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적상상'에 해당되는 글 4건

  1. 2015.02.25 :: SF는 과학이 아닙니다. 상상입니다....
  2. 2015.02.18 :: S는 과학의 S, F는 상상의 F...
  3. 2012.04.24 :: 마법 같은 과학으로 만들어진 이야기 (2)
  4. 2012.04.17 :: SF는 미래를 예견하는가? (2)
SF 이야기 2015.02.25 00:22

흔히 SF에 대해 이야기하다보면, "SF는 과학적인 비판을 감수해야 하며 그래서 쓰기 어렵다."라는 이야기를 듣곤 합니다.


이를테면 "과학적 원리로서 말이 안 된다."라는 얘기가 나온다는 것이지요.


그런데 한가지 궁금한 점은 왜 SF에만 비판이 따라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인지입니다.


물론, 네이버 지식인 광고에서 "스타워즈 레이저검의 원리" 같은게 나오긴 했습니다. 하지만 이건 비판이 아니라 단지 궁금할 뿐이지요.



어차피 대다수 사람들은 SF건 판타지건 별로 다르게 보지 않습니다.


스타워즈에서 칼 들고 싸운다고 해서 판타지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냥 우주가 나오고 우주선이 나오고 로봇이 나오고 하니 'SF 겠구나...'라고 생각하죠.


아바타에서 행성 전체의 의식이 하나로 연결된 설정이 등장합니다. 이게 어떻게 가능한지 궁금해하는 사람은 별로 없습니다. 그냥 대다수 사람들은 그러려니...하고 보죠.



[ 한때 유행했던 공상과학대전. 고지라니 뭐니 하는 작품을 바탕으로 '과학적으로 말이 안돼'를 이용해서 이야기를 만든 재미있는 작품이다. ]



물론 과학적인 고찰이니 뭐니 하는 사람은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공상비과학대전"이나 "스타트렉의 물리학" 같은게 있군요.


하지만 이는 비판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여흥이었습니다.


"방사능으로 고지라가 되는건 말도 안돼."라고 말한다고 해서 "고지라가 재미없어."라는 말은 아닙니다.


단지 그 내용으로 '놀이'를 하고 싶을 뿐이지요.



[ 감마선에 의해 괴물로 변신한 헐크. 사실 감마선으로 이렇게 변하는건 과학적으로 '거의' 불가능하다. 근데 이걸 신경쓰는게 몇이나 될까? ]


고지라가 재미있고, 이야기가 그럴 듯 하다면 고지라가 방사능에 의해서 그렇게 되건, 우주 괴수라서 그렇게 되건, 아니면 세균 병기로 그렇게 되건 별 상관 없습니다. (물론 이야기 구조는 많이 달라질 수 있겠지만)



하지만 SF.... '과학 소설'이라고 부르는 분들이 글을 쓸 때 이런 걸 신경쓰기도 한다는 점입니다. 아니, 판타지나 무협, 추리라고 해도 별 차이는 없을 겁니다. 뭔가 설정이 100% 완벽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과학적으로 말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중요한 건 이야기가 얼마나 재미있는가 아닌가의 문제이지, 그 우주선이 하이퍼 스페이스를 통과하건, 알큐비에르 엔진으로 날아가건 하는게 아닙니다.


이야기가 재미없고 말이 안 되면 여러가지 비판이 따르게 마련입니다. 하지만 그것이 과학적으로 말이 되건 안 되건 상관없습니다.


어차피 SF의 과학은 진짜 과학이 아니라 상상 과학이니까요.


반드시 이루어져야 할 어떤게 아니니까요.



19세기에 쓰여진 쥘 베른의 "지구에서 달까지"는 사실 과학적으로 말도 안 됩니다. 하지만 글을 읽다보면 왠지 그럴 듯 해 보이고 정말로 가능하게 느껴집니다. 100년이 지난 지금도 말이죠.


"그냥 그럴 듯해 보인다."


이게 SF에서 말하는 과학적 상상력이고 가능성입니다.



때로는 '공상비과학대전'처럼 "과학적으로 말이 안돼."라는 사람이 나올지도 모릅니다. 설정에 오류가 있다고 열변을 토하는 분들이 계실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건 굳이 SF라서 나오는 말이 아니라, 단지 그런 딴죽을 걸고 싶은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럴 때 어떻게 할까? 


여기 한 사례가 있습니다.


어느날, 미국의 유명한 SF 드라마, "스타트렉"과 관련하여 한 사람이 제작진에게 스타트렉의 워프 엔진이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물었습니다.


그는 씩 웃으면서 이렇게 대답했다고 하죠.


"아주 잘 작동합니다. 감사합니다."



SF 속에서의 과학은 사실 그런 겁니다. 이야기의 진행에 충분할 만큼 잘 작동하기만 하면 문제는 없는 거죠. 이야기가 잘 진행된다면 그 속의 과학이 정확하건 아니건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반면 이야기가 엉성하다면 설사 과학적인 설정이 아무리 정확해도 재미없는 건 재미없는 겁니다.


그리고 SF의 재미는 과학에서 나오는게 아니라 '과학적 상상'으로 펼쳐낸 이야기에서 나오는거죠.

posted by 별을 좋아하는 표도기
SF 이야기 2015.02.18 01:25

1967년의 오늘. 미국의 물리학자 로버트 오펜하이머가 사망했습니다.



[ Buffalo News의 Adam Zyglis가 그린 오펜하이머 ]


'맨하탄 프로젝트'에 깊이 관여하고 뛰어난 리더십으로 사실상 "원자폭탄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사람이지요. (그가 별 역할을 못했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하지만 재미있는 것은 그가 핵폭탄 개발에 최선을 다했던 것이 핵폭탄을 통해서 "전쟁의 무의미함"을 보여주고 싶었기 때문이라는 점입니다. 그는 인류를 멸망시켜 버릴지도 모르는 폭탄을 보게 되면 더는 전쟁을 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의 열정은 대단한 것이었고, 그의 능력도 탁월한 것이었지만, 그가 생각했던 것과 달리 핵폭탄은 사람들에게 '전쟁의 무의미함'을 느끼게 해 주지 못했습니다.


강력한 위력에 충격을 받은 이들은 너도 나도 없이 핵병기 개발에 열중하고 인류가 멸망할지도 모르는 위기가 찾아오게 된 것입니다. 이후 오펜하이머는 아인슈타인 등과 함께 원자폭탄의 사용과 수소폭탄 개발에 반대하여 모든 공직에서 쫓겨나고 말았습니다. 결국 그는 자신이 만들어낸 재앙이 수없이 증식되는 모습을 바라보며 쓸쓸히 물러나야만 했지요.


하지만 한편으로 '전쟁을 막고자 하는' 그의 의도는 성공했다고 볼 수 있었습니다. 냉전이라는 시기가 찾아왔기 때문이죠. 두 거대 강대국이 인류를 멸망시킬 수 있는 무기로 서로를 겨누는 상황에서 전면전은 그야말로 자신의 목을 조르는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한국 전쟁, 베트남 전쟁, 그리고 아프카니스탄 침공 등 크고 작은 전쟁은 있었지만, 제3차 세계대전만은 일어나지 않았던 것은 결국 오펜하이머가 만들어낸 핵폭탄의 덕분일지도 모릅니다.


물론 이 역시 그의 의도는 아니었고, 단지 운이 좋았기 때문이라고 해야 할지도 모릅니다. 사실 쿠바 사태나 베를린 위기처럼 전면핵전쟁이 일어날 뻔 했던 일은 결코 적지 않았거든요.



흔히 과학자들은 상상력이 풍부한 사람이라고 생각되기도 합니다. 무언가를 구체적으로 떠올리는 상상(Imagine)이라는 것은 단순한 망상이나 공상과 달리 아는게 많고 생각을 많이 한 사람에게 익숙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되면 어떻게 될까?"라는 상상은 어느 정도 근거가 필요하며 고민을 해야만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 만큼 아는게 많고 여러가지 생각을 하는 과학자들은 분명히 상상력이 뛰어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들의 상상력이 반드시 적절하다고 할 수 만은 없습니다.


실례로 오펜하이머는 핵폭탄이 완성되면 "전쟁의 무의미함"을 느낄 거라고 상상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권력자들이 핵폭탄의 위력을 두려워한 나머지 도리어 그 핵폭탄을 더 열심히 만들거라는 상상은 하지 못했습니다.



문득 일본에서 '인분고기(즉 똥으로 만든 고기)'를 만든 과학자가 떠오릅니다.


그 분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인분 고기는 친환경적인 음식이므로 사람들의 인식이 바뀌었으면 좋겠다."



[ 똥으로 만든 고기를 들고 있는 미츠유키 이케다 박사 ]


이 과학자분은 분명히 뛰어난 능력을 갖고 있을 것입니다. 사실상 음식의 찌꺼기인 똥으로 고기를 만들었으니까요. 하지만 사람들이 그 고기를 별로 좋아하지 않을거라는 것은 생각하지 않고 오직 "사람의 인식이 바뀌기만"을 바라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그 고기를 어떻게 생각할지... 도저히 상상하지 못한 것입니다.


그렇기에 그 고기를 사료라던가, 아니면 다른 방법으로 활용하는 것을 생각하지 않고 "친환경적인 식품이니 사람들이 먹어야 한다."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반면, 80여년 전 '감자', '배따라기' 등의 작가인 김동인씨는 한국 최초의 창작 SF 중 하나로 알려진 "K 박사의 연구"에서 똥으로 대체 식량을 만드는 K 박사라는 사람의 비극(?)을 그려냈습니다. 시식회에서 맛있게 먹은 사람들이 재료를 밝히자마자 토하고 난리가 나는 광경을 통해서...


80년전의 작가. 당연히 과학적 지식은 일천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는 최소한 똥으로 음식을 만들었을때 사람들이 좋아하지 않으며, 속아서 먹고난 뒤에는 어떻게 반응할지 정도는 상상할 수 있었습니다.


[ 김동인. 그는 SF작가가 아니지만, 과학적 상상력을 갖고 있었습니다. ]



1929년의 오늘 '일본 SF의 혼'이라 불리는 작가이자 편집자인 후쿠시마 마사미가 태어났습니다. 그는 50년 넘게 계속되는 SF 잡지 '일본 SF 매거진'을 창간하고 최초의 성공적인 SF 문고(그리고 일본 작가의 작품으로만 1000권이 넘게 나온) '하야카와 SF 문고' 등을 만들고, 일본 SF 작가 협회를 만든 사람으로서 기억됩니다.


[ 후쿠시마 마사미의 회상록. '미답의 시대'. 초기 일본 SF사를 잘 알게 해 주는 책이다. ]


48세의 나이에 요절했지만, 그가 남긴 족적은 엄청난 것이어서 그가 아니었다면 일본 SF의 역사가 완전히 바뀌었을 것이라고 여겨질 정도죠.


한편 그는 잡지의 편집장으로서 SF와 관련하여 다양한 논쟁 거리를 던진 사람으로도 유명합니다. 그 중 하나로 'SF를 부르는 이름'이 있습니다.


당시 일본에서는 SF(Science Fiction)를 과학소설로 부를 것인가. 아니면 공상과학으로 부를 것인가 하는 논쟁이 있었습니다. 문학 출신의 평론가들은 SF는 과학이 중요하니 '과학 소설'이라고 부르자고 주장했는데, 이에 대해 후쿠시마 마사미를 비롯한 SF팬들은 SF는 어디까지나 꾸며진 이야기이고 자유롭게 가능성을 생각해야 하므로 '공상 과학'으로 불러야 한다고 했습니다. 이 같은 논쟁 끝에 일본에서는 공상 과학이라는 용어가 좀 더 널리 사용되며 한국에까지 유입되었습니다.


이 이야기에서 중요한 것은 SF를 무어라고 불러야 하는가가 아닙니다. (사실 한국에서는 '공상'이라는 말이 상당히 부정적인 느낌이 있는 만큼 '공상과학'은 SF팬들에게 호감을 살만한 용어는 아닙니다. 경기를 잃으키며 부정할 필요는 없겠지만.)


중요한 것은 바로 SF(Science Fiction)에서 과학의 S가 아니라 가상(상상, 공상?)의 F가 중심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F에서는 단순히 '과학'만이 아니라 이야기를 이끌어내는 '사람'도 생각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로버트 오펜하이머는 분명히 탁월한 과학자였지만, 그들은 사람들의 행동을 상상하지 못했습니다. 그 결과 핵폭탄을 만드는데 열정을 쏟았고 결국은 자신이 만들어낸 절망의 무게에 눌리고 말았습니다.


결과적으로 냉전이 찾아와 3차 대전이 진행되지 않았지만, 그것은 단지 우연에 지나지 않습니다. 어쩌면 정말로 핵전쟁이 일어나고 인류는 멸망했을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그러지 말라는 법이 없습니다.)


로버트 오펜하이머에게, 그리고 맨하탄 프로젝트의 과학자들에게 충분한 '과학적 상상력'이 있었다면, 그들은 핵폭탄이 가져올 끔찍한 미래를 떠올릴 수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들에겐 '과학'은 있었으되, '상상'이 없었고, 결국 인류가 자신을 몇 번이고 멸망시킬 핵폭탄을 소유하는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로버트 오펜하이머가 죽고 20여년의 시간이 흐른 뒤, 미국의 한 방송국에서 영화를 틀어주었습니다.


"그날이 오면(The Day After)"이라는 이름의 그 영화는 핵전쟁이 일어나고 미국의 한 지방 도시가 핵 공격을 받은 이야기를 담은 내용이었습니다. 평화로운 느낌의 전원 도시 외각에서 핵폭탄이 터지는 장면에서 영화는 극적인 반전을 맞이합니다. 오염된 땅은 흙을 완전히 바꾸어야만 농사를 지을 수 있게 되고,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갑니다. 그리고...





방송이 끝나고 방송국에서는 여러 과학자를 초빙하여 대담을 진행했습니다. 동시에 시청자의 의견을 듣기 위한 전화를 열어두었지요.


그러나 대담이 끝날때까지 방송국에는 한 통의 전화도 걸려오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이 방송을 안 본 것이 아니었습니다. 사람들은 너무도 충격을 받은 나머지 전화를 걸 생각조차 못한 것이었습니다.


이제껏 '핵전쟁이 일어나도 나는 괜찮겠지.'라고 생각했던 사람들. '핵전쟁을 일으켜서라도 적을 무찔러야 해.'라고 생각했던 사람들은 과학적 상상력으로 만들어낸 영화의 장면에 빠져들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미국 전역에서 수많은 반전, 반핵 단체가 늘어나고 핵폭탄을 줄여야 한다는 의견이 더욱 늘어나게 됩니다. 이러한 분위기는 결국 미국과 소련의 중거리 핵무기 감축 협상과 전략 무기 감축 협정으로까지 이어지게 됩니다...



게시판에서 한 분이 '과학은 인간에 대한 긍정을 만들어낼 수 있나요?'라는 질문을 했습니다.


이에 대해 저는 이렇게 말하고 싶습니다.


'과학은 인류를 발전시킬 수 있다. 하지만 상상이 없는 과학은 그 발전을 잘못된 곳으로 이끌 수 있다.'



2월 18일. SF에서 과학이 중요한지 상상이 중요한지의 논쟁을 격화시킨(한편으로는 일본의 SF 문화를 발전시키는데 이바지한) 한 작가이자 편집자가 태어나고, 인류를 위해 자신의 능력을 다해 노력했지만 결과적으로 인류를 위기에 빠뜨렸던 과학자가 사망한 이날만큼은, 우리에게 '과학'도 중요하지만, 그 이상으로 '과학적 상상(SF)'이 중요하다는 것을 한번 생각해 보면 좋겠습니다.



posted by 별을 좋아하는 표도기
SF 이야기 2012.04.24 14:34


[ 미소녀 하렘물의 전형처럼 보이지만, 굉장히 독특하고 다채로운 세계관을 구축한 "천지무용!!" GXP의 소설에서 좀 더 충실한 내용을 보여준다. ( 천지무용!! / AIC ) ]


  3기(총 20화)에 달하는 OVA 애니메이션을 시작으로 TV, 극장판, 만화, 소설, 게임 등 다양한 매체로 선보이며 인기를 끈 <천지무용!>과 <듀얼! 패러럴 룬룬 이야기>, <포톤>, <스페이스 오페라 아가루타>, 그리고 근래에는 천지(텐지)의 동생인 검사(켄시)가 활약하는 <다른 세계의 성기사 이야기>를 비롯한 다양한 작품을 낳은, 카지시마 마사키(梶島正樹)는 그야말로 양파 껍질처럼 벗기고 벗길수록 새로운 이야기가 튀어나오는, 굉장히 깊이있고 복잡한... 그리고 무엇보다도 참신한 세계와 설정을 만드는 제작자입니다.


  AIC사의 사장인 미우라 토오루(三浦亨)가 "자네 머리를 한번 확 잘라보고 싶네. 도대체 얼마나 많은 지식과 뒷 설정이 들어있나!"라고 했을 정도로 말이지요.


  그의 세계는 대개 한 명의 평범한(하지만 무언가 숨겨진 것을 가진) 소년을 중심으로 수많은 개성적인 여성들이 얽히는 할렘물(이라기보다는 일부다처제)의 형태를 띄고 있다는 특징이 있지만, 또 한편으로 일본 색채의 독특한 디자인과 그만의 독자적인 과학 설정에 기반한 SF 요소들을 충실하게 구현합니다.


  초차원의 여신들, 신비한 힘을 가진 황가의 나무나 이 나무를 이용해 만들어진 황가의 배, 물질 변환을 구현하는 광력(그리고 광응익), 마법 과학이라 해도 좋을 아법(아호) 등. 그의 작품에 나오는 모든 설정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물리 법칙을 완전히 무시한 듯 하면서도 어지간한 하드 SF 팬조차 납득할만큼 설득력과 현실성을 갖고 그의 세계를 구축해나갑니다.


  그야말로, 아서 C 클라크가 말한 "고도로 발달한 과학은 마법과 구분할 수 없다."라는 말을 가장 잘 구현한 작품이라고 해도 좋을 것 같습니다.


  게다가 이러한 법칙이 단순히 도구로서 쓰이기 보다는 -마치 아시모프의 로봇 3원칙처럼- 작품을 이끌어나가는 중심축이 된다는 점에서 정통파 SF의 특성을 따르고 있다고도 하겠군요.


  특히 그가 원작이나 감수를 맡은 작품은 모두 어딘가 연결점을 갖고 거대한 세계의 일부로 보인다는 것도 특징이겠군요.



[ 카지시마 마사키의 또 다른 작품인 다른세계의 성기사 이야기... 이는 천지무용 세계의 또 다른 확장이라 해도 좋다. ( 다른 세계의 성기사 이야기 / AIC ) ]


  때문에 그의 작품은 단순한 미소녀 작품이라는 차원을 넘어 하나의 거대한 세계관으로서 엄청난 수의 고정팬을 확보하고 있습니다. (물론 필자를 포함...^^)


  미소녀를 잔뜩 등장시키는 작품들이 대개 작품 자체, 또는 세계관 자체보다는 각각의 캐릭터에 인기가 집중되는 것과는 달리, 카지시마 마사키의 작품은 세계관 그 자체로 매력을 모으고 인기를 끕니다. 그래서 새로운 작품이 나올 때마다 '이번에는 과연 어떤 세계가... 어떤 이야기가...'라는 관심이 집중되지요.



  한편, 미소녀를 내세운 또 다른 작품 중에 20년이 넘도록 연재가 계속되는 <오! 나의 여신님>이라는 작품이 있습니다.



[ 엄청난 연재 기간을 보여주는 "오! 나의 여신님". 사자에상 방식이 아니면서도 계속되는 것이 놀라울 뿐이다. ( 오! 나의 여신님 / 후지시마 코스케 ) ]

  

  일러스트레이터로도 활동하는 후지시마 코스케(藤島康介)의 만화로 한 명의 평범한 공대생(!)이 소원을 들어주는 여신과 함께 살면서 펼쳐지는 이야기를 그린 작품인데 할렘물이라기엔 애매하지만 그 집에 함께 사는 세 여신 외에 이따금 등장하는 미소녀 조연(대개는 신이나 악마 등 초차원 존재)들이 눈길을 끄는 작품이지요.


  이 작품의 인기는 물론 베르단디라는... 그야말로 모든 남성들의 꿈을 구현한 듯한 이상적인(비현실적인?) 캐릭터에 기반한다고 할 수 있지만, 20년 이상 계속 인기를 누릴 수 있는 이유로 북구 신화를 바탕으로 여러 신화나 전설을 독특한 색채로 재현한 세계와 그 세계에서 펼쳐지는 이야기의 재미를 무시할 수 없습니다.


  세계의 질서를 구현하는 '프로그램'이라던가 이를 파괴하는 바이러스, 11차원의 우주라던가, 맥스웰의 악마를 이용한 마술 빗자루 등... 신화와 전설이지만, 한편으로 SF색깔이 넘쳐나는 용어, 그리고 설정이 특히 매력적입니다. 이따금 도라에몽 같은 역할을 맡는 스쿨드의 발명품 중에는 그야말로 '마법 같은 과학'이라고 밖엔 할 수 없는 것들이 즐비하고 말입니다. (주인공이 공대생이라는 것과 연결해서 생각하면 더더욱 재미있게 느낄 수 있지요.)



 [ 다채로운 미소녀들의 향연(?)이 펼쳐지는 사쿠라 대전. ( 사쿠라대전 / 레드컴퍼니, 히로이 오지, 후지시마 코스케 ) ] 


  후지시마 코스케씨가 일러스트를 맡은 -레드 컴퍼니의 히로이 오지(広井王子)가 총제작을 맡고 아카호리 사토루(あかほりさとる)가 구성을 맡아 완성한- <사쿠라 대전> 역시 비슷한 류에 속합니다. 한 명의 주인공에 수많은 미소녀가 등장하여 눈길을 끌지만, 이 시리즈를 구성하는 기반은 역시 '영력'이라는 힘으로 움직이는 영자 갑주와 주술로 만들어진 강마라는 존재들... "마법 같은 과학"으로 구성된 세계관과 설정이 흥미를 불러오고 이야기를 재미있게 이끌어나가도록 도와주지요.


   현재까지 5편의 게임이 만들어지고 인기를 이어나가는 이 작품을 보고 "영력같은 힘은 없어!"라던가 "강마 따윈 요괴나 마찬가지잖아?" 같은 말은 의미가 없습니다. 여하튼 우리 세계와는 조금 다른 스팀 펑크로 가득한 이 세계에서 영력이나 힘이나 강마라는 존재는 실존하는 개념이며, 세계의 법칙 중 하나이니까요.



[ 게임과 애니메이션의 분위기가 너무도 다르지만, 양쪽 다 재미있는 갤럭시 엔젤 ( 갤럭시 엔젤 / 브로콜리 ) ]  


  브로콜리사에서 기획한... 그리고 <로도스 섬 전기>의 미즈노 료(水野良)가 감수를 맡아 완성한 <갤럭시 엔젤> 역시 빼놓을 수 없겠군요... 주로 바보 같은 이야기로 가득한 애니메이션으로 잘 알려진 작품이지만, 이 작품의 기반에는 '로스트 테크놀로지'라는 특수한 가능성이 존재하기 때문이지요.


  특히 게임과 소설, 그리고 만화판에서는 갤럭시 엔젤 일행이 조종하는 '문장기'라는 전투기(길이 50m 정도의 대형 우주전투기)가 거대한 전함을 상대로 맞대결을 벌이고 거대한 우주 요새가 공격해 오는 만큼 이를 해결할 방법이 필요하지요. 그리하여 로스트 테크놀로지에 이어 크로노 스트링 엔진이라는 "마법과 같은 기술"을 등장시킵니다. 그리고 이야기를 이끌어나가는 핵심에 바로 이 '로스트 테크놀로지'가 자리잡고 있는 것이지요.



  이들 작품들은 '마법과 같은 과학'을 이야기의 전면에 내세워 이야기를 이끌어나간다는 특징을 갖고 있습니다.


  <천지무용>은 광응진검을 만들어낼 수 있는 그 독특한 힘의 원천이, <오 나의 여신님>은 공학적인 분위기로 다시 꾸며진 신화 설정이, 그리고 <사쿠라 대전>은 영력과 강마의 존재가, 여기에 <갤럭시 엔젤>은 로스트테크놀로지 그 자체가 이야기의 핵심이자 중요한 추진력이 되어 재미있는 가능성을 만들어나갑니다...



  이들 작품에 등장하는 '과학'은 "마법과 같은 과학"으로 우리 세계의 과학은 아닙니다. 이들 각각의 설정은 우리 세계의 과학 상식을 넘어섰기 때문에 '마법처럼 보이는 것'이니까요.


  이를테면, 작은 몸집의 천지가 칼 모양의 물질을 만들어낼만큼 엄청난 에너지를 만든다는 것은 '에너지 보존 법칙' 같은 기본적인 규칙을 깨뜨리는 것처럼 보일지도 모릅니다. 마음 만으로 강력한 힘을 내어 작은 전투기가 전함을 마구마구 날려 버리는 것도 물리 법칙을 어긴 것처럼 보이겠지요. 여신이 소원을 빌어주고 세계의 프로그램을 조정하는 이야기 따윈 판타지에 불과하다고 얘기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이렇듯 "마법 같은 과학"으로 만들어낸 이야기에는 그만한 의문 쯤은 가볍게 넘어갈만한 매력이 있습니다. 아니, 그들이 존재하기 때문에 더 매력적일지도 모르지요. 결국 이들 역시 '상상 과학'. 가능성의 세계의 이야기이니까요.


  SF라고 해서 현재의 과학에 딱딱 맞을 필요는 없습니다. SF란, '상상 과학 이야기'. 그리고 과학적으로 상상해서 만들어낸 이야기이므로 과학보다는 이야기에 초점을 맞추어 재미있고 '납득이 가는' 이야기를 만들면 충분한 것이 아닐까요?


  상상력이야 말로 인간에게 가장 소중한 것... 그리고 이야기를 구성하고 이끌어 나가는 원동력이니까요.



  그러나, "마법과 같은 과학"을 도입했다고 해서 무조건 매력적인 이야기와 작품이 만들어질 수는 없겠지요. 아무리 설정과 세계관이 좋아도 결국 그것으로 펼쳐져나가는 이야기가 재미없다면 그것은 단지 케이크 위의 장식... 지옹그의 다리(^^)보다도 못한 존재가 될 것입니다.


  실제로 근래의 많은 작품이 -이를테면 수많은 라이트 노벨이- 이처럼 "마법 같은 과학"을 도입했지만, 그들이 모두 재미있는 것은 아닙니다. 폼을 잡는 캐릭터가 멋있다고 해서 무조건 폼만 잡는다고 재미있는 것은 아닌 것처럼 말입니다.


  한편, 참신한 설정과 세계관, 그리고 "마법 같은 과학"만이 좋은 건 아닙니다. 근미래를 배경으로 과학적인 설정을 잘 맞춘 작품 중에서도 <프라네테스>처럼 재미있고 즐거운 이야기는 얼마든지 있으니까요.


  결국 중요한 것은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상상력... 이야기를 즐겁게 꾸밀 수 있는 상상력인 것이지요.



추신) 물론 <오 나의 여신님>이 판타지인가 SF인가 하는데는 제각기 이견이 있겠지요. 무엇보다도 '신'이 등장하니까요.(신이 등장하는 SF도 물론 많습니다만.) 그렇다면 "마법 같은 과학"이 아니라 -<슬레이어즈>처럼- "과학 같은 마법"이라고 해도 좋을 겁니다. ^^


(* 네이버 블로그에서 이전한 글입니다. )

posted by 별을 좋아하는 표도기
SF 이야기 2012.04.17 12:00

  <마이너리티 리포트>, <블레이드 러너> 등의 원작자로 잘 알려진 필립 K. 딕의 단편소설 <물거미>에서는 우주 여행 중에 발생하는 문제를 해결하려는 사람들이 매우 독특한 방법을 사용합니다. 바로 ‘과거’로 가서 당시에는 멸종한 ‘예지자’들을 만나서 해답을 얻는 방법이었지요.
  그리고 그 ‘예지자’들은 바로 아이작 아시모프니 프레데릭 폴이니 하는 사람들… 다시 말해 SF 작가였던 것입니다.

  이렇게 SF 작가들을 예지자라고 부르면서 문제의 해결을 찾아내는 이야기는 어디까지나 소설 속의 상황에 지나지 않지만, 실제로 SF 작품들에 관하여 ‘SF는 미래를 예지한다.’라는 이야기가 종종 나오곤 합니다.

  SF 속의 상황이 그대로 재현되지는 않지만(이를테면, 2001년에 달에서 모노리스가 발견되거나(<2001년 스페이스 오디세이>), 2003년 4월 7일에 아톰이 태어나지는 않았지만(<철완 아톰>)) 황당무계하다고만 여겼던 SF 속의 다양한 상황이 어느새 현실 속에서 재현되는 모습을 보면, ‘SF에 예지 능력이 있다.’라는 말도 비단 틀린 것은 아니라고 생각하게 되지요.

  그렇게 아시모프를 비롯하여 여러 작가가 다양한 ‘예언’을 실현하는 상황에서 특히 ‘재현성이 높은 작품’을 많이 쓴 작가는 역시 시대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베스트셀러 작가로 이름 높은 ‘쥘 베른’이 아닐까 합니다.
(흔히 SF는 취향이 한정되어 대중적인 인기 작품이 없다고 생각하는 이들도 있지만, 쥘 베른의 작품은 지금 이 순간에도 세계 각지에서 엄청나게 팔리고 있으며, 이제까지 판매된 작품을 누적하면 역사상 최고의 베스트셀러 작가 중 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성경 같은 걸 빼면 사실상 1위죠.-)

 

 

  에드거 앨런 포우, H.G. 웰스, 그리고 코난 도일 등과 함께 초기 SF 작가 중의 한 사람으로 SF의 선구자로 불리는 그는 <기구를 타고 5주일>(1863)이라는 작품을 시작으로 다양한 과학 모험 소설을 내놓았는데, 이들 작품에서 선보인 다양한 내용은 그 후 실제로 재현되곤 했지요.

  이를테면 그의 작품 <지구에서 달까지>와 <달세계 여행>에서는 미국에서 달나라로 여행을 떠나는 이야기가 나오는데, 그가 작품 속에서 기지로 선정했던 장소는 실제로 NASA가 있는 플로리다였고, 달에서 돌아온 우주선(대포알)이 도착한 곳은 아폴로 8호가 실제로 내려왔던 바로 그 지점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이었습니다. (그래서 아폴로 8호의 선장은 쥘 베른의 손녀에게 ‘우리는 플로리다에서 달로 향하여 지구로 돌아왔는데, 우리의 우주선이 착륙한 곳은 소설에서 나온 지점에서 겨우 4km밖에 떨어지지 않은 곳이었습니다.’라는 편지를 쓰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그의 작품 <해저 2만리>에 등장하는 잠수함의 이름은 세계 최초의 원자력 잠수함에 붙어, 소설 속에서 그랬듯 바다 위에 떠오를 필요없이 해저를 거침없이 여행하고 나아가 북극해마저 통과하는 위업을 달성했지요. 그 밖에도 그의 작품에서는 기술만이 아니라 사회적인 모습 등에서 ‘재현성 높은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습니다.

  그렇다면, 정말로 SF는 ‘예언서’일까요?
  이 의문에 대답하려면 우선 ‘예언’이라는 것이 어떤 것인지, 그리고 어떤 성격을 갖는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예언이란, “앞으로 일어날 일을 알거나 짐작해서 말하는 것”입니다. -실제로는 평범한 풍자 시인에 지나지 않는- 노스트라다무스를 비롯한 수많은 예언가는 ‘앞으로 이런 일이 일어날 것이다.’라고 이야기를 하곤 하는데, 그것이 후일 그대로(또는 비슷하게) 이루어졌을 때 ‘예언은 이루어졌다(또는 맞았다.).’라고 말하지요.
(물론 노스트라다무스는 그 자신이 예언자라고 한 일은 한 번도 없으며, 단지 후세 사람들이 멋대로 말을 붙인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런 점에서 볼 때 SF의 ‘예지력’은, 특히 쥘 베른 같은 작가가 쓴 작품의 ‘예지력’은 그 어떤 예언자조차 따라오지 못합니다. 그야말로 놀라울 정도죠.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SF가 미래를 예지했다.’라고는 볼 수 없을 것입니다. 분명히 <지구에서 달까지>와 <달세계 여행>에서 쥘 베른은 미국의 플로리다에서 날아간 뭔가가 달을 돌고 바다에 내려오리라는 것을 ‘예견’했습니다. 그렇지만, 실제의 달 여행은 그가 작품에서 말한 것보다 100년 뒤에 진행되었고, 그가 말한 대포가 아닌 로켓이었으며 대포알이 아닌 우주선에는 산소 발생 장치가 아니라 공기가 잔뜩 들어간 탱크가 담겨 있었습니다. ‘플로리다에서 뭔가가 날아가 달을 돌고 바다에 떨어진다.’라는 점을 제외하면 쥘 베른의 이야기 중 타당한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그가 예언자였다면 솔직히 엄청나게 틀렸다고 해야겠지요.

  아니 쥘 베른만이 아닙니다. 아이작 아시모프도, 로버트 하인라인도, 그리고 아서 C 클라크도 수많은 작품 속에서 다양한 ‘예견’을 했지만 이들 모두는 엄밀히 말해 틀렸습니다. (아서 C 클라크는 20세기 말 잡지에서 21세기 가능성에 대해 제시하기도 했지만, 그 중 들어맞은 것은 그가 21세기가 되고도 꽤 오래 산다는 것뿐이었습니다.)

  그렇다면, SF는 뻥쟁이? 또는 몇몇 사람들이 말하듯 허망한 공상에 불과한 것일까요?


 

  여기서 조금 생각해 보면 이 역시 다르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바로, SF는 과학이 아닌 과학적 상상, 어디까지나 가능성을 보여주는 이야기라고 생각하면 말입니다. (많은 SF 팬은 SF를 ‘과학 소설’이라고 부르지만, SF에는 ‘과학 비슷한 것’은 있어도 ‘과학 그 자체’는 없습니다. SF 속의 과학은 어디까지나 ‘이런 일이 가능할 수도 있다.’, ‘이런 일이 가능하면 이렇게도 될 수 있다.’라는 과학적인 상상을 펼쳐나가는 것입니다.)

  SF 속에 나오는 거의 모든 -현재 존재하지 않는- 과학적인 법칙이나 사실은 어디까지나 ‘상상의 산물’에 지나지 않습니다. 사전에서도 아시모프가 만들었다고 인정하는 로봇 공학(Robotics) 3원칙을 지키는 로봇은 흥미롭고 합리적일지는 몰라도 과학적으로 타당한 기술은 아니며, <2001년 스페이스 오딧세이>에서처럼 셔틀 안에서 조심조심 걷는 장면은 솔직히 말해서 바보스럽죠. 게다가 로버트 하인라인의 강화복은 먼치킨 병기입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이들이 어떤 방법으로 구현되는가가 아닙니다. 문제는 로버트 하인라인의 강화복이 -하인라인이 생각한 것과는 다르지만- 실제로 연구되고 있으며, 로봇 공학과 인공 지능이 -역시 아시모프의 방식과는 다르지만- 계속 발전하고 있으며, 민간 우주 여행이 -클라크가 기대한 모습과는 다르지만- 점차 실현된다는 점입니다.

  세밀한 방법은 무시하고 본질적인 면에서 SF의 여러 상황은 ‘재현’되고 있는 것이지요.
  (심지어 아동용의 만화인 <철완 아톰>에서 보여주었던 ‘인간의 친구가 되는 로봇’ 역시 개발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SF의 예언’이 맞은 것은 아닙니다. 바로 ‘SF가 예언을 이루는 힘’이 있기 때문에 이루어지는 것이지요.

 

 

[ 대포알을 타고 달까지... 황당하기 이를데 없는 얘기지만, 사람들에게 영감을 주었다. ]

 

  쥘 베른의 <달세계 여행>과 <지구에서 달까지>는 실제의 우주여행을 예언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달로 여행하는 것이 불가능하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고, ‘그래 달로 갈 수 있어.’라는 기대감을 심어주었습니다.

 

  하늘에도 동아줄을 내려주길 기다리거나, 선녀의 목욕탕을 찾으려 애쓸 필요없이 우리 자신의 기술과 노력으로 우주로 향할 수 있다는 것을 알려주었습니다. 단순히 ‘꿈’을 꾸는 것이 아니라 ‘꿈을 이루는 방법’을 보여준 것이지요.

 

  그리고 이것이 바로 ‘SF가 미래를 예언한다.’라고 말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앞서도 이야기했지만 ‘SF는 절대로 미래를 예언하지 않습니다.’
  다만 ‘이런 미래를 위해선 이렇게 하는 게 좋다.’라거나 ‘이런 미래에는 이런 일이 생길 수 있다.’라는 가능성과 방법을 제시할 뿐이지요.
  이런 것이 그대로 미래의 모습으로 재현되지는 않지만(아무리 뛰어난 하드 SF 작품이라도 그 모습 그대로 재현되는 일은 없습니다.) 최소한 ‘전설’이나 ‘신화’보다는 나은 가능성…. 강력한 ‘설득력’을 발휘합니다.

  그리하여 사람들은 그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SF의 예언’을 이루고자 노력하게 되지요.


  1950년대 말, 데츠카 오사무가 탄생시킨 로봇 아톰은 2003년 4월 7일에 태어났다고 설정되어 있습니다. 물론 2003년 4월 7일 아톰처럼 마음을 갖고 10만 마력의 힘에 하늘을 나는 로봇이 탄생하지는 않았지만, 어릴 때 아톰을 보고 자라난 이들은 로봇 공학자가 되어 아시모와 같은 ‘인간과 친구가 될 수 있는 로봇’을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이 어릴 때 보고 자라난 아톰을 상상하면서….

 

  이렇듯, 사람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고 가능성을 향해 달려갈 수 있는 용기를 주는 것…. 그것이 바로 ‘SF의 예지력’이며, SF만이 가진 놀라운 힘입니다.

 

  쥘 베른의 소설이 아니었더라도 달나라 여행은 이루어졌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쥘 베른의 소설은 그것을 읽은 많은 이들(특히 <지구에서 달까지>의 주역인 미국인들)에게 도전할 만한 과제를 던져주었고 이를 해결하는 힌트를 주어 소설이 나오고 고작 100년 만에 달 여행을 성사시키는 결과를 이끌어냈지요.

  SF에는 이런 힘이 있습니다. 사람들이 가능성을 믿고 노력하게 하는 강력한 설득력이...
  SF 문화가 발달한 나라일수록 기술이 발달하고, 다양한 도전을 이룩하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닙니다. 그런 점에서 우리나라에서도 SF를 좀 더 쉽고 편하게 받아들여야 하는 건 아닐까요?

  여하튼 SF는 예언서는 아니지만, 그 예언을 -방법은 다를지라도- 이루게 하는 힘을 가진 작품이니까요.

 


추신) <80일간의 세계 일주>, <해저 2만 리>, <지구에서 달까지>, <지구 속 여행> 같은 쥘 베른의 작품은 흔히 아이들을 위한 작품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그것은 그의 작품이 워낙 인기 있다 보니 아동용으로 다시 편집되어 나왔기 때문일 뿐, 그의 소설 자체가 아동용은 아닙니다.


  이를테면 열림원에서 나온 <쥘 베른 걸작선> 중 하나인 <신비한 섬>은 엄청나게 두꺼운데다 자그마치 3권…. 아이들이 읽으려면 아마 몇 주는 걸릴지도 모를만한 분량이죠. (근래에 영화로 만들어졌지만, 원작과는 거리가 먼 아동용이었습니다.)


  쥘 베른의 작품은 세계적인 베스트셀러라는 점이 입증하듯 매우 재미있고 흥미롭습니다. 분명히 19세기 작품이지만 지금 읽어보아도 ‘왠지 가능하게 보인다.’라고 여겨지죠. 본문에서도 이야기했듯 그야말로 강력한 설득력…. 분명히 그 중 상당수는 낡아빠진-또는 잘못된- 과학임에도 너무나도 당당하고 자신 있게 이야기를 펼쳐나가니 진실로 믿을 수밖에요.(어떤 면에서는 마이클 크라이튼 같은 테크노 스릴러 작가의 원류라고 해도 좋을 겁니다.)

  그런 점에서 쥘 베른 작품은 완역본으로 제대로 읽어보시길 권합니다. SF로서도 높은 가치가 있지만, 무엇보다도 재미있고 흥겨운 작품들이니까요. (19세기의 ‘신사’들이 왜 쥘 베른에 열광했는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열림원에서 나왔고 앞으로도 꾸준히 나올 것으로 보이는데, 찾기 어렵다면 한번 ‘SF&판타지 도서관’에 오셔서 읽어보셔도 좋습니다. 그의 작품은 매우 두껍지만 쉽게 읽히고 페이지가 금방금방 넘어가기 때문에(깊이가 없다는 게 아니라 그만큼 재미있게 읽을 수 있습니다.) 도서관에서도 충분히 보실 수 있을 겁니다.
 

 

[ 열림원의 쥘베른 걸작선... 역시 쥘 베른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한 이 영화에 맞추어 다시 나오기도 했다. ]

posted by 별을 좋아하는 표도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