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 이야기/오늘의 추천SF 2012. 2. 23. 17:30
  오늘은 역사상 최초로 체세포에 의해 복제된 양 돌리가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날입니다.

  1996년 7월 5일 스코틀랜드의 로슬린 연구에서 태어난 돌리의 뉴스는 세계 많은 이들에게 다양한 기대와 불안을 갖게 했습니다. 특히 종교계에서는 양이 복제되었으니 다음은 인간의 복제가 행해질 수 있다는 이야기와 함께 복제된 히틀러나 복제된 아인슈타인 같은 그림이 여러 매체를 수놓기도 했지요.

  한편으로 돌리는 복제 생물의 한계를 보여준 사례이기도 했습니다. 1999년 네이처지에서 돌리는 태어나면서부터 세포 내의 염색에 있는 텔로메어가 짧아서 태어나자마자 노화되고 있다는 연구가 발표되었는데, 실제로 돌리는 5살 때 관절염 증세로 쇠약해졌고, 6살 때 폐수종으로 안락사되었습니다.

  다만, 이에 대해서 이견도 있습니다. 이를테면 실제 다른 클론 동물에서 텔로메어가 정상적인 길이를 갖고 있었고, 돌리의 관절염이나 병세 등은 클론 기술의 미숙 탓이라는 것이었죠. 어느 쪽이건 돌리는 최초의 클론 포유류로서 가능성과 우려를 함께 가져오며 의학과 생물학의 역사에 큰 발자취를 남긴 것으로 기억됩니다.

  그렇다면 클론의 목적은 무엇일까요? 일부 사람들은 역사상 위인을 복제하는 가능성에 대해 이야기하지만, 사람의 업적이나 역할은 유전자보다는 자라난 경험 등에 의해 이루어진다는 점에서 그다지 좋은 방법은 아닙니다. 이를테면 예수의 클론을 만든다고 해서 기적을 행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요. 심지어 외모마저도 환경의 영향을 받기에 히틀러를 복제한다고 해서 그가 똑같은 모습을 가진다고는 볼 수 없습니다. 영양 상태나 운동 등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는 키나 체중은 분명히 다를 것이고, 얼굴도 완전히 다르지는 않아도 꽤 차이가 있겠죠. 물론 쌍둥이끼리도 서로 다른 지문 등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만약에 기억을 보존해서 옮길 수 있다면 완전히 똑같은 사람이 될 수도 있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같은 업적을 남긴다는 법은 없습니다. 업적이란 개인의 경험만이 아니라 환경, 그리고 운도 많이 작용하기 때문입니다. 어느 쪽이건 그(또는 그녀)는 본체와는 완전히 다른 새로운 존재가 될 것입니다.

  복제의 용도는 인간 복제보다는 멸종해가는 동물을 보존하거나, 뛰어난 가축을 더 많이 늘리는 용도로 적합하리라 생각합니다. 이를테면 뛰어난 성적을 올린 경주마를 복제한다면(이후의 훈련도 중요하겠지만) 그만큼 뛰어난 말이 될 가능성이 높아지겠지요. 영화 <스타워즈> 시리즈에서는 뛰어난 전사를 복제하여 대량의 클론 군단을 만드는 장면이 등장하는데, 이 역시 비슷한 용도라고 하겠습니다.

  그리고 인간에게 있어서는 한 가지 끔찍한 용도가 있으니, 바로 비상시를 대비한 ‘대역’이나 ‘장기 제공’ 역할이지요. 영화 <카게무샤>에서는 다케다 신켄이 죽은 뒤에 카게무샤가 활동했다는 전설을 소재로 이야기를 꾸미고 있습니다. (물론 사실이 아닙니다. 신켄이 죽은 건 금방 알려졌고, 다케다가는 -비록 섭정 같은 역할이었지만- 그의 아들인 카츠요리가 맡아서 통치했으니까요.)
  하지만, ‘카게무샤’는 실제로 존재했습니다. 전투 등에서, 또는 암행 중에 대역을 맡아서 활동한 인물이었지요. 다케다 신켄은 실제로 자신과 닮은 친척에게 카게무샤를 맡기곤 했고, 그 밖에도 역사상 많은 이들이 ‘대역’을 이용했습니다.

  하지만, 쌍둥이가 아닌 이상 아무리 닮아도 차이가 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런 점에서 쌍둥이나 다를 바 없는 클론은 ‘카게무샤’로 최적이죠. 게다가 클론은 자신과 모든 점에서 같은 육체이기 때문에 장기 이식에도 최고의 적격자입니다. 그야말로 자기 자신의 장기를 사용하는 것이나 다를 바 없으니까요.

  영화 <아일랜드>는 바로 그런 내용을 소재로 한 이야기입니다. 유명인사들이 자신의 대역으로서 클론을 만들어두고 그들은 자신들이 재앙 이후 세계의 생존자라고 믿고 사는 거죠. 그러다 주인공은 그 사실을 깨닫고...

  하지만, 오늘의 추천작은 <아일랜드>가 아닙니다. 그보다도 10년 이상 앞서 도너 시스템을 떠올리고 매우 다채로운 이야기를 뒤섞어 완성한 작품(어쩌면 <아일랜드>에 영향을 주었을지도 모르는), 시미즈 레이코의 만화 <월광천녀(輝夜姫)>입니다.




  <월광천녀>는 일본 설화 속의 ‘타케토리 이야기’를 기초로 만든 근미래 SF 작품입니다. 설화나 전설에 다채로운 SF 소재를 더하는 것은 시미즈 레이코의 특징이자 장점인데, 제47회 소학관 만화상을 수상한 이 작품에서도 그녀는 클론만이 아니라 우주개발이나 이성인의 존재 등 다양한 소재를 더하고 다채로운 인간관계를 더하여 흥미로운 이야기를 완성하고 있습니다.

  이 작품의 단점은 지나치게 길다는 것입니다. ‘인어공주’와 ‘타케토리 이야기’를 뒤섞은 <달의 아이>가 절반 정도 분량으로 비교적 깔끔하게 이야기를 마친 반면, 이 작품은 조금 길게 나가면서 다소 억지스러운 전개도 조금씩 눈에 띕니다.

  하지만, 설화와 SF라는, 다소 차이가 있는 방향성을 잘 조화시키고, 다양한 소재를 -다소 삐꺽거리긴 해도- 잘 마무리 졌다는 점에서 이 작품은 편하고 재미있게 볼 수 있는 작품이라 생각합니다. 시미즈 레이코 특유의 독특한 세계 설정과 이야기 전개가 돋보이는 작품이지요.

  작품의 이야기는 <아일랜드>처럼 도너로서 길러진 이들을 중심으로 진행됩니다. 물론 그들은 자신이 도너라는 사실을 모른채 자라납니다. 그들 대부분은 <아일랜드> 속의 클론과 달리 도너로서의 삶을 강요당하고 결국 해체되고 말지만, 특수한 환경에서 자라난 그들의 장기는 본체를 밀어내고 도너의 의식으로서 세계의 주요 인사로서 군림하게 됩니다...

  처음에 주연이나 조연으로 나오던 이들이 해체되어 죽어버린다는 충격적인 전개와 그 이후의 예상치 못한 전환은 작품의 이야기에 몰입하게 만드는 요소입니다. 하지만, 이 작품은 달세계의 이성인인 천인이라는 존재 등을 통해서 그 이상의 큰 변화를 준비하고 있지요.

  굉장히 흥미롭고 재미있는 작품인 만큼, 한번 쯤 읽어보시길 권합니다.

  어떤 분은 ‘순정만화’라는 것에 다소 거부감을 느끼실지 모르겠지만...


여담) <월광천녀>가 클론의 도너 설정에서 가장 첫 작품은 아닙니다. 인간의 복제라는 개념은 이미 전설이나 설화 속에서도 나오는 이야기이며,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1932)에서 이미 노동력으로서의 클론이란 내용을 도입하고 있으니까요.

  장기 복제용 클론의 개념도 여러 SF에서 소개되었습니다. 하지만 <월광천녀>의 연재가 시작되던 1993년에는 아직 이것이 대중적이지 않았고, 별로 친숙한 소재가 아니었다는 점에서 참신한 시도였다고 생각됩니다.


  

posted by 별을 좋아하는 표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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