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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 이야기

좀비에 대한 과학적...이면서도 무의미할지 모를 의문

 이 글을 읽기 전에 한 가지 인식해두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이 글에서 이야기하는 좀비에 대한 ‘과학적인 설정’에 대한 이야기에 관계없이 좀비는 매우 다양하게 활용할 수 있는 좋은 소재라는 것입니다.


  일찍이 조지 로메로 감독이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에서 좀비라는 개념을 통해 정착시킨 이래. 아니 그보다 앞서 작가 리처드 매드슨이 [나는 전설이다]에서 평범한 사람들이 언데드로 되살아나는 설정을 소개한 이래 좀비, 또는 좀비처럼 움직이는 시체는 많은 창작 작품에서 흥미로운 이야기의 소재로서 활약했습니다.


  불과 얼마 전까지 친하게 지내던 이웃이, 친구가, 심지어는 가족이 괴물로 변하여 달려드는 것은 그 어떤 공포물에서도 볼 수 없는 독특한 개념이었으며 사랑받았습니다. 좀비물(특히 영화)이 양산되면서 시체처럼 느릿느릿했던 모습에서 벗어나 빠르고 날렵한 모습을 갖게 되었고, 도구나 총을 들고 차를 타고 초능력을 쓰거나 날아다니고 심지어는 말을 하고 사랑하기에 이르렀지만, 어찌되었든 ‘좀비’라 불리는 소재의 매력이 사라지지는 않았습니다. 그것이 과학적으로 타당하건 아니건. 아래의 내용을 통해서 이야기하겠지만, ‘좀비’라는 개념에 대해서 과학적인 설정의 잣대를 들이대는 건 사실 무의미합니다. 그건 고지라(일본의 괴수물에 나오는 거대 괴수)나 마징가Z, 혹은 드로리안(백 투 더 퓨처의 시간 여행 자동차), 쥬라기 공원의 공룡 등에 과학적 잣대를 들이대는 것처럼 별 의미가 없죠. 단지 가능해 보이거나 뭔가 이야기로서 의미를 가지면 충분하니까요.


  그럼에도 과학이라는 잣대로 영화의 설정을 살펴보는 것은 –의미가 있고 없음을 무시하고- 작품을 즐기는 또 하나의 방법으로서 재미를 줄 수 있습니다. 그러니 이 글은 어디까지나 재미로 즐기는 것이라고 생각해 주세요. 작품은 작품의 재미로서 즐기는 것이지 과학적으로 맞고 그르고를 따질 필요가 없으니까요.



[ 쏟아져 나오듯 밀려오는 좀비들. 과연 그들은 어떤 존재인가? (세계대전 Z) ]



좀비에 대한 (과학적...이면서도 무의미할지 모를) 의문


  영화와 소설과 만화, 그리고 애니메이션과 게임을 통해 우리는 수많은 좀비에 대해 볼 수 있다. 작품에 따라 좀비라는 존재는 외형에서부터 특성, 성격, 심지어는 취미(!)에 이르기까지 매우 다양하기 이를 데 없지만, 그들이 어떤 능력에 의해 죽었다가 되살아난 존재. 말하자면 언데드(Undead)라는 것에는 차이가 없다. (여기에는 물론 대니 보일 감독의 명작 “28일후” 같은 작품은 포함되지 않는다. 여기에 나오는 ‘적’들은 –비록 이들이 현대판의 뛰어다니는 좀비에 더 없는 영감을 주었을지라도- 어디까지나 바이러스에 감염되어 끝없이 폭력을 휘두르는 인간일 뿐이다. 참고로 뛰어다니는(심지어 총을 들고 칼을 휘두르는) 좀비라는 개념은 그 전에 이탈리아 등에서 무수하게 만들어졌지만, 대개 좀비 영화라기보다는 그냥 좀비처럼 생긴 괴물이 나오는 평범한 고어물이었다.)

  작품 속에서 그들은 다양한 모습으로 존재하고 행동하면서 이야기를 이끌어나간다. 그들의 설정 역시 기원에서부터 특성까지 무수하게 존재하지만, 여기서는 좀비에게 있어 공통된 요소라 할 수 있는 언데드라는 것을 기준으로 좀비에 대한 여러 가지 의문을 제기하고 과학적인 분석을 해 보고자 한다.



0. 좀비는 시체인가?


  언데드(Undead)라는 말을 한영사전에서 찾아보면 ‘죽지 않은, 완전히 죽지 않은, 완전히 죽지 않은 사람들’이라고 되어 있지만, 영영 사전에 따르면 (형용사) “no longer alive but animated by a supernatural force, as a vampire or zombie.(흡혈귀나 좀비처럼 더는 살아있지는 않지만 초자연적인 힘에 의해 움직이는 존재)”(Dictionary.com)라고 되어 있는 것을 볼 때 일단 좀비는 죽은 존재라는 것이 틀림없어 보인다.

  또한 사체의 기준이 ‘한때 생명 현상을 보였지만, 현재는 생명 현상을 보이지 않는 존재.’라고 할 때 좀비는 ‘항상성 유지’나 ‘에너지와 물질이 필요하다.’ 같은 특성을 갖지 않는 만큼 시체라고 부르기에 문제가 없어 보인다.

  그렇다면 왜 이런 질문을 던진 것인가? 그것은 좀비라는 존재가 ‘시체’이므로 ‘생명 현상을 갖지 않는다.’라는 개념을 다시 확인하기 위함이다. 왜냐하면 이 정의를 적용하는 순간 무수한 작품 속의 좀비는 ‘비과학적인 존재’로 바뀌기 때문이다.


1. 좀비는 살아있는 존재인가?


  위의 질문이 나온 직후에 이 질문을 던지는 것은 바보 같지만, 여기서는 ‘살아있는 존재’라는 개념이 어떤 것인지에 대해서 정리해 볼 필요가 있다.

  살아있는 존재라는 것에는 다양한 정의가 있지만, 물질 대사를 기준으로 할 때 다음과 같은 정의를 적용할 수 있다.


1) 성장한다.

2) 물질대사를 한다.

3) 외부적으로나 내부적으로 움직인다.

4) 자신과 닮은 개체를 생산해 내는 생식기능이 있다.

5) 외부 자극에 반응한다.


  여기서 좀비에 해당하는(‘살아있는 시체들의 밤’에서부터 ‘월드워 Z’에 이르는 모든 작품들에 거의 공통된) 요소는 오직 3)번과 5)번 뿐이다. 좀비는 더는 성장하지 않으며(게임 등 극히 일부 작품에서 거대해지는 좀비가 등장하긴 하지만, 이런 건 엄밀히 보아 ‘좀비’라 불리는 돌연변이체일 뿐이다.) 물질 대사를 하지 않는다. 인간을 잡아먹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들의 소화 기관이 작동하지 않으니 무의미하며 심지어는 호흡조차 하지 않는다. 체열이 없으니 땀이 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대사 작용이 멈추었으니 침이나 눈물, 오줌 같은 체액도 나오지 않는다.(아니 흐르지 않아야 한다.) 게다가 생식 기관이 있는 경우도 있지만(심지어 일부 동인지에선 성 행위도 연출하지만) 좀비는 후손을 생산하지 못한다는 점에서 생식 기능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 점에서 좀비는 살아있는 존재로서 필요한 여러 조건을 충족하지 못했으며, 심지어는 바이러스보다도 생명체로서의 특성이 부족하다. (바이러스는 성장하지 않으며 숙주 세포 밖에서는 생식이 불가능하다. 하지만 물질 대사를 하며, 숙주 세포 내에서는 개체를 늘려나갈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좀비는 ‘외부 자극에 반응하여 움직이는 기계’와 다를 바가 없는 존재. 즉 살아있는 존재라고 할 수 없다.



2. 좀비는 의식이 있는가?


  근래에는 도구를 사용하거나 차량을 운전하는 것만이 아니라 말을 하고 심지어는 연애(!)를 하는 좀비가 나오기도 하지만, 앞서 말한 사체로서의 좀비라는 정의에 따르면 이건 과학적으로 비현실적인 일이다.

  물론 좀비라는 개념 자체가 과학적으로 말이 안 된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신이나 악마, 또는 저주나 샤먼의 마술 같은 초과학적인 힘에 의존해서 움직이는 게 아닌 이상 사체인 게 명확한 좀비가 의식을 가진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의식이라는 것은 ‘뇌파가 작용한 결과로 이루어지는 현상’인데 물질 대사 등의 생체 활동이 정지된 사체의 뇌에서는 뇌파라는 것도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뇌파, 또는 뇌전도라는 것은 신경계에서 뇌신경 사이에 신호가 전달될 때 생기는 전기의 흐름인데, 이 전기의 흐름은 뇌세포 내부의 무수한 신경 전달 물질이 제대로 작용하면서 발생한다. 심장이 멈추었을 뿐만 아니라 세포의 모든 작용이 정지한 사체의 뇌에서 뇌파가 작동한다는 것은 전기가 다 떨어진 건전지로 전구를 켜는 것만큼이나 비현실적이다.

  물론 생체 활동이 모두 정지된 상태에서 하필이면 뇌만이 작동해서 뇌파가 발생하고 의식이 생겨날 수도 있다. 가령 뇌파라는 것이 ‘에너지 현상’인 만큼, 이를 위해서는 에너지가 공급되어야 하지만, 그건 뇌 안에 존재하는 무수한 물질을 공급해서 처리한다면 된다.(이를 위해서는 대량의 산소가 필요하지만 뭔가 특별한 촉매를 써서 산소 없이도 영양소를 처리한다고 가정하자.) 그 경우 적어도 뇌 안에 축적된 영양소를 처리하는 동안에는 뇌파가 생겨나고 의식을 유지할 수 있다. 그러니 말을 하고 심지어는 사랑을 할 수도 있을지도 모른다. 다만 그 경우 사랑은 지극히 짧은 시간에 끝날 것이다. 인간의 뇌는 무진장 많은 영양소를 필요로 하며, 뇌 안에 남아 있을 얼마 안 되는 영양소만으론 의식이 오래 지속되지 못한다.

  한 가지 문제는 ‘의식이 있는 좀비’를 사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인가 하는 점이다. 호흡을 하지 않으니 물질 대사를 하지 않는 건 맞고 당연히 성장도 하지 않지만, 뇌가 작동하는 상태라면 ‘살아있다’라고 해도 되기 때문이다. 물론 살아있는 존재의 정의에는 맞지 않을지 모르지만.



3. 좀비는 말을 할 수 있는가?


  좀비가 의식이 있다고 가정해 보자. 그렇다면 좀비는 말을 할 수 있을까? 위에서 ‘말을 하고 심지어는 사랑을 할 수도 있을지도 모른다.’라고 했지만, 사실 이건 타당한 답변이 아니다. 왜냐하면, 말을 한다는 것은 필연적으로 ‘호흡’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잘 알겠지만 좀비들은 호흡을 하지 않는다. 사체이기 때문이다.

  영화 속에서 좀비들이 소리를 내는 것은 어디까지나 몸을 움직이는 과정에서 폐 속의 공기가 흘러나오면서 생기는 신음소리에 지나지 않는다. 이는 좀비가 아니라 일반적인 사체에서도 가끔 일어나는 일로 그다지 특이한 경우가 아니다.

  설사 의식이 있다고 해도 폐가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않는 좀비는 말을 하지 못한다. 두뇌의 작동이라면 두뇌 속의 물질을 사용해서 일시적으로 가능할지도 모르지만, 폐를 움직이는 건 그보다도 훨씬 많은 에너지가 필요하다는 점에서 몸에 있던 에너지만으로 처리하기는 어렵다.

  물론 어떤 특별한 작용에 의해서 몸속의 여러 가지 물질을 처리해서 일시적으로 폐를 움직인다면 말을 하는 게 불가능하지는 않겠지만.



4. 좀비는 움직일 수 있는가?


  좀비는 움직이지 않냐고? 그야 영화 등에선 그렇겠지만, 정말로 움직일 수 있는지 과학적으로 생각해 보자.

  좀비는 사체이다. 앞서 ‘폐가 움직이지 않아서 말도 할 수 없다.’라고 했는데, 그러한 좀비가 과연 몸을 움직일 수 있을까? 몸을 움직이려면 엄청난 에너지가 필요하다. 성인 남성이라면 운동하지 않고 가만히 있는 것만으로 하루에 2000칼로리(대략 2500칼로리) 이상이 필요하며 격하게 몸을 움직인다면 그 이상으로 엄청난 에너지가 필요하다.

  좀비는 생체 활동이 정지한 사체이다. 사체는 신진대사가 정지된 상태로 영양분이 공급되지 못한다. 하지만 좀비가 움직일 수 있는 방법이 딱 하나 존재한다. 그것은 앞서 두뇌나 말에서 이야기했듯이, 어떤 방법으로든 호흡을 하지 않으면서도 몸의 성분을 이용해서 에너지를 생산하는 것이다. 좀비는 소화를 시키거나 하지 못하므로 추가로 에너지 공급은 받지 못하지만, 단식 수행자들을 보듯, 인간은 아무 것도 먹고 마시지 않아도 어느 정도 살아서 행동할 수 있는 만큼 좀비가 몸의 성분을 소비하여 에너지를 만들어낼 수 있다면 그 동안은 움직일 수 있을 것이다. 그와 함께 좀비의 몸은 점차 말라서 움직이지 못하게 될 것이다.

  몇몇 영화에서 보듯 뛰어다니는 좀비라면 불과 몇 시간을 버티지 못할지도 모르지만, 로메로 작품처럼 어느 정도 느린 움직임이라면 며칠, 혹은 몇 달을 버틸 수 있을지도 모른다. 좀비는 이미 죽은 존재이니 호흡, 심장 박동 등에 에너지를 소비할 필요는 없으며 단지 몸을 기계적으로 움직이는 정도라면 단식 수행자들보다도 훨씬 오래 버틸 수 있지 않을까?

  어느 쪽이건 좀비가 몸을 움직여서 작동하기 위해서는 그 몸이 움직이도록 지시하는 부분이 필요하며, 그런 점에서 보아도 좀비에게는 ‘의식’이 있다는 결론이 나오게 된다.



5. 좀비는 서 있을 수 있는가?


  엉뚱한 질문이라고 생각하겠지만, 여기에서 한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우선 사람들은 어떻게 서 있을 수 있는가? 굉장히 이상하겠지만, 인간의 몸은 본래 서 있을 수 없다. 수면제 등에 당한 사람이 어떻게 되는가를 생각해 보자. 근육의 힘이 빠지는 순간 그들은 실이 끊어진 인형처럼 그대로 주저앉아 버리게 마련이다. 수면제가 아니라도 오랫동안 걸어 다녀서(또는 대중교통에서 시달려서) 힘이 빠지면 주저앉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인간은 로봇과 달라서 근육에 힘이 주어지지 않으면 아예 서는 것도 불가능한 존재이다. 

  우리들이 서 있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 몸의 작용이 필요하다. 우선은 뼈에 문제가 없어야 하고, 근육이 버텨주어야 하며 두뇌에서는 몸의 여러 가지 감각 기관을 이용하여 평행을 잡아주어야 한다.

  그런데... 좀비는 이러한 게 존재하지 않는다. 뼈는 나중에 썩으니 그렇다 치자. 근육은 어떻게 되는가? 가만히 서 있기만 해도 에너지를 소비하는 상황인데 말이다. 게다가 세반 고리관 같은 평행 중추는 작동하는가? 두뇌는?

  앞서 들었던 여러 가지 의문과 마찬가지로 이에 대해서 ‘좀비가 서 있을 수 있다.’라고 하려면 좀비는 어떤 특별한 기능으로 인해서 몸의 성분을 이용해서 에너지를 생산하여 근육을 움직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두뇌도 작동해야 한다는 결론이 나온다. 뭔가 조금씩 이상해지긴 하지만 말이다.



6. 좀비는 깨물 수 있는가?


  좀비는 깨문다고? 그런데 그 역시 근육의 작용이 필요하다는 것을 잊지 말자. 근육 이완제를 섭취한 사람은 말도 제대로 할 수 없다. 턱과 입술이 제대로 움직이지 않기 때문이다. (심하면 심장이 멈추어 버릴 수도 있다.) 말조차 못하는 상황에서 과연 무언가를 깨물 수 있을까? 이렇게 생각하자면 다시금 ‘몸의 성분을 이용해서 에너지를 생산해서...’라는 결론이 나와버린다. 그렇지 않다면? 움직이지 못하는 좀비가 깨물지 못하는건 당연한 일이다.



7. 좀비는 감각이 있는가?


  좀비는 통각이 없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통각이 있는지 없는지는 알 수 없지만, 통각이 없는 것처럼 행동한다. 그러면 시각은? 후각은? 청각은? 미각은?

  우선 좀비의 눈이 제대로 작동하는가를 생각하기에 앞서(영화 속 좀비의 눈은 아무리 보아도 제대로 작동한다고 여겨지지 않지만). 이 같은 감각이 두뇌에 전달되어 처리되지 않으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는 것을 생각해 보자. 그렇다면 ‘의식’이 없는 좀비는 다른 감각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된다. 역시 좀비의 두뇌가 작동하지 않는 이상 다른 감각이 존재할 가능성은 없으며, 후각이나 청각 역시 작동하지 않는 만큼 그들이 인간을 보고 쫓아올 가능성은 존재하지 않는다....



8. 좀비는 질병을 옮길 수 있는가?


  굉장히 이상한 의문이겠지만, 좀비가 바이러스에 의해서 전염되는 것이라면 과연 좀비는 정말로 다른 사람에게 바이러스를 감염시킬 수 있을까?

  우선 좀비가 사체라면 바이러스는 작동하지 않는다는 것을 생각할 필요가 있다. 바이러스는 어디까지나 ‘살아있는 숙주’ 내에서만 활동하기 때문이다. (바이러스는 생체로서 필요한 많은 부분을 숙주의 세포 내 기관에 의존하기 때문에 생체가 작동하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 다시 말해 좀비 몸속의 바이러스는 일단 작동하지 않는, 즉 활성화하지 않은 상태이다.

  그렇다면 좀비에 의해(좀비에 물려서) 인간의 몸에 들어간다면 어떻게 될까....라는 이야기에 앞서서, 과연 좀비가 사람을 무는 것으로 바이러스를 감염시킬 수 있을까를 생각해 보자.

  바이러스를 감염시키려면 단순히 무는 것으로 되지 않는다. 문 상처에 바이러스가 주입되어야 한다. 바이러스는 보통 체액에 들어 있을 텐데 문제는 사체인 좀비에게는 ‘체액’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아니 피 같은 체액은 존재할지 모르지만, 좀비는 땀을 흘리지 않으며 침(타액)도 나오지 않는다. 영화 속처럼 입을 벌리고 다니는 좀비라면 입 속은 말라 있을 것이고 말라있는 상황에서 물어봐야 체액이 상처에 유입되기는 어려울 것이다.

  물론 입 속에 있던 바이러스가 마른 상태에서도 죽지 않고 있다가 상처를 통해서 유입되는 경우는 있겠지만, 침과 같은 체액이 유입되어서 감염될 가능성에 비해서는 훨씬 가능성이 낮을 것이다. (한편 바짝 마른 상태에서도 바이러스가 활성화된 채로 살아남아 있다면 이 바이러스는 더욱 위험한 존재가 될 수 있다. 좀비의 체액이 묻은 바닥 위에서 뛰어다니다가 먼지 같은게 호흡기에 들어가기만 해도 감염될 수 있으니 말이다.) 



9. 그렇다면 좀비는 어떤 존재인가?


  여기까지 좀비가 ‘작동할 수 있는가?’를 살펴보면, 좀비는 조금, 아니 굉장히 이상한 존재라고 밖에는 생각되지 않을 것이다.


  과학적으로 볼 때 사체에 해당하는 좀비는 움직이지 못하고, 감각도 없고 말하거나 깨물지 못하고 아예 서 있을 수도 없는... 다시 말해 그냥 사체이거나, 어떤 원리로든 인체의 성분을 이용해서 에너지를 생산하여 움직이는 기계 같은 존재여야 한다. 좀비가 움직인다는 것은 몸에 있는 성분들을 에너지로 사용하는 만큼 좀비의 작동 시간에는 제약이 있게 마련이며 산소를 사용하지 않고 에너지를 생산하려면 그만큼 효율이 떨어지기 때문에 움직임은 느려지게 될 것이다. 어느 쪽이건 좀비는 마치 건전지로 움직이는 로봇처럼 일정 시간 동안만 그것도 느리게 움직일 것이다.


  이렇게 생각할 때 정말로 좀비는 움직이는 사체라기보다는 로봇과 같은 느낌이 훨씬 강하다.


  그렇다면 좀비는 –마법적인 존재가 아니라고 가정하면- 바이러스에 의한 감염이기보다는 어떤 특별한 장치(이를테면 나노 머신)에 의해 로봇으로 변질된 존재라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이를테면 스타트렉에서 등장하는 ‘보그’와 같은 존재가 가장 가깝지 않을까?


  더욱이 좀비가 단순히 움직이는 사체가 아니라 에너지로 움직이는 로봇과 같은 존재라면, 게임 등에서 흔히 보는 괴물처럼 강력한 좀비라는 것도 이상한 존재는 아닐 것이다. 여하튼 그들의 몸은 더는 ‘인간의 육체(또는 사체)’가 아니라, 거의 무한정 동력을 생산해내며 뇌파가 없고 심장도 뛰지 않는데 의식이 있고 생체 활동도 하지 않는데 침을 흘리는 독특한 시스템이니 말이다.


  쉽게 말하면... 과학적으로 ‘좀비’라는 놈이 존재하려면 그들은 사체가 아니거나(즉, ‘28일후’의 환자들이나 부두교의 좀비처럼 폭주하는 인간이거나) 로봇 같은 존재여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좀비는 단지 움직이지 않는 평범한 사체에 불과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