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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 이야기

일본 SF 대회의 추억

올 8월말 일본의 톳토리에서 열리는 제54회 일본 SF 대회(코메콘) 참가가 잘 진행되는 것 같습니다. 사실 한국에선 참가비 입금도 제대로 안 되는 등 골치가 아팠지만, 일전에 참가했던 인연 덕분인지 게스트로 참가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54회 일본 SF 대회, 코메콘 공식 사이트)


여행 경비는 당연히 개인 부담이지만, 참가비만큼 부담이 덜한데다 게스트는 1명을 동반할 수 있는 만큼 좀 더 편하게 기획을 진행하고 할 수 있는 것이지요.


[ 도서관에 많은 도움을 주셨고, SF대회 진행자와의 인연을 맺게 해 준 박상영씨와 함께 기획을 진행했습니다. ]


"한국 SF를 일본 SF 대회에 알리고 싶다."라는 포부를 갖고 시작했던 기획... 제50회 일본SF대회(TOKON10)에서 진행했지만, 51회때는 시즈오카를 강타한 태풍으로 비행기가 결항되어 침통하게 포기... 52, 53회는 도서관 이전에다 결혼 등으로 정신이 없어 참가 못하고 이제야 조금 숨을 돌려서 재개...


앞으로는 매년 참가를 생각하지만 잘 될지는 해 봐야죠.(그래도 주로 미국에서 열리는 월드콘(세계SF대회)보다는 쉬운 편이니까요.)


전보다 도서관 규모도 커졌고 자료도 여러가지 준비를 했기에(51회때 나누어줄 예정이던 "K 박사의 연구 일어 번역판 인쇄물"이라던가...) 전보다는 재미있게 진행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만큼 업데이트를 하는 건도 말할 필요 없겠지만요.



일본 SF 대회는 1962년에 시작된 일본SF팬들의 행사입니다. 미국에서 시작된 세계SF컨벤션(월드콘)과 유사한 행사로 현재는 매년 1000명 이상이 참가하는 큰 규모의 잔치죠.


[ 2010년 TOKON10 개막식 행사장. 굉장히 큰 홀인에도 자리가 꽉 찹니다. 정말 장관! ]


참가비는 최소 1만엔(약 10만원)인데도, 이틀동안 진행하는 행사에 많게는 1500명 이상이 전국에서 모여드니 그 규모는 가히 놀랍습니다.


SF 동인지를 판매하거나 코스츔 플레이를 하기도 하지만, 주된 행사는 오프닝과 엔딩을 포함한 수십, 아니 백 단위가 넘는 기획.


[ TOKON10 행사장을 지켜준(?) 강화복. 녹슨듯한 연출이 멋지죠. 우와 갖고싶다! ]


[ 최근 신인상을 받으며 주목받는 신인과 작가와 원로들의 이야기. 저 중에 한국의 북쪽 나라 출신으로 일본에서 활동 중인 작가도 있습니다. ]



제가 했던 "한국SF로의 초대"처럼 SF를 좋아하는 이들이, SF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SF 이야기를 하는 것입니다.


그야말로 온갖 종류의 내용이 진행되는데 참 재미있습니다. (아쉬운 건 한 번에 여러 개의 기획이 진행되다보니 뭘 들어야 할 지 택일해야 한다는거죠. 보고 싶은게 2개 이상이면 하나 외엔 놓치고 맙니다.)



[ 일본의 한국만화팬 오가사와라씨가 진행한 한국 SF 만화 소개 코너. 아내분과 함께 하는 자리가 참 부러웠습니다.(이젠 아니지만.^^) 일본에 번역된 한국 SF, 판타지 만화가 대부분 일본의 팬들이 나서서 번역했다는게 인상적이었죠. 외국인에게 한국의 좋은 것을 소개하면, 그 중에 좋은 것을 그들이 알아서 찾는다는 제 생각을 응원해주는 듯 해서 좋았습니다. ]


그 중엔 일본팬이 진행하는 "한국SF만화 소개" 같은 코너도 있더군요. 늦은 시간에 진행되는데다, 비인기코너였기 때문인지 거의 저하고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만...^^


참 재미있는 행사입니다.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SF를 좋아하는 이들이 함께 합니다. SF팬이 개최하고, SF팬이 준비하며, SF팬이 모여 즐기는 자리죠. 정부나 회사가 나서는게 아니라 순수하게 SF를 좋아하는 이들이 즐기는 자리.



부부가 오는 건 기본, SF팬인 할아버지가 SF팬인 손자와 함께 찾아오고, 온가족이 SF이야기를 나눕니다. 행사중 재미있었던 것에 대한 팬투표인 암흑성운상에서 '코스츔상'으로 "하야부사"(기적적으로 돌아온 소행성 탐사선)의 코스츔플레이어가 소개될때, 하야부사의 귀환 캡슐 코스츔을 입은 '암흑성운상 발표자의 딸'이 함께 서는 등... 그야말로 세대를 넘어선 재미의 공유 정신을 느끼게 되죠. (암흑 성운상 대상은 '성운상 발표식의 VAIO'였습니다. 뭔지는 행사에 참가한 사람만 압니다.^^)


[ 멀리서 찍다보니 흔들린게 아쉬운 사진. 오른쪽이 하야부사 코스츔. 왼쪽은 하야부사의 귀환 캡슐. 둘다 싱크로율이 엄청나지요. ]


[ 하야무사 코스츔의 뒷 모습. 이온엔진 2개가 고장난 것까지 재현한게 놀라운 완성도. ]


2010년 행사장에서 여러가지 재미있는 일이 가득했지만, 4년이 넘게 흐른 지금까지 마음에 남는 두가지 말이 있습니다.


하나는 폐회식을 마치고 돌아다면서 참가자들 사이에서 우연히 들린 -제 마음을 너무도 잘 대변한- 말.


"이렇게 이틀동안 모든 걸 잊어버리고 노는 것도 정말 좋네."



그리고... 무엇보다도 기억에 남는 것은 2010년에 돌아가신 일본 SF 팬덤의 아버지이자, 제 마음의 스승이기도 한 시바노 타쿠미씨가 남긴 폐회사였습니다.


당시 도서관을 만들었지만, 여러모로 힘들어 방황하던 제게 커다란 이정표가 되었고, 지금도 제게 가장 소중하게 남아 있는 말.



"여러분 옆을 봐주세요. 모두 SF를 좋아합니다."



1998년 SF 홈페이지(훗날의 조이 SF클럽)를 만들고 막연하게 뭔가 해 보고 싶다고 생각하다 SF 파티라는 행사를 십수차례 열기도 하고, 동인지를 만들고, 나아가 도서관까지...


힘들고 아쉽고 관두고 싶다는 생각을 해 본 것이 한 두번이 아니었지만, 저 말을 떠올릴 때면 뭔가 마음이 꽉 차는 듯 하고 눈물과 함께 얼굴에 웃음이 떠오릅니다.


비록 규모로 작고 어렵고 힘들었지만, 그 순간 만큼은 SF를 좋아하는 모두와 함께 했다는 추억이 있었고, 그것은 제게 있어 더 없이 소중한, 행복한 시간이었으니까요.



[ 2010년에 마지막으로 열렸던 SF파티(페스티발). 10회를 넘도록 규모는 초라한 그대로였지만, 다들 재미있게 놀았습니다. ]



8월 29, 30일... 코메콘(톳토리의 일본 SF 대회명)까지 6달 정도 남았습니다.


저는 바로 그 날을 즐기길 기대하고 있습니다. 주변 어디를 둘러보아도 SF 팬으로 가득한 순간. SF를 좋아하는 이들과 함께 하는 시간... 인생에서도 손꼽는 행복한 순간이 될거라 기대합니다.



하지만 한국에서 그런 순간을 맞이할 수 있다면 분명히 더 좋을 것입니다. 아니 이제까지 SF&판타지 도서관에서 그 같은 시간을 통해서 즐거운 순간, 행복한 시간을 계속해 왔지요.



그리고 그 추억이 남아 있는 한, 저는 결코 제 삶을 후회하지 않을 것입니다. 아니 후회할지도 모르겠지만, 돌이키고 싶다고는 생각하지 않을 것입니다.


SF&판타지 도서관은, 그리고 제가 지금까지 해온 모든 일은 제 자신이 행복하고자 했던 것이며, 그 행복을 남들도 함께 하길 바라면서 해온 일입니다.



여러분의 주변에 여러분이 좋아하는 무언가를 좋아하는 사람이 있나요? 아니면 그런 사람들을 만날 기회가 있나요?



그렇다면 여러분은 충분히 행복해질 수 있습니다.


그렇지 못하나요? 만일 SF나 판타지를 좋아한다면, SF&판타지 도서관을 찾아와 주세요.


아니면 도서관의 이야기를 한번 살펴봐 주세요. 비록 간접적인 참여라도 그다지 멀지 않은 곳에 SF와 판타지를 좋아하는, 너무도 좋아하는 누군가가 있다는 것을 기억해 주세요.


일본 SF 대회는 바로 제게 그런 것을 기억하게 했던 소중한 추억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