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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모론과 도시전설

1908년 퉁구스카의 전설과 진실?

  1908년 6월 30일. 시베리아의 상공에 거대한 불덩이가 나타났다. 자정 무렵임에도 주변을 대낮처럼 밝힌 불덩이는 동쪽으로 날아가다가 퉁구스카 강 근처의 대규모 수림 지대 상공에서 폭발했고, 거대한 버섯구름이 피어올랐다.


[ 1908년 자정 퉁구스카... ( secret files : tunguska ) ]  


  훗날, TNT 10메가 톤에서 15메가 톤 정도로 추정되는 폭발로 일어난 충격파는 수천 km 밖까지 이르렀고, 1,000km 밖의 건물 유리창이 박살 났다. 당시 시베리아 횡단 열차가 달리고 있었는데, 이때 발생한 충격파와 지진으로 450km 떨어진 곳에서도 열차가 탈선되어 부상자가 생기기도 했다.

  폭발 지점에서 15km 떨어진 지점에서는 방목 중이던 가축 1,500마리가 불에 타 떼죽음을 당하기도 했지만, 주변에 사는 사람이 많지 않아 희생자는 1명밖에는 없었다고 한다. (하지만, 실제로 드러나지 않은 희생자가 몇이나 되는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이 소식은 물론 멀리 떨어진 모스크바에까지 전해졌지만, 당시 러시아는 러일 전쟁의 패전 이후 각지에서 민중 운동이 계속되고 있었고, 제1차 세계 대전과 혁명 등의 혼란으로 조사대에 나서지 못했고, 소련이 세워진 이후 1921년에야 천문학자인 레오니드 클리크(Leonid Kulik)를 중심으로 한 조사대를 파견할 수 있었다.


  사건 이후 13년에 지나 퉁구스카에 도착한 탐사대는 놀라운 장면을 목격하였다. 반경 수십 km에 걸쳐 거의 모든 나무가 뿌리째 뽑혀 쓰러져 있었던 것이다. 사건 이후 오랜 시간이 흘러 여기저기 어린나무가 자라고 있었지만, 수많은 거목이 쓰러진 처참한 광경을 뒤덮지는 못했다.

  나무들은 어느 한 지점을 중심으로 바깥쪽으로 쓰러져 있었다. 조사대는 폭발의 중심이라 여겨지는 지역을 조사했지만, 그곳에서는 어떠한 것도 발견하지 못했다. 심지어 그들이 기대했던 운석구(크레이터)조차도…. 주변의 나무들이 모두 쓰러진 것과는 달리 그처럼 거대한 폭발이 일어난 시작 지점에는 나무들이 꼿꼿이 서 있기도 했다.

 

[ 사방으로 쓰러져 버린 나무들. 멀리 떨어진 지점에서도 대부분은 쓰러져 버렸다. ] 


  훗날 조사 결과 폭발의 피해는 시발 지점을 중심으로 사방으로 퍼져 나갔는데, 폭 동서로 70km, 남북으로 55km, 총 2,000평 방 킬로미터를 넘어서는 그 모습이 마치 나비가 날개를 펼친 듯하다고 하여 ‘퉁구스카 나비(Tunguska Butterfly)’라고 불렀다. (훗날 소련에서 실시한 공중 폭발 실험에서도 비슷한 형상의 흔적이 생겨났는데, 당시에도 폭발 지점 바로 아래의 나무는 -충격파가 수직으로 작용해서- 쓰러지지 않고 남아 있었다.)

 

  이 사건이 운석에 의해 일어났다고 확신한 클리크는 이후 10여 년에 걸쳐 몇 번이고 퉁구스카를 방문하여 조사를 진행했고, 운석구로 여겨지는 크고 작은 구덩이를 발견했다. (훗날 단순한 자연 지형임이 입증되었다.) 그는 또한 250평 방 킬로미터에 이르는 지점을 탐사하여 수많은 사진을 찍고, 심지어는 항공사진까지 찍었다고 하는데, 그 중 많은 사진이 소실되었고 항공사진은 클리크와 함께 조사를 했던 지질학자이자 훗날 소련 과학 아카데미의 위원장이 된 예프게니 크리노프(Yevgeny Krinov)의 명령으로 소각되었다고 한다.

 

[ 퉁구스카 폭발의 중심 지점. 별다른 흔적은 남아있지 않으며 당시에도 운석구를 발견하지 못했다. ]


  1950년대에서 60년대에 걸친 조사에서 해당 지역의 토양에서 미세한 규산염과 자철광의 흔적이 발견되었다. 심지어 쓰러진 나무 속에 박힌 채로 발견되기도 했는데, 주변 토양에 대해 실시한 화학적 조사로 상대적으로 많은 니켈 성분을 찾아내고, 그 밖에 이리듐을 비롯한 다양한 광물질을 찾아내어 지구 밖에서 날아온 무언가(아마도 운석)에 의한 것임이 드러났다.


  1908년 6월 30일 퉁구스카에서 일어난 대폭발의 원인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확실치 않다. 1921년 이래 지금까지 수많은 탐사와 연구가 진행되었지만, 단지 ‘운석일 가능성이 크다.’라고 추정하고 있을 뿐이다.

 

 

  현재 과학적으로 가장 타당한 가설은 다음과 같다.

 

  1908년 6월 30일. 수십m 크기의 소행성이 지구에 떨어졌다. 지구의 자전에 따라 서쪽에서 동쪽으로 떨어져 내린 소행성은 대기와의 마찰로 고열을 내기 시작했다. 지상에서 6~10km 지점에서 급격한 열팽창에 견디지 못한 소행성은 산산조각이 나 버렸고, 해방된 에너지가 충격파가 되어 사방을 퍼져 나갔다.

  퉁구스카 지역에서 발견된 여러 가지 운석 물질을 살펴볼 때 그 소행성은 철보다는 암석 성분이 많은 석질 운석으로 여겨진다. 하지만, 일부 학자들은 소행성이 아닌 얼음과 먼지로 이루어진 혜성의 파편이라는 의견을 제시하기도 한다. 그중에는 2005년에 발견된 혜성 2005NB56(COMET 2005NB56)이 당시 지구를 스키고 지나가다 폭발을 일으켜 우주로 돌아가 버렸다는(2045년에 다시 지구에 돌아온다는) 대담한 가설을 제기하기도 한다.

 

[ 불길을 내며 떨어져 내리는 소행성. 이처럼 소행성의 추락은 그다지 드문 일은 아니다. ]

 

  하지만 소행성이나 혜성이라는 주장 이외에도 퉁구스카 대폭발과 관련하여 다양한 의견이 제기되고 있다. 자연적으로 형성된 수소 폭탄에 의한 것이라던가, 작은 블랙홀이 지구를 지나면서 일어난 일이라는 의견도 있으며, 심지어 일부 학자들은 반물질 설을 제기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들 주장은 퉁구스카 지역에 넓게 퍼져 나간 이리듐 등의 물질을 증명하지 못한다.) 2008년에는 본 대학의 물리학자 볼프강 쿤트(Wolfgang Kundt)가 지표 깊은 곳에서 1,000만톤에 이르는 가스가 분출되었기 때문이라는 주장을 하기도 했다.

 

 

  일부 사람들은 더욱 대담한 가설을 제기하기도 한다.

 

  1946년, 러시아의 공학자이자 SF(에스에프) 작가인 알렉산도르 카잔체프(Alexander Kazantsev)는 <The Explosion(폭발)>이라는 작품에서 ‘핵엔진으로 작동하는 이성인의 우주선이 추락하여 폭발했다.’라는 내용을 소개했다.


  히로시마에 떨어진 핵폭탄의 소식에서 영감을 얻은 카잔스키의 글은 어디까지나 SF(에스에프) 창작 작품에 지나지 않았고, 무엇보다도 퉁구스카 지역에서 잔류 방사능이 검출되지 않았음에도 많은 이는 이를 가설의 하나로 받아들였다. 일부 사람들은 이를 ‘러시아의 로스웰’이라 부르며 수많은 의견을 제시하고 있는데, 심지어 2009년 퉁구스카 지역에서 외계인의 우주선 잔해를 발견했다는 주장까지 나오기도 했다.

 

[ 카잔체프의 소설. 폭발. 히로시마 원폭 사건에 영감을 얻어 쓴 이 작품은 러시아판 로스웰의 단초가 되었다. ]


  ‘러시아의 로스웰’ 가설에 대한 증거는 -카잔체프의 소설을 제외하면- 아무것도 없지만, 이 신비한 폭발 사건의 이야기는 많은 이에게 영감을 주었고 다양한 작품에서 이를 바탕으로 이야기를 만들어내기도 했다. (이만한 사건이 있었음에도 13년이나 지나서야 조사단을 파견했다는 점, 첫 조사대의 단장인 레오니드 클리크가 2차 대전 당시 민병으로 활동하다 독일군에 사로잡혀 포로수용소에서 죽었다는 사실, 항공사진을 파기했다는 주장 등은 이 이러한 가설에 좀 더 흥미를 넣어준다.)

 

  1998년에 선보인 TV 시리즈 <The Secret KGB UFO Files>나 <엑스파일>의 4시즌, 그리고 게임 <시크릿 파일즈 : 퉁구스카(Secret Files : Tunguska)>에서 선보인 외계인 가설은 대개 러시아 정부가 무언가를 발견했지만, 이를 은폐했다는(또는 이를 바탕으로 실험을 하고 있다는) 내용으로 로즈웰 사건에서 미국 정부를 러시아(또는 소련) 정부로 바꾼 형태를 띠고 있다.

 


[ 2006년에 선보인 게임 Secrect Files : Tunguska. 로스웰 사건과 같은 전형적인 음모론으로 각색했다. ]

 

  한편, 외계인의 우주선이 아니라 ‘반물질 등의 특수한 물질’ 가설을 바탕으로 한 작품도 다수 눈에 띄는데, 일본 만화가 우노 히로시(宇野比呂士)는 <천공의 패자 Z(天空の覇者Z)>라는 작품에서 퉁구스카에 떨어진 운석에 반중력을 만들어내는 특수한 물질 Z광의 운석이 있어, 이를 둘러싸고 나치와 대결한다는 이야기를 엮어내기도 했다.

 

[ 퉁구스카 사건을 소재로 대체 역사 스타일의 이야기로 만들어낸 천공의 패자 Z ]


  그렇다면 정말로 퉁구스카에서는 어떤 일이 있었을까? 앞서 말했듯 현 시점에서는 소행성이 공중에서 폭발했다는 것이 가장 그럴 듯한 가설이다. 실제로 석질로 이루어진 소행성이 하늘에서 폭발하는 일은 그다지 드문 것이 아니어서, 21세기에 들어서 비교적 큰 사건으로만 4번. 2009년에도 인도네시아 상공에서 비슷한 사건이 일어나기도 했다.


  다만, 이들 사건은 대개 10km 이상 높은 곳에서 수 킬로톤에서 수십 킬로톤 정도의 위력으로 별 피해가 없었던 만큼, 고작 8km 높이에서 20메가 톤 가까운 폭발이 일어난 퉁구스카의 사건은 분명히 인류의 역사에 기록된 최대 규모의 소행성 사건임은 분명하다. (2009년 인도네시아 상공에서 폭발한 소행성도 50킬로톤 규모에 이르렀지만 20km 정도 상공이었기에 피해가 없었다.)

 

[ 인도네시아 상공에서 폭발한 소행성은 이처럼 비디오로 촬영되어 방송으로 소개되기도 했다. ]

 

유투브 영상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이것이 만일 황량한 시베리아 상공이 아닌 다른 곳에서 일어났다면 음모론 정도로 끝나지 않았을 것이라는 점이다.

  소행성이라고 가정했을 경우, 불과 몇 시간 정도만 뒤에 떨어졌다면 모스크바 북방이나 스칸디나비아 반도의 중심지에서 대폭발을 일으켰을 것이다. (만일 조금만 남쪽이었다면 독일의 베를린이나 영국의 런던 같은 곳 위에서 폭발했을지도 모른다.)

 

[ 퉁구스카 폭발이 일어난 지점. 조금만 다른 곳에서 일어났다면 대참사가 발생했을지도 모른다. ]

 

  퉁구스카 대폭발이 반경 수십 km에 걸쳐 피해를 주었다는 것을 생각할 때, 이런 도심지에서 폭발했다면, 그 사상자는 헤아릴 수 없을 것이다. 어쩌면 한 나라의 존속을 좌우하고 결과에 따라 1차 대전을 앞당겼을지도 모른다는 것을 생각할 때 당시 인류는 엄청나게 운이 좋았다고밖에는 생각할 수 없다.

  퉁구스카 대폭발이 사실상 소행성의 공중 폭발로 거의 확정된 상황에서도 각종 가설과 음모론이 끊이지 않는 것은, 그것이 인류 역사상 최대 규모의 자연재해가 되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 때문이 아닐까?

  구약 같은 신화 속에서나 등장할 법한 하늘의 재앙이나 천벌이 정말로 일어났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우리들의 눈을 진실에서 돌리고 온갖 허황한 이야기에 빠져들게 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물론 그것이 흥미롭고 이를 통해 다채로운 이야기를 만들어 낼 수 있는 것은 분명 부정할 수 없겠지만...

 

[ 소돔과 고모라. 어쩌면 이 이야기는 퉁구스카 대폭발과 같은 사건의 결과물일지도 모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