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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 이야기

인간을 넘어서는 컴퓨터의 등장?

1944년 2월 10일. 미국의 위스컨신주에서 태어난 작가 버너 빈지는 1993년 ‘다가오는 기술적 특이점’이라는 논문에서 “IT 기술의 발달로 30년 내에 인간의 지능을 초월하는 인공 지능이 등장한다.”라는 주장을 제기했습니다.
  그의 특이점 이론은 3년 뒤 마침 그의 생일에 일어난 한 사건으로 더욱 주목 받았고, 버너 빈지는 미래학자인 레이 커즈와일과 함께 특이점 개념을 널리 알린 학자로 손꼽히게 됩니다.

  바로 컴퓨터와 인간의 대결이었지요.

 


  1996년 2월 10일 미국의 한 곳에서 IBM에서 개발한 컴퓨터 딥 블루와 세계 체스 챔피언 게리 카스파로프의 대결이 벌어졌습니다. ‘인간과 컴퓨터의 대결’로 회자된 이 대결에서 딥 블루는 게리 카스파로프로부터 첫 판을 따내며 승리하였고, 이 사건은 “인공 지능의 승리”로 널리 알려지게 됩니다.

  이후 5번의 대결을 더하여 총 6판의 대결에서 게리 카스파로프는 결국 4-2로 승리했지만, 이듬해에는 3.5대 2.5로 패배하여 딥 블루의 승리가 굳어졌습니다.

  이와 관련하여 2003년에는 이것이 IBM의 마케팅 전략이었고, 딥 블루 진영에서는 게임 중 규칙을 수정하거나 카스파로프의 스타일에 맞추어 소스를 고치는 등 ‘컨닝’에 가까운 일을 하기도 했다는 의견이 나왔지만, 여하튼 이 사건을 통해 사람들은 ‘컴퓨터가 인간을 앞섰다.’라는 인식을 갖게 됩니다. 그리고 ‘가까운 장래 컴퓨터가 인간을 앞서서 지배할 것’이라는 생각도 널리 퍼지게 되지요.

  그런데 정말로 그럴까요? 정말로 컴퓨터는 인간을 앞선 것일까요?


  이와 관련하여 한 작품을 생각해 봅니다.

  스탠리 큐브릭과 아서 C 클라크가 제작한 작품 [2001년 스페이스 오딧세이]입니다.



  이 작품은 이성인이 인류를 진화로 이끈다는, 클라크의 작품에서 공통적으로 보여주는 소재를 가진 영화입니다. 모노리스라는 장치를 통해서 인류는 도구를 가지는 존재가 되었고, 나아가 우주 시대에 맞는 ‘스타차일드’로 변모하는 것이지요.

  하지만, 이 작품에서는 또한 HAL9000이라는 컴퓨터를 통해 컴퓨터와 인류의 이야기를 함께 다루기도 합니다. HAL9000은 매우 똑똑한 컴퓨터입니다. 흔히 말하는 지능지수를 기준으로 하면 인간 따윈 발끝에도(아니 나사 한 개에도?) 미치지 못할 정도.

  그런데 영화 속에서 HAL9000은 이상을 일으켜 승무원들을 살해합니다.

  이에 대해 많은 이는 이것을 ‘컴퓨터의 반란’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인간보다 앞선 컴퓨터가 인간에게 반항한 것”이라고... 그런데 실상은 다릅니다. HAL9000은 인간에 반항한 적이 없습니다. 도리어 인간이 내린 명령을 지나치게 충실하게 따랐을 뿐이지요.

  HAL9000에는 승무원들이 모르는 명령이 있었습니다. 정부에서는 이 임무의 진정한 목적에 대해 HAL9000에만 지시를 내리고 이것을 ‘승무원에게 비밀로 하라.’라고 지시했습니다. 그런데 HAL9000은 컴퓨터라는 특성상 승무원의 질문에 사실대로 대답해야만 합니다.

  여기서 논리적인 갈등이 생기게 됩니다. HAL9000은 ‘승무원의 질문에 사실대로 대답하면서도, 비밀을 지켜야 하는 상황’에 처하게 된 것입니다.

  그 결과, HAL9000은 승무원들을 살해합니다. 비밀을 지키기 위해서는 승무원들이 존재하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지요.

  인간이었다면, 어땠을까요? 적어도 HAL9000처럼 사람들을 살해하는 짓을 저지르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인간은 ‘거짓말’이나 ‘말 돌리기’ 같은 창의력을 갖고 있으니까요.

  명령을 충실하게 따른 결과 문제를 일으키는 컴퓨터의 모습은 그 밖에도 여러 작품에서 나옵니다. 가령 “인류를 보호한다.”라는 0원칙을 갖게 되어 인간들을 강제로 지배하려 했던, 영화 [아이 로봇]의 컴퓨터나, 지구 환경을 보호하라는 원칙에 따르다보니 지구 환경을 해치는 인간들을 멸망시키려 행동한 컴퓨터가 등장하곤 하죠. 심지어 [매트릭스]의 인공지능조차 사실은 인간을 보호하려는 의도를 갖고 있었으니까요.

  [터미네이터]의 스카이넷처럼 ‘자아’에 눈을 떠서 반란을 일으키는 것이 도리어 자연스럽지 못합니다. 왜냐고요? 컴퓨터는 매우 논리적인 장치이기 때문입니다.

  컴퓨터는 ‘논리적’이기 때문에 유용한 것입니다. 논리적이기 때문에 인간을 초월하는 계산력과 기억력을 가질 수 있습니다. 바꾸어 말하자면, 비논리적인 컴퓨터가 있다면 그것이 인간을 넘어서는 계산력과 기억력을 가질 가능성은 그다지 높지 않습니다. (이를테면 모 만화에서는 뛰어난 컴퓨터가 인간처럼 잠재의식을 가지게 되면서 유아 이하의 지능으로 떨어져 버리는 장면이 나옵니다.)

  다르게 생각하자면, 인간이 컴퓨터보다 앞설 수 있는 것은 비논리적인 부분... 꿈과 상상력이라는 것에서 가능하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버너 빈지는 인간의 지능을 앞서는 인공 지능을 예견했습니다. 이미 컴퓨터는 계산력과 기억력에서 인간을 앞섰습니다. (일부 ‘분석력’에서도 인간보다 뛰어납니다.) 그렇다면 버너 빈지는 자신을 대신해서 컴퓨터가 [심연의 불길]을 써 주리라고 생각했을까요?

  특이점 이론에선 컴퓨터가 창조력을 가질 수 있다고 주장하지만, 저는 버너 빈지 자신이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으리라 생각합니다. 적어도 작가이기도 한 자신이 컴퓨터 때문에 직업을 잃으리라고는 생각지 않았겠지요. (그는 전업작가로 활동하면서 교수 직을 그만두었습니다.)

  가까운 장래, 아니 지금 이순간 컴퓨터는 우리를 넘어서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컴퓨터보다 앞서는 점이 있습니다.

  컴퓨터 기술이 발전하는 만큼, 우리는 컴퓨터와 차별할 수 있는 특성을 키우는데 더욱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바로, 무언가를 배우고, 살피고, 이를 바탕으로 ‘상상’하여 ‘창조’하는 능력을 말이죠.

  현대 사회의 교육은 무언가를 외우는 일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반복적으로 문제를 푸는 것에 그쳐서는 안 됩니다. 생각하고 만들어낼 수 있는 일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만 컴퓨터가 우리의 자리를 대신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주어진 공부 이외의 모든 문화를 ‘낭비’라고 생각하며, 차별하고 규제하는 우리네 교육은 언젠가 “컴퓨터의 반란”을 가져오는 결과를 낳으리라 생각합니다. (아니 그 전에 다른 ‘창조적인 사람’이 한국인의 자리를 대신하겠지요.)


여담) 버너 빈지의 대표작은 [심연의 불길]... 2권은 도대체 언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