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1일이라면 보통 삼일절을 떠올리게 마련입니다. 1919년 대한민국, 정확히는 대한제국이었던 나라의 사람들이 독립을 선언한 날이지요. 이날 탑골 공원에서 학생들의 독립선언을 시작으로 전국 각지에서 수많은 이들이 독립을 선언하며 시위를 벌였습니다. 이날의 독립 운동은 실패했지만, 이후 독립 운동이 활성화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한편, 1992년엔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가 독립을 선언한 날이기도 합니다. 유고슬라비아 연방의 해체로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는 독립했지만, 그로부터 1달만인 4월 1일부터 시작된 내전이 계속 이어져 큰 피해를 주게 됩니다.
결국 NATO의 개입으로 보스니아가 독립하고 막을 내렸지만, 내전의 영향은 완전히 끝났다고 볼 수 없습니다.
세계 각지에는 지금 이 순간에도 분쟁을 벌이는 지역이 많습니다. 분쟁은 많은 이에게 피해를 주고 막을 내리지만, 분쟁이 끝난 뒤에도 그 상처는 길게 이어지곤 합니다. 그것은 사람과 사람의 알력에 의한 것이기도 하지만, 사람의 의지와 관계없이 벌어지기도 합니다. 바로 분쟁 중에 사용된 병기들, 특히 곳곳에 설치된 ‘대인 지뢰’로 인해서 말이지요.
대인 지뢰는 이름 그대로 사람을 대상으로 한 지뢰입니다. 종류만도 수십, 수백 종에 이르며 설치 방법이나 특성도 다양해서 다양한 피해를 줍니다. 사람을 확실하게 죽이는 것도 많지만, 발만 살짝 날려서 장애인으로 만들거나 파편으로 몸에 계속 고통을 주는 것도 있어서 정말로 끔찍하기 이를 데 없지요.
문제는 대인 지뢰가 설치는 대단히 쉽지만, 해체가 힘들다는 점입니다.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의 독립 직후에 벌어진 보스니아 전쟁 때도 수백만 개의 지뢰가 매설되었는데, 이로 인해 지금 이 순간에도 매달 수십 명이 지뢰로 인해 사망하거나 부상하고 있습니다.
지뢰의 문제는 대상을 가리지 않으며 수명이 매우 길다는 점입니다. 총이나 포가 명백하게 목표를 겨누고 발사하는 무기인 반면, 지뢰는 일단 매설해 두면 지나가는 모든 존재를 노립니다. 누군가가 걸릴 때까지 거의 영구히...
때문에 6.25때, 또는 2차 대전 때 설치된 지뢰가 지금도 죽음의 유산으로서 잠복해 있으며, 세계 각지의 분쟁 지역에서는 분쟁이 끝나고도 오랜 기간 지뢰의 피해가 계속되고 있습니다.
이 같은 끔찍한 특성으로 인해 세계 각지에서는 지뢰 금지 운동이 진행되었습니다. 그리고 1999년 3월 1일. 드디어 대인 지뢰의 사용 및 생산, 수송, 이전을 금지하고 폐기를 진행하는 내용을 담은 오타와 협약이 발효되었습니다. 이 협약에 가입한 나라들은 더 이상 대인 지뢰를 생산하거나 사용하지 않고 폐기하기로 했는데, 문제는 미국, 러시아, 중국을 비롯한 군사대국 대부분이 이 조약에 참여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물론 대한민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도 참여하지 않았기에 지금도 두 나라 사이에는 수많은 대인지뢰가 생산되어 가설되고 있습니다.
먼 훗날 한국과 북한이 통일되었을 때, 이들 대인지뢰는 죽음의 유산으로 남게 될 것입니다. 지금도 때때로 대인 지뢰가 흘러내려온다는데, 먼 훗날 통일이 되어 비무장지대가 개방되면 대인지뢰에 의한 피해가 속출할지도 모릅니다. (어쩌면 그 덕분에 비무장지대에 사람이 들어가지 않게 되고 결과적으로 생태계가 보호될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오늘의 추천작 필립 K. 딕의 <두 번째 변종>(“죽은 자가 무슨 말을”(집사재), “세계 SF 걸작선”(도솔)에 수록)은 대인 지뢰처럼 ‘피아를 가리지 않고 계속 위험을 주는 무기’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냉전 끝에 미국과 소련 사이에 전쟁이 벌어지고, 미국은 소련에 밀려 지구를 포기하고 달로 후퇴했습니다. 지구에 남은 일부 미군은 힘겹게 버티는 가운데, 미군은 전세를 역전시키기 위한 신종 병기를 생산합니다. 바로 소련군을 찾아 죽이도록 된 인공 지능 병기입니다. 인공 지능 병기는 무인 공장에서 대량으로 생산되어 큰 성공을 거두고 전세는 점차 미군의 우세로 진행되어 갑니다.
문제는 이 병기가 ‘진화’를 거쳐 개량된다는 점입니다. 더욱 적을 죽이기 좋게, 그리고 무엇보다도 충격적인 것은 ‘진화’를 거쳐 개량된 병기가 소련군만이 아니라 모든 인간을 목표로 하게 된 것입니다.
인류의 적이 되어버린 ‘변종’의 공격 앞에서 인간들은 속수무책으로 당하게 되고, 결국 소련군과 미군은 생존을 위해 힘을 합칩니다.
그런 그들 앞에 새로운 ‘변종’이 모습을 드러냅니다. 인형을 안은 소년의 모습을 한 로봇. 전장에서 피골이 상접한 소년을 만났을 때 ‘인간’으로서 보이는 당연한 반응을 이끌어내기 위한 이 로봇의 정체가 밝혀질 때 이 작품은 클라이막스를 맞이하는 듯 보입니다. 하지만, 부상당한 병사의 모습을 한 또 다른 변종이 등장하면서 공포는 더욱 가속되기만 하지요.
그리고...
<두번째 변종>은 그다지 길지 않은 단편이지만, 작품을 읽는 순간만이 아니라 책을 덮은 뒤에도 오랜 기간 소름을 가시지 않게 하는 충격을 줍니다. 그리고 그 이야기를 떠올릴 때마다 다시금 소름을 돋게 할 만한 여파를 지닌 작품이기도 하지요.
필립 K 딕의 작품은 단편 하나조차 끔찍한 상상을 불러오기에 충분하지만, 이 작품은 그 중에서도 충격이 크고 인상적인 작품입니다.
이 작품은 <스크리머스>라는 영화로 만들어졌는데, 로보캅 1,2편에서 머피 역을 맡았던 피터 웰러가 주연을 맡아 꽤 흥미로운 연기를 보여줍니다. B급 영화로 제작비는 얼마 되지 않지만, 영화로서의 완성도와 재미는 어지간한 블록버스터는 비교도 안 됩니다.
이 작품은 내용의 진행도 그렇지만, 결말에서도 원작과는 차이가 있습니다. 그만큼 원작에서 보여준 소름끼치는 결과를 느끼긴 어렵지만, 마지막 순간의 반전으로 화룡점정을 찍어서 보여줍니다.
<스크리머스>를 보고 나면 원작의 결말을 대충 상상할 수 있게 되니, 가능한 원작 <두번째 변종>부터 보시는 것을 권하지만, 어느 쪽을 먼저 보아도, 아니 설사 결말을 알고 보더라도 그 충격과 여운은 결코 작지 않을 것을 장담합니다.
필립 K 딕의 단편은 물론 결말에서의 반전이 재미를 주지만, 한 줄 한 줄 읽어나가면서 고조되는 긴장의 연출 면에서도 충분한 재미를 갖고 있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