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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 이야기/오늘의 추천SF

(06월 17일 추천 SF) 사라이, 멸종해가는 인류의 삶의 잔상

  오늘은 미국의 플로리다 지역에서 한 종의 새가 멸종한 날입니다. 하루에서 수백, 수천 종이 멸종하는 상황에서 새 한 종쯤 사라져도 아무렇지도 않을지 모르지만, 그들의 운명은 모두 인간이 일으켰다는 점에서, 그것도 단순히 영향을 준 것이 아닌 ‘멸종의 방아쇠’를 당겼다는 점에서 기억에 남습니다.


  바다제비의 아종인 Dusky Seaside Sparrow(잿빛 바다 제비라고 부르면 될까요?)는 플로리다 지역에서 발견되는 새였습니다. 주로 모기를 잡아먹고 사는 이 새는 왕성한 번식력으로 넓은 지역에 퍼져나갔고 플로리다의 모기 숫자를 줄이는데 이바지했지요.


  그러나 1940년대에 들어 사용되기 시작한 DDT는 곤충을 먹고 사는 다른 많은 새와 함께 이들에게도 시련을 안겨주었습니다. 그리하여 불과 수십 년 만에 이들의 개체는 고작 2000쌍도 되지 않게 줄었지요.


  겨우겨우 목숨을 유지하는 듯 했던 그들에게 방아쇠를 당긴 것은 역시 인간의 행위였습니다. 모기의 개체 수를 줄이겠다며 케네디 우주 센터 근처의 섬을 수몰시킨 것이지요. 섬을 수몰시키는 게 모기 개체 수와 무슨 상관인지는 모르겠지만, 당시 섬에 있던 새의 둥지들은 전멸해 버렸고 수많은 새가 사라졌습니다. 그리고 가장 큰 타격을 받은 것이 바로 Dusky Seaside Sparrow인 것이지요.


  그리고 1987년 6월 17일. 마지막 한 마리가 숨을 거둠으로써 Dusky Seaside Sparrow는 지상에서 자취를 감추었습니다. 하나의 세계가 소멸해 버린 것입니다. 문제는 이것이 이들에게만 다가오는 운명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생각 없는 누군가에 의해 수많은 종이 사라지고 있습니다. 나무를 뽑아내는 불도저 아래서, 밭을 만드는 불길 속에서, 그리고 강을 준설하고 댐을 만드는 와중에서…



  인간에게는 종을 멸망시킬 힘이 있습니다. 심지어는 우리들 인간조차도 멸절할 수 있는 힘을.


  Dusky Seaside Sparrow가 멸망하기 20년 전에 중국에서 수소 폭탄의 첫 실험을 진행했습니다. 그로부터 한참 전엔 ‘비키니 환초’라 불리던 곳에서 미국의 수폭 실험이 있었지요. 일부 사람들은 당시 비키니 환초 지역에 특이한 종이 있었는데 수폭 실험으로 완전히 사라졌다고 합니다.


  [늑대 소녀 란]이나 [퇴마성녀 유마] 등으로 알려진 시바타 마사히로는 단편집에서 이 내용을 소재로 이야기를 연출하고 있습니다. 아쉽게도 이 작품은 소개되지 않았지만, 그의 작품 중 ‘멸망 후’의 세계를 그린(그리고 국내에 소개된) 좋은 작품이 있습니다.





  오늘 소개하는 만화 [사라이]는 대재앙으로 인류 문명이 붕괴된 이후의 세계를 그린 작품입니다. 대재앙으로 인하여 제2차 대전 때 나치 독일이 만들었던 세균 병기 모자이크가 활성화되고 살아남은 사람들은 기묘한 모습으로 변화하기 시작합니다.


  보통 16세가 되면 변신하지만, 사람에 따라 차이가 있어서 사람들은 언제 다가올지 모르는 변신의 공포에 떨면서 삶을 이어나가고 있지요. 그리고 변신으로 인해 생겨난 존재들에 대한 박해, 반대로 그들에 의한 사건 등이 빈발하면서 삶은 피폐해져 갑니다. 한편으로 그 중엔 그러한 변신을 막고자 하는 사람들의 다양한 행동들이 보여지지요. 이를 테면 변해 버린 자들에 대한 박해나 아이들을 잡아먹는 행동이 빈번히 일어납니다. 그야말로 마녀 사냥이 극성하던 중세보다도 끔찍한 모습이지요.


  그러한 상황을 극복하고자 호위 메이드 협회라는 조직이 존재합니다. 20세기 말 각지에서 보고된 ‘변신’의 위험성을 깨달은 세계 각국의 고위층이 만든 초국가적초법규적조직으로서 각지에 ‘호위 메이드’라 불리는 전사들을 파견하여 사건을 해결하는 것이지요.


  16세도 되기 전에 죽음을 준비해야 하는 인간들의 모습은 참으로 슬프고도 끔찍합니다. 이를테면 초반의 한 마을에서는 사람들이 돌처럼 변해서 굳어지는데, 때가 오면 한 계곡으로 들어가서 조용히 숨을 거둡니다. 계곡 안에는 다채로운 사람의 ‘동상’이 있지요. 동경하던 여성의 주변에 모여든 소년들이나 먼저 죽은 연인의 곁에 머무른 여성, 그리고 가족의 초상 등…


  이를 볼 때 왠지 [혹성탈출]이 떠올랐습니다. 인간들이 원숭이에게 지배되는 사회에서 해변가에 남겨진 거대한 석상의 모습이. 


  그러고 보면 1885년의 오늘 자유의 여신상이 뉴욕에 도착하여 뉴욕의 상징이 되었다고 하지요. [사라이]의 세계에도 자유의 여신상이 있을지는 모르지만, 결국 이는 혹성 탈출에서처럼 한때 번영했던 문명의 잔재에 지나지 않겠지요.


  [사라이]의 세계에서 멸망은 조금씩 다가오고 있습니다. 제각기 다른 모습으로 그리고 다른 방식으로… DDT에 의한 저주가 대를 넘어서 계속되듯이 인류가 만들어낸 모자이크라는 세균의 위협은 인류 모두에게 남겨져 있으니까요.


  결국 [사라이]는 죽어가는 인류라는 '종의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물론 그 뒤에는 바이러스로 세계를 멸망시키고 그들만이 존속하려 했던 나치 독일이나, 소련의 생체 병기의 개발 같은 수많은 사건들이 얽혀 있지만 말이지요. 결국 대재앙조차 누군가의 욕심이 낳은 결과이니까요.


  총 19권에 이르는 방대한 분량이고 내용도 꽤 복잡해서 쉽게 읽지 못할지도 모르지만, 그 독특한 색채가 깊은 인상을 줄 수 있을 것입니다.



여담) 시바타 마사히로씨는 [사라이] 외에도 독특한 색체의 SF 작품을 많이 완성한 작가입니다. 특히 다채로운 이야기를 담은 단편집이 눈에 띄지요. 아쉽게도 국내에 소개된 것은 [늑대소녀 란], [퇴마성녀 유마], [사라이] 정도 밖에는 없으니까요.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작가라 원서로 갖고 있지만 다른 이에게 소개하기 힘든 게 문제죠. (SF&판타지 도서관에 가져다 두어도 보실 분이 거의 없을 듯 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