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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 이야기

Happy Birthday, Lucas!

  노르망디 상륙작전을 불과 1달 앞두고 2차 대전이 계속되던 1944년 5월 14일. 캘리포니아의 모데스토에서 한 아이가 태어났다. 당시 아이들이 그렇듯 TV의 활극이나 만화책에 열중하던 소년은 고등학생이 되어 자동차 경주에 빠져들었다. 고교 시절 내내 자동차 경주를 구경하고 심지어는 참여하던 소년이 그대로 성장했다면 우리는 자동차 선수가 된 그를 보게되었을지도 모르지만, 운명은 그에게 다른 길을 제시해 주었다. 1962년 7월. 졸업을 얼마 앞둔 어느날 그는 큰 사고를 당했고 자동차 선수라는 꿈을 버리고 말았다. 


  인류학을 배우고자 전문대에 입학한 소년은 교양 과목으로 영화 예술이라는 분야를 접하게 되었다. 본래 학점을 때우고자 적당히 선택한 과목이었지만, 여기서 처음 접한 각종 촬영 기법은 본래 모험을 좋아하고 새로운 분야에 대한 도전 의욕으로 가득차 있던 소년에게 깊은 인상을 주었고, 이리저리 따라다니는 사이 소년은 어느새 뛰어난 사진 작가로 성장하게 되었다.


  자신도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재능에 눈을 뜬 소년은 남캘리포니아 대학의 영화 예술 학과로 들어갔다. 이곳에서 그는 -자신과는 달리- 일찍부터 영화광으로 꿈을 키워나가던 한 청년-스티븐 스필버그-을 만나 친구가 되었다.


  졸업 후 워너브라더즈의 스튜디오에서 연수를 하던 청년은 이미 제작자로서 경험을 쌓고 있던 또 다른 청년-프랜시스 드 코폴라-를 만나 의기투합했고, 할리우드의 체제에 묶이지 않은 독립 영화 제작을 꿈꾸며 코폴라와 함께 영화사를 만들었다.


  대학 시절의 졸업작품 <THX-1138>을 리메이크하여 선보인 그는, 그조차 성에 차지 않았던 듯 그 자신의 이름을 건 '루카스 필름'을 설립하고, 젊을 때 레이싱에 대한 추억을 바탕으로 <청춘 예찬(American Graffiti)>이란 작품을 만들어 큰 성공을 거두었다.


  젊은 히트작 감독으로서 성공을 거둔 청년은 좀 더 오랜 기간 검토했던 새로운 가능성의 세계에 도전한다. 이 작품이야 말로 그가 꿈꾸던 진정한 영화라고 생각한 청년은, 동료이자 친구이기도 한 코폴라조차 개입하지 않는 자신만의 작품을 만들고자 오랜 기간 기획했던 <지옥의 묵시록>의 판권을 그에게 넘겨 버리고는 홀로 모든 권한을 쥐고 제작을 진행했다.


  하지만, 영화 제작은 생각만큼 잘 진행된 것은 아니었다. 1971년 THX1138의 제작을 마친 뒤부터 시작한 기획은 충실하게 갖추어져 있었지만 '플래시 고든풍'이라고 이야기되었던 이 우주 활극은 당시 기준으로 볼때 지나치게 높은 제작비를 소비했고,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부담은 커져만 갔다.


  1976년 말. 개봉을 몇 개월 앞두었을 무렵. 당시 수많은 매체는 젊은 감독의 무모한 도전이 처참하게 실패할 것을 예견했다.

  하지만, 그로부터 반년이 지나고 개봉일이 다가왔을때 대중은 상상을 초월하는 광경을 목격해야만 했다. 영화가 개봉하는 모든 극장에 수많은 관객이 줄을 선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서곡에 지나지 않았다. 1977년 5월 25일. 영화 개봉 당일, 영화가 시작되고 불과 몇 분이 흘렀을때, 당시 영화관에 앉아있던 모두는 이 작품이 전설이 되리라는 것을 깨달았다. SF 분야에서 <반지의 제왕>에 필적할만한, 아니, 그 규모와 역사면에서 그 어떤 작품과도 비교하지 못할 대작으로 발전할 작품, <스타워즈>는 이렇게 시작되었다.



[ 영화 스타워즈의 첫 장면... 장엄한 음악 직후에 등장한 이 장면만으로 이 영화는 관객을 사로잡고 전설이 되었다. (스타워즈 에피소드 4) ]


  조지 루카스... 영상의 마술사라 불리며 지금도 스타워즈의 세계를 꾸준히 발전시켜나가는 세계 최고의 영화 제작자. <스타워즈>가 없었다면 제임스 카멜롯도 피터 잭슨도, 롤랜드 에머리히나 리들리 스콧도 없었으리라는(적어도 지금과 같은 정도는 아니었을거라는) 이야기가 나올 만큼 할리우드와 세계 영화계에 절대적인 영향을 준 작품... 1944년의 오늘은 그 작품의 아버지인 조지 루카스가 탄생한 날이라는 점만으로 SF 업계에서 기억할만한 날이다.



  한편 조지 루카스가 만화에 빠져 있던 1952년 5월 14일. 일리노이주의 시카고에서 한 소년이 태어났다. 리투아니아계 아버지와 이탈리아계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로마 카롤릭의 전통 아래 자라난 소년은 철이 들면서 아버지의 8mm 카메라를 가지고 놀곤 했는데, 루카스와 마찬가지로 남캘리포니아 대의 영화 예술학과에 들어갔다.


  학창 시절, 학생 영화 아카데미를 수상한 그는 수상작으로 루카스의 친구인 스티븐 스필버그의 눈에 띄었고, 그의 지원 아래 역사상 가장 유명하고 대중적인 시간 여행 영화 중 하나인 <백 투 더 퓨처>의 감독을 맡았다.


  루카스나 스필버그와는 달리 SF광은 아니었던 청년은 SF 작품에만 몰두하진 않았지만, <누가 로저 래빗을 모함했나?>, <포레스트 검프>, 그리고 <폴라 익스프레스>나 <베오울프> 같은 여러 작품에서 새로운 영상의 가능성을 선보이며 SF나 판타지 영화 제작에 필요한 특수 촬영 분야에서 많은 업적을 남겼다. 스필버그와 루카스가 굳게 믿고 지지했던 감독, 로버트 저메키스(Robert Zemeckis)는 1997년 칼 세이건 원작의 영화 <콘택트>를 촬영하기도 했는데, 이 작품 역시 외계인과의 만남을 그린 영화 중에서 매우 대중적이고 완성도 높은 명작으로 기억된다.



[ 백 투 더 퓨처 삼부작. 이 작품의 성공만으로 로버트 저메키스는 SF 세계에 큰 영향을 준 사람으로 기억될만 하다. ]


  어찌 생각하면 스승과 제자에 가까울지도 모르는 두 사람의 영화 제작자가 태어난 오늘... 그만큼 오늘은 좋은 날이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