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SF 이야기

마법 같은 과학으로 만들어진 이야기


[ 미소녀 하렘물의 전형처럼 보이지만, 굉장히 독특하고 다채로운 세계관을 구축한 "천지무용!!" GXP의 소설에서 좀 더 충실한 내용을 보여준다. ( 천지무용!! / AIC ) ]


  3기(총 20화)에 달하는 OVA 애니메이션을 시작으로 TV, 극장판, 만화, 소설, 게임 등 다양한 매체로 선보이며 인기를 끈 <천지무용!>과 <듀얼! 패러럴 룬룬 이야기>, <포톤>, <스페이스 오페라 아가루타>, 그리고 근래에는 천지(텐지)의 동생인 검사(켄시)가 활약하는 <다른 세계의 성기사 이야기>를 비롯한 다양한 작품을 낳은, 카지시마 마사키(梶島正樹)는 그야말로 양파 껍질처럼 벗기고 벗길수록 새로운 이야기가 튀어나오는, 굉장히 깊이있고 복잡한... 그리고 무엇보다도 참신한 세계와 설정을 만드는 제작자입니다.


  AIC사의 사장인 미우라 토오루(三浦亨)가 "자네 머리를 한번 확 잘라보고 싶네. 도대체 얼마나 많은 지식과 뒷 설정이 들어있나!"라고 했을 정도로 말이지요.


  그의 세계는 대개 한 명의 평범한(하지만 무언가 숨겨진 것을 가진) 소년을 중심으로 수많은 개성적인 여성들이 얽히는 할렘물(이라기보다는 일부다처제)의 형태를 띄고 있다는 특징이 있지만, 또 한편으로 일본 색채의 독특한 디자인과 그만의 독자적인 과학 설정에 기반한 SF 요소들을 충실하게 구현합니다.


  초차원의 여신들, 신비한 힘을 가진 황가의 나무나 이 나무를 이용해 만들어진 황가의 배, 물질 변환을 구현하는 광력(그리고 광응익), 마법 과학이라 해도 좋을 아법(아호) 등. 그의 작품에 나오는 모든 설정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물리 법칙을 완전히 무시한 듯 하면서도 어지간한 하드 SF 팬조차 납득할만큼 설득력과 현실성을 갖고 그의 세계를 구축해나갑니다.


  그야말로, 아서 C 클라크가 말한 "고도로 발달한 과학은 마법과 구분할 수 없다."라는 말을 가장 잘 구현한 작품이라고 해도 좋을 것 같습니다.


  게다가 이러한 법칙이 단순히 도구로서 쓰이기 보다는 -마치 아시모프의 로봇 3원칙처럼- 작품을 이끌어나가는 중심축이 된다는 점에서 정통파 SF의 특성을 따르고 있다고도 하겠군요.


  특히 그가 원작이나 감수를 맡은 작품은 모두 어딘가 연결점을 갖고 거대한 세계의 일부로 보인다는 것도 특징이겠군요.



[ 카지시마 마사키의 또 다른 작품인 다른세계의 성기사 이야기... 이는 천지무용 세계의 또 다른 확장이라 해도 좋다. ( 다른 세계의 성기사 이야기 / AIC ) ]


  때문에 그의 작품은 단순한 미소녀 작품이라는 차원을 넘어 하나의 거대한 세계관으로서 엄청난 수의 고정팬을 확보하고 있습니다. (물론 필자를 포함...^^)


  미소녀를 잔뜩 등장시키는 작품들이 대개 작품 자체, 또는 세계관 자체보다는 각각의 캐릭터에 인기가 집중되는 것과는 달리, 카지시마 마사키의 작품은 세계관 그 자체로 매력을 모으고 인기를 끕니다. 그래서 새로운 작품이 나올 때마다 '이번에는 과연 어떤 세계가... 어떤 이야기가...'라는 관심이 집중되지요.



  한편, 미소녀를 내세운 또 다른 작품 중에 20년이 넘도록 연재가 계속되는 <오! 나의 여신님>이라는 작품이 있습니다.



[ 엄청난 연재 기간을 보여주는 "오! 나의 여신님". 사자에상 방식이 아니면서도 계속되는 것이 놀라울 뿐이다. ( 오! 나의 여신님 / 후지시마 코스케 ) ]

  

  일러스트레이터로도 활동하는 후지시마 코스케(藤島康介)의 만화로 한 명의 평범한 공대생(!)이 소원을 들어주는 여신과 함께 살면서 펼쳐지는 이야기를 그린 작품인데 할렘물이라기엔 애매하지만 그 집에 함께 사는 세 여신 외에 이따금 등장하는 미소녀 조연(대개는 신이나 악마 등 초차원 존재)들이 눈길을 끄는 작품이지요.


  이 작품의 인기는 물론 베르단디라는... 그야말로 모든 남성들의 꿈을 구현한 듯한 이상적인(비현실적인?) 캐릭터에 기반한다고 할 수 있지만, 20년 이상 계속 인기를 누릴 수 있는 이유로 북구 신화를 바탕으로 여러 신화나 전설을 독특한 색채로 재현한 세계와 그 세계에서 펼쳐지는 이야기의 재미를 무시할 수 없습니다.


  세계의 질서를 구현하는 '프로그램'이라던가 이를 파괴하는 바이러스, 11차원의 우주라던가, 맥스웰의 악마를 이용한 마술 빗자루 등... 신화와 전설이지만, 한편으로 SF색깔이 넘쳐나는 용어, 그리고 설정이 특히 매력적입니다. 이따금 도라에몽 같은 역할을 맡는 스쿨드의 발명품 중에는 그야말로 '마법 같은 과학'이라고 밖엔 할 수 없는 것들이 즐비하고 말입니다. (주인공이 공대생이라는 것과 연결해서 생각하면 더더욱 재미있게 느낄 수 있지요.)



 [ 다채로운 미소녀들의 향연(?)이 펼쳐지는 사쿠라 대전. ( 사쿠라대전 / 레드컴퍼니, 히로이 오지, 후지시마 코스케 ) ] 


  후지시마 코스케씨가 일러스트를 맡은 -레드 컴퍼니의 히로이 오지(広井王子)가 총제작을 맡고 아카호리 사토루(あかほりさとる)가 구성을 맡아 완성한- <사쿠라 대전> 역시 비슷한 류에 속합니다. 한 명의 주인공에 수많은 미소녀가 등장하여 눈길을 끌지만, 이 시리즈를 구성하는 기반은 역시 '영력'이라는 힘으로 움직이는 영자 갑주와 주술로 만들어진 강마라는 존재들... "마법 같은 과학"으로 구성된 세계관과 설정이 흥미를 불러오고 이야기를 재미있게 이끌어나가도록 도와주지요.


   현재까지 5편의 게임이 만들어지고 인기를 이어나가는 이 작품을 보고 "영력같은 힘은 없어!"라던가 "강마 따윈 요괴나 마찬가지잖아?" 같은 말은 의미가 없습니다. 여하튼 우리 세계와는 조금 다른 스팀 펑크로 가득한 이 세계에서 영력이나 힘이나 강마라는 존재는 실존하는 개념이며, 세계의 법칙 중 하나이니까요.



[ 게임과 애니메이션의 분위기가 너무도 다르지만, 양쪽 다 재미있는 갤럭시 엔젤 ( 갤럭시 엔젤 / 브로콜리 ) ]  


  브로콜리사에서 기획한... 그리고 <로도스 섬 전기>의 미즈노 료(水野良)가 감수를 맡아 완성한 <갤럭시 엔젤> 역시 빼놓을 수 없겠군요... 주로 바보 같은 이야기로 가득한 애니메이션으로 잘 알려진 작품이지만, 이 작품의 기반에는 '로스트 테크놀로지'라는 특수한 가능성이 존재하기 때문이지요.


  특히 게임과 소설, 그리고 만화판에서는 갤럭시 엔젤 일행이 조종하는 '문장기'라는 전투기(길이 50m 정도의 대형 우주전투기)가 거대한 전함을 상대로 맞대결을 벌이고 거대한 우주 요새가 공격해 오는 만큼 이를 해결할 방법이 필요하지요. 그리하여 로스트 테크놀로지에 이어 크로노 스트링 엔진이라는 "마법과 같은 기술"을 등장시킵니다. 그리고 이야기를 이끌어나가는 핵심에 바로 이 '로스트 테크놀로지'가 자리잡고 있는 것이지요.



  이들 작품들은 '마법과 같은 과학'을 이야기의 전면에 내세워 이야기를 이끌어나간다는 특징을 갖고 있습니다.


  <천지무용>은 광응진검을 만들어낼 수 있는 그 독특한 힘의 원천이, <오 나의 여신님>은 공학적인 분위기로 다시 꾸며진 신화 설정이, 그리고 <사쿠라 대전>은 영력과 강마의 존재가, 여기에 <갤럭시 엔젤>은 로스트테크놀로지 그 자체가 이야기의 핵심이자 중요한 추진력이 되어 재미있는 가능성을 만들어나갑니다...



  이들 작품에 등장하는 '과학'은 "마법과 같은 과학"으로 우리 세계의 과학은 아닙니다. 이들 각각의 설정은 우리 세계의 과학 상식을 넘어섰기 때문에 '마법처럼 보이는 것'이니까요.


  이를테면, 작은 몸집의 천지가 칼 모양의 물질을 만들어낼만큼 엄청난 에너지를 만든다는 것은 '에너지 보존 법칙' 같은 기본적인 규칙을 깨뜨리는 것처럼 보일지도 모릅니다. 마음 만으로 강력한 힘을 내어 작은 전투기가 전함을 마구마구 날려 버리는 것도 물리 법칙을 어긴 것처럼 보이겠지요. 여신이 소원을 빌어주고 세계의 프로그램을 조정하는 이야기 따윈 판타지에 불과하다고 얘기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이렇듯 "마법 같은 과학"으로 만들어낸 이야기에는 그만한 의문 쯤은 가볍게 넘어갈만한 매력이 있습니다. 아니, 그들이 존재하기 때문에 더 매력적일지도 모르지요. 결국 이들 역시 '상상 과학'. 가능성의 세계의 이야기이니까요.


  SF라고 해서 현재의 과학에 딱딱 맞을 필요는 없습니다. SF란, '상상 과학 이야기'. 그리고 과학적으로 상상해서 만들어낸 이야기이므로 과학보다는 이야기에 초점을 맞추어 재미있고 '납득이 가는' 이야기를 만들면 충분한 것이 아닐까요?


  상상력이야 말로 인간에게 가장 소중한 것... 그리고 이야기를 구성하고 이끌어 나가는 원동력이니까요.



  그러나, "마법과 같은 과학"을 도입했다고 해서 무조건 매력적인 이야기와 작품이 만들어질 수는 없겠지요. 아무리 설정과 세계관이 좋아도 결국 그것으로 펼쳐져나가는 이야기가 재미없다면 그것은 단지 케이크 위의 장식... 지옹그의 다리(^^)보다도 못한 존재가 될 것입니다.


  실제로 근래의 많은 작품이 -이를테면 수많은 라이트 노벨이- 이처럼 "마법 같은 과학"을 도입했지만, 그들이 모두 재미있는 것은 아닙니다. 폼을 잡는 캐릭터가 멋있다고 해서 무조건 폼만 잡는다고 재미있는 것은 아닌 것처럼 말입니다.


  한편, 참신한 설정과 세계관, 그리고 "마법 같은 과학"만이 좋은 건 아닙니다. 근미래를 배경으로 과학적인 설정을 잘 맞춘 작품 중에서도 <프라네테스>처럼 재미있고 즐거운 이야기는 얼마든지 있으니까요.


  결국 중요한 것은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상상력... 이야기를 즐겁게 꾸밀 수 있는 상상력인 것이지요.



추신) 물론 <오 나의 여신님>이 판타지인가 SF인가 하는데는 제각기 이견이 있겠지요. 무엇보다도 '신'이 등장하니까요.(신이 등장하는 SF도 물론 많습니다만.) 그렇다면 "마법 같은 과학"이 아니라 -<슬레이어즈>처럼- "과학 같은 마법"이라고 해도 좋을 겁니다. ^^


(* 네이버 블로그에서 이전한 글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