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과 우주 이야기 2015. 5. 24. 00:32

 1958년의 5월 23일.


  미국 최초의 인공위성 익스플로러1호의 연락이 두절되었습니다.


  익스플로러 1호가 발사된 것이 1958년의 1월 31일이니, 자그마치 111일만에 작동을 멈춘 것이지요.


  익스플로러 1호는 사실 많은 이들에게 '뒤쳐진 것'으로 여겨집니다. 그보다 3달(사실상 4달) 앞선 1957년 10월 4일. 소련의 스푸트니크 1호가 우주로 먼저 날아올랐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스푸트니크 1호는 그 용량의 문제 때문에 무선 신호기 하나를 겨우 탑재하는 정도에 그치고 22일동안만 작동했던 반면 익스플로러는 방사선 측정기 등 여러 장비를 탑재하고도 배터리 용량이 넉넉해서 자그마치 100일이 넘게 작동하며(스푸트니크의 5배) 여러 활동을 했습니다.



[ 대충 보아도 뭔가 많이 들어간 듯한 익스플로러. 스푸트니크와 많이 비교됩니다. ]


  당시 익스플로러 1호에 탑재한 방사선에서는 지나치게 높은 방사선 수치가 관측되었는데, 계기 고장이라 생각되었던 이 일은 훗날 "반 알렌대"의 발견으로 이어지게 되었으니, 그만큼 큰 활약을 한 것이지요.


  말하자면, 익스플로러는 그만큼 완성도를 높이는 과정에서 스푸트니크보다 늦어졌다고 해도 될 것입니다.


  흔히 "세상은 일등만을 기억한다."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스푸트니크보다 늦긴 했어도 익스플로러가 세상에 많은 도움을 주며 기억되었듯이, 두번째로 달에 내렸지만, 버즈 올드린이 우주 계획을 위한 많은 홍보와 안내로 사람들에게 꿈을 심어주었듯이 2등이라고 하여 의미가 없는 것은 절대로 아닙니다.


  더욱이 익스플로러의 2등은 그 후 큰 영향을 줍니다. 22일과 111일이라는 시간의 차이가 훗날 아폴로 계획에 이르러 현격한 차이를 보인 것이지요.


  당시 소련의 '실적 주의'는 개발자인 세르게이 코롤료프를 괴롭혔고 그는 -과거 시베리아 유형 당시 몸이 약해진 것도 있어- 병사하여, 소련의 우주 개발 계획이 크게 뒤쳐지는 결과를 낳았습니다.(그의 이름은 극비 였기에, 그가 죽은 후에야 그의 이름이 세상에 알려지게 됩니다.)


  흔히 사람들은 돈을 쏟아붓거나 해서 뭔가를 만들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하곤 합니다. 문화면에서 그것은 "쥬라기 공원 한 편이 자동차 100만대 수출보다 돈을 벌었다." 같은 자동차 문화론으로 연결되기도 하죠. 그 결과 "디워" 같은 작품이 탄생했습니다.


  "쥬라기 공원"이 하루 아침에 튀어나온 것이 아니라 미국의 오랜 영화 역사, 그리고 SF 역사 속에서 나온 것처럼, 우주 개발도 오랜 연구와 노력 끝에 나온 것이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스푸트니크와 익스플로러의 차이... 우리에게는 몇 번이고 실패한 끝에 겨우겨우 쏘아올린 나로호의 사례가 떠오릅니다. 물론 스푸트니크를 나로호와 비교하는 것은 세르게이 코롤료프를 비롯한 소련의 개발자들에게 미안한 일이 되겠습니다만...



참고 : 오늘의 SF 5월 23일자

posted by 별을 좋아하는 표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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