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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 작품 이야기

스타쉽트루퍼스로 시작하여 나는 전설이다를 거쳐 로드런너로 끝나는 영화, 월드 워 Z

  우선 이 글을 보기 전에 딱 하나만 먼저 얘기하겠습니다. "월드 워 Z"는 이제까지 나온 수많은 좀비물 중에서 매우 이례적으로 '고어물'이 아닙니다. 그런 만큼 전연령 관람가를 받았고, 기존의 좀비물 팬들에게는 아쉬울지 모르지만 일반 대중이 편하게 볼 수 있는 좀비물로서는 충분히 괜찮은 작품입니다. 그렇지만 원작을 재미있게 본 사람으로서 굉장히 아쉬운 점이 많지요. 여기서는 바로 그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월드 워 Z"는 사실 그다지 기대하지 않고 본 영화입니다.


  사실 좀비 영화 자체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터라 기대하는 건 딱 하나였죠. 바로 "세계대전 Z"... 다시 말해 군대와 좀비의 처절한 전투였습니다.


  그러나 영화는 결코 "세계대전 Z"를 보여주지 않습니다. 단지 어쩌다보니 가족 살리겠다고 발버둥치는 한 사내의 모험담을 보여줄 뿐이었죠. 뭔가 충격적인 장면에서 시작해서 더 거창해지는가 했더니 한참 몰락해서 조촐한 가족 이야기로 종결되는... 그러니까 용머리, 뱀꼬리...가 가장 잘 어울리는 영화였던거 같아요.


  좀비 영화라고 본다면 그럭저럭 괜찮다고 생각합니다. 게다가 '전연령 관람가' 잖아요! 아니 어떻게 좀비 영화가 전연령 관람가가 될 수 있나...라고 생각하는데, 네... 가능합니다. 좀비와의 전쟁이 아니라, 광견병 폭도에게 쫓겨다니는(또는 피해다니는) 아버지의 얘기를 그리면 말이죠.



[ 혼란한 상황에서도 부모는 아이들을 구하느라 열심히 노력합니다. 뭐 뻔한거죠. ]


  (여기서부터는 스포일러가 있을 수 있으니 잘 보세요. 어차피 내용이 뻔한터라 스포일러고 뭐고 상관없긴 하지만 말이죠.)


  영화는 일본의 도쿄 이상으로 자주 망가지는 도시, 뉴욕의 한 가운데에서 시작됩니다. 이런 작품의 서두에서 항상 나오듯 완전히 정체된 도로에서 뭔가 이상한 징조가 나오기 시작하고 갑자기 오토바이를 치고 차들을 박살내며 달리는 트럭이 등장하죠.


  여기저기 위험한 지역마다 골라다녔던 주인공. 뭔가 심상치 않은걸 알고 트럭의 뒤를 따라 열린 도로를 쌩쌩 달려갑니다. 그리고 트럭이 다른 트럭에 부딪쳐 전복되고 당연히 주인공의 차도 망가지고...


  여기서 '대공포'가 일어납니다.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덥치고 물어뜯고 그 사람은 쓰러져서 몸을 마구 비틀다가 10초가 지나자 일어납니다. 동공이 희미하게 된채로 일어난 사람은 갑자기 울버린(아님 세이버투스?)이라도 된듯 날뛰면서 주변 사람을 물어뜯죠. 여기서 10초라는게 굉장히 인상적으로 소개되는데, 하나, 둘, 셋 이라는 걸 세다가 '열. 드디어 기차가 들어옵니다.'라는 말이 나오거든요. 그리고 거리는 아수라장이 되죠. 여하튼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사람들. 죽자마자 일어나서 달려드는 사람들... 주인공은 운좋게? 버려진 캠핑카를 타고 달아나고...


  확실히 이상하다는 걸 알았겠죠. 도심을 벗어나서 달아나는데 주인공을 UN에서 일하던 시절의 동료에게서 연락이 들어옵니다. 주인공을 구하러 사람을 보낸다는거죠. 그 와중에서 주인공은 딸의 천식약을 구하러 마트에 뛰어 들어갑니다. 이런 상황의 마트가 어떤 상황인지는 익히 알텐데 역시 오지만 다니다보니 몰랐던 걸까요. 아니면 딸을 구하느라 정신이 없었던 걸까요? 폭력 사태가 벌어지는 와중에 경찰이 뛰어들어오지만 경찰조차 뭔가 집어드는데만 관심이 있는 상황이 참 멋지게 그려지지요.


  캠핑카의 열쇠를 빼는걸 잊은걸까요? 당연히 차는 사라졌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아파트로 도망치게 되죠. 그 와중에 좀비에게 쫓기고, 어떤 집에 들어가서 무사하게 되지만 탈출해야 하고... 좀비에게 쫓기며 극적인 탈출에 성공하여 대피한 함대에 도착하게 됩니다.


  거리를 가득 메운 좀비들. 수없이 달려오는 좀비들. 여기에 대규모 함대에서 펼쳐지는 대책 회의... 화면에서는 감염율이라는 숫자가 스톱워치의 마지막 숫자처럼 늘어나고 있습니다. 그 와중에서도 군대는 규율이 잡혀 있는 느낌. 뭔가 대책을 세우고 반격을 하려는 느낌을 보이며 "그래. 이제부터 세계 대전 Z의 시작이구나."라는 느낌을 갖게 하지요.


  하지만 무사히 살아났다고 생각하고 안심한 것도 잠시. 주인공은 바이러스의 원인을 밝히러 어딘가로 가게 됩니다. 처음 '좀비'라는 내용을 보고했던 장소라고 하네요. '가족과 함께 있어야 한다.'라며 거부하는 주인공. '그럼 자네와 가족들은 불필요한 사람이 되어 쫓겨난다.'라는 동료. 어쩌겠습니까? 떠나야죠.


  여기서 갑자기 이야기는 "나는 전설이다."추적 60분"으로 바뀝니다. 주인공이 안내할 목적이었던 박사는 비행기에서 미끄러져 총을 쏘는 바람에 죽어버리고 주인공이 원인을 밝혀야할 형편이 되고 말죠. 기지에 남아 있던 병사들로부터 발병에 대한 이야기를 듣습니다. "10분"이라는 말을 보면 점차 발증 시간이 빨라졌다는 걸 암시하는 것도 같지만, 뭐 그건 무시하고...


  북한에 무기를 팔았다가 갇혀 있던 CIA 요원에게서 이스라엘은 미리 알고 대처했다는 얘기를 듣게 되죠. 물에 빠진 사람 지푸라기...처럼 그는 비행기로 가게 됩니다. 병사들의 도움을 받아서 자전거를 이용해서 소리를 내지 않고 이동하는거죠. 여기서 당연하다는 듯이 울리는 휴대폰. 아내가 전화를 한 거죠.


  "전화기는 끄는 예의를 갖춥시다." 병사의 목소리가 극장 예절을 알리는 메시지처럼 들려옵니다. 그러리라 생각은 했지만, 참으로 한심한 장면이 아닐 수 없지요. '소리를 내면 안된다.'라는 말을 들은지 얼마나 되었다고 전화기를 진동으로 둘 생각조차 안 한 건지. 여기서 이 작품이 "영화적 약속에 충실하다."라는 것을 확실하게 깨닫게 됩니다. 그것도 "할리우드식 영화적 약속" 말이죠.


  이스라엘은 나라 전체를 벽으로 둘러싸서 좀비의 공격에 대비하고 있습니다. 참 인상적인 장면이지요. 중세의 성 같은 느낌일까요? 게다가 꾸역꾸역 피난민들이 들어오고 있어요.


  "그럴수록 죽여야할 좀비가 하나 줄어든다."


  성벽 밖에는 무진장 많은 좀비가 돌아다니고 있으며, 곳곳에 철망으로 완전히 둘러싼 통로들이 나 있습니다. 좀비들은 철망 안의 '먹이'에는 관심이 없는 것 같지만 말이지요.


  성벽을 감시하는 헬기. 곳곳에 늘어선 병사들. "스타쉽 트루퍼스"의 한 장면이 떠오르는 느낌이 아닐 수 없습니다. "여기라면 드디어 전쟁을 볼 수 있겠군."


  그런데 왠걸. 이런 평화는 그야말로 한 순간에 깨어집니다. 살아난 것을 안심하는 피난민들이 부르는 노래 때문에. 게다가 그 노래를 멀리멀리멀~~~~~~리 퍼트려 주는 스피커 덕분에. 게다가 방벽을 세우고 좀비에 대비할 줄은 알았지만, 그런 거대한 소리 때문에 좀비가 밀려오는 것 따위는 전~~~~~~~~~~~~~~~~~~~~혀 생각하지 않았던 바보 같은 군인들 때문에...


  여기에 좀 전의 헬기는 어디로 사라졌는지 방벽 위를 전혀 감시하지 않는 실수도 겹쳐서 좀비들이 방벽 위로 밀려오게 된 것이죠. 층층이 쌓여서 기어오르는 좀비의 모습은 가히 개미떼와 같은데, 주인공이 주의를 주기 전까지는 아무도 신경쓰지 않고...



[ 초인적인 능력으로 기어오르는 좀비. 이건 좀비라기보다는 개미떼로 밖에는 안 보인다. ]


  그 다음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안으로 쏟아져 들어온 얼마 안 되는(정말로 얼마 안 되는) 좀비들이 날뛰기 시작하고 뉴욕의 상황이 재현되고... 사람들은 위에 철창이 있는 도로를 달리면서 도망치지만 좀비들이 사람을 채어 올려서 물어뜯고(다시 말하지만, 여기의 좀비들은 초인입니다. 원작의 느릿느릿 걸어다니는 그런 좀비가 아니라 요즘 추세에 맞게, 아니 그 이상으로 빠르고 날렵해요.) 죽입니다.


  "세계대전 Z"의 기대도 한순간에 깨어지고 말지요. 좀비들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순식간에 공항까지 밀려들고 주인공은 어렵게 비행기 하나를 세우고 도망칩니다. 그나마 병사들이 상관의 명령에 따라 그를 호위하려고 애쓰는 모습. 비행기까지 그를 호위하고는 뒤에 버티고 서는 모습은 참 인상적이겠네요. 수류탄으로 날려버리는 장면이 인상적... 이미 "세계대전 Z"(원작)의 느리지만, 머리를 빼면 약점이 없는 좀비는 저 멀리 사라져 버렸습니다.


  하지만 조금이나마 "세계대전 Z" 같았던 느낌은 여기서 끝... 다음은 어찌어찌해서 WHO의 연구소에 도착한 주인공의... '바이오 해저드' 아니 '로드 런너'가 펼쳐집니다.


  영화의 내용 자체가 좀비와의 전쟁을 그린 "세계대전 Z"가 아니라, 가족을 구하겠다는 일념 하나만으로 병의 원인을 찾겠다는 주인공은 어느새 놀라운(?) 힌트를 얻어서 좀비를 피할 수 있는 방법을 알아낸거죠.


  그런데 그 방법을 실현하려면 좀비로 가득한(80마리! 원작의 좀비라면 총 몇 자루면 해결되겠지만, 여기의 좀비는 무진장 빠르고 날렵하므로 어림도 없는 일) 이웃 연구동으로 가야 합니다.


  위험한 병원균을 조사할 때는 상처가 나면 안 된다는 아주 기본적인 원칙을 잊어버린 멍청한 연구자 때문에 그 병동의 전원이 좀비가 되어 버렸거든요.


  몰래 몰래 들어가지만 당연히 쫓기게 되고 옆동에서는 문을 열었다 닫았다 하면서 주인공을 도와주고 어찌어찌... 


  결국 주인공은 영웅이 되고 가족과 합류합니다. 마지막에 주인공이 알아낸 '좀비들은 감염만을 시키는게 목적이며 위험한 병에 걸린 사람은 아예 무시한다.'라는 것을 이용해서 좀비에게 보이지 않게 되는(비유가 아니라 정말로 보이지 않는 것처럼 행동하게 되는) '백신'을 생산하는 것으로 이야기는 끝납니다...


  마지막엔 일부 지역에 화염방사기나 기타 방법으로 좀비에 맞서는 모습이 뉴스 장면으로서 보여지기도 결국 "세계대전 Z"는 존재하지 않은 채 이야기를 막을 내려 버리고 말지요. 오호 통제라... 도대체 전쟁은 어디로?


  브래드 피트가 제작한 "월드 워 Z"는 "세계 대전 Z"의 설정을 매우 일부 차용한 할리우드 영화입니다. 할리우드 영화로서의 여러가지 특성을 매우 잘 살렸으며 1억 9천만달러에 달하는 제작비를 잘 살려서 그야말로 이제까지 보았던 어떤 좀비물보다 거창하고 멋진 영상을 제공합니다. 뉴욕의 한 가운데서 일어난 대공포의 현장, 그리고 이스라엘의 거대한 학살극 등은 확실히 "세계대전 Z"라는 원작의 분위기를 느끼게 하기에 충분합니다.


  하지만 영화는 거기에서 더 나아가지 못합니다. 처음부터 '가족 영화'로 설정해 버린 상황에서 허리가 잘린 채로도 기어오는 원작의 좀비를 연출할 수는 없었을 것이며, '가족을 지키고자 하는 한 남자의 싸움'이 되어 버린 시점에서 거대한 전쟁의 이야기와는 동떨어져 버린 것이지요.


  앞서 말했듯 이 영화는 분명히 좀비 영화로서 이제껏 보지 못했던 멋진 장면들을 보여주는 대단한 작품이며, 좀비를 '재난'의 영역으로 승화시킨 작품이라는 것은 부정할 수 없겠지만, "세계대전 Z"를 기대했던 이들에게는 이러한 '재난의 멋진 영상'에 비해 "전쟁"이 부족하다는 아쉬움을 느끼게 하는 작품이기도 합니다.


  특히나 후반부의 연구소 쪽 이야기는, 뭔가 앞 부분에 예산을 지나치게 써버린 나머지 더 이상 예산이 부족한게 아니었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잘 맞지 않는 느낌을 주니까요. '가족을 구하려는 한 남자의 노력과 희생'이라는 측면을 살리려는 것은 좋았을지도 모르겠지만 말입니다.


  결국 "월드 워 Z"와 "세계대전 Z"는 전혀 다른 작품으로 보아도 될 것입니다. 좀비와의 전쟁, 좀비 사이에서의 치열한 생존극을 기대했던 필자 같은 사람들에게는 아쉬운 일이지만...



여담) 파라마운트는 공식적으로 후속작을 만들기로 했습니다. 제작비를 뽑을만큼 충분히 성공했기 때문에 당연한 일이겠지만, 이렇게 되면 참 문제가 생겨 버립니다. 왜냐하면 이 시점에서 사실상 "좀비 전쟁"은 인간측의 절대 유리로 진행되기 쉬우니까요. 좀비가 군인들을 발견하고 공격하지 못하는데 도대체 어떻게 싸움이 될 수 있을까요? (눈 앞에 병사들이 있어도 무시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공격을 할 경우에만 좀비가 반격을 하거나, 또는 어느 시점에서 변종이 나와서 '위장 백신'이 무용지물이 되는 상황이 찾아와야 할텐데... 아무래도 이 영화 자체가 시리즈를 생각하지 않고(염두에 두기는 했겠지만) 완결하려고 하다보니 어쩔 수 없었던 것으로 생각됩니다.


여담2) 물론 "세계대전 Z"가 사실적인 이야기라고 하기에도 어려운게 많지요. 사실 원작의 좀비는 아무리 봐주어도 '과학'과는 거리가 너무 먼 존재이고 말입니다. 일본의 맹인 검객(?) 같은 묘사는 거의 닌자물이었고 말이죠. 그런 점에서 원작을 그대로 살리는건 바라지 않았습니다. 다만 제가 바랬던 "좀비와 군대의 싸움"이 그려지지 못한게 아쉬울 따름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