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 이야기 2016.11.09 17:10

미국 대선이 종식되었습니다.


참 충격적인 결말이지만, 이미 일어난건 어쩔 수 없죠.


중요한 것은 이 결말 이후입니다. 우리는 아직 몸과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았습니다.


[ 디트로이트의 현재. 기대하세요. 이제 세계 전역이 이렇게 바뀔 것입니다. ]



이에 대비하기 위한 작품을 소개해 봅니다.


- 소설 분야

1. 울

2. 더 로드

3. 루시퍼의 해머

4. 해변에서

5. 트리피드의 날

6. 핵전쟁 뒤 최후의 아이들

7. 최후의 날 그후


- 만화 분야

1. 생존게임

2. 드래곤 헤드

3. 브레이크 다운

4. 일본 침몰

5. 소년 표류 EX

6. 북두의 권

7. 모래돌이


- 영상 분야

1. 매드맥스

2. 나는 전설이다.

3. 그날 이후

4. 혹성 탈출

5. 뉴욕 탈출

6. 소년과 개

7. 설국 열차


- 게임 분야

1. 라스트 오브 어스

2. 스토커 트릴로지

3. 메트로 2033 시리즈

4. 폴아웃 시리즈

5. 웨이스트랜드 시리즈

6. 레이지

7. (아이 홀로 생존 게임을 진행하는...) 포켓몬스터.... 



그리고 무엇보다도..


Make America Great Again: The Trump Presidency


를 해 봅시다......-_-;;;;;;;;;;;;;;;;;;;;;;;;;;;;;;;;;;;;;;




posted by 별을 좋아하는 표도기
분류없음 2015.06.25 21:18

  1993년에 공개된 “쥬라기 공원”은 세계에 큰 충격을 안겨 주며 인기를 끌었습니다. 티라노사우르스가 대중의 아이콘이 되고, 랩터가 관심을 끌며 공룡 붐을 일으켰죠. 그후 쥬라기 공원은 2편, 3편으로 이어지며 공룡 붐을 이어갔고 나름 인기를 끌었습니다.

  하지만 3편에 이르러 쥬라기 공원의 약발은 상당히 떨어져 버렸습니다. 무엇보다도 ‘공룡만 보여준다고 다가 아니다.’라는 것을 알게 되었죠. 그래서 2001년 이후 쥬라기 공원 시리즈는 중단되어 버립니다. 사실상 프랜차이즈의 종막이었다고 해야 겠군요. 유니버설 스튜디오에 쥬라기공원 놀이 기구는 항상 만원이었지만, 영화는 끝난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3편으로부터 자그마치 14년만에, 그리고 1편으로부터 22년만에 속편이 등장한 것입니다. “쥬라기 월드”라는 이름으로...


  “쥬라기 월드”는 번번히 실패하던 쥬라기 공원을 제대로 된 모습으로 완성시킨 ‘테마 공원’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완전히 망해버려서 테마공원이 아니라 지옥이 되어 버린 섬은 쥬라기 공원을 세웠던 해먼드의 유지를 이은 갑부의 손에 의해 부활하여 하루에 2만명이 넘는 관람객이 방문하는 테마 공원으로 성장합니다.


  그리고 수많은 공룡을 보여주며 인기를 끌게 되지요.


  쥬라기 월드를 운영하는 측에서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이대로는 `요즘 아이들은 공룡을 코뿔소 보듯 한다.`라면서 어떻게든 새로운 공룡을 만들어야만 관광객을 끌어들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결국 그로 인해 유전자 개조 공룡을 만들고 사건이 일어나는 것이지요.


  그러나 쥬라기 월드가 이렇게 될 이유는 없었습니다. 솔직히 쥬라기 월드가 운영 측의 생각만큼 폭발적인 성공을 거두지 못하는 것은 사람들이 공룡들에 익숙해져라기보다는 쥬라기 월드가 공룡 테마파크로서의 완성도가 미숙하기 때문이라고 보기 때문이지요.



[ 쥬라기 월드의 문이 열린다. 뭔가 재미있어야 할텐데... 별로 기대가 되지 않는건 왤까? ]


  영화 속의 테마파크, 쥬라기 월드는 공룡을 보여줌으로서 사람들을 끌어들입니다. 이를 위해 놀라운 기술을 잔뜩 도입하고 있지요. 하지만 테마공원에는 그 이상으로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바로 꿈과 모험의 세계를 탐험한다는 즐거움을 주고 유지하는 것이죠. 이는 놀이기구나 동물로만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세계의 환상을 지키기 위한 여러 가지 노력이 결합되어 이루어집니다. 무엇보다도 관람객들을 즐겁게 만들고 싶다는 마음에서 비롯되는 것입니다.


  쥬라기 월드에는 공룡이 있고 이를 위한 최첨단 기술이 있습니다. 투명 유리로 된 자이로스피어를 타고 공룡 사이를 지나는 경험은 쥬라기 월드에서만 할 수 있는 최고의 희열이겠지요. 하지만 그뿐... 쥬라기 월드에는 그 이상의 매력이 없습니다. 모사사우르스가 먹이를 먹는 장면은 분명히 놀랍지만, 그 하나로 땡, 이를 보기 전까지 기대감을 이끌어내는 연출도 없습니다.

  그 밖에도 많은 부분에서 쥬라기 월드는 테마공원이라기보다는 학술 동물원 같은 느낌으로 연출하고 끝냅니다. 마치 전시물만 잔뜩 늘어서 있는 대한민국의 국립과학관을 보는 기분이라고 해야 할까요?


  무엇보다 테마공원의 또 다른 주역인 직원들이 엉망입니다.


  최고의 볼거리 중 하나인 자이로스피어가 눈 앞에 도착한 순간 뭔가 멋진 디자인이 눈길을 끌고 기대를 가질까 하는데, 졸린 목소리로 "잘 놀다오세요"를 연발하는 직원 때문에 재미가 뚝 떨어져 버립니다. 너무 기대하다 실망할 수도 있지만, 기대는 대개 즐거움을 더하게 마련인데, 직원의 무관심과 무성의가 그 기대를 망칩니다.

  수익 우선이기 때문인지 쥬라기 월드에는 직원이 별로 보이지 않는데(어떻게 자이로 스피어 시설에 직원 하나 뿐?) 그 얼마 안 되는 직원은 테마공원의 직원으로서 필요한 최소한의 훈련도 안 되고, 마음도 없어서 쥬라기월드의 재미를 이끌기는 고사하고 죽이고 있죠.



[ 자이로스피어. 굉장한 놀이기구겠지만, 기대를 망치는 시작이 뭔가 영 아니다. ]


  공룡만 있으면 사람들은 쥬라기 월드를 가겠지만, 몇 번이고 다시 오게 하고 싶다면 그 이상의 것이 필요합니다. 값도 비싸고 거리도 멀어서 접근하기 힘든 상황, 주변에 놀 거리는 더 이상 없는 만큼 쥬라기 월드를 찾은 사람은 며칠 씩 머물게 마련인데, 그동안 지루하지 않게 그 세계를 즐기게 해주지 않는다면 다시 찾을 맛이 나지 않을 겁니다.


  거대하고 특이한 공룡을 내세운 신규 이벤트가 있어봐야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겁니다. 아무리 공룡이 멋지고 대단하면 뭘 하나요. 공룡을 보는 걸 제외하면 지루하기 짝이 없는걸.


  2만 명의 사람이 관람하려면 줄도 많이 서겠죠. 그럴수록 그 지루함을 덜어주는 뭔가가 필요하지만 쥬라기 월드에는 그게 없습니다. 


  하지만 영화를 보면 쥬라기 월드가 그모양 그꼴인게 이해됩니다. 쥬라기 월드를 운영하는 사람이 `방문객의 재미` 따윈 관심 없거든요. 공원이 어떤가라는 회장의 질문에 ‘이익률이 올라갔다.’란 대답 밖엔 떠오르지 않고 수년 만에 조카가 찾아와도 일 밖엔 생각하지 않는 사람이 전체 운영을 총괄하고 있으니 그 테마공원이 재미있을 리가 없습니다.


  공룡 테마 공원을 운영하는 사람이 공룡엔 거의 관심이 없고, 관광객은 돈 줄로 밖에 보지 않는 상황에서 그곳이 얼마나 매력을 줄 수 있을까요?



[ 더 크고 시끄럽고, 이빨이 더 많다... 오직 그것만으로 관객이 열광하고 감동할까? ]


  그러니 그냥 "무조건 크고 굉장한 새 공룡"만 생각하는 겁니다. 기존의 공룡만으로도 연출과 구성에 따라 얼마든지 재미를 줄 수 있을 텐데도 그들에겐 그게 떠오르지 않는 겁니다. (이건 `관광객이 즐기고 있냐?`라고 묻는 회장도 별 차이 없어 보입니다.)


  게다가 어떤 콘셉트인지도 전혀 알 수 없는 광장과 왜 있는지 모를 ‘이노베이션 센터’를 보면, 이건 그냥 시장 바닥이나 별 차이가 없습니다. 테마 공원엔 반드시 필요한 두근거림따윈 전혀 느껴지지 않습니다.


  그런 면에서 영화 속의 쥬라기 월드는 사람에 무관심한 과학만능주의 테마공원의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으며, 스토리에는 어울린다고 생각됩니다.(제작진이 의도했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하지만 현실에 그런 데가 있다면 솔직히 잘 될 것 같지 않습니다. `공룡`이라는, 다른 데서는 볼 수 없는 콘텐츠가 있으니 분명히 1번은 가보겠지만, 그 힘든 길을 딛고서 2번 가보고 싶은 설렘도 추억도 없으니까요.


  마치 공룡만 보여주면 된다고 생각하며 대충 만들어 실망을 준, 쥬라기 공원 3편과 같은 것이 아닐까요?



여담) 사실 이건 한국의 대다수 테마공원도 마찬가지일지 모릅니다. 롯데월드도 서울랜드도, 에버랜드도. 솔직히 갈데가 없으니 가긴 하지만, 별로 재미있지 않거든요.

  뭔가 테마공원이란 분위기가 아니라 그냥 놀이기구를 대충 모아놓은 야시장이란 느낌이에요. 놀이기구 타기 말고 할 만한 게 없습니다.

  일본에서 가 보았던 하우스텐보스, 디즈니랜드, 유니버설 스튜디오는 달랐습니다. 솔직히 놀이기구는 몇 개 안되지만, 세심한 부분까지 `테마공원`을 보여주다보니 거리를 다니는 것만으로도 즐겁거든요. 해리포터 구역에선 3시간이나 기다려야 탈 수 있지만, 기다리는 시간조차 주변을 구경하느라 정신없고 기대감에 가슴이 뜁니다.


  한국의 테마공원에는 그 같은 기대도, 설렘도 존재하지 않으며, 오직 놀이기구를 타는 그 순간의 희열 밖에는 없습니다. 지루한 기다림 끝에 잠깐 반짝하고 마니 추억엔 남지 않으며 다시 와야 겠다는 마음이 별로 들지 않습니다.


  한국의 민속촌 정도만이 상당히 테마 공원에 가깝다고 할 수 있습니다. NPC들도 잘 되어 있고 말이죠. 그건 민속촌이 어떻게 하면 관람객을 즐겁게 할까를 고민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트위터를 보아도, 민속촌을 돌아다녀도 그런 걸 잘 느끼게 되죠. 하지만 여러 외국의 테마 파크와에 비길 정도는 아닙니다.

  시설만 있지 사람이 없는 국립과학관 같은 덴 아예 논외라고 할 수 있겠군요. 기구가 낡았거나 아니거나가 문제가 아니라, 아예 관람객 자체에 관심이 없는 느낌이니까요.


  가상 세계의 테마공원이라 할 수 있는 게임을 제작하는 사람으로서, 그리고 게임 제작을 가르치는 사람으로서 그러한 테마공원의 재미를 느낄만한 데가 별로 없다는 사실이 정말로 안타깝습니다. 테마공원의 재미를 느껴야 가상 세계에서나마 그런 걸 살릴 수 있도록 노력할텐데 말이지요. 그리고 테마공원을 통해서 게임의 세계를 더욱 즐겁게 만드는 것도 느낄 수 있을텐데...



[ 불프로그의 테마파크 월드. 전작 테마파크에 이은 게임으로 그래픽도 향상되고 뭔가 달라졌지만, 어딘지 재미가 덜하다. 테마 공원을 운영한다는 느낌을 잘 살리지 못하고 게임으로서 뭔가 부족하기 때문? ]



posted by 별을 좋아하는 표도기
SF 이야기 2015.06.08 22:51

다음 주 쥬라기 월드 개봉에 앞서 쥬라기 공원 1~3편을 도서관에서 보았습니다.


  1편이 가장 재미있다는 감상평에는 이의가 없고 3편은 뭔가 좀 허전하다는 인상도 여전하지만, 그럼에도 3편 모두 ‘공룡’이 등장한다는 사실만으로 즐겁게 감상할 수 있는 작품이었지요. 특히 공룡이 없음에도 진짜 있는 것처럼 연기했던 연기 솜씨 하나만으로도 만점을 주기에 부족함이 없습니다.


  쥬라기 공원은 공룡 붐을 일으키며 사람들에게 공룡에 대한 관심을 불러주었습니다. 공룡에 대한 대중의 인식을 고정시켜 버리고 여러 가지 해석이 가능한 과학적 가설을 ‘영화 속 이론’에만 고정하여 생각하게 만드는 등 문제도 있었다고 하지만(가령 실제의 벨로시랩터는 그처럼 큰 공룡도 아니었고, 근래에는 ‘깃털’이 달렸을 가능성이 대두되고 있죠.), 공룡이라는 존재는 문화 상품으로 이끌어내어 다양한 모습을 생각하게 해 준 것은 분명히 대단한 일입니다.



[ 최근의 랩터 추정도 중 하나 뭔가 포켓몬 보는 느낌도 있다. ]


  ‘나무의 수액이 굳어져서 만들어진 호박이라는 보석 속에 들어 있는 모기의 몸에서 공룡의 혈액을 추출하여 공룡을 부활시킨다.’라는 흥미로운 상상력은 과학적인 진위 여부는 별개로 사람들에게 그럴듯하다는 느낌을 심어주고 공룡 붐을 이끌었습니다.


  하지만 쥬라기 공원 시리즈를 볼수록 뭔가 납득하기 어려운 점이 있습니다. 바로 “쥬라기 공원은 정말로 불가능한가?”라는 것이지요.


  영화 속에서 말콤 박사는 말합니다.


  “자연과 같은 혼돈계를 통제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결국 통제는 무너지고 만다.”


  하지만 “쥬라기 공원 1”에서 공원을 통제 불능의 위기에 빠뜨린 것은 통제 시스템 자체를 파괴하는 행위가 존재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소설과는 완전히 다른 내용으로 바뀌어 버린 “쥬라기 공원 2”에서도 파괴 행위가 없었다면 인젠의 공룡 포획 작전이 실패하지 않았을 것이며, –영화 속에서는 도저히 드러나지 않는 의문의- 선원 참살 상황이 없었다면, 티라노사우르스가 대도시 한복판에서 날뛰는 상황은 오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리하여 “쥬라기 공원 3”로 연결(?)되는 일도 없었겠지요.


  물론 인사는 언제나 발생할 수 있습니다. 체르노빌이나 후쿠시마처럼 말이지요. 하지만 “쥬라기 공원”은 원자력 발전소가 아닙니다. 분명히 과거에 지상 최강의 동물이었다곤 해도, 여하튼 6500만년 전에 멸종한 동물... 적어도 지금의 견해로는 ‘문화’를 갖고 있지 않은 야수를 가둔 장소거든요.


  쥬라기 공원의 실패는 혼돈 이론이 아닙니다. 단지, 방향성이 잘못되었을 뿐이죠. 무엇보다도 공룡은 너무 강하게 설정했고, 반면 공룡에 쫓기는 인간들은 너무도 무력하게 설정되었습니다.

  영화 속 상황을 살펴볼 때 인간과 공룡이 만나는 상황은 대개 공룡이 훨씬 많거나 큰 쪽이었고, 인간은 맨손에 아무런 장비도 갖고 있지 않았습니다.


  아니, 장비를 갖고 있다손 쳐도 대개 혼자, 그것도 맹수라 할 수 있는 공룡 쪽이 압도적으로 유리한 상황에서만 만나게 됩니다. 인간이 자연스레 당할 수 밖에 없는 상황에 놓이게 되는 것이지요.


  “쥬라기 공원”을 만든 해먼드는 공룡을 부활시키는데 엄청난 돈과 시간을 쏟아 부었지만, 이들을 ‘안전하게’ 관리하는 데는 거의 투자를 하지 않았습니다. 소설은 좀 더 낫지만, 영화 쪽을 생각해 보면 그 넓은 시설을 관리하는 시스템을 제어하는 사람이 고작 2명. 안전 요원 1명. 그밖에는 한 명도 직원이 없습니다.


  처음에 랩터를 옮길 때부터 안전 관리가 최악이라는 것을 잘 보여주었습니다. 아니, 두 개의 철창을 연결해서 랩터를 옮기는데 두 철창을 제대로 고정하는 장치도 없고 손으로 격벽을 잡아서 올리다니요. 랩터보다 훨씬 작고 약할 것 같은 맹수를 옮길 때조차 그보다는 나을텐데 말이죠.


  “쥬라기 공원”은 공룡들을 바로 눈앞에서 볼 수 있다는 것이 장점인 곳입니다. 그것도 어린이를 포함한 대규모 투어 형태로 말이지요. 공룡은 아니지만, 동물들을 눈 앞에서 보는 곳이라면 현재도 있습니다. 바로 동물원이죠. 동물의 생태를 좀 더 가깝게 느끼는 것으로는 “사파리”가 있습니다.


  동물원과 사파리의 특징은 동물들을 격리하고 감시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점은, ‘그들 동물의 능력으로 쉽게 나올 수 없는 곳’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동시에 관람객들이 동물을 쉽게 볼 수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쥬라기 공원은 그렇지 않습니다. 쥬라기 공원은 구역과 장벽이 있긴 하지만, 사실상 밀림입니다. 넓이는 너무도 넓고 공룡은 여기저기 흩어져서 관광객들이 쉽게 볼 수 없습니다. (초반에 관광 투어를 진행했지만, 공룡을 기대했던 사람들은 아무 것도 보지 못하고 실망했죠.) 당연히 감시와 관리가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병이 나거나 어디서 죽어도 알 수 없는 상태이며, 단지 먹이를 이용해서 유인할 수 있을 뿐이죠.(그나마 공룡이 마음 내킬 때만)


  그렇게 생각할 때 쥬라기 공원은 해먼드 회장 자신이 말했듯, “케냐 국립공원” 같은 장소라고 볼 수 있습니다. 동물들이 자연 생태계에서 살고 있고, 그들을 살펴보고 싶은 이들은 많은 돈을 내고 찾아가서 가이드 겸 보호자와 함께 차량을 타고 돌아다니는 곳 말이죠.



[ 아프리카의 사파리 투어. 차 위는 열려 있지만, 안전을 준수하도록 한다. 물론 사고는 본인 책임... ]


  이것은 ‘아이들’과 함께 편하게 갈 수 있는 장소가 아닙니다. 하루 종일 달려서 겨우겨우 동물을 발견할지도 모르는 상태인데다, 굉장히 위험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자나 치타 정도라면 자동차 안에 있는 것으로 안전할 수 있겠지만, 코뿔소 정도라도 되면 차를 뒤집고 부수는 일도 충분히 가능하니...


  하물며 그 대상이 공룡이라면 실수로 전력이 끊어지면 무용지물이 되는 전기 철책 하나만 믿고, 허름한 자동차 한 대로 관광할 수는 없습니다. (전기 철책은 조심스레 만질 때나 통용되지 공룡이 잘 모르고 들이받으면 그냥 부서질 겁니다. 학습해도 죽지 않는 걸 안다면 들이받을지도 모르죠.)


  영화 속에선 티라노나 스피노사우루스가 철책을 간단하게 부수고 나오지만, 그들이 뚫고 나오지 못할 정도의 장벽은 그다지 어려운 게 아닙니다. 티라노의 몸무게는 2~7톤. 돌진력은 대형 트럭 정도입니다. 대형 트럭을 막는 장벽을 만들면 됩니다. 스피노도 8~9톤 정도로 티라노와 비교해서 대단한 수준이 아니죠. 하물며 랩터라면 더욱 어렵지 않습니다.


  쥬라기 공원의 실패 원인은, 먹이를 주어서 사육하는 동물원 같은 환경을 만들어두었으면서도 정작 국립공원 같은 장소로 완성했다는 겁니다. 게다가 사파리처럼 공룡을 가까이에서 볼 수 있게 했으면서, 티라노는 고사하고 랩터에게조차 무력한 자동차를 사파리용으로 사용했다는 것입니다.(심지어 잠금장치까지 없는!)


  처음부터 동물원이나 사파리 형태를 생각했다면 상황은 달라졌을 겁니다. 공룡들은 좀 더 좁은 장소에 눈에 잘 띄게 배치될 것이고, 관광객들은 쉽게 그들을 만날 수 있을 것입니다. 관광객들은 더욱 튼튼한 철창과 두꺼운 강화 유리 사이로 그들을 볼 수 있으며, 험비보다도 튼튼한(아마도 경장갑차 정도 될 만한) 사파리 차량을 타고 그들 사이를 지나갈 수 있겠지요.


  오키나와의 대형 수족관에는 자그마치 60cm에 달하는 아크릴 유리가 사용되어 있습니다. 높이 8.2m, 폭 22.5m로 유리가 있다는 걸 생각하지 않고 볼 수 있을 만큼 엄청나죠. 티라노사우루스의 전신을 보기에도 충분하고도 남습니다.



[ 거대한 고래 상어를 한 눈에 볼 수 있는 츄라우미 수족관. ]


  이 정도면 랩터 정도는 간단히 막을 수 있으며, 티라노도 쉽게 파괴하지 못합니다.(티라노가 7톤에 가까워도 7톤 트럭과는 다릅니다. 그만한 강도도 아니며, 최대 속도로 단단한 물체와 충돌하면 티라노도 무사하지는 못합니다.) 그래도 위험하다면 두께를 더 늘리면 되지요. 관객의 안전을 생각한다면 그 정도 쯤, 당연한 거 아니겠습니까? 만일 그 같은 벽을 만들기 힘들다면 땅을 파고 가두어 두는 것도 방법이죠. 동물원의 맹수관처럼 랩터나 티라노가 뛰어오르기 어려운 높이로 말이죠.


  사파리처럼 하고 싶었다면, 좀 더 튼튼한 차량을 사용하면 되었을 것입니다. 험비보다 튼튼한 정도로 말이죠. 경장갑차 정도라면 어떨까요? 물론 두꺼운 강화유리로 창을 내고, 안전할 때는 밖으로 나가서 볼 수 있도록. 경장갑차라도 중량 10톤은 가볍게 넘으니 티라노가 어찌할 수 있는 상대는 아닙니다.(여담으로, “쥬라기 공원 2”에서 나왔던 차량도 중량은 티라노보다 무거울 겁니다. 45인승 버스가 공차 중량이 12톤에 달합니다. 바퀴가 안 달렸다면 티라노가 움직이기에는 조금 힘들겠죠.)

  아니면 헬기를 타고 감상하는 건? 티라노가 눈앞에 나타났을 때 승용차 정도로 무사할거라 생각하는 관광객은 없을 테니 안심시키기 위해서도 그편이 나을 겁니다.


  결국 “쥬라기 공원”의 실패는 인간의 오만이나 자연의 힘이 아닙니다. 단지 동물을 다루는 공원으로서 기본적으로 지켜야 할 안전 수칙을 무시했던 공원 제작자의 잘못입니다.


  자연을 인간의 노력으로 통제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강한 힘을 가진 무언가를 제어하려면 그만한 힘이 필요하게 마련이며, 지나친 힘은 반작용을 가져올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공룡은 자연 재해와 같은 거대한 힘이 아니라, 지금 인간이 가진 문명의 힘으로 얼마든지 관리할 수 있는 존재입니다. 대다수 공룡은 인간보다 훨씬 작고, 대다수 공룡은 인간의 도구보다 연약합니다. 영화 속의 랩터는 인간보다 훨씬 크지만, 사실상 고양이과의 맹수와 비교해서 탁월하게 강력한 게 아닙니다. 그리고 아시는 바와 같이 그 고양이과의 맹수들은 대부분 멸종위기에 몰려 있습니다.


  이번에 개봉할 영화 [쥬라기 월드]에서 드디어 쥬라기 공원이 ‘쥬라기 월드’라는 이름으로 운영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관객들은 안전한 환경에서 공룡들을 감상하고 있죠. 이번의 위기는 ‘유전자 조작’에 의한 괴물인데...(사실 “쥬라기 공원” 속의 공룡들도 정확히는 공룡을 닮은 유전자 조작 괴물이지요.) 티라노보다 크고, 랩터보다 똑똑한 살인 괴수...라고 해야 할까요?



[ 쥬라기 월드의 한 장면. 투명한 창 밖으로 공룡을 감상한다는게 인상적이지만, 역시 얇팍한 강화유리일 뿐. ]


  하지만 공룡이 얼마든지 숨어 다닐 수 있는 국립공원 같은 환경에서 사파리처럼 감상할 수 있는 “쥬라기 공원”, 또는 “쥬라기 월드”라는 시설이기에 역시 위험한 것이지, 좀 더 안전한 시설이었다면, 훨씬 안전한 이야기가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했다면, “쥬라기 공원”이라는 영화가 인기를 끌 수는 없었겠지요. 


  영화적 연출, 또는 소설적 연출을 위해서 당연히 문제가 생길만한 상황을 배치하고 이야기를 이끌어 내는 건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그러니까 이 얘기는 단지 ‘이래도 되지 않을까’라는 상상일 뿐이죠. 그리고 가끔은 프랑켄슈타인 증후군(인간이 만들어낸 존재가 인간에게 해를 끼친다는 생각)이 아닌 기술이 펼쳐내는 밝은 미래를 다룬 이야기도 보고 싶은 마음입니다.



여담) 고 마이클 크라이튼은 일찍부터 프랑켄슈타인 증후군의 작품을 집필했습니다. ‘기술이 가져오는 무서운 결과’를 내세우는 작품으로서 테크노 스릴러라 불리죠. 분명히 이야기들은 재미있지만, 이를 위해서 지나치게 작위적인 상황을 만들어내는 것이 조금 아쉽습니다.

  마이클 크라이튼은 말콤이 자신의 대변자라고 했는데, 사실 영화나 소설 속 말콤도 쥬라기 공원을 안전하게 만드는 방법을 얘기하는게 아니라 무조건 '잘못되었다'라고만 말하죠. 수학자 쪽이라서 그렇다고 할 수 있을지도?


여담2) 영화적 연출이겠지만, 랩터나 티라노에게 살아있는 먹이를 주는 것도 사실은 이상했습니다. 살아있는 먹이를 주는 것은 맹수에게 사냥을 가르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가르치지 않아도 사냥은 할 수 있겠지만, 일부로 가르칠 필요는 없겠지요. 영화 속 설정에 따라 움직이지 않는 존재를 볼 수 없는 티라노라고 해도 먹이가 내는 냄새 정도는 맡지 않겠어요? 피 냄새라던가. 게다가 염소나 소를 기르다가 그대로 주기보다는 죽여서 보관해두었다가 주는 게 훨씬 편할 테고요. 

posted by 별을 좋아하는 표도기
별 작품 이야기 2015.06.05 20:45

저는 포스트 아포칼립스 이야기를 좋아합니다.

 

그 중에서도 매드맥스나 폴아웃 같은 황폐한 세계를 무대로 펼쳐지는 모험의 이야기를 가장 좋아하는 편이죠.


그래서 매드 맥스 시리즈를 좋아하는데, 아시는 분도 계시겠지만 사실 매드맥스는 2가 진정한 포스트 아포칼립스이고 1은 로드무비, 3는 거의 판타지에 가까운 작품이라 뭔가 부족한 느낌이죠.


이번에 매드맥스가 새롭게 만들어지면서(전작과는 전혀 이어지지 않는 완전히 새로운 시작) 과연 이 세 작품 중 어느 형태를 따라가게 될지 조금 걱정했습니다. 특히 3편 비욘드 선더돔은 솔직히 2에 비해서 너무 부족했거든요.


다행히도 매드맥스 : 분노의 도로는 2의 느낌을 계승하는 작품, 즉 황폐한 세계를 무대로 하는 질주극이었습니다.



매드맥스 시리즈의 특징은 1편을 제외하면 사실상 맥스가 활약하는 일이 많지 않다는 겁니다. 영웅이라기보다는 어쩌다보니 동참하게 된 인물. 하지만 그가 더해짐으로써 이야기는 좀 더 흥미롭게 변해가고 무언가의 질서가 망가지면서 상황은 바뀌는 것입니다.


매드맥스 : 분노의 도로 역시 그 점은 마찬가지입니다. 영화 내내 맥스의 활약은 생각보다 많지 않습니다. 전형적인 할리우드 액션 영웅과는 너무도 다른 모습이죠. 하지만 그것이 좋은 의미에서의 배신으로서 관객을 즐겁게 해 줍니다.



이야기는 매우 단순합니다. 한 지역에 물을 장악하고 무기와 연료를 손에 넣으면서 지배하는 패자가 있습니다. 그 중 한 사람이 패자의 아내(라기보단 소유물이나 애 낳는 도구)들과 함께 도망치면서 이야기는 시작되죠. 추격자 중에 한 명이 맥스를 '피주머니(수혈용 도구)'로서 데리고 갔다가 그들과 합류하게 되고, 추격전이 벌어집니다.


영화의 전체 내용은 사실상 사흘 정도의 짧은 기간에 일어나는 일이며 90%가 자동차 추격전으로 진행됩니다.


정말로 쉴 틈이 하나도 없습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아주 사정없이 몰아치고 있거든요.


자동차가 자동차를 쫓고, 싸움이 벌어진다는 아주 단순한 내용이지만, 그러한 이야기가 매우 효과적인 연출과 전개로서 완벽하게 채워집니다. 그냥 아무 생각 없이 보고 있으면 됩니다. 그것만으로 이 세계의 모습이 흥미롭게 다가오고, 기대하게 하며, 그 기대를 만족시키게 되죠.


맥스 하나만을 보는 영화가 아닙니다. 볼거리가 넘쳐나고 활약이 넘쳐납니다. 그리고 조연들의 활약 하나하나도 부족하지 않고 즐거움을 줍니다. 엑스트라라 생각했던 인물들마저도 개성적이고 매력적이니까요.



2D로도 충분히 재미있지만, 영화는 3D에 적합하게 만들어졌습니다. 장면 하나하나 구도 하나하나 모두 3D를 상정하고 3D에서 최고의 만족을 주도록 만들어졌습니다. (4DX도 괜찮겠지만, 4DX에서 본 사람의 얘기론, 엄청나게 신나고 재미있지만, 무진장 피곤하다고 합니다. 실제로 그렇게 생겼어요.^^)



반드시 '극장'에서 봐야만 하는 영화. 절대로 놓쳐선 안 될 영화라는 말은 바로 그 때문입니다.


누군가가 얘기했습니다.


"어벤져스는 집에서 TV로 봐도 되지만, 매드맥스는 극장에서 봐야해."


제 개인적으로는 완전히 동의하기 어렵지만, 적어도 매드맥스는 극장에서 봐야 한다는 말에는 동감합니다.


아직 보지 못하셨다면, 편안한 마음으로 달려가서 매드맥스를 보세요. 결코 극장에 찾아간 일을 후회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처럼 부담없이 신나게, 그리고 지루하지 않게 만족할 수 있는 영화는 정말로 드물기 때문이죠.



여담) 포스트 아포칼립스 작품으로서의 매드맥스는 상당히 충실한 느낌입니다. 이리저리 끼워맞추어 개조한 자동차의 모습만으로도 이 세계가 '새로운 것을 만드는 세계'가 아님을 잘 보여주고 있지요.

  여기에 총 조차 흔치 않은 상황에서 화염병이나 창 같은 걸 무기로 사용하는 모습. 인간의 육체 노동으로 움직이는 승강기 등 정말로 작은 부분까지 충실하게 신경쓴 모습이 엿보입니다.


  제가 가장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수없이 쌓여 있는 '핸들'을 무기처럼 들고가는 장면이었지요. 자동차를 운전하는 것 자체가 '전사'라는 설정을 매우 잘 보여주는 장면...


  매드맥스라는 세계가 정말로 살아있다는 것을 느끼게 하는 부분은 그 밖에도 엄청나게 많으며 지극히 자연스럽게 느끼게 해 준다는 점이 더욱 매력적입니다.




posted by 별을 좋아하는 표도기
작가이야기 2015.03.01 22:40

  세계의 수많은 신화를 살펴보면, 인간은 신에 의해서 탄생되었고 이 세계에 존재하게 되었다. 절대적인 존재로서 신들은 인간을 만들어냈을 뿐만 아니라 그들의 삶을 마음대로 하게 되었다. 신에 대항하는 것은 용납되지 않았고, 세계의 수많은 전설 속에 그들의 슬픈 이야기들만이 창조주에 도전했던 이들의 슬픈 말로를 전해주고 있을 뿐...

  그렇지만 여기 한 가지 이야기가 있다. 신이 아닌 인간에 의해 탄생한 존재로서 그들의 창조주에 도전했던 용기 있는 이들의 이야기……. 그리고 이야기의 창조주로서 그들에게 의지를 불어넣은 사람의 이야기…….


SF 세계의 제페트 할아버지, 이시노모리 쇼타로(石ノ森章太郎)



이시노모리 쇼타로 일대기


  ‘가속 장치가 달린 만화가’, ‘사이보그의 창조주’, ‘초인전대물의 창시자’... 이시노모리 쇼타로는 참 다양한 이름으로 불린 일본을 대표하는 만화가 중 하나이다.

 1938년 1월 25일 미야기 현의 이시모리(그의 예명은 여기에서 나온 것으로 본명은 오노데라 쇼타로(小野寺章太郎)이다.)에서 태어난 그는 어릴 때부터 만화에 몰입하여 그야말로 적극적으로 뛰어들었던 지금으로 말하자면 오타쿠 소년이었다.

  아니, 단순히 자기 혼자 그리고 마는 것에 그치지 않고, 중학교 1학년 때 동네 친구들을 모아 [먹물 한 방울-墨汁一滴-]이라는 이름의 동인지를 만들기도 했고, 자신의 만화를 남들에게 보여주고 싶다는 마음을 억누르지 못하고 신문 등에 수없이 투고를 한 끝에 중학교 2학년 때는 “마이니치 중학생신문”에서 4컷 만화로 입선하기도 했을 정도.

  일찍부터 만화가로서의 가능성에 적극적으로 도전하던 그는 고교에 입학한 후에는 “만화 소년”에 투고한 동료들과 더불어 “동일본 만화 연구회”라는 모임을 만들고 역시 동인지 제작에 뛰어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러한 소문이 퍼진 덕분인지, 다음 해(1953년) 이미 [철완 아톰] 등을 통해 만화계에서 명성을 떨치고 있던 테즈카 오사무씨로부터 ‘일을 도와주었으면 좋겠다.’는 전보를 받고 그 즉시 학교를 휴학하고 도쿄로 진출, 문하생으로서 활동을 시작했다.(학교를 쉬고 만화가를 돕기 위해 뛰어간 오노데라 소년도 오노데라 소년이지만, 고등학생에게 도와달라고 연락을 한 테츠카씨도 역시 묘하다고 할지? 결국 둘 다 만화를 그리고 싶어 여념이 없는, 말 그대로 만화광(狂)이라고 할 것이다.)

  이듬해, 그는 “만화 소년 신년호”를 통해 [이급천사(二級天使)]라는 작품으로 연재를 개시. 고교 졸업도 하지 않은 상태로 프로로서의 데뷔에 성공했다.


[ 테즈카 오사무 캐릭터에 가까우면서도 독창성을 보여준 이급천사 (c) 石ノ森章太郎 ]

  56년에 고교를 졸업한 그는 그 즉시 다시 상경했고, 만화가로서의 생활을 시작했다. 특히, 두 번째로 옮겨간 숙소가 바로 테즈카 오사무를 중심으로 수많은 만화가들의 전국 시대가 펼쳐진 토키와장(トキワ荘). 그곳에서 그는 [불새 마타로]를 포함하여 수많은 작품을 탄생시켰지만, 같이 상경하여 생활을 돕던 누나를 잃는 비극을 겪기도 했다.

  테즈카 오사무 밑에서 활동하는 것은 그에게 큰 도움을 주었다. 1959년 그는 테즈카 오사무의 제안으로 토에이의 만화 영화 [서유기]의 제작에 참가했고, 이제껏 만화 밖에는 모르던 그가 영상이라는 새로운 가능성에 눈을 뜨게 된 것이다.

  1961년. 이시노모리 쇼타로는 해외여행이라는 새로운 체험을 갖게 되었다. 바로 슈에사의 취재 기자와 동반하여 시애틀의 “SF 컨벤션(세계SF대회)”에 참여한 것이다. 전세계 SF작가와 팬이 집결하는 이 행사가 그에게 어떤 역할로 다가왔는지는 알 수 없지만, 이날 이후 이시노모리씨의 작품 세계는 SF를 중심으로 돌아가기 시작한다.


  1963년 “스튜디오 제로”라는 애니메이션 회사를 공동 설립한 이시노모리 쇼타로는 다음해 테즈카씨의 중매로 결혼을 마치고, 바로 그 해(1964년), 자신의 대표작이자 일본 SF 만화를 상징하는 걸작, [사이보그 009(サイボーグ009)]를 탄생시켰다.


  일본 최초의 개조 초인 이야기라 할 수 있는 이 작품은, 무기상인 블랙 고스트라는 집단에 의해 탄생한 초인(병기)들을 주역으로 전쟁의 슬픔과 아픔을 충실하게 그리고 있으며, ‘세계를 좌우하는 무기상인’이라는 새로운 형식의 악당을 선보임으로서 깊은 인상을 주었다. 인간의 마음을 지니고 있지만, 전쟁 병기로서의 기계 몸을 지닌 사이보그들……. 그러한 기계 몸과 마음의 부조화로 인한 슬픔은 필립 k. 딕의 작품에 못지않게 일본의 사이버 펑크물에 영향을 주었다. (그만큼 수많은 팬들을 이끌기도 했지만 한편으로 난해하고 어두운 작품이었기에 몇 차례의 연재 중단을 겪어야 했는데, 결국 블랙 고스트와의 대결을 거쳐 괴물섬, 지하 제국, 그리고 마지막에서는 진정한 창조주인 신과의 대결에 돌입하는 부분까지 연재된 이래 미완으로 끝나 아쉬움을 남기기도 했다.)


[ 뮤턴트 사브. 이 작품을 시작으로 그의 세계는 초인들의 비극을 충실하게 다루게 된다. (c) 石ノ森章太郎 ]


  [사이보그 009]의 대 성공에 이어 이듬해(1965년) 소년 선데이에서 역시 어머니의 사고로 인해 초능력을 갖고 태어난 소년 사부의 활약을 그린 [뮤턴트 사부(ミュータントサブ)]라는 작품으로 그의 화려한 시대의 막이 올랐다. (이 작품은 단편으로 비정기 연재되면서도 꾸준히 계속된 [사이보그009]와 마찬가지로 이후에도 시리즈로 제작되었다.)


[ 환마대전. 당시로서는 드문, 공저 체제의 작품이었다. (c) 石ノ森章太郎 ]


  1967년. 소설사 히라이 카즈마사(平井和正)씨와 과거, 현재, 미래에 걸쳐서 전개 되는 요마와 인류의 대결을 그린 작품, 환마대전 외에도 여러 작품을 선보인 그는 1971년. 가면 라이더(仮面ライダー)를 통해 고지라, 울트라맨에 이은, 일본을 대표하는 변신 초인의 특촬물 시대를 여는데 이바지했다.



[ 40주년을 넘어... 지금도 라이더의 이야기는 계속된다. (c) 石ノ森章太郎 / 東映 ]


  [인조인간 키가이더](1972), [비밀 전대 고레인저(秘密戦隊ゴレンジャー)](1975) 등의 원작으로 다채로운 특촬물의 가능성을 선보인 그는 그 후에도 수많은 초인물로서 팬을 이끌었다.


[ 호텔. 이 작품으로 그는 일본 호텔 스쿨 교육 센터 평의원으로 취임했다. (c) 石ノ森章太郎 ]


  1980년 이후에는 상당한 명작으로 만화가 협회 만이 아니라 경제 협회에서도 인정받은 [호텔], [만화 일본 경제 입문] 등의 경제 만화를 선보였고, 1986년에 “이시노모리”로 개명한 후에는 일본 만화계의 발전을 위한 다양한 이벤트를 주최하고 협회를 발족하는 등 후진 양성 및 만화 산업의 성장에 많은 노력을 기울이기도 했다.(1997년 우리나라에서 열린 아시아 만화 대회에서 아카데미 대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그렇듯 마지막까지 만화의 가능성에 매진했던 그는 1998년 1월 28일. 도쿄 오차노미즈의 병원에서 영원한 잠에 빠져들었다. 그의 많은 활약을 기리는 뜻에서 그의 모든 작품에 대해 문부대신상을 비롯한 수많은 상이 수여되었고, 만화계에 대한 공헌을 기념하여 테즈카오사무 문화상 특별상을 수여했다.


  그렇게 그는 자신이 꿈꾸던 미래를 향해 여행을 떠났지만, 그를 사랑하는 수많은 팬들은 관심을 지금도 사라지지 않고 있다.

  지금도 많은 이에게 기억되고 있는 이시노모리 쇼타로. 그를 기념하는 뜻에서 고향 나카다쵸에는 “이시노모리 쇼타로 고향 기념관”이 세워졌고, 미야기현에서 “이시노모리 만화관”을 개설하여 많은 관심을 끌고 있다.

  지금도 “이시노모리팬”을 자처하는 여러 작가들에 의해 그의 작품이 리메이크되고 있는 가운데, 애니메이션 외에도 가면라이더 시리즈를 비롯한 특촬물 시리즈가 꾸준히 제작되어 그의 기억을 되살려주고 있다.


이시노모리 프로 공식사이트 : http://www.ishimoripro.com

이시노모리 만화관 사이트 : http://www.man-bow.com/manga


[ 그의 고향 이시노모리에서는 거리 곳곳에서 수많은 캐릭터를 만날 수 있다. ]


* 토키와장 - 1953년 테즈카 오사무의 입주를 시작으로 생겨난 일종의 인재 양성소. 이시노모리 쇼타로 외에도 [오바케Q타로]의 아카즈카 후지오, [도라에몽]의 후지코 후지오 등이 함께 입주하여 활동한 곳으로 유명하다.(입주하지 않은 이들도 때때로 그곳에 들러 그룹으로 활동했다.) 이곳에는 수많은 라이벌이 존재하고 있었으며 즐거운 이야기 속에서도 원고에 대한 정열을 서로 공유할 수 있었다고 한다. 게다가 때로는 서로 아이디어를 공유하기도 하고 나아가 함께 작품을 만들기도 하는 등 협력 체제 속에 수많은 명작을 남기고 있다. 토키와장 자체는 오래 전에 철거되어 사라진 작은 아파트에 지나지 않지만, 최근에도 “디지털 토키와장” 등의 프로젝트명으로 등장할 정도로 일본 만화계에선 중요한 위치를 점하고 있다.


SF 속에서 살아갔던 만화가


[ 009. 그는 아홉 명의 사이보그 중 최강을 자랑한다. (c) 石ノ森章太郎 ]


  이시노모리 쇼타로의 작품 [사이보그 009]의 주역인 사이보그 009(제로제로나인)은 다른 00 사이보그들의 장점을 함께 융합하고 있다는 설정을 갖고 있지만, 사실 유별나게 뛰어난 능력을 보유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는 001처럼 초능력을 갖고 있는 것도 아니고, 002처럼 하늘을 맘대로 날거나 003처럼 귀와 눈이 특출하게 좋은 것도 아니다. 물론 온 몸이 무기로 되어 있지도 않고(004), 힘도 유별나게 센 것은 아니며(005), 불을 뿜거나(006), 변신을 할 수도 없다.(007) 물론, 물속에서 숨이 막힐 일은 없지만, 물고기처럼 활약하는 것(008)도 불가능.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00 사이보그 중 최고로 군림할 수 있는 것은 그에게 남들과는 다른 한 가지 능력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가속 장치’라 불리는 그 능력은 009 자신을 남들보다 수 십 배 빠른 속도로 움직이게 해 준다. 남들 눈에는 그야말로 사라진 것처럼 보이게 되는 그 힘은 반대로 009의 눈에 남들이 정지된 것처럼 보이게 만들고, 이 상태에서는 그 누구도 009를 대항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상대 역시 가속 장치를 달고 있는 경우가 아니라면.)

  00 사이보그로 테스트를 마친 블랙 고스트는 그 후 가속 장치를 단 적수들을 꾸준히 그들에게 보내오는데, 009 만이 그들을 상대할 수 있다는 것은 말할 필요가 없는 것. 주역인 그의 활약으로 유명해진 가속장치는 이후 수많은 작품에 영향을 주어 오마주와 패러디가 양산되기에 이른다... 갑작스레 이 이야기를 꺼낸 것은, 도키와장에서 일할 당시(아니 그 이후에도) 이시노모리 쇼타로씨에게 붙어 다니는 별명이 바로 그것이었기 때문이다.


  “가속 장치가 달린 만화가”


  그 별명 그대로 그는 남들은 상상할 수 없는 속도로 수많은 작품을 양산하고 엄청난 업적을 이루어 놓았다.

  1960~70년대라는 짧은 시간 동안 그가 이룬 일은 그야말로 한 두 가지 아니다. 이를테면 [가면 라이더]의 원작을 쓰고 있을 당시, 그는 다른 잡지에서 [이나즈맨]이라는 작품을 연재하고 있었고, 동시에 [인조인간 키카이다]를 연재하고 있기도 했던 것이다.(그로서는 [이나즈맨]에 신경쓰느라 [키카이더]는 문하생들에게 상당 부분 맡기곤 했다.)

  이렇듯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활동이 가능하게 된 것은 어째서일까? 물론 그가 미래에서 온 존재이고 진정으로 ‘가속 장치’를 갖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보다는 그가 진정한 만화광이고 그만큼 창작 욕구로 가득 차 있기 때문이 아닐까? 그리고 이시노모리 팬을 자처하는 수많은 이들은 바로 그의 그런 창작 욕구에 이끌린 것이 아닐까 한다.




창조주에 도전하는 존재들, 초인들의 세계

[ 이시노모리의 여러 캐릭터. 초인없이 그의 작품을 논할 수 없다.  (c) 石ノ森章太郎 ]


  [철인 28호], [바벨2세] 등으로 잘 알려진 만화가 요코야마 미츠데루와 마찬가지로 이시노모리 쇼타로도 초인을 주역으로 하는 작품들이 많지만, 그의 작품은 능력을 갖고 태어나거나 혹은 닌자처럼 수련에 의해서 초인으로 성장/변화하는 요코야마의 작품과는 달리, 다른 이들에 의해 강제적으로 힘이 주어지는 사례가 많다.

  말하자면 그의 작품에 등장하는 초인들은 누군가에 의해 창조되었다는 것. 그것이 사이보그인지 초능력자인지, 아니면 개조 인간인지는 상관없이 그들은 특정한 목적을 지닌 누군가에 의해 만들어져 새로운 생을 얻게 된다.

  하지만, 인간이 신에게 생을 받았음에도 신의 뜻을 부정하고 거절하는 경우가 있듯, 이시노모리의 작품에서 등장하는 ‘창조된 초인’들은 그들을 만들어준 누군가를 부정하고 저항한다. 그들 자신이 인간으로서의 마음을 갖고 있기 때문에…….

  그의 작품 속에서 선한 주역과 악당은 결코 동등한 존재가 아니다. 한쪽은 창조주이고 다른 쪽은 창조된 존재. 말하자면, 그들은 자신을 만들어준 창조주를 향해 도전장을 던진 것이다. 당연히 창조주는 주역에 비해 압도적으로 강할 수밖에 없지만, 그들은 저항을 포기하지 않는다. 

[ 이시노모리 작품에선 가면 라이더 시리즈를 빼놓을 수는 없는 법. (c) Masato Hayase ]


[ 이시노모리씨가 없었다면, 이런 히로쇼도 존재하지 않았을지 모른다. ]


  [사이보그 009]를 시작으로 [가면라이더]를 통해서 꾸준히 제작된 이들 초인 시리즈는 인간의 마음을 갖고 있기에 자신을 만든 창조주의 명령에 따르지 않는 주역들. 그리고 인간이면서도 인간이 아니게 된 그들의 괴로움을 충실하게 표출하고 있다.


  악과 대결하기 위해서 그 힘을 필요로 하지만, 그 힘은 동시에 자신이 인간이 아니라는 것을 의미하기에 그들의 괴로움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 초기의 009. 지금과는 다른 외형을 갖고 있다. ]


  뿐만 아니라, 인간을 인간이 아니게 만든 그들 조직. 그들에 의해서 펼쳐지는 미래에는 희망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이시노모리씨는 소개하고 있다. [사이보그009]에서 펼쳐지는 블랙 고스트와의 최종 대결에서 그들은 인간이 존재하는 한 자신들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을 이야기해 준다. 블랙 고스트의 존재에 상관없이 세계에서 전쟁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블랙고스트의 리더라고 생각되었던 ‘스카르’조차 단지 누군가의 뜻을 대변하는 인형에 지나지 않을 뿐. 그리고 슬픈 운명은 그렇게 계속된다. 선을 추구하는 누군가의 희생을 밟고 일어서면서……. 하지만, 그런 희생은 또 다른 희망을 불러온다.

  블랙 고스트의 마신상을 파괴한 009. 그러나 그를 구하고자 했던 002의 힘도 완전히 빠져 버리고 두 사람은 지상을 향해 떨어져 내려간다. 마치 유성처럼 빛을 발하면서…….

  먼 곳에서 또 다른 누군가가 그들을 바라보며 소원을 빈다.


  “세계가 늘 평화롭기를…….”


  인간이 존재하는 한 악은 항상 존재할 것이다. 그러나 동시에 인간의 마음은 희생을 통해 새로운 희망을 불러오는 것이다. 그것이 아무리 작고 초라한 것이라 해도…….



피노키오의 꿈, 키가이더의 전설


[ 나무 인형 피노키오. 그는 생명을 갖고 움직이게 되었다. ]


  수많은 작품이 그렇듯, 이시노모리 쇼타로의 작품도 권선징악적인 면을 갖고 있다. 정의의 용사 가면라이더는 악의 조직을 물리치고, 사이보그009도 블랙고스트와 대결한다. 하지만, 그의 작품은 세상이 단순히 선과 악의 대결로만 이루어진 것이 아님을 잘 보여준다.

  수없이 리메이크되고 인기를 끌었던 이시노모리씨의 작품 중에 당초 일본에서는 그다지 눈에 띄지 않았던 작품(아니 정확히 말하면 이시노모리씨 자신이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아, 중요한 장면을 빼고는 모두 어시들에게 맡겨서 작업하게 했던 작품)이 있다.


  [인조인간 키카이더(人造人間キカイダー)]라는 제목의 이 작품은 1972년 특촬물로 제작되었는데 인조인간이라는 말을 쓰고 있지만, 사실 그는 사이보그가 아닌 로봇. 키카이더(일본어로 '기계다')라는 말 그대로 기계로 만들어진 존재이다.(그 밖에도 적의 로봇에는 ‘하카이마(파괴마)’, ‘비진다(미인이다)’ 등이 등장한다.)


[ 기형적인 외형의 키가이더. 그의 작품은 이런 느낌의 캐릭터가 넘쳐난다. (c) 石ノ森章太郎 ]


  가면 라이더나 사이보그009가 그렇듯 세상을 정복하려는 악의 조직에 의해서 탄생되었지만, 그는 인간이 아닌 로봇이기에 마음이 없이 명령에 충실하게 따른다. 다시 말해 악당이 내린 나쁜 명령에도 순수하게 따르며 파괴활동을 하도록 제작되었다. 그러나 개발 당시 키가이더는 피노키오에서 따온 '제미니'란 이름의 양심 회로라는 장치를 내장하게 되었고 나쁜 명령을 듣지 않게 되었다.

  말하자면 아이작 아시모프의 로봇 3원칙처럼 인간을 해치거나 하는 명령에는 따르지 않는 제한을 걸어둔 것이다. 하지만, 그가 가진 양심 회로는 완전한 것이 아니었다. 사고로 죽은 자신의 아들을 대신하여 지로(키가이더02)라는 이름의 그 로봇을 개발한 코묘지 박사는 결국 양심 회로를 완벽하게 만들지 못하고 살해되었기 때문이다. 그 스스로가 악당에게 속았다는 것을 깨닫고 그에게 탈출을 지시하고 난 후…….


[ 기타를 맨 소년. 인간에 대한 이해가 없는 채로 그는 자신의 행동에 괴로워한다. (c) 石ノ森章太郎/Mad House ]


[ 당신은 단순한 기계에요! 자신을 죽이려 하는 지로에게 미츠코는 이렇게 외친다. (c) 石ノ森章太郎/Mad House ]


  명령에 충실한 로봇으로서의 키가이더. 그러나 불완전한 양심 회로는 그를 혼란에 빠뜨렸고, 적의 로봇을 조종하는 명령(전파를 발생시키는 피리)이 들어올 때 그는 자신의 상황을 추스르지 못하고 그 명령에 따라 주변의 사람들을 해치려 한다.

  불완전한 마음을 가진 인형도 아니고 인간도 아닌 존재. 그렇듯 기묘한 상황은 로봇으로서의 그의 외형을 매우 추하게 바꾸고 말았다. 인간도 아니고 기계로 아닌 존재로서…….


  “착한 애로 있으면, 사람이 될 수 있다.”


  피노키오의 전설에 따르면 선한 일을 행함으로서 그는 사람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양심 회로에 따라 행동하는 것만으로는 인간 같은 행동은 할 수 없다. 단지 회로의 명령에 따라 움직일 뿐…….


[ 힘은 책임을 필요로 한다. 막대한 힘으로 키가이더는 적을 물리친다. (c) 石ノ森章太郎/Mad House ]


  작은 몸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힘을 갖고 활동하는 키가이더. 박사의 딸 미츠코를 구하기도 했지만 그럼에도 자신의 존재에 대해 의문을 풀지 못한다. 그리고, 자신과 같은 시스템으로 개발되었지만 양심 회로를 갖지 않은 형제, 이치로(키가이더01)와 제로(키가이더00)를 만나 악의 조직과 싸우다, 중과부적의 상황에서 적에게 사로잡힌 채 ‘엣사’라고 불리는 악의 회로를 장치하게 된다. 그것은 양심 회로와는 반대로 사악한 행동을 하게 만드는 회로. 더 정확히는 사악한 조직의 명령을 충실하게 따르는 시스템이었다. 엣사를 내장하고 붙들린 지로. 그는 역시 엣사를 내장한 과거의 동료 비진다를 속여서 탈출한다. 그리고 그는 가차 없이 자신의 형제들인 이치로와 제로를, 그리고 인간인 기르 교수를 살해한다.


[ 동생이라 불렀던 키카이더(지로)를 공격하는 이치로. 그는 단지 명령을 따를 뿐인 존재이다.(c) 石ノ森章太郎/Mad House ]


  불완전한 양심 회로의 제약에서 벗어나 보다 큰 선을 위해 거짓말도 할 수 있고 한편으로 형제도 살해할 수 있게 된 지로. 그는 기계의 마음에서 벗어나 인간의 그것을 갖게 되었다. 그와 맞바꾸어 죄책감이라는 무거운 짐, 양심의 싸움이라는 원죄를 짊어지면서...


  "나는, 나는 이걸로... 인간과 똑같게 되었다."

  "하지만 그 대신에 나는... 영원히 악과 양심의 마음의 싸움으로 괴로워하겠지."


  아이작 아시모프의 로봇 공학 3원칙에선 인간을 살해하지 않고 인간의 명령을 듣는 것이 '선'이라고 정의한다. 테즈카 오사무는 아톰에게 마음이라는 것을 주어 인간의 친구가 되게 해 주었다.


  하지만 아이작 아시모프의 로봇도 테즈카 오사무의 아톰도, 결국 인간의 설계, 창조주의 의지에서 벗어난 행동을 하는 것은 아니다. 단지 주어진 명령에 충실하게 행동한 결과 의지를 가진 것처럼 보일 뿐.


  하지만 피노키오가 제미니(양심)의 말에 무조건 따르지 않고 자신의 의지로서 행동한 결과 인간이 되었듯이, 키카이더는 주어진 명령, 제미니와 엣사 어느 쪽에도 따르지 않고 자신의 의지로서 행동함으로써 인간이 된다.

  사이보그 009나 가면라이더와는 달리 인간에 의해 모든 것이 만들어졌지만, 인간처럼 마음을 갖고 자신의 의지로 행동하게 된 키카이더. 그 결과 로봇임에도 동료, 형제를 속이고 죽일 수 있는... 인간으로서 다시 태어나게 된 존재. 그리고 그로 인해서 악을 증오하는 마음으로 더욱 강해져서 싸울 수 있게 되었지만, 그로 인해 선과 악의, 마음의 틈새에서 영원히 고뇌하며 괴로워하게 된 존재...

  그런 키카이더의 모습은 이시노모리 쇼타로 작품 속 '인간'의 모습을 잘 보여준다.

  설사 누군가에 의해 힘을 얻고 만들어졌을지는 모르지만, 결국 자신의 의지로서 길을 선택하고 나아가는 인간의 모습. 누군가의 명령에 의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결정으로 길을 선택했기에 고뇌하고 괴로워하며 때로는 후회하는 인간의 모습.
  그것은 키카이더의 외형처럼 추하게 보일지도 모르지만, 그 같은 추한 모습에야 말로 인간의 진실이 담겨 있다는 것을, 그런 추한 현실에 마주하여 고통과 고뇌 속에서도 올바른 길을 선택함으로써 비로써 진정한 인간으로 태어난다는 것을 이시노모리 쇼타로는 보여준다. 악과 선이 아닌, 악과 양심... 결국 내 마음에 따르지 않는 것은 그 결과가 어떻든 '악'이라는 것을...

  ‘이렇게 피노키오는 인간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피노키오는 인간이 되어서 정말로 행복해진 걸까요?’

  누군가의 뜻에 따르면 결코 괴롭지 않겠지만, 그럼에도 '악(순종)'과 '양심(의지)'사이에 고뇌하며 양심을 따르고자 노력하는 것. 그것이야말로 행복하지 않고 괴롭더라도 결국은 걸어가야만 하는 길... 가시밭길로 가득하지만 묵묵히 걸어야 하는, '인간의 길'이라는 것을...


 

[ 이시노모리 쇼타로의 주제 의식을 잘 보여주는 '키카이더 01 애니메이션' ]


 (* [키카이다]는 특촬물로 제작되어 최초 방영 당시 그다지 큰 인기를 끌지 못했지만, 바다 건너 하와이에서는 지금도 주제가가 불리어질 정도로 엄청난 인기(2001년 재방영시 시청율 70%)를 끌었으며, 인간적인 괴로움을 가진 로봇이라는 독특한 개념은 근래에 들어 다시금 부각되며, 만화, 애니메이션으로 리메이크되고 2014년엔 실사 영화로도 제작되었다.)


[ 2014년에 제작된 키카이더 REBOOT. 작품 자체는 별로 호평받지 못했지만, 추한 외형에서도 정의를 위해 행동하는 그 모습이야 말로 이시노모리 작품의 성격을 잘 보여준다. (c) 石ノ森章太郎 / 東映 ]


게임과 영상으로서의 이시노모리 시리즈


[ 슈퍼 패미콤으로 제작된 사이보그 009 ]  


  전 세계에 수많은 이시노모리 팬이 존재하고 있기에, 그리고 그 자신이 만화가만이 아니라 영화감독도 되기를 바랐기 때문에 그의 작품은 상당수가 영상으로서 재탄생되곤 했다. 그 중에서 특히 애니메이션보다는 특촬물이나 드라마, 다시 말해 실화로 제작된 경우가 많은 편.(특촬물에 국한하지 않고 일반적인 드라마도 많다.)


[ 가면라이더의 게임 시리즈는 무수하게 발매되고 있다. ]


[ 실사에 가까운 느낌 그대로. 가면라이더의 대결이 시작된다.  ]


  [가면라이더]를 시작으로 [키카이다], [고레인저] 등 수많은 특촬물이 제작되었고, 그 중에서도 [가면라이더] 시리즈는 일본의 특촬물을 대표하는 인기 시리즈로서 지금도 꾸준하게 제작되고 있을 정도. 그와 동시에 가면 라이더를 주역으로 한 게임도 꾸준하게 제작되고 있다. PS2에 이르러 [가면라이더 히비키], [파이즈], [555(고고고)] 등이 계속 선보였고, PS3, PS4에 이르기까지 [가면라이더] 게임 시리즈는 계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가면라이더 시리즈의 게임은 매우 다양하지만, 그들 대부분은 실사 분위기로서 가면라이더와 개조 인간이 싸우는 격투 대전 게임으로서 연출된다. 그 유명한 라이더킥을 비롯하여 수많은 필살기들이 난무하고 다채로운 시점으로 변화된 연출이 전개되기도…….

  어디까지나 특촬물이라는 분위기에 맞추어 연출되는 이들 게임은 격투 게임으로서 [철권]이나 [버추어파이터즈] 등의 작품 정도의 완성도는 없지만, 가면라이더의 팬들에게는 멋진 작품으로서 기대할만 하다.

  가면라이더 시리즈 외에 이시노모리씨의 작품을 바탕으로 한 게임은, 대부분 슈퍼패미콤 이전의 고전 게임으로서만 존재한다. 사이보그 009 등이 바로 그것. 근래에는 이시노모리 작품의 리메이크와 함께 리메이크 만화와 애니, 만화, 게임, 영화 등이 꾸준히 나오는 만큼 앞으로도 이시노모리의 세계는 더욱 넓어질 것으로 생각된다.


* 이시노모리 쇼타로 작품집


  많다. 너무 많다……. 직접 만든 작품만으로 3자리를 가볍게 뛰어넘고 관련 작품을 따지면 4자리에 이른다는 테즈카 오사무나 요코야마 미츠데루에 비길 정도는 아닐지 모르지만, “가속 장치의 소유자”로서 이시노모리 쇼타로는 오리지날의 장편만으로도 너무도 많은 작품을 선보이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지금 이 순간에도 제작되고 또 만들어지고 있다. 때문에 여기서는 만화, 애니 등 극히 일부만을 소개해 본다.(아이들과 어른용을 포함 드라마 종류만도 수 십 편에 달하지만, 여기서는 특촬물 중에서도 일부 만 소개해 본다.)


1. 만화

이급천사(二級天使) - 1954. 연재 데뷔작.

괴걸 하리마오(怪傑ハリマオ) - 1960. 소설 원작의 만화화.

사루토비 엣짱(おかしなあの子さるとびエッちゃん) - 1964. 소녀 개그 만화.(닌자물)

사이보그 009(サイボーグ009) - 1964. 그 후 시리즈 다수.

뮤턴트 사부(ミュータントサブ) - 1965. 그 후 시리즈 다수.

사부와 이치토리모노히카에(佐武と市捕物控) - 1966. 검객물.

환마대전(幻魔大戦) - 1967. 

스카르맨(スカルマン) - 1970. 1998년 시마모토 카츠히코씨에 의해 속편 출간.

가면라이더(仮面ライダー ) - 1971. 특촬물의 만화판으로 출간.

변신닌자 아라시(変身忍者 嵐) - 1972. 

인조인간 키카이다(人造人間キカイダー) - 1972. 특촬물의 만화판으로 출간.

로봇형사(ロボット刑事) - 1973.

이나즈만(イナズマン) - 1973.

힘내라!! 로보콘(がんばれ!!ロボコン) - 1974

가면라이더 아마존(仮面ライダーアマゾン) - 1974

철면 크로스(鉄面クロス) - 1974

비밀전개 고레이저(秘密戦隊ゴレンジャー) - 1975

길가메쉬(ギルガメッシュ) - 1976.

마법세계의 쥰(魔法世界のジュン) - 1977

킥쿤타쿤(チックンタックン) - 1984

호텔(HOTEL) - 1984

만화 일본경제입문(マンガ 日本経済入門) - 1986

만화 초전도 입문(マンガ・超電導入門) - 1987

가면라이더 블랙(仮面ライダーBlack) - 1987

이시노모리 쇼타로의 만화가 입문(石ノ森章太郎のマンガ家入門) - 1988

만화 일본의 역사(マンガ日本の歴史) - 1989


2. 애니

사부와 이치토리모노히카에(佐武と市捕物控) - 1968. 총52화 흑백판.

사이보그 009(サイボーグ009) - 1968. 흑백판

사이보그 009(サイボーグ009) - 1979. 컬러판

사루토비 엣짱(さるとびエッちゃん) - 1971.

인조인간 키카이다(人造人間キカイダー) - 2000 총 13화

인조인간 키카이다01(人造人間キカイダー01) - 2000. 총 4화

사이보그 009(サイボーグ009) - 2001. 총 51화

환마대전-신화전야의 장-(幻魔大戦-神話前夜の章-) - 2002. 

길가메쉬(ギルガメッシュ) - 2003. 26화


[ [공각기동대]로 잘 알려진 Production I.G.에서 2012년에 제작한 009 Re:Cyborg. 작품은 꽤 괜찮았지만, 이시노모리 스타일과 너무 다른 분위기가 어색했다. (c) 石ノ森章太郎 / Production I.G. ]



3. 드라마

사부와 이치토리모노히카에(佐武と市捕物控) - 1966. 

가면 라이더(仮面ライダー) - 1971~1973. 98화

인조인간 키카이다(人造人間キカイダー) - 1972~1973. 43화

이나즈만(イナズマン) - 1973~1974. 25화 

힘내라!! 로보콘(がんばれ!!ロボコン) - 1974~1977. 118화

비밀 전대 고레인저(秘密戦隊ゴレンジャー) - 1975~1977. 84화

쟈카 전격대(ジャッカー電撃隊) - 1977. 35화

성운가면 머신맨(星雲仮面マシンマン) - 1984. 36화

가면 라이더 블랙(仮面ライダーBLACK) - 1987~1988. 51화

보이스랙거(ボイスラッガー) - 1999. 12화

가면라이더 아키토(仮面ライダー アギト) - 2000~2001. 51화

가면라이더 블레이드(仮面ライダー剣) - 2004~2005. 49화

가면라이더 카부토(仮面ライダーカブト) - 2006. 현재 방송 중


[ 아이들을 위한 특촬물, 힘내라 로보콘. 이런 것도 나쁘지는 않겠지?  (c) 石ノ森章太郎 / 東映 ]


posted by 별을 좋아하는 표도기
별 작품 이야기 2015.02.27 02:48


  “인간이 반으로 줄어들면 타버리는 숲도 반이 될까?”

  인간이라는 동물은 참으로 재미있습니다. 어찌 보면 고양이만도 못한 전투력을 가진, 그야말로 왜소하고 약한 존재이지만, 문명이라는 힘으로 지상의 왕자로 군림하고 이제는 태어난 고향 지구를 떠나 우주로의 여정을 생각하고 있으니까요.

  인간만이 가진 문명이라는 힘은 지구라는 환경 자체를 바꿀 수 있는 능력을 주었습니다. 아니, 다른 동물들도 주변 환경을 바꿀 수 있지만, 인간은 육체적 한계를 넘어 환경을 바꿀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어느새 인간은 70억이라는 숫자로 늘어나게 되었지요. 그렇게 되면서 사람들은 생각하게 됩니다. 과연 우리는 어떤 존재인가? 이대로 좋은 것인가?

  그러한 생각 속에 인간의 본성을 그린 이야기가 나왔고, 이와사키 히토시의 [기생수]도 바로 그중 하나입니다. 인간에 기생하여 몸을 강탈하여 인간을 잡아먹는 괴물이 등장하고, 오른팔에만 기생되어 인간(신이치)으로서의 의식과 기생체(오른쪽이)의 의식이 공존하는 주인공이 이들에 맞서는 독특한 작품은 "신체강탈자의 침입(Invasion Of The Body Snatchers)" 같은 설정이지만, 단순히 신체강탈자와 인간의 싸움을 그린 것에 그치지 않고, 신체강탈자의 입장에서 인간을, 다시 인간의 입장에서 신체강탈자를 살펴보는 깊이있는 연출로 일본에서 코단샤 만화상이나 성운상 코믹스 부문을 수상. 코믹스 1000만권 이상을 가볍게 달성한 인기작입니다.

[ 뭔가 어색해보이는 1권 표지. 하지만 그후 전설이 된다. (c) Kodansha / Iwasaki Hitoshi ]


  머리가 갈라지며 인간을 통째로 잡아먹을 뿐만 아니라 촉수처럼 늘어나고 칼날로 변해서 쇠나 콘크리트를 갈라버리는 기생수의 모습은 이와사키 히토시의 독특한 그림과 어울리며 깊은 인상을 주었고, 다른 많은 작품에서 패러디나 오마주되기도 했습니다.(기생수의 연출자체가 영화 “괴물(The Thing)”의 오마주로도 볼 수 있겠습니다만.) 그만큼 애니메이션이나 영화 제작이 기대되었지만, 만화 원작 이외엔 아무 것도 나오지 못한 점도 인상적이었죠. 한때 할리우드에서 판권을 사서 제작할 예정이었다고 하지만 흐지부지된 일도 있었습니다.

  그것은 이 작품이 인간의 어두운 모습을 처절하게 보여주며 한편으로 끔찍하고 잔혹한 묘사가 상당하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사람의 머리가 갈라져서 인간을 먹어치우는 장면이나 괴물들의 칼부림이 수없이 등장하는 작품은 실사로는 다소 수위가 높고 ‘블록버스터’에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되니까요.

  만화가 완결되고 자그마치 20여년이 지났기에 잊히는 듯 했던 이 작품이 토호에서 판권을 재취득함으로써 영화, 그리고 애니메이션으로 탄생했습니다. 2014년 10월부터 방송 중인 [기생수 세이의 격률(寄生獣 セイの格率)]. 그리고 2015년 2월 26일에 한국에서 개봉한 영화 [기생수(寄生獣)](국내에선 [기생수:파트 1])입니다.

[ 원작과 다른 그림체로 원작팬의 원성을 사기도 한 애니메이션 (c) Toho/Mad House ]


[ 일상은 어느날 잡아먹혔다. 실사로 재현된 기생수. (c) Toho ]


  애니메이션은 원작과 그림체가 달라지며 원작팬의 원성을 사기도 했지만, 21화까지 소개된 지금 비교적 호평 속에 진행 중입니다. 한편, 일본에서 2014년 11월 29일에 개봉하여 지금까지도 상영 중인 영화는 일본의 대중적인 사이트 야후 재팬에서 3.91점으로 역시 상당한 호평. 첫 주말 전국 영화 동원 랭킹에서 25만 6161명의 관객을 끌며 1위, 3억 4000만 엔(약 34억원)의 흥행 수입을 기록했습니다. 관객의 반 이상이 만화 팬이었다곤 해도 굉장한 인기죠.

  26일 개봉일에 본 [기생수:파트 1]은 이 같은 인기에 충분히 부합할만한 작품이었습니다. 완성도로 보면 조금 빠지는 부분도 있어 80점 정도를 줄 수 있지만, 원작의 팬이라도, 원작을 보지 않은 사람도 충분히 재미있게 볼 수 있습니다.


  영화는 원작에도 나왔던 대사로서 시작됩니다.

  “지구에 사는 누군가가 문득 생각했다.”
  “모두의 미래를 지켜야 한다.”

[ 왠지 귀가 가려워지는 느낌. 그런 현실감이 전해진다. (c) Toho ]


  기묘한 생명체가 자고 있던 누군가에 기생하는 장면에 이어, 한 소년(주인공인 신이치) 쪽에서 이어폰 때문에 귀로 들어가지 못하는 코믹한 연출이 등장하죠. 잔혹한 장면이 많고 심각한 내용이지만, 사실은 ‘오른쪽이(미기)’와 ‘신이치’의 장면에서 의외로 이런 장면이 많습니다. 자기 손과 벌이는 만담처럼 훈훈(?)한 연출도 이 작품의 특징이죠.
(오른손이 기묘하게 변하면서 눈알이나 칼날이 생겨난다는 설정을 생각하면 영화 “괴물”처럼 그로테스크한 연출이 될 거라 생각하기 쉽지만, 실사로 만들어진 오른쪽이의 모습은 원작이나 애니보다 귀엽게 느껴집니다. 진짜처럼 자연스럽고도 재미있는 오른쪽이의 모습만으로도 이 영화는 볼 가치가 있습니다. 특히 애니와는 다른 소년풍 목소리가 더욱 어울리면서 중반까지 신이치의 공생자 정도로 머물렀던 원작과 달리 초기부터 친밀하게 만담(?)을 주고받는 관계가 어색하지 않게 느껴지죠.)
  

[ 픽사 애니메이션에 나올듯한 오른쪽이. 그 다채로운 모습만으로도 영화의 재미는 충분하다. (c) Toho ]


  이처럼 대비되는 기생 과정을 거쳐 아침. 머리가 갈라지면서 사람의 머리를 단방에 먹어치우는 장면은 충격적입니다. 관객 모두가 깜짝 놀라는 것이 느껴지는 순간. 끔찍하고 무서운 장면이지만, 지나치지 않은 느낌? 얼굴이 갈라지거나 촉수가 나오는 연출은 자연스러우면서도 원작의 그로테스크한 느낌을 잘 살렸지만, 혐오스럽고 부담될 정도는 아닙니다. 선혈과 살육 장면을 잘 가리면서도 빠르게 넘기고 있죠.

[ 원작의 그로테스크한 느낌을 잘 살린 연출. 거대한 눈이 좌우로 움직이는 장면이 더욱 무시무시하다. (c) Toho ]


  단행본 기준으로 10권(애장판은 8권)에 이르는 작품을 2시간짜리 영화 2편으로 제작해야 하는 만큼, 영화는 원작에서 많은 부분을 생략하고 있습니다. 주인공 신이치의 아버지는 이미 사망하여 등장하지 않으며, 여주인공 무라노 사토미와 함께 신이치와 삼각 관계를 이루었던(그리고 기생수를 느끼는 특수한 힘으로 인해 살해된) 카나도 등장하지 않습니다. 그만큼 이야기는 빠르게 전개됩니다. 신이치 만이 아니라 여러 곳에서 펼쳐진 여러 이야기들이 신이치를 중심으로 연출되기에 좀 더 간결하게 이해됩니다.

  그럼에도 원작 내용 중 가장 중요하다고 할 수 있는 신이치의 변화, 그리고 한편으로 오른쪽이의 변화는 충분하게 녹아들어갔습니다. 여기엔 배우들의 열연이 뒷받침되었다고 보는데, 신이치 역을 맡은 소메타니 쇼타는 지극히 평범한(사토미의 말에 따르면 ‘부들부들’거릴 정도로 다소 소심한) 고교생의 모습에서 기생수에 가까운 냉정한 존재로 변해가는 모습을 잘 보여주었습니다. 물론 작중 가장 중요한 인물인 타미야 료코역의 후카츠 에리의 연기는 이를 넘어서지요. 흔히 느물거리는 양아치 같은 역할로 자주 나오던 키타무라 카즈키가 기생수의 리더 같은 존재로 의원에 당선되는 히로카와 타케시역을 맡아서 표정없는 연기를 보여주는 것도 일품이지요.

[ 후카츠 에리의 연기는 존재감을 가득 채워준다. (c) Toho ]


[ 키타무라 카즈시가 연기한 히로카와 타케시. 2부에서의 활약이 기대된다. (c) Toho ]


  아사노 타다노부가 맡은 고토역, 히가시데 마사히로가 연기한 –철가면이라 불렸던 원작과 달리 싱글거리는 표정의 미소년인- 시마다 히데오처럼 원작과 다른 분위기의 캐릭터도 있지만, 영화만으로 볼 때 위화감은 별로 없었습니다. 적어도 원작을 읽고 바로 가서 보지 않는다면 말이죠.

  약간은 걱정했던, 기생수의 싸움도 적절한 효과음과 더불어 잘 연출되었다고 생각합니다.  마지막 신이치와 A의 싸움은 약간 만화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크게 드러나지 않고 잘 엮어냈지요. 일본 영화의 기술이 발달한 것을 잘 보여주는 작품이라고 하겠네요.

[ 기생수라면 역시 촉수 대결을 빼놓을 수 없다. 인간은 불가능한 촉수의 싸움을 실사로 잘 연출했다. (c) Toho ]

  원작의 팬으로서 기생수에게 잠식된(신체를 강탈당한) 인물이 본래 인간의 마음을 보여주는 장면은 약간 논란의 여지가 있겠지만, ‘인간의 마음’이라는 작품의 또 다른 주제를 상징하는 타미야 료코의 대사 등과 엮어서 충분히 좋은 느낌을 보여주었습니다.

  다소 작위적인 전개, 아주 약간의 사족, 여기에 원작의 내용을 많이 생략한 점 등 일말의 아쉬움은 있지만, [기생수]라는 작품의 팬이건 아니건, 영화로서 충분히 재미있게 볼 수 있는 작품입니다. 가능한 영화관에서 보시는 걸 권합니다. (아니 어떤 영화건, 평생 한 번의 만남일 수도 있는 영화 상영은 가능한 최상의 조건에서 하는 게 좋지요.) 청소년 관람불가라는 리스크에 더하여 대다수 일본 영화가 그렇듯 국내의 예매율도 높지 않고, 개봉관수나 시청 가능 시간대도 얼마 되지 않으니 영화관에서 보려면 가능한 서두르는 게 좋습니다.

  ‘파트 1’이라는 말이 붙었듯, 영화는 올해 4월에 일본에서 개봉할 ‘완결편’을 합쳐 2부 구성. 2010년에 [반지의 제왕:반지원정대]가 처음 개봉했을 당시엔 한국에선 익숙하지 않았던(그래서 영화가 끝나고 나오면서 “이게 뭐야!”라는 말이 들려왔던) 상황과 달리, 이제는 꽤 익숙해졌다고 해도 역시 반쪽짜리 영화로서 끝나면 안 되겠죠.
  [기생수]라는 작품은 사실 끊기가 애매한 게 사실이지만, 영화 [기생수:파트1]은 그 점에서도 아주 적절한 위치에서 일단락 지었다고 봅니다. 그렇게 해서 줄 수 있는 완성도가 80점. [완결편]이 국내에서 개봉한다면, 둘을 합쳐 이야기할 수 있겠죠.

  [기생수:파트1]은 원작의 팬도, 그리고 원작을 모르는 사람도 재미있게 볼 수 있는 작품입니다. 표값과 시간이 아깝지 않을만큼 충분히 만족했기에 [기생수:완결편]도 꼭 국내에서 개봉해주길 바랍니다. 가능한 빨리 말이죠.

[ 유쾌한(?) 콤비의 모습을 또 볼 수 있기를 기대한다. (c) Toho ]



posted by 별을 좋아하는 표도기
잡담 2014.10.31 23:48

두 작품의 공통점은 우주 식민지 개척을 위한 이야기라는거죠.


묘하게도 이런 두 작품이 같이 나오게 되는데...


상상력이라는 것은 때때로 다른 이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걸까요?



이를테면...






이렇게 말입니다.


두 작품이 거의 동시기에 나온 것은, 당시 소행성 출동에 대한 이야기가 화제가 되었기 때문이었죠.



왠지 모르겠지만, 앞으로 우주 식민지 관련 작품이 꽤 나오지 않을까... 기대해 봅니다. 그런 얘길 좋아하니까요.

posted by 별을 좋아하는 표도기
별 작품 이야기 2014.09.11 02:24

  전혀 들어본 적이 없는(심지어 위키백과에도 정보가 없는) 웨스 볼(Wes Ball) 감독이 제작한 영화, "메이즈 러너"는 매우 이례적인 작품입니다.


  세계적으로 인기를 끈(하지만 국내에선 그다지 눈길을 끌지 못한) 제임스 대시너(James Dashner)의 청소년 포스트 아포칼립스 3부작을 바탕으로 만들었다는 점에서 대작의 하나로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감독에서부터 각본, 심지어 배우들까지 그다지 유명한 이들을 찾기 어려운데다, 작품 자체가 할리우드 대작 스타일에 어울리는 것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뿐만 아니라, 이 작품은 처음부터 3부작을 예상하고 만들었다고 할만한 연출과 결말을 보여줍니다. "메이즈 러너"에서 보여주는 거대한 미궁의 모습은 어디까지나 프롤로그에 지나지 않으며, 그 뒤에는 앞으로 2개의 영화를 더 보아야만 알 수 있을, 수많은 음모와 복잡한 배경이 깔려 있기 때문입니다. 어찌보면 불친절한 영화의 대표격이라고 해도 좋겠군요.


[ 신인이라는게 너무 티나는 젊은, 웨스볼 감독. 흥미로운 단편 애니메이션에서 시작하여 멋진 연출을 보여준다. ]


  하지만 -3류 액션물 다작 감독인 우베 볼과는 전혀 상관없는- 신인, 웨스 볼 감독은 자칫 좌초하기 쉬운 함정 투성이의 영화를 상당히 멋지게 연출하여 다음 작품을 기대하게 해 줍니다.


  똑같이 미궁 탈출을 소재로 한 영화 "큐브"와는 비교할 수 없이 거대한 세트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탈출극도 꽤 흥미롭고, 여기에 한국 출신의 배우 이기홍(민호 역)을 비롯한, -영화계에선 유명하지 않아도- 역량이 뛰어난 배우들의 연기가 겹쳐서 작품의 완성도를 더해줍니다. 그야말로 '거대한 3부작의 서막'으로서 적절한 작품이라고 하겠군요.


  이렇게 생각하면 이 영화는 장점으로 가득차 보이지만, 사실 여기에도 -"메이즈 러너"란 이름에 어울릴만한- 미궁다운 '함정'이 감추어져 있습니다. 바로 '3부작 소설이 원작'이라는 점 때문에 말입니다.


[ 벽으로 둘러싸인 공간. 주인공의 이야기는 여기서 시작됩니다. ]


  영화의 시작은 매우 갑작스럽습니다. 주인공은 기묘한 엘리베이터에 태워진채 이상한 곳에 도착하게 됩니다. 얼떨떨한 주인공에게 그곳의 지도자란 청년은 자신들의 삶에 대해 이것 저것 알려주지만, 자신의 이름조차 기억 못하는 주인공에게 있어 모든 것이 당혹스러울 뿐입니다.


  주변을 거대한 벽이 둘러싼 공간. 비슷한 또래의 청년들이 모여 있는 그곳은 매우 이색적이었지만, 무척 평화로운 분위기였습니다. 하지만 미궁(Maze)이라 불리는 장소로 연결되는 통로를 중심으로 알 수 없는 긴장이 밀려오고 주인공의 삶은 갑작스럽게 변모하게 됩니다.


  왜, 어째서인지 모른채 모든 것을 잃고 이 곳에 모여든 청년들. 그 중의 하나였던, 그러나 그의 도착과 함께 모든게 변해가는 계기가 된 주인공을 중심으로 알력이 생겨나고 그들은 '미궁'이라는 안락했던(그러나 예상치 못한) 공간을 벗어나기 위한 새로운 도전에 뛰어듭니다...


[ 미궁 속을 뛰어라, 메이즈 러너? 러닝 게임은 아닙니다. ]


  "메이즈 러너"는 정체불명의 미궁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작품인 동시에, 문명이 붕괴된 이후의 미래의 모습인 포스트 아포칼립스 세계를 중심으로 한 3부작의 첫 작품입니다. 문명의 붕괴란 상황을 상상하면 느낄 수 있는 무너진 빌딩이나 파괴된 대지 등은 보이지 않고 어디까지나 '미궁'이라는 인공적인 공간에서 펼쳐진다는 점에서 참 독특하면서도 약간의 배신감을 안겨주지요.


  바로 "이 같은 거대한 미궁은 3부작 전체에서 별로 중요한게 아니다."라는 점에서 말입니다. 처음부터 3부작이라는 것을 알고 접근하지 않는 이상. 이 영화의 결말 부분은 참으로 실망스럽게 느껴질지도 모릅니다. 사실 제대로 된 설명조차 없고 -소설의 뒷부분을 보면 알겠지만- 마지막에 밝혀진 반전조차 사실은 진실이 아니라는 점에서 말이죠.


  작품의 주역인 토머스의 기억은 돌아왔지만, 그조차 진실인지 알 수 없고, 다른 이의 기억은 돌아오지 않은 채 영화는 허망하게 종결됩니다. 거대한 미궁을 뒤로 하는 장면에서 주인공들의 허무한 감정이 관객들에게까지 전염될 정도죠.


  그만큼 속편을 기대하게 되는 것도 사실이지만, 3부작의 서막이라는 것을 알지 못하는 이상 단지 배신감만 느끼게 될지도 모릅니다. 바로 그것이 이 작품의 첫번째 함정이죠.


  두번째로 이 작품은, 예고편과 달리 액션 영화가 아닙니다. 액션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보다는 미궁이라는 존재와 그 뒤에 얽힌 수수께끼를 풀어나가는 퀴즈풀이적인 성격이 더 강합니다. 정체불명의 괴물이 등장하여 주인공들을 위협하고, 나름대로 주인공과 대립하는 인물도 있지만, 이 영화에서 인물간의 갈등은 별로 존재하지 않습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적의 존재가 명확하지 않다보니 액션과 스릴이 눈길을 끌지 못하죠. 그리버란 괴물과의 싸움조차 순식간에 진행되어 끝나버리니까요. 블록버스터급 예고편을 통해 액션을 기대한 이들이 실망할 수 있다는게 두번째 함정입니다.


[ 블록버스터급에 어울리는 강렬한 예고편. 실제 영화도 충분히 매력적이다. ]


  세번째로 이 작품 속의 인물들은 너무도 순수합니다. 질풍노도의 청소년들이 모인 집단의 모습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죠. "파리대왕"은 고사하고 "15소년 표류기"보다도 건전하고 평화로우니까요. 지도자라고 했던 알비(아블 아민)조차 이질적인 주인공을 편하게 받아들이며, 뭔가 과묵하고 화끈한 분위기를 풍기던 민호(이기홍)는 단 하루 밤의 모험 끝에 토머스를 절대적으로 믿고 따르죠. 어리면서도 순진한 척은 단번에 토머스의 열성팬이 되어 그를 위해 목숨조차 아끼지 않을 느낌입니다. 죽어가는 알비를 대신하여 지도자가 된 뉴트 역시 그를 적극적으로 지지하며, 오직 미궁에 머물고 싶다는 의지 하나만으로 고집을 부리는 갤리(윌 폴터)만이 적대자로 나올 뿐입니다. 그나마 그에게 동조하는 동료가 거의 없어 큰 위협이 되지 않죠. 그만큼 캐릭터들이 확 들어오지 않습니다. 심지어 나중에 등장한 유일한 여성 트리사(카야 스코델라리오)는 거의 배경이나 다를 바 없죠. 주요인물들은 분명 모두 매력적이지만, 강렬한 인상을 주는 건 주인공 토머스 뿐... 그것이 세번째 함정일 겁니다.


  그 때문인지 이 작품은 지나치게 객관적인 시점으로 보여집니다. 미국 최초로 파노라믹 포맷(한국의 "스크린 X"처럼 극장의 전면 만이 아니라 좌우면도 동시에 써서 입체감을 느끼게 하는 방식)을 사용하여 상영하는 "메이즈 러너"는 관객들이 경치를 구경하듯 영화를 보게 해 줍니다. 미궁 안이 아니라 미궁 밖에서 실험 동물을 구경하는 느낌일까요? 거대한 미궁은 구경하는 것 만으로도 매력적이지만, 그만큼 액션이나 스릴에 대한 몰입도가 떨어지는게 아쉽죠.


[ 파노라믹 포맷의 사례. 한국의 CJ와 카이스트가 공동 개발한 스크린 X처럼 3면을 활용하지만, 포맷이 달라 호환되지 않는다. ]


  하지만 조금만 영화를 깊이 들여다보면 이 모든 것이 결코 함정이 아님을 알게 됩니다. 허무한듯 느껴지는 결말은 이 작품이 3부작 소설의 서장으로, "호비트"에 비교하면, 첫편인 "뜻밖의 여정"에 해당하는 작품이기 때문입니다. 애매한 결말일지 모르지만, 그만큼 속편에 대한 기대감을 높여주죠.

  더욱이 2번째 작품인 "스코치 트라이얼"(Scorch Trial)의 무대는, 포스트 아포칼립스의 분위기를 확실하게 보여줄 대도시의 폐허 속 공간. 동시에 "큐브" 같은 짜임새있는 미로의 분위기도 충실하게 엮어주겠지요.(2편에선 우리나라에서도 파노라믹 포맷이나 스크린 X로 3면으로 즐길 수 있을까요?)


[ 시리즈의 두번째인 스코치 트라이얼. 메이즈 러너완 또 다른 분위기가 긴장을 더한다. ]


  적이 명확하지 않다는 점도 역시 3부작의 특성 때문입니다. 이 작품의 진정한 악당인 "위키드"는 자신들의 모습을 감춘채 배후에서 조종하고 있으며, 주인공들은 토머스를 제외하면 모두 기억을 잃고 있으니까요. (토머스조차 별로 많은 걸 알고 있지 못합니다.)


http://www.wckdisgood.com/ - "위키드는 좋은 일을 하는거야."란 이름의 사이트. 위키드의 일부를 살펴볼 수 있습니다.


  우리들 관객은 그 진실을 알게 되지만, 작품의 특성상 모든 것이 드러나지 않은 상태. 주인공들은 미궁이라는 거대한 존재와의 싸움 하나만으로도 버거우니 그 이상의 무언가에 도전할 수 없는 상황이죠.

  하지만 정체불명의 괴물 그리버와의 사투, 끊임없이 변해가는 거대한 미궁 속의 도주 장면만으로도 이 작품은 충분히 매력적입니다. 액션 스릴러는 아닐지라도 생존을 위해 미궁에 도전하는 소년들의 모습은 뒤에 감추어진 음모를 생각하지 않아도 흥미진진하죠.


  그들의 모습이 너무도 착하다는 것은(이를테면, 3년이나 갇혀 지내던 소년들 사이에 한 소녀가 도착했는데도 너무 반응이 담담하다던가...) 사실 그들이 '기억을 모두 잃어버린 상태'라는 것에 기인하고 있습니다.


[ 준주역급 활약을 보여주는 민호. 꽤 순수하면서도 강렬한 인물입니다. ]


  그 중 가장 오래된 알비조차 고작 3년. 사회와 완전히 격리되어 그들끼리 살아온 소년들은 사실상 3살짜리 아기나 다름 없는거죠. 그들의 현재 모습이 진정한 그들의 모습이 아니라는 점은, 도중에 그리버에게 물려(약이 주입되어) 기억을 되찾은 이들의 모습에서 명확하게 느낄 수 있습니다.


  "그리버에게 물리면 이상하게 변해버려."라는 척의 말은 그들이 기억을 되찾음으로서 본래의 인격을 되찾게 됨을 잘 알려줍니다. 실제로 처음 물렸던 찰리가 발광하며 주인공을 공격하고, 주인공을 편하게 받아주었던 알비조차 주인공에게 "네가 왜 여기 있냐!"면서 추궁니다.


  민호나 뉴트 등 동료들은 토머스가 그들을 잡아가둔 세력과 한 편임을 알면서도 "과거는 사라졌다."라면서 편하게 받아들이지만, 그들이 만일 기억을 되찾는다면 과연 그렇게 쉽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요?


  토머스가 구해준 알비가 목숨을 걸고 토머스를 도왔듯이, 토머스의 도움을 받은 그들 역시 동료로서 협조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서도, 앞으로의 이야기 진행에 많은 불안감을 안게 해 줍니다. 아직까지 그들 사이에서는 밝혀지지 않은게 너무 많으니까요.



  이런 모든 점을 생각할 때, "메이즈 러너"는 참으로 흥미로운 영화입니다. 3부작의 거대한 구상에 어울리는 복잡한 배경, 그리고 포스트 아포칼립스 냄새를 물씬 풍기는 무대, 여기에 매력적인 소년들의 우정과 대립, 그리고 모든 것의 배후에 얽힌 음모 등.

  청소년용 소설이 원작이기에 지나치게 어두운 분위기는 피하고 있지만, 판타지 작품에서는 느끼기 어려운 설득력도 충분히 겸비하고 있죠.


  무엇보다도 "거대한 미궁의 영상"은 압권입니다. 미국처럼 파노라믹 포맷으로 즐길 수는 없지만, 최소한 영화관에 가서 보시길 권합니다. 그 장면들만으로도 충분히 볼 가치가 있으니까요.


  이 작품이 "3부작의 서막"인 만큼, 많은 분이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제게 있어 이 작품은 속편을 기대하기에 충분할만큼 매력적이었고 재미있었으니까요. 이미 2편의 계약은 되어 있지만, 2편을 제작할지는 미정인 만큼 하루 먼저 개봉하는 한국의 성적도 중요하지요. 그만큼 큰 시장이니까요. 물론 미국의 성적이 가장 중요한 것은 말할 필요가 없겠지만...^^



여담) "메이즈 러너"의 가장 큰 매력은 소년 캐릭터에 있습니다. 주인공 토머스의 연기가 돋보이지만, 주요 인물들 역시 참 매력적이거든요. 액션성이 돋보이는 민호나 여린 듯하면서도 적극적인 뉴트, 그리고 순수한 느낌의 척 등 보이즈 러브(BL)를 좋아하는 여성 팬들에겐 최고의 작품일지도 모릅니다.^^

  그 중 민호가 참 인상적인데, 비록 토머스에게 끌려다니는 듯 하면서도 "러너"의 지도자로서 충실한 활약을 보여줍니다. 이름부터 외모까지 친근한 한국 캐릭터가 이렇게까지 돋보이는 할리우드 영화는 쉽게 찾기 어렵죠.(누설이지만, 그는 토머스, 뉴트와 함께 3편까지 꾸준히 활약합니다.)

  민호 역을 맡은 이기홍씨는 현재 21세의 한국계 미국인으로 영화 출연은 처음인데, 다른 작품에서도 꾸준히 활약해 주었으면 좋겠습니다. 친근한 분위기가 마음에 들거든요.

  한편, 척 역을 맡은 브레이크 쿠퍼는 원작을 너무 좋아한 나머지 "내가 척 역을 맡고 싶다."라고 감독에게 계속 트윗을 보낸 끝에 발탁되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정말로 원작을 본 사람들이라면 "얘야 말로 척이야!"라고 외칠 정도로 자연스럽죠.


추신) 이 작품을 감독한 웨스 볼 감독은 본래 단편 애니메이션을 주로 작업했는데, 그 중엔 국내의 SF팬들에게 호평받은 작품, "Ruin"이 있습니다. 본래 웨스 볼은 바로 이 작품을 장편으로 만들고 싶어서 영화사를 찾아갔는데, 마침 "메이즈 러너"를 제작하려 했던 제작자가 본래 내정되었던 감독을 내치고 그를 선택한 것이지요.


  이 작품 "Ruin"을 보시면, 그가 "메이즈 러너"의 감독으로 발탁된 이유를 이해할 수 있을 겁니다. 그야말로 "메이즈 러너"의 외전이라고 해도 이상하지 않을 느낌이니까요.


  2년 전에 소개된 이 작품은 국내의 SF 팬들 사이에서도 화제가 되었는데, 웨스 볼 감독의 감각을 충분히 느끼게 하는 동시에 "메이즈 러너"가 성공해서 속편들이, 그리고 웨스 볼의 또 다른 SF 작품이 선보이길 기대합니다.




추신2) 코엑스에 가면 "메이즈 러너"의 광고를 볼 수 있습니다. 참 멋지게 연출했지요.


posted by 별을 좋아하는 표도기
SF&판타지도서관 2013.12.14 22:39

  톨킨의 호빗 2편이 개봉 중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속편이라는거죠. 극장에서 보긴 했지만, 1편을 예습해야 겠죠? 게다가 기왕이면 확장판으로...



  이미 2편이 개봉했지만, 아는 사람들을 모아서 1편의 확장판을 함께 볼 생각입니다. 18분 정도 내용이 추가되어 187분. 여기에 1시간 정도 제작 비화 다큐멘터리를 함께 보기로 하고요.


  현재 제 친구를 포함해서 12명 모였는데, 10자리 정도 여유가 있어 같이 보실 분을 찾습니다. 참가비는 인원에 비례하여 줄어들고, 먹을 것은 각자 가져와서 나누어 먹기로 해요.


  12월 21일(토) 오후 1시부터 4시간 동안 함께 봅니다. (3시간은 영화, 1시간은 부가 영상)


  장소는 SF&판타지 도서관 상영관.오시는 길 )


  함께 보고 싶은 분들께서는 제 메일( pyodogi@gmail.com )로 전화번호와 이메일 주소를 보내주세요.


  제가 문자와 메일로 답장을 드릴테니, 이 내용에 답장을 보내주시면 확정됩니다.

posted by 별을 좋아하는 표도기
별 작품 이야기 2013.09.05 13:19




  국내에서는 '독수리 오형제'라는 이름으로 기억에 남아 있는 "과학닌자대 갓차맨".


  "달려라 번개호"(마하 고고고!, 스피드 레이서), "데카맨", "허리케인 폴리머", "인조인간 캐산"(신조인간 캐산), "타임 보칸 시리즈" 등. 70~80년대 TV에서 잘 알려진 타츠노코프로의 대표작이자, 타츠노코프로의 설립자 중 하나인 요시다 타츠오가 원작을 맡은 작품입니다.

(요시다 타츠오가 제작을 맡지 않은 작품 중에서도 "초시공요새 마크로스"(원작:스튜디오 누에), "기갑신세기 모스피터" 등 수많은 SF 작품으로 명성이 있는 회사이기도 합니다만...)


  요시다 타츠오 원작의 작품은 일본 내에서만이 아니라 외국(우리나라만이 아니라, 미국, 유럽 등)에서도 인기가 좋은데다, 그림풍이 영화쪽에 가까운 사실적인 느낌이라 실사로 만들어지는 것이 기대되었습니다.


  매트릭스의 워쇼스키 형제(자매)의 "스피드레이서"를 시작으로, "신조인간 캐산", "얏타맨" 등이 실사 영화로 제작되었고, 이번에 "과학닌자대 갓차맨"이 개봉했습니다.


  "갓차맨"이라는 이름으로 개봉한 영화의 감독은 "고쿠센", "(도박묵시록) 카이지 1,2"를 성공시켜 만화의 실사화에서 어느 정도 실력을 인정받은 사토 토야. 출연진으로는 마츠자카 토오리나 고리키 아야메 등 청춘스타로 떠오르는 배우들을 대거 투입하고, 80억엔(800억원)에 이르는 제작비를 동원한 대작으로 기획, 제작되었습니다. 일본 TV 방송망 개국 60주년, 일활의 100주년, 그리고 타츠노코프로의 50주년 기념작이라는 이름에 어울리는 작품으로 말이지요.




  그렇게 해서 개봉한 갓차맨... 그런데 그 성적은... 주말 2일간에 1억 1569만엔. 관객은 9만명....

  (307개 스크린에서 개봉했는데, 일본에서는 300개 이상 스크린에서 개봉시 주말 수입을 3억엔 이상을 히트작으로 칩니다.)


  80억엔을 들여 제작한 이 영화의 최종 수입은 현재 10억엔 정도로 예상되고 있는 대참패를 기록했습니다.


  야후 무비의 평점은 5점 만점에 1.9점. 관객도 중고년층 이상으로 원작에 향수를 가진 이들이 "그래도 한번 볼까."라는 식으로 가는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고 하지요.


  야후 무비의 리뷰도 최악을 달리고 있습니다.


  "도대체 뭘 하고 싶었는지 모르겠다."

  "갓차맨이라고 생각하고 보러 갔는데..." (전혀 아니었다.)

  "조인전대 제트맨"

  "갓차맨일 필요 있냐?"

  "다시 만들어! 팬으로서 도저히 못 보겠다." 


  ....


  뭐 이렇습니다. 영화 평론가에 따르면, "원작에 있던 새의 설정이 사라지고, 남녀의 삼각관계가 도입되었다는 점. 또한 세계가 괴멸적인 상황이면서도 도쿄는 무사한 상황 등, 설정과 영상이 유리되었다는 것. 액션 영화이면서 누구 하나 육체적인 훈련을 하지 않은 것 같이 보인다는 점 등이 문제점으로 제기되어, 왕년의 팬도 신규 팬도 몰입할 수 없는 작품"이라고 하지요.


  그렇다면 도대체 왜 이렇게 엉망이 되었을까요?


  사실... 이러한 상황은 처음부터 예견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위의 평에도 있지만, 여하튼 이건 "갓차맨"이 아니거든요.


  사실 "신조인간 캐산"도 그랬습니다. 분위기부터 설정까지 원작과는 완전히 판이한 느낌. 정말로 평이 좋지 않았지요.(그때만 해도 "캐산이니 보러가자!"라는 분위기가 지금보다는 높았기 때문일까요? 그나마 흥행에는 실패하지 않았습니다. 제작비 6억엔에 흥행 수입 15억엔 정도로 이번과 달리 제작비를 적게 들였다는게 더 효과가 있었을 듯 하지만요.)


  "갓차맨" 영화는 갓차맨이라기보다는 "사이보그009"나 "엑스맨" 같은 느낌을 줍니다. 주인공들은 세계가 거의 멸망 직전 상황에서 난부 박사(남박사)에게 '적합자라는 이유만으로' 강제로 수용되어 훈련을 받은 인물들이고, 적의 보스는 주인공의 -세뇌된- 연인이고...


  복장 디자인부터 설정, 그리고 분위기에 이르기까지 원작에서 열혈이 넘치는 "과학닌자대"의 활약상은 존재하지도 않지요.

  닌자에 가까운 독특한 무기와 특성으로 활약하는 "과학닌자대"는 어디로 가고, -위의 평에 나왔듯- 흔해 빠진 전대물이 되어 버린 것이지요. 아니, 그나마 '새'라는 느낌도 사라져 버렸으니 더욱... 배우가 어떻니 하지만 무시무시... 그 이전에 "갓차맨"이 아닌걸요? 


  차라리 "조인전대 제트맨"이라고 개봉했다면 나았을지도 모릅니다.(물론 "조인전대 제트맨"이라는 작품은 따로 있으며, 꽤 성공한 작품이지만요.^^) 제작비도 캐산처럼 한 10억 이하로 들여서 말이지요. 그랬다면 흥행에는 실패하지 않았겠지요. 하지만 이 상태에서는 도저히....



  결국 타츠노코프로의 애니메이션에서 실사화된 작품 중 성공한 것은 오직 2009년에 나온 "얏타맨" 밖에는 없게 되었습니다. (제작비 20억엔에 31억엔 수입. 블루레이까지 발매되었으니 2차 판권 시장에서도 선전한 것이지요. 야후의 평도 3.3점(개봉 당시엔 4점 이상)으로 호평일색이니까요.)


  모처럼 쓸만한 타이틀이 있다고 해도 최소한 원작의 팬만이라도 만족할 만한 작품이 되지 못하면 "최악!"이라는 것을 잘 보여준 사례가 될 것 같습니다.

posted by 별을 좋아하는 표도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