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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협 이야기

진정한 무협의 모습... 간장막야(干将莫邪)...그리고 삼왕묘의 전설

  간장(干将)과 막야(莫邪, 또는 막사)는 흔히 명검의 상징처럼 소개되는 검의 이름입니다.


  "제아무리 명검이라도 숫돌에 갈지 않으면(인간의 노력이 없으면) 무딘 칼이다."라는 격언과 함께 전해지지만, 사실은 그보다도 중요한 협(俠)의 본질에 대한 이야기가 이 내용에는 담겨 있지요.



  천하를 평정하고자 했던 오왕 합려는 특히 귀한 무기를 바랐는데, 희귀한 철을 얻어 간장이라는 당대의 유명한 장인에게 주며 칼을 만들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그 철은 쉽게 녹지 않았고 간장은 아내인 막야와 함께 갖은 노력 끝에 두 자루의 칼을 만들 수 있었지요.



[ 간장과 막야... 그 전설의 시작 ( 출처 : showchina.org ) ]


  하지만, 합려가 약속한 기일은 지나가 버렸습니다. 도망칠 수도 있었지만, 간장은 신의를 버릴 수 없다며 죽을 각오를 하고 자신의 아내 이름을 딴 막야검을 들고 합려에게 갑니다. 자신의 이름을 딴 간장이라는 검은 남겨두고….


  칼을 바치자 합려는 기뻐하기는커녕 날짜가 늦은 것만을 추궁했습니다. 그리고 그를 죽여버리도록 명했지요. (간장이 그 실력으로 남에게 좋은 칼을 만들어줄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라고도 합니다.)


  그가 죽고 얼마 후 막야는 아들을 낳았습니다. 막야로부터 이 사실을 알게 된 아들은 어릴 때부터 무술을 갈고 닦으며 합려를 암살하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뜻이 지나치게 강했던지 이 사실이 합려의 꿈에 나타나게 되지요.


  빛나는 검을 들고 복수를 맹세하는 젊은이…. 그 모습에 놀란 합려는 꿈속에서 본 사내의 모습을 그려서 수배합니다.


  간장과 막야의 아들은 복수하기는 고사하고 목숨까지 위태로운 상황에 부닥치고 말았습니다. 이 신세를 한탄하며 괴로워하는데 한 길손이 지나다 그를 보고 이유를 물었습니다. 아들의 이야기를 들은 길손은 그에게 말합니다.


  "자네의 목을 내게 준다면 자네의 뜻을 이루게 해 주겠네."


  젊은이는 길손을 믿고 자결을 했습니다. 길손은 그의 목과 검을 들고 합려를 찾아갔지요.

  자신을 해치려던 젊은이의 목을 가져왔다는 말에 합려는 기뻐하며 그를 맞이했습니다.

  그 순간 길손은 칼을 들어 합려의 목을 베고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오왕 합려는 당대의 권력자 중 하나입니다. 그런 권력자에 맞서 복수를 하겠다는 아들의 의기도 대단하지만, 그런 의기에 호응하여 아무런 보답 없이 목숨을 던져 왕을 암살하는 길손의 의기 또한 보통이 아닙니다. (그런 길손을 믿고 목을 내어준 아들 또한 놀랍지요.) 어떤 위태로운 상황에서도 의를 버리지 않고 힘든 이를 돕는다는 협(俠)의 화신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겠지요.


  이 이야기를 통해서 살펴본 협(俠)의 모습은, "강인한 힘(권력)을 가진 불의에 대해 그 어떤 보답도 바라지 않고 의를 행하는 것"이라고 해도 좋겠습니다. (오왕 합려라는 존재는 어디까지나 '권력의 상징'이라고 해야겠지요.)


  불의에 대해 복수하고자 했던 아들과 그의 의기를 믿고 대신 복수해주겠다고 한 길손…. 그리고 아들은 바로 그런 길손의 의협심을 믿고(信), 자신의 목숨을 바칩니다.


  그들은 무언가를 얻고자 하지 않았습니다. 아들은 단지 길손의 마음만을 믿고 목숨을 바쳤고, 길손은 그런 아들의 신뢰에 보답하여 자신의 목숨을 던졌습니다. 이를 통해 권력을 얻은 것도 명성을 얻은 것도 아닙니다. 그들의 이름은 역사에 남지 않았지요. 하지만, 그 뜻만큼은 명확하게 사람들에게 알려졌습니다. 의협이라는 것의 깊은 무게를 알려준 것이지요.


  물론 이 이야기는 전설입니다. 합려는 월나라의 장군 범려의 계략으로 패했을 때 입은 상처가 덧나서 죽은 것이 역사적인 사실로 되어 있으니까요. 하지만, 이런 이야기가 꾸준히 내려온다는 사실만으로 중국인들이 의협(義俠)에 대해 얼마나 동경하는지를 잘 보여준다고 생각합니다.



추신) 앞서도 말했지만, 여기서 오왕 합려는 권력의 상징입니다. 그런 점에서 의협이란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치는 충(忠)과는 비슷하지만 다른 개념이라 볼 수 있습니다.


  충(忠)이란, 나라라는 대상 그 자체를 위해서 희생하는 것을 말합니다. 하지만, 협(俠)은 나라나 조직이 아닌 사람과 그의 신념을 대상으로 하는 행위입니다.


  수호전의 호걸들이 양산박을 나와 관군이 되어 반란군과 싸우며 죽어간 것은 그들이 나라에 충성을 바치려고 생각했기 때문이 아닙니다. 그들의 믿고 따르는 수령이자 그들의 의기를 알아준(의협심이 넘치는) 송강의 뜻에 따라 행동하고 목숨을 바친 것이지요. 그래서 그들은 죽어가는 그 순간조차 송강에게 감사합니다. 그가 자신을 믿고 인정해 주었다는 사실 그것 하나만으로…. 자신을 알아주는 이를 위해 목숨을 바치는 것. 그것이 바로 협(俠)의 또 하나의 모습이라 해도 좋습니다.


  하지만, 협이 지배하는 듯 보이는 강호 세계에서도 사실은 권력과 명예를 노리는 이들의 암투가 계속되지요. 그래서 김용의 <소오강호>에서는 자신을 알아주는 친구를 위해 강호를 떠나고자 결심한 이들이 강호의 암투 속에 슬프게 숨을 거두는 장면이 등장하기도 합니다….


여담) 위의 전설에는 후일담이 있습니다.


  길손이 오왕을 만날 당시, 오왕은 자신을 꿈 속에서 괴롭힌 자의 목을 삶아버리려고 기름 솥을 준비했습니다. 그런데 길손이 오왕의 목을 베고 자신의 목을 베었을때 오왕과 아들과 길손의 목이 기름 솥에 함께 빠져버렸고, 관리들은 어느 것이 오왕의 목인지 구분할 수 없어 혼란에 빠졌습니다.

  그때 한 선비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오왕은 영웅이지만, 아버지의 복수를 위해 목숨을 바친 간장의 아들도, 그리고 그의 뜻에 동감하여 목숨을 바친 길손도 모두 영웅이니 함께 합장하자."

  결국 세 사람의 목은 한 자리에 묻혔고, 이 이야기를 들은 사람들은 그 뜻을 기려 세 영웅의 묘(삼왕묘)라고 부르며 칭송했다고 하지요.


여담) 삼왕묘의 이야기는 전설일 뿐이지만, 중국의 역사 속에는 실제로 이 같은 이야기가 많이 존재합니다. 진시황을 암살하고자 했던 것으로 유명한 형가의 이야기 역시 이와 비슷한 사례이지요. (그의 이야기는 [영웅]이라는 영화의 소재가 되기도 했습니다.) 이에 대해서는 다시금 정리하여 소개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