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 이야기 2012. 4. 16. 18:14

  직업이라는 것은 '먹고 살기 위해서 하는 일'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사람이 먹고 살려면 최소한의 조건이 몇가지 있는데, 이 조건들을 충족하기 위해서는 이를 얻기 위한 무언가가 필요합니다.

 

  우리 사회 속에서 삶을 위한 기본적인 조건을 맞추려면 '돈'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우리 세계에서 직업이라는 것은 결국 '돈을 얻는 보답으로 하는 일'이라고 해야 겠군요.

 

  이따금 '직업'을 '개인의 꿈을 이루는 일'이라고 생각하는 이들이 있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이상론에 지나지 않습니다. "직업으로 꿈을 이룬다"라는 것은 어디까지나 먹고 사는 일이 보장된 뒤에나 생각할 수 있는 일입니다.

 

  "배부른 돼지가 될 바에야 굶주린 소크라테스가 되겠다."라는 말이 있지만, 이 역시 이상론입니다. 소크라테스는 부유하지는 않았을지 몰라도 적어도 굶어죽을 정도는 아니었습니다. 다시 말해 '굶주린 소크라테스'라는 것에는 "넉넉하지는 못해도 최소한 굶어죽지는 않는..."이라는 현실적인 한계는 존재한다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직업으로 꿈을 이룬다"라는 것도 바로 이러한 "현실적인 한계"가 존재하는 상황에서 이룰 수 있는 일이라는 말이 되겠군요.

 

 

  직업은 "무언가 일을 한 것에 대한 보답으로 돈을 받는 활동"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무언가의 일"이라는 것에는 매우 다양한 것이 있지만, 그 작업 방식에 따라 구분하자면 "육체업, 책상업, 관리업, 판매업, 연구업, 서비스업, 창조업, 교육업, 금융업, 연예업" 등이 있겠군요.

 

 

  과거에 직업이라고 하면 육체 노동이 대부분을 차지했습니다. 농업이나 광업, 제조업 등 직업의 대부분은 몸을 움직여서 일하는 것이었고 나머지는 그다지 많지 않았습니다.

 

  사회가 발달하고 특히 기술이 발전하면서 그 밖의 직업이 늘어납니다. 생산량이 늘어나면서 이른바 '잉여 생산물'을 다른 이에게 전하는 상업이라는 것이 탄생했고, 화폐가 등장하고 산업이 커지면서 이들을 지원하는 금융업이 생겨났습니다.

 

  한편, 기술의 발달은 육체 노동의 양을 줄여나갔습니다. 농기구가 발달하고 가축을 이용하면서 농업에 필요한 인력은 대폭적으로 줄어들었습니다. 기계가 등장하자 제조업의 일자리는 많이 줄어들게 됩니다.

 

  사회의 발달과 함께 창조업이나 연예업이 좀 더 돈을 버는 직업으로 발전하기도 했습니다. 과거에 연예인은 돈벌이가 되는 직업은 아니었습니다. 성공한 사람이라고 해도 왕이나 귀족 등의 후원이 없이는 먹고 살기 힘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이야기꾼이 돈을 벌었다는 이야기도 듣지 못했습니다. 연구업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플라톤과 같은 철학자는 노예라는 '도구'를 이용해서 오직 철학만 하면서 살 수 있는 세상이 이상적이라고 이야기했을 정도입니다. (실제로 플라톤 같은 이들은 노예들이 일을 해서 얻은 소득으로 먹고 살았습니다.)

 

  상업이 발달하면서 서비스업이 늘어난 것도 눈에 띕니다. 사업의 규모가 커지면서 관리직도 증가했고, 책상에서의 업무도 늘었습니다.

 

  하지만, 육체 노동을 위한 숫자가 줄어든 것에 비해서 늘어난 직업의 수는 그다지 많았습니다. 특히나 산업 혁명 이후 기계가 많은 일을 대신하면서 이러한 경향은 더더욱 커졌습니다. 그리고 동시에 실업자가 늘어났습니다.

 

  오랜 옛날에는 실업자는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아니 존재할 수가 없었습니다. 모든 것을 자급해야 했던 원시시대에는 일하지 않으면 먹고 살 수 없었으니까요.

 

  하지만, 생산성이 높아지면서 상황은 달라졌습니다. 가장 먼저 농업 분야에서 필요한 인력이 줄어들고, 다음에는 제조업에서 필요한 인력이 줄었습니다.

 



[ 기계의 등장은 생산성의 향상을 가져왔고, 직업에 묶이는 결과를 더 가속화하기도 했습니다. ( 모던 타임즈 ) ]

 

  지금도 물론 농업이나 제조업에는 인력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가까운 장래에 이런 분야에 필요한 인력은 지금보다도 훨씬 줄어들 것입니다.

 

  사회가 발전하면서 직업의 종류는 늘어납니다. 가령 제가 일하는 '게임 제작'이라는 직업은 불과 40여년 전에는 아예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늘어나는 직업의 숫자는 줄어드는 직업의 수를 메우기 어렵습니다. 더군다나 우리나라처럼 근무 시간 자체를 길게 잡고 인력을 줄여나가는 나라에서는 더욱 그렇습니다.

 

  현대 국가에서 실업자가 없는 나라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물론 실업자가 아예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하지만, 그 실업자가 어느 정도 이상으로 늘어날 경우 그 사회에는 심각한 장해가 생기게 됩니다. 왜냐하면, 실업자라는 것은 '직업이 없는 사람'을 가리키며, '직업이 없다'라는 것은 기본적으로 "먹고 살 수 없다"라는 말과 같기 때문입니다.

 

  앞으로 실업율은 계속 높아질 수 밖에 없습니다. "직업을 가리기 때문"이 아닙니다. 기술의 발전이 계속되면 자연스레 직업의 숫자가 줄어들기 때문입니다.

 

  현 정부에서 4대강 사업을 시작할 때 '고용 증가'를 내세웠지만, 실제로 4대강 사업으로 늘어난 직업은 얼마 되지 않습니다. 그것은 토건 산업이 중장비를 중심으로 인력을 대폭적으로 줄였기 때문에 나오는 현상입니다. 과거에는 만 명 가까운 인원이 동원되어 20여년 동안 만들어야 했을 피라미드를 지금은 불과 백명도 안 되는 사람이 몇 년 만에 만들 수도 있는 현실입니다. 당연히 '건설업은 실업 대책이 될 수 없습니다.'

 

   제조업 분야의 자동화 비율은 꾸준히 상승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어떤 공장은 몇 안 되는 관리자 만으로 돌아가기도 합니다. 가까운 장래 많은 공장들은 이렇게 바뀔 것입니다.

 

  서비스업 분야의 인력은 아직도 충분히 늘어날 여력이 있습니다. 서비스업의 특성상 자동화는 힘들테니 앞으로도 서비스업의 일자리는 유지될 것입니다. 하지만, 이렇게 늘어난 일자리는 건설업이나 제조업 등 육체 노동 분야의 일자를 메우기 어렵습니다. 결국 시간이 흐를수록 실업자는 늘어나게 됩니다.

 

 

  정보 통신 사업, 특히 인터넷 분야는 일자리가 늘어날 수 있는 가능성이 있었습니다. 인터넷 세계에서는 누구나 창작자가 되어 자신의 작품을 소개할 수 있습니다. 누구나 글을 써서 남에게 읽힐 수 있습니다. 누구나 영화를 만들어 보여줄 수 있습니다. 만화나 소설, 심지어는 게임을 만들어 제공할 수도 있습니다.

 

  만화나 소설, 게임 같은 창작물을 즐길 때 비용을 지불한다면, 인터넷에서는 서로간에 돈의 교환이 진행되면서 수익이 적을지라도 무수한 직업이 생겨날 가능성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그렇게 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결과적으로 인터넷에서 발생하는 '수익'은 구글이나 유투브 같은 업체가 모두 긁어가기 때문입니다.

 

  유투브의 직원은 불과 몇 십명. 그들이 벌어들이는 수익은 상상을 초월합니다. 1인당 수억 달러의 생산성을 갖고 있다는 결과가 나옵니다.

 

  하지만, 이러한 분석은 한가지 사실을 간과하고 있습니다. 바로 유투브의 '상품'이라는 것이 실제로는 무수한 자원봉사들이 공짜로 만든 결과물이라는 것 말입니다.

 

  그야말로 플라톤 시대의 노예와 철학자 같은 관계입니다. 아니, 플라톤 시대의 노예는 최소한 먹고 살 수는 있었으니 그보다도 나쁜 관계라고 할 수 있겠군요.

 

 

  인터넷을 통해서 발생하는 '가치'는 구글의 광고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가령 삼성전자의 제품을 블로그에서 추천했다고 가정해 봅시다. 이 경우 블로그를 통해서 '광고 효과'가 발생합니다. 하지만, 삼성전자는 이에 대해서 광고비를 지불하지 않습니다. 이 역시 자원 봉사로 진행하는 '가치의 창출'입니다.

 

  물론, 이러한 인터넷 사업에서 구글이나 유투브가 아니라도 돈을 버는 사람은 있습니다. 가령 어떤 음악가는 인터넷을 통해 돈을 벌었다고 합니다. 최근에 애플리케이션 사업이 생겨나면서 이를 통해 돈을 버는 이들도 늘어났습니다.

 

  하지만, 그 수는 정말로 얼마되지 않습니다. 무수한 블로거, 페이스북 사용자, 트위터 사용자, 그리고 유투브 제작자나 애플리케이션 제작자를 통해서 엄청난 가치가 생겨나지만, 그 대부분은 몇몇 회사들이 독점하여 '착취'합니다.

 

  결국 인터넷을 사용해서 무언가를 하는 이들은 결국 자원봉사를 할 뿐입니다. 이따금 돈을 버는 이들도 있지만, 그래봐야 '농노의 왕'을 벗어날 수 없습니다.

 

 

  기술의 발전과 함께 직업의 수가 줄어드는 상황, 이를 대신할 수 있는 정보 통신 산업에서의 '일'은 모두 자원봉사로 그치는 현실은 끔찍한 미래를 상상하게 만듭니다. 바로, 극소수의 사람들만이 돈을 벌고 나머지는 모두 '자원 봉사자'인 미래를 말이지요.

 

  그 시대에는 서비스업을 제외하면 직업이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 밖에는 얼마 안 되는 제조업, 얼마 안 되는 연구자, 얼마 안 되는 관리업, 얼마 안 되는 창작업, 얼마 안 되는 연예인들 정도 만이 존재하겠지요.

 

  문제는 이러한 상황이 계속 이어질 수 없다는 것입니다.

 

 

  사회가 돌아가려면 사람들이 돈을 써야 합니다. 먹을거건 입을거건, 아니면 볼것이건 여하튼 물건을 사야만 합니다. 그래야 그 물건을 판 돈으로 다시 물건을 생산합니다. (그 물건을 판 돈의 일부는 구글의 광고 비용 등으로 나가서 인터넷 기업의 수입이 됩니다.)

 

  이처럼 돈을 쓰려면 돈을 벌어야 합니다. 하지만 직업이 없다면 돈을 벌 수 없습니다.

 

 

  이러한 상황을 해결할 방법은 단 하나입니다. 바로 복지입니다. 극소수의 부자들에게서 세금을 거두어 수입이 없는 '자원 봉사자'에게 나누어 주어야 합니다. 그러면 그들은 그 돈을 가지고 경제 활동을 합니다... 바로, 일부 지역에서 시험적으로 운영 중인 "기본 소득 제도"를 적용하는 것입니다. (물론, 여기에는 최소한 '살 집' 정도는 제공해야 한다는 전제조건이 있습니다. 그 밖에도 교육이나 의료 등의 복지 제도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놀고 먹는거 아니냐?"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을지도 모릅니다. 이는 보편적인 복지 제도와 관련하여 제기하는 문제입니다.

  하지만 이는 낡아빠진 직업관에 입각한 생각입니다. 무엇보다도 인간이 사회적인 존재라는 것을 잊어버린 개인주의적인 사고 방식이라고 할 수 있겠군요.

 

  정보 사회가 오기 전에도 인간은 특별히 일을 하지 않더라도 사회가 돌아가는데 이바지하는 존재였습니다. 우리의 생활 하나하나가 사회가 작동하는데 이바지하며 무수한 가치를 창출합니다. 이를테면 국가라는 체제 속에서 우리는 '사회 간접 자본'을 사용함으로써 그 사회 간접 자본을 만드는게 필요한 일자리를 만들어냅니다. 정원의 나무를 가꾸는 일은 지나가는 이들에게 즐거움을 주고, 공기를 맑게 만드는 역할을 합니다. 등산을 하다 쓰레기를 줍는다면 그만큼 산이 깨끗해지고 사람들은 행복해질 것입니다. 이처럼 사람의 행동 하나하나는 그것이 수익으로 연결되지 않더라도 사회적인 가치를 높여줍니다. (물론, 범죄처럼 사회의 가치를 떨어뜨리는 행위도 있습니다. 이에 대해서는 '사회의 이름'으로 처벌을 내리게 마련입니다. 그럼 반대로 '사회의 가치'를 높여주는 일에는 보답을 해야 겠지요. 이를테면 교통 규칙을 어기는 이들에게 벌금을 내린다면, 교통 규칙을 잘 지키고 양보하면 상금을 줘야 한다는 말이 됩니다. 하지만, 일일이 이런 행위에 상을 줄 수는 없으니 사회적으로 활동하는 이들 모두에게 보답하는게 맞을 것입니다.)

 

  정보 사회에서는 우리의 활동 하나하나가 곧 가치를 창출하는 행동이 됩니다. 유투브에 올린 동영상 하나가 유투브의 수익을 창출합니다. 블로그에 쓴 글 하나가 광고 효과를 낳습니다. 구글에서 검색 한 번이 구글의 이익을 높여줍니다. 무료 문자 메시지 하나를 보내는 일조차 기업의 이익을 높여주는 행위가 됩니다. 다시 말해 정보 사회에서는 우리가 활동하는 것 그 자체가 가치를 창출하지만, 그로 인해서 우리가 돈을 받지는 못합니다. 자원 봉사인 것입니다.

 

  시대가 발전할수록 이러한 자원 봉사는 늘어날 것입니다. 인터넷 기업들의 수익이 높아지는 것이, 인터넷 회사의 수가 늘어나는 것이 이를 반증합니다.

 

  우리는 이러한 수익을 나누어 받을 권리가 있습니다. 그리고 이를 해결할 방법은 구글 애드 센스 같은 시스템이 아닙니다. 바로 기본 소득 제도입니다.

 

  기본 소득 제도는 다가올 암울한 미래를 바꿀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동시에 창작 행위로 인한 인간의 가치를 더욱 높여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기도 합니다.

 

  기본 소득 제도로 최소한의 '먹고 사는 문제'가 해결된다면, 비로써 직업은 "꿈을 이루는 일"이 될 수 있습니다. 블로거는 오직 블로깅만 해도 좋습니다. 소설가는 오직 소설만 써도 좋습니다. 수많은 이들이 유투브 같은 곳에 영화를 만들어 올리는 일만으로 살아갈지도 모릅니다.

 

  혹자들은 말할 것입니다.

 

  "놀고 먹는거 아냐?"

 

  하지만, 이러한 활동 자체가 경제를 돌아가게 만드는 원동력이라는 것을,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자원봉사라는 것을 그들은 모르고 있습니다. 더욱 정확하게 말하자면, 가까운 장래에는 이처럼 "놀고 먹는 사람"들이 있어야만 삼성전자나 현대 자동차 같은 곳이 돌아갈 수 있다는 사실을 그들은 모릅니다.

 

 

  직업이라는 것은 "먹고 살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하는 일"이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오직 우리가 직접 자급자족하는 세상에서나 성립하던 이야기입니다. 잉여 생산물이 나오게 된 시점에서부터 직업이라는 것은 "먹고 살기 위해서 어쩔 수 없는 일"에서 멀어졌습니다.

 

  플라톤의 직업은 철학자였지만, 그 철학을 하지 못한다고 먹고 살 수 없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에게는 그 대신에 일해서 그를 먹여 살려줄 '노예'가 존재했으니까요. 노예는 그들이 먹는 것 이상을 생산해서 그의 주인을 먹여 살렸습니다.

 

  현대 사회에서는 기계가 그 역할을 대신할 수 있습니다. 기계의 도움이 있기에 소수의 사람이 수많은 사람이 쓰고 남을 물건을 생산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노예와 달리 기계는 물건을 쓰지 않는다는데서 나옵니다.


  1명이 100명이 쓸 물건을 생산한다면, 나머지 99명이 그 물건을 써 주어야만 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그 99명이 이 물건을 쓸 수 있어야 합니다. 현대 사회에서 보자면 '돈'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복지, 특히 기본 소득 제도가 필수적인 요건으로 자리잡을 수 밖에 없습니다. 그것도 그다지 멀지 않은 미래에 도입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 찾아올 것입니다.


  혹자는 이를 "망한(망할) 사회"라고 말할지도 모르겠지만,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러한 세상이야 말로 진정으로 "인간이 일에서 해방된 세상"이라고 말하겠습니다.

 

  어떠한 세상에서도 "일"은 해야합니다. 아무리 자동화된 공장도 최소한의 관리 인력은 필요하며, 가게들이 있는 한 서비스업은 아마도 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인간과 구별할 수 없는 로봇이 나온다고 해도 인간 서비스 인력은 분명히 중요한 존재로 남게 될 것입니다.

 

  이러한 일을 하는 사람들은 그야말로 '좋아서' 하는 것이 될 것입니다. 그들이 일을 하는 목적이 "일 자체가 좋아서" 일수도 있습니다. 또는 "돈을 버는게 좋아서"일 수도 있습니다. 어느 쪽이건 그것은 진정으로 좋아서 하는 일이 될 것입니다. 하기 싫은데도 먹고 살려면 어쩔 수 없이 해야 하는 상황은 아닙니다.

 

  열심히 일하는 사람이 더 돈을 많이 버는 상황은 유지됩니다. (이런 기본적인 것을 모르는 이들이 복지 제도에 대해 '나라를 망하게 한다'라는 말을 합니다.) 그리고 이를 통해서 다른 꿈을 꿀 수 있겠지요. 이를테면 좀 더 멋지고 큰 집, 화려한 자동차 같은 것 말입니다.

 

  이러한 것이 필요없는 사람들은 적당히 하고 싶은 일을 하면 됩니다. 가령 블로그 활동만 계속 하고 싶다면, 그것이 직업이 되는 셈입니다. "나는 블로거입니다."라고 직업을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먹고 사는 것은 문제가 없으니 블로그 활동 이외의 일은 안 해도 됩니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다양한 취미가 발달하게 됩니다. 그 중에서도 돈이 들지 않는 취미가 발달할 것입니다. 돈을 쓰지 않는 취미는 대부분 '창의적인 취미'입니다. 글을 쓰거나, 영화를 만들거나, 음악을 연주하거나 사진을 찍는 일 말이지요. 값비싼 장비를 갖고 싶다면 돈이 필요하겠지만, 창작을 위해서 값비싼 도구가 꼭 필요한 것은 아닙니다.


  과거에는 사진이나 영화 같은 것에 돈이 꽤 들어갔습니다. 필름이 필요했고, 인화를 하는데도 돈이 들어갔으니까요. 하지만, 디지털 시대. 싸구려 똑딱 카메라로도 얼마든지 좋은 사진을 찍을 수 있고, 심지어 스마트폰으로도 영화를 만드는 상황이니까요. 가까운 장래에는 이러한 것이 좀더 보편화되겠지요.


  또한, 연구 활동도 늘어나게 됩니다. 연구에도 비용이 들지만, 모든 연구가 돈이 들어가는 것은 아닙니다. 철학이나 인문 사회학처럼 '돈이 안 된다'고 알려진 학문에 관심을 가지는 이들도 늘어날 것입니다.


  지금보다도 훨씬더 다양하고 복잡한 사회가 될 것입니다. 그리고 동시에 다채로운 가능성이 펼쳐질 것입니다. "어쩔 수 없이 해야 하는 일"에서 해방되면서 인간은 더욱 창의적이고 자유로워 질 것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더 많은 이가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이러한 사회에서는 돈이라는 것에 대해 그다지 집착하지 않게 될지도 모릅니다. 물론, "열심히 하는 사람에 대한 보상"으로서 화폐제도나 무언가 이에 필적할만한 뭔가가 필요할 수도 있지만, 최소한 먹고 사는데 문제가 없으며

 

 

  물론, 여기까지 가는 과정은 상당히 멀 수 밖에 없습니다. 이러한 세상은 이른바 단순 노동이라는 것이 모두 기계화된 세계에서만 가능하니까요. 하지만 적어도 당분간은 단순 노동이 존재할 것입니다. (실업율이 올라갈수록 기계보다 사람을 쓰는게 더 싸게 먹힐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싸구려 일자리만 넘쳐나고 사회는 정체되고 사람들의 얼굴에서는 미소가 사라지는 세상이 찾아올지도 모릅니다. 이것이 암울한 미래상의 한 가지 형태인데, 안타깝게도 우리나라는 현재 이러한 모습에 더 가깝습니다.)


  게다가 '복지는 놀고 먹는 것'이라는 잘못된 인식에서 벗어나는데도 시간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가능성은 이미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세계 각지에서 기본 소득 제도에 대해 검토하기 시작했으며, 우리나라에서도 다양한 복지 이야기와 함께 이에 대한 논의가 시작되었습니다. 복지라는 것이 좋다는 것은 체험해 보아야만 알게 마련입니다.


  복지 만이 아닙니다. 휴일을 늘리는 것도 그렇습니다. 주 5일제를 도입하는 회사가 늘어나면서 이를 당연하게 여기게 되었습니다. 좀 더 수입이 적어도 토요일에 일하기보다는 차라리 쉬거나 자기 계발을 하겠다는 사람들이 늘어납니다.

  포스코 등에서는 4조 2교대제를 도입하여 4일 일하고(하루 12시간 근무) 4일간 쉬는 제도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시행 전에는 반대가 꽤 있었지만, 시행하고 난 이후에는 찬성자가 대부분을 차지한다고 합니다.

  이번 총선에서 서울시의 20대 투표율이 65%에 가깝다고 합니다. 왜 그럴까요? 아마도 박원순 시장을 뽑았을때 이로 인해 변화하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물론 나꼼수나 SNS 등의 영향도 있겠지만, 바로 옆 인천이나 경기 지역의 20대 투표율이 높지 않은 걸 보면 역시 서울 시장 효과가 작지 않을 겁니다.)


  이처럼 경험이라는 것은 중요한 것입니다.


  결국 복지라는 제도는 점차 좋은 방향으로 나아가게 마련입니다. 그 궁극적인 형태가 바로 '기본 소득 제도'이며, 동시에 하나의 완성형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제도는 한편으로 '돈'에 묶인 세상을 바꾸어 놓을지도 모릅니다. 그리하여 [스타트렉] 같은 작품에서 볼 수 있는 '돈이 없는 세상', 모든 이가 보람을 갖고 자신의 일을 해나가는 세상이 탄생할지도 모릅니다.


  [스타트렉]의 세계에서 이러한 세상은 24세기에 이르러서야 제대로 완성되었다고 나오지만, 어쩌면 우리 세계에서는 그보다 빠른 시대에 그런 상황이 찾아올지도 모릅니다.


  물론, 이렇게 '행복한 세상'이 된다는 보장은 없습니다. 찰리 채플린의 [모던 타임즈]처럼 사람들이 일에 묶여 일에 맞추어 살아가는, 지금보다도 심한 디스토피아 사회가 펼쳐질지도 모릅니다. 지금의 우리로써는 그러한 세상이 되지 않기를 바라며, 보다 나은 세상을 위해 노력해야만 할 것입니다.

 

 

여담) 사실 이 이야기는 2004년에도 한 번 한 일이 있습니다.([표도기] 기술과 생산성의 발전. 그리고 미래에의 조망 ) 그 당시에는 오직 돈만 받는 사람들이 행복한지 아닌지에 대해서 명확하게 판단을 내리지 못했지만, 지금은 확실하게 '어쩔 수 없이 해야 하는 일에서 벗어나 스스로 행복을 찾을 수 있는 세상'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 이 글은 네이버 블로그에서 올렸던 내용입니다. 복지라는 것은 정치 이야기지만, 이는 미래의 조망이라는 측면에서 SF의 가능성으로서도 이야기해 봅니다.)

posted by 별을 좋아하는 표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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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Addr  Edit/Del  Reply 릿찡

    저도 일단 진보적 포지션입니다만, 기본소득 제도에 대해서는 회의적 입니다. 다만 예술가, 기술자 등의 어느정도 식견있는 사람들이 뭉쳐서 새로 정치적, 경제적 통합공동체를 새우면 그나마 가능성이 있지 않을까 하고 희망을 품어봅니다. 빈센트 반 고흐의 평생의 소원이였다고들 하죠. ㅎ

    2012.04.16 21:21 신고
    •  Addr  Edit/Del 별을 좋아하는 표도기

      상호부조...라고 하죠.
      십시일반으로 모아서 도와주는 것. 모든 복지는 결국 상호부조에서 시작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을 어느 정도 규모로 키우는가. 그리고 어떻게 나누어주는가에 따라서 다양한 정책이 생겨나고요.

      2012.04.17 12:13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