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별에서 온 그대'라는 작품이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광해군때 미확인비행물체 같은게 나타났다는 기록을 바탕으로 당시에 외계인이 지구에 왔고 그 외계인이 400여년간 살아가고 있다는 이야기... SF에서는 매우 흔한 소재이지만, 한국의 드라마로서는 굉장히 드문 소재의 작품이지요.
한편 이 작품은 강경옥씨의 '설희'와 관련하여 표절 소송이 거론되고 있습니다. 설희 역시 광해군때의 미확인 비행물체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400여년간 살아가고 있는 인물을 중심 소재로 하여 이야기를 이끌어내고 있다는 점에서 동일할 뿐만 아니라, 전생을 바탕으로 한 이야기 전개 등 이야기를 이끌어내는 중심 소재가 일치한다는 점입니다.
관련 기사 : '별그대' '설희' 표절 의혹, 만화 '설희' 내용 어떻기에?
이와 관련하여 여러가지 이야기가 있지만, 강경옥씨가 무리수를 두고 있다는 의견이 많은 것 같습니다. 설희는 주역이 여성인데다 느낌 등 여러가지 면에서 다르다...라는 이야기겠네요.
그런데 한가지 생각해 볼 수 있는 점이 있습니다. 만약에 이게 미국이었다면, 조금 상황은 달랐을거라는 점입니다.
SF 작가 중 할리우드에서 영화화가 많이 된 작가로 필립 K. 딕이 있습니다. 딕의 작품은 참으로 특이한데 이야기 하나하나가 마치 뒤통수를 갑자기 때리는 듯한 충격을 안겨주죠. 그 독특한 발상은 많은 이에게 영감을 주고 새로운 작품을 낳는데 이바지했습니다.
그런데 조금 이상한게 있습니다. 원작과 영화를 비교했을 때 완전히 다른 느낌의 작품이 많다는 겁니다. "페이첵"이나 "마이너리티 리포트", "임포스터(사기꾼 로봇)", "스크리머스(두번째 변종)"은 어느 정도 비슷하지만, "넥스트(골드맨)"에 이르면 완전히 다른 느낌이고, "토탈리콜(도매가로 기억을 팝니다.)"에 이르면, 이건 무슨 뜻으로 '원작'이라는 것인지 전혀 알 수 없습니다.
영화 "토탈리콜"의 내용은 이렇습니다.
주인공은 평범하게 살아가던 중 자기가 원하는 꿈을 꾸게 해 주는 리콜이라는 회사 서비스를 이용하게 됩니다. 그런데 자기가 원했던 것과는 꽤 다른 꿈을 꾸게 되지요. 그리고 그후로 누군가에게 쫓기게 되고, 아내가 자신을 해치려 하고... 결국 자신이 화성의 첩보원이었고 화성의 독립을 위해서 일하고 있다는 사실 등을 알게 됩니다. 자신의 기억이 조작되어 있던 것이지요. 화성으로 향한 그는 화성 정부와의 싸움을 벌이게 되고...
이러한 영화 "토탈리콜"은 아놀드 슈왈츠제네거가 주연을 맡았던 만큼 SF 액션 영화로서 눈길을 끄는 작품입니다.(그리고 상당히 좋은 작품이기도 하지요.)
그렇다면 이 작품의 원작이 된 "도매가로 기억을 팝니다."는 어떨까요?
주인공은 평범하게 살아가던 중 자기가 원하는 꿈을 꾸게 해 주는 리콜이라는 회사 서비스를 이용하게 됩니다. 그런데 자기가 원했던 것과는 꽤 다른 꿈을 꾸게 되지요. 그리고 자신의 감추어져 있던 기억을 떠올리게 됩니다. 자신이 실은 화성의 스파이였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지요. 그런데 그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그 전에 지워져있던 기억이 드러납니다. 그는 사실 화성에 침투한 지구측의 이중 스파이였습니다. 더욱 조사했더니 그 아래의 기억이 나오게 되는데... 그는 사실 어렸을 때 외계인을 만나서 그들을 도왔습니다. 그들은 지구를 침공하러 왔는데 주인공에 대한 감사의 뜻으로 주인공이 살아있는 동안에는 지구를 침공하지 않기로 했던 것입니다...
"도매가로 기억을 팝니다."라는 작품은 액션 장면이 없습니다. 주인공은 화성으로 가지도 않고 추격자에게 쫓기거나 싸움을 벌이는 일도 없습니다. 일반적인 상황이라면... 아니 정확히는 우리나라에서라면 이런 상황에서 원작을 따지거나 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미국에서는 달랐습니다. 그들은 "필립 k. 딕의 원작을 바탕으로 했다."(Based on Philip K. Dick)라고 밝혔던 것이지요. (물론 영화 제작에 앞서 계약을 맺은 것은 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왜 그들은 전혀 다른 내용의 영화를 만들면서 저작권 계약을 맺은 것일까요? 물론 SF 팬들에게 잘 알려진 작가인 만큼 명성을 이용하기 위해서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보다는 미국의 저작권 제도가 우리나라와는 달리 매우 엄격하게 적용될 뿐만 아니라, 이 저작권 소송으로 인해서 벌어질 수 있는 여러가지 제약을 미리 해결하기 때문이었다고 보는 것이 바람직할 것입니다.
저작권 소송으로 인한 소송전은 굉장히 오래 걸리게 되는데 그 기간 동안 영화의 유통이 중단될 수도 있으며, 당연히 이미지에도 상처받게 됩니다. 게다가 혹시라도 패배할 경우("꿈을 꾸게 해 주는 기계에 의해서 지워졌던 기억이 드러난다."라는 이야기를 이끄는 중심 소재가 동일하다보니 미국이라면 저작권 소송에서 패소할 가능성도 있습니다.) 엄청난 벌금을 물게 되지요.
때문에 미국에서 영화나 드라마를 만들 때는 유사한 소재나 내용이 있는지 없는지 사전에 조사합니다. 이를 위한 전문가와 집단이 따로 있고 굉장히 신경쓰며 주의하게 마련이지요. 설사 그 작품과 직접적인 연관이 없다고 해도 그것을 입증할 방법은 없으니까요.
그런 만큼 만일 이 상황이 미국에서 벌어졌다면, "별에서 온 그대" 쪽에서는 강경옥씨와 원작에 대한 저작권 계약을 맺었을 것입니다. 혹시라도 생겨날 수 있는 저작권 분쟁으로 인한 피해를 생각한다면 그쪽이 훨씬 싼데다, 원작과의 연계를 이용해서 여러가지 효과를 높일 수도 있으니까요.
그러나 한국에서는 작품의 소재 등에 대해서 저작권 문제를 생각하지 않습니다. 당연히 저작권 소송이 걸리지 않을거라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각본 등에서 나오는 소재에 대해서 표절 문제는 관심도 두지 않지요.
그리고 법원에서는 원작자의 손을 들어주는 일은 별로 없습니다. SF나 판타지 등의 장르 작품에서 중심 소재와 발상이 중요하다는 것을 생각하지 않으니까요.
"설희"와 "별에서 온 그대". 두 작품을 보고 표절이라고 느끼는 이들은 많지 않을 것입니다. 주인공의 성별이 다른데다 분위기나 내용이 꽤 다르게 전개되거든요.
하지만 독특한 발상은 그 자체로 존중받아야 하고 인정받아야 할 아이디어입니다. 그것이 이야기의 중심에 놓여 있다면 더욱 그렇지요. 물론 이처럼 저작권을 엄격하게 적용하면 창작 자체가 어려워질 수도 있겠지요. 그러나 이러한 상황을 무조건 용인할 경우 만큼 새로운 아이디어를 생각해서 작품을 만들려는 이들이 줄어들 수도 있습니다. 좋은 아이디어를 짜내는 고민은 결코 쉬운 것이 아니라는 점을 무시해서도 안 되는 것이지요.
강경옥씨의 주장 대로 "별에서 온 그대"에는 "설희"에서 이야기를 이끌어내는데 중심이 되었던 아이디어들이 고스란히 들어 있으며, 그것이 이야기를 이끌어내는 중심 소재로서 작용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설사 우연이었다고 해도 말이죠. 그런 점에서 볼때, 저작권을 조금 더 엄격하게 적용하는 사회였다면 표절이라고 판정받을 수도 있습니다. 그 가능성이 낮다고 해도 만약에 표절 판정을 받게 되면 그로 인한 손해는 엄청나겠지요.
그런 만큼 이번 재판이 어떤 결과로 막을 내리건(솔직히 한국의 법정에서 강경옥씨가 승소하리라고는 보지 않습니다, 강경옥씨 자신도 그에 대해 각오하고 있는 듯한 느낌이었고요.), 앞으로는 조금이라도 독특한 소재라면 기존에 비슷한 작품이 없는지 한번 쯤은 살펴보고 제작에 들어갔으면 합니다. 그것은 새로운 작품 제작을 힘들게 만드는 결과가 될 수도 있겠지만, 한편으로는 이 과정에서 작품의 완성도를 더 높이는 결과를 낳을 수도 있을테니까요. ("설희" 정도면 상당히 유명하고 잘 알려진 작품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상황에 따라서는 원작자라고 할 수 있는 이들과 함께 협력하여 다양한 홍보와 상품 개발이 가능할 수도 있겠지요.
여담) 사실 저작권 논쟁은 상당히 골치아픈 이야기가 아닐 수 없습니다. 너무 심하면 창작 자체가 제한을 받게 됩니다. 한편 아예 존재하지 않으면 표절 작품이 넘쳐나게 되겠지요. 때로는 원작보다도 표절 작품이 더 호평을 받는 결과를 낳을 수도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창작의 보람이 사라져 버리겠지요.
개인적으로 저작권을 지나치게 엄격하게 적용하는 것은 바람직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 정도가 어느 정도인지에 대해서는 솔직히 고민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렇다고 상황에 따라 다르게 적용할 수도 없고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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