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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 이야기

SF와 과학, 그리고 상상력

  한국 최초의 창작 SF로 알려진 작품 중에 'K 박사의 연구'라는 소설이 있습니다.


  이 작품은 '감자', '배따라기' 등으로 알려진 김동인씨의 작품으로 대체 식량을 연구하는 K박사라는 인물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하고 있지요.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김동인씨는 과학자가 아니며, 과학을 잘 아는 사람도 아닙니다. "K 박사의 연구"에는 무언가 새로운 이론이 나오는 것도, 그리고 무언가 대단한 설정이 나오는 것도 아닙니다. 어찌보면 누구나 쉽게 생각할 수 있는 내용이죠.


  K 박사라는 사람은 대체 식량을 연구하고 있습니다. 앞으로의 식량난에 대비하기 위해서 말이지요. 그런데 그 식량의 재료가 무엇인가 하면 바로... '똥(인분)' 입니다.


  이야기는 주인공이 K 박사의 조수인 친구로부터 사건의 전말을 듣는 식으로 진행됩니다. K 박사는 대체 식량을 연구해 만들었고, 시식회를 했습니다. 물론 재료가 뭔지는 알리지 않았죠.


  사람들은 나름대로 만족하며 먹었습니다. 그리고 K 박사가 재료를 밝히죠...........



  과연 그 결과가 어떻게 되었을까? 결과는 처음에 소개됩니다.


"자네 요즘 뭐하나?"

"놀지."

"놀아? 연구는 어쩌고?"

"아, 이 사람아. 똥을 누가 먹어?"

"똥?"

"그러는거보니 자네는 시식회에 대해 모르는 모양이구만, 내 이야기해줌세."


  네... 주인공의 친구(K박사의 조수)는 놀고 있습니다. 백수죠. 조수가 백수가 될 수 밖에 없었던 상황... 뭐 대충 상상이 가시겠지요.



  김동인씨의 작품에서는 어떠한 과학적인 지식도 나오지 않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이건 '똥으로 대체 식량을 만드는 법'을 소개하는 소설이 아니거든요. 어디까지나, '똥으로 대체 식량을 만들면 어떻게 될까?'라는 상상을 바탕으로 한 소설입니다.


  이를 위해 김동인씨가 똥에 대해 연구할 필요도, 대체 식량에 대해 연구할 필요도 없었습니다. 유전 공학이고 뭐고 필요없이, 단지 상상을 하고 그걸 생각으로 옮기면 되었죠.



  그런데 그로부터 한참이 지나.... 그것이 현실이 되었습니다.





  일본의 한 과학자가 정말로 똥으로 고기를 만든거죠. 이름하여 SHIT BURGER....


  이 박사는 얘기했습니다.


  "인분 고기는 친환경적인 식품으로 사람들의 인식이 바뀌었으면 좋겠다."


  바뀌나요? 정말?


  이에 대해 "인분 고기를 한번이라도 먹어보고 싶은 사람"을 설문조사했더니 결과는 당연히....



  이 박사분은 똥으로 고기를 만들만한 과학 지식과 능력을 갖고 있었지만, 이 똥으로 만든 고기를 사람들이 받아들이지 않을거라는 상상력은 겸비하지 못하신 겁니다. 조금만 상상력이 있어도 인분 고기를 사람들이 받아들이지 않을테니 정말로 받아들이게 하고 싶다면 뭔가 다른 방법을 써야 한다는 생각을 했을 겁니다. 가령 애완동물용 사료로 만든다거나....


  그야말로 과학과 과학적 상상력이 일치하지 않는다는 것을 잘 보여주는 사례죠.



  SF라는 것이 'SCIENCE FICTION'이라고 해서(Speculative Fiction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만) 과학에 초점을 맞추는 사례가 많지만, 영어의 문법으로 생각해도 중요한 것은 Science가 아니라 Fiction임을 알 수 있습니다. 즉, 상상을 통해서 하는 과학이 아니라, 과학적인 상상력이라는 거죠.


  과학적인 지식은 물론 SF를 만드는데 도움이 됩니다. 예를 들어 "쥐라기 공원"은 약간의 유전 공학 지식과 호박이라는 보석이 송진에 의해 만들어지며 그 안에 모기 같은 곤충이 묻히기도 한다는 지식, 여기에 양서류 중에는 암수가 바뀌기도 한다는 지식, 미엘린이라는 단백질에 대한 지식 등 여러가지 지식을 결합해서 만들어낸 이야기입니다. (카오스 이론이라던가 이것저것 더 추가된 것도 있습니다.)





  과학적으로 말이 안 되는 이야기(예를 들어 모기의 몸에 들어간 공룡의 혈액이 수천만년동안 그대로 존재할 수는 없습니다.)이지만, 많은 이는 그것을 그럴듯한 이야기라고 생각합니다.(개인적으로 쥐라기 공원은 이야기 전개가 조금 마음에 안 들지만, 그럼에도 꽤 재미있고 흥미롭게 본 것은 사실입니다. SF로서도 충분히 손색 없는 이야기라고 생각하고요.)


  중요한 건 공룡을 정말로 만들 수 있는가 아닌가가 아닙니다. 공룡이 만들어진다면 어떤 이야기가 펼쳐질까 하는데 있습니다.



  이를 위해서 뭔가 최신의 과학 지식이 필요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단지 이들을 적당히 연결하고 상상력을 넣는 것으로 충분했던 것이지요.



  K 박사의 연구는 90년 정도 지난 지금보아도 꽤 재미있는 이야기입니다. 비록 그것이 최신의 과학적 지식과 기술을 담고 있지 않더라도 말이지요. 여기에는 김동인씨의 '이야기를 풀어내는 상상력'이 담겨 있기 때문에...


  그리고 그것이야 말로 SF를 만드는데 가장 중요한 점이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