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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과 우주 이야기

화성탐사선 스피릿 영면에 들다. 다시 만날 그 날을 기대하며...


  오래 전 휴렛팩커드(HP)의 프린터 광고에서는 화성에 도착한 탐사선 앞에 HP 프린터로 인쇄한 가짜사진을 내미는 화성인의 모습을 담은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뒤에는 발달한 화성 도시가 펼쳐져 있지만, 프린터가 찍어낸 사진에 속아 넘어간 우주탐사선의 계획 진행자는 “경치는 멋지군. 하지만, 뭐 볼게 있어야지.”라며 말을 하지요.



  재미있는 광고이고 멋진 센스였지만, 과학적으로는 말도 안 되는 내용이기도 했습니다. 무엇보다도 화성은 너무도 멀어서 지구에서 실시간으로 화성탐사선을 조종할 수 없으니까요.

  화성은 멉니다. 지구에서 가장 가까울 때도 5,000만km 정도. 불과 38만 km 떨어진 달과 비교할게 아닙니다. 멀 때는 1억5,000만km 정도라니 간단히 상상하기 어려운 거리입니다.

  이러한 상황은 화성 탐사를 어렵게 만들었습니다. 일찍이 화성 탐사가 시작된 이래, 미국 동쪽 끝에서 서쪽 끝까지 홀인원(단번에 골프공을 집어 넣는 것)에 가깝다고 할 만한 장거리 여정에서 실종된 탐사선의 수가 적지 않으며, 제대로 도착해도 작동하지 못한 것이 또 꽤 됩니다.

  빛의 속도로 오가는 전파로도 왕복 20분 정도 걸리는 상황에서 문제가 생겨도 즉각 대처할 길이 없습니다. 문제가 생기고 한참 뒤에야 상황을 파악할 수 있는데다, 오직 간접적인 방법으로만 그 문제를 확인하고 처리할 수 있으니까요.

  당연한 일이겠지만, 화성탐사는 무인기에 의한 탐사, 그것도 장기간에 걸친 자율형의 무인기 탐사가 맡아 왔습니다. 일찍이 소련에서 마즈 1M(Mars 1M)이라는 이름 아래 탐사선을 보내기 시작한 이래, 현재까지 미국, 소련(러시아), 유럽연합, 일본 등에서 수십 대의 탐사선을 보냈고 그에 따라 화성의 수많은 얼굴이 드러나게 됩니다.

[ 매리너 4호가 촬영한 화성의 표면 사진. 그곳에는 운하도, 화성인도 없었다. ] 

  이따금 그런 ‘얼굴’은 ‘화성 음모론’(참고:화성 연대기 관측과 음모론의 역사) 같은 이야기를 만들어내기도 했지만, 그보다는 지구와 비교적 가까운 존재인 화성의 친근함을 높여주며 미래에 대한 기대를 더해주었지요.

[ 마즈 2호와 마즈 3호에 탑재된 최초의 로버. 하지만, 둘다 실패로 돌아가고 말았다. ]

  수많은 실패 끝에 1965년 매리너 4호가 화성을 근접 비행하며 시작된 이래 성공적인 화성 탐사 속에서 가장 주목할 것은 역시 화성에 직접 내려앉아서 화성 표면의 모습을 전해준 바이킹 탐사일 것입니다.(그에 앞서 소련의 마즈 2(Mars 2), 마즈 3가 각각 Prop-M이라는 로버를 탑재한 착륙선을 내려 보냈지만, 2호는 추락해서 실패. 3호는 착륙은 했지만, 1분도 되지 않아 통신이 두절되었습니다.)

  총 2 차례에 걸쳐 발사되어 마리너(Mariner)호가 보내준 ‘분화구와 모래뿐인’ 화성의 표면에 내려앉은 바이킹은 본래 예정되었던 90일을 훨씬 넘겨 6년 이상(바이킹 1호, 바이킹 2호는 3년 7개월) 활동을 계속하며 수많은 화성의 모습을 전해주었습니다.

[ 바이킹과 천문학자인 칼 세이건. 이 작은 탐사선이 화성의 표면을 처음 보여주었다. ]

  하지만, 바이킹(Viking)의 탐사에는 제약이 있었습니다. 바로 움직일 수 없었다는 점이지요. 화성에는 -핑크색의- 대기가 있고, 바람이 불곤 하기에 바이킹이 보내는 장면은 나름대로 흥미로웠지만, 6년이나 계속되면 아무래도 질릴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하여 NASA에서는 1996년 새로운 탐사선을 보냅니다. 바로 소형의 이동형 탐사기(로버)인 소저너를 탑재한 화성 탐사선 마스 패스파인더(Mars Pathfinder)입니다. 이는 소련에서 발사한 마즈 2호와 마즈 3호에 탑재된 로버 Prop-M이 1971년 실패한 이래 최초의 로버 탐사 시도이기도 했습니다.

  이제까지의 연착륙 방식이 아닌 에어백을 이용한 경착륙 방식으로 화성에 내려앉은 마스 패스파인더는 에어백의 가스가 빠진 후 꽃잎 같은 태양 전지를 펼치고 탑재된 소저너를 화성의 대지 위에 내려 보냈습니다.

[ 앙증맞은 소저너. 짧은 기간이었지만, 많은 성과를 남겼다. ]

  전체 길이 65cm, 폭 48cm, 30cm 높이에 6개의 바퀴를 단 10.5kg 무게의 소저너는 전면에 흑백의 스테레오 카메라를, 후면에 1개의 컬러 카메라를 장착한 것 이외에도 다채로운 탐사 장비를 탑재하고 활동하였고, 화성 시간으로 83일 동안 낮밤을 가리지 않고 활동하며 많은 정보를 보내주었습니다.(화성의 하루는 약 24.6시간으로 지구의 하루보다 약간 깁니다.)

  이를테면, 가까운 암석들이 서로 다른 지질학적 연령을 가진 것을 확인함으로써 과거에 화성에 홍수가 있었을 가능성(홍수로 인해 서로 다른 지질학 연령을 가진 돌이 흘러내려 같은 곳에 쌓였을 가능성)을 알려주기도 했지요. (여담: 앞서 소개한 HP 프린터 광고에 나온 탐사선이 바로 이 소저너를 모델로 했는데, 소저너의 전면 카메라는 스테레오 방식의 입체 카메라라서 프린트한 사진으로는 속일 수 없습니다.^^)

  하지만, 작은 상자만한 소저너로는 아무래도 한계가 있었습니다. 이동 속도는 고작 초속 1cm. 84화성일(약 86지구일, 약 740만초) 동안 움직인 거리라고 해 봐야 앞마당 정도 밖에는 안 됩니다.

  그리하여 NASA에서는 다시금 새로운 계획을 수립합니다. 그것이 바로 스피릿과 오퍼튜니티 두 형제(자매?) 탐사선을 내려보내는 마스 익스플로레이션 로버(Mars Exploration Rover) 계획입니다.

  2003년 6월 10일에 스피릿이, 2003년 7월 7일에 오퍼튜니티가 각각 발사되었고, 이들은 반년여의 여정을 거쳐 2004년 1월 3일과 1월 24일에 각각 화성에 도착했습니다.

  화성에 내려앉은 로버의 중량은 소저너의 20배 가까운 185kg. 소저너와 같이 6개의 바퀴를 달고 있지만, 길이는 1.6m, 폭은 2.3m에 높이는 1.5m에 달하는 거인급의 탐사선이었지요. 각각의 바퀴에 모터가 달렸고, 앞뒤의 4개 바퀴엔 각각 선회 모터가 있어 제자리에서 회전이 가능하고 어떤 방향으로든 45도 기울기까지는 쓰러지지 않지만, 어떤 상황에서도 30도 이상이 되지 않게 하는 장해 회피 기능. 이동 속도는 초속 1cm로 소저너와 같지만, 그 활동성 면에서 비교할 수 없는 놀라운 기계였습니다.


  하지만, 로버의 활동은 처음부터 문제를 일으켰습니다. 1월 21일 스피릿의 통신이 두절된 것이지요. 로버보다 훨씬 앞선 1996년에 발사되어 화성의 지도를 완성했을 뿐만 아니라, 통신 중계기로서도 활동하던 마스 글로벌 서베이어(Mars Global Surveyor)와의 통신 기회를 놓치고 자칫 수억달러가 들어간 로버를 잃어버릴 위험에 처했습니다.

  하지만, 다음 날 제트추진연구소에서 이상신호를 나타내는 비프음을 수신하는데 성공했고, 다시 다음 날엔 데이터를 반송하는데 성공하여 그 원인이 되었던 문제를 해결하게 됩니다.
  팀에서는 문제가 되었던 플래시 메모리의 서브 시스템을 포맷하고 재설치하는 패치를 긴급 제작했고, 10일간의 복구 작업을 거쳐 2월 5일 스피릿은 다시금 활동을 재개합니다.


  이후 스피릿과 오퍼튜니티의 활약은 눈부신 것이었습니다.

  소저너완 비교할 수 없이 많은 사진과 각종 자료가 날아오는 가운데 3월 23일 과거에 물이 존재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증거라 할만한 자료들이 공개되기도 했지요.

  약 2달여의 활동 기간 동안 둘은 제작자들의 예상을 훨씬 넘는 든든함을 보여주었고, 4월 8일 NASA에서는 3개월의 임무 기간을 8개월로 연장. 다시 9월 22일에 6개월을 연장하는 등 둘의 활동 기간은 꾸준히 늘어납니다.

  2005년 2년간의 활동 뒤에도 둘은 건재했고, 이에 고무된 NASA는 4월 6일 18개월 간의 장기 임무를 추가합니다. (당시 로버의 조사 주임인 스티브 스크와이어즈는 “화성의 대기는 차갑고 건조해서 알루미늄제의 로버는 녹슬지 않는다. 거의 변화 없는 화성 표면에서 몇 백년 이라도 계속 존재할 것이다. 인류가 만든 그 어떤 것보다 오래.”라는 말을 남겼다고 합니다.)

[ 화성의 인어 공주? 둘의 활동은 이런 재미있는 얘기 거리를 만들어내기도 했습니다. 물론 평범한 바위로 결말이 나왔지만. ]

  2008년엔 오버튜니티가 빅토리아 크레이터에서 조사 중에 겨우겨우 빠져나오는 일이 있었지만, 둘은 꾸준한 활동을 통해 화성의 모습을 전해주었습니다. 본래 예정했던 3개월을 훨씬 넘어 수년에 걸쳐 활약하는 둘의 모습은, 특히 2006년 앞바퀴 한 개가 망가져 후진 밖에 할 수 없게 된 스피릿의 모습은 가히 전쟁터에 뛰어든 종군기자를 방불케 했지요.

  하지만, 행운은 계속되지 못했습니다. 2009년 5월 13일. 스피릿이 트로이라 불리는 무른 모래지대를 통과하던 중 차륜이 모래에 빠져 버리고 만 것입니다.

  NASA는 스피릿과 교신을 계속하며 탈출을 시도했지만, 2010년 1월 26일에 이르러 결국 탈출을 포기하게 이릅니다.

  그렇게 다리를 잃은 스피릿은 그럼에도 주변을 살피며 탐사를 계속했습니다. 하지만, 스피릿의 태양 발전판에는 점차 먼지와 모래가 쌓였고 내부 전력은 계속 줄어만 갔지요. 움직일 수 없게 된 스피릿이, 수천만 km 떨어진 곳에 있는 NASA 사람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결국 스피릿 연구팀을 이끌어온 NASA의 존 칼라스 박사는 2011년 5월 24일. 스피릿과의 교신 시도를 중단하기로 결정합니다. 그리고 2011년 5월 25일. 스피릿은 본래 예정보다 20배 이상 계속된 활동을 중단하고 깊은 잠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지금 이 순간, 스피릿의 형제인 오퍼튜니티는 화성의 반대편에서 아직도 활동하고 있습니다. 비록 형제를 잃는 슬픔이 있었지만, 그만큼 굳건하게 임무를 계속하고 있습니다.

  언젠가 오버튜니티 역시 힘을 잃고 정지하겠지만, 10년 이상 오랫동안 화성에 머무르며 외로운 탐사를 계속해온 로버들은 앞으로도 영원히 화성을 지켜줄 것입니다. 언젠가 인류가 화성에 작
은 한 걸음을 딛고 그들을 다시 만날 그 날까지.





여담) 현재 NASA에서는 2011년 11월 이후 발사 예정인 큐리어시티 로버를 준비 중입니다. 스피릿이나 오퍼튜니티와는 달리 플루토늄 원자전지를 사용할 예정인 큐리어시티는 탐사만이 아니라 과학 실험실로서 다채로운 연구를 진행할 예정이지요.

이후엔 화성의 물질을 채취하여 귀환하는 계획까지 세우고 있다고 하니, 앞으로도 수많은 무인기의 활약을 기대할 수 있을 것입니다.

[ 큐리어시티의 상상도. 훨씬 다채로운 활동으로 화성의 가능성을 보여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