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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 이야기/오늘의 추천SF

오늘의 추천작(02월 29일) - 팀 파워즈의 아누비스의 문, 화려함과 음습함이 뒤섞인 빅토리아 분위기를 잘 살린 스팀펑크 대체역사 걸작


  4년에 한번 뿐인 윤년에만 존재하는 2월 29일은 역사적인 지식을 바탕으로 흥미로운 장르 작품을 창조하는 작가, 팀 파워스(파워즈)의 생일입니다. 근래에는 [캐리비안의 해적 4]의 원작이 되었던 [낯선 조류]로 국내에 알려진 이 작가는 19세기 빅토리아 시대의 영국을 배경으로 한 대체 역사 소설들로 인기를 모았지요.

  팀 파워즈와 친구들(제임스 블레이록, K,W. 지터)은 증기기관이 발달한 산업 혁명 시대를 바탕으로 오컬트나 초자연적 요소, 그리고 다양한 과학적인 상상을 추가하여 독특한 세계를 만들었는데, 지터가 당시의 정치적 운동이자 스타일이었던 ‘사이버 펑크’ 운동에 빗대어 “컴퓨터 대신 증기기관이 등장하는 우리 소설은 스팀펑크라고 불러야 한다.”라는 농담을 했고, 그것이 그대로 ‘스팀펑크’라는 장르로 정착되었습니다.

  당연히 팀 파워즈는 이들 스팀 펑크 장르의 대표적인 작가이지요. 그는 굉장히 많은 작품을 냈지만 국내에 소개된 작품은 얼마 되지 않습니다.

  2월 29일의 추천작은 바로 그의 대표적인 스팀 펑크 작품 “아누비스의 문”입니다. 국내에는 2007년에 소개된 이 작품은 19세기 초의 런던을 배경으로 20세기의 이방인이 활동하는 시간 여행기입니다. 팀 파워즈의 초기 대표작 중 하나로서 스팀 펑크라는 세계를 매우 잘 이해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대체 역사로서도 흥미로운 작품이지요. (시간 여행 작품으로서는 다소 부족한 느낌입니다.)



  이야기는 20세기의 어느 곳, 젊은 영문학자인 도일을 통해서 시작됩니다. 그는 한 괴짜 백만장자로부터 거액을 줄 테니 19세기의 낭만파 시인 콜리지에 대한 강의를 해달라는 얘기를 듣게 되죠. 그런데 그 강의의 목적은 사실 실제의 19세기로 향하여 직접 콜리지를 만나기 위한 준비였다는 것을 알게 되고, 좋아하는 시인을 만나고 싶은 마음에 여행에 동참합니다.
  하지만 그들이 도착한 19세기의 런던은 그들이 생각했던 산업혁명 시대의 영광과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마법으로 생겨난 호문클루스가 등장하고 인간과 동물을 변형하여 만들어진 괴물이 춤추는, 마법과 산업이 뒤섞인 기괴한 세계였던 것이지요.
  그리고 한편으로 이집트의 신 아누비스를 부활시켜 영국을 몰아내려는 이집트 마법사의 음모가 도사리고 있고...


  라는 “아누비스의 문”은 ‘천공의 성 라퓨타’나 ‘스팀보이’ 같은 작품을 보면서 생각한 스팀펑크의 분위기와는 매우 다른 느낌입니다. 산업 혁명의 거창한 모습 이면에 감추어진 암울하고 괴이한 분위기가 흘러넘치는 곳일까요? 더욱이 과학만이 아니라 기괴한 마법과 괴물들이 활동하며 이집트의 신을 부활시키려는 마법사들이 활약하기도 합니다.
  그야말로 과학과 오컬트가 뒤섞인 독특한 세계, 환상과 허구, 상상과 망상이 뒤섞인 듯한 기묘한 이야기가 이 작품의 특징이지요.

  그야말로 뒤죽박죽 이해할 수 없는 상황으로 가득하지만, 팀 파워즈는 풍부한 상상력과 세밀한 조율을 통해 이들 이야기를 잘 엮어내고 충실하게 마무리하고 있습니다. 글을 읽을 때는 뭔가 어지럽고 복잡한 느낌이지만, 읽어갈수록 흥미가 넘쳐나며 마무리에서 모든 것이 정리되어 완성되는 것이지요.

  암울하고 음습한 팀 파워즈의 세계는 19세기 빅토리아 시대의 단면을 매우 잘 드러내기도 합니다. 사실 빅토리아 시대는 그 이름이 주는 분위기처럼 매우 화려하고 장대한 세계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하늘엔 스모그가 자욱하고 거리마다 쓰레기와 부랑자가 넘쳐나는 세계이기도 했으니까요. 증기기관을 비롯한 온갖 첨단 과학이 등장하여 사람들은 미래를 꿈꾸지만 뒷골목에는 잭 더 리퍼로 대표되는 범죄자가 들끓고 셜록홈즈 같은 이들이 열심히 뛰어다녀야만 하는 상황. 동시에 오컬트와 마법이 아직도 남아서 사람들을 유혹하는 세계니까요.

  팀 파워즈의 “아누비스의 문”은 과학과 오컬트가 뒤섞인 빅토리아의 분위기와 당대의 인물들을 잘 엮어서 만들어 놓은 작품입니다. 마법이 당연하다는 듯 등장하고, 이집트의 신이 부활하는 등 SF를 기대한 이들에게는 꽤 불편할지도 모르지만, 이러한 여러 가지 요소들에 적절한 설명으로 설득력을 부여하고 있다는 점에서도 팀 파워즈의 실력을 칭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드 SF를 좋아하는 이들이라면 그다지 권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호러나 스릴러를 즐기고, 독특하고 기묘한 이야기를 바라하는 이들이라면 꼭 읽어보길 권합니다. 그리고 아무런 의문을 떠올리지 말고 끝까지 읽어보세요.

  팀 파워즈의 작품은 수많은 퍼즐이 깔린 느낌을 줍니다. 고개를 갸우뚱하게 하게 만드는 장면도 적지 않지요. 하지만, 기묘하고 독특한 이야기를 따라 페이지를 넘기다보면 어느새 모든 퍼즐이 스스로 맞추어져 즐거움을 주고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될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