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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 작품 이야기

기생수 : 파트 1 ~ 원작의 분위기와 주제를 2시간으로 잘 압축한 수작 ~


  “인간이 반으로 줄어들면 타버리는 숲도 반이 될까?”

  인간이라는 동물은 참으로 재미있습니다. 어찌 보면 고양이만도 못한 전투력을 가진, 그야말로 왜소하고 약한 존재이지만, 문명이라는 힘으로 지상의 왕자로 군림하고 이제는 태어난 고향 지구를 떠나 우주로의 여정을 생각하고 있으니까요.

  인간만이 가진 문명이라는 힘은 지구라는 환경 자체를 바꿀 수 있는 능력을 주었습니다. 아니, 다른 동물들도 주변 환경을 바꿀 수 있지만, 인간은 육체적 한계를 넘어 환경을 바꿀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어느새 인간은 70억이라는 숫자로 늘어나게 되었지요. 그렇게 되면서 사람들은 생각하게 됩니다. 과연 우리는 어떤 존재인가? 이대로 좋은 것인가?

  그러한 생각 속에 인간의 본성을 그린 이야기가 나왔고, 이와사키 히토시의 [기생수]도 바로 그중 하나입니다. 인간에 기생하여 몸을 강탈하여 인간을 잡아먹는 괴물이 등장하고, 오른팔에만 기생되어 인간(신이치)으로서의 의식과 기생체(오른쪽이)의 의식이 공존하는 주인공이 이들에 맞서는 독특한 작품은 "신체강탈자의 침입(Invasion Of The Body Snatchers)" 같은 설정이지만, 단순히 신체강탈자와 인간의 싸움을 그린 것에 그치지 않고, 신체강탈자의 입장에서 인간을, 다시 인간의 입장에서 신체강탈자를 살펴보는 깊이있는 연출로 일본에서 코단샤 만화상이나 성운상 코믹스 부문을 수상. 코믹스 1000만권 이상을 가볍게 달성한 인기작입니다.

[ 뭔가 어색해보이는 1권 표지. 하지만 그후 전설이 된다. (c) Kodansha / Iwasaki Hitoshi ]


  머리가 갈라지며 인간을 통째로 잡아먹을 뿐만 아니라 촉수처럼 늘어나고 칼날로 변해서 쇠나 콘크리트를 갈라버리는 기생수의 모습은 이와사키 히토시의 독특한 그림과 어울리며 깊은 인상을 주었고, 다른 많은 작품에서 패러디나 오마주되기도 했습니다.(기생수의 연출자체가 영화 “괴물(The Thing)”의 오마주로도 볼 수 있겠습니다만.) 그만큼 애니메이션이나 영화 제작이 기대되었지만, 만화 원작 이외엔 아무 것도 나오지 못한 점도 인상적이었죠. 한때 할리우드에서 판권을 사서 제작할 예정이었다고 하지만 흐지부지된 일도 있었습니다.

  그것은 이 작품이 인간의 어두운 모습을 처절하게 보여주며 한편으로 끔찍하고 잔혹한 묘사가 상당하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사람의 머리가 갈라져서 인간을 먹어치우는 장면이나 괴물들의 칼부림이 수없이 등장하는 작품은 실사로는 다소 수위가 높고 ‘블록버스터’에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되니까요.

  만화가 완결되고 자그마치 20여년이 지났기에 잊히는 듯 했던 이 작품이 토호에서 판권을 재취득함으로써 영화, 그리고 애니메이션으로 탄생했습니다. 2014년 10월부터 방송 중인 [기생수 세이의 격률(寄生獣 セイの格率)]. 그리고 2015년 2월 26일에 한국에서 개봉한 영화 [기생수(寄生獣)](국내에선 [기생수:파트 1])입니다.

[ 원작과 다른 그림체로 원작팬의 원성을 사기도 한 애니메이션 (c) Toho/Mad House ]


[ 일상은 어느날 잡아먹혔다. 실사로 재현된 기생수. (c) Toho ]


  애니메이션은 원작과 그림체가 달라지며 원작팬의 원성을 사기도 했지만, 21화까지 소개된 지금 비교적 호평 속에 진행 중입니다. 한편, 일본에서 2014년 11월 29일에 개봉하여 지금까지도 상영 중인 영화는 일본의 대중적인 사이트 야후 재팬에서 3.91점으로 역시 상당한 호평. 첫 주말 전국 영화 동원 랭킹에서 25만 6161명의 관객을 끌며 1위, 3억 4000만 엔(약 34억원)의 흥행 수입을 기록했습니다. 관객의 반 이상이 만화 팬이었다곤 해도 굉장한 인기죠.

  26일 개봉일에 본 [기생수:파트 1]은 이 같은 인기에 충분히 부합할만한 작품이었습니다. 완성도로 보면 조금 빠지는 부분도 있어 80점 정도를 줄 수 있지만, 원작의 팬이라도, 원작을 보지 않은 사람도 충분히 재미있게 볼 수 있습니다.


  영화는 원작에도 나왔던 대사로서 시작됩니다.

  “지구에 사는 누군가가 문득 생각했다.”
  “모두의 미래를 지켜야 한다.”

[ 왠지 귀가 가려워지는 느낌. 그런 현실감이 전해진다. (c) Toho ]


  기묘한 생명체가 자고 있던 누군가에 기생하는 장면에 이어, 한 소년(주인공인 신이치) 쪽에서 이어폰 때문에 귀로 들어가지 못하는 코믹한 연출이 등장하죠. 잔혹한 장면이 많고 심각한 내용이지만, 사실은 ‘오른쪽이(미기)’와 ‘신이치’의 장면에서 의외로 이런 장면이 많습니다. 자기 손과 벌이는 만담처럼 훈훈(?)한 연출도 이 작품의 특징이죠.
(오른손이 기묘하게 변하면서 눈알이나 칼날이 생겨난다는 설정을 생각하면 영화 “괴물”처럼 그로테스크한 연출이 될 거라 생각하기 쉽지만, 실사로 만들어진 오른쪽이의 모습은 원작이나 애니보다 귀엽게 느껴집니다. 진짜처럼 자연스럽고도 재미있는 오른쪽이의 모습만으로도 이 영화는 볼 가치가 있습니다. 특히 애니와는 다른 소년풍 목소리가 더욱 어울리면서 중반까지 신이치의 공생자 정도로 머물렀던 원작과 달리 초기부터 친밀하게 만담(?)을 주고받는 관계가 어색하지 않게 느껴지죠.)
  

[ 픽사 애니메이션에 나올듯한 오른쪽이. 그 다채로운 모습만으로도 영화의 재미는 충분하다. (c) Toho ]


  이처럼 대비되는 기생 과정을 거쳐 아침. 머리가 갈라지면서 사람의 머리를 단방에 먹어치우는 장면은 충격적입니다. 관객 모두가 깜짝 놀라는 것이 느껴지는 순간. 끔찍하고 무서운 장면이지만, 지나치지 않은 느낌? 얼굴이 갈라지거나 촉수가 나오는 연출은 자연스러우면서도 원작의 그로테스크한 느낌을 잘 살렸지만, 혐오스럽고 부담될 정도는 아닙니다. 선혈과 살육 장면을 잘 가리면서도 빠르게 넘기고 있죠.

[ 원작의 그로테스크한 느낌을 잘 살린 연출. 거대한 눈이 좌우로 움직이는 장면이 더욱 무시무시하다. (c) Toho ]


  단행본 기준으로 10권(애장판은 8권)에 이르는 작품을 2시간짜리 영화 2편으로 제작해야 하는 만큼, 영화는 원작에서 많은 부분을 생략하고 있습니다. 주인공 신이치의 아버지는 이미 사망하여 등장하지 않으며, 여주인공 무라노 사토미와 함께 신이치와 삼각 관계를 이루었던(그리고 기생수를 느끼는 특수한 힘으로 인해 살해된) 카나도 등장하지 않습니다. 그만큼 이야기는 빠르게 전개됩니다. 신이치 만이 아니라 여러 곳에서 펼쳐진 여러 이야기들이 신이치를 중심으로 연출되기에 좀 더 간결하게 이해됩니다.

  그럼에도 원작 내용 중 가장 중요하다고 할 수 있는 신이치의 변화, 그리고 한편으로 오른쪽이의 변화는 충분하게 녹아들어갔습니다. 여기엔 배우들의 열연이 뒷받침되었다고 보는데, 신이치 역을 맡은 소메타니 쇼타는 지극히 평범한(사토미의 말에 따르면 ‘부들부들’거릴 정도로 다소 소심한) 고교생의 모습에서 기생수에 가까운 냉정한 존재로 변해가는 모습을 잘 보여주었습니다. 물론 작중 가장 중요한 인물인 타미야 료코역의 후카츠 에리의 연기는 이를 넘어서지요. 흔히 느물거리는 양아치 같은 역할로 자주 나오던 키타무라 카즈키가 기생수의 리더 같은 존재로 의원에 당선되는 히로카와 타케시역을 맡아서 표정없는 연기를 보여주는 것도 일품이지요.

[ 후카츠 에리의 연기는 존재감을 가득 채워준다. (c) Toho ]


[ 키타무라 카즈시가 연기한 히로카와 타케시. 2부에서의 활약이 기대된다. (c) Toho ]


  아사노 타다노부가 맡은 고토역, 히가시데 마사히로가 연기한 –철가면이라 불렸던 원작과 달리 싱글거리는 표정의 미소년인- 시마다 히데오처럼 원작과 다른 분위기의 캐릭터도 있지만, 영화만으로 볼 때 위화감은 별로 없었습니다. 적어도 원작을 읽고 바로 가서 보지 않는다면 말이죠.

  약간은 걱정했던, 기생수의 싸움도 적절한 효과음과 더불어 잘 연출되었다고 생각합니다.  마지막 신이치와 A의 싸움은 약간 만화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크게 드러나지 않고 잘 엮어냈지요. 일본 영화의 기술이 발달한 것을 잘 보여주는 작품이라고 하겠네요.

[ 기생수라면 역시 촉수 대결을 빼놓을 수 없다. 인간은 불가능한 촉수의 싸움을 실사로 잘 연출했다. (c) Toho ]

  원작의 팬으로서 기생수에게 잠식된(신체를 강탈당한) 인물이 본래 인간의 마음을 보여주는 장면은 약간 논란의 여지가 있겠지만, ‘인간의 마음’이라는 작품의 또 다른 주제를 상징하는 타미야 료코의 대사 등과 엮어서 충분히 좋은 느낌을 보여주었습니다.

  다소 작위적인 전개, 아주 약간의 사족, 여기에 원작의 내용을 많이 생략한 점 등 일말의 아쉬움은 있지만, [기생수]라는 작품의 팬이건 아니건, 영화로서 충분히 재미있게 볼 수 있는 작품입니다. 가능한 영화관에서 보시는 걸 권합니다. (아니 어떤 영화건, 평생 한 번의 만남일 수도 있는 영화 상영은 가능한 최상의 조건에서 하는 게 좋지요.) 청소년 관람불가라는 리스크에 더하여 대다수 일본 영화가 그렇듯 국내의 예매율도 높지 않고, 개봉관수나 시청 가능 시간대도 얼마 되지 않으니 영화관에서 보려면 가능한 서두르는 게 좋습니다.

  ‘파트 1’이라는 말이 붙었듯, 영화는 올해 4월에 일본에서 개봉할 ‘완결편’을 합쳐 2부 구성. 2010년에 [반지의 제왕:반지원정대]가 처음 개봉했을 당시엔 한국에선 익숙하지 않았던(그래서 영화가 끝나고 나오면서 “이게 뭐야!”라는 말이 들려왔던) 상황과 달리, 이제는 꽤 익숙해졌다고 해도 역시 반쪽짜리 영화로서 끝나면 안 되겠죠.
  [기생수]라는 작품은 사실 끊기가 애매한 게 사실이지만, 영화 [기생수:파트1]은 그 점에서도 아주 적절한 위치에서 일단락 지었다고 봅니다. 그렇게 해서 줄 수 있는 완성도가 80점. [완결편]이 국내에서 개봉한다면, 둘을 합쳐 이야기할 수 있겠죠.

  [기생수:파트1]은 원작의 팬도, 그리고 원작을 모르는 사람도 재미있게 볼 수 있는 작품입니다. 표값과 시간이 아깝지 않을만큼 충분히 만족했기에 [기생수:완결편]도 꼭 국내에서 개봉해주길 바랍니다. 가능한 빨리 말이죠.

[ 유쾌한(?) 콤비의 모습을 또 볼 수 있기를 기대한다. (c) Toho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