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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 이야기

한국 SF에는 뭐가 부족할까요?

  과천 과학관에서 SF 어워드가 끝나고 여러 가지 이야기가 있습니다. 특히 심사위원에 대한 논의가 눈에 띄는군요.


  과천 과학관 SF 어워드 심사 위원은 본래 5명이 진행했습니다. 하지만 올해는 15명으로 늘어났습니다. 심사위원에 부담이 많다는 문제(이를테면, 올해 단편상의 심사 대상은 100편이 넘습니다. 기존에 상을 받은 작품 같은 걸 모두 제외해도 말이죠.)도 있지만, 그보다는 심사위원의 숫자가 적으면 그만큼 의견이 편중될 가능성이 높다는 문제가 있습니다.


  전부터 이야기가 되었고, 작년 말과 올해 초 SF 어워드에 대한 자문 회의가 있을 때에도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그래서 올해는 15명이 되었습니다. 문제는 그 심사위원을 어떻게 구성할 것인가 하는 겁니다. 과천과학관의 상이기 때문에 제약이 많습니다. 특히 소설 부분의 심사 위원 선정에 어려움이 있습니다.


  우선 SF 작가나 출판 관계자는 어렵습니다. SF 어워드는 공모전이 아니라 실제 나오고 있는 작품에 관련된 상이기 때문입니다. 설사 그 해에 작품을 쓰지 않거나, 출판하지 않았다고 해도 가능한 제외해야 겠지요.(무엇보다도 심사위원이 선정되는 시점에서 대상 작품이 모두 선정되는 것도 아니니까요.) 작가들과 친분 관계가 깊은 사람들도 제외하는 게 좋을지도 모릅니다. 과학관이라는 공공기관인만큼 특히 이런 문제에 민감할 수 밖에 없습니다. 비슷한 뜻에서 서점 관계자도 제외하는게 좋을 겁니다. 번역만 하시는 분들이라면 어느 정도 가능하겠지만, 숫자가 적습니다.


  그러면 주로 평론가라던가, 해당 분야의 활동자로 한정됩니다. 그것도 과학관에서 인정할만한 경력이 필요합니다. 최소한 어느 정도의 단체에서 어느 정도 지위에 있거나, 대중언론(신문, 잡지)에 꾸준한 활동이 있는 사람이어야 할 것입니다. 아니면 대학교의 교수나, 관련된 박사 학위를 갖고 있거나...


  안타깝지만, 대한민국 SF 분야에서 이러한 분은 몇 안 됩니다. 1회부터 심사위원을 맡아온 박상준님, 고장원님 정도죠.(과거에는 홍인기님이나 김상훈님 같은 분도 계셨고, 교수나 박사 쪽으로 생각하면 좀 더 넓힐 수 있습니다만. 일단 활동이 별로 눈에 띄지 않습니다.)


  이 두 분을 빼고 SF 관련 책을 낸 분이 얼마나 있나요? 신문이나 잡지에 기고하는 분들은? 웹진을 포함해 SF 전문 사이트/블로그조차 거의 없고, 커뮤니티도 하나 뿐입니다.


[ 도서관에서 촬영. (출처 : http://mirror.pe.kr/index.php?mid=webzine6&category=28262&document_srl=28987 )

http://mirror.pe.kr/index.php?mid=webzine6&category=28262&document_srl=28987  ]


  박상준님은 오래 전부터 많은 활동을 해왔습니다. 오멜라스 출판사, 월간 판타스틱 등을 준비하기도 했고, 영화제 진행에도 많이 참여했습니다. SF 분야에서는 가장 발이 넓지만, 그만큼 활동도 많은 분입니다. SF 아카이브라는 이름으로 SF의 역사 자료를 충실하게 갖추신 분이기도 하죠. 대학교에서 대중과학 관련 강의도 하고 계시고요. 너무 활동이 많다보니 최근에는 잡지나 신문 기고 이외에는 저술 활동이 없으신 게 참 아쉽습니다만...


[ 발표 중인 고장원님. ( 출처 : http://imnews.imbc.com/fullmovie/fullmovie05/child/2665783_6631.html ) ]


  고장원님 역시 많은 활동을 한 분입니다. 이전부터 여러 강연, 강의에 참여하셨고, 일찍부터 다양한 책을 쓰셨으며, 지금도 책을 내고, 신문, 잡지 등에 SF 기사를 쓰고 계십니다. 적어도 저는 SF 소설 분야에서 고장원님만큼 깊이 아는 분은 별로 만나지 못했습니다. 하루는 이런 일이 있습니다. 어떤 분이 ‘이러이러한 이야기를 쓰고 싶어서 참고할만한 소설이 있나?’라고 물어보자, 그 자리에서 그와 관련한 여러 작품 얘기를 하면서 왜 그 작품이 좋은지 한참동안 이야기 하시더군요.


  요즘의 SF 팬들에게는 잘 알려져 있지 않을지도 몰라요. 하지만 인터넷만 검색해 보면 압니다. SF와 관련하여 최근 언론에 이름이 나오는 것은 –작가를 제외하면- 이 두 분, 아니면 저 뿐입니다.


  제 이야기가 나왔네요. 저는 PC 통신 시절 활동도 있었지만, 인터넷상의 SF 모임을 만든 지 20년 가까이 됩니다. SF&판타지 도서관을 만들어 운영한지는 8년째네요. 동인지를 몇 번 만들고, 미래경이라는 잡지를 4번째 출간. 단편집을 두 권 기획해서 냈습니다. 주로 게임 쪽 책을 냈지만, 최근에 판타지, 그리고 SF 쪽의 책을 냈고 양쪽 다 새로운 책들을 쓰고 있습니다.


  이만하면 충분하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저로서는 ‘최소한의 기준’ 밖에는 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SF 분야의 전문서는 고작 1권 밖에는 내지 못했고, 대중언론에 기고한 원고도 몇 개 안 되기 때문입니다.(사실 제 경우는 소설 부분의 심사위원으로는 맞지 않습니다. 개인적으로는 희망하지만, 저는 심사 대상이 될 수 있는 단편집 ‘조커가 사는 집’과 ‘미래경 4호’의 출판 관계자거든요. 그게 아니라도 여러 출판사와 협력 관계에 있거나 하다는 문제도 있습니다.)


  블로그나 커뮤니티에 글을 쓰는 것으로는 충분한 자격을 갖는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원고료를 받고 자기의 이름으로 책을 내고 돈을 내고 산 독자들에게 칭찬이나 욕을 들어봐야 합니다. 블로그에 평을 많이 쓴다고 해서 평론가가 되는 건 아닙니다. 블로그 운영을 몇 년씩 한다고 해서 프로로서 인정받는 것은 아닙니다. 원고료를 받고 글을 쓸 수 있게 되지 않으면, 프로라고 불릴 수 없습니다. 그것도 친분 관계가 아니라 전혀 모르는 사람이 글을 맡길 수 있을 만큼 이름이 있어야 합니다.


  안타깝게도 대한민국에는 그러한 사람이 거의 없습니다. 작가를 포함해도 한줌 밖에는 되지 않습니다.


  대한민국에는 더 많은 SF 전문가가 필요합니다. SF 팬들만, 친구들만 인정하는 전문가가 아니라 대중이 인정하고 대중 언론이나 공공기관에서도 믿고 일을 맡길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합니다.

  SF 어워드 심사 위원 후보가 너무 많아서 고민하게 만들어야 합니다.



  한국 SF는 많이 발전했습니다. 이번 SF 어워드에서 단편 심사 대상이 100편을 가볍게 넘고 있으며, 장편도 적지 않습니다. 만화나 드라마, 영화 같은 다른 미디어 작품이 많지 않은 건 아쉽지만, 그 역시 관심을 보이는 이들이 적지 않지요.


  그만큼 SF인들 사이에서 다양한 목소리가, 더 큰 목소리가 있어야 합니다.


  SF 블로그도 더 늘어나고, 커뮤니티도 많이 만들어지고, 잡지가 없다면 웹진이라도 많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다양한 목소리가 다채롭게 흘러나오고 서로 이야기를 나누며 즐기는 문화가 필요합니다.


  팬들이 모여서 떠들고 놀 수 있는 행사가 열리고, 모임이 진행되어야 합니다.


[ 북적대는 분위기의 SF 어워드 2014. 공공기관에서 이런 행사를 열 수도 있지만, 팬들 자신이 열 수 있어야 한다. ]


  그래서 다른 사람들이 ‘저 동네는 왜 저렇게 웃음이 가득한가?’라고 궁금하게 만들어야 합니다.



  SF는 재미있는 겁니다. 즐겁고 흥미로운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만 즐기고 혼자 노는 것보다는 여럿이 같이 할 때 더 좋은 것이죠?


  이를 위해서도 내년에는 더 많은 SF 이야기가 쏟아져 나올 수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