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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 이야기/오늘의 추천SF

(오늘의추천작) 조지 오웰의 <1984>. '적'에 대한 두려움이 가져온 효율만을 위한 전제사회의 미래상


  오늘은 훗날 나치 독일이라 불리는 집단이 탄생한 날입니다. 1933년의 이 날을 계기로 독일에서는 나치당의 뜻에 반대하는 어떤 주장도 허용되지 않게 되었고, 강력한 전제, 독재 체제의 길을 걸어갑니다.
  바로 이 날 히틀러는 공화국 헌법의 인권 조항 대부분을 폐지하였고, 철저한 통제와 억압 정치를 추진하게 됩니다.

  히틀러와 나치당이 이처럼 강력한 정책을 내세울 수 있게 된 것은 바로 전날 ‘독일 국회의사당 방화사건’이 발생했기 때문입니다. 훗날 이 사건은 요제프 괴벨스와 헤르만 괴링 등이 의한 자작극이었음이 밝혀지지만, 당시 독일 의회와 시민들은 히틀러를 중심으로 한 나치당의 협박을 그대로 받아들였고, 일부 반대 목소리가 묻히는 가운데 독일은 나치 독일로 변모하였습니다.

  그로부터 10여 년 간 나치 독일은 온갖 만행을 저질렀고 역사에 남을 끔찍한 사건을 일으켰지만, 한편으로 독일 국민들 역시 큰 고통을 받아야만 했습니다.

  이 같은 사건의 원인은 결국 ‘두려움’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당시 독일 국민들은 실업과 경제 불안으로 두려워하고 있었습니다. 여기에 국회의사당이 불타는 사건은 그러한 두려움에 불을 붙여주기에 충분했습니다.
  사실 나치당의 지지율은 엄청나게 올라가지 않았고, 3월 선거에서도 그들의 기대만큼 지지를 끌어들이지 못했지만, 공포 분위기를 일으키고 협박을 통해 다른 당들도 찬성하게 이끄는 역할을 했습니다. 이후 나치를 제외한 모든 정당은 체포와 강제 수용소 수감이라는 협박을 두려워하며 스스로 해산하였습니다.

  ‘반역죄’. 나치가 첫 목표로 삼은 공산당을 비롯한 여러 정당을 협박하는데 사용하는 것은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이후 나치는 독일 내부의 유대인들을 ‘적’으로 규정했고, 이후에는 ‘폴란드’와 ‘체코슬로바키아’를, 그리고는 독일의 가상 적국들을 ‘적’으로 규정하며 2차 대전을 이끌어갑니다.

  히틀러가 사라지고, 나치 독일이 붕괴한 뒤에는 소련과 미국을 중심으로 이 같은 정책이 진행되었습니다. 미국에선 1950년 조지프 매카시의 주장 이전부터 공산주의에 대한 ‘두려움’으로 소련에 대항하는 각종 조치가 시행되었고, 이러한 분위기는 유럽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리고 소련에서도 -외부에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이 같은 분위기가 대세였죠.


  이러한 역사와 상황은 1948년 한 소설가에게 영감을 주었습니다. 그리고 작가는 작품을 쓰기 시작한 년도의 뒷자리 숫자를 바꾸어 소설의 제목을 지었죠. <1984>라고...



  오늘의 추천작 <1984년>은 공포를 이용해서 전제주의를 구축한 미래 세계의 이야기입니다.

  1984년의 미래. 세계는 크게 3개의 세력으로 나뉘어 대립하고 있습니다. 핵전쟁과 오랜 분쟁을 거쳐 탄생한 나라들은 끊임없이 전쟁을 벌이고 있으며, ‘적국에 대항하고자’ 철저한 통제 정책을 시행하고 있습니다.

  서로 간에 배신과 동맹이 반복될 뿐만 아니라, 여러 가지 이유로서 이 전쟁은 결코 끝나지 않으며 계속됩니다. 사람들은 오직 ‘적국에 대한 두려움’으로 이 삶을 당연시하고 가공의 인물인 ‘대형(빅 브라더)’를 숭배하고 그의 말만을 따르고 있습니다.

  오직 ‘적국에 대한 저주’를 위해서 사회는 돌아가며 이를 위해 효율적인 체제가 유지됩니다. 심지어 성관계조차 ‘생산을 위한 전투’이니까요. 심지어 언어조차 ‘효율’을 위해서 ‘신어’라는 체제로 바뀌어 있습니다. (어휘의 수를 줄이고자 ‘춥다’의 반대인 ‘덥다’ 대신에 ‘안춥다.’라고 하거나. ‘훌륭하다’를 ‘더 좋다’ 등으로 바꾸는 식)

  이러한 모습은 지금 이 순간 대한민국의 북쪽에 존재하는 한 나라의 모습을 떠올리게 하지만, 동시에 9.11 이후의 미국과 같은 상황도 연상케 합니다. 물론 미국은 <1984> 속의 세계와는 많이 다릅니다. 하지만, 누군가를 적으로 규정하고 그에 대한 두려움을 불어넣으면서 사회를 획일화하려는 듯한 모습은 그다지 멀다고 생각되지 않지요.

  이를테면 9.11 이후 미국 사회의 모든 언론은 똑같은 메시지를 내던졌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분위기가 아프카니스탄 전쟁과 이라크 전쟁을 불러왔지요. 세계 최강 대국 미국에서 끊임없이 ‘외부의 적’을 찾아가는 모습은 참으로 흥미롭고도 무시무시합니다만... (어쩌면 그렇기 때문에 최강 대국이 되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조지 오웰의 <1984>는 솔직히 불편한 작품입니다. 누군가의 표현을 빌리자면, ‘끔찍해, 끔찍해, 끔찍해, 끔찍해’로 계속되는 작품이니까요.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이 작품이 단조로운 색채로 가득한 것은 아닙니다. 가령 당에 저항하겠다는 생각으로 주인공이 줄리아와 함께 연애를 하는 이야기 등은 무채색으로 가득한 이 작품에 일시적이나마 다채로운 색채를 불어넣지요. 결국은 모든 것을 다시 칠해서 검은색으로 만들어버리지만....

  <이퀼리브리엄>과는 달리 결국 디스토피아로 종말을 맺는다는 점에서 재미없고 불편할지도 모르지만, 그만큼 이를 통해 느끼는 점도 많습니다. SF를 좋아하고 아니고에 관계없이 한번 쯤은 볼만한 작품입니다.

  이 작품을 통해 많은 것을 느낄 수 있지만, 저는 이런 세계 체제가 “보이지 않는 적에 대한 두려움”에서 만들어졌다는 것에 초점을 두고 싶습니다. 물론 그에 대한 이야기는 별로 소개되지 않지만, 결국 모든 독재, 전제 정권은 사람들의 두려움을 이용해서 만들어졌으며, <1984>의 사회 체제 역시 ‘적’이 있기에 존속된다는 점에서 말이죠.

  그런 점에서 이 작품은 ‘나치독일’만이 아니라 ‘냉전’의 세계를 잘 보여주고, 지금도 적국을 찾아 헤매는 여러 나라의 ‘미래 가능성’을 보여주는 작품이 아닐까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