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 이야기 2016.11.09 17:10

미국 대선이 종식되었습니다.


참 충격적인 결말이지만, 이미 일어난건 어쩔 수 없죠.


중요한 것은 이 결말 이후입니다. 우리는 아직 몸과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았습니다.


[ 디트로이트의 현재. 기대하세요. 이제 세계 전역이 이렇게 바뀔 것입니다. ]



이에 대비하기 위한 작품을 소개해 봅니다.


- 소설 분야

1. 울

2. 더 로드

3. 루시퍼의 해머

4. 해변에서

5. 트리피드의 날

6. 핵전쟁 뒤 최후의 아이들

7. 최후의 날 그후


- 만화 분야

1. 생존게임

2. 드래곤 헤드

3. 브레이크 다운

4. 일본 침몰

5. 소년 표류 EX

6. 북두의 권

7. 모래돌이


- 영상 분야

1. 매드맥스

2. 나는 전설이다.

3. 그날 이후

4. 혹성 탈출

5. 뉴욕 탈출

6. 소년과 개

7. 설국 열차


- 게임 분야

1. 라스트 오브 어스

2. 스토커 트릴로지

3. 메트로 2033 시리즈

4. 폴아웃 시리즈

5. 웨이스트랜드 시리즈

6. 레이지

7. (아이 홀로 생존 게임을 진행하는...) 포켓몬스터.... 



그리고 무엇보다도..


Make America Great Again: The Trump Presidency


를 해 봅시다......-_-;;;;;;;;;;;;;;;;;;;;;;;;;;;;;;;;;;;;;;




posted by 별을 좋아하는 표도기
SF 이야기 2016.10.31 21:49

  저는 한국 SF에서 팬이나 작가, 그리고 시장도 부족하지만, 무엇보다도 '목소리'가 부족하다고 이야기했습니다.


  안타깝지만, 한국 SF 분야에서는 '전문가 풀'이라는 시스템이 존재하지 않으며(이걸 제시할만한 협회나 기관도 없습니다만.) 설사 있다고 해도 여기에 등록할 수 있는 분들은 많지 않습니다. 적어도 공공 기관에서 인정하는 방식을 적용한다면 말이죠.


[ SF 어워드 2015 행사. ]


  그러다보니 심사 위원으로서 항상 똑같은 분을 보게 됩니다. 안타깝지만, 현재 한국 SF 분야에서 이런 쪽에서 활동하시는 분들은 정말로 한정적이기 때문입니다. 적어도 대중이나 관청에서 바라볼 때는 말이죠.


  SF 어워드에 대한 논란은 바로 이러한 상황에서 나왔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왜 항상 같은 분들이 심사를 맡느냐?'

  '왜 다른 SF 작가 같은 분들은 심사를 맡지 않느냐?'

  '왜 SF를 모르는 분들이 심사를 맡느냐?'


  이 모든 문제는 결국 대중이나 관청, 아니면 기관에서 생각하는 SF 전문가의 폭이 매우 좁다는 점에서 나옵니다. 그 결과 심사는 항상 같은 분들이 맡고, 조금만 심사위원의 폭을 넓히려고 하면 뭔가 부족하게 느껴질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SF 어워드처럼 '기성 작가들의 작품'에 대한 대상은 어떻게 심사하는게 좋을까요?


  이에 대해 생각하기 위하여 저는 미국과 일본의 수상 시스템(물론 중국도 포함)에 대해서 한번 정리해 볼까 합니다.



  미국과 일본, 그리고 중국에는 SF에 대한 여러가지 상이 있습니다.


  크고 작은 상이 매우매우매우 많지만, 국내에서도 잘 알려진 것으로는 다음과 같은 것이 있습니다.


1. 미국 : 휴고상, 네뷸러상


2. 일본 : 성운상, SF 대상


3. 중국 : 중국성운상(중국인 성운상), 은하상


  이들 상을 선정하는 기관이나 단체, 그리고 자세한 내용은 다르지만, 이들의 선정 방식은 어느 정도 비슷합니다. SF 잡지(과환세계)에서 선정하는 '은하상'을 제외한 여러 상은 다음과 같은 단계로 진행합니다.



1) 특정 기관, 단체에서 투표로 후보작을 선정


2) 결선 투표, 또는 결선 심사로 최종 작품 선정



  예를 들어 네뷸러 상은 미국 SFWA(SF 작가 협회)의 협회원들이 투표로 선정합니다. 물론 작가 협회에 속하지 않은 작가 작품도 대상이 됩니다.


   네뷸러상과 비슷한 것이 일본의 SF 대상입니다. 일본 SF 작가 협회의 협회원들이 투표로 후보작을 선정합니다.


  성운상과 휴고상, 그리고 중국 성운상은 팬투표에 의해서 후보작이 선정됩니다.


  휴고상은 월드콘에 등록한 사람들이 1차 투표로 후보작을 선정합니다. 월드콘에 등록할 때 여러가지 형태가 있는데, 실제로 대회에 참가하지 않더라도 관련된 


  성운상은 일본의 '팬 그룹 연합회'에 소속된 팬 그룹에서의 투표로 후보작을 선정합니다.


  중국 성운상도 중국의 팬 투표를 거쳐서 후보작을 선정합니다.


  이렇듯, 대다수 상은 작가나 팬에 의한 단체 투표로 1차 후보작을 선정하는 시스템을 갖고 있습니다.



  최종적인 선정 방식에는 다소 차이가 있습니다.


  휴고상, 성운상은 모두 월드콘과 일본 SF 대회에 참가 신청을 한 사람을 대상으로 팬 투표가 진행됩니다. 각각의 행사는 참가비가 낮지 않습니다.(게스트는 예외) 다시 말해 그만큼 돈을 낼 수 있는 사람만 투표를 할 수 있습니다. 팬들이 중심이기 때문에 '인기상'의 성격이 가장 강하게 드러납니다.


  네뷸러상과 일본 SF 대상은 다시금 작가 협회 회원들의 투표로 최종 작품이 선정됩니다. 작가 협회는 보통, 소설가, 번역가, 평론가 등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인기상'보다는 '작품상' 성격이 더 강하다고 할 수 있겠군요.(물론 본인의 작품에 투표하는 건 금지됩니다.)


  중국 성운상은 뽑힌 후보 중에서 최종적으로 심사위원들에 의한 선정을 거쳐서 뽑힙니다. (한가지 특이한 것은 수상 대상이 매우매우매우 많다는 거죠. 이를테면 SF 단체에 수여하는 단체상이라던가, 신인상, 공로상에 특별 공로상이 따로 있습니다.)



  이렇게 볼때 중국 성운상과 은하상을 제외하면 대다수 SF 대상은 '단체 투표'에 의해서 선정되는 것이 특징입니다.


  '단체 투표' 방식에는 단점도 있습니다.


  이를테면 '작품성은 좋지만, 눈에 띄지 않는 작품'은 선정되기 어렵다는 것입니다.



  팬들이 좋아하는 작품을 선정하는 인기상 형태의 휴고상, 성운상은 그래도 좋다고 할 수 있겠지만, 그래서는 단순히 '베스트셀러상' 느낌에서 벗어나기 어렵습니다.


  이를 보완하고자 각각의 상은 모두 2차례 이상의 투표 과정을 거칩니다. 첫번째 투표는 1~3월 정도에 진행되고 후보 발표를 거쳐, 두번째 투표가 5월 정도에서 행사 당일까지 진행합니다.


  즉, 첫번째 투표를 통해서 후보작을 소개함으로써, 어떤 작품을 뽑을지 알릴 시간을 준다는 것입니다.



  어차피 SF 작가라고 해도, 그리고 10만원, 20만원씩 내면서 행사에 참여하는 SF 팬이라도 후보작 모두를 보지는 못했을 겁니다. 하지만, 후보작을 소개하면 그것만으로도 해당 작품들을 접하기 위해 노력하는 효과가 있습니다.


  적어도 10만원, 20만원씩 내면서 SF 행사에 참여하는 팬이라면 5~6작품의 후보작은 다 사볼 가능성이 높습니다.


  저는 여기에 휴고상이나 네뷸러, 성운상과 SF 대상 같은 상들의 개성과 장점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심사위원이 따로 없기 때문에(물론 투표가 공정하게 진행되도록 관리하는 관리 위원회도 있습니다.) 어느 한 두 사람에 의해서 작품이 선정되는 일이 없습니다. 인원이 제한되다보니 단체표에 의한 부정이 없다고 볼 수 없겠지만, 그게 수천명에 이르게 되면 아무래도 쉽지 않습니다.


  결과적으로 SF팬들이, 또는 SF 작가들이 좋다고 생각하는 작품이 선정될 가능성이 높아집니다.


  뿐만 아니라, 후보작 자체가 먼저 알려지게 되고, 이를 투표해야 하는 만큼, 사람들이 사전에 그 작품을 볼 가능성이 높아집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들 상은 '후보작'에 오른 것 만으로도 판매량이 대량으로 증가합니다. 휴고상이라면 3000여명의 팬들, 성운상이라도 1000여명의 팬들이 그 작품들의 구매 후보자들이니까요. 게다가 후보작이라는 이야기는 설사 행사에 참여하지 않아도 그 책을 살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말이 됩니다. (이 자체가 작가에게는 '인세'를 높여주는 효과가 있습니다. 물론 일본 SF 대상처럼 스폰서가 있는 상은 상금도 있습니다만.)


  하지만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이들 상을 '팬들'이나 '작가들'이 함께 뽑는 기분을 준다는점입니다. 우리가 뽑은 작품, 우리가 추천한 작품이 되는거죠.



[ 휴고상을 받고 기뻐하는 작가들. 왼쪽부터 데이브 하트웰, 찰스 N. 브라운, 코니 윌리스. ]


  휴고상이나, 네뷸러상, 그리고 성운상과 일본 SF 대상이 시작될 때 제각기 '공정성'에 대해서 고민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들은 심사위원이라는 소수의 권위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팬의 힘, 작가의 힘을 믿었습니다.


  SF를 진정으로 좋아한다면, 그 후보작을 모두 사서 보고 제대로 평가해 줄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리하여 이들 상은 각각 그 나라에서 SF 부문의 권위가 되었습니다.



  작가가 심사를 맡는게 마땅하다면, 한 두명의 권위있는 작가가 아니라, 수십 명의 작가가 함께 참여하는 것이 더 좋을 겁니다.


  팬이 심사를 맡는다면, 몇 명의 권위있는 팬이 아니라, 수백, 수천명의 팬이 함께 참여는 것이 더 좋을 겁니다.


[ 한명의 팬이 만들어낸 '암흑성운상' 시상식. 행사 그 자체에서 재미있는 무언가를 시상하는 것도 가능합니다. ]


  그럼으로서 SF 시상식은 축제가 됩니다. 여럿이 웃고 즐기며 함께 SF를 보고 노는 잔치가 됩니다.


  즐거운 자리가 될수록 사람들은 더욱 오래 머무르고, 더 새로 찾아오게 됩니다.



  좋은 SF를 고르는데, 권위가 필요하지 않습니다. SF는 심각하고 고민하며 보는게 아니라 즐겁고 재미있게 보는 것이니까요.


  성운상 처럼 라이트 노벨도 선정될 수 있고, 휴고상처럼 판타지도 -SF팬이 보기에 재미있다면- 뽑힐 수 있는 상.


  우리가 함께 만들어가는, 그런 상을 만들어야 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것이 진정한 의미에서의 '한국 SF 인기상'이 될 수 있을테니까요.

posted by 별을 좋아하는 표도기
SF 이야기 2016.10.30 15:59

  과천 과학관에서 SF 어워드가 끝나고 여러 가지 이야기가 있습니다. 특히 심사위원에 대한 논의가 눈에 띄는군요.


  과천 과학관 SF 어워드 심사 위원은 본래 5명이 진행했습니다. 하지만 올해는 15명으로 늘어났습니다. 심사위원에 부담이 많다는 문제(이를테면, 올해 단편상의 심사 대상은 100편이 넘습니다. 기존에 상을 받은 작품 같은 걸 모두 제외해도 말이죠.)도 있지만, 그보다는 심사위원의 숫자가 적으면 그만큼 의견이 편중될 가능성이 높다는 문제가 있습니다.


  전부터 이야기가 되었고, 작년 말과 올해 초 SF 어워드에 대한 자문 회의가 있을 때에도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그래서 올해는 15명이 되었습니다. 문제는 그 심사위원을 어떻게 구성할 것인가 하는 겁니다. 과천과학관의 상이기 때문에 제약이 많습니다. 특히 소설 부분의 심사 위원 선정에 어려움이 있습니다.


  우선 SF 작가나 출판 관계자는 어렵습니다. SF 어워드는 공모전이 아니라 실제 나오고 있는 작품에 관련된 상이기 때문입니다. 설사 그 해에 작품을 쓰지 않거나, 출판하지 않았다고 해도 가능한 제외해야 겠지요.(무엇보다도 심사위원이 선정되는 시점에서 대상 작품이 모두 선정되는 것도 아니니까요.) 작가들과 친분 관계가 깊은 사람들도 제외하는 게 좋을지도 모릅니다. 과학관이라는 공공기관인만큼 특히 이런 문제에 민감할 수 밖에 없습니다. 비슷한 뜻에서 서점 관계자도 제외하는게 좋을 겁니다. 번역만 하시는 분들이라면 어느 정도 가능하겠지만, 숫자가 적습니다.


  그러면 주로 평론가라던가, 해당 분야의 활동자로 한정됩니다. 그것도 과학관에서 인정할만한 경력이 필요합니다. 최소한 어느 정도의 단체에서 어느 정도 지위에 있거나, 대중언론(신문, 잡지)에 꾸준한 활동이 있는 사람이어야 할 것입니다. 아니면 대학교의 교수나, 관련된 박사 학위를 갖고 있거나...


  안타깝지만, 대한민국 SF 분야에서 이러한 분은 몇 안 됩니다. 1회부터 심사위원을 맡아온 박상준님, 고장원님 정도죠.(과거에는 홍인기님이나 김상훈님 같은 분도 계셨고, 교수나 박사 쪽으로 생각하면 좀 더 넓힐 수 있습니다만. 일단 활동이 별로 눈에 띄지 않습니다.)


  이 두 분을 빼고 SF 관련 책을 낸 분이 얼마나 있나요? 신문이나 잡지에 기고하는 분들은? 웹진을 포함해 SF 전문 사이트/블로그조차 거의 없고, 커뮤니티도 하나 뿐입니다.


[ 도서관에서 촬영. (출처 : http://mirror.pe.kr/index.php?mid=webzine6&category=28262&document_srl=28987 )

http://mirror.pe.kr/index.php?mid=webzine6&category=28262&document_srl=28987  ]


  박상준님은 오래 전부터 많은 활동을 해왔습니다. 오멜라스 출판사, 월간 판타스틱 등을 준비하기도 했고, 영화제 진행에도 많이 참여했습니다. SF 분야에서는 가장 발이 넓지만, 그만큼 활동도 많은 분입니다. SF 아카이브라는 이름으로 SF의 역사 자료를 충실하게 갖추신 분이기도 하죠. 대학교에서 대중과학 관련 강의도 하고 계시고요. 너무 활동이 많다보니 최근에는 잡지나 신문 기고 이외에는 저술 활동이 없으신 게 참 아쉽습니다만...


[ 발표 중인 고장원님. ( 출처 : http://imnews.imbc.com/fullmovie/fullmovie05/child/2665783_6631.html ) ]


  고장원님 역시 많은 활동을 한 분입니다. 이전부터 여러 강연, 강의에 참여하셨고, 일찍부터 다양한 책을 쓰셨으며, 지금도 책을 내고, 신문, 잡지 등에 SF 기사를 쓰고 계십니다. 적어도 저는 SF 소설 분야에서 고장원님만큼 깊이 아는 분은 별로 만나지 못했습니다. 하루는 이런 일이 있습니다. 어떤 분이 ‘이러이러한 이야기를 쓰고 싶어서 참고할만한 소설이 있나?’라고 물어보자, 그 자리에서 그와 관련한 여러 작품 얘기를 하면서 왜 그 작품이 좋은지 한참동안 이야기 하시더군요.


  요즘의 SF 팬들에게는 잘 알려져 있지 않을지도 몰라요. 하지만 인터넷만 검색해 보면 압니다. SF와 관련하여 최근 언론에 이름이 나오는 것은 –작가를 제외하면- 이 두 분, 아니면 저 뿐입니다.


  제 이야기가 나왔네요. 저는 PC 통신 시절 활동도 있었지만, 인터넷상의 SF 모임을 만든 지 20년 가까이 됩니다. SF&판타지 도서관을 만들어 운영한지는 8년째네요. 동인지를 몇 번 만들고, 미래경이라는 잡지를 4번째 출간. 단편집을 두 권 기획해서 냈습니다. 주로 게임 쪽 책을 냈지만, 최근에 판타지, 그리고 SF 쪽의 책을 냈고 양쪽 다 새로운 책들을 쓰고 있습니다.


  이만하면 충분하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저로서는 ‘최소한의 기준’ 밖에는 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SF 분야의 전문서는 고작 1권 밖에는 내지 못했고, 대중언론에 기고한 원고도 몇 개 안 되기 때문입니다.(사실 제 경우는 소설 부분의 심사위원으로는 맞지 않습니다. 개인적으로는 희망하지만, 저는 심사 대상이 될 수 있는 단편집 ‘조커가 사는 집’과 ‘미래경 4호’의 출판 관계자거든요. 그게 아니라도 여러 출판사와 협력 관계에 있거나 하다는 문제도 있습니다.)


  블로그나 커뮤니티에 글을 쓰는 것으로는 충분한 자격을 갖는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원고료를 받고 자기의 이름으로 책을 내고 돈을 내고 산 독자들에게 칭찬이나 욕을 들어봐야 합니다. 블로그에 평을 많이 쓴다고 해서 평론가가 되는 건 아닙니다. 블로그 운영을 몇 년씩 한다고 해서 프로로서 인정받는 것은 아닙니다. 원고료를 받고 글을 쓸 수 있게 되지 않으면, 프로라고 불릴 수 없습니다. 그것도 친분 관계가 아니라 전혀 모르는 사람이 글을 맡길 수 있을 만큼 이름이 있어야 합니다.


  안타깝게도 대한민국에는 그러한 사람이 거의 없습니다. 작가를 포함해도 한줌 밖에는 되지 않습니다.


  대한민국에는 더 많은 SF 전문가가 필요합니다. SF 팬들만, 친구들만 인정하는 전문가가 아니라 대중이 인정하고 대중 언론이나 공공기관에서도 믿고 일을 맡길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합니다.

  SF 어워드 심사 위원 후보가 너무 많아서 고민하게 만들어야 합니다.



  한국 SF는 많이 발전했습니다. 이번 SF 어워드에서 단편 심사 대상이 100편을 가볍게 넘고 있으며, 장편도 적지 않습니다. 만화나 드라마, 영화 같은 다른 미디어 작품이 많지 않은 건 아쉽지만, 그 역시 관심을 보이는 이들이 적지 않지요.


  그만큼 SF인들 사이에서 다양한 목소리가, 더 큰 목소리가 있어야 합니다.


  SF 블로그도 더 늘어나고, 커뮤니티도 많이 만들어지고, 잡지가 없다면 웹진이라도 많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다양한 목소리가 다채롭게 흘러나오고 서로 이야기를 나누며 즐기는 문화가 필요합니다.


  팬들이 모여서 떠들고 놀 수 있는 행사가 열리고, 모임이 진행되어야 합니다.


[ 북적대는 분위기의 SF 어워드 2014. 공공기관에서 이런 행사를 열 수도 있지만, 팬들 자신이 열 수 있어야 한다. ]


  그래서 다른 사람들이 ‘저 동네는 왜 저렇게 웃음이 가득한가?’라고 궁금하게 만들어야 합니다.



  SF는 재미있는 겁니다. 즐겁고 흥미로운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만 즐기고 혼자 노는 것보다는 여럿이 같이 할 때 더 좋은 것이죠?


  이를 위해서도 내년에는 더 많은 SF 이야기가 쏟아져 나올 수 있기를 바랍니다.

posted by 별을 좋아하는 표도기
SF 이야기 2015.06.08 22:51

다음 주 쥬라기 월드 개봉에 앞서 쥬라기 공원 1~3편을 도서관에서 보았습니다.


  1편이 가장 재미있다는 감상평에는 이의가 없고 3편은 뭔가 좀 허전하다는 인상도 여전하지만, 그럼에도 3편 모두 ‘공룡’이 등장한다는 사실만으로 즐겁게 감상할 수 있는 작품이었지요. 특히 공룡이 없음에도 진짜 있는 것처럼 연기했던 연기 솜씨 하나만으로도 만점을 주기에 부족함이 없습니다.


  쥬라기 공원은 공룡 붐을 일으키며 사람들에게 공룡에 대한 관심을 불러주었습니다. 공룡에 대한 대중의 인식을 고정시켜 버리고 여러 가지 해석이 가능한 과학적 가설을 ‘영화 속 이론’에만 고정하여 생각하게 만드는 등 문제도 있었다고 하지만(가령 실제의 벨로시랩터는 그처럼 큰 공룡도 아니었고, 근래에는 ‘깃털’이 달렸을 가능성이 대두되고 있죠.), 공룡이라는 존재는 문화 상품으로 이끌어내어 다양한 모습을 생각하게 해 준 것은 분명히 대단한 일입니다.



[ 최근의 랩터 추정도 중 하나 뭔가 포켓몬 보는 느낌도 있다. ]


  ‘나무의 수액이 굳어져서 만들어진 호박이라는 보석 속에 들어 있는 모기의 몸에서 공룡의 혈액을 추출하여 공룡을 부활시킨다.’라는 흥미로운 상상력은 과학적인 진위 여부는 별개로 사람들에게 그럴듯하다는 느낌을 심어주고 공룡 붐을 이끌었습니다.


  하지만 쥬라기 공원 시리즈를 볼수록 뭔가 납득하기 어려운 점이 있습니다. 바로 “쥬라기 공원은 정말로 불가능한가?”라는 것이지요.


  영화 속에서 말콤 박사는 말합니다.


  “자연과 같은 혼돈계를 통제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결국 통제는 무너지고 만다.”


  하지만 “쥬라기 공원 1”에서 공원을 통제 불능의 위기에 빠뜨린 것은 통제 시스템 자체를 파괴하는 행위가 존재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소설과는 완전히 다른 내용으로 바뀌어 버린 “쥬라기 공원 2”에서도 파괴 행위가 없었다면 인젠의 공룡 포획 작전이 실패하지 않았을 것이며, –영화 속에서는 도저히 드러나지 않는 의문의- 선원 참살 상황이 없었다면, 티라노사우르스가 대도시 한복판에서 날뛰는 상황은 오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리하여 “쥬라기 공원 3”로 연결(?)되는 일도 없었겠지요.


  물론 인사는 언제나 발생할 수 있습니다. 체르노빌이나 후쿠시마처럼 말이지요. 하지만 “쥬라기 공원”은 원자력 발전소가 아닙니다. 분명히 과거에 지상 최강의 동물이었다곤 해도, 여하튼 6500만년 전에 멸종한 동물... 적어도 지금의 견해로는 ‘문화’를 갖고 있지 않은 야수를 가둔 장소거든요.


  쥬라기 공원의 실패는 혼돈 이론이 아닙니다. 단지, 방향성이 잘못되었을 뿐이죠. 무엇보다도 공룡은 너무 강하게 설정했고, 반면 공룡에 쫓기는 인간들은 너무도 무력하게 설정되었습니다.

  영화 속 상황을 살펴볼 때 인간과 공룡이 만나는 상황은 대개 공룡이 훨씬 많거나 큰 쪽이었고, 인간은 맨손에 아무런 장비도 갖고 있지 않았습니다.


  아니, 장비를 갖고 있다손 쳐도 대개 혼자, 그것도 맹수라 할 수 있는 공룡 쪽이 압도적으로 유리한 상황에서만 만나게 됩니다. 인간이 자연스레 당할 수 밖에 없는 상황에 놓이게 되는 것이지요.


  “쥬라기 공원”을 만든 해먼드는 공룡을 부활시키는데 엄청난 돈과 시간을 쏟아 부었지만, 이들을 ‘안전하게’ 관리하는 데는 거의 투자를 하지 않았습니다. 소설은 좀 더 낫지만, 영화 쪽을 생각해 보면 그 넓은 시설을 관리하는 시스템을 제어하는 사람이 고작 2명. 안전 요원 1명. 그밖에는 한 명도 직원이 없습니다.


  처음에 랩터를 옮길 때부터 안전 관리가 최악이라는 것을 잘 보여주었습니다. 아니, 두 개의 철창을 연결해서 랩터를 옮기는데 두 철창을 제대로 고정하는 장치도 없고 손으로 격벽을 잡아서 올리다니요. 랩터보다 훨씬 작고 약할 것 같은 맹수를 옮길 때조차 그보다는 나을텐데 말이죠.


  “쥬라기 공원”은 공룡들을 바로 눈앞에서 볼 수 있다는 것이 장점인 곳입니다. 그것도 어린이를 포함한 대규모 투어 형태로 말이지요. 공룡은 아니지만, 동물들을 눈 앞에서 보는 곳이라면 현재도 있습니다. 바로 동물원이죠. 동물의 생태를 좀 더 가깝게 느끼는 것으로는 “사파리”가 있습니다.


  동물원과 사파리의 특징은 동물들을 격리하고 감시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점은, ‘그들 동물의 능력으로 쉽게 나올 수 없는 곳’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동시에 관람객들이 동물을 쉽게 볼 수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쥬라기 공원은 그렇지 않습니다. 쥬라기 공원은 구역과 장벽이 있긴 하지만, 사실상 밀림입니다. 넓이는 너무도 넓고 공룡은 여기저기 흩어져서 관광객들이 쉽게 볼 수 없습니다. (초반에 관광 투어를 진행했지만, 공룡을 기대했던 사람들은 아무 것도 보지 못하고 실망했죠.) 당연히 감시와 관리가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병이 나거나 어디서 죽어도 알 수 없는 상태이며, 단지 먹이를 이용해서 유인할 수 있을 뿐이죠.(그나마 공룡이 마음 내킬 때만)


  그렇게 생각할 때 쥬라기 공원은 해먼드 회장 자신이 말했듯, “케냐 국립공원” 같은 장소라고 볼 수 있습니다. 동물들이 자연 생태계에서 살고 있고, 그들을 살펴보고 싶은 이들은 많은 돈을 내고 찾아가서 가이드 겸 보호자와 함께 차량을 타고 돌아다니는 곳 말이죠.



[ 아프리카의 사파리 투어. 차 위는 열려 있지만, 안전을 준수하도록 한다. 물론 사고는 본인 책임... ]


  이것은 ‘아이들’과 함께 편하게 갈 수 있는 장소가 아닙니다. 하루 종일 달려서 겨우겨우 동물을 발견할지도 모르는 상태인데다, 굉장히 위험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자나 치타 정도라면 자동차 안에 있는 것으로 안전할 수 있겠지만, 코뿔소 정도라도 되면 차를 뒤집고 부수는 일도 충분히 가능하니...


  하물며 그 대상이 공룡이라면 실수로 전력이 끊어지면 무용지물이 되는 전기 철책 하나만 믿고, 허름한 자동차 한 대로 관광할 수는 없습니다. (전기 철책은 조심스레 만질 때나 통용되지 공룡이 잘 모르고 들이받으면 그냥 부서질 겁니다. 학습해도 죽지 않는 걸 안다면 들이받을지도 모르죠.)


  영화 속에선 티라노나 스피노사우루스가 철책을 간단하게 부수고 나오지만, 그들이 뚫고 나오지 못할 정도의 장벽은 그다지 어려운 게 아닙니다. 티라노의 몸무게는 2~7톤. 돌진력은 대형 트럭 정도입니다. 대형 트럭을 막는 장벽을 만들면 됩니다. 스피노도 8~9톤 정도로 티라노와 비교해서 대단한 수준이 아니죠. 하물며 랩터라면 더욱 어렵지 않습니다.


  쥬라기 공원의 실패 원인은, 먹이를 주어서 사육하는 동물원 같은 환경을 만들어두었으면서도 정작 국립공원 같은 장소로 완성했다는 겁니다. 게다가 사파리처럼 공룡을 가까이에서 볼 수 있게 했으면서, 티라노는 고사하고 랩터에게조차 무력한 자동차를 사파리용으로 사용했다는 것입니다.(심지어 잠금장치까지 없는!)


  처음부터 동물원이나 사파리 형태를 생각했다면 상황은 달라졌을 겁니다. 공룡들은 좀 더 좁은 장소에 눈에 잘 띄게 배치될 것이고, 관광객들은 쉽게 그들을 만날 수 있을 것입니다. 관광객들은 더욱 튼튼한 철창과 두꺼운 강화 유리 사이로 그들을 볼 수 있으며, 험비보다도 튼튼한(아마도 경장갑차 정도 될 만한) 사파리 차량을 타고 그들 사이를 지나갈 수 있겠지요.


  오키나와의 대형 수족관에는 자그마치 60cm에 달하는 아크릴 유리가 사용되어 있습니다. 높이 8.2m, 폭 22.5m로 유리가 있다는 걸 생각하지 않고 볼 수 있을 만큼 엄청나죠. 티라노사우루스의 전신을 보기에도 충분하고도 남습니다.



[ 거대한 고래 상어를 한 눈에 볼 수 있는 츄라우미 수족관. ]


  이 정도면 랩터 정도는 간단히 막을 수 있으며, 티라노도 쉽게 파괴하지 못합니다.(티라노가 7톤에 가까워도 7톤 트럭과는 다릅니다. 그만한 강도도 아니며, 최대 속도로 단단한 물체와 충돌하면 티라노도 무사하지는 못합니다.) 그래도 위험하다면 두께를 더 늘리면 되지요. 관객의 안전을 생각한다면 그 정도 쯤, 당연한 거 아니겠습니까? 만일 그 같은 벽을 만들기 힘들다면 땅을 파고 가두어 두는 것도 방법이죠. 동물원의 맹수관처럼 랩터나 티라노가 뛰어오르기 어려운 높이로 말이죠.


  사파리처럼 하고 싶었다면, 좀 더 튼튼한 차량을 사용하면 되었을 것입니다. 험비보다 튼튼한 정도로 말이죠. 경장갑차 정도라면 어떨까요? 물론 두꺼운 강화유리로 창을 내고, 안전할 때는 밖으로 나가서 볼 수 있도록. 경장갑차라도 중량 10톤은 가볍게 넘으니 티라노가 어찌할 수 있는 상대는 아닙니다.(여담으로, “쥬라기 공원 2”에서 나왔던 차량도 중량은 티라노보다 무거울 겁니다. 45인승 버스가 공차 중량이 12톤에 달합니다. 바퀴가 안 달렸다면 티라노가 움직이기에는 조금 힘들겠죠.)

  아니면 헬기를 타고 감상하는 건? 티라노가 눈앞에 나타났을 때 승용차 정도로 무사할거라 생각하는 관광객은 없을 테니 안심시키기 위해서도 그편이 나을 겁니다.


  결국 “쥬라기 공원”의 실패는 인간의 오만이나 자연의 힘이 아닙니다. 단지 동물을 다루는 공원으로서 기본적으로 지켜야 할 안전 수칙을 무시했던 공원 제작자의 잘못입니다.


  자연을 인간의 노력으로 통제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강한 힘을 가진 무언가를 제어하려면 그만한 힘이 필요하게 마련이며, 지나친 힘은 반작용을 가져올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공룡은 자연 재해와 같은 거대한 힘이 아니라, 지금 인간이 가진 문명의 힘으로 얼마든지 관리할 수 있는 존재입니다. 대다수 공룡은 인간보다 훨씬 작고, 대다수 공룡은 인간의 도구보다 연약합니다. 영화 속의 랩터는 인간보다 훨씬 크지만, 사실상 고양이과의 맹수와 비교해서 탁월하게 강력한 게 아닙니다. 그리고 아시는 바와 같이 그 고양이과의 맹수들은 대부분 멸종위기에 몰려 있습니다.


  이번에 개봉할 영화 [쥬라기 월드]에서 드디어 쥬라기 공원이 ‘쥬라기 월드’라는 이름으로 운영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관객들은 안전한 환경에서 공룡들을 감상하고 있죠. 이번의 위기는 ‘유전자 조작’에 의한 괴물인데...(사실 “쥬라기 공원” 속의 공룡들도 정확히는 공룡을 닮은 유전자 조작 괴물이지요.) 티라노보다 크고, 랩터보다 똑똑한 살인 괴수...라고 해야 할까요?



[ 쥬라기 월드의 한 장면. 투명한 창 밖으로 공룡을 감상한다는게 인상적이지만, 역시 얇팍한 강화유리일 뿐. ]


  하지만 공룡이 얼마든지 숨어 다닐 수 있는 국립공원 같은 환경에서 사파리처럼 감상할 수 있는 “쥬라기 공원”, 또는 “쥬라기 월드”라는 시설이기에 역시 위험한 것이지, 좀 더 안전한 시설이었다면, 훨씬 안전한 이야기가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했다면, “쥬라기 공원”이라는 영화가 인기를 끌 수는 없었겠지요. 


  영화적 연출, 또는 소설적 연출을 위해서 당연히 문제가 생길만한 상황을 배치하고 이야기를 이끌어 내는 건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그러니까 이 얘기는 단지 ‘이래도 되지 않을까’라는 상상일 뿐이죠. 그리고 가끔은 프랑켄슈타인 증후군(인간이 만들어낸 존재가 인간에게 해를 끼친다는 생각)이 아닌 기술이 펼쳐내는 밝은 미래를 다룬 이야기도 보고 싶은 마음입니다.



여담) 고 마이클 크라이튼은 일찍부터 프랑켄슈타인 증후군의 작품을 집필했습니다. ‘기술이 가져오는 무서운 결과’를 내세우는 작품으로서 테크노 스릴러라 불리죠. 분명히 이야기들은 재미있지만, 이를 위해서 지나치게 작위적인 상황을 만들어내는 것이 조금 아쉽습니다.

  마이클 크라이튼은 말콤이 자신의 대변자라고 했는데, 사실 영화나 소설 속 말콤도 쥬라기 공원을 안전하게 만드는 방법을 얘기하는게 아니라 무조건 '잘못되었다'라고만 말하죠. 수학자 쪽이라서 그렇다고 할 수 있을지도?


여담2) 영화적 연출이겠지만, 랩터나 티라노에게 살아있는 먹이를 주는 것도 사실은 이상했습니다. 살아있는 먹이를 주는 것은 맹수에게 사냥을 가르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가르치지 않아도 사냥은 할 수 있겠지만, 일부로 가르칠 필요는 없겠지요. 영화 속 설정에 따라 움직이지 않는 존재를 볼 수 없는 티라노라고 해도 먹이가 내는 냄새 정도는 맡지 않겠어요? 피 냄새라던가. 게다가 염소나 소를 기르다가 그대로 주기보다는 죽여서 보관해두었다가 주는 게 훨씬 편할 테고요. 

posted by 별을 좋아하는 표도기
SF 이야기 2015.03.24 12:36

오랜 SF팬이라면 흔히 소설을 통해 SF에 빠졌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사실 저는 영상과 게임을 통해서 SF에 몰입하게 되었습니다. 17년째 운영 중인 조이SF클럽은 바로 여기부터 시작되었지요.


어릴 때부터 SF를 좋아하곤 했습니다. 특히 사직동 어린이 도서관에서 만났던 청소년 SF 시리즈는 정말로 최고였죠. (지금도 도서관에 잔뜩 비치하고 있습니다.)


중학교 때에는 2001년 스페이스 오딧세이에 이어 은하영웅전설과 파운데이션을 접하게 되었고, '이런 재미가 있구나.'라는 걸 생각했습니다. 그러고 보면 당시 생물 선생님과 과학 이야기를 나누면서, 스승의 날 선물로 2001년 스페이스 오딧세이를 선물 드린 기억이 나네요. (중학생이 선생님께 하드 SF를 선물하다... 좀 특이하죠? ^^)


하지만 제가 진정으로 SF에 몰입했던 것은 1995년에 나온(아마 1996년에 접한) 한 게임 덕분이었습니다. "메크 워리어 2 : 31세기 전투(MechWarrior 2: 31st Century Combat)"


그보다 전에 선보였던 엑스윙(1993)이나 타이파이터(1994), 그리고 한글더빙판까지 나왔던 윙커멘더 3(1994)도 나름대로 좋았지만 크게 빠져들지 못했던 반면, 메크워리어는 제게 새로운 세계를 열어보여주었죠.




오프닝 한 방에 저를 사로 잡아서 SF의 세계로 끌고갔으니 말입니다.


시간이 흘러 현실성을 높인 "메크워리어 3" 시리즈, 그리고 마이크로 소프트에서 약간 액션성을 높인 "메크워리어 4"가 등장하고, 심지어 온라인도 나왔지만, 100인치 화면으로 표시된 게임 시연장에서 느꼈던 첫 장면의 그 충격은 지금도 잊을 수 없는 놀라운 장면으로서 제 상상의 시작을 불러왔습니다.

그리고 다음해 1997년 극장에서 "스타워즈"를 처음 보았을때 화면을 가득 메우는 우주선의 모습이 저를 완전히 SF로 끌어들였죠.


그렇게 20여년. 비주얼 스토리텔링과 디지털 스토리텔링의 세계를 꿈꾸는 저이지만, 한편으로는 "취미는 책, 취미 이외에도 책"을 중얼거리고 있으니 참 재미있는 일이죠.


책의 재미는 제 문화 생활의 원동력이었고, 친구와의 교류에 있어 첫 시작이기도 했기 때문에(4살 때쯤 동네 형들과 함께 놀면서 책을 보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제게는 매우 고마운 형님들이지만,얼굴도 기억 못하네요. 그때 읽은 책 일부는 기억하지만...) 책으로 펼쳐지는 무한한 상상력만큼은 결코 잊지 않습니다.


그렇기에 SF&판타지 도서관은 제게 있어서 매우 소중하고 중요한 공간. 요즘은 조금 방황하기도 했지만, 조금씩 마음을 다잡아가고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저를 SF에 몰입했던 동영상을 소개해 봅니다. 20년 전의 CG이기에 다른 분들껜 별로 매력적이지 않을지 몰라도, 지금의 제겐 여전히 SF의 꿈, 그 자체니까요. (사실, 제가 "브레이크 에이지"나 "프라레스 산시로" 같은 작품을 좋아하는 것도 사실 여기에서 기인했을지도 모릅니다.)



posted by 별을 좋아하는 표도기
SF 이야기 2015.02.26 00:01

올 8월말 일본의 톳토리에서 열리는 제54회 일본 SF 대회(코메콘) 참가가 잘 진행되는 것 같습니다. 사실 한국에선 참가비 입금도 제대로 안 되는 등 골치가 아팠지만, 일전에 참가했던 인연 덕분인지 게스트로 참가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54회 일본 SF 대회, 코메콘 공식 사이트)


여행 경비는 당연히 개인 부담이지만, 참가비만큼 부담이 덜한데다 게스트는 1명을 동반할 수 있는 만큼 좀 더 편하게 기획을 진행하고 할 수 있는 것이지요.


[ 도서관에 많은 도움을 주셨고, SF대회 진행자와의 인연을 맺게 해 준 박상영씨와 함께 기획을 진행했습니다. ]


"한국 SF를 일본 SF 대회에 알리고 싶다."라는 포부를 갖고 시작했던 기획... 제50회 일본SF대회(TOKON10)에서 진행했지만, 51회때는 시즈오카를 강타한 태풍으로 비행기가 결항되어 침통하게 포기... 52, 53회는 도서관 이전에다 결혼 등으로 정신이 없어 참가 못하고 이제야 조금 숨을 돌려서 재개...


앞으로는 매년 참가를 생각하지만 잘 될지는 해 봐야죠.(그래도 주로 미국에서 열리는 월드콘(세계SF대회)보다는 쉬운 편이니까요.)


전보다 도서관 규모도 커졌고 자료도 여러가지 준비를 했기에(51회때 나누어줄 예정이던 "K 박사의 연구 일어 번역판 인쇄물"이라던가...) 전보다는 재미있게 진행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만큼 업데이트를 하는 건도 말할 필요 없겠지만요.



일본 SF 대회는 1962년에 시작된 일본SF팬들의 행사입니다. 미국에서 시작된 세계SF컨벤션(월드콘)과 유사한 행사로 현재는 매년 1000명 이상이 참가하는 큰 규모의 잔치죠.


[ 2010년 TOKON10 개막식 행사장. 굉장히 큰 홀인에도 자리가 꽉 찹니다. 정말 장관! ]


참가비는 최소 1만엔(약 10만원)인데도, 이틀동안 진행하는 행사에 많게는 1500명 이상이 전국에서 모여드니 그 규모는 가히 놀랍습니다.


SF 동인지를 판매하거나 코스츔 플레이를 하기도 하지만, 주된 행사는 오프닝과 엔딩을 포함한 수십, 아니 백 단위가 넘는 기획.


[ TOKON10 행사장을 지켜준(?) 강화복. 녹슨듯한 연출이 멋지죠. 우와 갖고싶다! ]


[ 최근 신인상을 받으며 주목받는 신인과 작가와 원로들의 이야기. 저 중에 한국의 북쪽 나라 출신으로 일본에서 활동 중인 작가도 있습니다. ]



제가 했던 "한국SF로의 초대"처럼 SF를 좋아하는 이들이, SF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SF 이야기를 하는 것입니다.


그야말로 온갖 종류의 내용이 진행되는데 참 재미있습니다. (아쉬운 건 한 번에 여러 개의 기획이 진행되다보니 뭘 들어야 할 지 택일해야 한다는거죠. 보고 싶은게 2개 이상이면 하나 외엔 놓치고 맙니다.)



[ 일본의 한국만화팬 오가사와라씨가 진행한 한국 SF 만화 소개 코너. 아내분과 함께 하는 자리가 참 부러웠습니다.(이젠 아니지만.^^) 일본에 번역된 한국 SF, 판타지 만화가 대부분 일본의 팬들이 나서서 번역했다는게 인상적이었죠. 외국인에게 한국의 좋은 것을 소개하면, 그 중에 좋은 것을 그들이 알아서 찾는다는 제 생각을 응원해주는 듯 해서 좋았습니다. ]


그 중엔 일본팬이 진행하는 "한국SF만화 소개" 같은 코너도 있더군요. 늦은 시간에 진행되는데다, 비인기코너였기 때문인지 거의 저하고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만...^^


참 재미있는 행사입니다.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SF를 좋아하는 이들이 함께 합니다. SF팬이 개최하고, SF팬이 준비하며, SF팬이 모여 즐기는 자리죠. 정부나 회사가 나서는게 아니라 순수하게 SF를 좋아하는 이들이 즐기는 자리.



부부가 오는 건 기본, SF팬인 할아버지가 SF팬인 손자와 함께 찾아오고, 온가족이 SF이야기를 나눕니다. 행사중 재미있었던 것에 대한 팬투표인 암흑성운상에서 '코스츔상'으로 "하야부사"(기적적으로 돌아온 소행성 탐사선)의 코스츔플레이어가 소개될때, 하야부사의 귀환 캡슐 코스츔을 입은 '암흑성운상 발표자의 딸'이 함께 서는 등... 그야말로 세대를 넘어선 재미의 공유 정신을 느끼게 되죠. (암흑 성운상 대상은 '성운상 발표식의 VAIO'였습니다. 뭔지는 행사에 참가한 사람만 압니다.^^)


[ 멀리서 찍다보니 흔들린게 아쉬운 사진. 오른쪽이 하야부사 코스츔. 왼쪽은 하야부사의 귀환 캡슐. 둘다 싱크로율이 엄청나지요. ]


[ 하야무사 코스츔의 뒷 모습. 이온엔진 2개가 고장난 것까지 재현한게 놀라운 완성도. ]


2010년 행사장에서 여러가지 재미있는 일이 가득했지만, 4년이 넘게 흐른 지금까지 마음에 남는 두가지 말이 있습니다.


하나는 폐회식을 마치고 돌아다면서 참가자들 사이에서 우연히 들린 -제 마음을 너무도 잘 대변한- 말.


"이렇게 이틀동안 모든 걸 잊어버리고 노는 것도 정말 좋네."



그리고... 무엇보다도 기억에 남는 것은 2010년에 돌아가신 일본 SF 팬덤의 아버지이자, 제 마음의 스승이기도 한 시바노 타쿠미씨가 남긴 폐회사였습니다.


당시 도서관을 만들었지만, 여러모로 힘들어 방황하던 제게 커다란 이정표가 되었고, 지금도 제게 가장 소중하게 남아 있는 말.



"여러분 옆을 봐주세요. 모두 SF를 좋아합니다."



1998년 SF 홈페이지(훗날의 조이 SF클럽)를 만들고 막연하게 뭔가 해 보고 싶다고 생각하다 SF 파티라는 행사를 십수차례 열기도 하고, 동인지를 만들고, 나아가 도서관까지...


힘들고 아쉽고 관두고 싶다는 생각을 해 본 것이 한 두번이 아니었지만, 저 말을 떠올릴 때면 뭔가 마음이 꽉 차는 듯 하고 눈물과 함께 얼굴에 웃음이 떠오릅니다.


비록 규모로 작고 어렵고 힘들었지만, 그 순간 만큼은 SF를 좋아하는 모두와 함께 했다는 추억이 있었고, 그것은 제게 있어 더 없이 소중한, 행복한 시간이었으니까요.



[ 2010년에 마지막으로 열렸던 SF파티(페스티발). 10회를 넘도록 규모는 초라한 그대로였지만, 다들 재미있게 놀았습니다. ]



8월 29, 30일... 코메콘(톳토리의 일본 SF 대회명)까지 6달 정도 남았습니다.


저는 바로 그 날을 즐기길 기대하고 있습니다. 주변 어디를 둘러보아도 SF 팬으로 가득한 순간. SF를 좋아하는 이들과 함께 하는 시간... 인생에서도 손꼽는 행복한 순간이 될거라 기대합니다.



하지만 한국에서 그런 순간을 맞이할 수 있다면 분명히 더 좋을 것입니다. 아니 이제까지 SF&판타지 도서관에서 그 같은 시간을 통해서 즐거운 순간, 행복한 시간을 계속해 왔지요.



그리고 그 추억이 남아 있는 한, 저는 결코 제 삶을 후회하지 않을 것입니다. 아니 후회할지도 모르겠지만, 돌이키고 싶다고는 생각하지 않을 것입니다.


SF&판타지 도서관은, 그리고 제가 지금까지 해온 모든 일은 제 자신이 행복하고자 했던 것이며, 그 행복을 남들도 함께 하길 바라면서 해온 일입니다.



여러분의 주변에 여러분이 좋아하는 무언가를 좋아하는 사람이 있나요? 아니면 그런 사람들을 만날 기회가 있나요?



그렇다면 여러분은 충분히 행복해질 수 있습니다.


그렇지 못하나요? 만일 SF나 판타지를 좋아한다면, SF&판타지 도서관을 찾아와 주세요.


아니면 도서관의 이야기를 한번 살펴봐 주세요. 비록 간접적인 참여라도 그다지 멀지 않은 곳에 SF와 판타지를 좋아하는, 너무도 좋아하는 누군가가 있다는 것을 기억해 주세요.


일본 SF 대회는 바로 제게 그런 것을 기억하게 했던 소중한 추억입니다.

posted by 별을 좋아하는 표도기
SF 이야기 2015.02.25 00:22

흔히 SF에 대해 이야기하다보면, "SF는 과학적인 비판을 감수해야 하며 그래서 쓰기 어렵다."라는 이야기를 듣곤 합니다.


이를테면 "과학적 원리로서 말이 안 된다."라는 얘기가 나온다는 것이지요.


그런데 한가지 궁금한 점은 왜 SF에만 비판이 따라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인지입니다.


물론, 네이버 지식인 광고에서 "스타워즈 레이저검의 원리" 같은게 나오긴 했습니다. 하지만 이건 비판이 아니라 단지 궁금할 뿐이지요.



어차피 대다수 사람들은 SF건 판타지건 별로 다르게 보지 않습니다.


스타워즈에서 칼 들고 싸운다고 해서 판타지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냥 우주가 나오고 우주선이 나오고 로봇이 나오고 하니 'SF 겠구나...'라고 생각하죠.


아바타에서 행성 전체의 의식이 하나로 연결된 설정이 등장합니다. 이게 어떻게 가능한지 궁금해하는 사람은 별로 없습니다. 그냥 대다수 사람들은 그러려니...하고 보죠.



[ 한때 유행했던 공상과학대전. 고지라니 뭐니 하는 작품을 바탕으로 '과학적으로 말이 안돼'를 이용해서 이야기를 만든 재미있는 작품이다. ]



물론 과학적인 고찰이니 뭐니 하는 사람은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공상비과학대전"이나 "스타트렉의 물리학" 같은게 있군요.


하지만 이는 비판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여흥이었습니다.


"방사능으로 고지라가 되는건 말도 안돼."라고 말한다고 해서 "고지라가 재미없어."라는 말은 아닙니다.


단지 그 내용으로 '놀이'를 하고 싶을 뿐이지요.



[ 감마선에 의해 괴물로 변신한 헐크. 사실 감마선으로 이렇게 변하는건 과학적으로 '거의' 불가능하다. 근데 이걸 신경쓰는게 몇이나 될까? ]


고지라가 재미있고, 이야기가 그럴 듯 하다면 고지라가 방사능에 의해서 그렇게 되건, 우주 괴수라서 그렇게 되건, 아니면 세균 병기로 그렇게 되건 별 상관 없습니다. (물론 이야기 구조는 많이 달라질 수 있겠지만)



하지만 SF.... '과학 소설'이라고 부르는 분들이 글을 쓸 때 이런 걸 신경쓰기도 한다는 점입니다. 아니, 판타지나 무협, 추리라고 해도 별 차이는 없을 겁니다. 뭔가 설정이 100% 완벽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과학적으로 말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중요한 건 이야기가 얼마나 재미있는가 아닌가의 문제이지, 그 우주선이 하이퍼 스페이스를 통과하건, 알큐비에르 엔진으로 날아가건 하는게 아닙니다.


이야기가 재미없고 말이 안 되면 여러가지 비판이 따르게 마련입니다. 하지만 그것이 과학적으로 말이 되건 안 되건 상관없습니다.


어차피 SF의 과학은 진짜 과학이 아니라 상상 과학이니까요.


반드시 이루어져야 할 어떤게 아니니까요.



19세기에 쓰여진 쥘 베른의 "지구에서 달까지"는 사실 과학적으로 말도 안 됩니다. 하지만 글을 읽다보면 왠지 그럴 듯 해 보이고 정말로 가능하게 느껴집니다. 100년이 지난 지금도 말이죠.


"그냥 그럴 듯해 보인다."


이게 SF에서 말하는 과학적 상상력이고 가능성입니다.



때로는 '공상비과학대전'처럼 "과학적으로 말이 안돼."라는 사람이 나올지도 모릅니다. 설정에 오류가 있다고 열변을 토하는 분들이 계실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건 굳이 SF라서 나오는 말이 아니라, 단지 그런 딴죽을 걸고 싶은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럴 때 어떻게 할까? 


여기 한 사례가 있습니다.


어느날, 미국의 유명한 SF 드라마, "스타트렉"과 관련하여 한 사람이 제작진에게 스타트렉의 워프 엔진이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물었습니다.


그는 씩 웃으면서 이렇게 대답했다고 하죠.


"아주 잘 작동합니다. 감사합니다."



SF 속에서의 과학은 사실 그런 겁니다. 이야기의 진행에 충분할 만큼 잘 작동하기만 하면 문제는 없는 거죠. 이야기가 잘 진행된다면 그 속의 과학이 정확하건 아니건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반면 이야기가 엉성하다면 설사 과학적인 설정이 아무리 정확해도 재미없는 건 재미없는 겁니다.


그리고 SF의 재미는 과학에서 나오는게 아니라 '과학적 상상'으로 펼쳐낸 이야기에서 나오는거죠.

posted by 별을 좋아하는 표도기
SF 이야기 2015.02.24 00:11

  이번에 네이버 웹 소설 공모전의 최종 심사를 진행하였습니다. 약 1달여에 걸쳐 47개 작품을 읽고 그 중 추천작을 골라서 심사위원의 대화를 거쳐 3개의 대상작을 선정... 참 힘들었지만, 재미있고 보람있는 일이기도 했지요. 하지만 한가지 아쉬운 일이 있었습니다.


  바로 대상 작품 3개 중 SF가 하나도 없었습니다. 아니, 최종 추천작 중에서도 하나도 없었고 최종 심사 후보작 중에서도 거의 없었습니다. 여러가지 이유를 고민하면서 SF라는 이름의 무게에 눌린게 아닌가 생각되더군요. 


  SF, Science Fiction.... 많은 팬이 '과학 소설'이라고 부르는 이름에 질려서 SF 자체에 경기를 일으킨 것이 아닐까 하고 말이지요.


  사실 SF라고 해서 뭔가 특별하고 거창한 것만을 생각할 필요는 없습니다.


  이번 공모전에서 '파운데이션'이나 '당신 인생의 이야기'나 '2001년 야화'나 '프라네테스' 같은 작품을 바란게 아니었습니다.


  제가 바란 것은 은하영웅전설이나 마일즈 보르코시건 연대기, 또는 성계 시리즈나 무책임함장 같은 스페이스 오페라, 또는 견인도시 연대기나 메트로 시리즈, 메이즈 러너 같은 포스트 아포칼립스, 아니면 베르나르 베르베르나 마이클 크라이튼처럼 쉽게 읽히는 작품이었거든요. 아니면 슈퍼 히어로나 금서목록 같은 초능력물이라도 좋았어요. 물론 이들에 맞먹는 수준을 바란 것도 아니었습니다. 아마추어로서 가볍고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정도로 충분했습니다.



[ 우주 무협지라고? 그럼 어때, 재미있으면 그만 아닌가? ]


  하지만 그런 작품은 없었습니다. 최종 후보작에도, 최종 후보작에 들지 않은(적어도 제가 본) 작품 중에도...


  참 안타까운 일입니다. 한국에는 김상현씨의 '하이어드', 이종호씨의 '피라미드' 정도를 빼면 여러 권의 장편 SF가 거의 없습니다. (이재창씨의 '기시감'도 있군요.) 은하영웅전설처럼 가볍게,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작품을 찾기 힘듭니다.


  오늘 나온 이야기 중에서 '스릴러'와 '미스터리'에서도 비슷하다는 얘기가 있었습니다. 많은 SF 기획자들이 마이클 크라이튼이나 베르나르 베르베르, 또는 스타워즈 같은 작품을 SF가 아니라고 무시하듯, 많은 미스터리 팬이나 기획자가 히가시노 게이고 같은 이의 작품을 '수준 낮다'라고 얘기하는 것 말이지요.


  조금 이상합니다. 취향의 차이는 분명히 존재할 수 있겠지요. 하지만 '수준 낮다'라고 이야기하는 기준은 뭘까요? 마츠모토 세이초나 요코미조 세이조 같은 작가 작품만 미스터리고 히가시노 게이고나 미야베 미유키는 미스터리가 아닐까요? 셜록이나 CSI 같은 드라마를 보고, 명탐정 코난 같은 만화나 소년탐정 김전일 같은 만화영화를 보고서 '미스터리가 좋아'라고 말하면 안 되는 걸까요?


  SF도 마찬가지입니다. 꼭 테드 창이나 그렉 이건만 봐야 하고(반드시 봐야 하고?) 아시모프나 하인라인을 모르면 안 되고, 블레이드 러너나 2001년 스페이스 오딧세이만 봐야 하는 걸까요? 베르나르 베르베르나 마이클 크라이튼, 아니면 스타워즈나 아바타, 어벤져스를 보고 'SF도 재미있네.'라고 하면 안 되는 걸까요? 아니, '스즈미야 하루히의 우울'이나 '에반게리온'을 보고 'SF는 뭔가 특이하네.'라고 하면 안 될까요?


  미국이나 일본의 SF 붐은 하드 SF로부터 시작된게 아닙니다. 아이작 아시모프도 펄프 잡지를 열심히 보고, 슈퍼맨 같은 만화책에 빠져들곤 했으며, 고마츠 사쿄나 츠츠이 야스타카도 캡틴 퓨처나 화성의 공주 같은 스페이스 오페라를 즐겨 보았습니다.



[ 캡틴퓨처 같은 스페이스 오페라가 일본에서 더티페어를 낳고, 이게 다시 미국에서 그래픽 노블로 제작된다... ] 


  한국의 1세대 SF 팬들은 아이들용의 '아이디어 문고' 같은 작품을 보고 자라났고, 라이파이나 로보트킹, 20세기 기사단 같은 작품에 열광하며 성장했습니다.


  한국의 SF 현황은 캡틴 퓨처나 벅 로저스가 최신 유행으로 인기 끌던 일본의 195~60년대, 슈퍼맨에 열광하며, E.E.스미스와 에드거 라이스 버로우가 호평받던 미국의 192~30년대와 비교해서 그다지 나은게 없습니다. 양적으로 질적으로(특히 양적으로), 충분하지 못한게 사실입니다.


  최신의 SF 작품을 선호하는 건 좋습니다. 심각하고 진지한 하드 SF를 즐기는 것도 좋습니다. 하지만 '하드 SF만이 SF고, 그렇지 않으면 SF가 아니다'라고 말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SF&판타지 도서관을 운영하면서, 하드 SF 팬의 수는 생각만큼 많지 않으며, 전체 SF 팬의 극소수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비록 하드 SF 팬의 목소리가 많이 나오고, 하드 SF팬 취향의 기획이 넘쳐나지만, SF를 좋아하는 사람 대부분은 SF가 재미있어서, 즐겁고 놀라워서 본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라이트 노벨이건, 스페이스 오페라건, 아니면 만화책이건, 애니메이션이건 상관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아바타를 보건, 퍼시픽림을 보건, 아니면 스타크래프트를 하건, SF의 재미를 느끼는데는 별 차이가 없음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좀 더 편하게, 그리고 즐겁게 SF를 만들었으면 좋겠습니다. 아바타 같은 3D 영화만이 SF 영화가 아니라, 비카인드 리와인드처럼 쌈마이 스타일로도 SF 영화는 만들 수 있는 것처럼, 과학 공식이 잔뜩 흘러나오고 양자 역학이니 상대성 이론이니 하는게 없어도 SF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면 좋겠습니다.


  스페이스 오페라건, 포스트 아포칼립스건, 슈퍼 히어로건, 아니면 거대 로봇과 괴수 이야기건 상관없습니다. 일찍이 요코야마 미츠테루가 '철인 28호'로 과학 기술의 양면성을 보여주었고, '고지라'로 과학이 가져오는 재앙과 과학의 가능성을 보여주었듯이, 테즈카 오사무가 '철완 아톰'으로 로봇과 인간의 공존을 그렸고, 이시노모리 쇼타로가 '사이보그 009'로 개조 인간의 고뇌를 그렸듯이, 그리고 마츠모토 레이지가 '은하철도999'로 우주 여정의 다채로운 가능성을 보여주었듯이 어떤 이야기이건 SF로서의 과학적 상상력은 충분히 그려낼 수 있습니다.


  여기에 뭔가 심각한 고뇌와 진리는 필요하지 않습니다. 좀비 이야기라고 해서 반드시 차별이나 사회적인 무관심을 이야기할 필요도 없습니다. '레지던트 이블(바이오해저드)'처럼 액션물을 만들어도 좋고, '세계대전 Z'처럼 '어떻게 좀비를 때려 죽일까?'만 연구해도 좋습니다. 주제 의식에 얽매여서 또는 '과학적 상상력'에 집착하여 머리를 썩힐 필요는 없습니다.


  SF의 S는 과학의 S이며, SF의 F는 상상의 F입니다. 그리고 둘 중에 F... 즉 '상상'에 방점이 찍혀 있습니다.


  상상 속의 세계에서 상상속의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그것에 약간의 과학을 양념으로 치고 무엇보다도 재미있게 이야기를 구성하면 그것이 SF가 되는 것입니다.



  네이버 웹 소설 공모전에서 다음 번에는 판타지와 SF가 아닐 것입니다. 하지만 언젠가는 또 다시 판타지와 SF 공모전을 진행하겠지요. 아니 반드시 네이버가 아니라도 좋습니다. 어디에서든 공모전을 하게 될때 즐겁고 재미있는 SF, 유쾌하고 다채로운 작품을 접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심각한 얼굴이 아니라 즐거운 마음이 넘쳐나는 얼굴로 볼 수 있는 SF가 많이 나오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3작품 중 최소한 1개는 SF를 선정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개인적으로는 3개 다 SF면 더 좋겠지만, 그건 바라지 못하겠기에...)


  그리고 'SF는 재미있구나. 나도 써 봐야지.'라는 사람들이 많이 나오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그 중에서 정말로 다채로운 작품이 쏟아져나오는 가운데 하드 SF팬들도 만족할 수 있는 그런 작품이 선보이길 바랍니다. 한달에 나오는 SF를 하나 둘 세면서 다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뭘 골라서 봐야 할지 한참을 고민하게 되길 바랍니다.

posted by 별을 좋아하는 표도기
SF 이야기 2015.02.18 01:25

1967년의 오늘. 미국의 물리학자 로버트 오펜하이머가 사망했습니다.



[ Buffalo News의 Adam Zyglis가 그린 오펜하이머 ]


'맨하탄 프로젝트'에 깊이 관여하고 뛰어난 리더십으로 사실상 "원자폭탄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사람이지요. (그가 별 역할을 못했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하지만 재미있는 것은 그가 핵폭탄 개발에 최선을 다했던 것이 핵폭탄을 통해서 "전쟁의 무의미함"을 보여주고 싶었기 때문이라는 점입니다. 그는 인류를 멸망시켜 버릴지도 모르는 폭탄을 보게 되면 더는 전쟁을 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의 열정은 대단한 것이었고, 그의 능력도 탁월한 것이었지만, 그가 생각했던 것과 달리 핵폭탄은 사람들에게 '전쟁의 무의미함'을 느끼게 해 주지 못했습니다.


강력한 위력에 충격을 받은 이들은 너도 나도 없이 핵병기 개발에 열중하고 인류가 멸망할지도 모르는 위기가 찾아오게 된 것입니다. 이후 오펜하이머는 아인슈타인 등과 함께 원자폭탄의 사용과 수소폭탄 개발에 반대하여 모든 공직에서 쫓겨나고 말았습니다. 결국 그는 자신이 만들어낸 재앙이 수없이 증식되는 모습을 바라보며 쓸쓸히 물러나야만 했지요.


하지만 한편으로 '전쟁을 막고자 하는' 그의 의도는 성공했다고 볼 수 있었습니다. 냉전이라는 시기가 찾아왔기 때문이죠. 두 거대 강대국이 인류를 멸망시킬 수 있는 무기로 서로를 겨누는 상황에서 전면전은 그야말로 자신의 목을 조르는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한국 전쟁, 베트남 전쟁, 그리고 아프카니스탄 침공 등 크고 작은 전쟁은 있었지만, 제3차 세계대전만은 일어나지 않았던 것은 결국 오펜하이머가 만들어낸 핵폭탄의 덕분일지도 모릅니다.


물론 이 역시 그의 의도는 아니었고, 단지 운이 좋았기 때문이라고 해야 할지도 모릅니다. 사실 쿠바 사태나 베를린 위기처럼 전면핵전쟁이 일어날 뻔 했던 일은 결코 적지 않았거든요.



흔히 과학자들은 상상력이 풍부한 사람이라고 생각되기도 합니다. 무언가를 구체적으로 떠올리는 상상(Imagine)이라는 것은 단순한 망상이나 공상과 달리 아는게 많고 생각을 많이 한 사람에게 익숙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되면 어떻게 될까?"라는 상상은 어느 정도 근거가 필요하며 고민을 해야만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 만큼 아는게 많고 여러가지 생각을 하는 과학자들은 분명히 상상력이 뛰어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들의 상상력이 반드시 적절하다고 할 수 만은 없습니다.


실례로 오펜하이머는 핵폭탄이 완성되면 "전쟁의 무의미함"을 느낄 거라고 상상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권력자들이 핵폭탄의 위력을 두려워한 나머지 도리어 그 핵폭탄을 더 열심히 만들거라는 상상은 하지 못했습니다.



문득 일본에서 '인분고기(즉 똥으로 만든 고기)'를 만든 과학자가 떠오릅니다.


그 분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인분 고기는 친환경적인 음식이므로 사람들의 인식이 바뀌었으면 좋겠다."



[ 똥으로 만든 고기를 들고 있는 미츠유키 이케다 박사 ]


이 과학자분은 분명히 뛰어난 능력을 갖고 있을 것입니다. 사실상 음식의 찌꺼기인 똥으로 고기를 만들었으니까요. 하지만 사람들이 그 고기를 별로 좋아하지 않을거라는 것은 생각하지 않고 오직 "사람의 인식이 바뀌기만"을 바라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그 고기를 어떻게 생각할지... 도저히 상상하지 못한 것입니다.


그렇기에 그 고기를 사료라던가, 아니면 다른 방법으로 활용하는 것을 생각하지 않고 "친환경적인 식품이니 사람들이 먹어야 한다."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반면, 80여년 전 '감자', '배따라기' 등의 작가인 김동인씨는 한국 최초의 창작 SF 중 하나로 알려진 "K 박사의 연구"에서 똥으로 대체 식량을 만드는 K 박사라는 사람의 비극(?)을 그려냈습니다. 시식회에서 맛있게 먹은 사람들이 재료를 밝히자마자 토하고 난리가 나는 광경을 통해서...


80년전의 작가. 당연히 과학적 지식은 일천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는 최소한 똥으로 음식을 만들었을때 사람들이 좋아하지 않으며, 속아서 먹고난 뒤에는 어떻게 반응할지 정도는 상상할 수 있었습니다.


[ 김동인. 그는 SF작가가 아니지만, 과학적 상상력을 갖고 있었습니다. ]



1929년의 오늘 '일본 SF의 혼'이라 불리는 작가이자 편집자인 후쿠시마 마사미가 태어났습니다. 그는 50년 넘게 계속되는 SF 잡지 '일본 SF 매거진'을 창간하고 최초의 성공적인 SF 문고(그리고 일본 작가의 작품으로만 1000권이 넘게 나온) '하야카와 SF 문고' 등을 만들고, 일본 SF 작가 협회를 만든 사람으로서 기억됩니다.


[ 후쿠시마 마사미의 회상록. '미답의 시대'. 초기 일본 SF사를 잘 알게 해 주는 책이다. ]


48세의 나이에 요절했지만, 그가 남긴 족적은 엄청난 것이어서 그가 아니었다면 일본 SF의 역사가 완전히 바뀌었을 것이라고 여겨질 정도죠.


한편 그는 잡지의 편집장으로서 SF와 관련하여 다양한 논쟁 거리를 던진 사람으로도 유명합니다. 그 중 하나로 'SF를 부르는 이름'이 있습니다.


당시 일본에서는 SF(Science Fiction)를 과학소설로 부를 것인가. 아니면 공상과학으로 부를 것인가 하는 논쟁이 있었습니다. 문학 출신의 평론가들은 SF는 과학이 중요하니 '과학 소설'이라고 부르자고 주장했는데, 이에 대해 후쿠시마 마사미를 비롯한 SF팬들은 SF는 어디까지나 꾸며진 이야기이고 자유롭게 가능성을 생각해야 하므로 '공상 과학'으로 불러야 한다고 했습니다. 이 같은 논쟁 끝에 일본에서는 공상 과학이라는 용어가 좀 더 널리 사용되며 한국에까지 유입되었습니다.


이 이야기에서 중요한 것은 SF를 무어라고 불러야 하는가가 아닙니다. (사실 한국에서는 '공상'이라는 말이 상당히 부정적인 느낌이 있는 만큼 '공상과학'은 SF팬들에게 호감을 살만한 용어는 아닙니다. 경기를 잃으키며 부정할 필요는 없겠지만.)


중요한 것은 바로 SF(Science Fiction)에서 과학의 S가 아니라 가상(상상, 공상?)의 F가 중심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F에서는 단순히 '과학'만이 아니라 이야기를 이끌어내는 '사람'도 생각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로버트 오펜하이머는 분명히 탁월한 과학자였지만, 그들은 사람들의 행동을 상상하지 못했습니다. 그 결과 핵폭탄을 만드는데 열정을 쏟았고 결국은 자신이 만들어낸 절망의 무게에 눌리고 말았습니다.


결과적으로 냉전이 찾아와 3차 대전이 진행되지 않았지만, 그것은 단지 우연에 지나지 않습니다. 어쩌면 정말로 핵전쟁이 일어나고 인류는 멸망했을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그러지 말라는 법이 없습니다.)


로버트 오펜하이머에게, 그리고 맨하탄 프로젝트의 과학자들에게 충분한 '과학적 상상력'이 있었다면, 그들은 핵폭탄이 가져올 끔찍한 미래를 떠올릴 수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들에겐 '과학'은 있었으되, '상상'이 없었고, 결국 인류가 자신을 몇 번이고 멸망시킬 핵폭탄을 소유하는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로버트 오펜하이머가 죽고 20여년의 시간이 흐른 뒤, 미국의 한 방송국에서 영화를 틀어주었습니다.


"그날이 오면(The Day After)"이라는 이름의 그 영화는 핵전쟁이 일어나고 미국의 한 지방 도시가 핵 공격을 받은 이야기를 담은 내용이었습니다. 평화로운 느낌의 전원 도시 외각에서 핵폭탄이 터지는 장면에서 영화는 극적인 반전을 맞이합니다. 오염된 땅은 흙을 완전히 바꾸어야만 농사를 지을 수 있게 되고,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갑니다. 그리고...





방송이 끝나고 방송국에서는 여러 과학자를 초빙하여 대담을 진행했습니다. 동시에 시청자의 의견을 듣기 위한 전화를 열어두었지요.


그러나 대담이 끝날때까지 방송국에는 한 통의 전화도 걸려오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이 방송을 안 본 것이 아니었습니다. 사람들은 너무도 충격을 받은 나머지 전화를 걸 생각조차 못한 것이었습니다.


이제껏 '핵전쟁이 일어나도 나는 괜찮겠지.'라고 생각했던 사람들. '핵전쟁을 일으켜서라도 적을 무찔러야 해.'라고 생각했던 사람들은 과학적 상상력으로 만들어낸 영화의 장면에 빠져들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미국 전역에서 수많은 반전, 반핵 단체가 늘어나고 핵폭탄을 줄여야 한다는 의견이 더욱 늘어나게 됩니다. 이러한 분위기는 결국 미국과 소련의 중거리 핵무기 감축 협상과 전략 무기 감축 협정으로까지 이어지게 됩니다...



게시판에서 한 분이 '과학은 인간에 대한 긍정을 만들어낼 수 있나요?'라는 질문을 했습니다.


이에 대해 저는 이렇게 말하고 싶습니다.


'과학은 인류를 발전시킬 수 있다. 하지만 상상이 없는 과학은 그 발전을 잘못된 곳으로 이끌 수 있다.'



2월 18일. SF에서 과학이 중요한지 상상이 중요한지의 논쟁을 격화시킨(한편으로는 일본의 SF 문화를 발전시키는데 이바지한) 한 작가이자 편집자가 태어나고, 인류를 위해 자신의 능력을 다해 노력했지만 결과적으로 인류를 위기에 빠뜨렸던 과학자가 사망한 이날만큼은, 우리에게 '과학'도 중요하지만, 그 이상으로 '과학적 상상(SF)'이 중요하다는 것을 한번 생각해 보면 좋겠습니다.



posted by 별을 좋아하는 표도기
SF 이야기 2015.02.17 02:56

2월 17일 오늘은 이탈리아의 철학가이자 사상가인 조르다노 브루노가 종교 재판을 거쳐 화형에 처해진 날입니다.





로마 카톨릭의 도미니코회의 수사로서 철학, 과학 등에 폭넓은 지식을 갖고 각지에서 학문을 가르친 그는 “우주는 무한하게 퍼져 있고 태양은 그 중 하나의 항성에 불과하며 밤하늘에 떠오르는 별들도 모두 태양과 같은 종류의 항성이다.” 같은 무한 우주론을 비롯한 각종 발언으로 이단으로 몰려서 처형되고 말지요.


화형을 당하던 그 순간 브루노는 이렇게 말합니다.


“말뚝에 묶여있는 나보다 나를 묶고 불을 붙이려 하는 당신들 쪽이 더 공포에 떨고 있다.”



오랜 옛날부터 혁신적인 주장은 사람들의 두려움을 불러온 했습니다. 그들은 그 두려움을 극복하지 못한 나머지 그 주장을 일방적으로 배격하고 심지어는 말살하고자 합니다. 하지만 그것이 진정으로 올바른 내용이라면 결국은 그 내용은 자연스레 밝혀지게 됩니다.


왠지 "최후의 날 그후"라는 SF 단편집 중 존 윈덤의 "바퀴"라는 작품이 떠오릅니다.


핵전쟁으로 멸망 직전에 몰렸던 인류는 기술이 재앙을 가져왔다고 생각하면서 기술의 사용을 이단이라고 가로막습니다. 한 소년은 그것이 위험한 일임을 모르고 우연히 '바퀴'를 발명하고 사용하게 되고 그것이 드러나면서 처형될 위기에 몰립니다. 할아버지는 자신이 바퀴를 만들었다고 꾸미면서 대신 처형됩니다.

그리고 손자에게 말해주죠.


"사악한 건 바퀴가 아니라 두려움이란다, 데이비. 그걸 꼭 기억해라."



오랜 시간이 흐르고, 조르다노 브루노의 가설이 맞았다는 것이 입증되면서 그는 과학의 순교자로서 기억됩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사악한 건 두려움이다."라는 말을 다시 떠올리게 되지요.


아무리 다른 것이라도 한번은 돌아볼 수 있는 것, 듣기 싫은 말이라도 귀를 열어보이는 것. 그것이 바로 인류를 이끌어준 과학의 모습이며, 우리 인류가 발전해온 길입니다.



여기서 주의할 점이 있습니다. 우리는 아무리 허황된 이야기라도 아무리 다른 것이라도 일단 눈과 귀를 열고 마음을 열어서 받아들일 필요가 있습니다. 하지만 일단 받아들인 이후에는 우리의 이성으로 그것을 판단하고 평가해야만 합니다. 그것이 정말로 맞는 것인지 아닌지 말이지요.


선입견이나 편견, 그리고 고집 등의 이유로 무조건 받아들이지 않는 것은 좋지 않으며, 다르다는 이유로 차별하는 것도 옳지 않지만, 이성을 거치지 않고 무조건 받아들이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설사 틀린 이야기라고 해도, 다른 내용이라도 배격하거나 비방할 필요는 없겠지만, 잘못된 것을 무조건 받아들이는 것도 안 됩니다.


그리고 주장하는 이들도 어쩌면 자신의 생각이 틀렸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번쯤은 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조르다노 브루노의 가설은 타당했기에 훗날 받아들여지게 되고 그를 순교자로 기억합니다.


하지만 자신의 생각이 틀릴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지 않고 무조건 옳다고 말하면서 자신을 순교자라고 생각하는 것도 마찬가지로 바람직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다른 이들의 평가와 의견은 무시한채 자신의 고집스러운 말만 반복하는 것은 자신들을 틀리다고 말하는 조르다노 브루노를 두려워한 나머지 화형에 처한 당대의 '겁쟁이들'과 다를게 없기 때문입니다.



참고 : 오늘의 SF - 2월 17일


여담) "최후의 날 그후"는 핵전쟁 이후 문명이 붕괴된 세상을 소재로 한 단편 SF 모음집입니다. 내용 하나하나가 마음에 와닿고 만족스러운 명작으로 제가 보았던 SF단편집 중에서 가장 좋아하는 책이기도 하죠. 기회가 되신다면 꼭 읽어보시길 권합니다.(아쉽게도 절판되어 도서관 등에서만 볼 수 있습니다.)




posted by 별을 좋아하는 표도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