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 말 프랑스에 뤼미에르라는 성을 가진 형제가 있었습니다. 사진 회사를 운영하는 아버지를 따라서 기술을 익힌 그들은 사진 인화 기술을 개량하여 다채로운 발명을 하였는데, 나중엔 필름 카메라를 이용하여 연속적으로 사진을 찍는 기술을 창조하였고 이를 프로젝터와 연결하여 시네마토그라프라는 발명품을 완성합니다.
그들은 공장을 나서는 노동자들이나 열차가 도착하는 장면 등을 촬영하여 카페에서 상영하였습니다. 난생처음 ‘영화’를 본 사람들은 자신들을 향해 다가오는 열차를 보고 소리를 지르며 달아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뤼미에르 형제는 영화의 가능성을 믿지 않았습니다. 그들보다 앞서 소리를 저장하는 장치(축음기)를 발명한 에디슨이 단지 녹음이라는 용도밖에 생각하지 못했듯, 뤼미에르 형제는 영화를 단순히 영상을 저장하는 장치로만 생각했던 것입니다. 결국, 형제는 2년 뒤 영화에서 손을 떼고 사진 연구에만 몰두하였습니다.
그러나 뤼미에르 형제가 촬영한 ‘영상’은 한 사람을 매료하여 운명을 바꾸어 놓았습니다.
성공한 마술사로서 관객을 사로잡는 솜씨를 가진 조르주 멜리에스는 우연히 들렀던 카페에서 활동사진을 보고 그것이 단순히 영상을 저장했다가 보여주는 것 이상의 가능성을 갖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는 즉석에서 뤼미에르 형제에게 카메라를 팔 것을 제안했지만. 형제는 이를 거절합니다. 포기할 수 없었던 멜리에스는 런던까지 가서 또 다른 발명가였던 로버트 W. 폴의 영사기와 필름을 사오게 되지요. 그는 이 필름을 자신이 소유하고 있던 로베르트 우댕(Robert-Houdin) 극장에서 상영하였고 자신의 영감을 확신했습니다. 수많은 시행착오 끝에 멜리에스는 자신이 촬영한 영화를 선보였으며 영화사를 설립하기에 이릅니다.
기술자였던 뤼미에르 형제가 ‘기록’으로서의 다큐멘터리 제작에 관심을 뒀던 것과 달리, 마술사였던 멜리에스는 영화를 통해 마술 같은 경이를 보여주고자 했으며 다채로운 마술 기법을 동원하여 영상을 꾸며내었습니다. 그러던 중 한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촬영 중 카메라가 멈추고 만 것이죠. 당장은 카메라를 수리해서 촬영을 마쳤지만, 나중에 필름을 살펴본 멜리에스는 깜짝 놀랐습니다. 필름에 찍힌 합승마차가 한순간에 영구차로 바뀌고, 여자가 남자로 바뀐 것이죠.
바로 그 순간이었습니다. 멜리에스의 영화적 상상력이 질주하기 시작한 것은. 그로부터 1913년까지 멜리에스는 500편에 이르는 영화를 촬영하였고 엄청난 호평을 거둡니다. 그의 작품 중엔 세계인의 마음에 ‘달’을 향한 꿈을 키워주었던 “달 세계 여행”도 있었지요. 일상의 이야기로부터 환상의 모험, 바다 속에서부터 우주에 이르기까지 멜리에스의 상상력은 그칠 줄을 몰랐습니다. 사람들은 그의 영화를 보며 감탄하며 환성을 질렀으며, 즐거워하고 슬퍼했습니다. 그야말로 ‘경이로운 순간’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의 성공은 계속 이어지지 못했습니다. 1911년에 이르러 여러 작품이 실패하면서 그는 재정적인 위기에 몰렸고 전쟁과 더불어 잊혀지고 말았습니다.
‘휴고’의 이야기는 그로부터 한참이 지난 1920년대 말에서 시작됩니다. 제1차 세계 대전이 끝나고도 10년이 넘게 지난 1929년의 파리 시가지. 수많은 열차가 오가는 몽파르나스 역에 한 소년이 있었습니다.
아버지를 여의고 시계 관리자인 삼촌을 따라 역에서 살게 된 소년은 술에 취해 자리를 비우기 일쑤인 삼촌을 대신하여 역의 수많은 시계를 관리하고 있습니다. 역에 있는 수많은 시계의 움직임은 소년의 손길 하나에 달렸지만, 그 누구도 이를 알지 못하고 그 누구도 이를 신경 쓰지 않습니다. 단지 이따금 시계가 잘 작동하고 있다는 것만 살펴볼 뿐이지요.
소년에게는 한 가지 꿈이 있는데, 그것은 시계수리공이자 박물관의 큐레이터이기도 했던 아버지가 찾아낸 자동인형(오토마타)을 수리하는 것입니다. 수많은 톱니와 태엽으로 만들어진 자동인형은 녹이 슬고 부품이 망가져 움직이지 않지만, 소년은 그 자동인형에 아버지의 메시지가 남겨 있으리라 생각하며 수리를 위해 노력합니다.
거의 모든 시간을 역에서 보내는 소년에게 있어 수리를 위한 부품을 얻을 수 있는 것은 역의 한구석에서 사탕과 장난감을 파는 구멍가게뿐. 이곳에서 몰래 태엽 장난감을 훔쳐 부품을 조달하던 소년은 결국 가게 주인 할아버지에게 잡히고 아버지가 남긴 자동인형에 대한 공책을 빼앗기고 맙니다. 그런데 공책을 본 가게 주인은 굉장히 분노하며 이를 태워버리겠다고 하지요. 공책을 잃을 수 없었던 소년은 주인을 쫓아 역을 빠져나가 그의 집 앞까지 가지만 결국 쓸쓸히 돌아오고 맙니다. 그날 이후 소년은 공책을 되찾고자 장난감 가게에서 일하며 가게 주인의 손녀딸과 친해지게 됩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녀가 자동인형의 열쇠를 갖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지요. 그리고 둘 앞에서 마술처럼 작동한 자동인형은 한 장의 단서를 던져줍니다.
소년의 아버지가 맨 처음 보았다던 영화의 장면과 장난감 가게 주인인 조르주 멜리에스의 이름이 담긴 메시지를….
이렇게 ‘휴고’의 이야기는 한 소년을 통해 영화의 마술사 조르주 멜리에스의 이야기를 펼쳐나갑니다. 영화의 내용은 허구와 사실이 수없이 뒤섞여 있지만, 그 어느 것이 사실이고 그 어느 것이 거짓인지는 전혀 생각할 필요가 없습니다. 몽파르나스 역의 일상과 함께 펼쳐지는 이야기는 그야말로 모든 것이 진실이라고 생각하게 할만한 설득력을 갖고 있으니까요.
아바타의 제임스 카메론 감독이 “현존하는 최고의 3D영화”라고 극찬한 영상은 우리를 1929년의 파리로 이끌어 이들의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체험하게 해 줍니다. 그리고 처음 영화가 탄생한 그 순간 달려오는 기차에 비명을 지르며 도망쳤던 그들처럼 영화가 주는 경이를 만끽하게 해 줍니다.
매우 자연스럽게 다가오는 입체 영상은 경이로움(Wonder)으로 가득(Full)합니다. 그야말로 놀랍다(Wonderful)는 감탄사가 어울리는 동시에 이야기에 자연스럽게 몰입하게 해 줍니다.
한 소년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이야기는 지극히 평범하면서도 독특합니다. 우리는 소년의 눈을 통해 몽파르나스 역의 일상을 바라보고 체험하게 됩니다. 이를 통해 늘 겪는 일상 속에 무수한 드라마와 경이가 가득 넘친다는 것을, 영화라는 것이 이 중에서도 가장 흥미로운 드라마를 뽑아내어 경이로운 마술로 승화해 준다는 것을 깨닫게 되지요.
1929년의 짧은 일상 속에서 다채로운 드라마를 엮어내는 ‘휴고’는 처음 영화를 보았을 때의 감동과 경이를 다시 떠올리게 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영화를 왜 보고 좋아할 수밖에 없는지를 깨닫게 해 줍니다. 그리고 외치게 하지요. “영화 잘 봤다.”라고.
‘휴고’는 반드시 영화관에 가서 보아야 할 작품입니다. 영화에 대한 찬사를 담고 있기 때문이기도, 무엇보다도 ‘자막만 3D’인 여느 영화와 달리 3D로 만들어져야만 했고 3D로 봐야만 하는 영화이기 때문입니다. (‘휴고’를 보고 진한 감동이 채 사라지기도 전에 앞으로 나올 블루레이에 대비하여 3D 안경의 가격을 알아보고 있었을 정도입니다.)
이제까지 보았던 어떤 3D 영화도 ‘휴고’에 비할 수 없으며 앞으로 나올 3D 영화 중에서도 ‘휴고’와 비할만한 작품을 찾기 어려우리라 감히 장담합니다.
그만큼 ‘휴고’의 이야기는 –멜리에스의 제작 환경이 그러했듯- 3D의 영상에 가장 어울리고 3D이기에 더욱 자연스럽게 다가옵니다. 그러니 당연히 극장에 가서 보는 것이 좋은 것이지요.
안타깝게도 ‘휴고’는 개봉한 지 1주일밖에 되지 않은 지금 이 순간에도 볼 수 있는 곳이 많지 않습니다.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저도 밤 11시 50분에 시작하는(광고를 생각하면 12시 넘어서 시작한) 극장에서 보고 왔으니까요.
그런 만큼 서둘러 영화관을 찾으시길 권합니다. 영화가 진행되고 막을 내리는 그 순간까지 그 결정을 절대 후회하지 않을 것입니다.
여담) 영화를 보신 분들을 위해 조르주 멜리에스의 실제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영화를 보지 않으신 분은 영화의 감동을 위하여 나중에 읽으시는 것을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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