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에서 신용카드의 소액 결제를 ‘거부’할 수 있는 법안을 마련한다고 합니다. 영세업체들이 신용카드 수수료 때문에 손해를 보기 때문이라고 하지요.
사실 그렇습니다. 신용카드의 수수료는 -그동안 꽤 내렸음에도- 2~2.5%. 동네에서 5천원짜리 점심을 사먹으면서 신용카드로 결제하면 대략 100원~125원이 ‘수수료’라는 이름으로 신용카드 회사로 넘어갑니다. 다시 말해 식당에서 5천 원짜리 밥을 팔면 그때마다 100원 정도를 손해본다는 말입니다.
버릇처럼 내미는 신용카드는 이들 업체에도 부담이지만, 자기 자신에게도 손해입니다. “티끌모아 태산”이라고 고작 몇 천원의 결제가 쌓여서 급여계좌가 텅텅 비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생각하자면 신용카드의 소액 결제를 줄이는 것은 여러모로 좋습니다. 그런데 왜 사람들은 반대하는 것일까요?
그것은 이번 정책이 신용카드 체제의 근본적인 문제는 회피한 채 사용자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체제이기 때문입니다. 정확히는 신용카드 자체가 해악인데도 이를 무시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신용카드(Credit Card)는 수표를 대체하는 일종의 전자화폐로서 탄생했습니다. 그 기원에는 여러 설이 있지만, 돈이라는 물건이 편리한 도구인 반면 불편하다는 점이 가장 타당합니다.
돈이라는 것은 재화의 물물 교환을 위한 수단으로 발생했습니다. 물건이나 용역을 교환하려면 같은 가치로 교환해야 하는데 그 기준으로서 도입한 것입니다. 즉, 가치의 척도라고 볼 수 있겠군요. 사과 10개를 가지고 나가는 것보다 사과 10개 값어치의 돈을 가져가는게 더 편합니다.
하지만, 돈의 단위가 커지면 그것도 불편합니다. 조금이라도 비싼 물건을 사려면 돈을 잔뜩 가지고 나가야 하는데, 불편할 뿐만 아니라 위험하기도 합니다. 그렇다고 돈이 필요할 때마다 은행에 들러 찾는 것도 귀찮은 일. 그래서 등장한 것이 금액과 서명을 넣어 돈 대신 쓸 수 있는 시스템. 즉 수표(Check)였습니다.
하지만, 수표는 몇 가지 단점이 있습니다. 우선 위조가 쉽다는 것이고 다음으로 그 수표가 정말로 유효한지. 즉, 수표를 쓴 사람에게 돈이 충분한지 확인하기 어렵다는 점입니다. 큰돈이라면 수표를 받은 이가 은행에 연락해서 알아볼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작은 금액에 대해서 일일이 확인하는 것은 귀찮은 일이지요.
1887년 미국의 에드워드 벨라미라는 작가는 “과거를 돌아보다(Looking Backward)"라는 소설에서 재미있는 발상을 제시합니다. 그는 모든 시민이 일한 양에 따라 ‘신용(Credit)'이라 불리는 일종의 전자화폐를 받고 전화로 연결되는 시스템을 통해 결제할 수 있게 한다는 개념을 제시한 것입니다. (벨라미의 소설 ’과거를 돌아보다‘는 ’유토피아‘나 ’멋진 신세계‘ 같은 유토피아 소설의 하나로 넓은 범주로는 사회파 SF에 속합니다.)
1920년대에 들어 미국에서는 그의 발상을 받아들여 신용카드(Credit Card)라는 개념을 도입합니다. 현금이나 수표 대신 사용할 수 있는 전자카드라는 개념은 매우 편리하고 유용해서 금방 퍼져나갔습니다.
문제는 실제로 도입된 ‘신용카드’가 벨라미가 제시한 ‘신용카드’와는 전혀 다른 개념이었다는 점입니다.
벨라미는 ‘신용’이라는 이름의 전자화폐를 제시하고, 그것을 보관해두었다가 카드를 이용해 쓸 수 있는 개념을 제시했습니다. 다시 말해 그가 말한 ‘신용카드’란 우리가 사용하는 신용카드가 아닌 ‘직불카드’ 개념이었습니다. 더욱이 벨라미는 이 시스템을 회사가 아닌 국가가 운영하는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이를 도입한 것은 국가가 아닌 금융회사였고 그들은 이 시스템을 그들의 돈벌이 수단인 ‘대출’이라는 개념과 연결시킵니다. 다시 말해 ‘소유하고 있는 전자화폐를 꺼내서 쓰는 것’이 아니라, ‘갖고 있지 않은 전자 화폐를 빌려서 쓰는 것’으로 바꾼 것입니다.
이는 ‘돈을 빌려주고 그 이자를 받아서 돈을 버는’ 금융업체에게는 매우 자연스러운 발상이었습니다. 그리고 여기에서 신용카드의 모든 문제가 발생합니다.
'신용카드는 돈을 빌려서 쓰는 카드'입니다. 금융업체 입장에서 생각하면 ‘돈을 빌리는 행위’에는 ‘이자’라는 것이 필요합니다. (이슬람권의 은행에는 이자 개념이 없지만, 미국을 비롯한 많은 나라의 금융 체제에선 당연한 일입니다.)
결국 신용카드를 쓰면 당연히 이자가 생겨야 합니다. 하지만, 이자가 생긴다는 것을 알고 있다면 아무래도 사용을 꺼리게 마련입니다.
그래서 금융업체는 ‘이자’를 수수료라는 명목으로 신용카드 사용자가 아닌 신용카드로 돈을 받는 업체 측에 물리는 방법을 떠올립니다. ‘대출’을 하는 당사자가 아니라, 대출을 한 돈을 받는 사람에게 돈을 물린다는 개념은 아주 이상한 일이지만, 업체는 거부할 수 없었습니다. 신용카드의 사용이 점차 늘어나고 신용카드를 받지 않는 업체가 차별되었기 때문입니다. (동시에 신용카드로 인해서 지출이 늘어났다는 점도 무시할 수 없었습니다. 신용카드는 ‘빚’이지만, 실제 사용자들은 그런 걸 잘 느끼지 못했으니까요.)
신용카드 사용이 늘어난 것은 신용카드가 일종의 전자화폐로서 편리하다는 이점도 있었기 때문이지만, 금융업체에서 신용카드 사용자에게 많은 혜택을 주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신용카드의 ‘이자’로 돈을 버는 금융업체로선 신용카드를 많이 사용하게 만들 필요가 있었기에 포인트나 각종 할인 혜택을 제공하여 사용자에게 이익을 주는 것처럼 만듭니다.
물론 이에 들어가는 비용은 업체에서 받는 ‘수수료라는 이름의 이자’였던 것은 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당연히 신용카드를 사용하면 업체는 그만큼 손해를 볼 수 밖에 없었습니다. 업체로서는 계속 손해만 볼 수 없으니 카드 사용으로 손해를 보는 만큼 가격을 올릴 수밖에 없습니다.
소비자로선 카드를 쓰는 만큼 ‘포인트’가 쌓여 이익이라 생각하게 되지만, 사실상 손해입니다. 왜냐하면 포인트는 금융업체가 버는 ‘이자’에 비하면 정말로 작은 금액이기 때문입니다.
신용카드를 사용할수록 소비자도 판매자도 손해를 보게 됩니다. 이익을 보는 것은 신용카드 발급업체, 즉 금융업체 밖에는 존재하지 않는 것입니다.
“신용카드의 소액결제로 인한 영세 업체의 피해”라는 문제도 결국 근본은 ‘신용카드’가 실은 ‘대출카드’라는 점에서 기인합니다. 그리고 ‘대출카드’라는 것은 감추고 있다는 사실에서 기인하는 문제입니다.
이러한 신용카드의 문제는 수수료를 줄이거나 소액 결제를 거부할 수 있는 것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닙니다. 결국 ‘왜곡된 신용카드 시스템’ 그 자체에 문제가 있는 것이니까요.
이를 해결하려면 현재의 ‘신용카드’를 벨라미가 제시한, 그리고 여러 SF 작품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전자화폐 개념으로 바꾸어야 합니다.
벨라미가 제시한 내용은 이렇습니다. “일한 만큼 ‘신용(Credit)이라는 화폐를 받고 전화 시스템(네트워크)을 이용해서 결제한다.” 다시 말해 돈을 들고 다니는 게 아니라 어딘가에 보관해두고 있다가 전화를 이용해 편하게 꺼내어 결제하는 개념입니다.
사실 이 시스템은 이미 존재합니다. 바로 ‘직불카드’입니다.
‘직불카드’는 이론상 수수료가 거의 필요하지 않습니다. ‘내가 가진 돈’을 꺼내 쓰는 것이니까요.
금융업체는 “관리 등에 돈이 필요하다.”라고 항변하겠지만, 이에 들어가는 비용은 신용카드의 수수료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낮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 흔히 쓰는 일종의 직불카드 중 하나인 “체크카드”에는 꽤 많은 수수료가 들어갑니다. 결제액의 1~1.5%. (물론 이 수수료 역시 사용자가 아닌 판매자가 지불합니다.)
내 돈을 내가 빼 쓰는데 결제 금액의 일부를 수수료로 뗀다는 것은 지극히 이상한 일이지만, 실제로는 이러한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사실은 이 역시 금융업체의 농간입니다.
신용카드가 실제로는 ‘대출 카드’라는 것이 널리 알려지면서 반감이 일어나자 직불카드 개념의 여러 카드를 만들어냈지만, 그만큼 수익은 줄어들게 됩니다. 금융업체는 ‘회사’이기 때문에 돈을 벌어야 하므로 돈을 벌 방법을 생각하고 신용카드에 있던 수수료 개념을 그대로 적용합니다. (물론 모든 나라의 금융권에서 직불카드 수수료를 %로 부과하지는 않습니다. 유럽의 여러 나라에선 은행에서 돈을 찾을 때 1건에 얼마라는 식으로 수수료를 물리는 것과 비슷하게, 결제 건 당 정해진 소액의 수수료만 냅니다.)
신용카드의 문제는 그것이 무늬만 신용카드인 ‘대출카드’라는 것에서 시작된 것이니 본래의 신용카드(즉, 직불카드) 개념으로 되돌리면 해결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 ‘편리한 결제 개념’만을 남기고 수수료를 없애면 된다는 것입니다. 이는 SF에서 말하는 전자화폐 시스템과 같은 것입니다.
하지만, ‘이익을 목적으로 하는’ 사금융 업체에서 이를 관리한다면 완전한 해결은 이룰 수 없습니다.
본래의 신용카드는 ‘국가에서 운영하는 전자 화폐’입니다.
국가에서 시민의 돈을 보관해두고 있다가 쓰고 싶을 때 내어주는 시스템인 것입니다.
돈을 보관만 하는 것이기에 이자는 주지 않습니다. ‘그러면 누가 보관하는가?’라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실제 이자율 0%의 나라에서도 은행에 예금하는 이는 많습니다. 은행의 근본 목적이 '투자'가 아닌 '돈의 보관'이기 때문입니다.
시스템 도입은 어렵지 않습니다. 벨라미가 이 개념을 도입한 1887년에도 충분히 실현할 수 있었으니 지금은 더욱 간단합니다.
더욱이 본래부터 국가는 이러한 전자화폐를 처리할만한 역량을 갖고 있습니다. 그것도 그 어떤 금융업체보다도 크게. 국가는 ‘세금’을 거두어서 운영해 왔으니까요.
운영방식은 매우 단순합니다. 월급이 나오면 계좌통장으로 들어가듯, 수익이 발생하면 국가에서 관리하는 통장으로 들어갑니다. 물건을 사거나 할 때는 국가에서 발급한 전자카드를 사용해서(또는 SF에서 흔히 나오듯 지문 같은 방식으로 확인해서) 구입합니다. 그러면 내 계좌에서 금액이 빠져나가 업체의 계좌로 들어갑니다.(실제로는 전자가 약간 이동하는 것에 불과합니다.) 화폐가 필요하다면 국가에서 운영하는 현금지급기를 이용해서 찾습니다.
결국 현재의 은행에서 하고 있는 일을 국가가 관리하는 은행에서 하는 것으로 충분합니다.
‘이익’을 추구하는 사기업으로서의 은행과 달리, 국가에서 운영하는 은행(돈보관소)은 수수료를 받을 필요가 없습니다. 운영비는 모두 세금으로 처리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세금으로 만든 길을 걸으면서 수수료를 내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물론 카드를 분실하거나 통장을 분실하여 새로 발급받을 때는 비용이 추가될 수 있겠고 특별한 업무에서 약간의 수수료가 있을지는 몰라도 동사무소(주민센터)에서 일처리에 들어가는 비용 정도 밖에는 들지 않습니다.
‘이자 지급’을 할 필요가 없다면 국영 돈보관소는 투자를 할 필요가 없습니다. 누군가 훔쳐가지 않는 이상 맡아두었던 돈을 그대로 내어주면 되니까요. 수익률을 생각하면서 높은 이자를 주는, ‘위험도 높은 투자'로 원금을 날리는 일은 없습니다.
물론 돈을 빌려주는 기능도 없습니다. 하는 일은 단 하나 “돈을 안전하게 보관하다가 필요할 때 빼는 일” 뿐이므로 비리 발생 가능성도 낮고 업무 효율을 고민하지 않아도 됩니다. (직원이 돈을 훔쳐가는 것이나, 정부에서 맘대로 빼 쓰는 일만 막으면 됩니다.) 그만큼 직원 수도 줄고 운영비도 낮아집니다.
현재의 신용카드사용을 권하는 이유 중 하나인 탈세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최종적으로는 모든 자본 거래가 이 시스템을 중심으로 돌아가며 모든 수익을 국가에서 관리할 테니까요. 그리고 언젠가는 현물로 된 ‘돈’이라는 것이 사실상 사라지는 시대가 찾아올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돈은 본래의 기능(물물 교환의 수단)으로 돌아갑니다. 돈으로 돈을 버는 자본주의사회에 종언이 찾아옵니다.
자본주의 사회는 돈이 금융이라는 시스템과 연결되어 ‘투기 수단’으로 활용되기 시작하면서 시작되었고 미쳐 돌아갔습니다.
신용카드는 그러한 자본주의 시스템 아래에서 발생한 '비정상의 총합'과 같은 존재로 무수한 문제점을 갖고 있었습니다.
신용카드는 지나친 낭비(그리고 이로 인한 자원 고갈과 오염 등)를 불러오고 개인 파산으로 이끌었으며, 재화의 흐름이 금융업체의 손을 거쳐 왜곡되게 했습니다. 수수료라는 명목으로 금융업체에 돈이 빠져나가면서 생산자와 소비자 간의 이동하는 재화가 줄어들게 되었고, 그만큼 금융업체, 그리고 금융업체에 돈을 투자한 부유층의 부는 커져갔습니다.
신용카드는 부익부 빈익빈을 낳는 현대 자본주의 그 자체이며 그 문제를 대표하는 존재입니다. 최종적으로 신용카드업체를 제외한 그 누구도 이익을 보지 못하는 해악 이상의 그 어느 것도 아닙니다.
이처럼 해악으로 가득한 신용카드의 문제를 단지 ‘소액 결제 거부 허용’이라는 방법으로 극복할 수는 없습니다. 신용카드는 그 탄생 순간부터 ‘존재자체가 해악’이었으니까요.
신용카드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단 하나입니다. 신용카드란 말을 처음 만들어낸 에드워드 벨라미나 많은 SF 작가가 생각했던 개념으로 되돌리는 것입니다.
국가에서 운영하는 보관소와 결제 카드를 통해 수수료 없는(물론 포인트나 마일리지도 없는) 직불카드를 만드는 것입니다.
그리고 현대 자본주의의 해악을 대표하는 신용카드의 소멸은 자본주의의 온갖 문제를 줄이고 사회를 더욱 건전한 방향으로 이끌 것입니다.
여담) 돈을 빌리고 싶은 사람은 어떻게 하느냐? 라는 질문에 대해서는 ‘신용카드’ 같은 게 없는 고전적인 은행을 이용하면 된다고 이야기하겠습니다. 자신이 가진 돈이나 남에게 맡아둔 돈을 이용해서 돈을 빌려주고 이자 수익을 얻는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은행 말입니다.
돈으로 돈을 벌고 싶은 이들이라면 여기에 돈을 넣으면 될 것입니다. 그에 대한 책임은 전부 그들 자신이 지는 것이고, 운영하는 은행이 책임져야 합니다. (최근 저축은행 사태로 '안전한' 은행에 넣는 이가 늘어나듯, 원금조차 보장되지 않는다는 걸 알게 되면 자연히 이용자는 한정될 것입니다.)
국가는 이들이 '가진 돈보다 많이' 빌려주는 것과 돈을 빼돌리거나 하는 것만 관리하면 됩니다. 이 역시 돈이 이동할때 국가에서 운영하는 돈 보관소를 이용하게 하면 문제를 줄일 수 있습니다.
사실 그렇습니다. 신용카드의 수수료는 -그동안 꽤 내렸음에도- 2~2.5%. 동네에서 5천원짜리 점심을 사먹으면서 신용카드로 결제하면 대략 100원~125원이 ‘수수료’라는 이름으로 신용카드 회사로 넘어갑니다. 다시 말해 식당에서 5천 원짜리 밥을 팔면 그때마다 100원 정도를 손해본다는 말입니다.
버릇처럼 내미는 신용카드는 이들 업체에도 부담이지만, 자기 자신에게도 손해입니다. “티끌모아 태산”이라고 고작 몇 천원의 결제가 쌓여서 급여계좌가 텅텅 비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생각하자면 신용카드의 소액 결제를 줄이는 것은 여러모로 좋습니다. 그런데 왜 사람들은 반대하는 것일까요?
그것은 이번 정책이 신용카드 체제의 근본적인 문제는 회피한 채 사용자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체제이기 때문입니다. 정확히는 신용카드 자체가 해악인데도 이를 무시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신용카드(Credit Card)는 수표를 대체하는 일종의 전자화폐로서 탄생했습니다. 그 기원에는 여러 설이 있지만, 돈이라는 물건이 편리한 도구인 반면 불편하다는 점이 가장 타당합니다.
돈이라는 것은 재화의 물물 교환을 위한 수단으로 발생했습니다. 물건이나 용역을 교환하려면 같은 가치로 교환해야 하는데 그 기준으로서 도입한 것입니다. 즉, 가치의 척도라고 볼 수 있겠군요. 사과 10개를 가지고 나가는 것보다 사과 10개 값어치의 돈을 가져가는게 더 편합니다.
하지만, 돈의 단위가 커지면 그것도 불편합니다. 조금이라도 비싼 물건을 사려면 돈을 잔뜩 가지고 나가야 하는데, 불편할 뿐만 아니라 위험하기도 합니다. 그렇다고 돈이 필요할 때마다 은행에 들러 찾는 것도 귀찮은 일. 그래서 등장한 것이 금액과 서명을 넣어 돈 대신 쓸 수 있는 시스템. 즉 수표(Check)였습니다.
[ 흔히 '백지수표'라고 부르는 고전적인 수표. 이것이 신용카드(정확히는 직불카드)의 근본이다. ]
하지만, 수표는 몇 가지 단점이 있습니다. 우선 위조가 쉽다는 것이고 다음으로 그 수표가 정말로 유효한지. 즉, 수표를 쓴 사람에게 돈이 충분한지 확인하기 어렵다는 점입니다. 큰돈이라면 수표를 받은 이가 은행에 연락해서 알아볼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작은 금액에 대해서 일일이 확인하는 것은 귀찮은 일이지요.
1887년 미국의 에드워드 벨라미라는 작가는 “과거를 돌아보다(Looking Backward)"라는 소설에서 재미있는 발상을 제시합니다. 그는 모든 시민이 일한 양에 따라 ‘신용(Credit)'이라 불리는 일종의 전자화폐를 받고 전화로 연결되는 시스템을 통해 결제할 수 있게 한다는 개념을 제시한 것입니다. (벨라미의 소설 ’과거를 돌아보다‘는 ’유토피아‘나 ’멋진 신세계‘ 같은 유토피아 소설의 하나로 넓은 범주로는 사회파 SF에 속합니다.)
[ 미래학자라고도 불리는 에드워드 벨라미. 그의 작품에선 독특한 유토피아상을 볼 수 있다. ]
1920년대에 들어 미국에서는 그의 발상을 받아들여 신용카드(Credit Card)라는 개념을 도입합니다. 현금이나 수표 대신 사용할 수 있는 전자카드라는 개념은 매우 편리하고 유용해서 금방 퍼져나갔습니다.
문제는 실제로 도입된 ‘신용카드’가 벨라미가 제시한 ‘신용카드’와는 전혀 다른 개념이었다는 점입니다.
벨라미는 ‘신용’이라는 이름의 전자화폐를 제시하고, 그것을 보관해두었다가 카드를 이용해 쓸 수 있는 개념을 제시했습니다. 다시 말해 그가 말한 ‘신용카드’란 우리가 사용하는 신용카드가 아닌 ‘직불카드’ 개념이었습니다. 더욱이 벨라미는 이 시스템을 회사가 아닌 국가가 운영하는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이를 도입한 것은 국가가 아닌 금융회사였고 그들은 이 시스템을 그들의 돈벌이 수단인 ‘대출’이라는 개념과 연결시킵니다. 다시 말해 ‘소유하고 있는 전자화폐를 꺼내서 쓰는 것’이 아니라, ‘갖고 있지 않은 전자 화폐를 빌려서 쓰는 것’으로 바꾼 것입니다.
이는 ‘돈을 빌려주고 그 이자를 받아서 돈을 버는’ 금융업체에게는 매우 자연스러운 발상이었습니다. 그리고 여기에서 신용카드의 모든 문제가 발생합니다.
[ 신용카드(Credit Card). 벨라미가 제시한 이름을 그대로 쓰지만, 실제론 '대출카드'라고 부르는게 타당하다. (더 정확히는 '초단기초고금리대출카드') ]
'신용카드는 돈을 빌려서 쓰는 카드'입니다. 금융업체 입장에서 생각하면 ‘돈을 빌리는 행위’에는 ‘이자’라는 것이 필요합니다. (이슬람권의 은행에는 이자 개념이 없지만, 미국을 비롯한 많은 나라의 금융 체제에선 당연한 일입니다.)
결국 신용카드를 쓰면 당연히 이자가 생겨야 합니다. 하지만, 이자가 생긴다는 것을 알고 있다면 아무래도 사용을 꺼리게 마련입니다.
그래서 금융업체는 ‘이자’를 수수료라는 명목으로 신용카드 사용자가 아닌 신용카드로 돈을 받는 업체 측에 물리는 방법을 떠올립니다. ‘대출’을 하는 당사자가 아니라, 대출을 한 돈을 받는 사람에게 돈을 물린다는 개념은 아주 이상한 일이지만, 업체는 거부할 수 없었습니다. 신용카드의 사용이 점차 늘어나고 신용카드를 받지 않는 업체가 차별되었기 때문입니다. (동시에 신용카드로 인해서 지출이 늘어났다는 점도 무시할 수 없었습니다. 신용카드는 ‘빚’이지만, 실제 사용자들은 그런 걸 잘 느끼지 못했으니까요.)
신용카드 사용이 늘어난 것은 신용카드가 일종의 전자화폐로서 편리하다는 이점도 있었기 때문이지만, 금융업체에서 신용카드 사용자에게 많은 혜택을 주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신용카드의 ‘이자’로 돈을 버는 금융업체로선 신용카드를 많이 사용하게 만들 필요가 있었기에 포인트나 각종 할인 혜택을 제공하여 사용자에게 이익을 주는 것처럼 만듭니다.
물론 이에 들어가는 비용은 업체에서 받는 ‘수수료라는 이름의 이자’였던 것은 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당연히 신용카드를 사용하면 업체는 그만큼 손해를 볼 수 밖에 없었습니다. 업체로서는 계속 손해만 볼 수 없으니 카드 사용으로 손해를 보는 만큼 가격을 올릴 수밖에 없습니다.
소비자로선 카드를 쓰는 만큼 ‘포인트’가 쌓여 이익이라 생각하게 되지만, 사실상 손해입니다. 왜냐하면 포인트는 금융업체가 버는 ‘이자’에 비하면 정말로 작은 금액이기 때문입니다.
신용카드를 사용할수록 소비자도 판매자도 손해를 보게 됩니다. 이익을 보는 것은 신용카드 발급업체, 즉 금융업체 밖에는 존재하지 않는 것입니다.
[ 현행 카드 시스템의 기본 개념. 실제로는 소비자의 손실로 돌아온다. ]
“신용카드의 소액결제로 인한 영세 업체의 피해”라는 문제도 결국 근본은 ‘신용카드’가 실은 ‘대출카드’라는 점에서 기인합니다. 그리고 ‘대출카드’라는 것은 감추고 있다는 사실에서 기인하는 문제입니다.
[ 모 업체의 간편 대출 카드 광고. 우리가 쓰는 신용카드는 이거와 다를게 없다. ]
이러한 신용카드의 문제는 수수료를 줄이거나 소액 결제를 거부할 수 있는 것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닙니다. 결국 ‘왜곡된 신용카드 시스템’ 그 자체에 문제가 있는 것이니까요.
이를 해결하려면 현재의 ‘신용카드’를 벨라미가 제시한, 그리고 여러 SF 작품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전자화폐 개념으로 바꾸어야 합니다.
벨라미가 제시한 내용은 이렇습니다. “일한 만큼 ‘신용(Credit)이라는 화폐를 받고 전화 시스템(네트워크)을 이용해서 결제한다.” 다시 말해 돈을 들고 다니는 게 아니라 어딘가에 보관해두고 있다가 전화를 이용해 편하게 꺼내어 결제하는 개념입니다.
사실 이 시스템은 이미 존재합니다. 바로 ‘직불카드’입니다.
‘직불카드’는 이론상 수수료가 거의 필요하지 않습니다. ‘내가 가진 돈’을 꺼내 쓰는 것이니까요.
금융업체는 “관리 등에 돈이 필요하다.”라고 항변하겠지만, 이에 들어가는 비용은 신용카드의 수수료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낮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 흔히 쓰는 일종의 직불카드 중 하나인 “체크카드”에는 꽤 많은 수수료가 들어갑니다. 결제액의 1~1.5%. (물론 이 수수료 역시 사용자가 아닌 판매자가 지불합니다.)
내 돈을 내가 빼 쓰는데 결제 금액의 일부를 수수료로 뗀다는 것은 지극히 이상한 일이지만, 실제로는 이러한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사실은 이 역시 금융업체의 농간입니다.
신용카드가 실제로는 ‘대출 카드’라는 것이 널리 알려지면서 반감이 일어나자 직불카드 개념의 여러 카드를 만들어냈지만, 그만큼 수익은 줄어들게 됩니다. 금융업체는 ‘회사’이기 때문에 돈을 벌어야 하므로 돈을 벌 방법을 생각하고 신용카드에 있던 수수료 개념을 그대로 적용합니다. (물론 모든 나라의 금융권에서 직불카드 수수료를 %로 부과하지는 않습니다. 유럽의 여러 나라에선 은행에서 돈을 찾을 때 1건에 얼마라는 식으로 수수료를 물리는 것과 비슷하게, 결제 건 당 정해진 소액의 수수료만 냅니다.)
신용카드의 문제는 그것이 무늬만 신용카드인 ‘대출카드’라는 것에서 시작된 것이니 본래의 신용카드(즉, 직불카드) 개념으로 되돌리면 해결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 ‘편리한 결제 개념’만을 남기고 수수료를 없애면 된다는 것입니다. 이는 SF에서 말하는 전자화폐 시스템과 같은 것입니다.
하지만, ‘이익을 목적으로 하는’ 사금융 업체에서 이를 관리한다면 완전한 해결은 이룰 수 없습니다.
본래의 신용카드는 ‘국가에서 운영하는 전자 화폐’입니다.
국가에서 시민의 돈을 보관해두고 있다가 쓰고 싶을 때 내어주는 시스템인 것입니다.
돈을 보관만 하는 것이기에 이자는 주지 않습니다. ‘그러면 누가 보관하는가?’라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실제 이자율 0%의 나라에서도 은행에 예금하는 이는 많습니다. 은행의 근본 목적이 '투자'가 아닌 '돈의 보관'이기 때문입니다.
시스템 도입은 어렵지 않습니다. 벨라미가 이 개념을 도입한 1887년에도 충분히 실현할 수 있었으니 지금은 더욱 간단합니다.
더욱이 본래부터 국가는 이러한 전자화폐를 처리할만한 역량을 갖고 있습니다. 그것도 그 어떤 금융업체보다도 크게. 국가는 ‘세금’을 거두어서 운영해 왔으니까요.
운영방식은 매우 단순합니다. 월급이 나오면 계좌통장으로 들어가듯, 수익이 발생하면 국가에서 관리하는 통장으로 들어갑니다. 물건을 사거나 할 때는 국가에서 발급한 전자카드를 사용해서(또는 SF에서 흔히 나오듯 지문 같은 방식으로 확인해서) 구입합니다. 그러면 내 계좌에서 금액이 빠져나가 업체의 계좌로 들어갑니다.(실제로는 전자가 약간 이동하는 것에 불과합니다.) 화폐가 필요하다면 국가에서 운영하는 현금지급기를 이용해서 찾습니다.
[ 국영은행(돈 보관소)를 이용한 직불카드 시스템. 세금은 나가지만, 이는 수수료와 별개이다. 세금은 카드 사용 건수나 사용금액에 관계없이 소득에 비례하기 때문이다. 물론 그 양도 훨씬 적다. ]
결국 현재의 은행에서 하고 있는 일을 국가가 관리하는 은행에서 하는 것으로 충분합니다.
‘이익’을 추구하는 사기업으로서의 은행과 달리, 국가에서 운영하는 은행(돈보관소)은 수수료를 받을 필요가 없습니다. 운영비는 모두 세금으로 처리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세금으로 만든 길을 걸으면서 수수료를 내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물론 카드를 분실하거나 통장을 분실하여 새로 발급받을 때는 비용이 추가될 수 있겠고 특별한 업무에서 약간의 수수료가 있을지는 몰라도 동사무소(주민센터)에서 일처리에 들어가는 비용 정도 밖에는 들지 않습니다.
‘이자 지급’을 할 필요가 없다면 국영 돈보관소는 투자를 할 필요가 없습니다. 누군가 훔쳐가지 않는 이상 맡아두었던 돈을 그대로 내어주면 되니까요. 수익률을 생각하면서 높은 이자를 주는, ‘위험도 높은 투자'로 원금을 날리는 일은 없습니다.
물론 돈을 빌려주는 기능도 없습니다. 하는 일은 단 하나 “돈을 안전하게 보관하다가 필요할 때 빼는 일” 뿐이므로 비리 발생 가능성도 낮고 업무 효율을 고민하지 않아도 됩니다. (직원이 돈을 훔쳐가는 것이나, 정부에서 맘대로 빼 쓰는 일만 막으면 됩니다.) 그만큼 직원 수도 줄고 운영비도 낮아집니다.
현재의 신용카드사용을 권하는 이유 중 하나인 탈세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최종적으로는 모든 자본 거래가 이 시스템을 중심으로 돌아가며 모든 수익을 국가에서 관리할 테니까요. 그리고 언젠가는 현물로 된 ‘돈’이라는 것이 사실상 사라지는 시대가 찾아올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돈은 본래의 기능(물물 교환의 수단)으로 돌아갑니다. 돈으로 돈을 버는 자본주의사회에 종언이 찾아옵니다.
자본주의 사회는 돈이 금융이라는 시스템과 연결되어 ‘투기 수단’으로 활용되기 시작하면서 시작되었고 미쳐 돌아갔습니다.
신용카드는 그러한 자본주의 시스템 아래에서 발생한 '비정상의 총합'과 같은 존재로 무수한 문제점을 갖고 있었습니다.
신용카드는 지나친 낭비(그리고 이로 인한 자원 고갈과 오염 등)를 불러오고 개인 파산으로 이끌었으며, 재화의 흐름이 금융업체의 손을 거쳐 왜곡되게 했습니다. 수수료라는 명목으로 금융업체에 돈이 빠져나가면서 생산자와 소비자 간의 이동하는 재화가 줄어들게 되었고, 그만큼 금융업체, 그리고 금융업체에 돈을 투자한 부유층의 부는 커져갔습니다.
신용카드는 부익부 빈익빈을 낳는 현대 자본주의 그 자체이며 그 문제를 대표하는 존재입니다. 최종적으로 신용카드업체를 제외한 그 누구도 이익을 보지 못하는 해악 이상의 그 어느 것도 아닙니다.
이처럼 해악으로 가득한 신용카드의 문제를 단지 ‘소액 결제 거부 허용’이라는 방법으로 극복할 수는 없습니다. 신용카드는 그 탄생 순간부터 ‘존재자체가 해악’이었으니까요.
신용카드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단 하나입니다. 신용카드란 말을 처음 만들어낸 에드워드 벨라미나 많은 SF 작가가 생각했던 개념으로 되돌리는 것입니다.
국가에서 운영하는 보관소와 결제 카드를 통해 수수료 없는(물론 포인트나 마일리지도 없는) 직불카드를 만드는 것입니다.
그리고 현대 자본주의의 해악을 대표하는 신용카드의 소멸은 자본주의의 온갖 문제를 줄이고 사회를 더욱 건전한 방향으로 이끌 것입니다.
여담) 돈을 빌리고 싶은 사람은 어떻게 하느냐? 라는 질문에 대해서는 ‘신용카드’ 같은 게 없는 고전적인 은행을 이용하면 된다고 이야기하겠습니다. 자신이 가진 돈이나 남에게 맡아둔 돈을 이용해서 돈을 빌려주고 이자 수익을 얻는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은행 말입니다.
돈으로 돈을 벌고 싶은 이들이라면 여기에 돈을 넣으면 될 것입니다. 그에 대한 책임은 전부 그들 자신이 지는 것이고, 운영하는 은행이 책임져야 합니다. (최근 저축은행 사태로 '안전한' 은행에 넣는 이가 늘어나듯, 원금조차 보장되지 않는다는 걸 알게 되면 자연히 이용자는 한정될 것입니다.)
국가는 이들이 '가진 돈보다 많이' 빌려주는 것과 돈을 빼돌리거나 하는 것만 관리하면 됩니다. 이 역시 돈이 이동할때 국가에서 운영하는 돈 보관소를 이용하게 하면 문제를 줄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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