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히스토리(History) 채널은 이름 그대로 역사와 관련한 다큐멘터리를 많이 다루는 곳입니다.
심지어 많은 다큐멘터리 채널에서도 하고 있는 리얼리티쇼에서조차 역사와 관련한 골동품 이야기를 중심으로 다루고 있으니까요.
그러한 히스토리 채널에서 근래에 눈에 띄는게 두 가지가 있는데... 바로 "헌티드 히스토리"와 "에인션트 에일리언"입니다.
"에인션트 에일리언"은 이미 5시즌에 걸쳐 진행하고 있을 만큼 인기 있는 방송이고, "헌티드 히스토리"는 이번에 새로 시작한(더 정확히는 히스토리 HD에서 새로 시작한) 방송으로 둘 다 주목도가 높죠.
재미있는 점은 둘 다 역사와 연관이 없지 않으면서도, 항상 오컬트로 흘러간다는 겁니다. 아니 제목부터가 오컬트와 관련이 있다고 해야 겠군요.
"헌티드 히스토리"는 과거에 있었던 사건들을 소재로 하여 오컬트 이야기를 덧붙입니다. 어떤 장소가 어떤 이유로 영적인 힘이 있고, 그것이 그 사건에 영향을 주었다...라는 식이죠. 가령 뉴올리언스에서 일어난 살인 사건(카트리나 태풍때 대비 명령을 무시하고 남았던 청년이 여자친구를 살해하고 시체를 요리해서 없애려 했지만, 자살하면서 드러난 사건)과 관련하여 "카트리나 태풍 때 영들이 머물 곳이 필요했는데, 그 청년의 몸에 들어와서 신들리게 되었고 끔찍한 범죄를 저질렀다."라고 이야기하는 겁니다.
"에인션트 에일리언(고대의 외계인)"은 고대 문명에 등장하는 여러 요소들이 모두 외계인과 관련되었다고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가령 "일본에는 천구에 대한 전설이 있는데 이는 수메르 신화 속의 아눈나키, 사실은 외계인이 산 속에 숨어 있었던 것을 보고 옛 사람들이 생각한 것이며, 중국의 무당산에서 용이 날아오른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이것은 고대인들이 외계인의 우주선을 보고 용이라고 생각한 것이다."라고 이야기합니다. "제우스나 토르의 번개는 번개를 쏘는 외계인의 무기"이거나 "외계인의 전기 기술자"라는 식의 이야기도 나오죠.
이들 방송을 보면 절로 모르게 딴죽을 걸고 싶어집니다.(사실 제가 딴죽왕입니다. 뭐든 딴죽을 걸지 않고는 버티지 못하죠. 아내가 '쯧코미 킹'(쯧코미 = 딴죽의 일본어?)이라고 부를 정도.^^)
이를테면 뉴올리언스의 살인 사건은 카트리나 태풍이 물러나고 14개월 뒤에 일어난 우발적인 범죄죠. 영능력자라는 분들은 점잖은 청년이 살인을 저지른게 귀신이 들려서라는데, 하필이면 태풍이 물러나고 14개월 뒤에야 귀신이 발작해서 범죄를 저질렀다는 건 이상한 일입니다. 그보다는 말다툼을 하다가 화가 나서 목을 졸랐는데 실수로 죽여버리고 말았다...라는 것이 더 자연스럽겠죠. (실제로 그랬다고고요.) 그 청년은 이라크전에 참전한 사람이라고 하는데 그만큼 폭력에 대한 내성이 낮아졌을 가능성도 있고요.
영능력자 자신은 다른 이에게 저주를 받아서 귀신이 들려서 '불안하고 일이 잘 되지 않았다.'라고 하는데, 이것도 귀신이 들렸다기보다는 평소 정서불안인 영능력자가 저주를 받았다고 착각해서 혼자 불안하게 느꼈다고 생각하는게 더 자연스러울 겁니다. 만약 저주를 받았다는 사실 자체를 모른다면 불안한 증세도 없었겠지요. 영능력자 중에는 "귀신을 믿지 못하겠다면 (그리스도교의) 성서를 읽어보면 생각이 바뀔거."라고도 합니다. 하긴 뭐... 수메르 시대에도 '귀신 쫓는 신'이 존재했으니 그들 신화의 내용을 100% 진실로 믿는다면 정말로 귀신이 있었다는 말이겠죠. 하지만 한국의 처용가만 보아도 알 수 있듯이, 사실 고대인들은 뭔가 이상한 일이 생기면 악마나 귀신을 내세우기 일수였습니다. 병이 걸릴 때마다 굿을 하며 귀신을 쫓는다고 했으니 말입니다. 그런 고대인들이 쓴 책이나 말한 내용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는 건 문제가 있겠지요. 그렇게 생각하자면, 지금도 태양은 지구 주위를 돌고 있어야 하는게 아닐까요?
에인션트 에일리언은 더더욱 딴죽을 걸기 좋은 소재입니다. 초기에는 그나마 뛰어난 고대의 과학 기술을 바탕으로 뭔가 이야기를 꺼냈지만, 지금은 모두 "신화의 내용은 진실이고 사실은 외계인이었다."라는 식이니.... 신화속의 존재가 모두 외계인이었다고 한다면, 고대 세계는 온갖 종류의 외계인이 날뛰던 시대였다는 얘기가 됩니다. 세계 각지에 무수한 종류의 신이 존재하니 외계인의 수도 어마어마했겠지요. 그런데 그들이 남긴 것은 고작 돌이나 나무로 된 조각상, 그리고 어린애도 만들 수 있는 흙으로 된 장난감이나 가공하기 쉬운 금으로 된 장신구였다는 것이지요.
"헌티드 히스토리"나 "에인션트 에일리언"은 모두 자신들이 믿고 싶어하는 방향으로 해석하기 좋아하는 인간의 본성을 잘 보여주는 듯 해서 흥미롭습니다. 또 한 편으로는 여기저기 세계 각지의 신화나 전설, 그리고 역사들을 살펴보기에도 좋고요.
하지만 '흥미로운 소재거리'라는 것은 사실임에도 이들은 한편으로 상상력을 제한하는 문제를 일으키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아 그래 그건 외계인의 짓이야."라거나 "아 그래 영이 문제를 일으킨거야."라고 생각하는 순간 우리는 더 이상 고민하고 생각할 필요가 없기 때문입니다.
가령 "영이 살인을 저지르게 했다."라고 생각하면, 그 순간 그 청년의 내면에서 일어났을 여러가지 충동이나 고민, 그리고 고뇌 등을 생각할 필요가 없어집니다. "그가 죄책감과 불안에 쫓긴 흔적이 역력하며 그것만으로도 영화 한 편 쯤은 충분히 나올 수 있을 것 같음에도" 우리는 '그래, 영의 짓이니 그의 내면은 필요없지.'라고 무시할 수 있습니다.
"외계인의 짓이야"라고 말하고 납득해 버리면 신화 속에 감추어져 있는 온갖 상징이나 고대인들의 생각들을 무시하게 되어 버립니다. 분명히 신화라는 것은 당시대 삶에 대한 묘사도 다채롭게 들어있고, 그들이 생각하는 방식이나 견해에 대해서 알려주는 도구임에도 우리는 "외계인을 보고 그렇게 믿은거야. 고대인이 착각한거지."라고 생각하고 말아버릴 테니까요.
그리고 이는 더욱 더 상상력을 낮추게 마련입니다...
이 같은 오컬트 방송이나 이야기를 재미있게 보는 건 상관없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때로는 좋은 소재로서 우리의 상상력을 자극하는게 아니라, 우리가 생각할 여지를 없앨 수도 있다는 건 한번쯤 생각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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