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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담

테크노마트의 진동 문제, 해답은 무엇일까?

  2주전 강변의 테크노마트에서 10분 동안 심한 진동이 발생하였다. 당시 사람들은 긴급 대피하였고, 수 만 명의 사람들이 방문하는 테크노마트는 정적에 휩싸였다.

  그로부터 2주. 원인 규명에 나선 조사단은 이것이 테크노마트 내 피트니스 센터의 집단 뜀뛰기에 의한 공진 현상 때문이라는 잠정 결론을 내렸다.

  조사단의 일원인 정란 단국대 건축공학과 교수는 "100여 년 전 영국의 브로스톤 다리에 군인들이 행진을 하다 주파수가 맞는 바람에 다리가 무너져 내리기도 했다"라고 지적했다. (1831년 브로톤 현수교 사고를 말함.)

  이와 관련하여 일부 언론에서는 호기심 천국에서 목소리로 유리컵을 깨는 사례와 같다고 부연 설명하기도 했다.

뉴스 셰어 기사
http://www.newsshare.co.kr/sub_read.html?uid=16404


  이 기사에는 1940년 바람으로 붕괴된 타코마 협곡 다리의 사례를 예로 들기도 했다.


  그렇다면, 이 설명은 맞는 것일까? 모든 것은 공진 잘못이며 정말로 테크노마트에는 아무런 잘못이 없을까?
 
  이에 대해 설명하기에 앞서 1940년 이후 부실공사나 지진, 홍수 등 재난 이외의 이유로 무너진 다리가 하나도 없다는 것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세상에는 브로톤 다리(44m)나 타코마 협곡 다리(1600m)보다 훨씬 길고 거대한 현수교는 얼마든지 있지만, 이제껏 흔들리거나 무너졌다는 이야기는 듣지 못했다. 단지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의 한강에 있는 폭이 얼마 되지 않는(현수교도 아닌) 성수 대교가 무너진 사건 정도만이 기억에 남아 있을 뿐이다.

  브로톤 현수교의 붕괴나 타코마 협곡 현수교의 붕괴 원인이 ‘공진’ 때문이라고 할 때, 이제껏 공진으로 무너진 다리가 하나도 없다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닌가? 사람의 발걸음이야 그렇다쳐도 수없이 부는 태풍이나 바람에도 현수교가 말짱한 것은 이상하지 않나?


  여기서 우리는 브로톤 현수교나 타코마 협곡 현수교의 붕괴 원인에 대해 다시 한번 살펴볼 필요가 있다. 하필이면 세상의 수많은 다리 중에 이들 다리만이 무너진 원인에 대해서 말이다.

 [ 사고 후 재건된 브로톤 다리 ]

  브로톤 다리(Broughton Suspension Bridge)는 1826년 어웰 강 위에 세워진 다리이다. 길이 44m에 이르는 이 다리는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현수교 기법을 사용한 몇 안 되는 다리로서 사람들의 관심을 한 몸에 모았다.

  하지만, 1831년 4월 12일 이 다리에서 일어난 사건은 그보다 큰 대중의 관심을 끌어모았다. 다리가 무너진 것이다.

  당시 다리에는 제 60보병부대가 훈련을 위해 강을 건너던 도중이었다. P.S. 피츠제럴드 중위가 이끄는 74명의 병사는 모든 군대가 그렇듯 발을 맞추어 행군하였고 어느 순간 다리가 그들의 보행에 맞추어 흔들리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흔들림은 점차 커졌고 어느 순간 갑자기 거대한 소리와 함께 쇠사슬이 끊어져 강으로 떨어지며 다리가 한쪽으로 기울었고 40명의 병사가 강으로 떨어졌다. 다행히 해당 지점의 수심이 깊었기에 병사들은 하나도 죽지 않았지만, 20여명이 부상당했다.

  조사 결과 다리가 붕괴된 것은 불량 나사 때문임이 드러났다. 파괴된 채 발견된 나사 중 상당수가 잘못 만들어진 것이었고 강도가 터무니없이 부족했다. 수많은 병사들의 발걸음으로 생긴 진동이 나사가 부서지는 속도를 앞당겼을 가능성은 있었지만, 그들이 아니었다고 해도 오래지 않아 다리가 붕괴될 것은 뻔한 일이었다.

  하지만, 한 신문이 “병사들이 발을 맞추어 걸어갔기 때문에 무너졌다.”라는 기사로 인해 “병사들이 발맞추어 걸어가면 다리가 무너질 수 있다.”라는 미신이 생겨나고 말았다. 이후 영국군은 다리를 건너갈 때 보조를 맞추지 말라는 명령을 내리게 되었고 이는 세계 각지로 퍼져나갔다.


  한편, 1850년 프랑스의 앙제 다리에서도 병사들이 지나가던 중 다리가 무너져 200명 이상의 인명이 희생되는 사고가 일어났다. 하지만, 브로톤 다리가 병사 때문에 무너진 것이 아니듯, 앙제 다리 역시 병사들 때문에 무너진 것이 아니었다. 당시 병사들은 영국군과 마찬가지로 발을 맞추지 않고 걷고 있었다. 하지만, 심한 바람이 불고 있었고 병사들의 무게가 더해져 다리의 강도는 한계에 도달하여 무너진 것이었다.

  이 사고 이후 현수교의 안전성에 의문이 제기되면서 여러 현수교에 대한 안전 점검과 함께 다양한 보강 조치가 행해졌다.


  1940년의 타코마 해협 다리(Tacoma Narrows Bridge)의 붕괴 사건은 더욱 극적인 사건이었다. 1940년 7월 1일에 개통된 타코마 해협 다리는 전장 1600m로 당시 세계에서 3번째로 긴 다리였다.

  워낙 긴 다리인 만큼 늘어나는 건설비를 줄이고자 다리 전체의 폭을 좁혔을 뿐만 아니라, 다양한 경량 설계가 도입되었다. 당시 이론에 따르면 그럼에도 충분한 강도를 확보할 수 있다고 여겼고 강풍에도 견딜 수 있다고 판단되었지만, 일부 전문가는 이에 의문을 제기하고 불안하게 보았다.

  타코마 다리는 건설 당시부터 바람이 불면 심하게 흔들리는 등 문제가 있었기에 공사 관계자들이 불안하게 생각했다고 한다. 심지어 상하로 흔들려 길의 높낮이가 달라지기도 했다. 때문에 개통을 1개월 앞둔 6월 1일과 2일에 다리 중앙부를 보강했지만, 진동은 약해지지 않았고 10월 4일에서 7일에 걸쳐 다시금 보강 공사가 행해졌지만, 근본적인 진동이 사라지지는 않았다.

  개통된 이후에 빈발하는 다리의 흔들림은 주행 중인 운전자가 ‘다리 멀미’를 일으킬 정도로 심했고 다리의 안전에 우려하는 이들은 멀리 돌아가는 길을 선택할 정도였다.

  다리의 붕괴는 11월 7일에 일어났다. 아침부터 바람에 의한 진동이 계속되었는데, 풍속이 19m/s에 이르자 그때까지 상하방향으로 이루어진 진동에 변화가 일어났다. 이러한 진동이 1시간 정도 계속된 후 1/4정도 되는 지점이 끊어지면서 다리는 붕괴되었다.

[ 무너져 내리는 다리. ]

  타코마 다리의 붕괴는 사실상 예견된 사고였다. 고유진동수나 공진 등의 이야기를 꺼낼 필요 없이 타코마 다리는 처음부터 사람들이 일부로 피할 정도로 위험하고 부실한 시설이었고 언제 사고가 나도 이상하지 않았다.
(일반적으로 알려진 것과 달리 타코마 다리의 붕괴는 공진과는 전혀 관계없는 일이었다. 이에 대해서는 다른 분이 정리한 글에 잘 나와 있기에 소개한다.
타코마 다리 붕괴 (http://www.joysf.com/4265021) )

  물론 운 나쁘게 고유 진동과 맞아 진동이 심해진 결과 다리가 무너졌다고 해도, 그것은 단지 언젠가 다가올 파국을 좀 더 앞당긴 정도에 불과한 것이다.

 
  실례로 타코마 다리가 붕괴된 이후 타코마 다리에서 쓰였던 경량 기법 등은 다시는 사용되지 않았고, 세계 각지의 현수교에 대해 대대적인 보강 공사가 진행되었다. 한동안 현수교의 건설 자체가 중지되었지만, 이후 보강 공사를 거쳐 건설된 현수교들은(물론 새로 건설된 타코마 다리도) 아직 무너지지 않았다.


  그렇다면 테크노마트의 문제는 무엇인가? 고유진동도, 피트니스 클럽이 있는 것도 아니다. 바로 몇 십 명의 사람이 뛰는 정도로 흔들릴 만큼 건물이 부실했다는 점이다.

  고유 진동수가 있다고 해도 어느 정도 이상의 힘을 가하지 않는다면 물체는 진동하지 않는다. (실례로 노랫소리로 약한 유리잔은 깰 수 있지만, 두꺼운 유리병은 깨지 못하는 것을 생각해 보자.) 하물며 39층에 달하는 거대한 건물이 흔들릴 가능성은 매우 낮다. 하지만, 테크노마트에서는 바로 그런 사건이 벌어졌다. 그것도 멀미가 일어날 정도로 심하게...

  테크노마트에 필요한 것은 간단한 검사 끝에 피트니스 클럽을 폐쇄하는 것으로 끝내는 것이 아니라, 더욱 정밀한 검사로 문제를 확인하고 필요하다면 대대적인 보강 공사를 하는 것이다. 테크노마트가 무너질 가능성은 극히 낮지만, 설사 무너지지 않는다고 해도 진동으로 인해 불편을 느끼고 위험을 느낄 수 있다면 그것을 보완하는게 마땅하다.

  건물은 수많은 위협으로부터 우리를 보호하는 보금자리여야 한다. 그 보금자리가 우리를 위협하고 불안하게 만든다면 그것이 자연스러운 일일까?

 
  20세기 말 영국에서는 20세기의 종막과 다가오는 21세기를 기념하는 뜻에서 밀레니엄 다리(Milenium Bridge)라는 이름의 보도교를 건설했다. 2000년 6월 10일의 개통식에는 독특한 모습의 이 다리를 보려고 자그마치 9만명이 넘는 사람이 몰려들었고, 한번에 2천 명 이상이 다리를 지나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이 다리는 이론상 5천 명의 보행자를 수용할 수 있었지만, 실제로 그런지는 알 수 없었다. 개통식 이후 이 다리에는 예기치 못했던 진동이 발생하여 사람들을 불안하게 했다. 결국 6월 12일이 되어 다리는 폐쇄되었다.

  확인 결과 적은 수의 보행자만 지나간다면 문제는 발생하지 않았다. 게다가 흔들리더라도 위험할 정도는 아니었다. 여기에 '밀레니엄 기념'이라는 목적으로 볼때 개장을 늦추는 것은 체면과 관련된 문제이기도 했다.

  하지만, 운영 단체에서는 체면보다 안전을 택했다. 다리는 폐쇄되었고, 본격적인 보강 공사를 거쳐 2002년 2월이 되어서야 다시 개장되었다.

  그후 밀레니엄 다리에는 많은 이가 몰리기도 했지만, 지금 이 순간까지도 이상 진동을 발생하지 않고 있으며, 사람들의 즐거운 보행길을 책임지고 있다.

[ 런던의 밀레니엄 다리 ]


여담) 이번 조사 결과 발표와 관련하여 언론의 무책임함을 지적하지 않을수 없다. 앞서 이야기했듯 타코마 다리나 브로톤 다리의 붕괴는 공진과는 전혀 관계없는 '부실 설계와 공사' 때문이다.
  하지만, 테크노마트의 진동 원인 잠정 조사 결과 발표와 관련한 언론의 기사에서는 이러한 점을 전혀 지적하지 않고 오직 앵무새처럼 발표 내용만을 반복하고, 브로톤 다리나 타코마 다리를 예로 들어 부연설명까지 하고 있다.

  언제까지 부실 공사로 무너진 다리들을 '공진의 사례'처럼 소개할 것인가? 언제까지 수십 년전의 낡아 빠진 미신을 변명거리로 삼을 것인가?
  약한 바람에 흔들리고 수십 명의 사람이 뛰는 것만으로 흔들리고 휘청대는 건물이나 다리는 정상이 아니다. 설사 테크노마트에 헬스클럽을 없앤다고 해도 언젠가 진동이 재발할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