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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협 이야기

최고의 격투 게임 만화... 팬픽의 가능성과 재미


[ "악수!" 싱고에게 손을 내미는 사쿠라. 이처럼 회사조차 전혀 다른 작품의 두 캐릭터가 마주할 수 있다는 것도 게임 만화만의 특징이다. ]

 

  캡콤에서 "스트리트 파이터"라는 게임을 선보인 이래, 격투를 소재로 한 게임이 무수하게 등장하여 인기를 끌었습니다.


  그리고, 원소스 멀티 유즈로 유명한 일본. 당연히 격투 게임을 소재로 한 다양한 작품들이 선보이게 마련입니다. 소설에서 만화, 애니메이션 등... 물론 헐리우드에서 영화로 만들어지는 상황도 드물지 않지요.


  격투 게임의 인기를 생각하면, 이들 작품들도 충분히 인기를 끌 수 있을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멋진 주역과 멋진 악역이 넘쳐나는 작품들... 이런 작품을 소재로 한 창작물들이 인기가 없을 리도... 그리고 재미가 없을 리도 없지요.

 

 

  그러나, 기실 선보인 작품들은 솔직히 그다지 유쾌한 것들은 아닙니다. 보다 정확히 말하면 재미없습니다.

 

  류와 켄이라는 영원한 라이벌을 중심으로 격투 게임 사상 처음으로 여성 캐릭터를 내세우고, 여기에 전작의 보스 이상의 강력한 적수를 등장시켜 격투 게임의 새로운 장을 열었던 "스트리트 파이터2"를 시작으로, 격투 게임 사상 손꼽는 멋진 악역, 기스 하워드를 내세운 "아랑전설", 그리고 "용호의 권"... 여기에 3인 대결이라는 체제로 숫자로 밀어 붙인 "킹 오브 파이터즈"나, 3D로 흥미를 끈 "버추어 파이터"나 "데드 오어 얼라이브" 등에 이르기까지...

 

  이른바 인기를 끌었던 게임은 대부분 만화나 애니메이션으로 제작되었지만, 게임으로서는 걸작이라는 평을 받는 게임을 원작으로 한 작품들이 좋게 봐주어야 범작... 대개는 최악의 작품으로 평가되곤 하지요.

 

  소재도 좋고, 스토리나 캐릭터도 좋은데 왜 이렇게 되는 걸까요? 그것은 아마도 격투 게임에 등장하는 캐릭터가 너무 많은데다 작가의 욕심이 지나치기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격투 게임에 등장하는 캐릭터들은 제각각 이야기를 갖고 있습니다. 하나하나 단독으로 한 개의 작품을 만들 수 있을 정도이지요. 그렇듯 다양한 내용들을 몽땅 풀어 버리려 하니, 그대로 종합 선물 세트가 되어 버리는 셈이지요. 게다가 이미 있는 게임의 캐릭터들이다보니 캐릭터마다 인기도 있고 팬들도 있게 마련. 자칫하면 여기에 휩쓸려 엉망이 되기도 합니다. (작가 자신의 개인적인 취향 문제도 있고 말입니다.)

 

  일반적인 만화의 캐릭터는 이야기를 진행하면서 인기를 얻어가고 팬을 얻게 마련인데 그럴 기회도 시간도 없는 상황인 것이지요.


 

  하지만 격투 게임 만화 중에서도 이른바 '명작'이 있으니, 바로 <파괴마 사다미츠>라는 작품으로 애니메이션화를 이루기도 했던 나카하라 마사히코(中平正彦)씨의 격투 게임 시리즈입니다.

 

  주로 아케이드 게임지인 게메스트와 코믹 게메스트에서 필자나 객원으로서 취재를 하며 연재를 진행했던 그는, 그 후 <스트리트 파이터 2>를 소재로 한 게임 만화인 <캐미 외전>을 시작으로 <스트리트 파이터 제로> 등의 작품을 통해 그 세계를 만화로 선보였지요.

 


[ 국내에도 출간된 "힘내라 사쿠라!". 주역도 아닌 인물에 초점을 맞추어 그녀의 성장을 충실하게 연출했다는 사실이 놀랍다. ]

 

  게임의 이야기를 그 나름대로 재해석하여 완성한 <스트리트 파이터 제로>, 사쿠라라는 한 명의 캐릭터에 초점을 맞추어 그녀의 성장 일기를 그린 <힘내라 사쿠라>, 그리고 류라는 인물을 심층 깊게 분석하여 하나의 결말을 맞이할 수 있었던 <류 파이널>에 이르는 그의 작품은, 원작을 생각하지 않고 단독으로 충분한 매력을 갖고 있으며, 독자적인 깊이를 느끼게 해 줍니다. (이들 대부분은 대원씨아이를 통해 국내에도 소개되었지만, <스트리트 파이터 II 캐미 외전> 만큼은 해적판으로만 나왔습니다. 그것도 아쉽게도 마지막 화가 들어있지 않은 상태로...)


  그의 작품은 단순히 게임 속의 인물을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게임에서는 접할 수 없었던 캐릭터들의 내면을 깊이 있게 연출해서 하나의 작품으로서 완성도를 더해줍니다.



  그로 인해서 그의 작품에 등장한 캐릭터가 게임에 선보이는가 하면, 제작진들이 그의 작품을 보고 "아, 사실은 그랬던 건가?"라고 감동하여 공식 설정으로 넣어버리곤 하니, 정말로 이례적인 사실이 아닐 수 없지요.(이를테면, 사쿠라의 라이벌로서 <SNK vs CAPCOM> 등에서도 활약 중인 소녀 칸자키 카린은 바로 만화에서 먼저 나온 캐릭터입니다. 그 밖에 댄 히비키의 설정 등 많은 부분이 실제 게임에도 영향을 주었지요.)

 


[ 도발 전설이라는, 오직 도발 만은 위한 필살기로 패러티에만 치중하던 그가 만화에선 이렇게 멋진 내면을 보여준다. 물론 개그도 충분.^^ ]

 

  그의 작품에는 본래부터 매력적인 스트리트 파이터의 캐릭터들이 더욱 멋지게 그려지는데, 심지어는 개그 캐릭터로 패러디 전문에 지나지 않는 댄 히비키 조차 인간적인 깊이가 느껴질 정도이지요. 여기에 만년 악당 장기에프도 러시아의 영웅으로서 부끄러움 없는 만족감을 주니,  "영원한 구도자"인 류, 그의 라이벌 켄, 숙적인 사가트 등에 이르면 그 매력이 더해져서 정말로 감동을 느끼게 할 정도입니다.

 

  그의 작품에서는 특히 '류'라는 캐릭터의 매력이 멋지게 보여 지고 있는데(사쿠라를 주역으로 한 작품을 만든 것도 그 때문이 아닐까요?^^) 사가트와의 대결에서 살의의 파동에 빠졌던 것을 후회하지만, 결국 이를 극복하고 그 만의 권을 탄생시키는 모습은 진정으로 "영원한 구도자"라는 말이 어울리는 느낌... 그가 스파 시리즈의 주역인 이유를 느끼게 하지요.

 


[ 이렇게 주먹을 쥘 수가 있는 한... 격투가에게 진정한 패배란 없다.

  비록 손가락 하나에라도 투지가 남아 있지만... 격투가는 절대로 진정으로 패하지 않는 것이다. ]

 

  하지만, 류 혼자만이 멋지다면 뭔가 부족하겠지요. 그래서 그는 라이벌인 켄, 그리고 무엇보다도 류의 영원한 숙적 사가트에게도 영혼을 부여하고 있습니다.

 

  흔히 사가트라면 스파2에서 사천왕 중 하나였기 때문에 치사한 악당으로 묘사되는 경우가 많은데, "제왕"이라 불리며 "투신강림", "집념의 범" 등 다양한 불리는 그가 승리를 위해서 베가에게 빌붙는다는 설정은 솔직히 납득하기가 어렵지요.(전작의 보스이기도 하고 말입니다.)

 


[ 대만의 만화 같은 데선 '쌍가트'라는 이름으로 비열한 악당으로 나오기도 했던 그이지만, 이 작품에선 진정한 제왕이자 '류의 숙적'에 어울리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

 

  그런 점에서 나카하라씨의 작품에서는 켄에 못지 않게 그의 비중을 키워줌으로서 감동을 더해줍니다. "부하가 되면 사이코 파워를 주겠다"고 하는 베가에게 "나는 패했어도 제왕이다."라며 당당하게 이야기하는 그의 모습은 최고의 숙적이라는 분위기를 정말로 절실하게 전해 주고 있지요.

 

  심지어, "류 파이널"에서는 정작 스토리와는 관련 없는 듯한 사가트의 이야기(류에게 패배하고 마음에 상처를 입었지만, 극복해 나가는 이야기)를 통해서 그에게 생명을 불어 넣어주고 있습니다.

 

  이 부분은 사카트의 이야기인 만큼 그가 주인공이 아닌가 하는 착각을 일으키게도 하는데, 바로 이 장면의 대사를 소개해 보겠습니다.



"그래 난 두려워 했다. 상처 입는 걸, 패배하는 걸.

 이 소년이, 가슴의 상처가 가르쳐 주었다.

 내가 지켜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난 제왕 강해져야 한다.

 

 전신에 새겨진 상처들. 그것은 나와 싸운, 나를 고통스럽게 한 용기있는 자들이 남긴 것.

 내가 추락하면 내게 도전하는 자들도 추락할 것이다.

 

 용기있는 자여 내게 도전하라.

 내게 단 하나의 상처를 입혀도 난 널 진심으로 존경하리라.

 난 너의 눈 앞에 막아서 있는 벽이다."



 진정으로 제왕, 강자의 풍모를 충실하게 느끼게 하는 대사가 아닐까요?

 류라는 구도자가 그에게 도전했던 것. 그 밖에도 수많은 이들이 그에게 도전했던 것이 지극히 자연스럽게 느껴지게 해 주는 말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자신 만의 일격 필살, 그 자신이 추구하던 권을 얻은 류와 대결합니다.

 격투가로서 이상의 기술이라 할 수 있는 살의의 파동을 얻었지만, 그것을 버린 류의 대답을 듣기 위해서...

 


  <스파 제로>에서 붉은 두 사람, 켄, 그리고 가이와 대결하고, 격투가로서 베가를 쓰러뜨리는 이야기를 통해서, 그리고 사쿠라가 그를 동경하는 이야기를 통해, 마지막으로 그 자신이 스스로의 일격필살을 얻어 숙적과 다시 한번 마주하는 장면을 통해서 류라는 캐릭터는 생명을 얻고 격투 게임 사상 가장 매력적인, 영원한 구도자로서 자리잡게 되었지요.

 

  그리고, 아버지일지도 모르는 고우키와의 대결(이 역시 나카하라씨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애니메이션에서 정식으로 확정된 공식 설정입니다)로서 다음대로 이어지는 이야기...

 


[ 최후까지 무술가로서, 류에게 모든 것을 맡기고 스러지는 고우키 ]

 

 

  격투 게임 만화, 그리고 애니메이션을 많이 보았지만, 다음의 이야기를 보고 싶다고 기대하게 만드는 것은 솔직히 나카하라씨의 이들 작품 뿐이었습니다.

 

  그 안에는 겉 모습 뿐인 게임 캐릭터가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무술가와 라이벌, 숙적과 사악한 제왕이 존재하고 있으니까요.


  나카하라씨의 작품이 매력적인 것은 '게이머의 눈으로 캐릭터를 보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 스스로 게임의 팬이기도 하고, 실제로 캐릭터에 대한 그의 묘사에는 애정이 느껴지기도 합니다.


  게이머로서, 팬으로서 너무도 애착을 갖고 생각한 나머지, 원작자 이상으로 그 깊이를 체험하게 되는 것이지요.


  그리고, 그만큼 세계를 잘 알고 있기 때문인지 그는 게임에는 등장하지 않는 캐릭터를 당당하게 중요한 라이벌로, 적수로 등장시키곤 하지만, 그 점이 결코 어색하게 느껴지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원작자도 그의 설정을 당당하게, 그리고 즐거운 마음으로 '공식 설정'으로 도입하게 되는 것이지요.


  흔히 원작이 존재하는 작품이 있을때, 그 원작을 바탕으로 창조된 작품들은 원작의 100%를 살리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이른바 '팬'에 의해서 쓰여지기도 하는 그 작품들은 때때로 원작자도 생각하지 못한 가능성을 제시하고 보다 깊이 있는 감동을 전해주기도 합니다. 그리고 그 결과 원작을 더욱 더 폭넓고 깊이 있게 느끼게 해 주기도 하지요.

 

  나카하라씨의 작품은 바로 그런 점에서 충실한 가능성을 느끼게 합니다.

 

  단순히 작품으로서 완성도를 느끼게 해 주는 것 뿐만 아니라, 결국 그 깊이를 관철시켜 게임 제작자들이 채택하게 했다는 점에서 말입니다. (개인적으로도 나카하라씨가 창조한 '카린'이라는 캐릭터는 꽤 좋아하는 편이지요.^^)

 

  결국, 그것이 팬픽으로서 가능한 최고의 모습이 아닐까요? (물론, 이들 작품은 '상업지'로 발매되었지만, 어차피 '원작이 있는 작품의 만화'란 그 작품을 좋아해서 만드는 만큼, 그 발상이나 내용은 팬픽의 완성본 그 자체라고 해도 좋을 겁니다.)

 


[ 마스터즈 재벌보다 막대한 재산을 가진(심지어 베가의 샤들의 기지를 날려 버릴만한 위성포를 소유한) 칸자키 재벌의 아가씨, 칸자키 카린. 사쿠라의 라이벌로서 단순한 부잣집 아가씨 이상의 포스(?)를 갖고 있다. ]

 

 

추신) 나카하라씨의 작품 정도는 아니지만, 나름대로 괜찮게 생각하는 작품들은 있습니다.


  가령 "권아", "지저스" 등의 작가인 후지하라 요시히데씨의 "버추어 파이터". "권아"에서 팔극권의 이야기를 멋지게 펼쳐주었기 때문인지, 팔극권사 아키라의 캐릭터를 꽤 괜찮게 연출해 주었지요.(개그 컷도 괜찮은 편이었고...^^) 국내에는 해적판으로만 나왔습니다.

(국내에는 나오지 않았지만) 아스카 카스카베씨의 "럼블 로즈". 원작에 비해 스토리의 완성도가 높은 느낌이 드는건 혼자 만의 생각? (물론 원작 자체가 스토리가 엉망이지만...^^;;)


  몬도 케이씨의 "아랑전설 스페셜". 기스 하워드와 볼프강 크라우저라는 두 보스가 동시에 등장하는 복잡한 이야기를 꽤 잘 풀었는데, 왠지 김갑환보다 그의 아내가 더 활약하는 느낌이 드는건? ^^ 해적판 말고 정식으로 번역되어 나오기도 했지요.


  그리고 다케바야시 타케시씨의 투신전. 무난하게 볼 만한 작품이었던 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로 투신전은 2편짜리 애니메이션을 더 좋게 보았지만...)


  한편 애니메이션에서는... 별로 눈에 띄는게 없군요. "투신전" 외에 "킹 오브 파이터즈", "스트리트 파이터 알파(고우키의 이야기)" 정도? 최근에는 "스트리트 파이터 4" 게임에 동봉된 단편 애니메이션들이 꽤 괜찮은 느낌을 주었습니다만.


  "용호의 권"은 영 아니었고, "스트리트 파이터 TV"판은 마음에 안 들고(TV판 "버추어 파이터"는 그나마 나은 편이지만) "뱀파이어 헌터"는 적당히 분위기를 살린 것 같고... "아랑전설"은 나름대로 괜찮은 듯 하지만 테리 보가드가 팔을 휘저으며 선풍권을 쓰는 시점에서 탈락... 뭐 그런 것 같습니다.


  여하튼 괜찮다고 하는 것도 정말 손꼽는군요. 하긴 그런 건 격투 게임 만이 아니지만 말입니다...

 

추신) 일반 게임 애니메이션의 수작으로 생각하는 건 "트윈비 파라다이스". 라디오 드라마로 더 널리 알려진 작품이지만, 몇 편의 애니메이션에서 그들의 매력을 충실하게 보여주었지요.



추신2) 나카하라씨의 설정이 게임에 반영된 것을 좀 더 구체적으로 기술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그 밖에도 영향을 많이 주었지만, 명확하게 구분하면 다음과 같은 것이지요.)

 

1. 댄 히비키와 블랑카(지미)가 친구 사이

  <스트리트 파이터 제로>의 후일담에서 격투 중 떨어진 댄이 블랑카에게 구출되어 친구가 됩니다. 이후 게임에서 블랑카와 댄으로 진행할 때 관련된 이야기가 나옵니다.

 

2. 댄 히비키가 하루비노 사쿠라의 스승

  <힘내라 사쿠라>에서 공식적으로 설정되고 이후 게임에도 반영되었습니다. 하지만, 댄 히비키의 인기가 낮아선지 동인지나 4컷 만화 등에서 이를 부정하는 내용도 많습니다.

 

3. 칸자키 카린

  <힘내라 사쿠라>에서 등장한 나카하라씨의 오리지날 캐릭터. <스파 제로 3>에 출연했고, 이후 <SNK VS CAPCOM>이나 사쿠라 관련 스토리에서 종종 등장합니다. 댄 히비키는 그녀의 사부(?)이기도 하지요.

 

4. 겐류사이 마키

  파이널 파이트 2의 주인공으로 캡콤 캐릭터 중엔 상당히 마이너한(사실상 잊혀진) 캐릭터지만, <힘내라 사쿠라>에서 등장한 이래 지명도가 상승하여 <SNK VS CAPCOM>, <스파 제로3> 등에 등장하게 되었습니다.

 

5. 류와 고우키의 관계

  <류 파이널>에서 류와 고우키가 부자 관계일 가능성이 제시되었고 이후 게임에 반영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