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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협 이야기

닌자(忍者)의 원류... 진실과 거짓?

  정지훈(비) 주연의 영화 <닌자 어쌔신(ninja assassin)>은 서양에서 잘 알려진 암살자의 대명사 2개를 합친 기묘한 제목을 갖고 있습니다. 이를테면 '장군 제네럴'이나 '킬러 암살자' 같은 느낌일까요? 이런 기묘한 제목은 조금 황당하지만, '닌자'가 앞에 나온다는 점에서 그 존재의 유명세를 느끼게 하기엔 충분합니다.


  아래에 쿠노이치 이야기에 이어 이번에는 닌자에 대한 이야기를 해 보겠습니다.


[ 닌자 + 아사신. 암살자로 유명한 두 가지를 더한 이름 자체가 조금 황당하지 않나? (닌자 어쌔신 / 워너 브라더즈) ]

 

  닌자라는 존재가 서양에 처음 알려진 것은 역시 일본의 여러 영상물에 힘입은 바가 큽니다. 구로사와 아키라의 영화 같은데서 사무라이가 등장하고 닌자가 이를 뒷받침하는 장면은 매우 흔했고, 검은 옷으로 몸 전체를 가리고 어둠을 틈타 활약하는 그들의 모습은 '동양의 신비'를 기대했던 서양인(특히 미국인)들의 기대를 충족시키기에 충분했던 것이지요.

 

  '닌자가 돈이 된다.'라고 깨달은 일본에서는 국내에서만이 아니라 국외에서도 먹혀들만한 닌자물을 만들어내었고, 이들에 빠져 버린 미국에서는 그들 자신의 작품에서 닌자를 도입하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나온 것이...


[ 10대 돌연변이 닌자 거북이... 만화, 애니메이션으로 알려졌지만 영화도 있다. (미라지 스튜디오) ]

 

이런 애들이나...

 

[ 블록버스터 영화로 공개된 GI 죠에는 희고 검 두 닌자가 등장한다. (하스브로) ]

 

이런 애들입니다.

 

  거북이 닌자에 기관총을 들고 쏘는 닌자... 뭔가 특이한 느낌이지요?

 

  게다가, 닌자라는 요소는 -닌자 그 자체가 등장하지 않더라도- 여러 작품에 영향을 주는데, 근래에 나온 <배트맨 비긴즈>에서 연출된 '배트맨의 탄생편' 같은 것에서 바로 이런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 처음에는 조로 같은 캐릭터였던 배트맨... 하지만, 점차 '닌자의 모습'에 가깝게 바뀌어갔다.  (워너 브라더즈 ) ]

 

  심지어 박쥐를 이용한 은신술까지 사용하니 말입니다.^^

 

  어찌되었든, 이러한 사례를 보아도 닌자라는 존재는 세계 전역에 널리 알려져 자연스럽게 정착된 느낌이 듭니다. 심지어는 외계인 이야기가 나오는 작품에서조차

 

[ 외계인 닌자 도로로. 원래는 아사신이었다는 설정만 보면 '닌자 아사신'의 주역급이지만, 어릴 때의 트라우마로 '블루~~~'해 지는게 약점. (개구리 하사 케로로/선라이즈) ]

 

  이런 닌자가 등장하니 말입니다.

 

 

  하지만 닌자라는 존재가 상품화되다보니 그 본래의 모습이 어떤 것이었는지는 잊혀진 듯 합니다.

  닌자의 모습이라는 것이 실제로는 이렇지 않다는 것을 말이지요.

 

 

  우선, '닌자(忍者)'라는 말은 사용된 일이 없습니다. 그 밖에 널리 알려진 시노비(忍び) 같은 단어 역시 존재하지 않았고 이들은 모두 후일 소설이나 만화에서 창작된 것이지요. (아래 포스팅에서 이야기했지만, 여자 닌자를 부르는 쿠노이치(くノ一 ->  이글자를 합치면 계집 녀(女)자가 됩니다.)라는 말도 <바실리스크~코가인법첩~>, <와이쥬엠~야규인법첩~> 등의 작품을 비롯해 다양한 닌자물로 유명한 야마다 후타로(山田風太郎)씨의 창작입니다.)


  그 전에는 이른바 '둔갑술'이라고 하는 인술(忍術)이라는 것을 사용한다고 해서 인술사(忍術使い)라고 부르는 게 일반적이었다고 하나, 이 역시 작가의 창작일 뿐, 실제로는 둔갑술이나 인술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닌자라고 부르는 것의 원류는 지역이나 상황에 따라 이런저런 이름으로 불리곤 했습니다.

  대표적인 것을 들면 '랍파(乱破)', '톳파(突破)', '쿠사(草)' 등등. (우리말로 하자면 '수행자', '떠돌이' 정도로 번역할 수 있을까요?)

  어찌되었든 당초 닌자들은 한곳에 머무르지 않고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는 떠돌이 승려나 장사꾼, 또는 무녀 같은 방랑자들, 혹은 사냥을 하느라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그 지방의 풍습이나 지형에 익숙한 사냥꾼들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이가(伊家)나 코가(甲家) 같은 것은 이러한 이들이 모여서 정착한 마을을 가리키는 것이었지요.)


  일반적으로 닌자라면 얼굴을 가리는 검은 옷을 입고 성에 몰래 잠입해서 지붕 위에서 밀담을 훔쳐 듣거나 상대를 암살하는 모습을 떠올리기 쉽지만 몇몇 입구를 빼면 완전히 밀폐된 일본식 성에 잠입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고, 대개는 거리를 돌아다니며(때로는 병사나 하인 등으로 위장하고 잠입해서) 소문을 수집하거나 반대로 소문을 퍼트리는 것이 주 임무였습니다. (후일 ‘인술’이라 불리는 것도 이렇게 눈에 띄지 않는 모습으로 변장하는 기술들을 말하는 것으로 불을 내뿜거나(화둔술) 물을 조종하는(수둔술) 등의 기술은 역시 창작입니다.)


[ 어둠은 고사하고, 먼 곳에서도 눈에 띄는 스톰 섀도우. 너 닌자 맞냐? (파라마운트 영화사) ]

 

  혼란스럽고 변화무쌍한 전국(戰國)시대. 각지에는 많은 '임시직'이 존재했는데, 이런 임시직은 급료는 높을지 몰라도 위험하고 귀찮다는 점에서 토박이들은 꺼리곤 했습니다. 그래서 의외로 많은 떠돌이들이 이런 일에 종사하곤 했고 그 중 상당 수가 첩자였던 것이지요. (전국 시대에는 신분증이라 할만한 것도 제대로 없었고, 떠돌이들이 워낙 많아서 일일이 조사하기도 힘들었습니다.)

 

  물론 떠돌이들이다 보니 호신용으로 무술을 배우거나 익히고 사용하는 사례도 많았지만, 어릴 때부터 전문적으로 싸움을 익히는 무사들과는 달리 그냥 될 대로 되라는 식의 실전 격투기가 중심이었던 모양입니다. (사무라이들이 주로 쓰는 대도 같은 것은 매우 비싸기 때문에 실제로 그들이 소지한 무기는 투박한 칼이나 몽둥이가 대부분이었습니다. 물론 가장 싸게 먹히는 맨손 무술을 이용하는 사례가 많아서 현재의 ‘고무술’이라는 것은 이들이 사용하던 기술에서 영향을 받은 것이 많습니다.)

 

  이들에게 복장은 따로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앞서 이야기했듯 사냥꾼이나 떠돌이 승려, 장사꾼 출신이니 그런 직업에 어울리는 복장이 대부분이었지요. 특히 검은색의 옷은 매우 비싼데다 밤에는 -우리 생각과는 달리- 도리어 잘 드러나기 때문에 그냥 칙칙한 가죽옷을 입곤했지요. 물론, 때로는 진흙이나 재, 심지어는 변(X) 등을 묻혀서 위장하기도 했는데, 이런 위장이 바로 인술, 또는 둔갑술의 원조라고 볼 수 있습니다.

 

  물론 떠돌이 무녀나 예능인으로 활동한 여성들이 있었고, 이들의 복장은 조금은 나았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우리가 게임이나 영화에서 흔히 보는 붉은 색이나 분홍빛 화려한 복장은 아니었습니다. 이런 것은 무진장 비싸고 관리도 힘드니까요.

 

  실례로 전국 시대 당대의 가장 유명한 여성 예능인(그리고 첩자로서도 활약한 것으로 여겨지는)인 이즈모노 오쿠니(出雲阿国)의 초상은 이러했습니다.

 

[ 카부키의 창시자이자, 창기이기도 했던 이즈모노 오쿠니. 생각보다 옷차림은 수수했다. ]

 

  옷 여기저기에 붉은 색의 치장은 있지만, 그녀의 옷은 전반적으로 검은색과 흰색의 칙칙한 복장이었던 것이지요.  그나마 신사에 속한 '유명한 예능인'인 그녀가 그 정도였으니 일반적인 떠돌이 예능인의 복장에서 오늘날의 카부키 느낌을 찾는 건 불가능했을 겁니다.


[ 울긋불긋한 가부키의 무대. 이는 극장 문화가 정착된 후대에서나 가능하게 되었다. ]

 

  후일 여자 닌자의 원류가 되는 떠돌이 무녀들도 수수한 복장이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우리는 흔히 '무녀'라고 하면

 

[ 일반적으로 상상하는 무녀 모습 ( 클램프 ) ]


  이런 모습을 떠올리기 쉽지만, 색깔은 둘째치고 이렇게 치렁치렁한 복장으로 먼 길을 간다는 것 자체가 무리지요. (아니, 신사에서 일하는 것조차 쉽지 않을 겁니다.)

 

[ 교토 헤이안 신궁에서 촬영한 무녀... 장식도 없고 머리도 단정하게 묶어서 일하기 편한 느낌. 무녀 매니아 입장에선 로망은 없을지도? ^^ ]

 

  당시는 전국 시대... 천 값도 비쌌고(더군다나 부드럽게 휘날리는 비단은 무진장 비쌌고) 염료는 더더욱 비쌌다는 것을 생각해 본다면 저런 복장이 얼마나 낭비인지를 느낄 수 있을 겁니다.

 

  그 당시 사람들은 주로 튼튼한 삼베옷을 입었고, 떠돌이 무녀들 역시 그랬습니다.



  이런 옷 말이지요. 하얀 것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글쎄요...?

 

[ SNK 게임의 히로인 시라누이 마이. 닌자라면서 저런 눈에 띄는 복장은 도대체 뭐냐? ( 아랑전설 / SNK ) ]


  당연히 게임이나 영화라면 모를까. 이처럼 화려한 차림의 여자 닌자는 존재할 수 없었습니다. (설사 돈이 많았다고 해도 이처럼 눈에 띄는 복장을 하는 것은 '밀정'으로서 부적절한 행동이지요.)

 

  봉건 영주(다이묘)들이 경쟁하던 전국 시대, 특히 전국 시대 말기에는 닌자들의 수요가 많았기 때문에 이가니 코가니 하는 집단들이 등장하게 됩니다. 정말로 이렇게 불리었는지 어땠는지는 알기 어렵지만(이들의 특성상 상당 수의 기록이 나중에 창작되거나 소문이 부풀려진 게 많았기 때문) 이른바 전문적인 집단이 탄생하게 된 것이지요.


  주로 부업으로 ‘닌자업’을 하던 사냥꾼 집단(산인 山人)이 이를 본업으로 삼아서 활동하기 시작하고, 대대로 이런 상황이 이어지면서 전국 각지에 다양한 닌자 집단이 탄생합니다.

(전문적인 집단이라 하나, 그 결속력은 대단했다고 보기 힘듭니다. 어차피 떠돌이들의 집합체... 극소수의 핵심 인원을 제외하면 언제라도 갈아치울 수 있는 존재였으니까요. (<나루토> 같은 작품에서 나오는 상급닌자(上忍)라는 것이 이들이지만, 역시 상급닌자(上忍)라는 말조차 후세의 창작입니다.)


  그래서 닌자 집단에서 활동하다 도망치는 건 드문 일이 아니었습니다. 근처에서 잡히면 본보기로 혼내는 일은 있었을지 몰라도 영화나 만화에서처럼 끈질기게 따라가서 처단하는 일은 없었습니다. (무엇보다도 닌자 집단은 그런 추적자들을 동원할 정도로-아무 일도 없이 배신자 한명을 쫓는다는 이유만으로 공짜밥을 먹여줄 정도로- 돈이 많은 이들이 아니었거든요.)

  닌자에게는 감추어야 할 비밀 같은 건 없었고(설사 비밀-이를테면 다이묘와의 계약-이 있다고 해도 핵심 간부만 알고 있었으니) 그들을 추적해서 죽여야 할만한 이유는 전무했습니다.)

 

  그 중 일부는 비정규군으로 군대와 함께 행동하면서 적진에 잠입하여 기밀을 캐내거나 암살, 방화 등의 일을 맡아 활약하게 되는데, 이들이 야사를 통해, 그리고 소문으로 변질되면서 우리가 흔히 접하는 ‘인술을 사용하는 닌자’라는 존재가 만들어진 것이지요.

 

  다만 이들 역시 주 활동은 첩보라는 점에서 기존의 닌자와 큰 차이는 없습니다. 주특기는 역시 둔갑(변장) 같이 상대를 속이는 기술들이 대부분이었고, 그 주 목적은 역시 적진에 몰래 잠입해서 정보를 탈취하거나 방화 등으로 혼란시키고 도망치는 것에 중점을 두었지요.


  “적과 마주치면 속이고 도망친다.” 그것이 닌자들의 기본 원칙이었고, 싸움 기술은 어디까지나 이를 돕기 위한 수단에 불과했습니다.

 

  하지만 그래서는 너무 수수합니다. 아니, 무엇보다도 이런 존재는 일본에만 있었던게 아닌 만큼 희귀성도 떨어지지요. 전세계 어디고 밀정이라는 존재, 또는 조직는 반드시 존재했지요. 판타지 세계에서도 '도적 길드'라는 이름으로 밀정 역할을 맡는 조직들이 나올 정도니까요. 실제로 봉건 시대만이 아니라 왕정시대에도 도둑과 계약을 맺고 첩자 등으로 쓰는 일은 드문 일이 아니었다고 합니다.

 

[ 판타지에 흔히 나오는 도적들. 바로 이들이 닌자의 진정한 모습이라 해도 좋다. ( 시프 3 / 에이도스 ) ]


  일본에서 유독 이런 이들의 활약이 많았던 것은 전국 시대라고 불리는 봉건 시대가 매우 길게 지속되었기 때문이며, 후일 이를 문화 상품으로 만들었기에 유명해진 것이지요.


  앞서 소개했던 야마다 후타로 같은 닌자물 전문 작가들이 없었다면 우리는 아직도 닌자라는 존재를 조연으로만 느끼게 될 것입니다. 이런 작가들이 화려한 인술을 쓰는 닌자들(이를테면, 역사에는 결코 존재하지 않았던 쿠노이치 같은 존재)을 등장시키고 이후 다양한 작품에서 이들을 답습하면서 현재와 같은 ‘닌자’의 모습이 만들어진 것이지요.


  그렇다면, <닌자 어쌔신>에 나오는 듯한 닌자라는 존재는 무의미한 것일까요?

  그렇다곤 할 수 없습니다. 닌자의 원류가 어떻든, 그 본모습이 어떻든 사람들은 그런 것을 닌자라고 생각하고 있으니까요. 무엇이든 치장하기에 따라서 상품화할 수 있다는 전형적인 사례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를 위해선 '처음'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이제와서 우리나라에서 활약한 밀정들을 화려하게 치장해 봐야 '한국풍 닌자' 밖에는 안 될테니...


  그러니 반대로 닌자의 본 모습, 밀정의 본 모습을 이용해서 무언가를 창작하는 것도 한가지 방법이 되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비록, 그런 밀정으로는 <닌자 어쌔신>같은 작품은 만들수 없겠지만...

 

 

추신) <나루토> 같은 작품에서는 의사니 뭐니 하는 이들까지 닌자로서 등장하는데, 사실은 그쪽이 닌자의 본래 모습에 가까울지도 모릅니다.

  각 지역을 돌아다니거나 산에서 생활하다 보니 약초 등에도 해박한 지식을 갖게 되기에 실제로 많은 닌자들이 떠돌이 약장수로 위장하곤 했으니까요.

  전국 시대에는 떠돌이 무녀나 승려, 약장수 등 정처 없이 돌아다니는 이들 중 상당 수가 본업이건 부업이건 첩보 활동에 참여하는 게 보통이었다고 하고, 그 역시 닌자의 원류인 것이지요. (물론 그 중에는 원숭이 같은 동물을 조련해서 보여주거나 인형 놀이 같은 구경거리로 돈을 버는 떠돌이 예능인도 많았습니다. 앞서 소개한 오쿠니도 그런 떠돌이 예능인 중 하나였지요.)


[ 나루토의 히로인(?) 사쿠라. 수수한 차림에 의술을 알고 격투술을 사용하는 그녀야 말로 진정한 여자 닌자의 모습일지도? ( 애니맥스 / TV 도쿄 ) ]


쿠노이치에 대해서는 아래의 포스팅을 참고해 주세요.


(* 네이버 블로그에서 옮겨온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