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 이야기/오늘의 추천SF 2012. 2. 17. 13:39

[ 루비박스에서 새로 번역된 엔더의 게임. 이 표지는 조금 문제가 있을까요? ^^ ]


  오늘은 이탈리아의 사상가인 조르다노 부르노가 카톨릭 교회에 의해 이단으로 몰려 화형당한 날이기도 하지만, 아파치 인디언의 투쟁 전사 제로니모가 사망한 날이기도 합니다.
  추장으로 잘못 알려진 그는 아파치 인디언의 샤먼 중 한 사람이었을 뿐입니다. 그러나 평화를 약속하고 뒤통수를 쳐서 그의 가족을 학살한 멕시코군의 만행은 그를 비롯한 수많은 전사를 게릴라 부대로 바꾸어 놓았지요.
  세계 역사 속에서 다른 민족이나 종족에 대한 만행은 끝이 없었습니다. 심지어 “살인하지 말라”라는 계율을 지닌 모 종교에서조차 “이교도는 인간이 아니다.”라는 주장으로 학살을 정당화했으니까요.

  이런 이야기를 듣다보면 오슨 스콧 카드의 “엔더의 게임”이 떠오릅니다. 가볍게 보면 평범한 스페이스 오페라물 같고, 그래서 엄청난 두께에도 불구하고 쉽고 재미있게 페이지가 넘어가는 이 작품은, ‘게임’이나 ‘훈련’이라 생각하고 진행했던 전쟁이 실제의 싸움이었고, 그 결과 하나의 종족이 멸망하고 말았다는 사실에서 충격을 안겨줍니다.

  솔직히... 이 작품을 읽기까진 '외계인 학살'에 대해서는 별로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물론 적으로 등장하는 존재에 대해서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죠. 이를테면 판타지 세계의 마왕 같은 존재들. 아니, 거의 초반 경험치용으로 날려 버리는 '슬라임' 같은 존재들에서 말이지요. 그런 점에서 이 작품은 제게도 많은 영감을 주었고 작품을 보는 눈을 넓혀주었습니다.
  휴고상과 네뷸라 상을 동시에 수상한 작품이지만, 그런 기록보다도 작품을 보고 직접 느끼는 것이 가장 좋은 작품입니다. 심지어 ‘결말’을 알고 있다고 해도 말입니다.


  엔더의 게임은 이성인의 침략이 벌어지는 지구를 배경으로 한 작품입니다. 세계는 인류 존망을 건 싸움에 모든 것을 투자하고 있습니다. 당연한 일이겠지만, 아이들조차 이런 상황에서는 예외가 되지 못합니다.

  뛰어난 지능을 가진 아이들은 전투 학교를 통해 전사가 되고 이성인과의 싸움에 참여하게 됩니다. 그 중 하나가 바로 주인공인 엔더인 것이지요.

  “엔더의 게임”은 엔더 시리즈의 첫 작품이지만, 한편으로 그 시리즈의 모든 내용을 함축하고 있는 작품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이 작품 하나만으로도 충분한 느낌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이지요. 10살도 안 되는 소년이 훈련소의 생활을 한다는 사실만으로도 충격적인데, 그 안에서 엔더가 경험하는 수많은 체험과 감정은 

  “제노사이드”나 “엔더의 아이들” 같은 작품은 후일담에 가까운 것이지만, 그럼에도 이들은 “엔더의 게임”의 느낌을 더욱 충실하게 전해주며 만족감을 남겨줍니다. (‘종족의 학살자’인 엔더에게 씌워진 멍에와 이러한 죄를 조금이라도 씻고자 하는 엔더의 이야기가 많은 것을 느끼게 해 줍니다. 물론, 이에 대해 불만을 느끼는 분들도 많겠습니다만...)

  “엔더의 게임”에 이어 휴고상, 네뷸러 상 등을 수상한 “사자의 대변인”은 조금 다릅니다. “제노사이드” 등의 작품이 “엔더의 게임”의 단순히 후일담에 가까운 것이라면, “사자의 대변인”은 엔더의 이야기로부터 수 천 년이 흐른 뒤에 벌어진 또 다른 지성인과의 접촉을 다루고 있기 때문입니다. “엔더의 게임”이 독특한 색채의 우주 전쟁물이라면, “사자의 대변인”은 이성인과의 관계, 그리고 우리 인간 자신에 대해 다시 살펴보게 하는 사회파 SF라고 해도 좋겠군요. (그런 점에서 이 작품이 새로 번역되어 나오지 않은게 너무 안타깝습니다.)

  그리고 근래에는 5편인 “엔더의 그림자”가 소개되었습니다. “엔더의 그림자”에서는 엔더가 아닌 ‘엔더를 만난 소년’의 이야기를 만나게 됩니다. “엔더의 게임”과 동일한 시간대를 배경으로, 엔더의 보좌관으로서 활약했던 ‘빈’의 눈으로 살펴본 엔더와 사회의 모습을 느끼게 해 주는 작품이지요.  엔더와는 달리 유전자 조작으로 지능을 얻게되었지만, 버려진 캐릭터라는 것이 좀 더 흥미롭습니다. 



  가능하면 “엔더의 게임”을 먼저 보고 보는 것이 더 만족을 느끼게 해 주겠지만, “엔더의 게임”을 보지 않았더라도 단독으로 재미있게 볼 수 있는 작품입니다. 다만, “엔더의 게임”처럼 뭔가 메시지를 느끼게 하기보다는 편안하게 읽을 수 있는 스페이스 오페라(또는 밀리터리 SF)라고 보는 게 좋겠습니다. (엔더의 그림자란 제목 그대로, "엔더의 게임"을 읽은 이들에겐 '그림자' 같이 여겨질지도 모르겠지만...) 


  사람에 따라 평은 많이 갈리겠지만, “엔더 시리즈”에 대해서는 “엔더의 게임”과 “사자의 대변인”을 가장 높이 보고(사람에 따라선 “사자의 대변인”을 최고로 치고) 나머지 작품은 외전이나 후일담 정도로 불리곤 합니다.

  하지만, 다섯 작품 모두 만족감에 차이는 있을지 몰라도 충분히 재미있고 흥미롭게 읽을 수 있는 작품이라 생각합니다. 이를테면 가벼운 전쟁물을 찾는 이라면 “엔더의 게임”보다도 “엔더의 그림자”가 더 나을지도 모릅니다.


  “엔더의 게임”은 영화화될 예정입니다. <엑스맨 탄생:울버린>의 감독인 게빈 후드 감독이 맡는다고 하여 조금 의문시되긴 하지만(게다가 한번 무산된 일이 있었기에) 이 명작을 영상으로 볼 수 있다는 것에 기대가 되는 것도 사실이지요.


여담) 엔더의 게임과는 관계없지만, 작가인 오슨 스콧 카드가 쓴 “당신도 해리 포터를 쓸 수 있다.(원제:How to Write Science Fiction & Fantasy)”도 매우 좋은 책입니다. 특히 SF나 판타지 작품을 쓰려는 이들에게는, 그리고 그 같은 장르 세계관을 꾸미고 싶은 이들에겐 매우 좋은 지침서이지요.
posted by 별을 좋아하는 표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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