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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과 우주 이야기

피라미드의 신비

  나일강 유역의 카이로에서 서쪽으로 조금 걸어가다 보면 거대한 삼각형의 물체를 발견하게 된다. 이른바 쿠푸왕의 대피라미드라고 불리는 건축물이다.


 

  바닥 면적 230.5x230.5m에 높이는 146.60m. 전체 체적은 40만m3을 넘는 육중한 동체로 한때 우주에서도 보인다고 할 정도의 크기.(사실, 위성 궤도 상에서 보이는 인류의 창조물은 그 어느 것도 없다. 만리장성 역시 안 보이긴 마찬가지. 그것은 만리장성의 두께가 그다지 두껍지 않기 때문인데, 위성궤도 상에서 만리장성을 보기 위해서는 1km쯤 떨어진 곳에 놓여 있는 실 한가닥을 볼 정도의 시력이 되지 않으면 안 된다. 600만불의 사나이라도 되지 않는 한 불가능한 정도. 피라미드가 크다곤 하지만 면적 자체는 상암동에 세워진 월드컵 경기장보다도 작아 역시 우주에서 맨 눈으로 발견할 수는 없다.)

  사막을 따라 멀리서 다가가는 동안 며칠 전부터 보이기 시작하는 이 거대한 위용에 사람들은 새삼 숙연해지고 의문을 갖는다.

 

  도대체, 그 오랜 옛날, 왜? 그리고 어떻게? 이런 거대한 건축물을 만들었던 것인가?

 

  피라미드에 대한 의문은 그것으로 풀리지 않는다. 피라미드는 동서남북으로 정확한 각도로 세워져 있을 뿐만 아니라, 완전한 직사각형이다. 더욱이 쿠푸왕의 피라미드는 그 각도 역시 50도 20분 25초로 정확한 각도를 유지하고 있다.

 

  도대체 2.5톤에 달하는 돌 230만개를 동원해서 이만한 건축물을 세우게 된 것은 어떠한 이유이며, 또한 누구에 의해서 만들어진 것인가? 그리고, 피라미드의 용도는 과연 무엇인가?

 

  이에 대한 해답이 어떻든 피라미드는 이렇듯 다양한 수수께끼를 남기면서 지금도 카이로 외각에 우뚝 서 있다.

  그렇다면, 이러한 피라미드의 의문에 대한 해답은 어떻게 되는가? 다소 과학과는 동떨어진 듯한 이 주제에 대해서 필자는 현재까지 밝혀진 여러 가지 과학적인 사실들을 바탕으로 이를 소개할까 한다.


 

1. 피라미드는 외계인(혹은 초월적인 존재)에 의해서 만들어진 것이 아닌가? 어떻게 석기 밖에 갖고 있지 않던 고대인들이...

 

  라는 의문은 사실 논쟁의 여지가 없는 낭설에 불과하다. 비록 피라미드가 세계의 7대 불가사의 중의 하나라고 알려져 왔지만, 이것의 거대한 위용에도 불구하고 당시의 이집트인들에게는 이러한 건축물을 만들만한 충분한 여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우선, 이집트인들은 어느 날 갑자기 뚝딱하고 쿠푸왕의 피라미드를 만들어낸 것이 아니다. 그보다 오래전 피라미드의 기원이 되는 마스타파라는 지상묘가 있었으며,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점차 크기를 키워나가면서 피라미드에 가까운 형상을 하게 된다.


 

  그리하여, 쿠프왕의 아버지인 스네푸르 시기에는 거의 쿠프왕의 것과 비슷한 피라미드가 완성되기에 이르지만, 첫번째로 만든 피라미드는 아쉽게도 상부 구조의 구조적 문제로 인해 각도를 낮추어 건설하게 된다. 일명 굴절 피라미드라고 불리는 피라미드를 완성한 것이다.

  그러나 그는 이 성공에 고무받아 새로 2개의 피라미드를 세우게 되며, 이 피라미드는 쿠푸왕의 피라미드와 마찬가지로 삼각형에 가깝게 보이는 형태로 완성되었다.

  그리하여 그의 아들인 쿠푸왕에 이르러 가장 거대한 대피라미드가 완성된 것이다.(그러나 후세의 많은 이들은 계단식 피라미드나 굴절 피라미드를 무시하고 오직 쿠푸왕의 피라미드 만을 생각함으로서 피라미드가 하늘에서 뚝딱하고 떨어진 것으로 생각하고 말았다.)

 

  쿠푸왕의 피라미드는 돌 230만개를 쌓아서 만들었으며, 더욱이 총 중량은 650만톤에 이른다. 그렇다면, 도대체 석기 만을 갖고 있는 이들이 어떻게?

 

  이에 대한 답변은 피라미드가 가공에 가장 쉽다고 알려진 석회석으로 만들어진 것에 기원한다. 시멘트의 원료가 되기도 하는 이 돌의 가공은 놀라울 정도로 쉽다. 그게 어느 정도로 무른지를 확인하고 싶다면 피라미드에 올라가 여러분이 갖고 있는 동전으로 긁어 보기 바란다. 아니, 손톱으로 긁어 보아도 좋다. 여러분의 손톱은 경도 2.5로 경도 2의 석회석을 간단히 긁어낼 수 있을테니까.(그러나, 결코 권하지 않는다. 세계적인 문화 유산을 파괴하는 ' 추한 한국인 '이라고 대서특필되는 것은 곤란하니까.)

 

  마음만 먹는다면 석기가 아니라 나무 망치와 나무 못으로도 충분히 석회석을 잘라내고 처리할 수 있다. 물론 그들이 가진 여러가지 도구를 사용해서 비교적 간단하게 작업했을 것이다.(실제로, 이집트의 채석장에는 절취하지 않은채 미완성인 석재들이 발견되었는데, 여기에는 나무쐐기를 사용해서 작업을 한 흔적이 있다.)



  쿠푸왕의 피라미드 내부에 사용된 화강암은 경도가 높은 돌이지만, 화강암은 결에 따라서 간단히 처리할 수 있다는 특징을 갖고 있다. 때문에 특성만 알고 있으면 간단히 작업할 수 있는 것이기도 했다.

  그렇다면 그들은 2.5톤에 달하는 이 무거운 석재를 어떻게 올렸을까? 외계인의 비행 물체로 띄우기라도 하지 않는한... 이라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이러한 생각을 하는 것은 고대인을 무시하는 현대인의 ' 오만한 천성 '에 지나지 않는다.

 

  피라미드를 세운 이집트인들은 수렵과 채집으로 만족하고 움막을 지어 살고 있던 구석기 시대의 원시인들이 아니다. 그들은 불과 수천km 떨어진 유럽에서 사냥이나 하고 살던 시대에 이미 거대한 왕정 국가를 수립하고 있던 위대한 민족이었던 것이다.

 

  쿠푸왕의 피라미드가 세워진 것은 그것도 제 4왕조. 기원전 2500년 정도의 일이다. 이 시기에는 이미 이집트의 문명이 전래되어 미케네 문명이 시작되고 있었으며, 중국에서는 역사에 남겨진 최초의 왕조 은나라(전설 속의 하나라 유적은 아직 출토된 것이 없으므로)가 수립되어 청동기를 중심으로 번영하고 있었다.

  이들은 -당연하게도- 도르래나 지레대의 원리를 알고 있었으며, 이를 실제로 활용하였다. 2.5톤의 돌은 무시무시한 무게로 생각되겠지만, 바닥에 둥근 나무를 깔아주면, 불과 몇 명의 힘으로도 옮길 수 있는 수준이다.(같은 방법으로 잉카인들은 둥근 자갈을 사용해서 돌을 날라 마추피추와 같은 놀라운 건축물을 완성했다.)

  140m가 넘는 위로 돌을 올리는 것은 어려워 보이지만, 그들은 비탈길의 원리 역시 알고 있었다. 메소포타미아로부터 전래된 벽돌을 사용해서 비탈길을 쌓고 이 비탈길을 통해서 돌을 옮기는 것은 높은 급료에 대한 기대감과 파라오의 신전을 건립한다는 종교적 열성에 가득 차 있는 이집트인들에게 그다지 어려운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실제로 이러한 종교적 열성을 갖고 있지 않은 현대인들조차 고대의 도구 만 사용해서 피라미드를 만들 수 있다. 시카고 대학의 레너 교수가 50명도 안 되는 인원으로 3주일 만에 186개의 돌을 쌓아 8층짜리 피라밋을 건설함으로서 ‘ 석기로는 피라미드를 만들 수 없다. ’는 주장을 일축한 것은 유명한 사례. (50명만으로도 700년 정도면 쿠푸왕의 피라미드를 건설할 수 있다.)


  그런데 최신 연구 결과 이집트인들은 이보다도 훨씬 똑똑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피라미드 주변에서 발굴된 기묘한 나무 조각을 통해서, 도르래만이 아니라 바퀴의 원리도 알고 있었던 이집트인들이 돌 밑에 나무를 까는 -다소 원시적인 방법-이 아니라, 돌 자체를 나무로 둘러싸서 일종의 거대한 바퀴를 만드는 방식을 사용했음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돌은 네모나지만 나무를 대어 둥글게 만들 수 있다. 이렇게 만든 나무 부품은 재활용할 수 있으며 이처럼 커다란 바퀴 구조는 앞에서 가볍게 끌어당기기만 해도 경사를 쉽게 올라갈 수 있다. 이 방법을 따르면 레너 교수의 계산보다도 훨씬 빠르고 간단히 피라미드를 세울 수 있다는 것이 밝혀졌다.


  피라미드 주변의 발굴 결과 피라미드 건설에 동원된 인력은 5000명 정도였다고 하는데(혹자가 추측하듯 10만 명의 노예를 동원한 것은 아니다.), 이정도면 도르래를 쓰는 것만으로도 쿠푸왕의 피라미드를 7년 정도면 충분히 완성할 수 있고, 바퀴 구조를 이용하면 그보다 훨씬 빠르게 완성할 수 있다는 결론이 나온다.

  물론 농업 국가인 이집트에서 열심히 농사 지어야할 농민들을 1년 내내 동원할 수는 없었다.(몇몇 잘못된 견해와는 달리 당시의 이집트는 노예제를 갖고 있지 않았으며, 이른바 노예라고 하는 이들은 집안의 하인이나 가정부 정도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농민들은 농번기에는 바쁘지만, 농한기는 비교적 한가하게 지낼 수 있는 것이 사실.

  더욱이 나일강의 범람은 연례행사로서 이 기간에는 농업을 완전히 쉴 수 밖에 없었기에 그 동안 이집트의 농민들은 할 일이 아무 것도 없었다.(이 나일강의 범람은 주변의 토양을 비옥하게 만들었으며, 이집트 왕조의 수립에 기여하고, 천문학과 수리학이 발달되는 요인이 되기도 했다.)


  쿠푸왕을 비롯한 이집트의 파라오들이 바로 여기에 눈독을 들인 것은 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농한기라 해도 다음 농사 준비를 해야 하는 다른 문명의 농민들과는 달리 이집트의 농민들은 나일강의 범람으로 인한 농한기 때 따로 할 일이 없었다.

 

  일을 쉬고 있는 풍부한 인력...

  파라오는 그 기간 동안 가족들의 생계를 유지할만한 급료를 약속하였으며, 이는 수많은 농민들이 경쟁적으로 피라미드 건설에 매달리게 하는 원인이 되기도 하였다.

(피라미드 건설 참여에 참여하는 일에 대한 경쟁을 의아하게 생각하는 이들이 많겠지만, 과학이 발달한 지금조차 피라미드를 건설하는데 협력하라면 기꺼이(아마도 무급으로) 나설 이들은 넘쳐날 것이다. 하물며 실제로 파라오를 신이라고 생각하고 있던 당시의 국민들은 오죽하겠는가? 게다가 쿠푸왕의 피라미드 이후에는 그 거대한 위용을 보는 것 만으로 경외감과 함께 신의 역사에 참여하고 있다는 기대감을 갖게 하기에 충분했을 것이다.->이는 고대의 거대 건축물이 가진 또 하나의(지배 계층으로서는 더욱 중요한) 목적이었다.)


  더욱이 피라미드 제작에 참여한 이들은 장인으로서 존경을 받는 이들이기도 했다.


 

  실례로 근래에 피라미드 주변에서 발견된 한 무덤은 바로 그들의 사회적인 위치가 어떠했는지를 보여준다. 당시 일반적인 서민들과는 달리, 그는 피라미드에서 비교적 가까운 곳-비록 귀족과 왕족들을 위한 신성한 공간을 나타내는 거대한 방벽 너머에 위치하고 있지만-에 동료들의 무덤에 둘러싸여 누워 있는 것이다.


  신성하기 이를 데 없는 피라미드 주변, 그것도 여러 사람들의 호위를 받듯이 누워있다는 것만으로, 당시 피라미드 건설자들의 위치를 알 수 있게 해 주지 않는가?

 

  일꾼으로서의 여러 가지 혜택, 그리고 파라오에 대한 열정과 책임자에 대한 사회적인 존경. 이를 통해서 끌어모을 수 있는 5000명의 인력은 피라미드의 건설에는 충분한 인원이었다. 그들에게는 매년 4달 정도의 여유가 있었고, 파라오가 죽기 전까지만 완성하면 되었기에 마감에 쫓길 우려도 없었다.

(파라오가 일찍 죽으면 피라미드는 더 이상 세우지 않고 마감해 버리기 때문에 쿠푸왕의 피라미드 이후에도 미완성 피라미드가 종종 등장하곤 했다. 이집트의 국력이 약해져서 피라미드 건설에 투자를 하기 어려운 이유도 있었지만, 왕권이 약해진 만큼 파라오가 천수를 누리기 어려워졌기 때문이기도 하다. 비록 파라오가 신의 아들이긴 했지만, 어느 시대건 신의 아들이라는 거창한 명함을 두려워하지 않고 자신이 차지하려는 사람은 있는 법이니까.)


  그럼에도 그들은 열심히 일을 했을 것이다. 급료도 급료였지만, 피라미드 건설에 참여하는 노동자들은 이집트인들이 너무도 중요하게 생각한 사후 세계의 은총을 받는 것이기 때문에...

 

  미이라 등을 만들 수 있었던 귀족과는 달리 일반 서민들은 사후 세계의 은총을 받을만한 묘지를 만들 여력이 없었다.

 

  그러나, 이집트인들이 사후의 영생을 기린 것은 잘 기억되고 있는 사실이며, 그렇기에, 피라미드 공사에 참여하는 것은 실업자 대책을 위한 공공 사업일 뿐만 아니라, 파라오와 귀족들만이 독점하는 종교적인 은총을 서민들에게 나누어주는 자선 사업이기도 했다.



  물론, 경우에 따라서는 급료가 늦게 지불되는 바람에 파업을 하기도 했지만(이는 노예를 사용하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증거의 하나이기도 하며, 이집트 사회에서 농민들의 위치가 생각보다 높았음을 입증하는 예이기도 하다.) 몇몇 사람들이 남긴 낙서에서 보이듯 스스로를 ‘ 파라오의 친구들 ’이라 생각했던 그들은 자신의 사후 영혼에도 축복을 베풀어 줄 피라미드의 완성에 노력했을 것에 틀림없다.

  몇몇 지식이 부족한 만화가들은 완성된 피라미드에 노예들을 가두는 장면을 연출하기도 했지만 피라미드 건설에 참여한 노동자들 중에는 피라미드에 들어가는 은총을 받을 수 있다면 기꺼이 죽겠다는 이도 있었을 것이다. (사후 세계의 영생을 믿은 이집트인들이 노예에게 피라미드에 묻힐 거창한 권리를 주었을지는 의문이며, 실제로 어느 피라미드에서도 노동자의 시체 따윈 발견되지는 않았다.)

 

  실제로 왕가에 충성한 귀족들은 피라미드 주변에 무덤을 만들어 왕가의 은총을 나누어 받을 수 있는 기회가 있었으니... 피라미드라는 것은 단순한 무덤 이상의 종교적 상징으로서 받아들여지는 존재이기도 했을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상징을 완성하는데 있어 수십년에 걸친 노동은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기도 했다.

 

  실제 20세기인 지금에도 거의 몇백년에 걸쳐서 만들고 있는 사원이나 성당이 있지 않은가?

(*  필자의 생각에는 단순히 돌을 쌓아놓은 것에 불과한 피라미드보다 로마인들이 건설한 거대한 돔형의 건축물, 팡테온 같은 것이 훨씬 더 놀라운 불가사의라고 생각한다.)

 


2. 피라미드의 높은 완성도는 고대인의 능력이 미치지 못한다.

 

  ' 만물의 영장 '을 자부하는 현대인의 오만은 유명한 이야기지만, 이러한 의문(?)에 까지 이르면 그야말로 오만함이 극에 달해 하늘을 찌를 듯 하다.

  피라미드는 동서남북 방향으로 상당히 정확한 각도로 맞추어져 있는 것이 특징이다. 가장 정확하다는 쿠푸왕의 피라미드는 3‘ 6“(1%도 미치지 않는다) 정도, 심한 경우에도 14‘ 정도의 차이를 밖에는 나지 않는다.

  그러나 이러한 정확도가 있다고 해서 그들이 만들지 못했을 거라고 생각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비록 덧셈과 뺄셈 밖에는 하지 못했지만(곱셈과 나눗셈은 이를 응용해서 했다) 그들은 인류 최초로 삼각형의 여러 가지 원리를 이해한 민족이다.(3:4:5의 직삼각형을 완전한 삼각형이라고 생각했다는 것은 유명한 사실이다.)

 


  나일강의 범람은 4개월 정도의 농한기와 함께 풍요로운 곡창지대를 선물하기도 했지만, 여기에 범람해서 경계가 사라진 농토를 분할하기 위한 기하학과 수리학, 그리고 나일강의 범람을 정확히 예측하기 위한 천문학을 낳을 수 있게 했다.

  그들은 당시 세계 최고 수준의 천문학과 수리학, 기하학의 천재였으며, 그것은 후일 카이사르가 율리우스력을 만드는데도 도움을 주었을 정도였던 것이다.

  그러니 동서남북 방향을 정확히 측정하는 것은 그들에게는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며, 이에 맞추어 피라미드를 세우는 것도 큰 문제는 없었을 것이다.

  대대로 이 직업을 물려받는 전문가들이 측량을 마치고 자리를 잡게 되면 여기에 맞추어 돌을 쌓아나가는 것은 아이들조차 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천문학의 전문가들은 수시로 작업 공정을 살펴보고 문제점을 수정해 나갔기 때문에(피라미드 내부의 무수히 많은 공동들은 바로 이러한 수정 작업에서 나온 것이기도 하다) 처음에 조금 틀렸다고 해도 최종적으로 완성되는 시점에서 거의 맞추어진 상태로 완성하는데는 아무런 어려움이 없었다. 그리하여, 주변의 마지막 돌을 놓는 순간 이 수정 작업은 종결되고 피라미드는 동서남북에 정확히 맞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동서 남북의 특징으로 인해서 피라미드를 천문대라고 하는 학설이 있지만, 이집트에서는 굳이 피라미드처럼 거대한 천문대를 만들 필요없이 오래 전부터 다양한 천문 관측 시설을 통해 수립한 놀라운 수준의 천문학을 갖고 있었다.(무엇보다 피라미드는 천문대라고 할 정도로 정확하지는 않으며(피라미드에 따라서 각도가 다르기도 하다) 계단식 피라미드나 굴절 피라미드를 천문대라고 보기에는 억측이 심한 것이 사실이다.)

 

  더욱이, 피라미드는 완성도가 높은 것도 아니다. 피라미드가 여러 단계에 걸쳐서 발전되어 온 것은 이미 이야기 한 바와 같으며, 피라미드 중에서 가장 완성도가 높은 것처럼 보이는 쿠푸왕의 피라미드는 사실 대표적인 불량품 피라미드이기 때문이다.

  피라미드의 과학과 관련된 이야기에서 쿠푸왕의 피라미드의 현실이 무게를 아주 잘 받쳐주기 위한 구조로 되어 있다는 이야기가 있으나, 이것은 과학을 모르는 이들의 단순한 추측에 불과하다.

  그도 그럴 것이, 무려 5단계로 되어 있는 쿠푸왕 현실의 천정은 처음부터 5단계로 할 생각이 아니라 단지 아무리 해도 무게를 버티지 못하고 화강암 천정이 갈라지기 때문에 몇 개를 더 만들어 넣은 것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실제로 쿠푸왕의 피라미드의 현실 천정은 여기저기 금이 가 있으며, 그 위의 5단계 전부가 이리 저리 무너져 있는 상태이다.)


 

  게다가 쿠푸왕의 피라미드는 그 평면만도 3번에 걸쳐서 바꾸었을 정도로 부실 공사의 산물이기도 하다. 쿠푸왕의 현실이 결국 중심에서 삐딱한 위치에 놓여진 것도, 더욱이 다른 피라미드와는 달리 지하가 아닌 지상에 위치하게 된 것도 이러한 반복적인 개축 작업에 의한 것이다.(이와는 달리 처음부터 만들어 넣은 왕비의 방은 본래라면 파라오가 위치해야 할 지하, 그것도 피라미드의 중심부에 위치하고 있으니 재미있는 사실이 아닌가?)

 

  이 신비로운 건축물 안에 다른 피라미드에 비해서 특히 공동이 많은 것은 -그 내부에 비밀 통로가 있기 때문이 아니라- 그만큼 부실하게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1986년 못 미더워하는 이집트 정부에 국제 사회의 압력을 넣어 발굴한 왕비의 방 뒤쪽 공동에서 아무 것도 없는 빈 공간을 발견한 것은 ‘ 이번에야 말로 비밀이 밝혀진다 ’라고 생각한 피라미드 신봉자들의 기대를 산산히 부셔버린 촌극이었지만, 얼마 전에 생방송으로 중계된 로봇에 의한 탐사 역시 또 다른 벽이 있다는 사실로 인해 가벼운 해프닝으로 끝나고 말았다.

(생각해 보면, 쥐새끼나 다닐만한 공동을 ‘ 비밀통로 ’라고 칭하는 것도 코미디가 아니겠는가? 물론, 이를 위해 BBC와 같은 공영 방송이 거창하게 생방송까지 한 것을 보면 피라미드에 대한 신비라는 주제는 그야말로 세기의 특종이 될만한 가능성을 갖고 있다는 것. 즉, 어마어마한 돈벌이가 된다는 것을 입증하는 사례라 할 것이다.)

 

  ‘이번에야 말로 피라미드의 비밀이 밝혀진다.’라는 말은 쿠푸왕의 피라미드가 7대 불가사의 중 하나로 책정된 이래 계속된 일이지만 계속 나온 일이지만, 이제까지 어떤 시도를 통해서도 피라미드에 대한 비밀이 밝혀진 바가 없다.

 

  그것은 쿠푸왕의 피라미드에 숨겨진 비밀이 엄청난 것일지도 모르지만, 반대로 비밀 같은데 존재하지 않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보다 재미있는 사실은 피라미드의 비밀을 밝힌다면서, 보다 완성도가 높아서 조사하기 쉬운 다른 피라미드는 무시되고 있다는 점이다.)

 

  ‘ 피라미드의 신비 ’라는 거창한 이야기에는 사실 고고학에 대한 관심을 끌어내려는 학자들, 뉴스 거리를 만들려는 언론, 심지어 쇼 프로나 외계인 신봉 단체까지 기여하고 있다.

  그들의 머리 속에는 ‘피라미드는 무덤이자 파라오의 위엄을 상징하는 신전이다.’라는 생각은 존재하지 않고 있으며, 부실 공사와 시험적인 시스템의 도입으로 인해 여기저기 공동이나 틈새가 넘쳐나는 쿠푸왕의 피라미드는 그러한 기대감을 더해주고 있다.

 

  사실은 <엑스 파일>의 흔한 대사처럼 "진실은 바로 저기"에 있을지도 모르는데 말이다.

 

(* 쿠푸왕의 현실과 같은 설계는 그 전에도 그 후에도 어떤 피라미드에서도 도입된 바가 없다. 그만큼 쿠푸왕의 피라미드는 독특하지만, 건축이나 기술에 관한한 매우 현실적이기도 했던 이집트인들이 더 이상 사용하지 않은 설계라는 점은, 쿠푸왕의 피라미드가 부실하기 이를데 없다는 것을 증명하는 사례이기도 하다.

  그렇게 거대한 피라미드를 3번이나 개축을 했다는 사실은 쿠푸왕의 권력을 증명하는 사례이기도 하지만, 쿠푸왕의 피라미드가 지극히 부실한 불량품이라는 사실을 입증하고 있다.

  더욱이 쿠푸왕의 피라미드에 사용된 각종 설계(현실의 설계 등)는 그 후 어떤 피라미드에서도 채택되지 않을 만큼 악명이 높았다.)

 


3. 피라미드에는 신비한 효과가 숨겨져 있다.

 

  언제부터인가 '피라미드 파워'라고 하여 피라미드 모양의 부적이나 장신구가 등장하고, 심지어는 피라미드 모양의 방에서 잠을 자는 일까지 유행을 하곤 했다.


 

  그렇다면, 정말로 피라미드에는 놀라운 힘이 숨겨져 있는 것일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피라미드 효과'라는 것은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으며 단지 독일 전기 기술자의 착각과 지식 부족에서 나온 착각에 지나지 않는다.

 

  1859년 전신 케이블을 설치하기 위해 홍해로 온 독일 전기 회사의 사장 지멘스는 떡 본 김에 제사 지낸다는 식으로 마침 이집트 굴지의 관광 명소인 피라미드를 방문하기에 이른다.

 

  전기 회사의 창립자인 만큼 호기심이 왕성하고 시험을 좋아했던 그는 무심코 피라미드 꼭대기까지 올라가서 쉬게 되는데, 이 순간 손가락에 전기가 따끔한 것을 느끼게 된 것이다. 호기심을 느낀 그는 갖고 있던 도구들로 즉석 충전기인 라덴병을 만들었고 여기에 전기가 충전되는 사실을 발견했다.

 

  실제로는 피라미드가 아니라 에펠탑이나 남산 타워 꼭대기에서 실험했더라도 똑같은 결과가 나왔겠지만(피뢰침처럼 뾰족하고 높은 건물은 주변의 전하를 끌어들인다.), 당시에는 이러한 현상이 그다지 잘 알려지지 않았으며 더욱이 피라미드라는 장소의 매력이 겹쳐져 거창하게 ‘ 피라미드 효과 ’라는 명칭을 얻기에 이른다.

 

  피라미드 효과에 대한 ‘ 전설(?) ’은 1930년대 피라미드 내부에서 고양이 등의 시체를 발견했던 프랑스의 철물공 보비에 의해서 증폭되었다. 그는 피라미드 모양을 만들어 동서남북 방향으로 놔두고 그 안에 생선 등을 넣어 놓았는데, 이들이 모두 썩지 않고 미이라 화되어 버렸던 것이다.

  더욱이, 체코 기술자인 칼 드루발에 의해서 피라미드 내부에 둔 면도날이 날카로워지는 현상이 관측되면서(라는 이야기가 나오면서) 피라미드는 놀라운 효과를 갖고 있다는 이야기가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그 후 피라미드 효과에 대한 소문들은 눈덩이처럼 불어나기 시작했다. 상처가 나도 고통이 줄어들고 잠을 잘 자게 된다거나, 심지어 아이들이 말썽을 부리지 않게 되었다는 이야기까지 있었다. 그 중에는 피라미드 안에서 명상을 하면서 초능력을 사용하기도 했다는 이야기까지 나올 정도였다.

  이에 대해서 일부 학자들은 피라미드의 모양이 안테나와 같이 에너지를 끌어들이고 있다는 가설을 발표하기도 했으며, 이를 "피라미드 효과"라고 이야기하였다.

  그러나 현재까지도 사실로서 받아들여지고 있는 이 피라미드 효과는 실제로는 아무 것도 아닌 사기극이나 허구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이 속속 밝혀지고 있다.

  실제로 '과학적인 방식'으로 실시되었던 스탠포드 대학의 실험에 따르면, 피라미드 내부에 넣어둔 달걀은 구역질이 날 정도로 썩어 있었으며 면도날이 날카로워지는 현상도 입증되지 않았을 뿐더러, 피라미드 속에서 초능력을 발휘했다고 말하는 어떤 이들도 그들의 주장을 입증하지 못한 것이다.

 

  더욱이 피라미드 효과는 똑같이 보이는 여러 피라미드들이 사실은 제각기 다른 각도로 서 있다는 점에서도 문제가 되고 있다. 쿠푸왕의 대피라밋은 50도 정도이지만, 그 주변에 있는 그의 아들, 케프렌의 피라미드는 53도로 쿠푸왕의 피라미드에 비해서 조금 높다. 그리고 그의 아들인 미케리노스의 무덤은 이보다도 조금 더 각도가 높은 것이 사실.

(여러 번에 걸쳐서 개축되는 등 부실 공사의 문제가 심각했던 쿠푸왕의 피라미드와는 달리 이 두개의 피라미드는 체계적으로 제대로 완성되어 그 완성도가 훨씬 높다. 심지어 케프렌의 피라미드에는 그 표면을 채워두었던 반들반들한 면이 아직 일부 남아 있어, 피라미드의 완성 당시 모습을 짐작케 하고 있다.)



  혹자들의 추측에 따르면 피라미드 효과를 위해서는 쿠푸왕의 피라미드처럼 50도 각도로 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계산을 해 보면 케프렌의 피라미드 쪽이 제대로 된 피라미드 형태에 적합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유독 '부실 공사로 인해 각도를 낮출 수 밖에 없었던' 피라미드에서만 피라미드 효과라는 것이 등장한다는 건 도대체 무슨 말인가?

  어쩌면 피라미드의 효과가 너무도 우수해서 완성도가 낮은 쿠푸왕의 피라미드에서도 그 효과가 발휘되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지금으로서는 피라미드의 효과라는 것을 입증할만한 어떠한 증거도 존재하지 않는다.


  피라미드 효과에 대한 믿음은 피라미드 안에서 발견된 미이라들의 보존 상태가 너무도 좋다는 것에서 기인하는 바가 있지만 미이라는 피라미드에 의해서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실례로 피라미드와 무관한 왕가의 계곡이나 귀족들의 영묘, 심지어는 로마 시대의 공동 묘지에서조차 미이라를 발견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건조한 이집트의 환경은 본래부터 미이라가 발생할 가능성을 높여주고 있으며, 이를 통해서 이집트인들은 뛰어난 미이라의 제조법을 구축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일부 사람들의 생각과는 달리 파라오들은 무작정 붕대에 감긴채 피라미드 안에 안치되어 미이라화되는 것은 아니다. 그들은 오랜 경험을 가진 기술자에 의해 많은 시간에 걸쳐 「처리」되고 그 결과 "미이라로 완성된 상태"로 붕대에 감긴 채 피라미드 안에 들어가게 되는 것이다.

  우리들이 미이라를 통해서 파라오나 귀족들의 생전의 모습을 떠올릴 수 있는 것은 피라미드가 신비한 힘을 발휘하여 그들을 보호해 주었기 때문이 아니라, 장인 정신을 갖춘 고대의 미이라 제작자들이 파라오들이 사후 세계에서 사용할 육신을 보존하기 위하여 그들의 기술을 총 동원했기 때문이다.

  진정한 피라미드 효과란 바로 고대 이집트 장인들의 정신에서 흘러나온 것이라고 할까?(물론, 학구 정신에 불타는 학자들(이를테면, 스스로 미이라광이라고 말하는 밥 브라이어 박사 같은 사람) 역시 비슷한 방식으로 미이라를 만들 수 있지만 이를 위해서 피라미드 모양의 방이 필요하지는 않다.)


 

  그것이 돌로 되었건 아니면 쇠나 금으로 되었건, 피라미드에는 시체를 미이라로 만드는 효과도 없고, 무엇보다도 미이라를 썩지 않도록 보호하는 힘도 없다.

 

  실례로 피라미드에서 발굴한 여러 미이라들은 고대 이집트인들이 그렇게 다양한 조치를 취했음에도 불구하고 박테리아에 의해서 천천히 썩고 있는 상태였던 것이다.(사람들이 그렇게 신봉하는 쿠푸왕의 피라미드에서 발견된 미이라에서 이러한 증상이 발견됨에 따라, 미이라를 조사하기에 앞서 방사선을 쬐어 소독하는 단계가 추가되었다.)

 

  어쩌면 피라미드 모양에는 혹자들이 주장하듯 ‘ 우주의 기가 모여드는 효과 ’가 있기 때문에 어떤 신비한 증상이 나오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조사 결과를 놓고 보면 피라미드 효과는 다분히 「위약 효과(사탕을 약으로 알고 먹으면 약을 먹은 것으로 착각해서 병세가 호전되기도 하는 효과)」와 같은 심리적인 영향이 큰 것으로 생각되고 있다.

  즉, "나는 피라미드 형태의 방에 들어왔다. 여기에는 우주의 기가 모이고 있기 때문에 마음이 차분해진다."라는 생각만으로 마음이 차분해지고, 머리가 맑아지며 상처의 고통이 줄어드는 것처럼 말이다.

(실제로 이와 관련된 실험에서 눈을 가리고 자신이 피라미드 내부에 있다는 것을 모른 상태에서 들어간 이들은 도리어 「눈을 가린 것으로 인한 불안감」을 호소했을 뿐이다.)


 

  그렇다면, 왜 지금에 이르기까지 피라미드 효과 관련 상품이 인기를 끌고 있는 것인가? 그것은 언론에서 몇 번이고 떠들어대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쿠푸왕의 피라미드라는 거대한 위용이 사람들의 마음속에 잠재되어 있기 때문이 아닐까?

 

  하지만, 누가 뭐래도 피라미드에는 매우 중대한 효과가 남아있다. 그것은 명상이나 수련, 혹은 신비한 기도에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보다 직접적으로 막강한 영향력을 미치는 강력한 효과이기도 하다.

  바로 『피라미드 특집』이라는 말 만으로 천문학적으로 늘어나는 광고비와 시청율, 그리고 이집트 항공과 정부, 호텔, 그리고 상인들에게 쏟아부어주는 관광비와 싸구려 모조품의 구입비용, 그리고 아무 것도 아닌 피라미드 모양의 장신구를 고가에 구입함으로서 상인들의 배를 불리는 효과나 피라미드를 내세운 종교의 교주가 만복을 누리게 하는 효과가 그것이다.

  피라미드라는 말 하나만으로 무한한 돈벌이를 가능하게 하니, 이것이야 말로 현재와 같은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그야말로 가장 강력한 ‘ 피라미드 효과 ’가 아니겠는가?


  피라미드에 숨겨져 있는 신비가 어떤 것인지 현대 과학의 힘을 빌려서도 밝혀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닐 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들이 ‘피라미드의 신비’라고 쉽게 말하는 이면에는 지금은 2등 국가(어쩌면 3등국가)로 전락해버린 이집트의 현재를 바탕으로, 이집트의 고대인들을 멸시하는 자만심이 숨겨져 있는 것이 아닐까?

 

  우리네 현대인들은 고대의 위대한 유산들을 보고 ' 불가사의 '라거나, ' 고대인 주제에 '라는 식으로 엉뚱한 이야기를 늘어놓는 경향이 있다. 이러한 고대인에 대한 멸시에 가득한 고압적인 태도로는 고대인의 신비를 밝히는 것은 어려울 일이 아니겠는가?

 

  진정으로 고대인의 신비에 접근하고 그들의 비밀을 밝혀내려면 그들 역시 지금의 우리가 갖고 있는 지혜를 갖고 있는 인류의 일원이라는 사실, 그리고 그들은 존경받아야 마땅한 우리의 선조라는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고대인들은 결코 우주에서 내려왔다가 어디론가 날아가 버린 존재가 아니기 때문에...

 

 

  ' 피라미드는 고대의 기술로 만들 수 없다. '는 말에 묵묵히 작은 피라미드를 만들어 보인 레너 교수나 '그들에게는 미치지 못하지만...'이라며 멋진 미이라를 남겨준 밥 브라이어 박사의 태도, 그리고 지금도 피라미드에 대한 관심을 버리지 않고 새로운 가능성을 찾아내는 수많은 학자들의 모습은 바로 후손으로서 조상의 위대한 업적을 되새긴다는 겸손한 태도에서 나온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하며 글을 마친다.

 

  결국 인류의 문명은 그러한 겸손하면서도 과학적인 태도를 바탕으로 발전한 것이므로...


(* 이 글은 네이버 블로그에 올렸던 내용으로 최신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일부 수정했습니다.)

(* 여기에 사용한 사진 자료들은 모두 내셔널 지오그래픽과 히스토리 채널 등의 다큐멘터리 자료에서 발췌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