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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 이야기

광선과 캡슐? : GM, 전쟁의, 전쟁에 의한, 그리고 전쟁을 위한 병기

광선과 캡슐? : 작품으로 살펴보는 SF 전쟁의 역사
- 기동전사 건담과 1년 전쟁 이야기 -


GM, 전쟁의, 전쟁에 의한, 그리고 전쟁을 위한 병기




  우주세기 0079년 초. 지구에서 가장 먼 우주도시 사이트 3이 지온공국이라는 이름 아래 지구 연방에 대해 전쟁을 선포하고 군을 일으켰다.


  스페이스 노이드에 대한 차별과 착취에 반대한다는 것을 이유로 시작된 이 전쟁은 그 해 말에 이르러 지온공국을 이끌던 자비가의 일원들이 사라지면서 지온 측의 항복으로 종결되었지만, 후일 1년 전쟁이라 불리게 되는 이 전쟁 과정에서 연방에 비해 1/10에도 미치지 못하는 세력을 가진 지온군이 그 기간 대부분에 걸쳐 전쟁을 주도했다는 것은 상당히 인상적인 기억을 남겨주고 있다.


  루움 전투 이후 기적적으로 탈출한 연방의 레빌 장군이 “지온에는 군사가 없다.”라고 선언했듯, 지온이 연방에 비해 유리한 점은 없었다. 우선 경제력에서 뒤지는 그들은 인구조차 충분하지 않았고, 그나마 쓸만한 인재들조차 ‘자비 가문’이라는 독재 정권 아래 적재 적소에 투입되지 못했으니 말이다.


  그러나, 지온군은 오랜 연구 끝에 개발한 모빌슈트라는 병기를 동원한 기습 전술로 연방군의 허를 찔렀고, 루움 전투에서 연방군 함대를 괴멸시키는 등 연전연승을 거두는 등 선전할 수 있었다.


  남극 조약이 본래는 항복 선언이라는 소문처럼, 당시 전황은 연방군에게 그다지 좋다고 볼 수 없었다. 루움 전투에서 함대 대부분을 잃어버린 연방군은 지온군의 연이은 지구 강하 작전을 방관할 수 밖에 없었고, 그들의 본거지라 할 수 있는 지구도 상당 부분 지온군에 빼앗긴 상황이었으니 말이다.


  연방군이 지온에 비해 막대한 세력을 갖고 있었던 것은 분명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다. 그런 점에서 연방군이 최종적으로 승리했다는 사실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라고 보는 이들이 많을지도 모른다.


  마스 드라이버에 의한 지상 포격과 소행성 충돌에 비길만한 우주 콜로니의 연이은 충돌(브리티쉬 작전)에 이어 루움 전투로 막대한 물적, 인적 손실을 본 연방군이 북미 대륙 등 지구 각지를 빼앗긴 상황에서도 매우 빠른 시간 내에 지온을 몰아내고 최종적인 승리를 거두게 된 것에는 무언가 특이할 만한 요인이 있다고 할 것이다.


  그렇다면 연방군은 어째서 괴멸적인 타격을 받은 지 불과 수개월 만에 거의 완벽한 승리를 거둘 수 있게 된 것일까? 그것도 영토 상당 부분을 빼앗기고 군대가 사실상 괴멸한 상태에서 말이다.



  여기서 우리는 연방군의 주력 병기이자, -지온군의 모빌슈트와는 달리- 역사상 최초로 ‘전쟁을 위한 목적으로 개발, 생산된 모빌슈트’인 짐(GM)의 존재가 있었음을 살펴볼 수 있다.



< 연방군의 주력 모빌슈트인 GM. 이 투박한 병기가 전쟁의 양상을 바꾸었다. >


  모빌슈트라고 하면 건담 아니면 자쿠를 떠올리듯, 모빌슈트를 좋아하는 밀리터리 팬들에게 있어 GM은 그다지 좋은 병기라고 할 수 없다.


  아무로 레이라는 영웅적인 뉴타입의 활약으로 잘 알려진 건담을 그야말로 최대한 단순화했다고 밖에 할 수 없는 디자인은 투박하기 이를 데 없고, 지상전이건 우주전이건, 또는 수중전이건 어중간한 정도에 지나지 않는 전투력, 게다가 개량형들마저 -팬이라도 되지 않는 한- 뭐가 뭔지 구분할 수 없는 단순한 외모에 이르면, 간단히 말해 ‘멋대가리 없다.’라는 말로 밖에는 표현할 수 없는 그런 기종이 된다.



< 건담과 GM 개발의 주역인 템 레이 박사. 영웅 아므로 레이의 부친이기도 했던 그의 갑작스러운 실종으로 연방군의 모빌슈트 계획은 혼란에 빠지고 말았다. >


  게다가 병기로서의 GM이 탁월한 성능을 가진 것도 아니었다. 투입 당시 지온군의 주력이었다는 자쿠보다 성능이 앞선 기종이었다는 것은 사실이지만, 월등하다고 할 정도는 아니었고, 자쿠 이후에 개발된 다양한 기종들에 비하면 도리어 성능이 떨어지는 점은 ‘주력 병기’라고 부르기에 부끄러울 정도였다고 해도 좋다.


  여기에 루움 전투 등으로 숙련된 파일럿을 대부분 잃어버린 상황에서 나오는 승무원들의 경험 부족으로 GM이 투입된 당시 최소 3대 1 이상의 우위에 서지 않는 한 지온군 쪽이 우세한 현실을 낳고 말았다.


  이는 20세기에 벌어진 제 2 차 세계 대전 당시, 아메리카 공화국의 셔먼 전차가 5대 1 이상의 우위에 서지 않는 한 나치의 티이거 전차와 대결하지 않았던 상황과 비교될만한 상황이었고, ‘신형’이라고 투입된 GM이 때로는 자쿠에게도 유린당하는 장면을 목격한 연방군의 수많은 장병들은 군 상층부에 대해 불신감을 느끼기도 했다고 한다.


< 지온군의 주력병기 자쿠. 이 기종은 전쟁 말기까지 널리 생산, 사용되었다. >


  그러나 자쿠에 비해서는 분명히 뛰어난 성능을 가진 GM이 특히 베테랑 조종사들에게 혹평을 받은 것은 GM이 본래 모빌슈트에 익숙하지 않은 ‘초보자’를 위해 만든 기종이었기 때문이다.


  GM은 다양한 시스템을 자동화하여 누구나 쉽게 조종할 수 있도록 배려한다. 우리에게 친숙한 자동차를 기준으로 한다면 GM은 자동 기어를 가진 차량인 셈이고, 지온군의 모빌슈트는 수동 기어 차량이라고 할까?


  분명 자동 시스템은 편리하지만, 그 한계가 존재한다. 자동 시스템은 어디까지나 정해진 환경에서 최선을 발휘할 뿐 필요에 따라 적절하게 제어할 수 없기 때문이다. (20세기에 자동 기어가 등장한 이래 많은 발전을 거듭하면서도 경주용 자동차를 비롯한 고급 차량들은 수동 기어를 고집하고 있는 것은 모두 그 때문이라 볼 수 있다.)


  그러나 GM은 초보자를 너무 중시한 나머지 베테랑에 대한 배려가 전혀 되지 않았고, 극단적으로 말하면 모의 조종 밖에 못한 신참이나 베테랑이나 별 차이가 없는, 개성 없는 기종이 되고 말았다. (이 점은 GM 스나이퍼 등 개량형에서 다소 나아지긴 했지만, 그럼에도 지온군의 기종에 비하면 부족한 편이었다.)


  이는 지온군 쪽에는 수많은 에이스들이 존재하는 반면, 연방에서는 -건담이라는 특별한 기종을 조종한 아무로 레이나, ‘춤추는 검은 사신’이라는 별명으로 유명한 리드 울프 정도를 빼면- 이른바 에이스, 또는 영웅이라고 알려진 사람이 거의 없다는 점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붉은 혜성이나 푸른 거성 등 수많은 에이스를 내세웠던 지온군이 그들 조종사들의 요구에 맞추어 속칭 ‘전용 기종’을 만들어 주었던 것과는 달리 연방군에서는 건담 외 일부 뉴타입 실험기를 제외하면 ‘전용’은 존재하지 않았고, 이런 점 역시 베테랑 조종사들의 불만을 사기에 충분했다.


  그렇다면 GM이 연방군 승리의 주역으로 인정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모순되는 말일지 모르지만, 그것은 GM이 사병들의 불만을 사는 병기였다는 측면에서 생각해 볼 수 있다. 다시 말해 ‘조종사는 싫어해도 병기로서는 탁월한’ 기종이었다는 말이다.


  당시 활동했던 기술 사관의 말에 따르면 GM은 "전투가 아닌, 전쟁에서 이기기 위한 병기"이다.


 

< 개전 이전부터 사용된 건탱크. 모빌슈트 개발을 위한 연방군의 노력의 결정체이기도 했지만, 모빌슈트 전에는 도움이 되지 않았다. >


  건담 등의 실험기에서 불필요한 부분을 최대한 생략하여 만들어낸 GM은 그 투박한 디자인만큼 내부 구조 또한 단순하며 속이 비었다고 할 정도로 여유가 있다. 이렇듯 단순하고 넉넉한 구조는 대량 생산에 적합할 뿐만 아니라 수리하기도 쉽고, 그만큼 고장도 잘 나지 않는다.


  대량 생산을 위해 성능보다는 안정성을 택한 GM은 본래의 성능을 어느 정도 억제한 만큼 모든 부분에 여유가 있는데다 넉넉한 내부 구조로 인해 기술자가 만지기도 편하다.


< GM 스나이퍼 II. 상급자를 위해 개발한 이 기종은 GM의 기본 시스템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


  처음 GM이 도입된 이래 얼마 안 되는 시간만에 GM 코만도나 GM 스나이퍼 등 개량형이 간단히 나올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이 때문이 할 것이다. (당시 소문에 따르면 일부 기술 장교들은 그들 나름대로 GM을 개조해서 다양한 개량형을 만들어냈다고 하는데, 어찌 보면 군법 회의를 받을지도 모르는 이런 일로 인해 GM은 -개인적인 개조를 포함하면- 가장 단시간 내에 가장 많은 개량형을 가진 베스트셀러 병기로 성장했다.)


  게다가 이들 개량형의 GM은 본래의 구조를 그대로 유지한 만큼 생산 공정에도 큰 부담을 주지 않는 것이 특징이었다. (이것은 지온군이 기존의 생산 공정을 쉽게 바꾸지 못해서 전쟁 말기까지도 자쿠를 계속 생산한 것과 대비된다.)


  단순한 조종 시스템은 모빌슈트의 대량 생산에 필요한 ‘대량의 조종사’를 빠른 시간 내에 확충할 수 있다는 이점을 주었다. 게다가 GM의 조종 시스템은 파생형에 관계없이 비슷한 구조를 갖고 있기에 신형이 나오더라도 익숙해지기 쉬웠다.


  이 역시 지온군 조종사들이 구형의 조종 시스템에 익숙해진 나머지 신형에 적응하지 못하는 현실과는 대비되는 점으로서 연방군의 우위를 확고하게 하는 결과를 낳았다.



  GM은 대량 생산이 쉽고, 개조나 개량 작업, 그리고 수리가 쉬운 만큼 운용도 편리한 병기이며 누구나 쉽게 조종할 수 있는 기종이다. 때문에 군사 전문가들은 GM을 2차 대전 당시 아메리카군이 사용한 셔먼 전차에 비교하곤 한다.


  물론 셔먼 전차가 티이거에 1대 1로 상대가 되지 않았듯, GM역시 지온군의 신형 모빌슈트에 1대 1로 상대가 되지 않았다. 그런 점에서 조종사들에게는 불리할 수 밖에 없고, 그만큼 연방군 조종사의 생존율은 떨어질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짧은 기간의 훈련만으로 적응할 수 있는 GM의 조종 시스템은 대량생산이 가능하다는 이점과 함께 연방군이 GM을 대량으로 전장에 투입할 수 있는 상황을 가져왔고, 결국 1년 전쟁을 불과 1년 만에 종식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


  그런 점에서 “GM은 전쟁에서 이기기 위한 병기”이며 “장군들을 위한 병기”라고 해야 할까?



  만일 일부 밀리터리 팬들의 주장처럼 연방군이 “건담”이라는 기종에 집착하여 이 병기의 대량 생산을 추구했다면 과연 그 결과는 어떠했을까? (일부 기록에 따르면 “건담” 역시 소규모이긴 하지만 양산되어 실전에 투입되었다고 한다.)


< 실험용 모빌슈트 건담. GM에 비해 성능은 탁월했지만, 양산에 문제가 있었다. >


  그랬다면 -사병들의 바램대로- 연방군에서도 아무로 레이 이외의 많은 에이스들이 나왔으리라. 


  게다가 지온군처럼 매우 다채로운 모빌슈트가 등장했을 수도 있다.  (이것은 GM 이전의 모빌슈트인 건탱크, 건캐논, 건담을 보아도 알 수 있다.)


  그런 만큼 연방군에도 GM 이외의 인기 모델이 등장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만큼 전쟁은 길어질 것이고, 더 많은 병사들이, 그리고 더 많은 민간인들이 희생될 수 밖에 없었지 않을까?


  그런 점에서 GM은 “연방에 승리를 가져다 둔 병기”일 뿐만 아니라, 1년 전쟁을 1년 전쟁으로 끝낼 수 있었던(그보다 길어지지 않고 끝낼 수 있었던) 원동력이라 해도 좋을 것이다.


  비록 -과거의 셔먼이 그랬듯- 후세의 밀리터리 팬에게 인기 있는 모델을 될 수 없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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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광선과 캡슐은 '총과 버터'라는 이름으로 모 잡지에서 연재했던 전쟁 이야기의 SF 판입니다.


  SF 작품 속에서 나오는 전쟁이나 병기에 대한 이야기를 -작품의 설정이 옳은지 그른지는 지적하지 않고- 이야기하는거죠.


  그러니까... 그냥 도락이라고 생각해 주세요.^^ (그런 만큼 언제 또 쓸지는 전~~~~혀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