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 이야기 2014.11.12 06:16

비욘드 어스는 다른 행성에 정착한 인류의 이야기를 그린 게임입니다.


이 게임을 처음 해 보면 마치 문명을 보는 듯한 느낌에 'SF판 문명 아냐?'라는 생각을 하기 쉽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많은 부분에서 문명을 닮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 게임은 SF라는 것에 걸맞게 한가지 재미있는 요소를 가지고 있습니다.
바로 '외계 생명체에 대한 견해'라는 것입니다.



[ 우주 먼 곳에서 새로운 터전을 발견했을때 인류는 크나큰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될 것입니다. ]


우주로 진출한 인류는 본래 갖고 있던 종으로서의, 그리고 문화의 순수성을 지켜야 할까요?

아니면 외계 문명과 조화를 이루어 새로운 문화를 이루고 새로운 발전을 이끌어낼까요?

혹은 외계 문명을 적극적으로 수용하여 아예 새로운 종으로서 변화해나가야 할까요?


수많은 SF 작품 속에서 거론되었던 이 고민을 비욘드 어스에서는 함께 나눌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에 따라서 변화해나아가는 모습을 우리는 목격하게 됩니다.


비욘드 어스는 물론 문명의 우주판이라고 여겨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주로 진출했다는 사실, 그리고 외계 행성이라는 사실이 바꾸어가는 모습을 잘 보여준 작품이기도 합니다.

단순히 겉껍질만 SF인 문명의 확장판이 아니라, SF에 대한 고민과 생각을 통해서 나온 작품이라는 것입니다.

비욘드 어스에는 무수한 매력이 있지만, SF 속의 다채로운 가능성을 보여준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좋은 작품이라고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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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담 2014.10.31 23:48

두 작품의 공통점은 우주 식민지 개척을 위한 이야기라는거죠.


묘하게도 이런 두 작품이 같이 나오게 되는데...


상상력이라는 것은 때때로 다른 이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걸까요?



이를테면...






이렇게 말입니다.


두 작품이 거의 동시기에 나온 것은, 당시 소행성 출동에 대한 이야기가 화제가 되었기 때문이었죠.



왠지 모르겠지만, 앞으로 우주 식민지 관련 작품이 꽤 나오지 않을까... 기대해 봅니다. 그런 얘길 좋아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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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과 우주 이야기 2014.10.31 23:46



최근 프레젠테이션 강의를 하면서 프레지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Zooming 기법을 다채롭게 활용할 수 있는 프레지는 매우 독특한 프레젠테이션 프로그램이죠.


X, Y(가로, 세로) 만이 아니라, Z(깊이)를 보여줄 수 있다는 점이 매력적입니다.



프레지를 쓰면서 쉽게 느끼게 되는 것이 바로 시야를 바꾸면 다른 모습이 보인다는 점입니다.


조금만 시야를 돌려도, 조금만 멀리서 보아도 세상은 다르게 보입니다.


바로 아래의 영상처럼...





1977년에 제작된 "파워즈 오브 텐(10의 제곱들)"...




물론 이런 영상도 있죠. 코스믹 보이지





세상은 이처럼 놀라운 곳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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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판타지도서관 2014.08.15 21:15

SF&판타지 도서관에 있는 책들을 정리해 보고 있습니다. 첫번째로 '스페이스 오딧세이~우주로의 꿈과 일상~'.



우주를 향한 여정과 일상을 다룬 작품을 중심으로 우주 전쟁과 일부 스페이스 오페라 작품은 제외해서 정리했지요.


한국에도 '디오티마' 같은 명작이 있지만, 한국 작품은 따로 정리하고요. 여기에는 일단 일본의 만화만으로 한정했습니다.


앞에서부터 


트윈 스피카, 패스포트 블루, 우주형제, 문라이트 마일, 극한의 별, 수혹성 연대기, 플라네테스, 세계의 암호는 물, 2001년 야화와 스타더스트 메모리즈, 문 로스트, 아리아(아쿠아), 카우보이 비밥, YAT 우주여행, 별의 목소리, 우주함대 제인, 미싱 게이트, 은하철도의 밤, 은하철도 999....


은하철도의 밤은 판타지/동화이지만, 일단 함께 배치해 두었죠. 은하철도 999에 영감을 준 작품으로서.



생각보다 많으면서도 한편으로 뭔가 부족하다는 느낌도 있어요. 좀 더 추가하고 싶은데 혹시라도 아는 작품이 있다면 추천해 주세요. 물론 한국에 번역되어 나온 작품이 좋습니다.


SF&판타지 도서관에 기증해 주신다면 더욱 좋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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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과 우주 이야기 2014.03.16 13:21

3월 15일(토) 11시에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가 했습니다.


가장 대중적인 과학 저술가이자, 뛰어난 천문학자였던 칼 세이건이 책에 이어 1980년에 다큐멘터리로 방송한 이래 자그마치 34년만의 재방송...이 아니라 34년만의 리메이크 작품이지요.


진행은 역시 대중적인 천문학자로 알려진 닐 디그래스 타이슨이 맡아서 완성한 13부작 다큐멘터리의 제작비는 자그마치 450억원. "디스트릭트 나인"보다도 많은 제작비를 들이기도 했지만, 칼 세이건이 진행했던 코스모스에 비하여 부족하지 않은 연출력과 편집으로 완성된 작품이었습니다.





코스모스를 본 느낌은 그야말로 '경이' 그 자체였습니다. 이규화씨가 진행한 더빙판에 이어 자막판까지 보았는데(참 좋습니다. 어떻게 내 마음을 이렇게 잘 알고 자막판도 다시 틀어주다니.) 특히 자막판은 더욱 '감동'하게 되었지요.


진행은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를 그대로 옮겨온 듯 합니다. 첫 회는 우주에 대한 인류의 관심의 역사. 그리고 우주와 지구의 역사를 간단하게 소개하였지요. 이 장면은 컴퓨터 그래픽과 애니메이션으로 완성되었는데, 그 장면 연출 하나하나가 매력적입니다. 몰입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드는 것이죠.


어제 이야기 중 조르다노 브루노의 이야기가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우주는 무한하며, 우주의 별들은 모두 태양이고 지구와 같은 별들이 있다는, 코페르니쿠스보다 한발짝 더 나선 생각을 가졌고 주장했던 그는 이단으로 몰려서 화형에 처해지지만, 사실 그 자신은 신을 모독하는 것이 아니라 신이 무한하고 전능하기 때문에 그렇다고 생각했다는 점이 참 인상적이며 안타깝습니다. 무한한 우주를 꿈꾸었던 그가 처형될때 슬픈 마음이 가득했습니다.


그리고 우주의 역사를 단 1년으로 압축하여 보여준 달력... 역시 멋지고 놀라웠지요. 경이로운 순간. 우리 인간이 더없이 작고도 보잘것 없는... 동시에 우주의 광대한 역사를 계승한 존재라는 것을 느끼게 해 주는 순간이었습니다.



앞으로 12주... 코스모스를 볼 시간이 더 있습니다. 앞으로 매주 토요일부터 일요일로 넘어가는 순간에는 우주의 경이가 함께 하겠지요. 그것도 저 혼자만이 아니라 전세계 많은 이와 함께...


그리고, 코스모스가 모두 완결되고 블루레이가 나온다면 다시 한번 처음부터 끝까지 볼 수 있는 기회를 기대할 생각입니다.


물론 상영회도 가능하겠지만요.



추신) 새로 만들어진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는 내셔널 지오그래픽 채널에서 토요일밤 11시부터 진행합니다. 이규화씨의 더빙으로 1시간 방송이며, 이후 자막판이 다시 소개됩니다.

  방송 시간에 맞추어 페이스북 https://www.facebook.com/NatGeoKorea/app_247819131982465 에서도 보실 수 있으니(더빙판만) 놓치지 않으시길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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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과 우주 이야기 2014.03.15 08:20

오바마 대통령은 참 편안한 느낌의 인물로서도 잘 알려져 있죠.


휴가 중에 뭘 했냐는 질문에 "스타트렉 영화를 봤다. 꽤 잘 만들었더라."라고 대답한 그는 스타트렉의 우후라 역으로 출연한 배우와 함께 발칸족의 인사를 자연스럽고 편하게 나눌 정도로 스타트렉을 좋아하기도 하죠. (그냥 트레키입니다.^^)



교양과 함께 자신의 취미를 당당하고 편하게 이야기하는 점에서 그는 참 멋진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가 좋아하는게 스타트렉만은 아니었던 모양입니다. 왜냐하면...





코스모스를 추천하는 인터뷰에 출연했거든요.


'추천 인터뷰'라고 써 있지만, 간단히 말해서 "코스모스를 보라"는 광고입니다.


아니, 전직도 아니고 현재 대통령을 맡고 있는 그가 방송에 출연해서 '이 프로 멋지니까 꼭 보세요.'라고 추천하다니...



그러고 보면 내셔널 지오그래픽의 '우주 라이브' 방송도 참 대단합니다. 우주를 생방송으로 보여준다는 아이디어가 대단하기도 하지만, 그것을 쾌히 승락한 NASA 쪽도 말이지요.



왠지 미국의 문화와 기술 발달이 괜히 나온 건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대통령이 대중적인 과학 방송을 편하게 광고하고, 국가 기관에서 자원을 방송국에 제공하는 것...


분명 이를 통해서 미국인들은 우주에 대한 관심을 더욱 높여나갈 것이고, 그 중 누군가는 우주 과학의 발전을 이끌어낼 것입니다.


물론 그 중 오바마의 '광고'를 기억하는 사람은 없을지 몰라도 말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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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과 우주 이야기 2014.03.14 22:41

내셔널 지오그래픽 이야기입니다.


내일 오전 8시 30분에 우주 라이브가 합니다. 우주에서 지금 이 순간에 찍은 '생중계'를 볼 수 있는 것이지요.





그리고 밤 11시에는 450억원을 들여서 다시 만든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


자... 그렇다면 이 중간에는 뭘 할까요?



오늘 밤 11시부터 내일 아침 8시까지 '우주 스페셜'이 방송합니다.


수성부터 시작해서 태양계 각 행성들, 그리고 우주 먼 곳의 이야기까지 현재의 최신 탐사 정보를 통해서 만들어진 다큐멘터리 시리즈죠.


그리고 8시 30분에 우주 라이브를 진행하고 나서...


다시 내일 아침 11시부터 밤 8시까지 우주 스페셜을 재방송.



중간에 '세상에 남은 호기심 1%'같은 방송도 있지만, 그것을 제외하면 토요일은 새벽부터 밤 늦게까지 '우주 이야기'로 가득차는거죠.



그야 말로 꿈 같은 일이지요!


기대하세요. 3월 15일 토요일... 불과 얼마 안 남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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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과 우주 이야기 2014.03.02 01:37

닐 암스트롱과 버즈 올드린은 아폴로 11호에 탑승한 승무원이며, 달에 발을 딛은 사람들입니다.


하지만 두 사람에 대한 대중의 대응은, 적어도 한국에서 그들 두 사람에 대한 반응은 굉장히 다릅니다.




심지어 "세상은 2등을 기억하지 못한다."라면서 이 두 사람의 이야기를 소재로 한 광고가 나왔을 정도니까요.



하지만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 달리 미국에서는 버즈 올드린이 닐 암스트롱 이상으로 유명하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아폴로 11호 이후 거의 잠적하다시피했던 닐 암스트롱과 달리, 버즈 올드린은 그후 수많은 대중 매체에서 활약하면서 우주 개발에 대한 이야기를 알리고자 노력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일까요? 대중 매체에서 버즈 올드린의 이름을 접하는 것은 별로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이를테면, 토이스토리에서 우리는 '버즈'를 만날 수 있죠.



트랜스포머 3나 우주 형제 같은 영화에서는 버즈 올드린 본인을 만날 수도 있고요.



심지어 그가 쓴 SF 소설도 찾을 수 있습니다.(존 반스와 공저한 작품인데다, 국내에선 버즈 앨드린이라는 이름으로 표시되었습니다만.)




닐 암스트롱이 "작은 발자국"으로 세계의 역사에 이름을 남겼고, 많은 이에게 '우주를 향한 꿈'을 심어준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우주 개발의 발전 과정에서, 아폴로 계획을 비롯한 우주 개발 계획을 대중에 알림으로써 꿈을 가능성으로 바꾸는데 노력했다는 점에서는 버즈 올드린이 더 큰 역할을 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지금도 이를 자랑스럽게 생각하며, 사람들을 우주로 이끄는 역할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가끔은 "인류가 달에 간건 거짓이다."라며 그 자신만이 아니라 아폴로 계획에 참여한 수많은 이를 모욕한 -자칭?- 다큐멘터리 감독에게 주먹도 날리면서 말이죠.^^)



동방의 어떤 나라의 어떤 사람들은 세상은 1등만을 기억한다고 '착각'하지만, 인생이라는 것은, 그리고 세상이라는 것은 한 순간의 1등이 아니라, 평생의 2등이 더 중요할 수도 있다는 것을 버즈 올드린은 잘 보여줍니다.



한편, 아폴로 11호에는 또 한 명의 승무원이 있었습니다. 바로 "마이클 콜린스"입니다. 그는 아폴로 11호의 승무원입니다만, 달에 내리지는 못했습니다. 닐 암스트롱과 버즈 올드린이 달에서 임무를 진행하는 동안, 그들의 안전한 귀환을 위하여 사령선에 남아서 달 궤도에 머물러 있었지요.



우리들은 닐 암스트롱을 기억합니다. 버즈 올드린 역시 여러가지로 유명한 인물이 되었지요. 그렇다면 마이클 콜린스는 어떨까요?


그의 이름을 기억하는 이는 많지 않을 것입니다. 한국 위키피디아를 보면 고작 3줄 밖에는 내용이 없을 정도고요.


그는 닐 암스트롱만큼 유명해진 것도 아니고, 버즈 올드린처럼 그 후에 대중적인 활동을 많이 하지도 못했습니다.(스미소니언 연구소의 부소장을 맡아 활동한 만큼 남긴 업적이 적은 건 아닙니다.)



하지만 마이클 콜린스가 아니었다면, 닐 암스트롱과 버즈 올드린이 무사히 임무를 마치고 돌아올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마이클 콜린스는 바로 그것을 자신의 자랑으로서 많은 이에게 이야기했다고 합니다. 그가 제미니의 승무원으로서, 그리고 아폴로의 승무원으로서 자신의 역할을 충실하게 수행하고 이들 임무를 성공시켰다는 사실을 말이지요.



아폴로 11호가 달로 날아갔다가 돌아오는 과정에서는 이들 외에도 이름이 알려지지 않는 무수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우리들은 그들을 알지 못하며, 어떤 이들은 그렇기 때문에 그들이 가치가 없다고 생각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들은 아폴로 11호 착륙의 그 순간에 그 자리에 함께 있었다는 사실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며, 행복해 합니다.



세상은 1등만을 기억할지도 모르지만, 행복이라는 것은 1등에게만 찾아오는게 아닙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오직 1등만이 세상을 행복하게 만드는 것은 더더욱 아닙니다.



세상이 1등만 기억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아질수록, 사람들은 어떤 수를 써서라도 1등이 되어야 한다며 날뛰고, 남들보다 윗자리에 서고자 노력하며, 1등이라는 권위에만 매달리고 집착하면서 다툼을 벌이게 마련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은 2등이 1등을 질투하고 다툰다고 생각하지요.



이를테면, 아폴로 11호의 임무 수행 사진은 오직 버즈 올드린의 모습만이 남아 있습니다. 역사상 가장 유명한 사진 중 하나인 아래 사진의 주역도 역시 버즈 올드린이지요.



  이에 대해서 어떤 이들은 버즈 올드린이 고의적으로 닐 암스트롱의 사진을 찍지 않았다고 합니다. 2등인 버즈 올드린이 1등이 되지 못하는 것을 질투했기 때문에 그런 것이라고 말이죠.


  하지만 그것은 사실이 아닙니다. 버즈 올드린은 고의적으로 닐 암스트롱의 사진을 찍어주지 않은게 아닙니다. 단지 당시 아폴로 11호의 임무 내용에 있어 역할을 분담하며, 사령관인 닐 암스트롱이 사진을 전담하여 찍도록 되어 있을 뿐이었죠.


  아래 사진처럼 카메라가 우주복에 고정되어 있는 방식이기 때문에, "나도 찍어줘"라고 할 수 있는게 아니었던 것입니다.


  당연히 닐 암스트롱은 자신의 사진을 찍어달라고 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카메라 담당으로서 버즈 올드린의 모습을 멋지게 찍어주기 위하여 노력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의 사진은 한 장도 남아 있지 않은 것입니다. 버즈 올드린이 질투를 해서가 아니라, 닐 암스트롱이 자신의 임무에 충실했기 때문에...



  만약에 그들이, -일부 사람들이 잘못 알고 있듯이- 세상이 기억할 1등 만을 바라고 행동했다면 과연 어떠했을까요?


  "세상은 1등만 기억한다."라고 생각하는 이들에게는 닐 암스트롱의 사진이 없다는 사실이 버즈 올드린의 질투처럼 생각될지도 모르지만, 적어도 달에서 활동하던 그 순간 두 사람에게는 1등도 2등도 없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아폴로 11호의 성공을 기억하며 언젠가 달로 향하여 그들의 유적(^^)을 볼 수 있는 날을 기대하는 것입니다.



  닐 암스트롱만이 가치가 있고, 버즈 올드린이 질투 때문에 사진을 찍어주지 않았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많아진다면, 세상은 음모와 협잡만이 판치게 될 것입니다. 모두가 '세상이 알아주는' 1등이 되겠다며 상대의 발목만을 잡고, 상대를 쓰러뜨리려 애쓸 것입니다.


  그리고 1등만이, 아니 1등조차도 행복하지 않은 세상이 될 것입니다.



  인생의 행복은 세상이 기억하는 1등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자신이 기억하고, 자랑스러워할만한 '인생의 1등'에서 나오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행복이라는 것은 세상이 기억하는 1등이나 2등이 아니라 자신이 생각하는 1등이나 2등이라는 것을 기억하는 이들이 많아졌으면 합니다. 그럼으로서 행복해지는 이들이 많아지기를...



  최소한 버즈 올드린의 이야기를 소개하며 "세상은 2등을 기억하지 않는다."라고 하거나 닐 암스트롱의 사진이 없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버즈 올드린이 질투해서 그런 것이다...라고 말하는 일이 없는 세상이 되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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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과 우주 이야기 2012.08.06 12:35

  오늘 2시경 화성 과학실험장치 큐리오시티 로버가 화성에 내려앉을 예정입니다. 작년 11월 27일에 지구를 떠나 장장 8달 이상의 여정을 거쳐 화성에 도착하는 큐리오시티는 이제까지 화성에 도착했던 무수한 탐사선 중에서도 가장 진보한 존재로서, 화성의 사진이나 표면의 조사에 그치지 않고 화성의 땅을 파고 지면 아래의 조사를 할 수 있는 놀라운 능력을 자랑합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화성의 위를 주행하면서 수많은 정보를 보내고 있는 오버튜니티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충실한 기능을 갖고 있으며, 그만큼 화성의 비밀을 더욱 많이 밝혀낼 수 있으리라 기대되지요. ‘큐리오시티(Curiosity – 호기심)’이라는 이름 그대로…





  화성 근처에 무사히 도착했다고 하지만, 화성으로 내려앉는 과정에서도 위험은 존재하고 있습니다. 화성의 대기권을 통과하는 마의 7분이라는 시간에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니까요.


  하지만 여러 차례의 실패가 있었음에도 그때마다 문제를 보완하여 충실하게 진행했던 미 항공 우주국의 신뢰성을 믿으며 큐리오시티 로버가 화성 위에 서기를 기대합니다.


GOOD LUCK!



추진 : 큐리오시티 로버는 한국 시간으로 2시 32분에 도착 예정이며, 현재 라이브로 소개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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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과 우주 이야기 2012.06.17 16:44

  1977년 06월 16일. 미국에서 한 사람이 숨을 거두었습니다. 사람의 죽음은 자연스러운 것이며, 65년을 살아온 만큼 비교적 오래 살았다고도 볼 수 있겠지만, 그 사람의 죽음은 많은 이에게 안타까움을 남겨주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미국의 우주 개발 계획을 이끄는 견인차였고, 인류를 우주로 보낼 가능성을 가진 사람이었기 때문이지요.


  달에 발자국을 남기게 함으로써 "인류에게 있어 위대한 도약"을 가능하게 했으며, 그 너머를 보고 있던 인물. 그의 이름은 바로 독일 출신의 미국 로켓 기술자 베르너 폰 브라운(Wernher Magnus Maximilian Freiherr von Braun)이었습니다.





 

  1912년 3월 23일 독일 동부의 포젠 근교에서 귀족의 자제로 태어난 폰 브라운은 어머니에게 선물 받은 망원경을 통해 천문학과 우주 분야에 대한 관심을 갖게 되었다.

  1920년 그의 고향인 비르지츠(Wirsitz)가 폴란드에 양도되면서 그의 일가는 다른 이들처럼 독일령으로 이주하여, 베를린의 브란덴부르크에서 새로운 생활을 시작했다.

  훗날 로켓 개발을 진행하는 폰 브라운이었지만, 본래는 물리학과 수학에는 그다지 자신이 없었다. 하지만, 어느날 로켓 개발의 선구자인 헤르만 오베르트가 쓴 <행성간 우주용 로켓(Die Rakete zu den Planetenraumen)>이라는 책을 통해 로켓이라는 존재를 알게 된 폰 브라운은, 로켓 개발의 꿈을 꾸며 꼭 필요한 학문인 수학을 배우고자 노력했다.

  중학교를 졸업하고 로켓 연구를 시작한 폰 브라운은 독일 우주 여행 협회에 들어가 동료들과 함께 2년 동안 80회 정도의 로켓 발사 실험을 진행했다. 특히 그는 많은 청중 앞에서 실험을 보여주며 로켓과 우주에 대한 관심을 끌고자 했는데, 그 실험을 목격한 독일 육군 로켓 연구소 소장 발터 도른베르거는 폰 브라운을 베를린 공과 대학에 추천하여 로켓 연구를 계속하도록 도왔다. (당시 독일은 장거리 포의 개발이 금지되어있었기에 나치 독일에서는 로켓을 군사용으로 이용하고자 로켓에 대한 투자를 계속했다.)

 

  폰 브라운은 헤르만 오베르트의 밑에서 액체 연료 로켓 엔진 실험을 도우며 1934년에는 2.4km 고도에 달하는 로켓을 쏘아올릴 정도의 성과를 거두었지만, 더 이상 연구를 계속할 수는 없었다. 나치 독일에서는 군사용 이외의 모든 로켓 실험을 금한 것이다.

  결국 폰 브라운은 히틀러의 명령으로 군사용의 로켓, 미사일 개발을 계속하게 된다. 우주로 날아갈 수 있는 로켓의 개발을 꿈꾼 폰 브라운은 그것이 군사용 병기로 사용되는 것을 개의치 않았다.

  당시 폰 브라운은 나치당에 가입하기도 했는데, 이는 나치에 대해 협력하겠다는 뜻이기보다는 오직 로켓 개발을 계속하겠다는 마음 때문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결국 그의 손에서 훗날 '보복병기 2호(V2)'라고 이름붙여진 로켓이 만들어져 연합군의 영토로 날아갔다.

 

  전쟁이 끝날 무렵, V2의 위력에 놀란 미국과 소련은 제각기 V2 개발자들을 빼내기 위한 첩보전에 돌입하였다. 당시 패망하고 있던 독일의 친위대(SS)에서는 로켓 개발과 관련한 자료를 모두 파기하고 개발자들도 처단할 계획을 세웠지만, 폰 브라운과 동료들은 무사히 빠져나가 미군에 합류하였다. (또 다른 동료들은 소련으로 넘어가 소련의 로켓 개발을 돕는다.)


  이번에야 말로 폰 브라운은 우주 여행을 위한 로켓 개발을 시도하고자 했지만, 한국 전쟁의 발발에 자극받은 미국은 그와 동료에게 핵탄두를 장착한 유도 미사일 개발을 지시했다.


  유도탄의 연구를 진행하면서도 폰 브라운은 우주 로켓 개발을 꿈꾸었지만, 독일 출신, 그것도 나치당 가입 경력이 있는 그에게 '우주 로켓 개발 1호'라는 영광을 안겨줄 생각이 없었던 미국에서는 그의 로켓 대신 해군에서 개발한 뱅가드 로켓을 사용하게 했다. 하지만, 뱅가드 로켓의 발사 준비가 제대로 진행되지 않는 사이 소련에서는 폰 브라운의 라이벌이라 할 수 있었던 세르게이 코롤료프의 지휘 아래 최초의 인공 위성, 스푸트니크를 쏘아 올리는데 성공했다.


  결국 초조해진 미국에서는 뱅가드 로켓을 즉시 쏘아올리도록 지시했지만, 뱅가드는 제대로 떠오르지도 못하고 폭발하여 미국 정부를 망신시키고 말았다. (당시 신문에서는 뱅가드를 조롱하는 뜻으로 Flopnik(플롭프니크, FLOP 주저앉다), Oopsnik (웁스니크, OOPS - 아이고!), Kaputnik (카푸트니크, Kaput - 망가진), Stayputnik(스테이푸트니크, Stay put - 머무르다.) 등의 표제가 실렸다.)

 


[ 뱅가드 로켓의 폭발. 그리하여 폰 브라운이 역사의 전면에 다시 등장한다. ] 

 

  뱅가드를 대신하여 바톤을 쥔 폰 브라운은 여러 기관을 합쳐 새롭게 탄생한 항공우주국(NASA)의 마셜 우주 비행 센터 소장이 되었고, 1958년 익스플로러 1호를 시작으로 하는 수많은 성과를 거두었다. 그가 개발한 전장 110m의 역사상 가장 강력한 힘을 가진 새턴V 로켓은 아폴로 우주선을 달 궤도까지 보내어 안착시켜 닐 암스트롱이 내딛은 '한 사람의 작은 발걸음'을 성공하는데 이바지했다.


  아폴로의 성공 이후 폰 브라운은 화성 로켓의 개발에 착수했지만, 아폴로 성공, 그리고 소련의 헛걸음이 계속되면서 더 이상 경쟁이 필요없게 된 미국에서는 아폴로 17호 이후의 모든 계획을 중단하기에 이른다. 실망을 감추지 못한 폰 브라운은 1972년 NASA를 떠나 독자적인 우주 개발을 위해 민간 회사인 페어차일드 항공 우주 회사에 기술 개발 부사장으로 들어갔다. 그러나 오래지 않아 신장암으로 쓰러졌고 결국 1977년 6월 16일 숨을 거두었다.

  그가 개발한 새턴 V는 1973년 미국의 우주 정거장 스카이 랩을 우주에 띄우는데 사용되었지만, 이후 사용이 중단되었고 지구 주변에만 겨우 오를 수 있는 우주 왕복선이 대신하기에 이른다.

  그후 NASA에서는 2010년에 퇴역할 예정인 우주 왕복선을 대신하여 강력한 아레스 로켓의 개발을 발표했지만, 그조차 사실상 중단되고 말았다. 결국 폰 브라운이 바랐던 누구나 자유롭게 우주를 여행할 수 있는, 그리고 우주에 머물러 생활할 수 있는 시대는 아직도 찾아오지 않고 있다. 근래에는 민간 회사들의 합류로 새로운 희망이 보이긴 하지만...


참고 - 미국의 우주 비행... 9년간의 공백기? 

posted by 별을 좋아하는 표도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