 쓴 사람이라면.

  하지만 아무리 말을 해도 쉽게 통하지 않을 것입니다. 세상이란 본래 그런 법이거든요. 굉장히 안타까운 일이지만, 서로 다른 사람들끼리 모든 것을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일지도 모릅니다. 적어도 인류가 자신을 넘어선 ‘초인류’로 진화하지 않는 한…….


  적어도 90%의 쓰레기에는 속하지 않을 시어도어 스터전의 작품 <인간을 넘어서(More Than Human, ’인간 이상‘이라고 해석하기도 합니다)>는 인간이 호모 게슈탈트라는 독특한 존재로 진화(혹은 퇴보?)한 세상의 이야기입니다.

[ 이제는 찾기 힘든 '인간을 넘어서'. 꼭 재간되어주길 바라는 마음에서 소개합니다. 보고 싶은 분은 도서관으로...^^]


  국제 판타지상을 수상한 이 작품은 제목 그대로 ‘인간을 넘어선’ 초인(超人)들의 이야기를 다룹니다. 초인이라면 ‘슈퍼맨’이나 ‘초인 로크’ 같은 인물을 떠올릴 수 있겠지만, 이 말은 결국 인간의 능력을 넘어선 존재들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인간을 넘어선다는 것은 과연 무슨 뜻일까요? 어떤 점에서 인간을 넘어섰다는 것이고, 어떤 것이 인간 이상의 존재라는 것일까요?

  여기에서 스터전은 여럿이 모여서 하나의 유기체를 구성하는 ‘호모 게슈탈트’라는 존재를 등장시킵니다. 어떤 점에서는 장애자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들이 모여서 하나의 새로운 개체로서 발전하는 과정은 참으로 흥미롭고 독특하지요.

  스터전의 호모 게슈탈트는 단순히 인간이 의식을 공유하는 텔레파시 같은 능력으로서만 이야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어떤 능력을 가진 이들이 하나로 모여서 부족한 부분을 메우고 궁극적으로 하나의 존재처럼 무언가를 하는 것이지요.

  이를 통해서 태어난 호모 게슈탈트는 말 그대로 ‘초인적인 능력’을 보여줍니다. 정신 감응 능력을 발휘하고 공간 이동을 하고... 하지만, 그들이 모여 하나의 개체로서 탄생하는 과정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심지어는 그 능력을 이용하여 잔인한 짓을 저지르기도 하니까요.

  하지만, 온갖 과정 끝에 부족했던 점들을 서로 보완하고 완성된 호모 게슈탈트는 ‘인류의 보호자’ 같은 존재로서 새로운 미래를 이끌어나갑니다. 그야말로 ‘초인’으로서 완성되어가는 것이지요.

  그들의 ‘결말’에 대해서는 조금 생각해보아야 할 면이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부족한 이들이 서로를 메우고 새로운 존재로서 거듭난다는 스터전의 ‘초인’ 개념은 한편으로 우리네 인간의 성향을 매우 잘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흥미롭고, 또한 긍정하게 해 줍니다.

  우리 인간은 혼자서 살아갈 수 없는 존재입니다. 이따금 지나치게 성공한 나머지 그렇게 착각하는 이들도 있지만, 그들 역시 사회의 도움이 없이는 그런 성공을 거둘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인간의 넘어서’에 나오는 온갖 사람들과 같다고 해도 좋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런 이들이 모여서 서로의 부족함을 더하고 나아가 사회를 구성하면서 ‘인류’라는 개체로서 ‘문화’를 낳아간 것이지요.

  물론 그 과정에 항상 쉬운 것은 아닙니다. 많은 이가 서로를 이해하지 못한 가운데 갈등하고 다투고 심지어는 전쟁을 벌이기도 하니까요.

  때문에 호모 게슈탈트의 미래는 멀고도 험난한 것이지만, 스터전의 이야기는 그런 역경 속에서도 궁극적으로 희망이 존재한다는 것을 잘 표현하고 있습니다.



여담) 한 게임 제작자가 있었습니다. 그는 열심히 게임을 만들었지만, 누구도 그의 작품을 인정하지 않았지요. 하루는 그가 게임 제작자들의 파티에 참여했는데 한 사람이 다가왔습니다. 그는 얘기했습니다. “누구도 내 게임을 좋아하지 않아.”
  그러다 다가온 사람이 게임을 보여달라고 했지요. 그는 게임을 보여주었고, 다른 사람은 그것을 보고 ‘이거야 말로 내가 바라던 게임’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제안했지요. “함께 회사를 차리자.”라고...
  그렇게 윌 라이트와 제프 브라운은 만나서 ‘맥시스’라는 회사를 이루었고, ‘심시티’라는 역작이 탄생했습니다.
  서로에게 부족한 것을 갖고 있던 둘이 우연히 만나 새로운 것을 낳은 모습... 이 역시 ‘호모 게슈탈트’로서의 미래가 아닐까요?
posted by 별을 좋아하는 표도기
  오늘의 SF가 조금 늦어지면서 오늘의 추천작도 밀려 버렸군요. 일단 2월 25일의 작품을 소개합니다.

  2월 25일에는 매우 많은 날이 있었습니다. 이를테면 어릴 때 재미있게 보았던 <꼬마 삼보>의 작가 헬렌 배너먼이 태어난 날이기도 하지요. 삼보를 잡아먹으러 왔던 호랑이가 서로 다투면서 꼬리를 물고 나무를 돌다가 버터가 되어 버린다는 이야기를 빙긋 웃으며 봤던 기억이 납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1984년 8월에 첫 비행을 시작하여 작년 2월 25일 38번째이자 마지막 임무에 나섰던 디스커버리호의 발사 장면입니다. 25년이 넘는 세월 동안 다채로운 임무를 수행한 디스커버리호의 마지막 임무는 이탈리아에서 만든 모듈을 국제 우주정거장에 전하는 일이었지만, 동시에 로보노트 2라는 우주 로봇의 실험을 진행하기 위한 것이기도 했습니다.
 
  인간의 상체 모양으로 생긴 로보노트 2는 이제까지의 로봇팔 같은 것과는 비교할 수 없이 세밀한 조작이 가능한 로봇입니다. 물론 우주조종사에게는 미치지 못하지만, 우주 조종사가 임무에 나설 때는 여러 가지 이유로 인해서 감압 과정을 거쳐야 하는 만큼 급한 일이 생겨도 쉽게 나갈 수 없지요.
 
  반면 로보노트2 같은 로봇은 언제라도 나가서 편하게 작업할 수 있습니다. 물론 위험한 작업도 대신해 줄테고요.
  그런 점에서 로보노트 2의 탄생은 앞으로의 우주 개발에서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그런데 사실 ‘감압 과정이 필요하다’라는 것은 과학책이나 잡지, 또는 신문에서 본 것이 아닙니다. 한 만화에서 보고 알게 된 것이었죠. 그 만화에서는 놀랍게도 로보노트 2와 거의 비슷한 디자인의 로봇이 등장하여 활약합니다. 


  2월 25일에는 바로 이 작품을 추천합니다. <일평> 등의 선이 굵은 그림체와 인간적인 냄새가 물씬 풍기는 만화로 알려진 작가 오타가키 야스오의 SF 작품 <문라이트 마일>입니다.



  <문라이트 마일>은 두 사람의 ‘사내’를 주역으로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고로와 로스트먼. 일본인과 미국인, 서로 고향은 다르지만, 자일 파트너로서 수많은 명봉을 제패한 학생 클라이머인 두 사람은 에베레스트 등반 중 눈사태를 만난 프랑스 등산대의 여성을 발견합니다. 둘이 ‘백설공주’라고 이름붙인 여성은 내장이 손상되어 그들은 오직 그녀의 죽음을 지켜볼 수 밖에 없었지요. 그녀의 죽음을 뒤로 하고 두 사람은 장비도 거의 잃어버린 채 에베레스트 정상에 오르고, 그 너머에 떠 있는 국제우주정거장과 달을 봅니다. 그리고 둘은 더 높은 곳. 우주를 향해 가기로 합니다.
  그리고 우연히도 바로 그 날 NASA가 발사한 달자원탐사위성에 의해 핵융합로의 차세대 연료인 헬륨3가 달에 대량으로 매장된 것이 판명되고, 인류는 다시금 달을 향해 눈을 돌립니다.

  시간이 흐르고 두 사람은 각자의 방법으로 우주로 향합니다. 하지만, 우주는 지상의 정치와 분쟁이 그대로 옮겨진 모습으로 그들을 맞이합니다. 그리고 달의 패권을 노린 싸움에서 둘은 동료가 아닌 모습으로 마주하게 됩니다.


  이처럼 문라이트 마일은 달 개발의 과정과 발전을 그려나간 작품입니다. 일전에 소개했던 <프라네테스>가 이미 달 개발이 많이 진전되어 우주의 삶이 현실이 된(그래서 여행객도 적지 않은) 시대를 살아가는 이들의 이야기이고 <트윈스피카>가 이제 겨우 우주로 눈길을 돌리는 사람들의 이야기라면, <문라이트 마일>은 본격적으로 우주로 향해서 달세계의 미래를 건설해나가는 사람들의 이야기인 것이지요. 동시에 그 과정에서 일어나는 달세계의 패권 경쟁을 다룬 작품이기도 합니다. 미국과 중국, 그리고 이들과 제3세계……. 정치, 군사적인 대립이 공공연히 벌어지는 것입니다.

   이 같은 대립은 ‘테러’ 정도로 끝나지 않습니다. 가히 ‘전쟁’이라 불러도 될 것입니다. 미국은 다른 나라들 몰래 달의 뒷면에 기지를 세워두고 있으며, 스텔스 우주 전투기를 동원하여 중국의 유인 우주선을 격추하러 나섭니다. 중국 역시 ‘인해전술’로 미국에 도전하고 지구 궤도와 달세계는 패권 분쟁의 마당이 되지요.

  달에서의 모든 것은 사람들의 눈길을 끌고, 축복받아야 할 루나리안(달에서 태어난 인간)의 탄생마저도 정치적인 목적으로 거래됩니다. 그만큼 사실적이면서도 냉철한 분위기를 느끼게 하는 작품이지만(한편으로 초반에는 그만큼 선정적인 연출이 눈에 걸리지만), 한편으로는 그런 패권 분쟁 속에서도 다채롭게 펼쳐지는 인간들의 교류가 눈에 띕니다.

  이 작품은 우정의 이야기인 동시에 가족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화이트 칼라와 블루 칼라의 대립, 민간과 군대의 대결에 이어 중국과 미국의 분쟁으로 이어지지만, 그것으로 끝나는 것도 아닙니다. 우주 개발에 도태된 제3세계의 문제까지 대두되니까요.

  이렇듯 다양한 대립과 갈등 속에 고로와 로스트먼의 대결은 한편으로 자녀를 위한 ‘부모의 싸움’으로 진전되어가며 새로운 세대의 이야기로 이어집니다. 지구와 우주 세대의 갈등으로...

  그만큼 다채롭고 풍성한 이야기를 만끽할 수 있다는 것이 즐겁지만, 안타깝게도 국내에서는 제대로 나오지 못하고 있습니다. 현재 일본에선 22권까지 나왔지만, 우리나라에선 처음 소개하던 세주문화사가 문을 닫고 뒤를 이은 서울문화사에서 꽤 느리게 나오고 있거든요. 대여점에서 인기를 끌기 어려운 작품이어서 그럴지도 모르겠습니다만...

  그래도 <트윈스피카>처럼 아예 나오지 않는 것은 아니니 다행일까요? 앞으로도 꾸준히 나와주길 기대할 뿐입니다.


  끝으로, 앞서 소개했던 감압의 문제와 ‘로보노트2’를 닮은 로봇은 긴급 사태에서 등장합니다. 감압 문제는 급하게 우주복을 입고 나가야 하는 상황에서 전개되었습니다. 우주복은 움직이기 쉽도록 어느 정도 부드러운 재질로 되어 있는데, 만일 우주복 내부가 1기압 상태라면 우주복은 부풀어 올라서 움직이지 못하게 됩니다. <플라네테스>에서 등장한 딱딱한 소재의 우주복이라면 문제가 덜하지만, 아무래도 무겁고 불편하죠. 특히 관절이나 손가락 같은 부분 때문에. 때문에 우주조종사의 우주복 내부는 보통 0.3기압 정도로 감압하는데 이 과정을 지나치게 빨리 진행해 버리면 잠수병과 비슷한 증세를 겪게 됩니다. 때문에 보통 12시간. 짧아도 8시간 정도 걸린다는 것이지요. 그런데 긴급 사태에서 주인공 일행은 6시간 만에 감압 과정을 거칩니다. 고로와 로스트먼 등 클라이머로 숙련된 이들조차 쉽지 않은 일이죠. 그래서 셋 중 한 명은 기절하기도 했고요.



  이후 고로의 후배뻘 우주인이 ISS에 올라갔을 때 급하게 외부 작업을 해야 하는 상황에 처했습니다. 이번에는 6시간의 여유조차 없었지요. 그런데 미국 모듈에서 아무도 모르던 이 로봇이 등장합니다. 그야말로 충격적인 사건이었지만, 이 덕분에 ISS의 사고는 처리됩니다.

  이처럼 <문라이트 마일>에서는 거의 엑스파일 수준의 이야기도 많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불신을 낳고 분쟁의 원인이 되고 전쟁으로 비약되는 것이지요.

  그에 비하면 로보노트 시리즈는 개발 초기부터 당당하게 소개되었다는 점에서 다행이라 생각합니다. 1997년에 처음 개발이 시작되었고 초기 모델이 이미 2002년에 공개 실험을 진행했죠. <문라이트 마일>에 등장하는 로봇은 아마도 여기에서 착안한 것이 아닐까요?

  이를 보면 현실의 우주 개발은 <문라이트 마일>에 비해 비교적 협력적으로 잘 진행되는 것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우리가 모르는 곳에서는 <문라이트 마일> 이상의 무슨 일이 벌어지지 않는다고 볼 수 없겠지만... 

posted by 별을 좋아하는 표도기
  오늘은 역사상 최초로 체세포에 의해 복제된 양 돌리가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날입니다.

  1996년 7월 5일 스코틀랜드의 로슬린 연구에서 태어난 돌리의 뉴스는 세계 많은 이들에게 다양한 기대와 불안을 갖게 했습니다. 특히 종교계에서는 양이 복제되었으니 다음은 인간의 복제가 행해질 수 있다는 이야기와 함께 복제된 히틀러나 복제된 아인슈타인 같은 그림이 여러 매체를 수놓기도 했지요.

  한편으로 돌리는 복제 생물의 한계를 보여준 사례이기도 했습니다. 1999년 네이처지에서 돌리는 태어나면서부터 세포 내의 염색에 있는 텔로메어가 짧아서 태어나자마자 노화되고 있다는 연구가 발표되었는데, 실제로 돌리는 5살 때 관절염 증세로 쇠약해졌고, 6살 때 폐수종으로 안락사되었습니다.

  다만, 이에 대해서 이견도 있습니다. 이를테면 실제 다른 클론 동물에서 텔로메어가 정상적인 길이를 갖고 있었고, 돌리의 관절염이나 병세 등은 클론 기술의 미숙 탓이라는 것이었죠. 어느 쪽이건 돌리는 최초의 클론 포유류로서 가능성과 우려를 함께 가져오며 의학과 생물학의 역사에 큰 발자취를 남긴 것으로 기억됩니다.

  그렇다면 클론의 목적은 무엇일까요? 일부 사람들은 역사상 위인을 복제하는 가능성에 대해 이야기하지만, 사람의 업적이나 역할은 유전자보다는 자라난 경험 등에 의해 이루어진다는 점에서 그다지 좋은 방법은 아닙니다. 이를테면 예수의 클론을 만든다고 해서 기적을 행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요. 심지어 외모마저도 환경의 영향을 받기에 히틀러를 복제한다고 해서 그가 똑같은 모습을 가진다고는 볼 수 없습니다. 영양 상태나 운동 등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는 키나 체중은 분명히 다를 것이고, 얼굴도 완전히 다르지는 않아도 꽤 차이가 있겠죠. 물론 쌍둥이끼리도 서로 다른 지문 등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만약에 기억을 보존해서 옮길 수 있다면 완전히 똑같은 사람이 될 수도 있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같은 업적을 남긴다는 법은 없습니다. 업적이란 개인의 경험만이 아니라 환경, 그리고 운도 많이 작용하기 때문입니다. 어느 쪽이건 그(또는 그녀)는 본체와는 완전히 다른 새로운 존재가 될 것입니다.

  복제의 용도는 인간 복제보다는 멸종해가는 동물을 보존하거나, 뛰어난 가축을 더 많이 늘리는 용도로 적합하리라 생각합니다. 이를테면 뛰어난 성적을 올린 경주마를 복제한다면(이후의 훈련도 중요하겠지만) 그만큼 뛰어난 말이 될 가능성이 높아지겠지요. 영화 <스타워즈> 시리즈에서는 뛰어난 전사를 복제하여 대량의 클론 군단을 만드는 장면이 등장하는데, 이 역시 비슷한 용도라고 하겠습니다.

  그리고 인간에게 있어서는 한 가지 끔찍한 용도가 있으니, 바로 비상시를 대비한 ‘대역’이나 ‘장기 제공’ 역할이지요. 영화 <카게무샤>에서는 다케다 신켄이 죽은 뒤에 카게무샤가 활동했다는 전설을 소재로 이야기를 꾸미고 있습니다. (물론 사실이 아닙니다. 신켄이 죽은 건 금방 알려졌고, 다케다가는 -비록 섭정 같은 역할이었지만- 그의 아들인 카츠요리가 맡아서 통치했으니까요.)
  하지만, ‘카게무샤’는 실제로 존재했습니다. 전투 등에서, 또는 암행 중에 대역을 맡아서 활동한 인물이었지요. 다케다 신켄은 실제로 자신과 닮은 친척에게 카게무샤를 맡기곤 했고, 그 밖에도 역사상 많은 이들이 ‘대역’을 이용했습니다.

  하지만, 쌍둥이가 아닌 이상 아무리 닮아도 차이가 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런 점에서 쌍둥이나 다를 바 없는 클론은 ‘카게무샤’로 최적이죠. 게다가 클론은 자신과 모든 점에서 같은 육체이기 때문에 장기 이식에도 최고의 적격자입니다. 그야말로 자기 자신의 장기를 사용하는 것이나 다를 바 없으니까요.

  영화 <아일랜드>는 바로 그런 내용을 소재로 한 이야기입니다. 유명인사들이 자신의 대역으로서 클론을 만들어두고 그들은 자신들이 재앙 이후 세계의 생존자라고 믿고 사는 거죠. 그러다 주인공은 그 사실을 깨닫고...

  하지만, 오늘의 추천작은 <아일랜드>가 아닙니다. 그보다도 10년 이상 앞서 도너 시스템을 떠올리고 매우 다채로운 이야기를 뒤섞어 완성한 작품(어쩌면 <아일랜드>에 영향을 주었을지도 모르는), 시미즈 레이코의 만화 <월광천녀(輝夜姫)>입니다.




  <월광천녀>는 일본 설화 속의 ‘타케토리 이야기’를 기초로 만든 근미래 SF 작품입니다. 설화나 전설에 다채로운 SF 소재를 더하는 것은 시미즈 레이코의 특징이자 장점인데, 제47회 소학관 만화상을 수상한 이 작품에서도 그녀는 클론만이 아니라 우주개발이나 이성인의 존재 등 다양한 소재를 더하고 다채로운 인간관계를 더하여 흥미로운 이야기를 완성하고 있습니다.

  이 작품의 단점은 지나치게 길다는 것입니다. ‘인어공주’와 ‘타케토리 이야기’를 뒤섞은 <달의 아이>가 절반 정도 분량으로 비교적 깔끔하게 이야기를 마친 반면, 이 작품은 조금 길게 나가면서 다소 억지스러운 전개도 조금씩 눈에 띕니다.

  하지만, 설화와 SF라는, 다소 차이가 있는 방향성을 잘 조화시키고, 다양한 소재를 -다소 삐꺽거리긴 해도- 잘 마무리 졌다는 점에서 이 작품은 편하고 재미있게 볼 수 있는 작품이라 생각합니다. 시미즈 레이코 특유의 독특한 세계 설정과 이야기 전개가 돋보이는 작품이지요.

  작품의 이야기는 <아일랜드>처럼 도너로서 길러진 이들을 중심으로 진행됩니다. 물론 그들은 자신이 도너라는 사실을 모른채 자라납니다. 그들 대부분은 <아일랜드> 속의 클론과 달리 도너로서의 삶을 강요당하고 결국 해체되고 말지만, 특수한 환경에서 자라난 그들의 장기는 본체를 밀어내고 도너의 의식으로서 세계의 주요 인사로서 군림하게 됩니다...

  처음에 주연이나 조연으로 나오던 이들이 해체되어 죽어버린다는 충격적인 전개와 그 이후의 예상치 못한 전환은 작품의 이야기에 몰입하게 만드는 요소입니다. 하지만, 이 작품은 달세계의 이성인인 천인이라는 존재 등을 통해서 그 이상의 큰 변화를 준비하고 있지요.

  굉장히 흥미롭고 재미있는 작품인 만큼, 한번 쯤 읽어보시길 권합니다.

  어떤 분은 ‘순정만화’라는 것에 다소 거부감을 느끼실지 모르겠지만...


여담) <월광천녀>가 클론의 도너 설정에서 가장 첫 작품은 아닙니다. 인간의 복제라는 개념은 이미 전설이나 설화 속에서도 나오는 이야기이며,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1932)에서 이미 노동력으로서의 클론이란 내용을 도입하고 있으니까요.

  장기 복제용 클론의 개념도 여러 SF에서 소개되었습니다. 하지만 <월광천녀>의 연재가 시작되던 1993년에는 아직 이것이 대중적이지 않았고, 별로 친숙한 소재가 아니었다는 점에서 참신한 시도였다고 생각됩니다.


  

posted by 별을 좋아하는 표도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