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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과 우주 이야기

스콥스 원숭이 재판 - 창조설의 도전(?)과 미국의 암흑기


  1925년 7월 21일. 미국의 테네시주에서 한 재판이 열렸다.

  스콥스 재판, 또는 스콥스 원숭이 재판이라고 알려진 이 사건은 자유 인권 주의와 그리스도교 신학간의 충돌인 동시에, 종교 근본주의자의 문제점을 여실히 드러낸 사건이었다.

  1925년 미국 테네시주에서는 그리스도교 근본주의 단체인 세계 기독교 근본주의 협회(World's Christian Fundamentals Association)의 로비로 주내의 공립학교에서 진화론 교육을 금지하는 법안(버틀러법)이 통과되었다.

  이에 대해 미국 민권 자유동맹(American Civil Liberties Union)은 반대 운동을 벌였고, 고등학교 생물교사이자 미식축구 코치인 존 스콥스가 자원하여 5월 5일 다윈의 [종의 기원]에 바탕으로 두고 개발된 교과서로 진화론을 가르쳐 기소되기에 이른다.

  재판은 근본주의 단체와 자유 인권 주의 단체로 전개되었고, 양쪽에서 거물 변호사를 동원한 싸움이 시작되었다. 8일에 걸친 재판동안 1,000명이 넘는 사람이 모여들었고, 학자 등 많은 이가 관심을 보인 이 재판은 성경이나 진화론에 대해 논하는 복잡한 전개를 보였다.

  재판 결과는 테네시주의 주법을 어긴 것이 명확하다는 이유로 스콥스의 유죄로 판결되었다. 마지막으로 할 말이 있는지에 대해 스콥스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 존 스콥스 ]


  “존경하는 재판장님, 저는 유죄 판결이 불공정하다고 여깁니다. 저는 과거에 그래왔듯, 앞으로도 제가 할 수 있는 한 이 법안에 저항할 것입니다. 이 법안에 따르는 것은 개인과 종교의 자유처럼 미국 헌법으로 보장된 사상의 자유에 대한 제 신념에 반하는 것입니다.  벌금은 불공정하다고 생각합니다.”
 
 
 1년 후 주 대법원에서 재판 절차상의 잘못을 이유로 재판은 무죄로 선고했지만, 스콥스 재판의 결과는 그리스도교 근본주의자의 기세를 드높여주었고, 이후 진화론 반대 운동이 확산되어 여러 주에서 유사한 반 진화론 법안을 고려하는 결과를 낳았다.

  대부분의 주에서는 이 법안을 통과시키지 않았지만, 미시시피주와 아칸소주에서는 버틀러법과 유사한 법안을 통과시켰고, 테네시 주의 반 진화론 법안은 1965년이 될 때까지 개정되지 않았다. 이후 많은 과학 교과서에서 진화론 항목이 사라져 버렸고 심지어는 과학 수업 자체가 줄어들고 말았다.

  변화는 예상치 못한 형태로 일어났다. 1957년 소련은 스푸트니크를 발사하여 세계 최초로 인간이 만든 인공 물체를 우주로 쏘아올리는 쾌거를 이룩하였다.

[ 신문을 지면을 가득 메운 스푸트니크 기사 ]


  핵병기의 공포가 밀려오던 시기였다. 금방이라도 하늘에서 소련의 핵폭탄이 떨어질 거라는 공포에 미국 사회는 동요했고, 책임을 묻기 시작했다.

  결론은 명백했다. 미국 사회는 교육의 문제, 특히 과학 교육의 부재를 원인으로 지목하였고, 1958년 국가 방위 교육법(National Defense Education Act)을 거쳐 교육 정책의 일대 개혁을 실시하였다.

  새로 개정된 과학 교과서에서는 단순히 진화론을 추가한 것에 그치지 않고 생물학계의 통일된 주장으로서 진화론을 중요하게 거론하게 되었다. 창조설이나 그와 유사한 어떤 종교적 내용도 포함되지 않은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1981년 말 한때 버틀러법안과 유사한 법안을 채택하기도 했던 아칸소 주에서 ‘제2의 스콥스 재판’이라 불리는 재판이 진행되었다. 아칸소주에서는 근본주의자의 로비를 받아 “과학적 창조주의에 대해 균형잡힌 처리”를 두도록 학교에 요구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그러나, 1982년 1월 5일 오버튼 연방 판사는 이 법안이 “정교 분리의 원칙에 위배된다.”라고 선언하며 “창조주의는 과학이 아니며, 진화 또한 종교가 아니다.”라고 규정했다.

  이후에도 창조설을 교과과정에 넣으려는 근본주의자들의 시도는 계속되고 있으며, 심지어 부시 대통령이 지지하며 주목받기도 했지만, 미국의 교과서나 교과 과정에 창조설이 추가되거나 진화론을 가르치는 일이 중단되는 일은 없었다.


여담) 하지만, 성경이라는 특정한 종교의 교리에 입각한 창조설을 교과 과정에 넣거나 아이에게 가르치려는 종교 근본주의자의 시도가 그친 것은 아니다.

  2004년 10월 펜실베니아주의 도버 교육 위원회는 지적 설계론이라 불리는 내용을 교과 과정에 추가하였다. 이는 많은 학부모와 교사, 그리고 민권 자유 동맹 등 단체의 반발을 가져왔고, 즉각 소송이 진행되었다.

  당시 재판을 맡은 존 존스 판사는 "‘지적설계론’은 “창조설에 이름을 달리 붙인" 것으로서, 과학이 아니라는 결론을 내렸다며 도버 교육 위원회의 결정이 정교 분리를 앞세운 헌법에 어긋난다고 판결하였다. 존 존스 판사는 도버 교육 위원회는 “너무 어리석은” 교육정책을 세우고, 일부 교육위원들은 종교 교육을 촉진하려는 진정한 동기를 숨겨 자신들의 공동체를 “돈과 인적 자원을 낭비하는 법의 소용돌이 속에 빠트렸다”고 비판했다.

  이처럼 공공 교육에 창조설을 집어넣으려는 시도가 계속 무너지자, 근본주의자들은 홈스쿨용 창조설 교과서를 만들고 창조설 박물관을 세우며 미션 스쿨 등의 종교 학교를 통해 창조설을 가르치는 등 다양한 분야의 시도를 진행하고 있다.

[ 미국에 세워진 창조설 박물관 ]

  이에 대한 학계의 반발도 계속된다. 실례로 캘리포니아 주의 공립대학(UCLA, UC Berkely, UC Irvine)에서는 "창조설을 지지하는 생물학 교육을 받은 학생들은 대학에 들어올 수 있는 입학 자격을 갖추지 못했다."라고 판단하며 그들의 입학을 거부하기에 이른 것이다. 그들이 배운 창조설 기반의 생물학 교과서 "Biology : God's Living Creation and Biology"가 대학 교육 준비를 위한 교과서로 적합하지 않다는 판단에 따른 결정이었다.

  근본주의자 집단이 대학 측에 소송을 제기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당시 그들은 지적설계론 담당의 교수마저도 내세워 (아이러니하게도) "언론과 사상의 자유를 억압"하는 것이라 역설했지만, 연방 사법 재판소는 대학의 결정이 "합리적이며 차별적인 요인이 없다."라며 판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