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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 이야기

전쟁과 반전쟁... 만화로 그려진 전쟁 이야기.

  일본의 만화가이자 일명 '만화의 신'인 테즈카 오사무는 다양한 작품으로 많은 이에게 사랑받았으며, 많은 이에게 영향을 주었습니다만, 그 중에서도 그가 미친 큰 영향은 바로 "만화 속의 전쟁에서 사람이 죽는 것"이었다고 생각합니다.


  테즈카 오사무가 등장하기 전, 특히 전쟁 당시의 일본 만화에서는 다양한 형태의 전쟁 만화가 소개되었는데, 그 중 대부분은 총알을 맞은 병사들이 "아프다"라고 외칠 뿐 죽지 않으며, 폭탄이 터져도 사람이 날아가기만 할 뿐 얼굴이 약간 그을린채 멀쩡하게 일어나는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전쟁은 '사람을 죽이는 대량 학살'이라는 것을 고의적으로든 아니든 감추고 있었던 것이지요.


  하지만 전쟁을 직접 겪었던 테즈카 오사무는 달랐습니다. 그는 습작 시절부터 전쟁으로 주인공이 죽는 장면을 넣고, 불타오르는 거리와 시체를 보여주곤 했습니다. 비록 그의 그림은 과장된 모습으로 만화체였지만, 전쟁이 얼마나 끔찍한 것이며 전쟁이 어떤 결과를 낳는지를 잘 보여주었던 것입니다.


  테즈카 오사무 이래 많은 만화가는 전쟁의 고통과 슬픔을 묘사하고자 노력했습니다. 무기 상인을 악당으로 등장시킨 이시노모리 쇼타로가 있었고, 로봇에게 무기를 들리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하며 무기를 갖지 않은 로봇 철인 28호를 등장시킨 요코야마 미츠데루가 있었습니다. 폭력의 미학을 보여주는 듯 하면서도 처참한 살육 장면으로 충격을 안겨준 나가이 고 같은 이들도 있었지요.


  하지만 그 무엇보다도 충격적인 반 전쟁적인 이야기는 바로 애니메이션에서 등장했습니다.


  바로 테즈카 오사무의 만화를 원작으로 한 애니메이션 "바다의 트리톤"이었습니다.



  당시는 아직 신인이라고 할 수 있었던 토미노 요시유키의 첫 감독 작품이었던 이 애니메이션은, 바다를 무대로 '악당'인 포세이돈 족과 맞서 싸우는 트리톤족의 후예 '트리톤'을 주역으로 한 소년 활극이었습니다. 1972년에 방송된 이 작품은 엄청난 인기를 끌지는 못했지만, 아이들만이 아니라 어른들도 즐겨보았고, 심지어는 여성들도 즐겁게 본 작품이었습니다.


  회를 거듭할수록 성장하는 트리톤의 모습에 시청자들은 열광하였고 그를 응원하였습니다.


  그리고 시리즈 마지막회인 9월 30일. 시청자들은 드디어 트리톤이 포세이돈족의 본거지를 쳐들어가는 모습을 보며 기대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결코 그들의 기대대로 되지 않았습니다. 토미노 요시유키 감독이 남겨둔(원작에도 없고, 본래의 각본과도 달라서 토미노 감독 홀로 몰래 준비했던) 엄청난 반전이 기다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제껏 싸워온 포세이돈족. 사실은 악당이라고 생각했던 그들은 본래 아틀란티스인들에 의해 포세이돈에게 바쳐친 제물의 생존자들이었으며, 트리톤족은 얼마 안 남은 아틀란티스인들이 포세이돈족에게 복수하기 위해서 만든 생체병기였던 것입니다. 포세이돈족이 트리톤족을 학살한 것은 바로 자기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였던 것입니다.

  

  그리고 트리톤은 결국 아틀란티스인들의 뜻에 따라 포세이돈족을 멸망시키고 만 것이지요. 수없이 널려있는 포세이돈족의 시체... 이제껏 트리톤을 응원하며 악당을 물리칠 것을 기대했던 시청자들에게는 그야말로 충격의 한 장면이었습니다. 결국 복수의 연쇄는 그치고 말았지만, 이제까지 트리톤을 응원한 시청자들은 거대한 대학살의 응원자이자, 대학살의 목격자가 되고 만 것이지요.



  훗날, 군국주의적 색채를 지니고 있으면서도 후반에서는 역시 전쟁의 처참함과 끔찍함을 잘 보여주었던 "우주전함 야마토", 그리고 대놓고 전쟁터에서 매몰되어 버리는 인간성을 강조했던 "기동전사 건담"이 성공하면서, 이 작품 역시 재평가되었고 극장판으로 선보이게 됩니다. 그리고 139분으로 편집된 극장판에서 그 충격적인 결말의 마지막 편은 거의 모든 장면이 그대로 반영되기에 이릅니다. 그리고 이 마지막 에피소드는 그후 많은 이에게 회자되면서 일본의 만화와 애니메이션 흐름에 변화를 가져옵니다.



  전쟁을 그린 작품 속에서 전쟁을 보여주고, 폭력을 보여주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그리고 군인을 멋지게 그리거나 전쟁 영웅을 부각할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설사 그렇다고 해도 전쟁을 아름답게 느끼게 하거나, 폭력이 정의로운 것이라고 생각하게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봅니다.정말로 좋은 작품이라면, 전쟁은 무자비한 것이며, 그 결과가 어떤 것인지를 느끼게 함으로써 전쟁과 폭력의 문제점을 보여주는 것이 마땅하다고 봅니다.



  SF에는 다양한 관점이 들어갈 수 있습니다. 그 중에는 물론 불가피한 무력을 옹호하는 관점이 존재할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설사 그렇다고 해도 정의로 무력을 아름답게 칠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보여줄 필요는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상의 차이로 인한 대립이 있다고 해도 그 상황에서 어떻게든 해결책을 찾아나서는 것이야 말로 가장 인간적인, 아니 인도적인 모습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이번에 판타지 세계를 무대로 자위대가 활약하는 소설, "게이트"가 애니메이션화된다고 합니다. 어느날 갑자기 긴자에 생겨난 차원의 문을 넘어 판타지 세계로 간 자위대가 그 세계에서 활약하는 내용을 소재로 한 이 작품은 차원 이동에 의한 '다른 세계 모험물' 중에서 비교적 완성도가 높은 작품으로 눈길을 끌었고, 코믹하면서도 사실적인 밀리터리 만화를 그리는 사오 사토루에 의해 만화화됨으로서 호평받았던 만큼,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어지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정의가 있다면 폭력은 올바른 것'이라는 인식을 가진 이들이 넘쳐나고, '정의를 위해선 고문조차 문제없다.'라는 식으로 생각하는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이 작품이 더 대중적인 애니로서 제작되는 건 조금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결코 일본의 자위대가 주역이기 때문에 하는 이야기가 아님을 기억해 주십시오.)


  혹자들은 작품의 완성도만 괜찮으면 좋다고 말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나도 전쟁터에 나가고 싶어!"라며 좀이 쑤시듯 외치는 병사들을 멋지다는 듯 표현하며, '저들이 침공해오니 이정도는 당연하지'라는 듯이 수십만 병력을 마치 빗자루로 쓸듯이 가차없이 학살하고도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며, 일 개인의 잘못을 이유로 상대방의 영토에 침공하여 의회를 폭격하는 것이 당연한 듯이 행동하는 작품이 단순히 '재미있으니까'라는 이유로 옹호되어야 한다고는 보지 않습니다.


  내년에 애니메이션으로 나올 이 작품을 사람들이 찾아보는 것과는 별개로, 그 작품 내부의 모습이 정말로 비정상적이며, 인도적이지 않다는 것을 한번쯤은 생각해 주면 좋겠습니다.


  전쟁이라는 것이 결코 아름다운 것이 아니며, 폭력은 그 어떤 정의를 내세워도 올바른 것이 아니라는것을 생각하지 못한다면, "정의를 위해서"라면 핵폭탄의 스위치를 누르는 일조차 당연시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지극히 좋지 못한 미래를 우리에게 안겨주겠지요.


  폭력의 미학을 내세운 작품을 즐기는 것은 좋습니다. 가공의 이야기, 허구의 이야기, 만들어진 이야기로서 말이지요. 하지만 무엇을 보듯 우리 자신의 마음 속에는 '과연 올바른 것이 무엇인가?'라는 견해가 남아 있어야 함을 기억해주시기 바랍니다.



  그런 점에서 "바다의 트리톤"을 극장판 애니메이션으로 보는 것도 좋을 것입니다. 30년도 전에 제작된 작품이지만, 이건 지금 보아도 충분히 완성도 높고 재미있는 작품이니까요.


  다만, 이 작품을 볼때는 주인공인 트리톤의 관점에서만 그를 응원하지 말고, 생존을 위해 그에 맞서야만 하는 포세이돈족의 입장도 한번 상상해 보시길 권합니다.


  "상상"이야 말로 SF가 우리에게 전해주는 가장 훌륭한 가능성이며, 우리 인류가 이만큼 발전해온 원동력이자, 우리 인류가 이후에도 생존하기 위해 필요한 가장 중요한 특성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