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과 우주 이야기 2012.08.06 12:35

  오늘 2시경 화성 과학실험장치 큐리오시티 로버가 화성에 내려앉을 예정입니다. 작년 11월 27일에 지구를 떠나 장장 8달 이상의 여정을 거쳐 화성에 도착하는 큐리오시티는 이제까지 화성에 도착했던 무수한 탐사선 중에서도 가장 진보한 존재로서, 화성의 사진이나 표면의 조사에 그치지 않고 화성의 땅을 파고 지면 아래의 조사를 할 수 있는 놀라운 능력을 자랑합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화성의 위를 주행하면서 수많은 정보를 보내고 있는 오버튜니티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충실한 기능을 갖고 있으며, 그만큼 화성의 비밀을 더욱 많이 밝혀낼 수 있으리라 기대되지요. ‘큐리오시티(Curiosity – 호기심)’이라는 이름 그대로…





  화성 근처에 무사히 도착했다고 하지만, 화성으로 내려앉는 과정에서도 위험은 존재하고 있습니다. 화성의 대기권을 통과하는 마의 7분이라는 시간에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니까요.


  하지만 여러 차례의 실패가 있었음에도 그때마다 문제를 보완하여 충실하게 진행했던 미 항공 우주국의 신뢰성을 믿으며 큐리오시티 로버가 화성 위에 서기를 기대합니다.


GOOD LUCK!



추진 : 큐리오시티 로버는 한국 시간으로 2시 32분에 도착 예정이며, 현재 라이브로 소개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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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Addr  Edit/Del  Reply 풍림화산

    홍식아... 오 잘살고있구먼 ^^
    나도 잘있다..
    연락하자... kym7224 아이디 천랸 아직도 살아있다.

    2012.09.19 15:47
    •  Addr  Edit/Del 별을 좋아하는 표도기

      블로그가 있다보니 이렇게 반가운 분도 만나게 되네요.

      천리안 아이디는 패스워드를 잊어버린 후로 어떻게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트위터 pyodogi 나 이메일 pyodogi@gmail.com로 연락주세요.^^

      아니면 천리안 메일로도 연락이 되시는건가요?

      2012.09.23 01:11 신고

과학과 우주 이야기 2012.08.02 11:52

스도바시 중공업이라는 곳에서 만든 '아트 작품'입니다.


스도바시 중공업 홈페이지 : http://suidobashijuko.jp



중량 4.4톤

가격 1,353,500달러(약 15억원)

기본 무장 : BB탄 미니건, 물로켓....



이라는 것이고... 커스텀 메이드로 주문도 가능한데, 주문을 눌러 버리니 정말로 메일이 날아오는군요.


'며칠 내로 담당자가 연락하겠습니다.'라고?


커스텀 메이드를 했더니 200만달러로 바뀌었습니다. (약 23억?)



 


정말로 연락이 오면 '실수'라고 말해야 겠지만, 분위기로 볼때 정말로 진지하게 주문을 넣는 방식은 아닌 것 같습니다...라는 건 사이트를 보면 대충 느낄 수 있습니다. (물론 실제로 판매도 하고 있겠지만요.)


"쿠라타는 예술 작품입니다. 실제의 탈것처럼 안전성이나 쾌적함을 보장할 수 없지만, 로봇 파일럿이 되고 싶다는 인류의 꿈을 이루게 해 줍니다."


라는 말이 눈에 띕니다.


굉장히 장난끼가 넘치는군요.


특히 두번째 '타는 법'을 보시면 말입니다.^^



여기저기서 이런 식의 '로봇'을 제작하여 소개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물론 사업이긴 해도 한편으로는 '도락'이라고 하겠지요. 좋아하기 때문에 만든 것... 한국에서도 이러한 취미의 가능성이 넓게 열릴 수 있기를...




쿠라타스의 소개




쿠라타스 탑승법


* 탑승법의 번역 (일본어판 기준)


쿠라타스의 탑승법

여러분 안녕하세요.

오늘은 스도바시 중공업, 제조번호 001

쿠라타스의 주문을 검토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누구나 꿈꾸고 있는 로봇 파일럿으로서 안전하게 쿠라타스를 조종하기 위해서

우선은 이 비디오를 봐 주십시오.

[탑승]

탑승하실 때는 버튼을 눌러서 조종석 해치를 열고 올라탑니다.

탑승시에는 반드시 헤드 프로덱터를 착용해 주십시오.

위에 있는 개폐버튼으로 조종석을 닫습니다.

[조종]

조종석에 탑승하면, 터치 패널 오퍼레이션 시스템으로 정상적으로 작동하는지 확인해 주십시오.

[V-Sido]

쿠라타스에는 차세대 범용 로봇 OS [V-Sido(부시도)]가 탑재되어 있습니다.

(참고 : http://vsido.uijin.com/index.html )

[V-Sido]의 컨트롤 시스템을 사용해서 팔, 동체의 움직임을 트랜스폼 오퍼레이션 디바이스로 컨트롤합니다.

또한 마스터-슬레이브 컨트롤로 팔의 움직임을 더욱 직감적으로 컨트롤 할 수 있습니다.

탑승하지 않고 3G 회선을 통해 외부에서 조종도 ok

이렇게 다채로운 컨트롤 방법으로 누구든 쿠라타스를 간단히 조종할 수 있습니다.

[이동]

쿠라타스는 최고 시속 10km로 주행한다고 생각됩니다.

리프트업해서 시야를 확보하거나 리프트 다운으로 낮은 자세로 이동할 수도 있습니다.

경유를 연료로 씁니다.

디젤 엔진으로 작동합니다.

[무기]

쿠라타스의 큰 특징이기도 한 무기에 대해 설명하겠습니다.

사람을 다치지 않게 하고, 환경을 생각한 [로하스 런쳐]

예측불가능한 궤도가 위협적인 무기입니다.

* 가끔은 표적에 맞을 때도 있습니다.

[트윈 개트링건]은 1분간에 6000발의 BB탄을 발사

자동 조준으로 적을 로크온, 노린 적을 놓치지 않습니다.

조준을 맞춘 상태로 조종사가 미소를 지으면 탄을 발사하는 [스마일 샷] 기능으로는 미소 한번으로 적을 전멸시킬 수 있습니다.

*스마일 샷은 여성 전용 특별 장비

너무 웃으면 난사하게 됩니다.

지나치게 많이 쏘는 것에 주의해 주십시오.

[하차]

쿠라타스가 완전히 정지해 있는 것을 확인하고, 조종석을 열어 주십시오.

주변에 충분히 주의하여 안전을 확인하고 기체에서 내려 주십시오.

조종석에서 지상에 뛰어내리지 말고, 기체에 발을 걸치고 강하.

또는 사다리를 써서 내리는 것을 추천하고 있습니다.

[주의 사항]

조종석 안은 금연입니다.

휴대전화 같은 전파를 발생시키는 전자기기는 사용할 수 있습니다.

만일 기체가 쓰러질 때에는 조종석 안에서 머리를 감싸듯이 안전한 자세를 취해 주십시오.

기체에서 연기, 화염, 악취 등이 발생할 때에는 재빨리 탈출하는 것을 권합니다.

부상을 입거나 할 때의 보증은 할 수 없으므로, 헤드 프로텍터나 콘보이 가드를 부착하고 탑승하는 것을 부탁드립니다.

그러면 여러분, 쾌적한 쿠라타스의 조종을 즐겨 주십시오.

...


(제정신(?)이 아님을 아주 명확하게 느낄 수 있습니다.^^)




원더 페스티발에서 소개된 쿠라타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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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과 우주 이야기 2012.06.18 20:57

  오늘은 노르웨이의 탐험가 로알 아문센이 실종된 날입니다. 기구를 타고 탐험에 나선 친구가 실종되어 그를 찾으러 수상 비행기를 타고 나갔다가 돌아오지 못하고 만 것이지요. 그의 시체는 발견되지 않았지만, 비행기 부품이 발견되어 사망한 것으로 확인되었지요.


  아문센은 많은 탐험에 성공했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잘 알려진 것은 남극점에 최초로 도착한 일입니다. 하지만 이는 그에게 명성을 안겨주지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남극점 도달의 성공은 라이벌이었던 스코트팀의 최후에 의해 덧칠되었기 때문입니다.



  현충일인 6월 6일에 태어난 대영 제국의 탐험가 로버트 스코트는 로알 아문센과 비슷한 시기에 남극점에 도전했던 인물입니다. 그러나 한 명의 낙오자도 없이 무사히 돌아왔던 아문센과 달리 스코트는 팀 전원이 돌아오지 못하고 말았습니다.


  40대의 나이에 남극에 도전해서 아문젠에게 선두를 빼앗기고,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운명을 맞이한 것입니다.


[ 남극점에 도달한 스코트 일행. 하지만, 그 표정에는 실망이 가득하다. ]

 

  하지만 역사에서는 스코트를 승자로 이야기하기도 합니다. 오직 남극점 도달에만 전념했던 아문젠과는 달리 수많은 학술 조사를 병행하면서 채취 작업을 계속하여 16kg에 이르는 표본을 버리지 않고 돌아왔다는 점에서...

 

  이에 대해 스코트는 대영제국의 국민이고, 아문젠은 약소국 노르웨이의 국민이기 때문에 여론 조작에 말려들었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스코트의 죽음에 대해 아문젠이 책임질 필요가 없음에도 그를 악당으로 몰아가는 것도 사실입니다.

(아문센은 일찍부터 말보다는 개가 낫다는 것을 간파하였고, 스코트에게도 이에 대해 조언했다고 합니다. 심지어 아문젠은 남극점에 도착하여 나중에 찾아올 스코트를 위해 약간의 식량을 남겨두었다고 합니다. 영국 신사(?)인 스코트는 이를 조롱의 뜻으로 받아들인 것인지 아문센이 남긴 물자에는 전혀 손도 대지 않았습니다.) 

 

  학술 조사로서 스코트의 업적은 분명히 주목할만 합니다. 동료가 죽어가는 상황에서조차 자료 채취를 계속 했다는 점은... 어쩌면 그것은 오기였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남극점 최초 도달에 실패한 만큼, 다른 것으로라도 보상받고 싶다는 마음이었을지도...

 

  어찌되었든 스코트는 남극점 선두 탈환에 실패하고, 귀환조차 이루지 못한 패자가 되었지만 또 다른 승자로서 기억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학술 조사의 귀감'으로서...


  반면 오직 남극점에만 집착하고 학술 조사 따위는 제쳐두고 돌아온 아문센은 명성을 얻지 못했습니다. 아니 그보다는 악명만 남게 되었다고 보는게 낫겠지요. 동료였던 개마저 잡아 먹은 일까지 포함해서...

 

 

  그런데 한가지 생각해 볼 것이 있습니다. 과연 스코트와 아문센을 그렇게 기억해도 좋은 것일까요?

 

  스코트의 탐험에서 학술 조사를 잘 한 것은 좋습니다. 남극점 도달만이 아니라, 남극의 여러 지질 자료를 채취하고 기록한 것도 좋습니다. 하지만, 설사 그렇다고 해도 그들이 죽음을 맞이할 필요는 없었습니다. 물론, 그들이 선택한 길이 우연히도 아문젠의 길보다 좋지 않았다는 것은 어쩔 수 없을 것입니다. (스코트의 탐사로는 영국 탐험대가 탐험했던 길의 연장이었기에 이미 알고 있었지만, 아문젠은 전혀 새로운 길을 택했습니다. 그런데 운 좋게도 아문젠의 경로는 평탄했고 스코트는 험난했습니다.)

 

  하지만 스코트 일행이 남극점에 먼저 도달하지 못하고(자그마치 1달이나 늦게 도달하고) 결국은 귀환하지 못한 것은 대장인 스코트를 비롯하여 그들 탐험대의 준비가 부족했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탐험 도중의 판단 착오까지 겹쳐 최악의 결과를 낳고 말았습니다.


  반면 아문센은 철저한 준비와 과감한 결단으로 남극점에 먼저 도착했을 뿐만 아니라 전원이 무사하게 생존하여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 개들과 함께 당당한 모습으로 사진을 찍은 아문센. 그 혼자만이 나온 이 사진이 더 유명한 것이 그를 악당으로 몰아간 원인 중 하나가 아닐까? ]



  결과보다 과정이 중요하니 어쩌니 말하지만, 한 명도 살아돌아오지 못한 것을 칭송한다는 것은 조금 이상합니다. 남극점에 먼저 도달하고 아니고보다도 결국 생존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말이지요.



  두 팀은 시작부터 과정까지 근본적으로 다른 방향으로 진행되었습니다.

  

  우선 아문젠은 개썰매와 스키를 이용했지만, 스코트는 말과 설상차를 이용하기로 했습니다.


  물론 말은 추위에 강한 품종을 선택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말과 개 중에서 어느 쪽이 추위에 강한가를 생각해 보면 간단히 답이 나옵니다. 게다가 크기가 큰 말은 눈에 빠질 가능성도 높고, 무엇보다 초식 동물인 말의 먹이는 구하기도 힘듭니다. 설상차는 물론 이런 문제가 없지만 연료가 없다면 소용 없습니다. 


  결국 거의 마지막까지 개썰매를 이용해 비교적 편하게 이동할 수 있었던 아문젠 일행과는 달리 스코트 일행은 말과 설상차를 금방 포기하고 인력으로 설매를 끌고 나아가게 됩니다. 남극의 혹독한 환경을 생각할 때 이것이 얼마나 바보 짓인지는 금방 상상할 수 있을 것입니다.


  아문센이 개를 사용한 것은 그보다 앞서 남극에 도전했다가 실패한 어니스트 섀클턴의 사례를 참고하고 극지방에 사는 원주민들의 의견을 존중했기 때문입니다. 이에 말을 써서는 도저히 성공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위험하리라 생각한 아문센은 스코트팀에게도 개를 사용하라고 조언했지만, 스코트는 이를 따르지 않았습니다. 아문센처럼 현지인의 조언을 듣거나 하지 않고 오직 자신의 독단 만으로 결정한 것이지요.

 

  게다가 아문젠은 현지 동물을 사냥하는 등 휴대 식량에 의존하는 것을 최소화했습니다. 펭귄 같은 동물들의 고기는 사람만이 아니라 개도 먹을 수 있었고 개들은 팔팔하게 활동할 수 있었습니다. (나중에는 개도 식량으로 이용했습니다. 열심히 썰매를 끌어준 개를 잡아먹다니 비인도적이라고 할지 모르겠지만...)


  반면 말은 이렇게 할 수 없습니다. 당연히 스코트는 식량을 모두 실어날라야 했습니다. 초기에는 설상차용의 연료와 말 용의 건초까지 날라야 했으니 그 어려움은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다음으로 방한복 문제를 생각할 수 있습니다. 아문젠의 방한복은 -모 프랑스 여배우가 들으면 기겁할- 모피. 아문센이 모피를 선택한 것도 역시 친하게 지내던 북극의 원주민의 조언을 따른 것이었지요.


  반면 스코트의 방한복은 소가죽을 여러 겹 겹친 형태... 땀을 흡수할 수 있는 모피와 달리 소가죽은 땀을 흡수하지 못합니다. 인력으로 썰매를 끌어야 하는 상황에서 이 방한복은 최악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게다가 대원 선택에서도 아문센은 훨씬 명확했습니다. 그는 무엇보다도 탐험을 확실하게 마칠 수 있는 경험자를 골랐던 것이지요. 하지만 스코트의 대원은 탐험 경험이 별로 없는 이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게다가 이정표를 설치하지 않아 돌아오는 길을 찾지 못했다는 점도 문제가 되었습니다. 아문센이 곳곳에 깃발을 설치하여 돌아오는 길도 대비했던 반면, 스코트는 오직 섀클턴이 갔던 길만을 맹목적으로 따라갔고 돌아오는 길을 표시하지 않았던 겁니다.



  스코트 일행이 인정받는 것은 탐험 중에 학술 조사를 한 일이었지만, 이는 지나치게 욕심을 부렸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생존조차 위험한 상황에서 학술조사에 열중할 필요가 있었을까요?

 

  하지만 설사 스코트 팀이 길을 돌아가지 않았더라도 생존했을 가능성은 그다지 많지 않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아문젠보다 일찍 도착할 수 없었던 것은 당연하고, 그들이 귀환했을 가능성도 그다지 높지 않다는 것입니다.

 

  어찌되었든 말과 설상차를 금방 잃어버리고 맨 몸으로 남극점에 도달해야 했던 스코트 일행은 아문젠보다 1달이나 늦게 도착할 수 있었고(그보다 전에 아문젠의 썰매 자국을 보고 패배를 직감했다고 합니다.) 맹렬한 추위에 휩싸이고 말았습니다. 그리하여 미귀환자로 역사에 이름을 남겼습니다.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설사 스코트가 아문젠처럼 준비를 잘 했다고 해도 아문젠을 이길 수는 없었을 것입니다. 아문젠과 스코트의 경로를 비교할 때 아문젠 쪽이 월등히 편했고 거리도 짧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스코트가 조금이라도 탐험에 소질을 보였다면, 준비를 철저히했다면 그들은 아문젠보다 늦게 도착했을지 언정 최소한 죽지는 않았으리라 생각합니다.

 

  비록 그 탓에 평범한 패배자로 끝났을지는 모르지만, 그들의 학술 조사는 높은 평가를 받고 이후에도 남극 탐사를 다시 떠날 수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들은 희생되었기에 더욱 기억에 남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정말로 그들이 그런 것을 바라고 있었을까요? (한가지 덧붙이자면, 당시 스코트는 결혼한지 5년도 안 되었고, 아들이 태어난지 4년도 안 되었습니다.)

 

  이따금 우리는 '장렬한 최후'를 기리곤 하지만, 대개의 경우 그것이 생존에 실패한 결과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무시하는 것 같습니다. 그들이 정말로 '장렬한 최후'를 바랬을지는 그 누구도 모르는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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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Addr  Edit/Del  Reply 산사랑

    아문센이 승자인것은 분명하죠. 대영제국의 자존심을 뭉개어버린 것이 죄라면 죄죠

    2015.03.10 13:41

과학과 우주 이야기 2012.06.17 16:44

  1977년 06월 16일. 미국에서 한 사람이 숨을 거두었습니다. 사람의 죽음은 자연스러운 것이며, 65년을 살아온 만큼 비교적 오래 살았다고도 볼 수 있겠지만, 그 사람의 죽음은 많은 이에게 안타까움을 남겨주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미국의 우주 개발 계획을 이끄는 견인차였고, 인류를 우주로 보낼 가능성을 가진 사람이었기 때문이지요.


  달에 발자국을 남기게 함으로써 "인류에게 있어 위대한 도약"을 가능하게 했으며, 그 너머를 보고 있던 인물. 그의 이름은 바로 독일 출신의 미국 로켓 기술자 베르너 폰 브라운(Wernher Magnus Maximilian Freiherr von Braun)이었습니다.





 

  1912년 3월 23일 독일 동부의 포젠 근교에서 귀족의 자제로 태어난 폰 브라운은 어머니에게 선물 받은 망원경을 통해 천문학과 우주 분야에 대한 관심을 갖게 되었다.

  1920년 그의 고향인 비르지츠(Wirsitz)가 폴란드에 양도되면서 그의 일가는 다른 이들처럼 독일령으로 이주하여, 베를린의 브란덴부르크에서 새로운 생활을 시작했다.

  훗날 로켓 개발을 진행하는 폰 브라운이었지만, 본래는 물리학과 수학에는 그다지 자신이 없었다. 하지만, 어느날 로켓 개발의 선구자인 헤르만 오베르트가 쓴 <행성간 우주용 로켓(Die Rakete zu den Planetenraumen)>이라는 책을 통해 로켓이라는 존재를 알게 된 폰 브라운은, 로켓 개발의 꿈을 꾸며 꼭 필요한 학문인 수학을 배우고자 노력했다.

  중학교를 졸업하고 로켓 연구를 시작한 폰 브라운은 독일 우주 여행 협회에 들어가 동료들과 함께 2년 동안 80회 정도의 로켓 발사 실험을 진행했다. 특히 그는 많은 청중 앞에서 실험을 보여주며 로켓과 우주에 대한 관심을 끌고자 했는데, 그 실험을 목격한 독일 육군 로켓 연구소 소장 발터 도른베르거는 폰 브라운을 베를린 공과 대학에 추천하여 로켓 연구를 계속하도록 도왔다. (당시 독일은 장거리 포의 개발이 금지되어있었기에 나치 독일에서는 로켓을 군사용으로 이용하고자 로켓에 대한 투자를 계속했다.)

 

  폰 브라운은 헤르만 오베르트의 밑에서 액체 연료 로켓 엔진 실험을 도우며 1934년에는 2.4km 고도에 달하는 로켓을 쏘아올릴 정도의 성과를 거두었지만, 더 이상 연구를 계속할 수는 없었다. 나치 독일에서는 군사용 이외의 모든 로켓 실험을 금한 것이다.

  결국 폰 브라운은 히틀러의 명령으로 군사용의 로켓, 미사일 개발을 계속하게 된다. 우주로 날아갈 수 있는 로켓의 개발을 꿈꾼 폰 브라운은 그것이 군사용 병기로 사용되는 것을 개의치 않았다.

  당시 폰 브라운은 나치당에 가입하기도 했는데, 이는 나치에 대해 협력하겠다는 뜻이기보다는 오직 로켓 개발을 계속하겠다는 마음 때문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결국 그의 손에서 훗날 '보복병기 2호(V2)'라고 이름붙여진 로켓이 만들어져 연합군의 영토로 날아갔다.

 

  전쟁이 끝날 무렵, V2의 위력에 놀란 미국과 소련은 제각기 V2 개발자들을 빼내기 위한 첩보전에 돌입하였다. 당시 패망하고 있던 독일의 친위대(SS)에서는 로켓 개발과 관련한 자료를 모두 파기하고 개발자들도 처단할 계획을 세웠지만, 폰 브라운과 동료들은 무사히 빠져나가 미군에 합류하였다. (또 다른 동료들은 소련으로 넘어가 소련의 로켓 개발을 돕는다.)


  이번에야 말로 폰 브라운은 우주 여행을 위한 로켓 개발을 시도하고자 했지만, 한국 전쟁의 발발에 자극받은 미국은 그와 동료에게 핵탄두를 장착한 유도 미사일 개발을 지시했다.


  유도탄의 연구를 진행하면서도 폰 브라운은 우주 로켓 개발을 꿈꾸었지만, 독일 출신, 그것도 나치당 가입 경력이 있는 그에게 '우주 로켓 개발 1호'라는 영광을 안겨줄 생각이 없었던 미국에서는 그의 로켓 대신 해군에서 개발한 뱅가드 로켓을 사용하게 했다. 하지만, 뱅가드 로켓의 발사 준비가 제대로 진행되지 않는 사이 소련에서는 폰 브라운의 라이벌이라 할 수 있었던 세르게이 코롤료프의 지휘 아래 최초의 인공 위성, 스푸트니크를 쏘아 올리는데 성공했다.


  결국 초조해진 미국에서는 뱅가드 로켓을 즉시 쏘아올리도록 지시했지만, 뱅가드는 제대로 떠오르지도 못하고 폭발하여 미국 정부를 망신시키고 말았다. (당시 신문에서는 뱅가드를 조롱하는 뜻으로 Flopnik(플롭프니크, FLOP 주저앉다), Oopsnik (웁스니크, OOPS - 아이고!), Kaputnik (카푸트니크, Kaput - 망가진), Stayputnik(스테이푸트니크, Stay put - 머무르다.) 등의 표제가 실렸다.)

 


[ 뱅가드 로켓의 폭발. 그리하여 폰 브라운이 역사의 전면에 다시 등장한다. ] 

 

  뱅가드를 대신하여 바톤을 쥔 폰 브라운은 여러 기관을 합쳐 새롭게 탄생한 항공우주국(NASA)의 마셜 우주 비행 센터 소장이 되었고, 1958년 익스플로러 1호를 시작으로 하는 수많은 성과를 거두었다. 그가 개발한 전장 110m의 역사상 가장 강력한 힘을 가진 새턴V 로켓은 아폴로 우주선을 달 궤도까지 보내어 안착시켜 닐 암스트롱이 내딛은 '한 사람의 작은 발걸음'을 성공하는데 이바지했다.


  아폴로의 성공 이후 폰 브라운은 화성 로켓의 개발에 착수했지만, 아폴로 성공, 그리고 소련의 헛걸음이 계속되면서 더 이상 경쟁이 필요없게 된 미국에서는 아폴로 17호 이후의 모든 계획을 중단하기에 이른다. 실망을 감추지 못한 폰 브라운은 1972년 NASA를 떠나 독자적인 우주 개발을 위해 민간 회사인 페어차일드 항공 우주 회사에 기술 개발 부사장으로 들어갔다. 그러나 오래지 않아 신장암으로 쓰러졌고 결국 1977년 6월 16일 숨을 거두었다.

  그가 개발한 새턴 V는 1973년 미국의 우주 정거장 스카이 랩을 우주에 띄우는데 사용되었지만, 이후 사용이 중단되었고 지구 주변에만 겨우 오를 수 있는 우주 왕복선이 대신하기에 이른다.

  그후 NASA에서는 2010년에 퇴역할 예정인 우주 왕복선을 대신하여 강력한 아레스 로켓의 개발을 발표했지만, 그조차 사실상 중단되고 말았다. 결국 폰 브라운이 바랐던 누구나 자유롭게 우주를 여행할 수 있는, 그리고 우주에 머물러 생활할 수 있는 시대는 아직도 찾아오지 않고 있다. 근래에는 민간 회사들의 합류로 새로운 희망이 보이긴 하지만...


참고 - 미국의 우주 비행... 9년간의 공백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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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과 우주 이야기 2012.06.15 00:16

(* 2010년 5월 14일 하야부사의 귀환을 기념하여 네이버 블로그에 썼던 글입니다. 하야부사가 귀환한 5월 13일을 기념하며 이전했습니다.)


  2010년 5월 13일 11시경 하늘에서 한 개의 낙하산이 떨어졌습니다. 낙하산이 떨어지는 일이야 뭐 대단할 게 있겠습니까마는, 어제의 낙하산은 대단히 중요했습니다. 그 안에는 자그마치 7년 만에 지구로 귀환한 탐사선의 자취가 들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야부사. 일본어로 ‘매’라는 뜻의 탐사선은 2003년 5월 9일 지구를 떠나, 이토카와라는 이름의 소행성을 향해 날아올랐습니다.

 

[ 먹이를 향해 날아오른 하야부사. (ISAS/JAXA) ] 

 

  그야말로 먹이를 향해 날아오르는 매처럼 화려하게 떠오른 하야부사였지만, 그 여정은 쉬운 것이 아니었습니다. 우주로 날아오른 지 얼마 되지 않아 4기의 이온 엔진 중 한기의 출력에 문제가 일어났고, 2003년 11월에는 관측사상 최대 규모의 태양 플레어가 폭풍처럼 하야부사를 덮친 것입니다. 그 탓에 메모리에 약간 이상이 일어나고 태양 전지의 출력이 저하되기도 했지만, 매는 상처를 입었음에도 건재하게 목표를 향해 날아갔습니다.


  2004년 5월 19일. 하야부사는 이온 엔진을 조종하여 지구 근처로 돌아오면서 지구의 중력을 이용해 속도를 높였습니다.


  그해 12월에는 이온 엔진을 가동한 지 2만 시간에 이르렀고, 이온 엔진 우주선으로는 최대 기록을 경신해나갔습니다.

 

[ 왠지 하트처럼 보이기도 하는 이토카와 (ISAS/JAXA) ]

 

  2005년 7월 29일. 소행성 이토카와를 발견한 하야부사는 사진 촬영에 성공. 이들을 바탕으로 정밀한 궤도 계산를 실시했고, 드디어 목표를 향한 마지막 돌격을 준비했습니다. 3기의 자세 제어 장치 중 1기가 고장난 상태였지만, 처음부터 1기를 예비로 장착했던 연구원들의 노력 덕분에 무사히 자세를 변경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10월 2일. 남은 2기의 자세 제어 장치 중 하나가 고장을 일으키고 말았습니다. 발사팀에서는 고심 끝에 연료를 최대한 절약하면서 화학 로켓을 병행하는 방법을 생각해 냈고, 드디어 목표(먹이)를 향해 매는 돌진을 시작했습니다.

 

  리허설 강하 중 이상이 발생하는 등 난항을 겪긴 했지만, 11월 20일 목표에 40m까지 접근한 매는 타켓 마커를 이토카와를 향해 발사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여기에는 하야부사 발사 전에 실시한 “작은 왕자를 만나러 가지 않겠습니까?” 캠페인 당시 참가한 88만 명의 서명이 담겨 있었습니다. (에잇, 나는 왜 몰랐지?)

 

[ 타겟 마커 발사. 88만명의 바램이 담겨 있다. (ISAS/JAXA) ]

 

  매...라고 불렀지만, 하야부사의 접근은 신중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자세 제어 장치도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상황에서 중력이 약한 소행성 위에 내려앉기는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한 차례의 시험 착륙(11월 20일), 도중에 전지가 방전되어 전기 계통이 재시동되고(추정. 11월 27일) 통신이 끊어지는 등(11월 28일) 수많은 문제가 계속되었지만, 즉석에서 제어 프로그램을 개량하는 등의 노력 끝에 결국 귀환을 시작했습니다.

 

[ 소행성에 착륙한 하야부사의 상상도 ]


  다양한 문제 탓에 이토가와에서의 시료 채취에 성공했는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전력이나 통신이 몇 차례나 끊어지는 등 문제 속에서도 하야부사는 지구를 향한 긴 여정에 돌입했습니다.

 

  본래 2007년 여름에 돌아올 예정이었던 하야부사의 귀환 길은 수많은 역경 속에 2010년으로 연기되었고, 만신창이가 된 상태로 힘겹게 지구로 향했습니다. 그 동안 탐사팀이 하야부사의 행적을 추적하며 귀환을 돕고자 끊임없는 노력을 기울였다는 것은 말할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그리하여 2010년 1월 13일. 지구의 인력권에 들어선 하야부사는 6월 13일 마지막 힘을 내어 알(소행성의 시료가 들어 있을 가능성이 있는 탐사 캡슐)을 낳고는, 지구의 모습을 그 눈에 담은 채 지구의 대기 속으로  불타 사라져 버렸습니다.

 

  하지만, 하야부사가 낳은 알(캡슐)은 13일 19시 54분에 분리되어 낙하산을 매단 채 지구로 들어왔고, 14일 0시 5분. 헬리콥터에 의해 발견되어 회수되었습니다.

 

  전체 중량 510kg. 일방통행이 아니라 지구로 귀환을 목적으로 한 탐사선으로는 그다지 듬직하다 보기 어렵지만, 결국 지구를 날아오른 매(하야부사)는 폭풍과 부상을 딛고 목표로 날아가 돌아왔습니다.

 

  비록 임무 중 일부는 달성하지 못했지만, 통신 두절 등의 힘든 상황에서도 임무를 수행하고 돌아온 하야부사를 상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야부사가 남긴 캡슐 속에서 소행성의 파편이 발견되었습니다. 조사는 지금도 진행 중이지만, 이러한 성과를 생각하지 않고 그간 하야부사가 남긴 수많은 업적만으로도 우주 탐사의 역사 속에 길이 남으리라 생각합니다.

 

  한정된 예산, 열악한 환경, 그리고 예기치 못한 재해 등 무수한 어려움 속에서도 하야부사의 귀환을 믿고 지원한 발사팀의 노력에 경의를 표합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이 같은 노력이 계속되어 ‘영원한 신천지’, 우주를 빛낼 수 있기를...


 

추신1) 하야부사가 소행성 시료 채취라는 본래의 목적을 달성했는지는 아직 알 수 없지만, 이 탐사 작업을 통해 많은 업적을 남겼습니다. 특히 -비록 1기가 고장났지만- 이온 엔진을 이용한 초 장거리, 초 장시간 항행 기록은 주목할만합니다.

  장거리 우주 탐사에서 이온 엔진의 가능성을 보여준 사례라고 하겠군요. 무엇보다도 3년이나 늦어졌지만, 무사 귀환한 사실은 향후 일본만이 아니라 미국이나 유럽 등 수많은 나라가 소행성 탐사에 뛰어들도록 분발하게 만드는 효과가 있다고 여깁니다.


추신2) 2010년 도쿄에서 열렸던 일본 SF 대회에서 SF 대회 와중에 인기를 끈 누군가를 수상하는 '암흑 성운상 코스츔 부문'에서 두 사람의 소녀가 눈에 띄었습니다.

  

  한 사람은 수상자인 아키노씨. 그리고 또 한 사람은 암흑성운상의 실행 위원장의 따님이었지요.



  아키노씨는 바로 하야부사의 코스츔을 선보여 눈길을 끌었습니다.


[ 하야부사짱? 사진이 흔들린게 너무 아쉽다...-_-;; ]


 등뒤의 이온엔진(?)에서 불도 켜지는 본격적인 디자인이었지요. 그럼 심사위원장의 따님은...? 바로 하야부사가 내려앉은 이토카와의 정령(?)... (위의 하야부사짱(?)이 손에 든 것이 이토카와. 바로 심사위원장의 따님의 코스츔이었습니다.)


  하야부사라는 우주 탐사선까지 의인화시켜 코스츔하는게 기묘하게 느껴질지도 모르지만, 그만큼 대단한 위업을 이룬 존재라는 것을 새삼스레 다시 느낄 수 있었습니다.

posted by 별을 좋아하는 표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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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과 우주 이야기 2012.04.04 19:06

  나일강 유역의 카이로에서 서쪽으로 조금 걸어가다 보면 거대한 삼각형의 물체를 발견하게 된다. 이른바 쿠푸왕의 대피라미드라고 불리는 건축물이다.


 

  바닥 면적 230.5x230.5m에 높이는 146.60m. 전체 체적은 40만m3을 넘는 육중한 동체로 한때 우주에서도 보인다고 할 정도의 크기.(사실, 위성 궤도 상에서 보이는 인류의 창조물은 그 어느 것도 없다. 만리장성 역시 안 보이긴 마찬가지. 그것은 만리장성의 두께가 그다지 두껍지 않기 때문인데, 위성궤도 상에서 만리장성을 보기 위해서는 1km쯤 떨어진 곳에 놓여 있는 실 한가닥을 볼 정도의 시력이 되지 않으면 안 된다. 600만불의 사나이라도 되지 않는 한 불가능한 정도. 피라미드가 크다곤 하지만 면적 자체는 상암동에 세워진 월드컵 경기장보다도 작아 역시 우주에서 맨 눈으로 발견할 수는 없다.)

  사막을 따라 멀리서 다가가는 동안 며칠 전부터 보이기 시작하는 이 거대한 위용에 사람들은 새삼 숙연해지고 의문을 갖는다.

 

  도대체, 그 오랜 옛날, 왜? 그리고 어떻게? 이런 거대한 건축물을 만들었던 것인가?

 

  피라미드에 대한 의문은 그것으로 풀리지 않는다. 피라미드는 동서남북으로 정확한 각도로 세워져 있을 뿐만 아니라, 완전한 직사각형이다. 더욱이 쿠푸왕의 피라미드는 그 각도 역시 50도 20분 25초로 정확한 각도를 유지하고 있다.

 

  도대체 2.5톤에 달하는 돌 230만개를 동원해서 이만한 건축물을 세우게 된 것은 어떠한 이유이며, 또한 누구에 의해서 만들어진 것인가? 그리고, 피라미드의 용도는 과연 무엇인가?

 

  이에 대한 해답이 어떻든 피라미드는 이렇듯 다양한 수수께끼를 남기면서 지금도 카이로 외각에 우뚝 서 있다.

  그렇다면, 이러한 피라미드의 의문에 대한 해답은 어떻게 되는가? 다소 과학과는 동떨어진 듯한 이 주제에 대해서 필자는 현재까지 밝혀진 여러 가지 과학적인 사실들을 바탕으로 이를 소개할까 한다.


 

1. 피라미드는 외계인(혹은 초월적인 존재)에 의해서 만들어진 것이 아닌가? 어떻게 석기 밖에 갖고 있지 않던 고대인들이...

 

  라는 의문은 사실 논쟁의 여지가 없는 낭설에 불과하다. 비록 피라미드가 세계의 7대 불가사의 중의 하나라고 알려져 왔지만, 이것의 거대한 위용에도 불구하고 당시의 이집트인들에게는 이러한 건축물을 만들만한 충분한 여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우선, 이집트인들은 어느 날 갑자기 뚝딱하고 쿠푸왕의 피라미드를 만들어낸 것이 아니다. 그보다 오래전 피라미드의 기원이 되는 마스타파라는 지상묘가 있었으며,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점차 크기를 키워나가면서 피라미드에 가까운 형상을 하게 된다.


 

  그리하여, 쿠프왕의 아버지인 스네푸르 시기에는 거의 쿠프왕의 것과 비슷한 피라미드가 완성되기에 이르지만, 첫번째로 만든 피라미드는 아쉽게도 상부 구조의 구조적 문제로 인해 각도를 낮추어 건설하게 된다. 일명 굴절 피라미드라고 불리는 피라미드를 완성한 것이다.

  그러나 그는 이 성공에 고무받아 새로 2개의 피라미드를 세우게 되며, 이 피라미드는 쿠푸왕의 피라미드와 마찬가지로 삼각형에 가깝게 보이는 형태로 완성되었다.

  그리하여 그의 아들인 쿠푸왕에 이르러 가장 거대한 대피라미드가 완성된 것이다.(그러나 후세의 많은 이들은 계단식 피라미드나 굴절 피라미드를 무시하고 오직 쿠푸왕의 피라미드 만을 생각함으로서 피라미드가 하늘에서 뚝딱하고 떨어진 것으로 생각하고 말았다.)

 

  쿠푸왕의 피라미드는 돌 230만개를 쌓아서 만들었으며, 더욱이 총 중량은 650만톤에 이른다. 그렇다면, 도대체 석기 만을 갖고 있는 이들이 어떻게?

 

  이에 대한 답변은 피라미드가 가공에 가장 쉽다고 알려진 석회석으로 만들어진 것에 기원한다. 시멘트의 원료가 되기도 하는 이 돌의 가공은 놀라울 정도로 쉽다. 그게 어느 정도로 무른지를 확인하고 싶다면 피라미드에 올라가 여러분이 갖고 있는 동전으로 긁어 보기 바란다. 아니, 손톱으로 긁어 보아도 좋다. 여러분의 손톱은 경도 2.5로 경도 2의 석회석을 간단히 긁어낼 수 있을테니까.(그러나, 결코 권하지 않는다. 세계적인 문화 유산을 파괴하는 ' 추한 한국인 '이라고 대서특필되는 것은 곤란하니까.)

 

  마음만 먹는다면 석기가 아니라 나무 망치와 나무 못으로도 충분히 석회석을 잘라내고 처리할 수 있다. 물론 그들이 가진 여러가지 도구를 사용해서 비교적 간단하게 작업했을 것이다.(실제로, 이집트의 채석장에는 절취하지 않은채 미완성인 석재들이 발견되었는데, 여기에는 나무쐐기를 사용해서 작업을 한 흔적이 있다.)



  쿠푸왕의 피라미드 내부에 사용된 화강암은 경도가 높은 돌이지만, 화강암은 결에 따라서 간단히 처리할 수 있다는 특징을 갖고 있다. 때문에 특성만 알고 있으면 간단히 작업할 수 있는 것이기도 했다.

  그렇다면 그들은 2.5톤에 달하는 이 무거운 석재를 어떻게 올렸을까? 외계인의 비행 물체로 띄우기라도 하지 않는한... 이라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이러한 생각을 하는 것은 고대인을 무시하는 현대인의 ' 오만한 천성 '에 지나지 않는다.

 

  피라미드를 세운 이집트인들은 수렵과 채집으로 만족하고 움막을 지어 살고 있던 구석기 시대의 원시인들이 아니다. 그들은 불과 수천km 떨어진 유럽에서 사냥이나 하고 살던 시대에 이미 거대한 왕정 국가를 수립하고 있던 위대한 민족이었던 것이다.

 

  쿠푸왕의 피라미드가 세워진 것은 그것도 제 4왕조. 기원전 2500년 정도의 일이다. 이 시기에는 이미 이집트의 문명이 전래되어 미케네 문명이 시작되고 있었으며, 중국에서는 역사에 남겨진 최초의 왕조 은나라(전설 속의 하나라 유적은 아직 출토된 것이 없으므로)가 수립되어 청동기를 중심으로 번영하고 있었다.

  이들은 -당연하게도- 도르래나 지레대의 원리를 알고 있었으며, 이를 실제로 활용하였다. 2.5톤의 돌은 무시무시한 무게로 생각되겠지만, 바닥에 둥근 나무를 깔아주면, 불과 몇 명의 힘으로도 옮길 수 있는 수준이다.(같은 방법으로 잉카인들은 둥근 자갈을 사용해서 돌을 날라 마추피추와 같은 놀라운 건축물을 완성했다.)

  140m가 넘는 위로 돌을 올리는 것은 어려워 보이지만, 그들은 비탈길의 원리 역시 알고 있었다. 메소포타미아로부터 전래된 벽돌을 사용해서 비탈길을 쌓고 이 비탈길을 통해서 돌을 옮기는 것은 높은 급료에 대한 기대감과 파라오의 신전을 건립한다는 종교적 열성에 가득 차 있는 이집트인들에게 그다지 어려운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실제로 이러한 종교적 열성을 갖고 있지 않은 현대인들조차 고대의 도구 만 사용해서 피라미드를 만들 수 있다. 시카고 대학의 레너 교수가 50명도 안 되는 인원으로 3주일 만에 186개의 돌을 쌓아 8층짜리 피라밋을 건설함으로서 ‘ 석기로는 피라미드를 만들 수 없다. ’는 주장을 일축한 것은 유명한 사례. (50명만으로도 700년 정도면 쿠푸왕의 피라미드를 건설할 수 있다.)


  그런데 최신 연구 결과 이집트인들은 이보다도 훨씬 똑똑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피라미드 주변에서 발굴된 기묘한 나무 조각을 통해서, 도르래만이 아니라 바퀴의 원리도 알고 있었던 이집트인들이 돌 밑에 나무를 까는 -다소 원시적인 방법-이 아니라, 돌 자체를 나무로 둘러싸서 일종의 거대한 바퀴를 만드는 방식을 사용했음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돌은 네모나지만 나무를 대어 둥글게 만들 수 있다. 이렇게 만든 나무 부품은 재활용할 수 있으며 이처럼 커다란 바퀴 구조는 앞에서 가볍게 끌어당기기만 해도 경사를 쉽게 올라갈 수 있다. 이 방법을 따르면 레너 교수의 계산보다도 훨씬 빠르고 간단히 피라미드를 세울 수 있다는 것이 밝혀졌다.


  피라미드 주변의 발굴 결과 피라미드 건설에 동원된 인력은 5000명 정도였다고 하는데(혹자가 추측하듯 10만 명의 노예를 동원한 것은 아니다.), 이정도면 도르래를 쓰는 것만으로도 쿠푸왕의 피라미드를 7년 정도면 충분히 완성할 수 있고, 바퀴 구조를 이용하면 그보다 훨씬 빠르게 완성할 수 있다는 결론이 나온다.

  물론 농업 국가인 이집트에서 열심히 농사 지어야할 농민들을 1년 내내 동원할 수는 없었다.(몇몇 잘못된 견해와는 달리 당시의 이집트는 노예제를 갖고 있지 않았으며, 이른바 노예라고 하는 이들은 집안의 하인이나 가정부 정도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농민들은 농번기에는 바쁘지만, 농한기는 비교적 한가하게 지낼 수 있는 것이 사실.

  더욱이 나일강의 범람은 연례행사로서 이 기간에는 농업을 완전히 쉴 수 밖에 없었기에 그 동안 이집트의 농민들은 할 일이 아무 것도 없었다.(이 나일강의 범람은 주변의 토양을 비옥하게 만들었으며, 이집트 왕조의 수립에 기여하고, 천문학과 수리학이 발달되는 요인이 되기도 했다.)


  쿠푸왕을 비롯한 이집트의 파라오들이 바로 여기에 눈독을 들인 것은 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농한기라 해도 다음 농사 준비를 해야 하는 다른 문명의 농민들과는 달리 이집트의 농민들은 나일강의 범람으로 인한 농한기 때 따로 할 일이 없었다.

 

  일을 쉬고 있는 풍부한 인력...

  파라오는 그 기간 동안 가족들의 생계를 유지할만한 급료를 약속하였으며, 이는 수많은 농민들이 경쟁적으로 피라미드 건설에 매달리게 하는 원인이 되기도 하였다.

(피라미드 건설 참여에 참여하는 일에 대한 경쟁을 의아하게 생각하는 이들이 많겠지만, 과학이 발달한 지금조차 피라미드를 건설하는데 협력하라면 기꺼이(아마도 무급으로) 나설 이들은 넘쳐날 것이다. 하물며 실제로 파라오를 신이라고 생각하고 있던 당시의 국민들은 오죽하겠는가? 게다가 쿠푸왕의 피라미드 이후에는 그 거대한 위용을 보는 것 만으로 경외감과 함께 신의 역사에 참여하고 있다는 기대감을 갖게 하기에 충분했을 것이다.->이는 고대의 거대 건축물이 가진 또 하나의(지배 계층으로서는 더욱 중요한) 목적이었다.)


  더욱이 피라미드 제작에 참여한 이들은 장인으로서 존경을 받는 이들이기도 했다.


 

  실례로 근래에 피라미드 주변에서 발견된 한 무덤은 바로 그들의 사회적인 위치가 어떠했는지를 보여준다. 당시 일반적인 서민들과는 달리, 그는 피라미드에서 비교적 가까운 곳-비록 귀족과 왕족들을 위한 신성한 공간을 나타내는 거대한 방벽 너머에 위치하고 있지만-에 동료들의 무덤에 둘러싸여 누워 있는 것이다.


  신성하기 이를 데 없는 피라미드 주변, 그것도 여러 사람들의 호위를 받듯이 누워있다는 것만으로, 당시 피라미드 건설자들의 위치를 알 수 있게 해 주지 않는가?

 

  일꾼으로서의 여러 가지 혜택, 그리고 파라오에 대한 열정과 책임자에 대한 사회적인 존경. 이를 통해서 끌어모을 수 있는 5000명의 인력은 피라미드의 건설에는 충분한 인원이었다. 그들에게는 매년 4달 정도의 여유가 있었고, 파라오가 죽기 전까지만 완성하면 되었기에 마감에 쫓길 우려도 없었다.

(파라오가 일찍 죽으면 피라미드는 더 이상 세우지 않고 마감해 버리기 때문에 쿠푸왕의 피라미드 이후에도 미완성 피라미드가 종종 등장하곤 했다. 이집트의 국력이 약해져서 피라미드 건설에 투자를 하기 어려운 이유도 있었지만, 왕권이 약해진 만큼 파라오가 천수를 누리기 어려워졌기 때문이기도 하다. 비록 파라오가 신의 아들이긴 했지만, 어느 시대건 신의 아들이라는 거창한 명함을 두려워하지 않고 자신이 차지하려는 사람은 있는 법이니까.)


  그럼에도 그들은 열심히 일을 했을 것이다. 급료도 급료였지만, 피라미드 건설에 참여하는 노동자들은 이집트인들이 너무도 중요하게 생각한 사후 세계의 은총을 받는 것이기 때문에...

 

  미이라 등을 만들 수 있었던 귀족과는 달리 일반 서민들은 사후 세계의 은총을 받을만한 묘지를 만들 여력이 없었다.

 

  그러나, 이집트인들이 사후의 영생을 기린 것은 잘 기억되고 있는 사실이며, 그렇기에, 피라미드 공사에 참여하는 것은 실업자 대책을 위한 공공 사업일 뿐만 아니라, 파라오와 귀족들만이 독점하는 종교적인 은총을 서민들에게 나누어주는 자선 사업이기도 했다.



  물론, 경우에 따라서는 급료가 늦게 지불되는 바람에 파업을 하기도 했지만(이는 노예를 사용하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증거의 하나이기도 하며, 이집트 사회에서 농민들의 위치가 생각보다 높았음을 입증하는 예이기도 하다.) 몇몇 사람들이 남긴 낙서에서 보이듯 스스로를 ‘ 파라오의 친구들 ’이라 생각했던 그들은 자신의 사후 영혼에도 축복을 베풀어 줄 피라미드의 완성에 노력했을 것에 틀림없다.

  몇몇 지식이 부족한 만화가들은 완성된 피라미드에 노예들을 가두는 장면을 연출하기도 했지만 피라미드 건설에 참여한 노동자들 중에는 피라미드에 들어가는 은총을 받을 수 있다면 기꺼이 죽겠다는 이도 있었을 것이다. (사후 세계의 영생을 믿은 이집트인들이 노예에게 피라미드에 묻힐 거창한 권리를 주었을지는 의문이며, 실제로 어느 피라미드에서도 노동자의 시체 따윈 발견되지는 않았다.)

 

  실제로 왕가에 충성한 귀족들은 피라미드 주변에 무덤을 만들어 왕가의 은총을 나누어 받을 수 있는 기회가 있었으니... 피라미드라는 것은 단순한 무덤 이상의 종교적 상징으로서 받아들여지는 존재이기도 했을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상징을 완성하는데 있어 수십년에 걸친 노동은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기도 했다.

 

  실제 20세기인 지금에도 거의 몇백년에 걸쳐서 만들고 있는 사원이나 성당이 있지 않은가?

(*  필자의 생각에는 단순히 돌을 쌓아놓은 것에 불과한 피라미드보다 로마인들이 건설한 거대한 돔형의 건축물, 팡테온 같은 것이 훨씬 더 놀라운 불가사의라고 생각한다.)

 


2. 피라미드의 높은 완성도는 고대인의 능력이 미치지 못한다.

 

  ' 만물의 영장 '을 자부하는 현대인의 오만은 유명한 이야기지만, 이러한 의문(?)에 까지 이르면 그야말로 오만함이 극에 달해 하늘을 찌를 듯 하다.

  피라미드는 동서남북 방향으로 상당히 정확한 각도로 맞추어져 있는 것이 특징이다. 가장 정확하다는 쿠푸왕의 피라미드는 3‘ 6“(1%도 미치지 않는다) 정도, 심한 경우에도 14‘ 정도의 차이를 밖에는 나지 않는다.

  그러나 이러한 정확도가 있다고 해서 그들이 만들지 못했을 거라고 생각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비록 덧셈과 뺄셈 밖에는 하지 못했지만(곱셈과 나눗셈은 이를 응용해서 했다) 그들은 인류 최초로 삼각형의 여러 가지 원리를 이해한 민족이다.(3:4:5의 직삼각형을 완전한 삼각형이라고 생각했다는 것은 유명한 사실이다.)

 


  나일강의 범람은 4개월 정도의 농한기와 함께 풍요로운 곡창지대를 선물하기도 했지만, 여기에 범람해서 경계가 사라진 농토를 분할하기 위한 기하학과 수리학, 그리고 나일강의 범람을 정확히 예측하기 위한 천문학을 낳을 수 있게 했다.

  그들은 당시 세계 최고 수준의 천문학과 수리학, 기하학의 천재였으며, 그것은 후일 카이사르가 율리우스력을 만드는데도 도움을 주었을 정도였던 것이다.

  그러니 동서남북 방향을 정확히 측정하는 것은 그들에게는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며, 이에 맞추어 피라미드를 세우는 것도 큰 문제는 없었을 것이다.

  대대로 이 직업을 물려받는 전문가들이 측량을 마치고 자리를 잡게 되면 여기에 맞추어 돌을 쌓아나가는 것은 아이들조차 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천문학의 전문가들은 수시로 작업 공정을 살펴보고 문제점을 수정해 나갔기 때문에(피라미드 내부의 무수히 많은 공동들은 바로 이러한 수정 작업에서 나온 것이기도 하다) 처음에 조금 틀렸다고 해도 최종적으로 완성되는 시점에서 거의 맞추어진 상태로 완성하는데는 아무런 어려움이 없었다. 그리하여, 주변의 마지막 돌을 놓는 순간 이 수정 작업은 종결되고 피라미드는 동서남북에 정확히 맞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동서 남북의 특징으로 인해서 피라미드를 천문대라고 하는 학설이 있지만, 이집트에서는 굳이 피라미드처럼 거대한 천문대를 만들 필요없이 오래 전부터 다양한 천문 관측 시설을 통해 수립한 놀라운 수준의 천문학을 갖고 있었다.(무엇보다 피라미드는 천문대라고 할 정도로 정확하지는 않으며(피라미드에 따라서 각도가 다르기도 하다) 계단식 피라미드나 굴절 피라미드를 천문대라고 보기에는 억측이 심한 것이 사실이다.)

 

  더욱이, 피라미드는 완성도가 높은 것도 아니다. 피라미드가 여러 단계에 걸쳐서 발전되어 온 것은 이미 이야기 한 바와 같으며, 피라미드 중에서 가장 완성도가 높은 것처럼 보이는 쿠푸왕의 피라미드는 사실 대표적인 불량품 피라미드이기 때문이다.

  피라미드의 과학과 관련된 이야기에서 쿠푸왕의 피라미드의 현실이 무게를 아주 잘 받쳐주기 위한 구조로 되어 있다는 이야기가 있으나, 이것은 과학을 모르는 이들의 단순한 추측에 불과하다.

  그도 그럴 것이, 무려 5단계로 되어 있는 쿠푸왕 현실의 천정은 처음부터 5단계로 할 생각이 아니라 단지 아무리 해도 무게를 버티지 못하고 화강암 천정이 갈라지기 때문에 몇 개를 더 만들어 넣은 것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실제로 쿠푸왕의 피라미드의 현실 천정은 여기저기 금이 가 있으며, 그 위의 5단계 전부가 이리 저리 무너져 있는 상태이다.)


 

  게다가 쿠푸왕의 피라미드는 그 평면만도 3번에 걸쳐서 바꾸었을 정도로 부실 공사의 산물이기도 하다. 쿠푸왕의 현실이 결국 중심에서 삐딱한 위치에 놓여진 것도, 더욱이 다른 피라미드와는 달리 지하가 아닌 지상에 위치하게 된 것도 이러한 반복적인 개축 작업에 의한 것이다.(이와는 달리 처음부터 만들어 넣은 왕비의 방은 본래라면 파라오가 위치해야 할 지하, 그것도 피라미드의 중심부에 위치하고 있으니 재미있는 사실이 아닌가?)

 

  이 신비로운 건축물 안에 다른 피라미드에 비해서 특히 공동이 많은 것은 -그 내부에 비밀 통로가 있기 때문이 아니라- 그만큼 부실하게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1986년 못 미더워하는 이집트 정부에 국제 사회의 압력을 넣어 발굴한 왕비의 방 뒤쪽 공동에서 아무 것도 없는 빈 공간을 발견한 것은 ‘ 이번에야 말로 비밀이 밝혀진다 ’라고 생각한 피라미드 신봉자들의 기대를 산산히 부셔버린 촌극이었지만, 얼마 전에 생방송으로 중계된 로봇에 의한 탐사 역시 또 다른 벽이 있다는 사실로 인해 가벼운 해프닝으로 끝나고 말았다.

(생각해 보면, 쥐새끼나 다닐만한 공동을 ‘ 비밀통로 ’라고 칭하는 것도 코미디가 아니겠는가? 물론, 이를 위해 BBC와 같은 공영 방송이 거창하게 생방송까지 한 것을 보면 피라미드에 대한 신비라는 주제는 그야말로 세기의 특종이 될만한 가능성을 갖고 있다는 것. 즉, 어마어마한 돈벌이가 된다는 것을 입증하는 사례라 할 것이다.)

 

  ‘이번에야 말로 피라미드의 비밀이 밝혀진다.’라는 말은 쿠푸왕의 피라미드가 7대 불가사의 중 하나로 책정된 이래 계속된 일이지만 계속 나온 일이지만, 이제까지 어떤 시도를 통해서도 피라미드에 대한 비밀이 밝혀진 바가 없다.

 

  그것은 쿠푸왕의 피라미드에 숨겨진 비밀이 엄청난 것일지도 모르지만, 반대로 비밀 같은데 존재하지 않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보다 재미있는 사실은 피라미드의 비밀을 밝힌다면서, 보다 완성도가 높아서 조사하기 쉬운 다른 피라미드는 무시되고 있다는 점이다.)

 

  ‘ 피라미드의 신비 ’라는 거창한 이야기에는 사실 고고학에 대한 관심을 끌어내려는 학자들, 뉴스 거리를 만들려는 언론, 심지어 쇼 프로나 외계인 신봉 단체까지 기여하고 있다.

  그들의 머리 속에는 ‘피라미드는 무덤이자 파라오의 위엄을 상징하는 신전이다.’라는 생각은 존재하지 않고 있으며, 부실 공사와 시험적인 시스템의 도입으로 인해 여기저기 공동이나 틈새가 넘쳐나는 쿠푸왕의 피라미드는 그러한 기대감을 더해주고 있다.

 

  사실은 <엑스 파일>의 흔한 대사처럼 "진실은 바로 저기"에 있을지도 모르는데 말이다.

 

(* 쿠푸왕의 현실과 같은 설계는 그 전에도 그 후에도 어떤 피라미드에서도 도입된 바가 없다. 그만큼 쿠푸왕의 피라미드는 독특하지만, 건축이나 기술에 관한한 매우 현실적이기도 했던 이집트인들이 더 이상 사용하지 않은 설계라는 점은, 쿠푸왕의 피라미드가 부실하기 이를데 없다는 것을 증명하는 사례이기도 하다.

  그렇게 거대한 피라미드를 3번이나 개축을 했다는 사실은 쿠푸왕의 권력을 증명하는 사례이기도 하지만, 쿠푸왕의 피라미드가 지극히 부실한 불량품이라는 사실을 입증하고 있다.

  더욱이 쿠푸왕의 피라미드에 사용된 각종 설계(현실의 설계 등)는 그 후 어떤 피라미드에서도 채택되지 않을 만큼 악명이 높았다.)

 


3. 피라미드에는 신비한 효과가 숨겨져 있다.

 

  언제부터인가 '피라미드 파워'라고 하여 피라미드 모양의 부적이나 장신구가 등장하고, 심지어는 피라미드 모양의 방에서 잠을 자는 일까지 유행을 하곤 했다.


 

  그렇다면, 정말로 피라미드에는 놀라운 힘이 숨겨져 있는 것일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피라미드 효과'라는 것은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으며 단지 독일 전기 기술자의 착각과 지식 부족에서 나온 착각에 지나지 않는다.

 

  1859년 전신 케이블을 설치하기 위해 홍해로 온 독일 전기 회사의 사장 지멘스는 떡 본 김에 제사 지낸다는 식으로 마침 이집트 굴지의 관광 명소인 피라미드를 방문하기에 이른다.

 

  전기 회사의 창립자인 만큼 호기심이 왕성하고 시험을 좋아했던 그는 무심코 피라미드 꼭대기까지 올라가서 쉬게 되는데, 이 순간 손가락에 전기가 따끔한 것을 느끼게 된 것이다. 호기심을 느낀 그는 갖고 있던 도구들로 즉석 충전기인 라덴병을 만들었고 여기에 전기가 충전되는 사실을 발견했다.

 

  실제로는 피라미드가 아니라 에펠탑이나 남산 타워 꼭대기에서 실험했더라도 똑같은 결과가 나왔겠지만(피뢰침처럼 뾰족하고 높은 건물은 주변의 전하를 끌어들인다.), 당시에는 이러한 현상이 그다지 잘 알려지지 않았으며 더욱이 피라미드라는 장소의 매력이 겹쳐져 거창하게 ‘ 피라미드 효과 ’라는 명칭을 얻기에 이른다.

 

  피라미드 효과에 대한 ‘ 전설(?) ’은 1930년대 피라미드 내부에서 고양이 등의 시체를 발견했던 프랑스의 철물공 보비에 의해서 증폭되었다. 그는 피라미드 모양을 만들어 동서남북 방향으로 놔두고 그 안에 생선 등을 넣어 놓았는데, 이들이 모두 썩지 않고 미이라 화되어 버렸던 것이다.

  더욱이, 체코 기술자인 칼 드루발에 의해서 피라미드 내부에 둔 면도날이 날카로워지는 현상이 관측되면서(라는 이야기가 나오면서) 피라미드는 놀라운 효과를 갖고 있다는 이야기가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그 후 피라미드 효과에 대한 소문들은 눈덩이처럼 불어나기 시작했다. 상처가 나도 고통이 줄어들고 잠을 잘 자게 된다거나, 심지어 아이들이 말썽을 부리지 않게 되었다는 이야기까지 있었다. 그 중에는 피라미드 안에서 명상을 하면서 초능력을 사용하기도 했다는 이야기까지 나올 정도였다.

  이에 대해서 일부 학자들은 피라미드의 모양이 안테나와 같이 에너지를 끌어들이고 있다는 가설을 발표하기도 했으며, 이를 "피라미드 효과"라고 이야기하였다.

  그러나 현재까지도 사실로서 받아들여지고 있는 이 피라미드 효과는 실제로는 아무 것도 아닌 사기극이나 허구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이 속속 밝혀지고 있다.

  실제로 '과학적인 방식'으로 실시되었던 스탠포드 대학의 실험에 따르면, 피라미드 내부에 넣어둔 달걀은 구역질이 날 정도로 썩어 있었으며 면도날이 날카로워지는 현상도 입증되지 않았을 뿐더러, 피라미드 속에서 초능력을 발휘했다고 말하는 어떤 이들도 그들의 주장을 입증하지 못한 것이다.

 

  더욱이 피라미드 효과는 똑같이 보이는 여러 피라미드들이 사실은 제각기 다른 각도로 서 있다는 점에서도 문제가 되고 있다. 쿠푸왕의 대피라밋은 50도 정도이지만, 그 주변에 있는 그의 아들, 케프렌의 피라미드는 53도로 쿠푸왕의 피라미드에 비해서 조금 높다. 그리고 그의 아들인 미케리노스의 무덤은 이보다도 조금 더 각도가 높은 것이 사실.

(여러 번에 걸쳐서 개축되는 등 부실 공사의 문제가 심각했던 쿠푸왕의 피라미드와는 달리 이 두개의 피라미드는 체계적으로 제대로 완성되어 그 완성도가 훨씬 높다. 심지어 케프렌의 피라미드에는 그 표면을 채워두었던 반들반들한 면이 아직 일부 남아 있어, 피라미드의 완성 당시 모습을 짐작케 하고 있다.)



  혹자들의 추측에 따르면 피라미드 효과를 위해서는 쿠푸왕의 피라미드처럼 50도 각도로 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계산을 해 보면 케프렌의 피라미드 쪽이 제대로 된 피라미드 형태에 적합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유독 '부실 공사로 인해 각도를 낮출 수 밖에 없었던' 피라미드에서만 피라미드 효과라는 것이 등장한다는 건 도대체 무슨 말인가?

  어쩌면 피라미드의 효과가 너무도 우수해서 완성도가 낮은 쿠푸왕의 피라미드에서도 그 효과가 발휘되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지금으로서는 피라미드의 효과라는 것을 입증할만한 어떠한 증거도 존재하지 않는다.


  피라미드 효과에 대한 믿음은 피라미드 안에서 발견된 미이라들의 보존 상태가 너무도 좋다는 것에서 기인하는 바가 있지만 미이라는 피라미드에 의해서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실례로 피라미드와 무관한 왕가의 계곡이나 귀족들의 영묘, 심지어는 로마 시대의 공동 묘지에서조차 미이라를 발견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건조한 이집트의 환경은 본래부터 미이라가 발생할 가능성을 높여주고 있으며, 이를 통해서 이집트인들은 뛰어난 미이라의 제조법을 구축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일부 사람들의 생각과는 달리 파라오들은 무작정 붕대에 감긴채 피라미드 안에 안치되어 미이라화되는 것은 아니다. 그들은 오랜 경험을 가진 기술자에 의해 많은 시간에 걸쳐 「처리」되고 그 결과 "미이라로 완성된 상태"로 붕대에 감긴 채 피라미드 안에 들어가게 되는 것이다.

  우리들이 미이라를 통해서 파라오나 귀족들의 생전의 모습을 떠올릴 수 있는 것은 피라미드가 신비한 힘을 발휘하여 그들을 보호해 주었기 때문이 아니라, 장인 정신을 갖춘 고대의 미이라 제작자들이 파라오들이 사후 세계에서 사용할 육신을 보존하기 위하여 그들의 기술을 총 동원했기 때문이다.

  진정한 피라미드 효과란 바로 고대 이집트 장인들의 정신에서 흘러나온 것이라고 할까?(물론, 학구 정신에 불타는 학자들(이를테면, 스스로 미이라광이라고 말하는 밥 브라이어 박사 같은 사람) 역시 비슷한 방식으로 미이라를 만들 수 있지만 이를 위해서 피라미드 모양의 방이 필요하지는 않다.)


 

  그것이 돌로 되었건 아니면 쇠나 금으로 되었건, 피라미드에는 시체를 미이라로 만드는 효과도 없고, 무엇보다도 미이라를 썩지 않도록 보호하는 힘도 없다.

 

  실례로 피라미드에서 발굴한 여러 미이라들은 고대 이집트인들이 그렇게 다양한 조치를 취했음에도 불구하고 박테리아에 의해서 천천히 썩고 있는 상태였던 것이다.(사람들이 그렇게 신봉하는 쿠푸왕의 피라미드에서 발견된 미이라에서 이러한 증상이 발견됨에 따라, 미이라를 조사하기에 앞서 방사선을 쬐어 소독하는 단계가 추가되었다.)

 

  어쩌면 피라미드 모양에는 혹자들이 주장하듯 ‘ 우주의 기가 모여드는 효과 ’가 있기 때문에 어떤 신비한 증상이 나오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조사 결과를 놓고 보면 피라미드 효과는 다분히 「위약 효과(사탕을 약으로 알고 먹으면 약을 먹은 것으로 착각해서 병세가 호전되기도 하는 효과)」와 같은 심리적인 영향이 큰 것으로 생각되고 있다.

  즉, "나는 피라미드 형태의 방에 들어왔다. 여기에는 우주의 기가 모이고 있기 때문에 마음이 차분해진다."라는 생각만으로 마음이 차분해지고, 머리가 맑아지며 상처의 고통이 줄어드는 것처럼 말이다.

(실제로 이와 관련된 실험에서 눈을 가리고 자신이 피라미드 내부에 있다는 것을 모른 상태에서 들어간 이들은 도리어 「눈을 가린 것으로 인한 불안감」을 호소했을 뿐이다.)


 

  그렇다면, 왜 지금에 이르기까지 피라미드 효과 관련 상품이 인기를 끌고 있는 것인가? 그것은 언론에서 몇 번이고 떠들어대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쿠푸왕의 피라미드라는 거대한 위용이 사람들의 마음속에 잠재되어 있기 때문이 아닐까?

 

  하지만, 누가 뭐래도 피라미드에는 매우 중대한 효과가 남아있다. 그것은 명상이나 수련, 혹은 신비한 기도에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보다 직접적으로 막강한 영향력을 미치는 강력한 효과이기도 하다.

  바로 『피라미드 특집』이라는 말 만으로 천문학적으로 늘어나는 광고비와 시청율, 그리고 이집트 항공과 정부, 호텔, 그리고 상인들에게 쏟아부어주는 관광비와 싸구려 모조품의 구입비용, 그리고 아무 것도 아닌 피라미드 모양의 장신구를 고가에 구입함으로서 상인들의 배를 불리는 효과나 피라미드를 내세운 종교의 교주가 만복을 누리게 하는 효과가 그것이다.

  피라미드라는 말 하나만으로 무한한 돈벌이를 가능하게 하니, 이것이야 말로 현재와 같은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그야말로 가장 강력한 ‘ 피라미드 효과 ’가 아니겠는가?


  피라미드에 숨겨져 있는 신비가 어떤 것인지 현대 과학의 힘을 빌려서도 밝혀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닐 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들이 ‘피라미드의 신비’라고 쉽게 말하는 이면에는 지금은 2등 국가(어쩌면 3등국가)로 전락해버린 이집트의 현재를 바탕으로, 이집트의 고대인들을 멸시하는 자만심이 숨겨져 있는 것이 아닐까?

 

  우리네 현대인들은 고대의 위대한 유산들을 보고 ' 불가사의 '라거나, ' 고대인 주제에 '라는 식으로 엉뚱한 이야기를 늘어놓는 경향이 있다. 이러한 고대인에 대한 멸시에 가득한 고압적인 태도로는 고대인의 신비를 밝히는 것은 어려울 일이 아니겠는가?

 

  진정으로 고대인의 신비에 접근하고 그들의 비밀을 밝혀내려면 그들 역시 지금의 우리가 갖고 있는 지혜를 갖고 있는 인류의 일원이라는 사실, 그리고 그들은 존경받아야 마땅한 우리의 선조라는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고대인들은 결코 우주에서 내려왔다가 어디론가 날아가 버린 존재가 아니기 때문에...

 

 

  ' 피라미드는 고대의 기술로 만들 수 없다. '는 말에 묵묵히 작은 피라미드를 만들어 보인 레너 교수나 '그들에게는 미치지 못하지만...'이라며 멋진 미이라를 남겨준 밥 브라이어 박사의 태도, 그리고 지금도 피라미드에 대한 관심을 버리지 않고 새로운 가능성을 찾아내는 수많은 학자들의 모습은 바로 후손으로서 조상의 위대한 업적을 되새긴다는 겸손한 태도에서 나온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하며 글을 마친다.

 

  결국 인류의 문명은 그러한 겸손하면서도 과학적인 태도를 바탕으로 발전한 것이므로...


(* 이 글은 네이버 블로그에 올렸던 내용으로 최신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일부 수정했습니다.)

(* 여기에 사용한 사진 자료들은 모두 내셔널 지오그래픽과 히스토리 채널 등의 다큐멘터리 자료에서 발췌한 것입니다.)

posted by 별을 좋아하는 표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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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과 우주 이야기 2012.03.09 14:22


  금성이나 화성, 수성 등 '지구형'의 다른 천체와 지구를 행성 그 자체로 비교할 때 가장 큰 차이점 중 하나는 지구는 '살아있다.'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지구에 생명체들이 살고 있다는 것이 아니라, 지구라는 행성의 내부가 아직 완전히 식지 않은 채 움직이며 자기장을 형성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지구와 비슷한 크기인 금성조차 자기장이 거의 없다는 것을 생각 할 때 그만큼 지구는 독특한 존재입니다. (금성은 자체적인 자기장은 없는데 그 이유는 아마도 금성이 지구보다 먼저 식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아이작 아시모프는 로봇 시리즈에서 지구에 방사성 물질이 지나치게 많아서 돌연변이가 빨랐다는 가설을 제시했는데, 방사성 물질이 다른 행성보다 많다면 그만큼 천천히 식을 것입니다. 또는, 지나치게 큰 달의 조석 현상이 지구가 식는 것을 막아주었을지도 모릅니다. 어찌되었든 금성에는 없는 자기장이 지구에만 존재하는 것은 참으로 흥미로운 문제입니다.)
 
  지구는 목성 등 큰 천체에 비해 작은 크기에 지나지 않지만, 강력한 자기장으로 주변에 영향을 주며, 특히 태양에서 날아오는 하전 입자가 직접 대기에 도달하지 않도록 막고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도 지구 자기장은 지구의 특징일 뿐만 아니라 지구가 살아있게 해주는 소중한 원천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근래의 지질학적 조사 결과 지구 자기장이 계속 변화하고 때로는 완전히 사라지는 일도 있었다는 것이 밝혀졌습니다. 지구 자기장이 하전 입자를 막아준다는 것을 생각할 때 만일 지구 자기장이 사라진다면 상당히 큰 문제가 일어날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흔히 지구 자기장이 사라지면 태양풍의 하전 입자가 지상으로 쏟아져 내려와 위험하다는 의견이 종종 등장합니다. 이와 관련하여 일본의 한 만화에서는 지구 자기장이 약해져 방사선이 쏟아져 내려오면서 인류가 지하로 숨었다는 설정을 소개하기도 했으며, 할리우드에서는 <코어>라는 영화를 통해 지구 자기장이 멈춘 상황에서 인류가 1년 내에 멸망한다는 충격적인 설정을 제시하기도 했습니다.
 
  한편, 과학계에서는 지구 자기장이 사라지면 빙하기가 나온다는 주장이 나오기도 했습니다. 지구 자기장이 사라진 시기와 빙하기가 겹친다는 증거를 바탕으로 시작된 이야기인데, 앞서 소개한 충격적인 설정에 비해 그다지 잘 알려진 이야기가 아닌 듯, 제가 활동 중인 모임(조이 SF 클럽)에서 나온 질문에 대해 다른 분이 제대로 대답하지 못하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실제로 인터넷을 뒤져도 이에 대한 해답은 거의 나오지 않고 있으니까요.
 
  사실, 지자기와 빙하기가 관련되었다고 생각하기는 어렵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둘 사이에 상관 관계가 느껴지기 않기 때문입니다.
 
  일반적으로 생각할 때 지구 자기장은 태양풍을 막아주기 때문에 지구 자기장이 약해지면 태양풍이 지구에 더 많이 도달해서 지표가 더워질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사실 태양풍은 많은 에너지를 갖고 있어서 실제로 태양풍이 지구에 더 많이 도달하면 지구는 당연히 더워지게 마련입니다. 지구에 도달한 태양풍이 에너지를 발산하고 그것을 지구 대기와 지표가 흡수하게 될 테니까요.
 
  하지만, 이러한 생각은 지구 자기장이 태양풍을 차단하는(사실 이 말은 반만 맞습니다) 원리를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지 못한데서 발생합니다.
 
  지구 자기장에 대해서 설명하는 거의 모든 내용들이 "왜 자기장이 하전 입자를 차단할 수 있는지" 설명하지 않고, 단지 "자기장이 있어서 하전 입자를 막아준다."라는 모호한 설명만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다보니 자기장을 스타워즈 같은 작품에 나오는 차폐막처럼 생각하는 사람도 등장합니다. 마치 자기장이라는 방패가 지구를 둘러싸서 태양풍이 접근하는 것을 막아준다고 착각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 말은 정확하지 않습니다. 자기장은 하전 입자(荷電粒子, +나 -로 대전된 입자. 대개는 전자나 양자. 중성자는 '중성'으로 하전 입자에 속하지 않는다.)를 막아주지 못합니다. 자기장은 하전 입자에 영향을 주고, 그들이 지표면에 바로 내려오지 못하게 해 줄 뿐입니다. 그것도 방패라기보다는 그물 같은 방식으로...
 
 
  그렇다면 지구 자기장은 과연 어떻게 해서 하전 입자를 막아주는 것일까요? 그리고 왜 지구 자기장이 빙하기와 관련될 수 있는 것일까요?
 
  우선, 지구의 자기장은 하전 입자를 막지 않습니다. 지구 자기장은 방패나 차폐막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단지 하전 입자에 힘을 주어 지표면에 내려오는 것을 막아주고, 심지어는 지구에서 멀리 떨어진 곳을 지나가는 하전 입자마저도 지구 주변으로 끌고 와서 지상의 생명체를 보호합니다.
 
  그것은 바로, 잘 알려진 플레밍의 왼손 법칙에 의한 결과물입니다.
 
  왼손 법칙이란 자기장 속을 전류가 흐를 때 그 전류가 이동 방향에 직각으로 힘을 받는 법칙입니다. 흔히 전동기의 원리라고 부르는 법칙으로, 현대 문명을 이루는 중요한 법칙 중 하나입니다.
 

[ 플레밍의 왼손 법칙. 이처럼 자기장 속을 흐르는 전류(하전입자의 흐름)가 힘을 받는다. (엔사이버 백과) ]  
 
 
  왼손 법칙이라면 '전류가 흐르는 도선에 힘이 가해진다.'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전류라는 것은 반드시 도선을 흘러갈 필요는 없습니다. 전류(電流)란 보다 정확하게 말하면 전자와 같은 하전 입자가 한쪽에서 다른 쪽으로 흘러가는 것을 가리키는 것이니까요. (가령, 번개 역시 하전 입자의 흐름, 즉 전류입니다.)
 
  태양풍에 포함된 하전 입자가 태양에서 출발해서 태양계 바깥으로 나아가는 것도 곧 전류라고 볼 수 있습니다.
  결국, 하전 입자가 지구자기장을 지나가면(흘러가면) 플레밍의 왼손 법칙에 의해 하전 입자에는 이동 방향의 직각으로 힘이 가해지고 이동 방향에 변화가 생겨납니다. 이동 방향이 달라지면 힘이 가해지는 방향도 달라지게 되는데 그 결과 하전 입자의 움직임은 다음과 같은 형태를 띄게 됩니다. 

[ 자기력선 주변의 하전 입자의 흐름. 파란 선처럼 자기력선을 중심으로 주변을 돌게 된다. ]
 
  바로 자기력선을 중심으로 제자리에서 빙글빙글 도는 것입니다.
 
  이때 지름은 하전 입자가 가진 전하량, 그리고 자기력의 힘에 따라 달라집니다. 자기력과 전하량이 낮으면 힘이 약하니 지름이 늘어나고(크게 돌고), 자기력과 전하량이 크면 힘이 강하니 지름이 줄어듭니다.(좁게 돕니다.)
 
  어느 쪽이건 태양풍 속의 하전 입자는 마치 그물에라도 걸린 듯 지구 주변에 머무르게 됩니다.
 
  하전 입자가 머무르는 위치는 태양풍의 속도와 자기력의 세기에 관련되어 있습니다. 태양풍이 빠를수록 지구 주변에 머무를 가능성이 줄어들고, 자기력이 높을 수록 지구 주변에 머무를 가능성이 커집니다. 그 위치 역시 태양풍의 속도와 지구 자기장의 힘에 관련되는데, 지구 자기장의 변화가 크지 않고 태양풍의 속도도 어느 정도 일정하기 때문에 이러한 현상은 대개 비슷한 지점에서 일어납니다.
 
  그리하여 하전 입자들은 비슷한 지점에 계속 모여서 반 알렌대라는 지점을 형성합니다.
 
  반 알렌대에서 방사선이 매우 강한 것은 바로 높은 에너지를 가진 태양풍의 하전 입자(가령 베타선(-)이나 알파선(+))가 많이 모여있기 때문입니다. 그물로 물고기를 잡아서 건져 올린 느낌... 하전 입자의 우물이라고 해도 될 것입니다.
 
  한편, 하전 입자는 시간이 흐르면서 전자를 방출하거나 받아들이면서(에너지를 발산하여 안정되면서) 평범한 입자로 바뀝니다. 대개는  베타선(전자)과 알파선(양자, 헬륨 원자핵)이 합쳐서 수소나 헬륨 원자로 바뀌게 마련입니다. 그리고 원자들은 다시 분자를 이룹니다.
 
  이들 원자나 분자는 전기적으로 중성입니다. 그러니 더 이상 자기장의 영향을 받지 않으며 그 순간 이동하던 방향으로 날아가 버립니다. 그에 따라 일부는 우주로, 또 일부는 지구로 들어갑니다. (지구 대기권에서는 수소나 헬륨이 끊임없이 우주로 빠져나가지만, 이 과정을 통해 보충됩니다.) 원자(분자)는 평범한 물질이니 지구에는 아무런 피해도 주지 않습니다.
 
  이것이 바로 지구 자기장이 하전 입자를 막아서 지구를 보호하는 원리입니다. 방패처럼 하전입자를 막는 것이 아니라 하전 입자가 에너지를 모두 발산해서 안전해질 때까지 지구 밖 먼 곳에 머무르게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자기장이 태양풍을 완벽하게 막아주는 것은 아닙니다. 자기장은 오직 하전 입자만을 막아줄 수 있습니다. 전기적으로 중성인 태양풍의 나머지 전자기파, 즉 적외선, 가시광선, 자외선, 엑스선, 감마선 등은 자기장이 아닌 지구의 두터운 대기층. 특히 이들의 에너지를 흡수해서 금방 산소로 분해되는 오존이 대부분 막아 줍니다.
 
  당연히 지구 자기장이 없어도 하전 입자 대부분은 대기층을 통과하는 동안 에너지가 발산됩니다. 알파선이나 베타선은 특히 대기 속에서는 그다지 멀리 이동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투과력도 얼마 되지 않습니다. 알파선은 종이나 천으로도 막을 수 있을 정도. 베타선은 얇은 금속판 정도면 충분히 차단합니다.
 
  태양에서 날아오는 하전 입자의 양이 많지만, 그들이 두터운 대기층을 지나 지상에 도달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게다가 인류에게 심각한 피해를 주기는 더욱 힘듭니다. 때문에, 지구 자기장이 없으면 우주선 때문에 인류가 멸종한다는 말은 사실이 아닙니다. 그 주장이 사실이라면 -과거에도 몇 번씩 지구 자기장이 사라졌기 때문에- 지구의 육상 생명체는 몇 차례에 걸쳐 사멸, 생성을 반복했을 것입니다.
 
  영화 <코어>처럼 지금 당장 지구자기장이 사라진다고 해도(그럴 수는 없지만), 태양풍의 하전 입자 때문에 다소 불편할지는 몰라도 위험하지는 않습니다. 외출을 조금 삼가고 옷을 두껍게 입는 것으로 충분합니다.
(그보다는 빠른 속도의 '태양풍'이 지구의 대기층 상층부를 스치고 지나가면서 지구의 대기층이 줄어드는 것이 더 문제입니다. 일시적인 현상이라면 모르겠지만, 지구 자기장이 완전히 사라져 버리면 지구 대기층은 점차 얇아질 가능성이 높습니다.)
 

 [ 할리우드의 재난 영화는 항상 과장되었지만, 이 작품은 특히 심했다. 영화 <코어> ]
 
 
  하지만, 지구 자기장이 사라지면 인류는 힘들어집니다. 태양풍에 들어 있는 하전 입자가 지표면에 떨어지기 때문이 아니라, 태양풍 때문에 대기층이 손상을 입을 수 있으며, 무엇보다도 지구에 유입되는 에너지량이 변화하여 기상 이변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가령, 빙하기가 일어나거나 반대로 지구가 달아오를 가능성이 있습니다. (대개는 빙하기가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지구 자기장과 기후 변화는 무슨 관계가 있는가?
 
  이를 위해서는 앞 내용에 조금 더 설명을 추가할 필요가 있습니다.
 
 
  자기장의 영향으로 지구 주변에 머무른 하전 입자는 시간이 지나면 에너지를 발산하며 수소나 헬륨 원자로 바뀝니다. (이윽고 원자 둘이 합쳐져 분자가 됩니다.) 이때 발산된 에너지는 대개 느린 속도로 사방으로 퍼져나가는데 그 중 일부가 지구에 들어갑니다.
 
  지구 주변에 머무르는 하전 입자의 양이 많을수록  지구에 유입되는 에너지는 늘어납니다. 반대로 지구 주변에 머무르는 하전 입자가 적을수록 지구에 유입되는 에너지는 줄어듭니다.
 
  지구 주변에 머무르는 하전 입자의 양은 자기장의 세기, 태양풍의 속도에 따라 달라집니다. 자기장이 강할수록 하전 입자는 많이 머무르게 되고, 자기장이 약해지면 하전 입자의 양은 줄어듭니다. (자기장이 강할수록 지구에서 멀리 떨어진 곳을 지나는 하전 입자도 끌어들일 수 있습니다.)
 
  자기장이 강하면, 지구에서 먼 곳을 지나 지구에 떨어질 수 없는 하전 입자들도 끌어들이게 됩니다.
 

 
[ 멀리 떨어져 지나가던 하전 입자의 흐름. 이처럼 자기력의 영향으로 지구 쪽으로 방향이 바뀌고 결국엔 빙글빙글 도는 상태가 된다. ]
 
  반 알렌대의 모습을 보면 이러한 현상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실제 반 알렌대는 태양 쪽만이 아니라 태양 반대쪽에도 생겨나는데, 이 부분에 머무르는 하전 입자가 바로 본래는 지구 주변을 통과해서 지나갈 하전 입자입니다. (이 모양을 보고 '태양풍 때문에 반 알렌대가 찌그러졌다라고 착각하기 쉽지만, 절대로 그렇지 않습니다. 반 알렌대의 모양이 태양풍의 속도와 관련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바람에 휩쓸리듯 밀려난게 아니라 자기장의 작용으로 이와 같은 형태를 띈 것입니다.)
 

[ 반 알랜대의 모습. 지구 뒤쪽으로도 발생하는 건 본래는 지구를 지나갈 하전 입자가 자기장 때문에 지구 근처에 머무르기 때문이다. ]
 
  하전 입자는 전자기파의 형태로 에너지를 발산하고 그 에너지 중 일부는 지구에 들어옵니다. (심지어 밤인 지역에도...)
 
  지구 자기장이 사라지면 하전 입자들은 -지구에 바로 떨어지는 것들 일부를 빼면- 지구를 그냥 통과하고 그만큼 지구는 에너지를 받지 못합니다. 실질적으로 지구상에 들어오는 에너지량은 자기장이 있을 때보다 훨씬 더 줄어들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 빙하기가 찾아올 가능성도 있습니다. 물론, 하전입자가 지상에 그대로 도착하는 만큼 지구에 유입되는 에너지가 늘어난다고 생각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지구에 바로 떨어지는 하전 입자도 대개는 대기권 높은 곳에서 에너지를 발산하는데, 그 중 절반 이상은 우주로 날아가버리는 만큼 에너지량이 늘어나리라고는 보기 어렵습니다. 반 알렌대에서 뿜어내는 에너지량과 비교할 때 상당히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것이 어느 정도의 결과를 낳을지는 아직 알 수 없습니다. 이를 위해서는 반 알렌대에서 방출되는 에너지 중 어느 정도나 지구에 들어오는지, 그리고 자기장이 없을 때 어느 정도의 에너지가 지구에 전해질지 좀 더 많은 조사와 연구를 진행해야 할 것입니다.
 
  어찌되었든 지구 자기장은 기후에 변화를 가져오고 빙하기를 가져올 수도 있다는 주장은 무시할 수 없는 가능성을 갖고 있습니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지자기 역전이건 지자기 소멸이건 지자기의 변화는 매우 오랜 시간에 걸쳐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영화 <코어>처럼 한 순간에 지자기가 사라질 가능성은 없으며, 적어도 가까운 장래에 우리가 지자기 소멸로 인해 고생할 일은 없을 것입니다.
 
 
여담) 대기도, 자기장도 없는 달에서는 하전 입자가 그대로 내려와 모래(레골라스)를 대전시킵니다. 그래서 정전기가 일어난 것처럼 물체에 잘 달라붙는 상태가 됩니다. 아폴로 계획의 우주인들이 달에 내려간지 오래되지 않아 먼지가 잔뜩 묻은 듯 까맣게 변하는 것은 바로 그 때문이며, 이 역시 인류가 달에 갔다는 증거 중 하나입니다. 지구 상에서는 이처럼 대량으로 대전된 토양을 준비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정전기는 오래 가지 못하고 우주복을 털면 가볍게 떨어져 나갑니다.
 
여담) 앞서 말한 자기장 속에서 하전 입자가 회전하는 현상은 반전자나 반양자처럼 전하를 가진 반물질을 안전하게 보관하는데도 이용합니다. 다만, 반전자나 반양자와는 달리 전하를 갖지 않는 반원자를 보관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한가지 방법은 반전자와 반양자를 따로 보관하다가 필요할 때 둘을 합쳐서 반원자로 만들어 쓰는 것일 것입니다.


* 이 글은 2010년 07월 11일에 네이버 블로그에 올렸던 글입니다. 앞으로 소개할 글과 관련이 있기에 다시 등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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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과 우주 이야기 2012.03.09 11:19
미국의 연구팀이 분자내의 원자의 움직임을 초고속으로 촬영하는데 성공했다는 소식입니다.



  작은 입자인 분자와 원자의 사진은 이미 오래전에 성공했지만, 이번 일은 그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대단한 결과물입니다.

  그렇다면 이 연구는 어떤 쓸모가 있을까요? 우선 그만큼 기술이 발달했다는 것을 보여주고, 과학의 경이를 사람들에게 인식시킬 수 있다는 점을 생각해 볼 수 있지만, 무엇보다도 분자내에서 일어나는 원자끼리의 '반응'을 살펴볼 수 있다는 점에서 놀라운 결과물입니다.

  아시는 분도 계시겠지만, 분자 내의 원자는 원자 모형처럼 가만히 고정되어 있는 것이 아닙니다. 끊임없이 원자끼리 반응을 하면서 분자로서의 특성을 나타내고 있는 것이지요. 이제껏 이 같은 반응은 결과 만을 통해서 추측할 수 밖에 없었는데, 이번 연구 결과를 통해서 원자간의 반응을 매우 짧은 시간 단위로 살펴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분자 내의 개별적인 원자들의 움직임을 살펴보고 이들의 반응을 실시간으로 관찰함으로써 분자 내의 원자 반응 효율을 높이는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만큼 다양한 분야에서 활용할 수 있습니다. 가령 연료전지의 효율을 높이거나, 신약에 필요한 단백질의 구조를 해명하는 등의 작업에 말이지요.

  이른바 분자의 효율을 높이는 다양한 분야에 응용된다는 것입니다. 비록 이번 연구는 매우 간단한 분자의 간단한 원자들에 대해 이루어진 일이지만, 앞으로 발전에 따라서 활용 가능성은 무궁무진합니다.

  그런 점에서 이번 연구는 참 대단한 것이며, 그만큼 자연의 비밀에 한발짝 접근한 것이지요. 앞으로 이를 통해 더욱 다양한 가능성이 펼쳐질 수 있기를 기대해 봅니다.


여담) 과학계의 최신 소식을 소개할 때는 외국 기사를 대충 번역해서 소개하는 것에 그치지 보다는 좀 더 자세하게 정리해 주면 좋겠습니다. 신문들마다 서로 베끼기만 일쑤고...
  하긴, 과학 전문 기자가 그만큼 부족하다는 말일 수도 있겠죠. 하지만 외국의 기사를 좀 더 자세하게 살펴서 정리하기만 해도 훨씬 나을텐데 말이죠.

여담2) 사실은 이러한 촬영의 성공은 이미 오래 전에 기대했던 일입니다. 어떻게 하면 될지 방법은 예상했지만, 그에 어울리는 장비가 없었던 것이지요. 매우 짧은 파장의 X선 자유전자 레이저 시스템이 필요한데, 이 같은 시스템은 그만큼 막대한 예산이 들어가기 때문입니다. 유럽에서는 12개국이 공동으로 참여하여 시설을 건설하였고, 일본에서도 얼마 전 SACLA(사쿠라)라는 이름의 시설을 완공하였습니다. 이 같은 시설이 있었기에 원자의 움직임 관찰이라는 놀라운 결과를 낳을 수 있었던 것이지요. 과학 기술은 그만큼 막대한 투자가 필요하다는 것을 잘 보여주는 사례라고 할 것입니다. 

[ 일본의 X선 자유전자레이저 연구 시설 SACLA(사쿠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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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과 우주 이야기 2011.08.10 10:27
1846년의 오늘 미국에서 스미소니언 협회가 설립되었습니다. 스미소니언 협회라면 흔히 세계 최대의 박물관인 스미소니언 박물관을 떠올리곤 하는데, 사실은 박물관만 19개를 설립/운영하고 있으며 연구 시설을 비롯해서 수많은 조직을 거느린 거대 협회입니다.

[ 스미소니언 협회가 있는 스미소니언 빌딩 / 워싱턴 D.C. ]


  스미소니언 협회는 영국의 화학자이자 광물학자인 제임스 스미스슨의 유산을 바탕으로 탄생했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제임스 스미스슨이 미국을 한번도 들른 일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가 왜 미국에 대해서 "지식의 향상과 보급을 위하여" 유산을 제공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의 유산은 여러 우여곡절 끝에 미국에 전달되었고, 역시 우여곡절 끝에 미국 대통령의 결단으로 협회 설립에 지원되었습니다.

  스미소니언 협회가 운영하는 박물관과 연구 시설 대부분은 미국의 설립과 함께 탄생한 계획 도시, 워싱턴시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스미소니언 협회의 박물관 운영비는 모두 정부의 재원과 기금, 기부, 그리고 박물관 내의 상점과 출판물에서 나오고 있어서 모두 무료이기에 워싱턴 시를 들르는 관광객 만이 아니라, 전국 각지의 미국인들이 즐겨 방문하는 곳으로 자리잡았습니다.

  한 사람의 좋은 뜻이 모두에게 이어져 많은 이에게 즐거움을 주게 된 대표적인 사례.

  우리나라에서도 이처럼 좋은 일이 자주 일어나기를 바랍니다.


  여담으로, 제임스 스미스슨의 인생은 그다지 순탄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영국귀족의 사생아로 태어나(태어난 날도 모릅니다.) 결국 자식으로 인정받기는 했지만, 역시 여러가지 우여곡절이 있었는지 아버지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던 모양입니다. 그는 생애에 걸쳐 많은 연구를 진행한 모양이지만, 그가 어떤 연구를 했는지는 별로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그의 연구 노트와 과학 수집품, 그리고 수기 등은 스미소니언 박물관에 보관되었지만, 화재로 인해 모두 사라져 버렸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의 이름은 오늘도 스미소니언 박물관과 함께 남아 있습니다.

[ 제임스 스미스슨 ( 1765년 ?월 ? 일 - 1829년 6월 27일 ) ]

★~을 사랑하는 표도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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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과 우주 이야기 2011.07.21 11:22

  1925년 7월 21일. 미국의 테네시주에서 한 재판이 열렸다.

  스콥스 재판, 또는 스콥스 원숭이 재판이라고 알려진 이 사건은 자유 인권 주의와 그리스도교 신학간의 충돌인 동시에, 종교 근본주의자의 문제점을 여실히 드러낸 사건이었다.

  1925년 미국 테네시주에서는 그리스도교 근본주의 단체인 세계 기독교 근본주의 협회(World's Christian Fundamentals Association)의 로비로 주내의 공립학교에서 진화론 교육을 금지하는 법안(버틀러법)이 통과되었다.

  이에 대해 미국 민권 자유동맹(American Civil Liberties Union)은 반대 운동을 벌였고, 고등학교 생물교사이자 미식축구 코치인 존 스콥스가 자원하여 5월 5일 다윈의 [종의 기원]에 바탕으로 두고 개발된 교과서로 진화론을 가르쳐 기소되기에 이른다.

  재판은 근본주의 단체와 자유 인권 주의 단체로 전개되었고, 양쪽에서 거물 변호사를 동원한 싸움이 시작되었다. 8일에 걸친 재판동안 1,000명이 넘는 사람이 모여들었고, 학자 등 많은 이가 관심을 보인 이 재판은 성경이나 진화론에 대해 논하는 복잡한 전개를 보였다.

  재판 결과는 테네시주의 주법을 어긴 것이 명확하다는 이유로 스콥스의 유죄로 판결되었다. 마지막으로 할 말이 있는지에 대해 스콥스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 존 스콥스 ]


  “존경하는 재판장님, 저는 유죄 판결이 불공정하다고 여깁니다. 저는 과거에 그래왔듯, 앞으로도 제가 할 수 있는 한 이 법안에 저항할 것입니다. 이 법안에 따르는 것은 개인과 종교의 자유처럼 미국 헌법으로 보장된 사상의 자유에 대한 제 신념에 반하는 것입니다.  벌금은 불공정하다고 생각합니다.”
 
 
 1년 후 주 대법원에서 재판 절차상의 잘못을 이유로 재판은 무죄로 선고했지만, 스콥스 재판의 결과는 그리스도교 근본주의자의 기세를 드높여주었고, 이후 진화론 반대 운동이 확산되어 여러 주에서 유사한 반 진화론 법안을 고려하는 결과를 낳았다.

  대부분의 주에서는 이 법안을 통과시키지 않았지만, 미시시피주와 아칸소주에서는 버틀러법과 유사한 법안을 통과시켰고, 테네시 주의 반 진화론 법안은 1965년이 될 때까지 개정되지 않았다. 이후 많은 과학 교과서에서 진화론 항목이 사라져 버렸고 심지어는 과학 수업 자체가 줄어들고 말았다.

  변화는 예상치 못한 형태로 일어났다. 1957년 소련은 스푸트니크를 발사하여 세계 최초로 인간이 만든 인공 물체를 우주로 쏘아올리는 쾌거를 이룩하였다.

[ 신문을 지면을 가득 메운 스푸트니크 기사 ]


  핵병기의 공포가 밀려오던 시기였다. 금방이라도 하늘에서 소련의 핵폭탄이 떨어질 거라는 공포에 미국 사회는 동요했고, 책임을 묻기 시작했다.

  결론은 명백했다. 미국 사회는 교육의 문제, 특히 과학 교육의 부재를 원인으로 지목하였고, 1958년 국가 방위 교육법(National Defense Education Act)을 거쳐 교육 정책의 일대 개혁을 실시하였다.

  새로 개정된 과학 교과서에서는 단순히 진화론을 추가한 것에 그치지 않고 생물학계의 통일된 주장으로서 진화론을 중요하게 거론하게 되었다. 창조설이나 그와 유사한 어떤 종교적 내용도 포함되지 않은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1981년 말 한때 버틀러법안과 유사한 법안을 채택하기도 했던 아칸소 주에서 ‘제2의 스콥스 재판’이라 불리는 재판이 진행되었다. 아칸소주에서는 근본주의자의 로비를 받아 “과학적 창조주의에 대해 균형잡힌 처리”를 두도록 학교에 요구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그러나, 1982년 1월 5일 오버튼 연방 판사는 이 법안이 “정교 분리의 원칙에 위배된다.”라고 선언하며 “창조주의는 과학이 아니며, 진화 또한 종교가 아니다.”라고 규정했다.

  이후에도 창조설을 교과과정에 넣으려는 근본주의자들의 시도는 계속되고 있으며, 심지어 부시 대통령이 지지하며 주목받기도 했지만, 미국의 교과서나 교과 과정에 창조설이 추가되거나 진화론을 가르치는 일이 중단되는 일은 없었다.


여담) 하지만, 성경이라는 특정한 종교의 교리에 입각한 창조설을 교과 과정에 넣거나 아이에게 가르치려는 종교 근본주의자의 시도가 그친 것은 아니다.

  2004년 10월 펜실베니아주의 도버 교육 위원회는 지적 설계론이라 불리는 내용을 교과 과정에 추가하였다. 이는 많은 학부모와 교사, 그리고 민권 자유 동맹 등 단체의 반발을 가져왔고, 즉각 소송이 진행되었다.

  당시 재판을 맡은 존 존스 판사는 "‘지적설계론’은 “창조설에 이름을 달리 붙인" 것으로서, 과학이 아니라는 결론을 내렸다며 도버 교육 위원회의 결정이 정교 분리를 앞세운 헌법에 어긋난다고 판결하였다. 존 존스 판사는 도버 교육 위원회는 “너무 어리석은” 교육정책을 세우고, 일부 교육위원들은 종교 교육을 촉진하려는 진정한 동기를 숨겨 자신들의 공동체를 “돈과 인적 자원을 낭비하는 법의 소용돌이 속에 빠트렸다”고 비판했다.

  이처럼 공공 교육에 창조설을 집어넣으려는 시도가 계속 무너지자, 근본주의자들은 홈스쿨용 창조설 교과서를 만들고 창조설 박물관을 세우며 미션 스쿨 등의 종교 학교를 통해 창조설을 가르치는 등 다양한 분야의 시도를 진행하고 있다.

[ 미국에 세워진 창조설 박물관 ]

  이에 대한 학계의 반발도 계속된다. 실례로 캘리포니아 주의 공립대학(UCLA, UC Berkely, UC Irvine)에서는 "창조설을 지지하는 생물학 교육을 받은 학생들은 대학에 들어올 수 있는 입학 자격을 갖추지 못했다."라고 판단하며 그들의 입학을 거부하기에 이른 것이다. 그들이 배운 창조설 기반의 생물학 교과서 "Biology : God's Living Creation and Biology"가 대학 교육 준비를 위한 교과서로 적합하지 않다는 판단에 따른 결정이었다.

  근본주의자 집단이 대학 측에 소송을 제기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당시 그들은 지적설계론 담당의 교수마저도 내세워 (아이러니하게도) "언론과 사상의 자유를 억압"하는 것이라 역설했지만, 연방 사법 재판소는 대학의 결정이 "합리적이며 차별적인 요인이 없다."라며 판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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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Addr  Edit/Del  Reply 릿찡

    사실 미국이 기독교 라는 굴레에 있다는 것은 어찌보면 축복일지도 모릅니다. 그거 벗어봐요...

    2011.11.22 11:32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