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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 이야기/오늘의 추천SF

(오늘의 추천작) 왕립우주군~오네아미스의 날개~. 험한 현실 속에서 펼쳐져나가는 꿈을 향한 발걸음. 그 첫번째 기억.

  오늘은 미국에서 최초로 우주 비행에 성공한 머큐리 6호(프렌드쉽 7호)가 발사된 날입니다. 몇 번의 위기가 있긴 했지만, 존 글렌의 우주 비행과 무사한 귀환으로 미국을 소련을 따라 잡아 빠르게 우주 개발을 진전시키고 결국 달 착륙이라는 성공을 거두게 됩니다.
 
  당시의 이 같은 우주 개발은 냉전이라는 체제가 낳은 결과이기도 합니다. 물론 우주 개발을 주도한 소련의 세르게이 코롤료프와 미국의 폰 브라운의 노력에 의한 것이기도 하겠지만, 미국과 소련이 대립하며 서로 경쟁하는 체제가 아니었다면, 천문학적인 비용이 들어가는 우주 개발은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런 점에서 달 개발이 더 진전되지 못한 것은 매우 자연스러운 결말일지도 모릅니다. 우주 개발에서 얻는 가치가 결코 적은 것은 아니었지만, 엄청난 돈을 들인 달 착륙 로켓의 결말이 ‘소련에 이겼다는 승리의 기쁨’과 고작 수백 kg의 월석에 지나지 않았으니까요.

  하지만, 냉전 시대라는 기묘한 환경이 아니었다면, 달 착륙이라는 결과는 아예 나오지 않았을지도 모르고, 그만큼 우주 개발을 추진하는 이들의 성공은 없었을지도 모르지요. 어떤 점에서 소련과 미국의 우주 개발 경쟁은 우주에 대한 꿈을 꾼 이들이 정치적 환경을 이용하여 꿈을 달성하고자 했던 노력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오늘은 이와 마찬가지로 분쟁이라는 환경이 낳은 우주 개발의 진전을 보여준 작품이 떠오릅니다.

  바로 가이낙스의 첫 작품인 “왕립우주군~오네아미스의 날개”입니다.

왕립우주군~오네아미스의 날개~



  ‘오네아미스의 날개’는 가이낙스라는 회사를 만들어내는 원동력이 되었고, 한 편으로는 상업적 실패로 막대한 빚을 낳음으로써 일회성으로 해체될 예정이었던 가이낙스를 계속 이어나가 지금에 이르게 한 작품입니다. 어떤 점에서는 우주 개발을 가져오고 지속하게 만든 ‘냉전의 경쟁’과도 같은 존재일지도 모르겠군요.

  이 작품의 작가인 야마가 히로유키 감독에 따르면 이 작품은 그가 훗날 “에반게리온” 등의 성공을 가져온 안노 히데아키의 폭발 장면에 매료되어 시작되었습니다. 오사카에서 열린 SF 대회의 오프닝 애니메이션을 만들고자 모였던 사람들 중 하나인 안노 히데아키는 그야말로 앉아서 그림만 그리는 사람의 전형이었는데, 흥미롭게도 다른 무엇보다도 폭발 장면에 열중하는 느낌이 있었다고 하지요. 그러한 매력을 살리고자 기획된 것이 바로 “오네아미스의 날개”인 것입니다.

  이러한 개발 배경 덕분인지 “오네아미스의 날개”에서 안노가 연출을 맡은 후반의 로켓 발사 장면은 CG를 통해 사실적인 장면을 얼마든지 볼 수 있는 지금보아도 정말 매력적입니다. 포탄이 날아들고 전투기가 추락하는 등 격전을 벌이던 병사들이 모두 말을 잃고 로켓을 바라보았듯이 관객들도 한 순간을 놓치지 않고 들여다 볼만큼 환상적이지요.

  하지만 우주 개발 경쟁이 아폴로 11호의 달 착륙과 닐 암스트롱의 메시지로 클라이막스를 맞이했지만, 거기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에서 또한 수많은 감동을 남겨주었듯이, ‘오네아미스의 날개’도 그 장면에 이르기까지의 수많은 부분에서 즐거움을 줍니다.

  이 작품은 “훌륭한 영상미”를 가진 작품이며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볼만한 가치를 갖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주군을 중심으로 로켓 발사에 이르는 이야기의 구성도 매우 충실하게 잘 연출되어 있지요. (돈도 없고 명성도 없는 젊은이들의 집단에 호의를 갖고 응원해 주었던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은 완성된 작품을 어느 정도 평가하면서도 주인공 이외에 노력해 왔던 선배들의 모습을 그리지 않은 것에 비판을 가하기도 했습니다만...)

  ‘오네아미스의 날개’는 하늘에 대한 꿈을 꾸었다가 잠시 좌절했지만, 다시금 우주를 향해 걸어 나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린 작품입니다.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군대’라며 비난받고 있는 왕립우주군이 결국은 우주로의 한 발짝을 걸어나가는 과정을 그린 것이지요.

  하지만 이 작품은 단지 ‘꿈’에 대한 이야기만은 아닙니다. 우주 개발을 둘러싼 현실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지요.
  작품의 배경에 어울리는 기술력으로 완성된(다소 스팀펑크 분위기가 느껴지는) 각종 장비나 시스템의 모습이 매우 잘 만들어졌고, 힘겹지만 꽤 코믹한 훈련 역시 사실적인 분위기가 넘치지만, 왕립우주군의 기지 앞에서 앉아있는 걸인이나 ‘그 돈을 우리에게 달라’라며 시위를 벌이는 빈민들의 모습, 그리고 로켓을 적국에 대한 위협용으로 사용하려는 정계나 이에 대해 자객을 파견하는 적국의 모습, 그리고 개발 스탭의 죽음과 같은 다양한 모습이 현실적인 드라마를 그려내며 이야기를 이끌어줍니다.
  
  가이낙스의 여러 작품을 떠올리며 이 작품을 본다면, 다소 실망할 수도 있는 작품일지도 모릅니다. 후반의 전쟁 장면에 이르기까지 이렇다 할 액션이 없으며 다소 잔잔한 분위기로(그러면서도 때로는 지나치게 돌발적으로) 이야기가 흘러가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실제의 우주 개발에 대해 조금이라도 관심을 갖고 그 이야기를 들은 이들이라면, 이 작품이 또 다른 세계를 무대로 한 매우 사실적이며 완성도 높은 우주 개발 드라마라는 것을 충분히 느끼며 감동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 작품을 감상할 때는 이것이 냉전 시대의 우주 개발에 대한 오마주인 동시에, 애니메이션에 대한 꿈을 키워나간(애니메이션 작업 이외에는 뭘 할지 모르는?) 가이낙스 사람들의 노력의 결정체라는 것을 떠올리면 더 좋을 것입니다.


여담) 한 가지 아쉬운 것은 10년 쯤 전에 속편 개발 계획이 있었지만, 아직 실현되지 못했다는 점입니다. 야마가 히로유키 감독은 언젠가 하게 될지도 모른다고 이야기했지만, 과연 그 날이 찾아올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