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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 이야기

나비 효과와 종교의 기원(祈願)

  누군가가 말했습니다.


  “기원(祈願)이란 지극히 불합리한 방법으로 자연 법칙을 깨기를 바라는 행위”


  사실 신에게 무언가를 바라는 것은 그 바람이 어떤 내용이건 관계없이 정상적인 자연의 흐름을 깨뜨리기를 바라는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들 기원은 대개 “나나 내 주변의 누군가를 위한 것”이 되는데, 결과적으로는 남의 불행을 바라게 되는 것이 되기도 하지요.


  가령 “시험에 붙게 해 주세요.”라는 기원은 “남이 떨어지게 해 주세요.”와 같은 결과를 낳습니다. “복권에 맞게 해 주세요.” 역시 “남이 맞지 않게 해 주세요.”와 같은 결과를 낳습니다.


  영화 “브루스 올마이티”에서 신의 힘을 갖게 된 브루스는 모든 소원을 들어줍니다. 그 결과 모든 사람의 복권이 1등이 되어서 1등임에도 상금이 거의 없는 결과를 낳게 됩니다. 이 경우 “모든 사람이 손해를 보게 해 주세요.”라는 소원이 되어 버린 것입니다.


  물론, 소원 중에는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닌, 이른바 ‘고결한 소원’도 존재합니다. 가령 “인류가 행복하게 해 주세요.”, “(누군가의) 병이 낳게 해 주세요.” 같은 경우가 있겠군요. 하지만, 이들 소원도 결과적으로 누군가의 불행을 낳는 결과가 되게 마련입니다.


  가령, 행복해진 인류가 우주로 진출해서 다른 종족들을 마구 학살하는 결과를 낳을지도 모릅니다. 아니면 행복한 나머지 평화만 추구한 인류가 전쟁 능력을 상실해서 다른 종족에서 짓밟힐지도 모릅니다. 인류가 행복해지면 그만큼 지구의 다른 생명체들이 더 힘든 삶을 살아가게 될 수도 있습니다.


  한 사람이 병을 고쳐서 살아나면 그 사람이 살아가는 만큼 희생이 따르게 됩니다. 그 사람이 자라면서 다른 사람을 물리치고 시험에 합격할 것이며, 그 사람 대신 누군가가 직장을 잃을 것이고, 그 사람이 살아가면서 무수한 동식물을 잡아먹습니다. 그 사람이 살아있는 만큼 이산화탄소 가스는 늘어나고 에너지 소비도 늘어나고…


  결국 그 어떤 소원이던, “신에게 기원하는 행위”는 ‘지극히 불합리한 방법으로 누군가의 불행을 바라는 행위’와 동일한 결과를 낳습니다. 다시 말해 “신에게 기원하는 행위”는 사실 그 자체로 죄악이기도 합니다. 그 자신은 바라지 않았다고 해도 결국 누군가 이익을 봄으로써 반드시 손해를 보는 존재가 있으니까요.


  영화 “나비 효과”는 바로 그러한 “소원을 빌고 기적을 이루는 행위” 자체가 죄악이라는 것을 잘 표현한 작품이라 생각합니다. 극장판에서도 어느 정도 보여졌지만, 감독판에서 그것은 더욱 극적으로 연출됩니다. 스포일러가 되겠지만, “나비 효과”의 이야기는 다음과 같습니다.





  주인공은 이따금 자신이 의식을 잃고 자신이 무엇을 했는지 기억하지 못하는 일이 있습니다. 나중에 주인공은 의식을 잃었던 순간을 기록한 무언가가 있다면 그 순간으로 돌아가서 역사의 흐름을 바꿀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래서 현재를 행복하게 만들고자 역사를 바꾸려 합니다.

  하지만, 그가 역사를 바꿀 때마다 그 자신이나 혹은 누군가가 불행해지고 결국 좋지 않은 현재를 맞이하게 됩니다. 그의 소원은 단지 좋아하는 소녀와 행복하게 살고 싶었을 뿐인데.

  극장판에서 주인공은 자신이 소녀와 만났던 것 자체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닫고 그녀와 결별하는 길을 택합니다. 시간이 흘러 두 사람은 우연히 길에서 마주치지만, 그것으로 끝입니다.

  감독판에서는 조금 다릅니다. 주인공은 자기 자신의 존재가 불행을 낳는다는 것을 깨닫고 어머니가 자신을 임신했던 때로 돌아가서 탯줄을 목에 매어 자살합니다.



  역사를 바꿀 수 있는, 다시 말하면 ‘소망을 이룰 수 있는’ 힘 자체가 죄악이라는 것은 사실 극장판에서도 쉽게 접할 수 있습니다. 주인공의 아버지는 그 힘 때문에 정신 이상에 빠져버렸고, 주인공에게도 그 힘이 있다는 것을 알고 죽여 버리려 합니다.


  ‘소망을 이룰 수 있는 힘’은 한편으로 종교에서 진행하는 “기원을 이룰 수 있는 힘”(기적의 힘)과 같은 것입니다. 이를 구체적으로 제시할 생각이었는지 어떤지는 모르겠지만, 역사를 바꾸다가 범죄자가 되어 교도소에 갇히게 된 주인공은 이 힘을 이용해서 종교 신자인 동료에게 자신이 “기적의 힘을 갖고 있다.”라고 속이고 그를 이용해서 역사를 바꿀 기회를 손에 넣습니다. “손에 갑자기 상처가 생기는 것”. 그것은 그리스도의 증거로 흔히 이야기되는 성흔(聖痕)과 같은 것입니다.


  이를 잘 해석해 보면, “그리스도처럼 기적을 내리는 힘이 죄악”이며, 조금 돌려서 살펴보면 “그리스도라는 존재 자체가 죄악”이라는 이야기로 연결될 수 있게 됩니다.



  “종교는 (절대자에게) 무언가를 바라는 행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떨쳐내기 위해서, 또는 힘들고 불행한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서 사람들은 절대자에게 기원을 합니다.


  하지만 그 기원을 통해서 무엇을 얻건, 그것은 “부당하게 남에게서 무언가를 빼앗는 결과”를 낳는다는 점에서 죄악이며, 그러한 기원을 바탕으로 한 종교가 오류와 문제를 갖고 있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물론, 모든 종교가 그렇다고는 할 수 없습니다. 종교에는 기원만이 아니라 자기 성찰과 발전 등의 요소도 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종교의 옳고 그름에 관계없이, 적어도 종교에서의 "기원"이라는 행위는 그다지 좋은 것이 아니며 한편으로 종교라는 시스템이 가진 모순과 불합리함을 보여주지 않는가 생각됩니다.


(* 네이버 블로그에서 옮겨온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