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 이야기 2016.11.09 17:10

미국 대선이 종식되었습니다.


참 충격적인 결말이지만, 이미 일어난건 어쩔 수 없죠.


중요한 것은 이 결말 이후입니다. 우리는 아직 몸과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았습니다.


[ 디트로이트의 현재. 기대하세요. 이제 세계 전역이 이렇게 바뀔 것입니다. ]



이에 대비하기 위한 작품을 소개해 봅니다.


- 소설 분야

1. 울

2. 더 로드

3. 루시퍼의 해머

4. 해변에서

5. 트리피드의 날

6. 핵전쟁 뒤 최후의 아이들

7. 최후의 날 그후


- 만화 분야

1. 생존게임

2. 드래곤 헤드

3. 브레이크 다운

4. 일본 침몰

5. 소년 표류 EX

6. 북두의 권

7. 모래돌이


- 영상 분야

1. 매드맥스

2. 나는 전설이다.

3. 그날 이후

4. 혹성 탈출

5. 뉴욕 탈출

6. 소년과 개

7. 설국 열차


- 게임 분야

1. 라스트 오브 어스

2. 스토커 트릴로지

3. 메트로 2033 시리즈

4. 폴아웃 시리즈

5. 웨이스트랜드 시리즈

6. 레이지

7. (아이 홀로 생존 게임을 진행하는...) 포켓몬스터.... 



그리고 무엇보다도..


Make America Great Again: The Trump Presidency


를 해 봅시다......-_-;;;;;;;;;;;;;;;;;;;;;;;;;;;;;;;;;;;;;;




posted by 별을 좋아하는 표도기
작가이야기 2015.03.01 22:40

  세계의 수많은 신화를 살펴보면, 인간은 신에 의해서 탄생되었고 이 세계에 존재하게 되었다. 절대적인 존재로서 신들은 인간을 만들어냈을 뿐만 아니라 그들의 삶을 마음대로 하게 되었다. 신에 대항하는 것은 용납되지 않았고, 세계의 수많은 전설 속에 그들의 슬픈 이야기들만이 창조주에 도전했던 이들의 슬픈 말로를 전해주고 있을 뿐...

  그렇지만 여기 한 가지 이야기가 있다. 신이 아닌 인간에 의해 탄생한 존재로서 그들의 창조주에 도전했던 용기 있는 이들의 이야기……. 그리고 이야기의 창조주로서 그들에게 의지를 불어넣은 사람의 이야기…….


SF 세계의 제페트 할아버지, 이시노모리 쇼타로(石ノ森章太郎)



이시노모리 쇼타로 일대기


  ‘가속 장치가 달린 만화가’, ‘사이보그의 창조주’, ‘초인전대물의 창시자’... 이시노모리 쇼타로는 참 다양한 이름으로 불린 일본을 대표하는 만화가 중 하나이다.

 1938년 1월 25일 미야기 현의 이시모리(그의 예명은 여기에서 나온 것으로 본명은 오노데라 쇼타로(小野寺章太郎)이다.)에서 태어난 그는 어릴 때부터 만화에 몰입하여 그야말로 적극적으로 뛰어들었던 지금으로 말하자면 오타쿠 소년이었다.

  아니, 단순히 자기 혼자 그리고 마는 것에 그치지 않고, 중학교 1학년 때 동네 친구들을 모아 [먹물 한 방울-墨汁一滴-]이라는 이름의 동인지를 만들기도 했고, 자신의 만화를 남들에게 보여주고 싶다는 마음을 억누르지 못하고 신문 등에 수없이 투고를 한 끝에 중학교 2학년 때는 “마이니치 중학생신문”에서 4컷 만화로 입선하기도 했을 정도.

  일찍부터 만화가로서의 가능성에 적극적으로 도전하던 그는 고교에 입학한 후에는 “만화 소년”에 투고한 동료들과 더불어 “동일본 만화 연구회”라는 모임을 만들고 역시 동인지 제작에 뛰어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러한 소문이 퍼진 덕분인지, 다음 해(1953년) 이미 [철완 아톰] 등을 통해 만화계에서 명성을 떨치고 있던 테즈카 오사무씨로부터 ‘일을 도와주었으면 좋겠다.’는 전보를 받고 그 즉시 학교를 휴학하고 도쿄로 진출, 문하생으로서 활동을 시작했다.(학교를 쉬고 만화가를 돕기 위해 뛰어간 오노데라 소년도 오노데라 소년이지만, 고등학생에게 도와달라고 연락을 한 테츠카씨도 역시 묘하다고 할지? 결국 둘 다 만화를 그리고 싶어 여념이 없는, 말 그대로 만화광(狂)이라고 할 것이다.)

  이듬해, 그는 “만화 소년 신년호”를 통해 [이급천사(二級天使)]라는 작품으로 연재를 개시. 고교 졸업도 하지 않은 상태로 프로로서의 데뷔에 성공했다.


[ 테즈카 오사무 캐릭터에 가까우면서도 독창성을 보여준 이급천사 (c) 石ノ森章太郎 ]

  56년에 고교를 졸업한 그는 그 즉시 다시 상경했고, 만화가로서의 생활을 시작했다. 특히, 두 번째로 옮겨간 숙소가 바로 테즈카 오사무를 중심으로 수많은 만화가들의 전국 시대가 펼쳐진 토키와장(トキワ荘). 그곳에서 그는 [불새 마타로]를 포함하여 수많은 작품을 탄생시켰지만, 같이 상경하여 생활을 돕던 누나를 잃는 비극을 겪기도 했다.

  테즈카 오사무 밑에서 활동하는 것은 그에게 큰 도움을 주었다. 1959년 그는 테즈카 오사무의 제안으로 토에이의 만화 영화 [서유기]의 제작에 참가했고, 이제껏 만화 밖에는 모르던 그가 영상이라는 새로운 가능성에 눈을 뜨게 된 것이다.

  1961년. 이시노모리 쇼타로는 해외여행이라는 새로운 체험을 갖게 되었다. 바로 슈에사의 취재 기자와 동반하여 시애틀의 “SF 컨벤션(세계SF대회)”에 참여한 것이다. 전세계 SF작가와 팬이 집결하는 이 행사가 그에게 어떤 역할로 다가왔는지는 알 수 없지만, 이날 이후 이시노모리씨의 작품 세계는 SF를 중심으로 돌아가기 시작한다.


  1963년 “스튜디오 제로”라는 애니메이션 회사를 공동 설립한 이시노모리 쇼타로는 다음해 테즈카씨의 중매로 결혼을 마치고, 바로 그 해(1964년), 자신의 대표작이자 일본 SF 만화를 상징하는 걸작, [사이보그 009(サイボーグ009)]를 탄생시켰다.


  일본 최초의 개조 초인 이야기라 할 수 있는 이 작품은, 무기상인 블랙 고스트라는 집단에 의해 탄생한 초인(병기)들을 주역으로 전쟁의 슬픔과 아픔을 충실하게 그리고 있으며, ‘세계를 좌우하는 무기상인’이라는 새로운 형식의 악당을 선보임으로서 깊은 인상을 주었다. 인간의 마음을 지니고 있지만, 전쟁 병기로서의 기계 몸을 지닌 사이보그들……. 그러한 기계 몸과 마음의 부조화로 인한 슬픔은 필립 k. 딕의 작품에 못지않게 일본의 사이버 펑크물에 영향을 주었다. (그만큼 수많은 팬들을 이끌기도 했지만 한편으로 난해하고 어두운 작품이었기에 몇 차례의 연재 중단을 겪어야 했는데, 결국 블랙 고스트와의 대결을 거쳐 괴물섬, 지하 제국, 그리고 마지막에서는 진정한 창조주인 신과의 대결에 돌입하는 부분까지 연재된 이래 미완으로 끝나 아쉬움을 남기기도 했다.)


[ 뮤턴트 사브. 이 작품을 시작으로 그의 세계는 초인들의 비극을 충실하게 다루게 된다. (c) 石ノ森章太郎 ]


  [사이보그 009]의 대 성공에 이어 이듬해(1965년) 소년 선데이에서 역시 어머니의 사고로 인해 초능력을 갖고 태어난 소년 사부의 활약을 그린 [뮤턴트 사부(ミュータントサブ)]라는 작품으로 그의 화려한 시대의 막이 올랐다. (이 작품은 단편으로 비정기 연재되면서도 꾸준히 계속된 [사이보그009]와 마찬가지로 이후에도 시리즈로 제작되었다.)


[ 환마대전. 당시로서는 드문, 공저 체제의 작품이었다. (c) 石ノ森章太郎 ]


  1967년. 소설사 히라이 카즈마사(平井和正)씨와 과거, 현재, 미래에 걸쳐서 전개 되는 요마와 인류의 대결을 그린 작품, 환마대전 외에도 여러 작품을 선보인 그는 1971년. 가면 라이더(仮面ライダー)를 통해 고지라, 울트라맨에 이은, 일본을 대표하는 변신 초인의 특촬물 시대를 여는데 이바지했다.



[ 40주년을 넘어... 지금도 라이더의 이야기는 계속된다. (c) 石ノ森章太郎 / 東映 ]


  [인조인간 키가이더](1972), [비밀 전대 고레인저(秘密戦隊ゴレンジャー)](1975) 등의 원작으로 다채로운 특촬물의 가능성을 선보인 그는 그 후에도 수많은 초인물로서 팬을 이끌었다.


[ 호텔. 이 작품으로 그는 일본 호텔 스쿨 교육 센터 평의원으로 취임했다. (c) 石ノ森章太郎 ]


  1980년 이후에는 상당한 명작으로 만화가 협회 만이 아니라 경제 협회에서도 인정받은 [호텔], [만화 일본 경제 입문] 등의 경제 만화를 선보였고, 1986년에 “이시노모리”로 개명한 후에는 일본 만화계의 발전을 위한 다양한 이벤트를 주최하고 협회를 발족하는 등 후진 양성 및 만화 산업의 성장에 많은 노력을 기울이기도 했다.(1997년 우리나라에서 열린 아시아 만화 대회에서 아카데미 대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그렇듯 마지막까지 만화의 가능성에 매진했던 그는 1998년 1월 28일. 도쿄 오차노미즈의 병원에서 영원한 잠에 빠져들었다. 그의 많은 활약을 기리는 뜻에서 그의 모든 작품에 대해 문부대신상을 비롯한 수많은 상이 수여되었고, 만화계에 대한 공헌을 기념하여 테즈카오사무 문화상 특별상을 수여했다.


  그렇게 그는 자신이 꿈꾸던 미래를 향해 여행을 떠났지만, 그를 사랑하는 수많은 팬들은 관심을 지금도 사라지지 않고 있다.

  지금도 많은 이에게 기억되고 있는 이시노모리 쇼타로. 그를 기념하는 뜻에서 고향 나카다쵸에는 “이시노모리 쇼타로 고향 기념관”이 세워졌고, 미야기현에서 “이시노모리 만화관”을 개설하여 많은 관심을 끌고 있다.

  지금도 “이시노모리팬”을 자처하는 여러 작가들에 의해 그의 작품이 리메이크되고 있는 가운데, 애니메이션 외에도 가면라이더 시리즈를 비롯한 특촬물 시리즈가 꾸준히 제작되어 그의 기억을 되살려주고 있다.


이시노모리 프로 공식사이트 : http://www.ishimoripro.com

이시노모리 만화관 사이트 : http://www.man-bow.com/manga


[ 그의 고향 이시노모리에서는 거리 곳곳에서 수많은 캐릭터를 만날 수 있다. ]


* 토키와장 - 1953년 테즈카 오사무의 입주를 시작으로 생겨난 일종의 인재 양성소. 이시노모리 쇼타로 외에도 [오바케Q타로]의 아카즈카 후지오, [도라에몽]의 후지코 후지오 등이 함께 입주하여 활동한 곳으로 유명하다.(입주하지 않은 이들도 때때로 그곳에 들러 그룹으로 활동했다.) 이곳에는 수많은 라이벌이 존재하고 있었으며 즐거운 이야기 속에서도 원고에 대한 정열을 서로 공유할 수 있었다고 한다. 게다가 때로는 서로 아이디어를 공유하기도 하고 나아가 함께 작품을 만들기도 하는 등 협력 체제 속에 수많은 명작을 남기고 있다. 토키와장 자체는 오래 전에 철거되어 사라진 작은 아파트에 지나지 않지만, 최근에도 “디지털 토키와장” 등의 프로젝트명으로 등장할 정도로 일본 만화계에선 중요한 위치를 점하고 있다.


SF 속에서 살아갔던 만화가


[ 009. 그는 아홉 명의 사이보그 중 최강을 자랑한다. (c) 石ノ森章太郎 ]


  이시노모리 쇼타로의 작품 [사이보그 009]의 주역인 사이보그 009(제로제로나인)은 다른 00 사이보그들의 장점을 함께 융합하고 있다는 설정을 갖고 있지만, 사실 유별나게 뛰어난 능력을 보유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는 001처럼 초능력을 갖고 있는 것도 아니고, 002처럼 하늘을 맘대로 날거나 003처럼 귀와 눈이 특출하게 좋은 것도 아니다. 물론 온 몸이 무기로 되어 있지도 않고(004), 힘도 유별나게 센 것은 아니며(005), 불을 뿜거나(006), 변신을 할 수도 없다.(007) 물론, 물속에서 숨이 막힐 일은 없지만, 물고기처럼 활약하는 것(008)도 불가능.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00 사이보그 중 최고로 군림할 수 있는 것은 그에게 남들과는 다른 한 가지 능력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가속 장치’라 불리는 그 능력은 009 자신을 남들보다 수 십 배 빠른 속도로 움직이게 해 준다. 남들 눈에는 그야말로 사라진 것처럼 보이게 되는 그 힘은 반대로 009의 눈에 남들이 정지된 것처럼 보이게 만들고, 이 상태에서는 그 누구도 009를 대항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상대 역시 가속 장치를 달고 있는 경우가 아니라면.)

  00 사이보그로 테스트를 마친 블랙 고스트는 그 후 가속 장치를 단 적수들을 꾸준히 그들에게 보내오는데, 009 만이 그들을 상대할 수 있다는 것은 말할 필요가 없는 것. 주역인 그의 활약으로 유명해진 가속장치는 이후 수많은 작품에 영향을 주어 오마주와 패러디가 양산되기에 이른다... 갑작스레 이 이야기를 꺼낸 것은, 도키와장에서 일할 당시(아니 그 이후에도) 이시노모리 쇼타로씨에게 붙어 다니는 별명이 바로 그것이었기 때문이다.


  “가속 장치가 달린 만화가”


  그 별명 그대로 그는 남들은 상상할 수 없는 속도로 수많은 작품을 양산하고 엄청난 업적을 이루어 놓았다.

  1960~70년대라는 짧은 시간 동안 그가 이룬 일은 그야말로 한 두 가지 아니다. 이를테면 [가면 라이더]의 원작을 쓰고 있을 당시, 그는 다른 잡지에서 [이나즈맨]이라는 작품을 연재하고 있었고, 동시에 [인조인간 키카이다]를 연재하고 있기도 했던 것이다.(그로서는 [이나즈맨]에 신경쓰느라 [키카이더]는 문하생들에게 상당 부분 맡기곤 했다.)

  이렇듯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활동이 가능하게 된 것은 어째서일까? 물론 그가 미래에서 온 존재이고 진정으로 ‘가속 장치’를 갖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보다는 그가 진정한 만화광이고 그만큼 창작 욕구로 가득 차 있기 때문이 아닐까? 그리고 이시노모리 팬을 자처하는 수많은 이들은 바로 그의 그런 창작 욕구에 이끌린 것이 아닐까 한다.




창조주에 도전하는 존재들, 초인들의 세계

[ 이시노모리의 여러 캐릭터. 초인없이 그의 작품을 논할 수 없다.  (c) 石ノ森章太郎 ]


  [철인 28호], [바벨2세] 등으로 잘 알려진 만화가 요코야마 미츠데루와 마찬가지로 이시노모리 쇼타로도 초인을 주역으로 하는 작품들이 많지만, 그의 작품은 능력을 갖고 태어나거나 혹은 닌자처럼 수련에 의해서 초인으로 성장/변화하는 요코야마의 작품과는 달리, 다른 이들에 의해 강제적으로 힘이 주어지는 사례가 많다.

  말하자면 그의 작품에 등장하는 초인들은 누군가에 의해 창조되었다는 것. 그것이 사이보그인지 초능력자인지, 아니면 개조 인간인지는 상관없이 그들은 특정한 목적을 지닌 누군가에 의해 만들어져 새로운 생을 얻게 된다.

  하지만, 인간이 신에게 생을 받았음에도 신의 뜻을 부정하고 거절하는 경우가 있듯, 이시노모리의 작품에서 등장하는 ‘창조된 초인’들은 그들을 만들어준 누군가를 부정하고 저항한다. 그들 자신이 인간으로서의 마음을 갖고 있기 때문에…….

  그의 작품 속에서 선한 주역과 악당은 결코 동등한 존재가 아니다. 한쪽은 창조주이고 다른 쪽은 창조된 존재. 말하자면, 그들은 자신을 만들어준 창조주를 향해 도전장을 던진 것이다. 당연히 창조주는 주역에 비해 압도적으로 강할 수밖에 없지만, 그들은 저항을 포기하지 않는다. 

[ 이시노모리 작품에선 가면 라이더 시리즈를 빼놓을 수는 없는 법. (c) Masato Hayase ]


[ 이시노모리씨가 없었다면, 이런 히로쇼도 존재하지 않았을지 모른다. ]


  [사이보그 009]를 시작으로 [가면라이더]를 통해서 꾸준히 제작된 이들 초인 시리즈는 인간의 마음을 갖고 있기에 자신을 만든 창조주의 명령에 따르지 않는 주역들. 그리고 인간이면서도 인간이 아니게 된 그들의 괴로움을 충실하게 표출하고 있다.


  악과 대결하기 위해서 그 힘을 필요로 하지만, 그 힘은 동시에 자신이 인간이 아니라는 것을 의미하기에 그들의 괴로움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 초기의 009. 지금과는 다른 외형을 갖고 있다. ]


  뿐만 아니라, 인간을 인간이 아니게 만든 그들 조직. 그들에 의해서 펼쳐지는 미래에는 희망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이시노모리씨는 소개하고 있다. [사이보그009]에서 펼쳐지는 블랙 고스트와의 최종 대결에서 그들은 인간이 존재하는 한 자신들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을 이야기해 준다. 블랙 고스트의 존재에 상관없이 세계에서 전쟁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블랙고스트의 리더라고 생각되었던 ‘스카르’조차 단지 누군가의 뜻을 대변하는 인형에 지나지 않을 뿐. 그리고 슬픈 운명은 그렇게 계속된다. 선을 추구하는 누군가의 희생을 밟고 일어서면서……. 하지만, 그런 희생은 또 다른 희망을 불러온다.

  블랙 고스트의 마신상을 파괴한 009. 그러나 그를 구하고자 했던 002의 힘도 완전히 빠져 버리고 두 사람은 지상을 향해 떨어져 내려간다. 마치 유성처럼 빛을 발하면서…….

  먼 곳에서 또 다른 누군가가 그들을 바라보며 소원을 빈다.


  “세계가 늘 평화롭기를…….”


  인간이 존재하는 한 악은 항상 존재할 것이다. 그러나 동시에 인간의 마음은 희생을 통해 새로운 희망을 불러오는 것이다. 그것이 아무리 작고 초라한 것이라 해도…….



피노키오의 꿈, 키가이더의 전설


[ 나무 인형 피노키오. 그는 생명을 갖고 움직이게 되었다. ]


  수많은 작품이 그렇듯, 이시노모리 쇼타로의 작품도 권선징악적인 면을 갖고 있다. 정의의 용사 가면라이더는 악의 조직을 물리치고, 사이보그009도 블랙고스트와 대결한다. 하지만, 그의 작품은 세상이 단순히 선과 악의 대결로만 이루어진 것이 아님을 잘 보여준다.

  수없이 리메이크되고 인기를 끌었던 이시노모리씨의 작품 중에 당초 일본에서는 그다지 눈에 띄지 않았던 작품(아니 정확히 말하면 이시노모리씨 자신이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아, 중요한 장면을 빼고는 모두 어시들에게 맡겨서 작업하게 했던 작품)이 있다.


  [인조인간 키카이더(人造人間キカイダー)]라는 제목의 이 작품은 1972년 특촬물로 제작되었는데 인조인간이라는 말을 쓰고 있지만, 사실 그는 사이보그가 아닌 로봇. 키카이더(일본어로 '기계다')라는 말 그대로 기계로 만들어진 존재이다.(그 밖에도 적의 로봇에는 ‘하카이마(파괴마)’, ‘비진다(미인이다)’ 등이 등장한다.)


[ 기형적인 외형의 키가이더. 그의 작품은 이런 느낌의 캐릭터가 넘쳐난다. (c) 石ノ森章太郎 ]


  가면 라이더나 사이보그009가 그렇듯 세상을 정복하려는 악의 조직에 의해서 탄생되었지만, 그는 인간이 아닌 로봇이기에 마음이 없이 명령에 충실하게 따른다. 다시 말해 악당이 내린 나쁜 명령에도 순수하게 따르며 파괴활동을 하도록 제작되었다. 그러나 개발 당시 키가이더는 피노키오에서 따온 '제미니'란 이름의 양심 회로라는 장치를 내장하게 되었고 나쁜 명령을 듣지 않게 되었다.

  말하자면 아이작 아시모프의 로봇 3원칙처럼 인간을 해치거나 하는 명령에는 따르지 않는 제한을 걸어둔 것이다. 하지만, 그가 가진 양심 회로는 완전한 것이 아니었다. 사고로 죽은 자신의 아들을 대신하여 지로(키가이더02)라는 이름의 그 로봇을 개발한 코묘지 박사는 결국 양심 회로를 완벽하게 만들지 못하고 살해되었기 때문이다. 그 스스로가 악당에게 속았다는 것을 깨닫고 그에게 탈출을 지시하고 난 후…….


[ 기타를 맨 소년. 인간에 대한 이해가 없는 채로 그는 자신의 행동에 괴로워한다. (c) 石ノ森章太郎/Mad House ]


[ 당신은 단순한 기계에요! 자신을 죽이려 하는 지로에게 미츠코는 이렇게 외친다. (c) 石ノ森章太郎/Mad House ]


  명령에 충실한 로봇으로서의 키가이더. 그러나 불완전한 양심 회로는 그를 혼란에 빠뜨렸고, 적의 로봇을 조종하는 명령(전파를 발생시키는 피리)이 들어올 때 그는 자신의 상황을 추스르지 못하고 그 명령에 따라 주변의 사람들을 해치려 한다.

  불완전한 마음을 가진 인형도 아니고 인간도 아닌 존재. 그렇듯 기묘한 상황은 로봇으로서의 그의 외형을 매우 추하게 바꾸고 말았다. 인간도 아니고 기계로 아닌 존재로서…….


  “착한 애로 있으면, 사람이 될 수 있다.”


  피노키오의 전설에 따르면 선한 일을 행함으로서 그는 사람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양심 회로에 따라 행동하는 것만으로는 인간 같은 행동은 할 수 없다. 단지 회로의 명령에 따라 움직일 뿐…….


[ 힘은 책임을 필요로 한다. 막대한 힘으로 키가이더는 적을 물리친다. (c) 石ノ森章太郎/Mad House ]


  작은 몸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힘을 갖고 활동하는 키가이더. 박사의 딸 미츠코를 구하기도 했지만 그럼에도 자신의 존재에 대해 의문을 풀지 못한다. 그리고, 자신과 같은 시스템으로 개발되었지만 양심 회로를 갖지 않은 형제, 이치로(키가이더01)와 제로(키가이더00)를 만나 악의 조직과 싸우다, 중과부적의 상황에서 적에게 사로잡힌 채 ‘엣사’라고 불리는 악의 회로를 장치하게 된다. 그것은 양심 회로와는 반대로 사악한 행동을 하게 만드는 회로. 더 정확히는 사악한 조직의 명령을 충실하게 따르는 시스템이었다. 엣사를 내장하고 붙들린 지로. 그는 역시 엣사를 내장한 과거의 동료 비진다를 속여서 탈출한다. 그리고 그는 가차 없이 자신의 형제들인 이치로와 제로를, 그리고 인간인 기르 교수를 살해한다.


[ 동생이라 불렀던 키카이더(지로)를 공격하는 이치로. 그는 단지 명령을 따를 뿐인 존재이다.(c) 石ノ森章太郎/Mad House ]


  불완전한 양심 회로의 제약에서 벗어나 보다 큰 선을 위해 거짓말도 할 수 있고 한편으로 형제도 살해할 수 있게 된 지로. 그는 기계의 마음에서 벗어나 인간의 그것을 갖게 되었다. 그와 맞바꾸어 죄책감이라는 무거운 짐, 양심의 싸움이라는 원죄를 짊어지면서...


  "나는, 나는 이걸로... 인간과 똑같게 되었다."

  "하지만 그 대신에 나는... 영원히 악과 양심의 마음의 싸움으로 괴로워하겠지."


  아이작 아시모프의 로봇 공학 3원칙에선 인간을 살해하지 않고 인간의 명령을 듣는 것이 '선'이라고 정의한다. 테즈카 오사무는 아톰에게 마음이라는 것을 주어 인간의 친구가 되게 해 주었다.


  하지만 아이작 아시모프의 로봇도 테즈카 오사무의 아톰도, 결국 인간의 설계, 창조주의 의지에서 벗어난 행동을 하는 것은 아니다. 단지 주어진 명령에 충실하게 행동한 결과 의지를 가진 것처럼 보일 뿐.


  하지만 피노키오가 제미니(양심)의 말에 무조건 따르지 않고 자신의 의지로서 행동한 결과 인간이 되었듯이, 키카이더는 주어진 명령, 제미니와 엣사 어느 쪽에도 따르지 않고 자신의 의지로서 행동함으로써 인간이 된다.

  사이보그 009나 가면라이더와는 달리 인간에 의해 모든 것이 만들어졌지만, 인간처럼 마음을 갖고 자신의 의지로 행동하게 된 키카이더. 그 결과 로봇임에도 동료, 형제를 속이고 죽일 수 있는... 인간으로서 다시 태어나게 된 존재. 그리고 그로 인해서 악을 증오하는 마음으로 더욱 강해져서 싸울 수 있게 되었지만, 그로 인해 선과 악의, 마음의 틈새에서 영원히 고뇌하며 괴로워하게 된 존재...

  그런 키카이더의 모습은 이시노모리 쇼타로 작품 속 '인간'의 모습을 잘 보여준다.

  설사 누군가에 의해 힘을 얻고 만들어졌을지는 모르지만, 결국 자신의 의지로서 길을 선택하고 나아가는 인간의 모습. 누군가의 명령에 의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결정으로 길을 선택했기에 고뇌하고 괴로워하며 때로는 후회하는 인간의 모습.
  그것은 키카이더의 외형처럼 추하게 보일지도 모르지만, 그 같은 추한 모습에야 말로 인간의 진실이 담겨 있다는 것을, 그런 추한 현실에 마주하여 고통과 고뇌 속에서도 올바른 길을 선택함으로써 비로써 진정한 인간으로 태어난다는 것을 이시노모리 쇼타로는 보여준다. 악과 선이 아닌, 악과 양심... 결국 내 마음에 따르지 않는 것은 그 결과가 어떻든 '악'이라는 것을...

  ‘이렇게 피노키오는 인간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피노키오는 인간이 되어서 정말로 행복해진 걸까요?’

  누군가의 뜻에 따르면 결코 괴롭지 않겠지만, 그럼에도 '악(순종)'과 '양심(의지)'사이에 고뇌하며 양심을 따르고자 노력하는 것. 그것이야말로 행복하지 않고 괴롭더라도 결국은 걸어가야만 하는 길... 가시밭길로 가득하지만 묵묵히 걸어야 하는, '인간의 길'이라는 것을...


 

[ 이시노모리 쇼타로의 주제 의식을 잘 보여주는 '키카이더 01 애니메이션' ]


 (* [키카이다]는 특촬물로 제작되어 최초 방영 당시 그다지 큰 인기를 끌지 못했지만, 바다 건너 하와이에서는 지금도 주제가가 불리어질 정도로 엄청난 인기(2001년 재방영시 시청율 70%)를 끌었으며, 인간적인 괴로움을 가진 로봇이라는 독특한 개념은 근래에 들어 다시금 부각되며, 만화, 애니메이션으로 리메이크되고 2014년엔 실사 영화로도 제작되었다.)


[ 2014년에 제작된 키카이더 REBOOT. 작품 자체는 별로 호평받지 못했지만, 추한 외형에서도 정의를 위해 행동하는 그 모습이야 말로 이시노모리 작품의 성격을 잘 보여준다. (c) 石ノ森章太郎 / 東映 ]


게임과 영상으로서의 이시노모리 시리즈


[ 슈퍼 패미콤으로 제작된 사이보그 009 ]  


  전 세계에 수많은 이시노모리 팬이 존재하고 있기에, 그리고 그 자신이 만화가만이 아니라 영화감독도 되기를 바랐기 때문에 그의 작품은 상당수가 영상으로서 재탄생되곤 했다. 그 중에서 특히 애니메이션보다는 특촬물이나 드라마, 다시 말해 실화로 제작된 경우가 많은 편.(특촬물에 국한하지 않고 일반적인 드라마도 많다.)


[ 가면라이더의 게임 시리즈는 무수하게 발매되고 있다. ]


[ 실사에 가까운 느낌 그대로. 가면라이더의 대결이 시작된다.  ]


  [가면라이더]를 시작으로 [키카이다], [고레인저] 등 수많은 특촬물이 제작되었고, 그 중에서도 [가면라이더] 시리즈는 일본의 특촬물을 대표하는 인기 시리즈로서 지금도 꾸준하게 제작되고 있을 정도. 그와 동시에 가면 라이더를 주역으로 한 게임도 꾸준하게 제작되고 있다. PS2에 이르러 [가면라이더 히비키], [파이즈], [555(고고고)] 등이 계속 선보였고, PS3, PS4에 이르기까지 [가면라이더] 게임 시리즈는 계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가면라이더 시리즈의 게임은 매우 다양하지만, 그들 대부분은 실사 분위기로서 가면라이더와 개조 인간이 싸우는 격투 대전 게임으로서 연출된다. 그 유명한 라이더킥을 비롯하여 수많은 필살기들이 난무하고 다채로운 시점으로 변화된 연출이 전개되기도…….

  어디까지나 특촬물이라는 분위기에 맞추어 연출되는 이들 게임은 격투 게임으로서 [철권]이나 [버추어파이터즈] 등의 작품 정도의 완성도는 없지만, 가면라이더의 팬들에게는 멋진 작품으로서 기대할만 하다.

  가면라이더 시리즈 외에 이시노모리씨의 작품을 바탕으로 한 게임은, 대부분 슈퍼패미콤 이전의 고전 게임으로서만 존재한다. 사이보그 009 등이 바로 그것. 근래에는 이시노모리 작품의 리메이크와 함께 리메이크 만화와 애니, 만화, 게임, 영화 등이 꾸준히 나오는 만큼 앞으로도 이시노모리의 세계는 더욱 넓어질 것으로 생각된다.


* 이시노모리 쇼타로 작품집


  많다. 너무 많다……. 직접 만든 작품만으로 3자리를 가볍게 뛰어넘고 관련 작품을 따지면 4자리에 이른다는 테즈카 오사무나 요코야마 미츠데루에 비길 정도는 아닐지 모르지만, “가속 장치의 소유자”로서 이시노모리 쇼타로는 오리지날의 장편만으로도 너무도 많은 작품을 선보이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지금 이 순간에도 제작되고 또 만들어지고 있다. 때문에 여기서는 만화, 애니 등 극히 일부만을 소개해 본다.(아이들과 어른용을 포함 드라마 종류만도 수 십 편에 달하지만, 여기서는 특촬물 중에서도 일부 만 소개해 본다.)


1. 만화

이급천사(二級天使) - 1954. 연재 데뷔작.

괴걸 하리마오(怪傑ハリマオ) - 1960. 소설 원작의 만화화.

사루토비 엣짱(おかしなあの子さるとびエッちゃん) - 1964. 소녀 개그 만화.(닌자물)

사이보그 009(サイボーグ009) - 1964. 그 후 시리즈 다수.

뮤턴트 사부(ミュータントサブ) - 1965. 그 후 시리즈 다수.

사부와 이치토리모노히카에(佐武と市捕物控) - 1966. 검객물.

환마대전(幻魔大戦) - 1967. 

스카르맨(スカルマン) - 1970. 1998년 시마모토 카츠히코씨에 의해 속편 출간.

가면라이더(仮面ライダー ) - 1971. 특촬물의 만화판으로 출간.

변신닌자 아라시(変身忍者 嵐) - 1972. 

인조인간 키카이다(人造人間キカイダー) - 1972. 특촬물의 만화판으로 출간.

로봇형사(ロボット刑事) - 1973.

이나즈만(イナズマン) - 1973.

힘내라!! 로보콘(がんばれ!!ロボコン) - 1974

가면라이더 아마존(仮面ライダーアマゾン) - 1974

철면 크로스(鉄面クロス) - 1974

비밀전개 고레이저(秘密戦隊ゴレンジャー) - 1975

길가메쉬(ギルガメッシュ) - 1976.

마법세계의 쥰(魔法世界のジュン) - 1977

킥쿤타쿤(チックンタックン) - 1984

호텔(HOTEL) - 1984

만화 일본경제입문(マンガ 日本経済入門) - 1986

만화 초전도 입문(マンガ・超電導入門) - 1987

가면라이더 블랙(仮面ライダーBlack) - 1987

이시노모리 쇼타로의 만화가 입문(石ノ森章太郎のマンガ家入門) - 1988

만화 일본의 역사(マンガ日本の歴史) - 1989


2. 애니

사부와 이치토리모노히카에(佐武と市捕物控) - 1968. 총52화 흑백판.

사이보그 009(サイボーグ009) - 1968. 흑백판

사이보그 009(サイボーグ009) - 1979. 컬러판

사루토비 엣짱(さるとびエッちゃん) - 1971.

인조인간 키카이다(人造人間キカイダー) - 2000 총 13화

인조인간 키카이다01(人造人間キカイダー01) - 2000. 총 4화

사이보그 009(サイボーグ009) - 2001. 총 51화

환마대전-신화전야의 장-(幻魔大戦-神話前夜の章-) - 2002. 

길가메쉬(ギルガメッシュ) - 2003. 26화


[ [공각기동대]로 잘 알려진 Production I.G.에서 2012년에 제작한 009 Re:Cyborg. 작품은 꽤 괜찮았지만, 이시노모리 스타일과 너무 다른 분위기가 어색했다. (c) 石ノ森章太郎 / Production I.G. ]



3. 드라마

사부와 이치토리모노히카에(佐武と市捕物控) - 1966. 

가면 라이더(仮面ライダー) - 1971~1973. 98화

인조인간 키카이다(人造人間キカイダー) - 1972~1973. 43화

이나즈만(イナズマン) - 1973~1974. 25화 

힘내라!! 로보콘(がんばれ!!ロボコン) - 1974~1977. 118화

비밀 전대 고레인저(秘密戦隊ゴレンジャー) - 1975~1977. 84화

쟈카 전격대(ジャッカー電撃隊) - 1977. 35화

성운가면 머신맨(星雲仮面マシンマン) - 1984. 36화

가면 라이더 블랙(仮面ライダーBLACK) - 1987~1988. 51화

보이스랙거(ボイスラッガー) - 1999. 12화

가면라이더 아키토(仮面ライダー アギト) - 2000~2001. 51화

가면라이더 블레이드(仮面ライダー剣) - 2004~2005. 49화

가면라이더 카부토(仮面ライダーカブト) - 2006. 현재 방송 중


[ 아이들을 위한 특촬물, 힘내라 로보콘. 이런 것도 나쁘지는 않겠지?  (c) 石ノ森章太郎 / 東映 ]


posted by 별을 좋아하는 표도기
SF 이야기 2014.12.23 03:48

  일본의 만화가이자 일명 '만화의 신'인 테즈카 오사무는 다양한 작품으로 많은 이에게 사랑받았으며, 많은 이에게 영향을 주었습니다만, 그 중에서도 그가 미친 큰 영향은 바로 "만화 속의 전쟁에서 사람이 죽는 것"이었다고 생각합니다.


  테즈카 오사무가 등장하기 전, 특히 전쟁 당시의 일본 만화에서는 다양한 형태의 전쟁 만화가 소개되었는데, 그 중 대부분은 총알을 맞은 병사들이 "아프다"라고 외칠 뿐 죽지 않으며, 폭탄이 터져도 사람이 날아가기만 할 뿐 얼굴이 약간 그을린채 멀쩡하게 일어나는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전쟁은 '사람을 죽이는 대량 학살'이라는 것을 고의적으로든 아니든 감추고 있었던 것이지요.


  하지만 전쟁을 직접 겪었던 테즈카 오사무는 달랐습니다. 그는 습작 시절부터 전쟁으로 주인공이 죽는 장면을 넣고, 불타오르는 거리와 시체를 보여주곤 했습니다. 비록 그의 그림은 과장된 모습으로 만화체였지만, 전쟁이 얼마나 끔찍한 것이며 전쟁이 어떤 결과를 낳는지를 잘 보여주었던 것입니다.


  테즈카 오사무 이래 많은 만화가는 전쟁의 고통과 슬픔을 묘사하고자 노력했습니다. 무기 상인을 악당으로 등장시킨 이시노모리 쇼타로가 있었고, 로봇에게 무기를 들리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하며 무기를 갖지 않은 로봇 철인 28호를 등장시킨 요코야마 미츠데루가 있었습니다. 폭력의 미학을 보여주는 듯 하면서도 처참한 살육 장면으로 충격을 안겨준 나가이 고 같은 이들도 있었지요.


  하지만 그 무엇보다도 충격적인 반 전쟁적인 이야기는 바로 애니메이션에서 등장했습니다.


  바로 테즈카 오사무의 만화를 원작으로 한 애니메이션 "바다의 트리톤"이었습니다.



  당시는 아직 신인이라고 할 수 있었던 토미노 요시유키의 첫 감독 작품이었던 이 애니메이션은, 바다를 무대로 '악당'인 포세이돈 족과 맞서 싸우는 트리톤족의 후예 '트리톤'을 주역으로 한 소년 활극이었습니다. 1972년에 방송된 이 작품은 엄청난 인기를 끌지는 못했지만, 아이들만이 아니라 어른들도 즐겨보았고, 심지어는 여성들도 즐겁게 본 작품이었습니다.


  회를 거듭할수록 성장하는 트리톤의 모습에 시청자들은 열광하였고 그를 응원하였습니다.


  그리고 시리즈 마지막회인 9월 30일. 시청자들은 드디어 트리톤이 포세이돈족의 본거지를 쳐들어가는 모습을 보며 기대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결코 그들의 기대대로 되지 않았습니다. 토미노 요시유키 감독이 남겨둔(원작에도 없고, 본래의 각본과도 달라서 토미노 감독 홀로 몰래 준비했던) 엄청난 반전이 기다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제껏 싸워온 포세이돈족. 사실은 악당이라고 생각했던 그들은 본래 아틀란티스인들에 의해 포세이돈에게 바쳐친 제물의 생존자들이었으며, 트리톤족은 얼마 안 남은 아틀란티스인들이 포세이돈족에게 복수하기 위해서 만든 생체병기였던 것입니다. 포세이돈족이 트리톤족을 학살한 것은 바로 자기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였던 것입니다.

  

  그리고 트리톤은 결국 아틀란티스인들의 뜻에 따라 포세이돈족을 멸망시키고 만 것이지요. 수없이 널려있는 포세이돈족의 시체... 이제껏 트리톤을 응원하며 악당을 물리칠 것을 기대했던 시청자들에게는 그야말로 충격의 한 장면이었습니다. 결국 복수의 연쇄는 그치고 말았지만, 이제까지 트리톤을 응원한 시청자들은 거대한 대학살의 응원자이자, 대학살의 목격자가 되고 만 것이지요.



  훗날, 군국주의적 색채를 지니고 있으면서도 후반에서는 역시 전쟁의 처참함과 끔찍함을 잘 보여주었던 "우주전함 야마토", 그리고 대놓고 전쟁터에서 매몰되어 버리는 인간성을 강조했던 "기동전사 건담"이 성공하면서, 이 작품 역시 재평가되었고 극장판으로 선보이게 됩니다. 그리고 139분으로 편집된 극장판에서 그 충격적인 결말의 마지막 편은 거의 모든 장면이 그대로 반영되기에 이릅니다. 그리고 이 마지막 에피소드는 그후 많은 이에게 회자되면서 일본의 만화와 애니메이션 흐름에 변화를 가져옵니다.



  전쟁을 그린 작품 속에서 전쟁을 보여주고, 폭력을 보여주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그리고 군인을 멋지게 그리거나 전쟁 영웅을 부각할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설사 그렇다고 해도 전쟁을 아름답게 느끼게 하거나, 폭력이 정의로운 것이라고 생각하게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봅니다.정말로 좋은 작품이라면, 전쟁은 무자비한 것이며, 그 결과가 어떤 것인지를 느끼게 함으로써 전쟁과 폭력의 문제점을 보여주는 것이 마땅하다고 봅니다.



  SF에는 다양한 관점이 들어갈 수 있습니다. 그 중에는 물론 불가피한 무력을 옹호하는 관점이 존재할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설사 그렇다고 해도 정의로 무력을 아름답게 칠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보여줄 필요는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상의 차이로 인한 대립이 있다고 해도 그 상황에서 어떻게든 해결책을 찾아나서는 것이야 말로 가장 인간적인, 아니 인도적인 모습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이번에 판타지 세계를 무대로 자위대가 활약하는 소설, "게이트"가 애니메이션화된다고 합니다. 어느날 갑자기 긴자에 생겨난 차원의 문을 넘어 판타지 세계로 간 자위대가 그 세계에서 활약하는 내용을 소재로 한 이 작품은 차원 이동에 의한 '다른 세계 모험물' 중에서 비교적 완성도가 높은 작품으로 눈길을 끌었고, 코믹하면서도 사실적인 밀리터리 만화를 그리는 사오 사토루에 의해 만화화됨으로서 호평받았던 만큼,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어지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정의가 있다면 폭력은 올바른 것'이라는 인식을 가진 이들이 넘쳐나고, '정의를 위해선 고문조차 문제없다.'라는 식으로 생각하는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이 작품이 더 대중적인 애니로서 제작되는 건 조금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결코 일본의 자위대가 주역이기 때문에 하는 이야기가 아님을 기억해 주십시오.)


  혹자들은 작품의 완성도만 괜찮으면 좋다고 말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나도 전쟁터에 나가고 싶어!"라며 좀이 쑤시듯 외치는 병사들을 멋지다는 듯 표현하며, '저들이 침공해오니 이정도는 당연하지'라는 듯이 수십만 병력을 마치 빗자루로 쓸듯이 가차없이 학살하고도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며, 일 개인의 잘못을 이유로 상대방의 영토에 침공하여 의회를 폭격하는 것이 당연한 듯이 행동하는 작품이 단순히 '재미있으니까'라는 이유로 옹호되어야 한다고는 보지 않습니다.


  내년에 애니메이션으로 나올 이 작품을 사람들이 찾아보는 것과는 별개로, 그 작품 내부의 모습이 정말로 비정상적이며, 인도적이지 않다는 것을 한번쯤은 생각해 주면 좋겠습니다.


  전쟁이라는 것이 결코 아름다운 것이 아니며, 폭력은 그 어떤 정의를 내세워도 올바른 것이 아니라는것을 생각하지 못한다면, "정의를 위해서"라면 핵폭탄의 스위치를 누르는 일조차 당연시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지극히 좋지 못한 미래를 우리에게 안겨주겠지요.


  폭력의 미학을 내세운 작품을 즐기는 것은 좋습니다. 가공의 이야기, 허구의 이야기, 만들어진 이야기로서 말이지요. 하지만 무엇을 보듯 우리 자신의 마음 속에는 '과연 올바른 것이 무엇인가?'라는 견해가 남아 있어야 함을 기억해주시기 바랍니다.



  그런 점에서 "바다의 트리톤"을 극장판 애니메이션으로 보는 것도 좋을 것입니다. 30년도 전에 제작된 작품이지만, 이건 지금 보아도 충분히 완성도 높고 재미있는 작품이니까요.


  다만, 이 작품을 볼때는 주인공인 트리톤의 관점에서만 그를 응원하지 말고, 생존을 위해 그에 맞서야만 하는 포세이돈족의 입장도 한번 상상해 보시길 권합니다.


  "상상"이야 말로 SF가 우리에게 전해주는 가장 훌륭한 가능성이며, 우리 인류가 이만큼 발전해온 원동력이자, 우리 인류가 이후에도 생존하기 위해 필요한 가장 중요한 특성이니까요.

posted by 별을 좋아하는 표도기
SF&판타지도서관 2014.08.15 21:15

SF&판타지 도서관에 있는 책들을 정리해 보고 있습니다. 첫번째로 '스페이스 오딧세이~우주로의 꿈과 일상~'.



우주를 향한 여정과 일상을 다룬 작품을 중심으로 우주 전쟁과 일부 스페이스 오페라 작품은 제외해서 정리했지요.


한국에도 '디오티마' 같은 명작이 있지만, 한국 작품은 따로 정리하고요. 여기에는 일단 일본의 만화만으로 한정했습니다.


앞에서부터 


트윈 스피카, 패스포트 블루, 우주형제, 문라이트 마일, 극한의 별, 수혹성 연대기, 플라네테스, 세계의 암호는 물, 2001년 야화와 스타더스트 메모리즈, 문 로스트, 아리아(아쿠아), 카우보이 비밥, YAT 우주여행, 별의 목소리, 우주함대 제인, 미싱 게이트, 은하철도의 밤, 은하철도 999....


은하철도의 밤은 판타지/동화이지만, 일단 함께 배치해 두었죠. 은하철도 999에 영감을 준 작품으로서.



생각보다 많으면서도 한편으로 뭔가 부족하다는 느낌도 있어요. 좀 더 추가하고 싶은데 혹시라도 아는 작품이 있다면 추천해 주세요. 물론 한국에 번역되어 나온 작품이 좋습니다.


SF&판타지 도서관에 기증해 주신다면 더욱 좋겠지요.^^



posted by 별을 좋아하는 표도기
잡담 2014.06.06 23:42

저는 최근 일본의 웹 게임을 하고 있습니다. 한국의 모바일/웹게임과 달리 스토리가 충실하고 아기자기한 맛이 꽤 좋거든요.


원피스 트래저 크루즈 같은 것도 좋지만, 진짜로 열심히 하는 게임은 따로 있죠.


이 게임은 특히 다양한 작품과의 제휴를 진행하는 걸로 유명합니다. 그래서 전국 시대 게임이긴 하지만, 전국 시대완 전혀 관련 없어 보이는 캐릭터가 잔뜩 쌓여 있죠.


이를테면...




채찍을 휘두르는 모 검사 아가씨라던가.





무시무시한 각선미를 자랑하는 모 중국 아가씨라던가.




빨간망토처럼 순진해 보이는 외모와 달리, 기관총에 미사일을 난사하는 모 헌터 아가씨.




어딘가의 지옥에서 열심히 근무 중인 개.



게다가 어딘가의 '친환경적인 세계 정복을 위해서 노력한다지만, 항상 모 정의의 용사에게 필살기 한방에 토벌당하는 세계 정복 비밀(?) 결사의 총통'도 있습니다....



그리고 이번에, 새로운 제휴의 내용은 바로...




시마 졸병(아시가루)!


일본 전국 시대에 떨어진 시마 코우사쿠가 졸병에서 시작하여 사무라이를 거쳐 성장해나가는 일대 성장기를 그려낸...


네. 바로 그 남자. 시마 코우사쿠입니다. 과장에서 시작하여 어찌어찌 이혼. 그 후론 기묘하게도 엄청나게 잘나가며 회사야 힘들건 말건, 일이야 실패하건 말건 승진 가도! 결국 회사의 우두머리까지 오른 놀라운 사람.


그 시마 코우사쿠가 전국 시대의 졸병부터 성장해나갑니다. 그러한 그의 특수 능력은 다름아닌 "바람직하지 못한 관계".


시마와 같은 부대에 여자가 있으면, 그의 능력치가 여자의 인원수x40% 상승. 부대원은 5명이므로 여자 4명이면 공격력이 자그마치 160% 상승. 뭐야 이게! 게다가 모든 전투 상황에서 통용되는데다, 처음부터 성공률이 60%. 레벨이 높아지면 최소한 80% 이상의 성공률이 나오는 기술이니...


우와... 도대체 이걸 기획한게 누구야? 시마 코우사쿠란 캐릭터를 이렇게 확실하게 꿰뚫어본 사람은?

posted by 별을 좋아하는 표도기
별 작품 이야기 2013.12.03 01:44

  사실 저는 프로레슬링을 좋아합니다. WWE를 아내와 함께 열심히 보고 있고, WWE 게임을 사서 하고 있기도 하지만, 진정으로 좋아하는 프로레슬링 게임은 "레슬 엔젤스"이죠. 시리즈가 계속 안 나와서 아쉽지만 말입니다.


  일전에 프로레슬링 팬이었던 일본 친구와 함께 묵었던 일이 있었고 그 친구와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면서 일본 여자 프로레슬링에 대해 이야기를 듣게 되었습니다. 그 세계는 뭐랄까... WWE의 장식에 가까운 DIVA와는 근본적으로 다르죠. 확실히 '프로레슬링'이라는 느낌이 나고...


  근데 그 친구가 근래에는 일본 프로레슬링도 인기가 낮다...라고 하더군요. 그래서인지 레슬엔젤스 시리즈도 더 안 나오고, 레슬링 관련 만화도 별로 없고...


   하지만.... 어쩌다보니 이런 만화/애니메이션을 찾게 되었습니다.





  "세계에서 제일 강해지고 싶어."


  아이돌 가수인 주인공이 일본 여자 프로레슬링에서 활약한다는 이야기입니다.


  미소녀들이 넘쳐나는 만화이지만, 분위기만큼은 프로레슬링의 내용을 잘 살리고 있는 것 같아요.


  사실 프로레슬링은 격투기라기보다는 엔터테인먼트입니다. 단순히 승부에서 이기고 지고가 아니라, 이기더라도, 지더라도 관객이 열광할 수 있는 시합을 하는게 중요하죠. (WWE는 그걸 지나치게 강조해선지 거의 드라마 수준이지만, 그래도 그게 또 재미있습니다. 요즘엔 관객을 열광시키는 슈퍼 스타급 선수가 조금 적은 듯 해서 아쉽지만.)



  생각해 보면 프로레슬링을 소재로 한 애니메이션이 나온 것도 정말로 드문 일이에요. 격투 작품에서 프로레슬링이 나오긴 했지만, 어디까지나 격투의 하나로 등장했고, 프로레슬링의 중요한 '열광'이라는 것이 충분히 드러나지 못했죠.


  프로레슬링보다 조금 미래적(?)인 "메탈 파이터 미쿠"라던가, 요괴가 등장하는 소노다 켄이치씨의 "워너비즈" 같은 작품이 있었지만, 역시 조금 아니었죠. 그런 점에서 보면 본격적인 프로레슬링, 그것도 여자 프로레슬링 애니로는 거의 최초가 될까요?



  왜 이런 걸 몰랐나...라고 잠시 생각했습니다. 요새 참 마음이 이리저리 방황하고 있었네요.^^;;



여담) 그래도 사실 제가 좋아하는 스타일은 이런거에요. "머나먼 링"... 우리나라에서 해적판으로 번역되어 나오다가 정작 4번째 권 내용이 번역되지 않아서 원판으로 사 본 책인데, 프로레슬링의 느낌을 굉장히 잘 살렸죠. 그래선지 게임 "레슬엔젤스 서바이버"가 나올 때 자문역으로 활동하기도 했다는데... 물론 이런 작품이 애니메이션으로 나오기는 조금 어렵겠지만...



posted by 별을 좋아하는 표도기
별 작품 이야기 2013.12.03 01:24

  원피스 해적 무쌍 2에 빠져서 원피스를 처음부터 보게 되었죠. 게임이 원피스라는 작품의 매력을 정말로 잘 보여주고 있거든요.


  그런데 초반에 나온 대사 참 인상적입니다.


  주인공 루피가 "해적왕이 될 거야"라고 하는데, 코비라는 소년이 "무리"라고 이야기하자 루피가 이렇게 말하지요.


  "내가 되겠다고 결심한 거니까, 그 때문에 싸운다 죽는거라면 괜찮아."





  사람은 대개 결과를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 결과로 가는 과정의 어려움을 생각하고 포기하기 쉽지요.


  하지만 그 추구하는 과정 자체가 자신에게 좋은 것이라면 그것도 좋은 것이 아닐까요?


  원피스라는 작품은 루피라는 주인공, 그리고 주인공의 동료들이, 루피의 꿈, 그리고 그들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하여 목숨을 걸고 싸워나가는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매력적이기도 하지요.



  하지만 이 같은 일은 만화 속에서만 나오는게 아니죠. 세상에는 자신이 바라는 바를 위해서 목숨을 걸고 도전하는 이가 많습니다. 모든 이들이 그것을 이루지는 못하지만, 그들의 얼굴에서는 빛이 나고 웃음이 가득합니다.


  "좋은 인생이었다." 쵸파의 이야기 속에서 히루루크라는 의사가 폭약을 마시고 죽기 전에 웃으면서 하는 말입니다.





  문득 생각해 봅니다. 나는 과연 "좋은 인생이었다."라고 외칠 수 있는가?


  가끔 고민하고 헛갈리기도 하지만, 그래도 지금 이 순간 저는 "좋은 인생을 살고 있다."라고 생각할 수 있다고 봅니다. ('라고 봅니다.'라는 말이 아직 고민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지요.^^)


  하지만 정말로 좋은 인생이었다고 외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는 마음을 이 작품은 느끼게 해줍니다.



posted by 별을 좋아하는 표도기

  오늘은 미국의 플로리다 지역에서 한 종의 새가 멸종한 날입니다. 하루에서 수백, 수천 종이 멸종하는 상황에서 새 한 종쯤 사라져도 아무렇지도 않을지 모르지만, 그들의 운명은 모두 인간이 일으켰다는 점에서, 그것도 단순히 영향을 준 것이 아닌 ‘멸종의 방아쇠’를 당겼다는 점에서 기억에 남습니다.


  바다제비의 아종인 Dusky Seaside Sparrow(잿빛 바다 제비라고 부르면 될까요?)는 플로리다 지역에서 발견되는 새였습니다. 주로 모기를 잡아먹고 사는 이 새는 왕성한 번식력으로 넓은 지역에 퍼져나갔고 플로리다의 모기 숫자를 줄이는데 이바지했지요.


  그러나 1940년대에 들어 사용되기 시작한 DDT는 곤충을 먹고 사는 다른 많은 새와 함께 이들에게도 시련을 안겨주었습니다. 그리하여 불과 수십 년 만에 이들의 개체는 고작 2000쌍도 되지 않게 줄었지요.


  겨우겨우 목숨을 유지하는 듯 했던 그들에게 방아쇠를 당긴 것은 역시 인간의 행위였습니다. 모기의 개체 수를 줄이겠다며 케네디 우주 센터 근처의 섬을 수몰시킨 것이지요. 섬을 수몰시키는 게 모기 개체 수와 무슨 상관인지는 모르겠지만, 당시 섬에 있던 새의 둥지들은 전멸해 버렸고 수많은 새가 사라졌습니다. 그리고 가장 큰 타격을 받은 것이 바로 Dusky Seaside Sparrow인 것이지요.


  그리고 1987년 6월 17일. 마지막 한 마리가 숨을 거둠으로써 Dusky Seaside Sparrow는 지상에서 자취를 감추었습니다. 하나의 세계가 소멸해 버린 것입니다. 문제는 이것이 이들에게만 다가오는 운명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생각 없는 누군가에 의해 수많은 종이 사라지고 있습니다. 나무를 뽑아내는 불도저 아래서, 밭을 만드는 불길 속에서, 그리고 강을 준설하고 댐을 만드는 와중에서…



  인간에게는 종을 멸망시킬 힘이 있습니다. 심지어는 우리들 인간조차도 멸절할 수 있는 힘을.


  Dusky Seaside Sparrow가 멸망하기 20년 전에 중국에서 수소 폭탄의 첫 실험을 진행했습니다. 그로부터 한참 전엔 ‘비키니 환초’라 불리던 곳에서 미국의 수폭 실험이 있었지요. 일부 사람들은 당시 비키니 환초 지역에 특이한 종이 있었는데 수폭 실험으로 완전히 사라졌다고 합니다.


  [늑대 소녀 란]이나 [퇴마성녀 유마] 등으로 알려진 시바타 마사히로는 단편집에서 이 내용을 소재로 이야기를 연출하고 있습니다. 아쉽게도 이 작품은 소개되지 않았지만, 그의 작품 중 ‘멸망 후’의 세계를 그린(그리고 국내에 소개된) 좋은 작품이 있습니다.





  오늘 소개하는 만화 [사라이]는 대재앙으로 인류 문명이 붕괴된 이후의 세계를 그린 작품입니다. 대재앙으로 인하여 제2차 대전 때 나치 독일이 만들었던 세균 병기 모자이크가 활성화되고 살아남은 사람들은 기묘한 모습으로 변화하기 시작합니다.


  보통 16세가 되면 변신하지만, 사람에 따라 차이가 있어서 사람들은 언제 다가올지 모르는 변신의 공포에 떨면서 삶을 이어나가고 있지요. 그리고 변신으로 인해 생겨난 존재들에 대한 박해, 반대로 그들에 의한 사건 등이 빈발하면서 삶은 피폐해져 갑니다. 한편으로 그 중엔 그러한 변신을 막고자 하는 사람들의 다양한 행동들이 보여지지요. 이를 테면 변해 버린 자들에 대한 박해나 아이들을 잡아먹는 행동이 빈번히 일어납니다. 그야말로 마녀 사냥이 극성하던 중세보다도 끔찍한 모습이지요.


  그러한 상황을 극복하고자 호위 메이드 협회라는 조직이 존재합니다. 20세기 말 각지에서 보고된 ‘변신’의 위험성을 깨달은 세계 각국의 고위층이 만든 초국가적초법규적조직으로서 각지에 ‘호위 메이드’라 불리는 전사들을 파견하여 사건을 해결하는 것이지요.


  16세도 되기 전에 죽음을 준비해야 하는 인간들의 모습은 참으로 슬프고도 끔찍합니다. 이를테면 초반의 한 마을에서는 사람들이 돌처럼 변해서 굳어지는데, 때가 오면 한 계곡으로 들어가서 조용히 숨을 거둡니다. 계곡 안에는 다채로운 사람의 ‘동상’이 있지요. 동경하던 여성의 주변에 모여든 소년들이나 먼저 죽은 연인의 곁에 머무른 여성, 그리고 가족의 초상 등…


  이를 볼 때 왠지 [혹성탈출]이 떠올랐습니다. 인간들이 원숭이에게 지배되는 사회에서 해변가에 남겨진 거대한 석상의 모습이. 


  그러고 보면 1885년의 오늘 자유의 여신상이 뉴욕에 도착하여 뉴욕의 상징이 되었다고 하지요. [사라이]의 세계에도 자유의 여신상이 있을지는 모르지만, 결국 이는 혹성 탈출에서처럼 한때 번영했던 문명의 잔재에 지나지 않겠지요.


  [사라이]의 세계에서 멸망은 조금씩 다가오고 있습니다. 제각기 다른 모습으로 그리고 다른 방식으로… DDT에 의한 저주가 대를 넘어서 계속되듯이 인류가 만들어낸 모자이크라는 세균의 위협은 인류 모두에게 남겨져 있으니까요.


  결국 [사라이]는 죽어가는 인류라는 '종의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물론 그 뒤에는 바이러스로 세계를 멸망시키고 그들만이 존속하려 했던 나치 독일이나, 소련의 생체 병기의 개발 같은 수많은 사건들이 얽혀 있지만 말이지요. 결국 대재앙조차 누군가의 욕심이 낳은 결과이니까요.


  총 19권에 이르는 방대한 분량이고 내용도 꽤 복잡해서 쉽게 읽지 못할지도 모르지만, 그 독특한 색채가 깊은 인상을 줄 수 있을 것입니다.



여담) 시바타 마사히로씨는 [사라이] 외에도 독특한 색체의 SF 작품을 많이 완성한 작가입니다. 특히 다채로운 이야기를 담은 단편집이 눈에 띄지요. 아쉽게도 국내에 소개된 것은 [늑대소녀 란], [퇴마성녀 유마], [사라이] 정도 밖에는 없으니까요.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작가라 원서로 갖고 있지만 다른 이에게 소개하기 힘든 게 문제죠. (SF&판타지 도서관에 가져다 두어도 보실 분이 거의 없을 듯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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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우주 개발 역사상 처음으로 '우주 비행 중 사망자'를 낳은 소유즈 1호가 발사된 날입니다. 다음 날 발사될 예정이었던 소유즈 2호와 랑데부하여 소유즈 2호의 승무원 3명 중 2명이 옮겨탈 예정이었기에 소유즈 1호에는 블라디미르 코마로프 혼자만 타고 있었는데, 소유즈 1호는 발사 후 태양 전지가 펼쳐지지 않는 등의 사고가 일어나면서 결국 임무를 포기하고 귀환하게 되었습니다.


  임무를 변경하여 구조선으로 출발할 예정이었던 소유즈 2호는 발사 기지의 날씨가 좋지 않아 쏘아올리지 못했고, 소유즈 1호의 승무원 코마로프는 가족들에게 작별 인사를 남기고 지구 돌입 단계에 들어섰지요. 어쩌면 큰 문제 없이 돌아올 수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주 낙하산이 펼쳐지지 않고, 보조 낙하산조차 엉키면서 소유즈 1호는 엄청난 속도로 지상에 격돌, 폭발하고 말았습니다.


  일설에는 소유즈 1호, 2호의 발사 계획이 전날인 레닌 탄생일을 기념하기 위한 정치적 결정으로 이루어졌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강력한 정치적 압력으로 결함이 있음을 알면서도 발사했다는 거죠. 코마로프 역시 위험을 알았지만, 자기 대신 백업 요원인 유리 가가린이 위험해질 것을 우려하여 탑승했다고 합니다. 이것이 사실인지 아닌지는 알 수 없지만, 결국 보스호트 1호의 비행에 성공하여 최초의 '복수 승무원의 우주 비행'에 성공하였던 코마로프는 돌아오지 못하는 몸이 되었습니다. (보스호트 1호도 본래는 2인용을 정치적 압력으로 3인용으로 무리하게 발사했던 우주선이었습니다.)


  이 사건으로 소련의 우주 계획은 크게 뒤쳐지게 됩니다. 소유즈 2호의 출발은 이로부터 6개월이 지난 10월에야 진행되었지요. 하지만, 이 사건이 아니었다면 더욱 큰 사고가 일어났을지 모른다는 점에서 코마로프의 희생은 큰 의미를 가질 것입니다.


  우주 개발 단계에서 희생되었던, 그리고 우주 개발에 모든 것을 바치며 노력했던 이들을 기리면서 오늘은 호시노 유키노부의 2001 야화를 소개하고자 합니다.




 


  20년도 전에 제작된 이 작품은 21세기 말로부터 4세기에 걸친 인류의 우주 개발 역사를 그려낸 작품입니다. 미소의 냉전과 경쟁으로 급격하게 진행된 초기의 우주 개발 계획과 달리, 미국과 소련의 정치 지도자가 우주에서 만나 함께 우주로의 진출을 꿈꾸는 장면이 매우 인상적인 이 작품은, 오랜 기간에 걸쳐 다양한 형태로 우주로 뻗어나가는 이들의 이야기를 충실하게 그려냈지요.


  매우 사실적인 느낌에 다채로운 내용으로서 거의 30년 가까운 예전에 이런 상상을 했다는 것이 정말로 믿기지 않을 정도입니다. 플라네테스 등 여러 우주 개발 이야기와 함께 최고의 명작으로 손꼽을 수 있지요.


  우주 개발 과정은 순탄하게 진행되지 않습니다. 무수한 위기와 역경이 찾아오고 희생자가 발생하기도 하지요. 하지만 이 작품의 근간에는 그럼에도 우주라는 미지의 세계를 향해 과감하게 뻗어나가는 이들의 희망이 충실하게 녹아 있습니다.


  총 3권으로 발매되었고, 이후 5+1이라는 단편집이 추가로 나와 소개되었지요. 30년 가까운 과거의 작품이지만, 호시노 유키노부의 세밀한 그림, 그리고 사실적이고 충실한 상상력은 더 없는 만족을 줍니다.


  아직 이 작품을 보지 못하신 분들이라면 꼭 보시길 권합니다. 우주라는 신천지에 담겨있는(담겨 있을지 모르는) 미지의 가능성, 그리고 그 가능성을 넘어가고자 애쓰는 무수한 이들의 마음을 절실하게 느끼게 될 것입니다.

posted by 별을 좋아하는 표도기
무협 이야기 2012.04.17 12:57


[ "악수!" 싱고에게 손을 내미는 사쿠라. 이처럼 회사조차 전혀 다른 작품의 두 캐릭터가 마주할 수 있다는 것도 게임 만화만의 특징이다. ]

 

  캡콤에서 "스트리트 파이터"라는 게임을 선보인 이래, 격투를 소재로 한 게임이 무수하게 등장하여 인기를 끌었습니다.


  그리고, 원소스 멀티 유즈로 유명한 일본. 당연히 격투 게임을 소재로 한 다양한 작품들이 선보이게 마련입니다. 소설에서 만화, 애니메이션 등... 물론 헐리우드에서 영화로 만들어지는 상황도 드물지 않지요.


  격투 게임의 인기를 생각하면, 이들 작품들도 충분히 인기를 끌 수 있을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멋진 주역과 멋진 악역이 넘쳐나는 작품들... 이런 작품을 소재로 한 창작물들이 인기가 없을 리도... 그리고 재미가 없을 리도 없지요.

 

 

  그러나, 기실 선보인 작품들은 솔직히 그다지 유쾌한 것들은 아닙니다. 보다 정확히 말하면 재미없습니다.

 

  류와 켄이라는 영원한 라이벌을 중심으로 격투 게임 사상 처음으로 여성 캐릭터를 내세우고, 여기에 전작의 보스 이상의 강력한 적수를 등장시켜 격투 게임의 새로운 장을 열었던 "스트리트 파이터2"를 시작으로, 격투 게임 사상 손꼽는 멋진 악역, 기스 하워드를 내세운 "아랑전설", 그리고 "용호의 권"... 여기에 3인 대결이라는 체제로 숫자로 밀어 붙인 "킹 오브 파이터즈"나, 3D로 흥미를 끈 "버추어 파이터"나 "데드 오어 얼라이브" 등에 이르기까지...

 

  이른바 인기를 끌었던 게임은 대부분 만화나 애니메이션으로 제작되었지만, 게임으로서는 걸작이라는 평을 받는 게임을 원작으로 한 작품들이 좋게 봐주어야 범작... 대개는 최악의 작품으로 평가되곤 하지요.

 

  소재도 좋고, 스토리나 캐릭터도 좋은데 왜 이렇게 되는 걸까요? 그것은 아마도 격투 게임에 등장하는 캐릭터가 너무 많은데다 작가의 욕심이 지나치기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격투 게임에 등장하는 캐릭터들은 제각각 이야기를 갖고 있습니다. 하나하나 단독으로 한 개의 작품을 만들 수 있을 정도이지요. 그렇듯 다양한 내용들을 몽땅 풀어 버리려 하니, 그대로 종합 선물 세트가 되어 버리는 셈이지요. 게다가 이미 있는 게임의 캐릭터들이다보니 캐릭터마다 인기도 있고 팬들도 있게 마련. 자칫하면 여기에 휩쓸려 엉망이 되기도 합니다. (작가 자신의 개인적인 취향 문제도 있고 말입니다.)

 

  일반적인 만화의 캐릭터는 이야기를 진행하면서 인기를 얻어가고 팬을 얻게 마련인데 그럴 기회도 시간도 없는 상황인 것이지요.


 

  하지만 격투 게임 만화 중에서도 이른바 '명작'이 있으니, 바로 <파괴마 사다미츠>라는 작품으로 애니메이션화를 이루기도 했던 나카하라 마사히코(中平正彦)씨의 격투 게임 시리즈입니다.

 

  주로 아케이드 게임지인 게메스트와 코믹 게메스트에서 필자나 객원으로서 취재를 하며 연재를 진행했던 그는, 그 후 <스트리트 파이터 2>를 소재로 한 게임 만화인 <캐미 외전>을 시작으로 <스트리트 파이터 제로> 등의 작품을 통해 그 세계를 만화로 선보였지요.

 


[ 국내에도 출간된 "힘내라 사쿠라!". 주역도 아닌 인물에 초점을 맞추어 그녀의 성장을 충실하게 연출했다는 사실이 놀랍다. ]

 

  게임의 이야기를 그 나름대로 재해석하여 완성한 <스트리트 파이터 제로>, 사쿠라라는 한 명의 캐릭터에 초점을 맞추어 그녀의 성장 일기를 그린 <힘내라 사쿠라>, 그리고 류라는 인물을 심층 깊게 분석하여 하나의 결말을 맞이할 수 있었던 <류 파이널>에 이르는 그의 작품은, 원작을 생각하지 않고 단독으로 충분한 매력을 갖고 있으며, 독자적인 깊이를 느끼게 해 줍니다. (이들 대부분은 대원씨아이를 통해 국내에도 소개되었지만, <스트리트 파이터 II 캐미 외전> 만큼은 해적판으로만 나왔습니다. 그것도 아쉽게도 마지막 화가 들어있지 않은 상태로...)


  그의 작품은 단순히 게임 속의 인물을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게임에서는 접할 수 없었던 캐릭터들의 내면을 깊이 있게 연출해서 하나의 작품으로서 완성도를 더해줍니다.



  그로 인해서 그의 작품에 등장한 캐릭터가 게임에 선보이는가 하면, 제작진들이 그의 작품을 보고 "아, 사실은 그랬던 건가?"라고 감동하여 공식 설정으로 넣어버리곤 하니, 정말로 이례적인 사실이 아닐 수 없지요.(이를테면, 사쿠라의 라이벌로서 <SNK vs CAPCOM> 등에서도 활약 중인 소녀 칸자키 카린은 바로 만화에서 먼저 나온 캐릭터입니다. 그 밖에 댄 히비키의 설정 등 많은 부분이 실제 게임에도 영향을 주었지요.)

 


[ 도발 전설이라는, 오직 도발 만은 위한 필살기로 패러티에만 치중하던 그가 만화에선 이렇게 멋진 내면을 보여준다. 물론 개그도 충분.^^ ]

 

  그의 작품에는 본래부터 매력적인 스트리트 파이터의 캐릭터들이 더욱 멋지게 그려지는데, 심지어는 개그 캐릭터로 패러디 전문에 지나지 않는 댄 히비키 조차 인간적인 깊이가 느껴질 정도이지요. 여기에 만년 악당 장기에프도 러시아의 영웅으로서 부끄러움 없는 만족감을 주니,  "영원한 구도자"인 류, 그의 라이벌 켄, 숙적인 사가트 등에 이르면 그 매력이 더해져서 정말로 감동을 느끼게 할 정도입니다.

 

  그의 작품에서는 특히 '류'라는 캐릭터의 매력이 멋지게 보여 지고 있는데(사쿠라를 주역으로 한 작품을 만든 것도 그 때문이 아닐까요?^^) 사가트와의 대결에서 살의의 파동에 빠졌던 것을 후회하지만, 결국 이를 극복하고 그 만의 권을 탄생시키는 모습은 진정으로 "영원한 구도자"라는 말이 어울리는 느낌... 그가 스파 시리즈의 주역인 이유를 느끼게 하지요.

 


[ 이렇게 주먹을 쥘 수가 있는 한... 격투가에게 진정한 패배란 없다.

  비록 손가락 하나에라도 투지가 남아 있지만... 격투가는 절대로 진정으로 패하지 않는 것이다. ]

 

  하지만, 류 혼자만이 멋지다면 뭔가 부족하겠지요. 그래서 그는 라이벌인 켄, 그리고 무엇보다도 류의 영원한 숙적 사가트에게도 영혼을 부여하고 있습니다.

 

  흔히 사가트라면 스파2에서 사천왕 중 하나였기 때문에 치사한 악당으로 묘사되는 경우가 많은데, "제왕"이라 불리며 "투신강림", "집념의 범" 등 다양한 불리는 그가 승리를 위해서 베가에게 빌붙는다는 설정은 솔직히 납득하기가 어렵지요.(전작의 보스이기도 하고 말입니다.)

 


[ 대만의 만화 같은 데선 '쌍가트'라는 이름으로 비열한 악당으로 나오기도 했던 그이지만, 이 작품에선 진정한 제왕이자 '류의 숙적'에 어울리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

 

  그런 점에서 나카하라씨의 작품에서는 켄에 못지 않게 그의 비중을 키워줌으로서 감동을 더해줍니다. "부하가 되면 사이코 파워를 주겠다"고 하는 베가에게 "나는 패했어도 제왕이다."라며 당당하게 이야기하는 그의 모습은 최고의 숙적이라는 분위기를 정말로 절실하게 전해 주고 있지요.

 

  심지어, "류 파이널"에서는 정작 스토리와는 관련 없는 듯한 사가트의 이야기(류에게 패배하고 마음에 상처를 입었지만, 극복해 나가는 이야기)를 통해서 그에게 생명을 불어 넣어주고 있습니다.

 

  이 부분은 사카트의 이야기인 만큼 그가 주인공이 아닌가 하는 착각을 일으키게도 하는데, 바로 이 장면의 대사를 소개해 보겠습니다.



"그래 난 두려워 했다. 상처 입는 걸, 패배하는 걸.

 이 소년이, 가슴의 상처가 가르쳐 주었다.

 내가 지켜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난 제왕 강해져야 한다.

 

 전신에 새겨진 상처들. 그것은 나와 싸운, 나를 고통스럽게 한 용기있는 자들이 남긴 것.

 내가 추락하면 내게 도전하는 자들도 추락할 것이다.

 

 용기있는 자여 내게 도전하라.

 내게 단 하나의 상처를 입혀도 난 널 진심으로 존경하리라.

 난 너의 눈 앞에 막아서 있는 벽이다."



 진정으로 제왕, 강자의 풍모를 충실하게 느끼게 하는 대사가 아닐까요?

 류라는 구도자가 그에게 도전했던 것. 그 밖에도 수많은 이들이 그에게 도전했던 것이 지극히 자연스럽게 느껴지게 해 주는 말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자신 만의 일격 필살, 그 자신이 추구하던 권을 얻은 류와 대결합니다.

 격투가로서 이상의 기술이라 할 수 있는 살의의 파동을 얻었지만, 그것을 버린 류의 대답을 듣기 위해서...

 


  <스파 제로>에서 붉은 두 사람, 켄, 그리고 가이와 대결하고, 격투가로서 베가를 쓰러뜨리는 이야기를 통해서, 그리고 사쿠라가 그를 동경하는 이야기를 통해, 마지막으로 그 자신이 스스로의 일격필살을 얻어 숙적과 다시 한번 마주하는 장면을 통해서 류라는 캐릭터는 생명을 얻고 격투 게임 사상 가장 매력적인, 영원한 구도자로서 자리잡게 되었지요.

 

  그리고, 아버지일지도 모르는 고우키와의 대결(이 역시 나카하라씨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애니메이션에서 정식으로 확정된 공식 설정입니다)로서 다음대로 이어지는 이야기...

 


[ 최후까지 무술가로서, 류에게 모든 것을 맡기고 스러지는 고우키 ]

 

 

  격투 게임 만화, 그리고 애니메이션을 많이 보았지만, 다음의 이야기를 보고 싶다고 기대하게 만드는 것은 솔직히 나카하라씨의 이들 작품 뿐이었습니다.

 

  그 안에는 겉 모습 뿐인 게임 캐릭터가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무술가와 라이벌, 숙적과 사악한 제왕이 존재하고 있으니까요.


  나카하라씨의 작품이 매력적인 것은 '게이머의 눈으로 캐릭터를 보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 스스로 게임의 팬이기도 하고, 실제로 캐릭터에 대한 그의 묘사에는 애정이 느껴지기도 합니다.


  게이머로서, 팬으로서 너무도 애착을 갖고 생각한 나머지, 원작자 이상으로 그 깊이를 체험하게 되는 것이지요.


  그리고, 그만큼 세계를 잘 알고 있기 때문인지 그는 게임에는 등장하지 않는 캐릭터를 당당하게 중요한 라이벌로, 적수로 등장시키곤 하지만, 그 점이 결코 어색하게 느껴지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원작자도 그의 설정을 당당하게, 그리고 즐거운 마음으로 '공식 설정'으로 도입하게 되는 것이지요.


  흔히 원작이 존재하는 작품이 있을때, 그 원작을 바탕으로 창조된 작품들은 원작의 100%를 살리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이른바 '팬'에 의해서 쓰여지기도 하는 그 작품들은 때때로 원작자도 생각하지 못한 가능성을 제시하고 보다 깊이 있는 감동을 전해주기도 합니다. 그리고 그 결과 원작을 더욱 더 폭넓고 깊이 있게 느끼게 해 주기도 하지요.

 

  나카하라씨의 작품은 바로 그런 점에서 충실한 가능성을 느끼게 합니다.

 

  단순히 작품으로서 완성도를 느끼게 해 주는 것 뿐만 아니라, 결국 그 깊이를 관철시켜 게임 제작자들이 채택하게 했다는 점에서 말입니다. (개인적으로도 나카하라씨가 창조한 '카린'이라는 캐릭터는 꽤 좋아하는 편이지요.^^)

 

  결국, 그것이 팬픽으로서 가능한 최고의 모습이 아닐까요? (물론, 이들 작품은 '상업지'로 발매되었지만, 어차피 '원작이 있는 작품의 만화'란 그 작품을 좋아해서 만드는 만큼, 그 발상이나 내용은 팬픽의 완성본 그 자체라고 해도 좋을 겁니다.)

 


[ 마스터즈 재벌보다 막대한 재산을 가진(심지어 베가의 샤들의 기지를 날려 버릴만한 위성포를 소유한) 칸자키 재벌의 아가씨, 칸자키 카린. 사쿠라의 라이벌로서 단순한 부잣집 아가씨 이상의 포스(?)를 갖고 있다. ]

 

 

추신) 나카하라씨의 작품 정도는 아니지만, 나름대로 괜찮게 생각하는 작품들은 있습니다.


  가령 "권아", "지저스" 등의 작가인 후지하라 요시히데씨의 "버추어 파이터". "권아"에서 팔극권의 이야기를 멋지게 펼쳐주었기 때문인지, 팔극권사 아키라의 캐릭터를 꽤 괜찮게 연출해 주었지요.(개그 컷도 괜찮은 편이었고...^^) 국내에는 해적판으로만 나왔습니다.

(국내에는 나오지 않았지만) 아스카 카스카베씨의 "럼블 로즈". 원작에 비해 스토리의 완성도가 높은 느낌이 드는건 혼자 만의 생각? (물론 원작 자체가 스토리가 엉망이지만...^^;;)


  몬도 케이씨의 "아랑전설 스페셜". 기스 하워드와 볼프강 크라우저라는 두 보스가 동시에 등장하는 복잡한 이야기를 꽤 잘 풀었는데, 왠지 김갑환보다 그의 아내가 더 활약하는 느낌이 드는건? ^^ 해적판 말고 정식으로 번역되어 나오기도 했지요.


  그리고 다케바야시 타케시씨의 투신전. 무난하게 볼 만한 작품이었던 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로 투신전은 2편짜리 애니메이션을 더 좋게 보았지만...)


  한편 애니메이션에서는... 별로 눈에 띄는게 없군요. "투신전" 외에 "킹 오브 파이터즈", "스트리트 파이터 알파(고우키의 이야기)" 정도? 최근에는 "스트리트 파이터 4" 게임에 동봉된 단편 애니메이션들이 꽤 괜찮은 느낌을 주었습니다만.


  "용호의 권"은 영 아니었고, "스트리트 파이터 TV"판은 마음에 안 들고(TV판 "버추어 파이터"는 그나마 나은 편이지만) "뱀파이어 헌터"는 적당히 분위기를 살린 것 같고... "아랑전설"은 나름대로 괜찮은 듯 하지만 테리 보가드가 팔을 휘저으며 선풍권을 쓰는 시점에서 탈락... 뭐 그런 것 같습니다.


  여하튼 괜찮다고 하는 것도 정말 손꼽는군요. 하긴 그런 건 격투 게임 만이 아니지만 말입니다...

 

추신) 일반 게임 애니메이션의 수작으로 생각하는 건 "트윈비 파라다이스". 라디오 드라마로 더 널리 알려진 작품이지만, 몇 편의 애니메이션에서 그들의 매력을 충실하게 보여주었지요.



추신2) 나카하라씨의 설정이 게임에 반영된 것을 좀 더 구체적으로 기술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그 밖에도 영향을 많이 주었지만, 명확하게 구분하면 다음과 같은 것이지요.)

 

1. 댄 히비키와 블랑카(지미)가 친구 사이

  <스트리트 파이터 제로>의 후일담에서 격투 중 떨어진 댄이 블랑카에게 구출되어 친구가 됩니다. 이후 게임에서 블랑카와 댄으로 진행할 때 관련된 이야기가 나옵니다.

 

2. 댄 히비키가 하루비노 사쿠라의 스승

  <힘내라 사쿠라>에서 공식적으로 설정되고 이후 게임에도 반영되었습니다. 하지만, 댄 히비키의 인기가 낮아선지 동인지나 4컷 만화 등에서 이를 부정하는 내용도 많습니다.

 

3. 칸자키 카린

  <힘내라 사쿠라>에서 등장한 나카하라씨의 오리지날 캐릭터. <스파 제로 3>에 출연했고, 이후 <SNK VS CAPCOM>이나 사쿠라 관련 스토리에서 종종 등장합니다. 댄 히비키는 그녀의 사부(?)이기도 하지요.

 

4. 겐류사이 마키

  파이널 파이트 2의 주인공으로 캡콤 캐릭터 중엔 상당히 마이너한(사실상 잊혀진) 캐릭터지만, <힘내라 사쿠라>에서 등장한 이래 지명도가 상승하여 <SNK VS CAPCOM>, <스파 제로3> 등에 등장하게 되었습니다.

 

5. 류와 고우키의 관계

  <류 파이널>에서 류와 고우키가 부자 관계일 가능성이 제시되었고 이후 게임에 반영됩니다.

posted by 별을 좋아하는 표도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