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 이야기 2012. 3. 26. 13:19

( 화장실에서 담배 한대……. 지구라면 별게 아니지만, 우주에선 굉장히 위험하다. (c) 반다이 비주얼/플라네테스 )

  애니메이션 "플라네테스" 속에서 휘라는 인물은 '담배'를 피지 못해서 짜증을 내기 시작합니다.

  월면 도시의 각지에서 '지구 방위 전선'이라는 조직이 흡연실을 대상으로 폭탄 테러를 저지르고, 심지어는 무사한 흡연실마저 폐쇄되면서 그야말로 '담배를 피울 곳'이 사라져 버린 것이지요.

  이리저리 상황을 보던 그녀는 화장실에서 담뱃불을 붙이는데……. 그 순간 흘러나오는 '화재 경보!'...
 

 ( 흡연자를 처벌(?)하는 3단 공격  (c) 반다이 비주얼/플라네테스)

  네. 고작 작은 라이터의 불로, 그녀는 이렇게 되어 버린 겁니다....
 
  정말로 너무 심하지 않은가 생각할 수 있지만, 조금만 더 생각해 보면 이것은 지극히 당연한 귀결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갖게 됩니다.
왜냐하면, 우주에서 가장 무서운 재난은 바로 "화재"이기 때문이지요.

  인간이 살아가기 위해서는 수많은 조건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그 중에서 인간을 확실하게 죽여 버릴 수 있는 조건은 바로 "산소"입니다.
 
  영화 "미션 투 마즈"에서 헬멧을 벗은 선장(팀 로빈슨)은 순식간에 얼어붙어버리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습니다.
  분명히 우주는 3k (-269도)이지만, 한편으로 절대 진공 상태. 마치 보온병과 같은 상태라 열은 쉽게 달아나지 않기 때문이지요. (눈이나 콧속, 입술 등에 서리가 끼는 상황은 충분히 가능합니다. 진공 상태에서 수분은 한순간에 증발하면서 열을 빼앗아 버리기 때문이지요. 다만 그 양이 적은 만큼 사람을 얼려 죽일 정도는 아닙니다.)

  한편 "토탈리콜"에서는 갑자기 화성 대기에 노출된 주인공들의 눈이 튀어나오고 몸이 터져 버릴 듯이 부풀기 시작하지만, 사실 이런 일은 없습니다. 사람의 몸은 물 속 깊은 곳(수십 기압 이상)에서도 버틸 수 있는데, 고작 1기압 차이로 몸이 터져 버린다는 것은 말도 안 되지요.
결국, 인간이 우주에 노출되면 '질식해 죽을 뿐'입니다. 얼어 죽지도 터져 죽지도 않지요.

  인간은 물이 없으면 죽어 버립니다. 하지만, 물을 먹지 않아도 꽤 오랫동안 버틸 수 있지요. (최악의 상황에선 오줌이라도 마시고 살 수는 있습니다.) 식량도 마찬가지. 밥을 굶더라도 꽤 오랫동안 버틸 수 있습니다.
 
  지나치게 추우면 얼어 죽겠지만 어느 정도 날씨로는 괜찮고, 옷을 든든하게 껴입는다면 어지간한 추위에는 충분히 버틸 수 있습니다. 지나치게 더워도 쪄 죽겠지만, 역시 어느 정도 온도로는 끄떡도 하지 않습니다.

  반면, 산소는 아주 잠깐이라도 없다면 죽어 버리게 됩니다. 고작 수 분 동안만 숨을 못 쉬어도 완전히 죽어버릴 수 있지요.
(운 좋게 일찍 발견되어 소생술을 통해 살아나기도 하지만…….)
 
  때문에, 우주에서 화재는 매우, 아니 끔찍하게 위험한 재난입니다. 한 순간에 막대한 양의 산소를 날려 버리니까요.
 

( 불길 속에서 날뛰고(?) 있는 타일러. 이건 정말 미친 짓이 아닐 수 없다. (c) 타츠노코 프로 / 무책임함장 타일러 )
 
  이런 상황은 정말로 끔찍합니다. 고작 담배 한 대 때문에 신경 써야 하는 우주선(혹은 우주 정거장) 안에서 이 정도로 어마어마한 화재가 일어난다면 말입니다.
 
  그래서 우주선이나 우주 정거장은 완벽하게 '화기 엄금'.

  작은 불도 다시 보자……가 아니라 '작은 불도 완전 박멸'로 나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여기저기 방어 격벽으로 조금이라도 화재가 커지면 확실하게 막아 낼 수밖에요...
 

( 끝까지 담배를 피우고 싶어하는 그 녀에게 내리는 물의 세례……. 뭐 별 수 없지. 여긴 우주니까. (c) 반다이 비주얼 /플라네테스 )
 
  담뱃 한대로 물에 빠진 생쥐꼴이 되어 버린 그녀에겐 미안하지만 말입니다.

  그렇게 생각하면 정말로 아쉬운 것이 바로 영화 "선샤인"입니다. 이 작품 속에서 태양빛의 반사를 예측하지 못했기에 중요한 산소 농장이 불타버리기 때문이지요. 소화 장치는 있어 보이지만, 아무리 보아도 '물을 적당히 떨어뜨리는 정도' 플라네테스에서 휘가 맞았던 강력한 물줄기와는 비교도 안 됩니다.
 

( 불타버리는 산소 농장. 불의 위험을 조금이라도 상상했다면 이런 일은 없었을 것이다. (c) 20세기폭스 / 선샤인 )
 
  그로 인해 그들은 지구로 돌아가기는 고사하고 목적지까지 도달하지도 못하는 상황이 됩니다.

  만일 이 우주선의 개발자들이 '화재의 위험'을 조금만 더 생각했다면, 아마 이런 일은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고 보면, 영화 "아마게돈"에서도 화재로 우주 정거장이 날아가 버리지요. 물론, 이 경우는 그 시설 자체가 낡아 빠졌기 때문이지만…….)
 
  아폴로 1호의 사고 이후 동료 우주인이 말했듯 "상상력이 조금만 풍부했다면" 산소가 부족해서 한 사람을 제비뽑기로 죽여 버려야 하는 상황에 처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아폴로 1호의 참사가 있었고, 그 후에도 수많은 SF 작품에서 충실하게 '화재'의 위험이 묘사되는 이상, 앞으로 우리는 분명 우주에서의 화재 위험에 충실하게 대비할 것이라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화재야 말로 우주에서 가장 끔찍한 사고, 인재일 테니 말입니다.
 
  소행성에 맞아도, 초신성이 폭발해도, 블랙홀에 빨려들어가도 모두 한 순간에 죽어 버리는 것으로 끝납니다. 하지만 산소가 부족해서 죽어가는 상황은 결코 유쾌하지 않으니까요.

 
여담) 60kg 정도의 인간은 하루에 300리터 정도의 산소를 필요로 합니다. 하지만, 화재는 한 순간에 그 몇 배의 산소를 날려 버리고, 이산화탄소를 대량으로 늘릴 수 있지요. 설사 산소가 충분하더라도 이산화탄소의 양이 늘어나면 역시 사람을 죽여 버릴 수 있습니다. 사실, 전력이 부족해진 아폴로 13호에서도 산소는 충분했지만, 이산화탄소 때문에 큰 일 날 뻔 했지요.

(4년전에 네이버 블로그에 작성한 글. 재활용입니다.^^) 
posted by 별을 좋아하는 표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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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Addr  Edit/Del  Reply 김궁금

    물속으로 내려가 몇십기압을 견디는것과 우주의 진공상태를 견디는건 확연히 다르다고 생각하는데요,

    물속의 기압은 점점 강해지는것이고, 우주의 진공상태는 그 상태를유지하던 기압이 없어져 버리는거나 다름없는것 아닌가요? 고작 1기압 차이라도,

    더해지는것과 빼지는것은 큰 차이가 있다고 봅니다. 우주에 나가서 우주복을 벗어던진다면 기압차이로 인해 밖으로 노출된 기관 즉, 눈 코 입 항문 등의 기관은 제대로 일하지 못하고 밖으로 터져 나오려 할겁니다. 영화에서처럼 극적이진 않겠지만요.

    2012.08.16 14: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