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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 작품 이야기

사자에상 방식의 묘미

 1969년부터 후지 TV에서 방송된 애니메이션 “사자에상”은 남녀노소 누구나에게 인기 높은 국민 애니메이션입니다. 네 컷 만화를 원작으로 만들어지지만, 애니메이션에서는 애니메이션 나름의 독자적인 구성으로 눈길을 끌고 있으며, 일본 만화 사상 최대의 베스트셀러인 원작 이상으로 엄청난 인기를 누리고 있습니다.

  “사자에상”은 매화마다 독립적인 에피소드로 구성된 시트콤 같은 작품입니다. 우리나라에서 비교하자면 “전원일기” 같은 드라마를 연상할 수 있을까요?

  그에 비할 만큼 오래 진행하면서도 주요 시청자가 아동에 집중되어 있는 “도라에몽”과는 어느 정도 비슷하면서도 차별되는 작품이죠.



  제목이 “사자에상”인 만큼 사자에(후구타 사자에)를 중심으로 여러 인물의 이야기를 그려내는데, 한 가지 특징은 주역인 사자에를 비롯해서 모든 인물들이 나이가 변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 세계의 시간은 항상 동일하게 반복됩니다. 24살(원작 만화에서는 27살)의 여성인 사자에는 1969년부터 지금까지 계속 24살이었습니다. 매년 봄, 여름, 가을, 겨울이 지나가고 생일이 지나가지만, 나이는 달라지지 않습니다. 그것은 주변 사람들도 마찬가지지요.


  “사자에상”을 이렇게 그려낼 수 있는 것은 이 작품이 만화 원작, 그리고 애니메이션이기 때문입니다. 실제의 배우는 나이를 먹으면 늙어가고 작품이 오래되면 작품 속 시간도 흘러갈 수 밖에 없습니다. 처음 시작할 때는 앳된 소년이었던 해리포터가 점차 어른이 되어 가듯, 드라마나 영화 속의 인물들은 점점 나이를 먹고 늘어가게 됩니다. 만일 어린 시절의 해리포터부터 다시 시작하려면 다른 배우가 출연할 수밖에 없습니다. 


  만화는 그런 제약에서 벗어나 있습니다. 만화 속 주역에게 주어진 시간은 현실의 시간과는 별개로 흘러갑니다. 그 중 가장 극단적인 것이 바로 “사자에상”처럼 한 해가 반복되는 연출입니다.


  일본에선 이러한 방식을 ‘사자에상 방식’이라고 부릅니다. “사자에상” 이전에도 이런 연출의 작품은 있었겠지만, 이 작품이 워낙 유명한 만큼 그렇게 부르는 것입니다.


  “사자에상” 방식의 만화는 캐릭터의 외형이 그대로 유지된다는 이점이 있습니다. 어릴 때 보았던 노비타(도라에몽의 주인공)와 지금의 노비타는 -애니메이션의 성우는 바뀌었고 약간 디자인이 달라질 수는 있어도- 초등학생 노비타 그대로입니다.

  “시티헌터”의 주인공 사에바 료는 항상 20대라고 말합니다. 만화 주인공은 나이를 먹지 않는다면서... “은혼”의 주역인 신바치는 ‘이 만화는 사자에상 방식이라서 우리는 나이를 안 먹는다.’라고 당당하게 대사로 말합니다.

  다카하시 루미코의 “우르세이 야츠라”나 “람마 1/2” 같은 작품에서도 주역들은 항상 같은 고등학교에 같은 학년입니다. “명탐정 코난”은 시작한지 18년째이지만 코난은 여전히 4학년이고, 란도 같은 고등학교를 다니고 있습니다. 역시 ‘사자에상 방식’으로 같은 해가 반복되는 것입니다.


  이처럼 많은 만화가 사자에상 방식을 애용하는 것은 그것이 편리하고 독자들도 받아들이기 쉽기 때문입니다. “명탐정 코난”의 시간이 흘러간다면 코난(신이치)은 이미 20대 후반의 모습이 되어야 하고, 란은 30대 중반의 나이겠지요. 그 오랜 기간 동안 두 사람이 헤어져 있다는 것은 이상한 일입니다. “람마 1/2”의 주인공들이 나이를 먹으면 그들은 대학교에 가거나 취직을 하고 다른 생활을 하게 됩니다. 사에바 료는 어느새 중년을 넘어서 장년, 또는 노년 이르겠지요.


  인물들의 나이가 그대로인 채로 주변의 상황, 그리고 때로는 인물이 성장하고 인물 간의 관계가 변화하는 것은 독자나 시청자들이 그들의 나이 변화에 신경 쓰지 않고 오직 이야기에만 집중할 수 있다는 이점이 있습니다. 그래서 그림으로 그려지는 만화에서는 이 같은 연출이 쉽게 사용되는 것이겠지요.


  ‘사자에상 방식’은 시트콤과 같은 방식의 작품에 어울립니다. 하나하나가 독립적인 에피소드로 구성되어 펼쳐나가는 방식에서, 하지만 독립적인 에피소드 구성이 중심을 이루다보니 긴 드라마를 엮어내는 데는 그다지 어울리지 않습니다. 장편 이야기라고 해도 대개는 기존 에피소드 몇 개 분량 정도로 심각한 얘기를 하고 끝낼 뿐이지요.

  각 에피소드의 구성은 달라지고 내용에 차이가 있지만, 이야기를 이끌어내는 주역들은 그대로이기 때문에 에피소드를 만들기도 쉽습니다.


  하지만, 그만큼 제약도 있습니다. 우선은 주역들이 항상 같다는 것이 문제가 되겠군요. 새로운 인물이 출현하고 때로는 인물이 사라지기도 하지만, 거의 스쳐지나가는 느낌이며 인물들의 성장이 있다고 해도 외모가 달라지지 않는 만큼 큰 변화가 느껴지지 않습니다. 



  반면 “맛의 달인”이나 “유리가면”처럼 시간의 흐름을 주는 작품은 이 같은 변화를 보여주는데 있어서 매우 충실합니다. “맛의 달인”에서는 주인공이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그 아이들이 성장해나가는데, 이에 따라 그들의 생활과 삶은 굉장히 많이 변화하며 그것이 자연스럽게 다가옵니다. 아버지와 대립하던 주인공이 ‘아버지’가 되면서 그 아버지와 화해하게 되고 이윽고는 자신이 맡았던 업무를 다른 이에게 물려주고 그를 키워나가는 장면이 연출되기도 합니다.

  “유리가면”에서는 어린 소녀였던 마야가 나이가 들면서 점차 사랑을 느끼게 되고 상처받고 갈등하는 것을 잘 보여줍니다.


  “드래곤볼”에서 손오공이 평생 똑같은 모습이어도 상관은 없겠지만, 그들이 성장함으로써 세계를 구하는 싸움이라는 모습에 더욱 어울리게 되었고 아이가 태어나고 또는 죽기도 하면서 이야기는 더욱 극적으로 전개되어 갑니다. 그리고 세대를 넘어서 새로운 이야기를 펼쳐낼 수도 있습니다.


  작품의 주역들이 나이를 먹고 성장하면서 어른으로서의  아이를 낳고 새로운 세대가 펼쳐가는 모습은 정말로 감동적이며 세상의 흐름을 느끼게 합니다. 하지만 이것은 영화나 드라마에서도 연출할 수 있는 방식. 그에 반해 사자에상 방식은 오직 만화, 또는 수 년 정도로 짧은 시트콤 같은 것에서만 연출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만화나 애니메이션에서는 사자에상 방식을 채택한 것이 많습니다. 작품을 보실 때 그것이 사자에상 방식인지를 이해하면 작품 속의 흐름에 딴죽을 걸지 않을 수 있습니다. (이를테면 '코난과 란은 도대체 몇살이야?'라는 식의...^^)


  한편 작품 중에는 ‘사자에상 방식’을 취하고 있는 듯 하면서도 아닌 것이 있습니다. “절망선생”이라는 만화에서 주요 인물 대부분은 항상 고등학교 2학년입니다. 그러면 사자에상 방식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학기가 끝나기 얼마 전에 담임이 이야기하죠.

  “여러분은 모두 유급이라서 진급은 하지 않습니다.”

  네. 일단 시간은 흘러가고 나이를 먹은 것입니다. 비록 그에 따른 변화는 전혀 없지만.^^


  그리고 “사자에상 방식”으로 진행되더라도 이따금 변화를 주고 싶을 때는 진급을 시키곤 합니다. “여기는 그린우드”에서 그런 연출이 있었는데, 주인공은 1학년으로 입학해서 몇 번이고 학기가 지났지만, 어느 순간 “진급시키기로 했습니다.”라는 작가의 말과 함께 2학년이 됩니다. 2학년으로 끝이 나게 되지만, 여하튼 한 학년의 변화로 주인공이 기숙사장을 맡고 3학년이 졸업하고 신입생이 들어오는 등 인물 구성에도 많은 차이가 생겨났죠. “시티헌터”의 속편격인(설정 대부분은 변경된 독립 작품인) “엔젤하트”에서는 더 나이가 든 사에바 료와 주변 인물들이 등장합니다.

  언젠가는 사자에상에서도 이런 변화가 일어날지도 모릅니다. 물론 그럴 가능성은 매우 희박하지만.


  ‘사자에상 방식’이란 결국, 작가의 마음대로 나이를 조절할 수 있는 만화의 특징이며, 사자에상 같은 작품을 가장 잘 살려줄 수 있는 방식이며, 사자에상이 40년 이상 인기를 누리고 있는 것도 그 변함없는 모습을 통해서 세상을 보는 재미가 있기 때문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