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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 이야기

세계 정복과 통합 전쟁, 그 목적과 수단

  흔히 SF 세계에서는 세계를 정복하거나 통일한다는 이야기가 자주 등장합니다. 그것은 특정한 나라에 의해 이루어질 수도 있고(통합 전쟁), 특정한 세력에 의해서 이루어지기도 합니다.(세계 정복) 어찌되었든 이런 경우 궁극적인 목적은 ‘하나의 나라’를 이루는 것이라 하겠군요.

  물론, 세계를 정복하거나 통합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이를 위해서는 “나는 통합이 싫어요.”라고 말하는 이들에 대해 싸움을 벌여서 승리해야 할 뿐만 아니라, 그 이후에 찾아올 반발도 극복해야 합니다. 승리하는 과정 자체도 힘겹고 어렵지만, 이후의 반발을 막아내는 것은 더욱 어려운 일입니다. 적어도 짧은 시간 내에 마칠 수 있는 일은 아니지요.

  게다가 ‘통합된 세계’를 운영한다는 것은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영토만이 아니라 인구마저도 몇 배, 때로는 몇 십 배로 늘어난 상황에서 이들을 효율적으로 운영하고 관리하는 것은 많은 노력이 들어갑니다. 고대로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무수한 제국이 이러한 ‘영토와 인구 관리’에 총력을 기울였다는 사실, 그리고 때로는 그 관리에 실패하여 멸망했다는 사실을 생각해 보면 알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토록 어려운 세계 정복을 이루려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무엇이 사람들을 세계 통합의, 또는 정복의 길로 나서게 하는 것일까요? 여기서는 SF 세계의 여러 정복 이야기를 바탕으로 그 목적에 대해 살펴보고자 합니다.

  세계 정복의 목적은 크게 ‘세계 정복 자체가 목적’인 경우와 ‘무언가의 목적을 위해 세계 정복을 실천’하는 경우로 나눌 수 있는데, 이를 세분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1. 아무 생각 없다.
 
  굉장히 의외일지 모르겠지만, [가면라이더]의 쇼커나 [자이언트 로보]의 BF 단, [바벨 2세]의 요미를 비롯한 SF 세계의 무수한 정복자나 조직은 정말로 아무 생각 없이 “세계 정복”을 표방하고 나섭니다. 그들에게는 이렇다 할 이상이나 목적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단지 “정복만이 내 사명”이라는 식으로 나설 뿐입니다.
  이 경우 조직의 총수나 나라의 국왕에게는 이렇다 할 생각이 없지만, 그 구성원들은 ‘총수에게 뭔가 생각이 있다.’라고 멋대로 착각하고 활동합니다. 아주 극단적으로 일부 작품에서는 아무런 생각이 없다는 것을 깨달은 부하들이 배신하는 일도 있지만, 그런 사례는 사실상 없다고 해도 좋을 만큼 적습니다.

  이들에게 목적이 있건 없건 상관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의 목적은 달성하지 못하고 끝나 버리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그들에겐 뭔가 심오한 이상이 있지만, 결국 세계 정복을 달성하지 못하기 때문에 등장하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어느 쪽이건 아무런 이상도 목적도 없는 세계 정복은 그 이야기를 보는 이들에게 감명을 불러일으키지 못하고 그들은 흔한 악의 조직 정도로 정의의 용사에게 일방적으로 당하는 존재로만 기억될 뿐입니다.

[ 자이언트 로보의 BF단. "세계를 이 손에"라고 말은 하지만, 도대체 뭘 위해서 손에 넣겠다는건지 전혀 생각이 없다. (c) 角川書店, 横山光輝, 今川泰宏, 水田麻里 ]



2. 세계 군림 야욕

  실제로는 아무런 목적이 없는 것처럼 보이는 조직 대부분은 아마도 이 목적을 가지고 있을 것입니다. 바로 모든 존재를 자신의 발아래에 꿀리고 싶다는 생각입니다.

  역사상 많은 제국, 특히 “땅이 있는 한 정복한다.”라는 태도를 보인 몽골 같은 제국이 바로 이러한 군림의 목적으로 진행한 사례입니다.
  그들이 세계 정복에 나서는 것은 단지 그곳에 땅과 사람이 있기 때문입니다. 한 뼘의 땅이라도 한 명의 사람이라도 발밑에서 벗어나는 것을 용납하지 못합니다. 그리하여 끝없는 정복 전쟁을 반복하며 세력을 넓혀나갑니다.
  물론 정복을 하게 되면 그에 따라 여러 가지 문제가 생기기 때문에 자연스레 통치 체제니 뭐니 신경 쓰게 마련이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정복하다보니 나오는 결과일 뿐 그들이 본래부터 그런 것을 생각하고 정복에 나선 것은 아니었습니다.
  때때로 이러한 세계 군림 야욕은 단지 우두머리 한 사람의 목적에 지나지 않는 경우도 있습니다. 하지만, SF나 판타지 세계의 악의 조직은 대부분 우두머리의 명령에 절대 복종이므로 부하들은 그의 말에 따릅니다.

[ 매우 파격적인 정복자, 귀축왕 란스. 정작 세계를 정복해 놓고는 지루해졌다면서 떠나버리는, 그야말로 특이한 사례이다. (c) ALICESOFT ]


3. 힘의 과시
  때때로 우두머리나 조직이 힘을 과시하고자 세계를 정복하는 사례가 있습니다. [마징가 Z]의 헬 박사 같은 인물이 대표적으로 자신의 과학력이 뛰어나다는 것을 입증하고자 세계를 상대로 싸움을 거는 것입니다.
  대개는 놀라운 기술력을 자랑하며 이를 바탕으로 강력한 군사력을 수립하고 침공하지만, 더 강력한 기술력을 가진 정의의 사도에 의해 박살나게 마련이지요. 이 과정에서 그들의 목적은 당초와는 달리 ‘정의의 사도를 타도한다’라는 식으로 변질되어 버리고 그에 지나치게 집착한 결과 세계 정복에 실패하는 것이 수순입니다만... “기술력”이라는 수단 자체를 목적으로 삼았던 이들이니 그 목적이 계속 유지 되지 않는 것도 자연스러운 섭리일 것입니다.

[ 어찌어찌하다보니 목적이 마징가 타도로 바뀌어 버린 헬 박사. 단순히 과시를 위한 정복 사업으로서는 당연한게 아닐까? (c) 永井豪, 東映動画, 旭通信社 ]



4. 방어 목적의 침공
  굉장히 이상한 경우인데 처음에는 생존을 위해 싸움을 벌이다 보니 세계 정복이라는 상황에 나서게 되는 것입니다.
  혁명 당시의 프랑스 정부는 다른 나라를 침공해서 영토를 넓히려는 의도는 없었습니다. 하지만, 주변국을 막아내며 싸우다보니 주변국을 굴복시키며 영토를 넓혀나가게 되지요. 물론 나폴레옹의 등장과 함께 상황은 굉장히 달라집니다만...
  결국 한번 군을 일으켜 상황을 해결하고 나니, 군 이외에는 방법이 없어져 버린 경우라고 해도 좋습니다. 적대적인 존재를 모두 굴복시켜야만 한다는 선택이 놓이고 상대방을 점령하지는 않더라도 최소한 상대가 다시 일어나서 침공할 수는 없는 상황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현실 세계에서는 지구가 워낙 넓고 나라가 많기 때문에 적당한 시점에서 중단할 수 있을 것입니다. (가령, 유럽 지역을 무대로 생각한다면 유럽의 나라들을 굴복시키는 것으로 충분하지 아프리카까지 모두 정복할 필요는 없습니다.)
  하지만, SF 세계나 판타지 세계에서는 나라의 수가 많지 않고 모두 적대적인 상황에 놓이는 사례가 있습니다. 가령 [은하영웅전설]에서는 우주 전체가 자유행성동맹과 은하제국, 그리고 페잔이라는 단 3개의 세력으로 나뉘어 있습니다.

[ 배틀테크 세계의 지도. 나라는 매우 많지만, 몇 안 되는 나라가 대부분의 영토를 장악하고 있다. 이들 나라만 점령하거나 굴복시키면 사실상 세계 통합? ]



  이런 상황에서는 방위를 위해 침공한 결과 세계 정복을 달성하는 상황이 얼마든지 찾아올 수 있습니다. 또는 [배틀테크]처럼 여러 나라가 있어도 그 중 몇 개 나라가 대다수 지역을 장악한 상황에서는 이들 나라만 정복하면 사실상 세계 정복을 달성하는 결과가 되기도 합니다. 물론, 어느 정도 굴복시키고 항복을 받아들이는 정도에 끝난다면 세계 정복으로 발전하지 않을 테니 완전히 자위목적만이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5. 종교, 사상의 통일
  “한 손에 칼을, 한 손엔 코란을”. 이슬람 제국은 이렇게 하며 정복 전쟁에 나섰다고 하는데, 역사상 많은 세력들처럼 SF 세계에서도 생각 외로 많은 조직이 그들의 사상과 종교를 내세우고자 세계 정복에 나섰습니다. 일찍이 냉전 시대 자본주의와 공산주의의 대립이 진행되었던 것도 그러한 사례입니다. 딱히 세계 정복에 나선 것은 아니었지만, 까딱 잘못했으면 이러한 전쟁이 벌어졌을지도 모릅니다.
  그들은 자신들과 다른 종교나 사상을 가진 존재를 용납하지 못합니다. 그리고 정복한 지역에는 자신들의 종교와 사상을 전파하고자 합니다.
  흔히 [워해머40000]의 스페이스 마린처럼 종교적인 신념에 가득한 이들이 이러한 정복 전쟁에 나서는데, [은하영웅전설]의 ‘자유 행성 동맹’같은 나라도 독재정인 은하제국에 반대하여 탄생한 만큼 처음부터 은하제국을 공격하여 물리치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습니다. 일본의 슈퍼 전대 시리즈 중에서도 종교를 내세운 조직이 존재하는 것을 보면, 종교와 사상의 통일을 내세우는 조직의 활약은 의외로 드물지 않은 모양입니다.

[ 스페이스 마린. 그들의 모습에서 십자군을 떠올리는 건 이상한 일이 아닐 것이다. ( 워해머 40000 / (c) games workshop ]



6. 세계를 평화롭게
  언제부터인가 이러한 세계 정복 조직이나 나라가 눈길을 끌기 시작했습니다. 이들의 총수나 국왕은 “세계에는 국경이 필요 없다. 국경이 있기에 분열과 분쟁이 생긴다.”라고 하는 굉장히 독특한 사고방식을 갖고 있습니다. 그래서 세계를 하나로 만들어서 평화로운 세계를 만들고 싶어 합니다.
  [비밀 결사 매의 발톱단]에 등장하는 매의 발톱단의 총통 같은 인물이 대표적인 존재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는 우연히 우주를 보게 되었고, 작은 지구에서 국경을 나누어 분쟁을 벌이고 사람들이 괴로워하는 것은 잘못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하여 직장을 때려치우고 비밀 결사 ‘용의 발톱단’을 만들어 세계 정복에 나섭니다.
  물론, 그가 만든 비밀 결사는 정의의 용사라는 인물에게 사정없이 박살났고 그의 조직은 엄청난 감량을 거쳐 전투원 2명(그나마 한 명은 나중에 유령화)에 불과한 작은 조직으로 전락하고 맙니다만...
  판타지 작품인 [로도스 섬 전기]의 마모국 왕 베르도 역시 이러한 목적으로 정복 전쟁에 나섰습니다. 그에게는 과거 연인이 있었는데, 그녀가 숨을 거둘 때 “세계를 평화롭게 만들어 달라.”라는 유언을 남깁니다. 그는 그 유언에 사로잡혔고, 이를 위해 마모라는 나라를 세우고 로도스 섬 전역을 하나로 통일하려는 침략 전쟁에 나섭니다. 그의 계획은 대국 파리스의 왕을 쓰러뜨림으로서 실현되는가 했지만, 하나의 세력이 통일을 하면 더 큰 불행이 찾아온다는 생각을 가진 마녀 카라에 의해 베르도가 사망하면서 깨어지고 맙니다. 그가 죽으면서 마모 왕국은 혼란에 빠지지만, 사실 그의 정복 왕복은 그가 생존해있을 당시에도 그다지 좋은 상태는 아니었습니다. 점령지 곳곳에서 분쟁이 끊이지 않았지요.

[ 암흑황제 베르도. "로도스에 평화를"이라는 유언에 사로잡혀 활동한 그 역시 불행한 인물일지도 모른다. (c) 角川書店・丸紅・東京放送・角川メディアオフィス ]


  이러한 작품을 살펴보면, 세계를 하나로 만들어 평화롭게 만들고자 세계 정복에 나선다는 상황에는 여러 가지 문제가 발생합니다. 우선, [로도스 섬 전기] 등 여러 작품에서 보듯, 이 과정에서 엄청난 충돌이 생겨납니다. 피정복자들의 정복자에 대한 반감이 생겨나며 이것이 분쟁을 야기합니다.
  결국 세계 평화를 위해서 일어난 것이 더 많은 혼란과 파괴를 가져오는 결과를 낳기도 합니다.


7. 이상 실현
  단순히 평화롭게 만들겠다는 것에서 한 발짝 나아간 것으로 보다 큰 이상을 추구합니다. 앞서 소개한 ‘매의 발톱단’의 총통은 단순히 세계를 평화롭게 만드는 것에 그치지 않고, 세계의 모든 사람들이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는 세계를 만들려 합니다.

[ 평화롭고 행복한 세계를! 꿈은 높지만, 실현될 가능성은 지극히 낮다. ( 비밀결사 매의 발톱단 / (c) 蛙男商会 ) ]



  이처럼 이상 실현을 목적으로 하는 상황에서 ‘지구에 부드럽고 환경을 해치지 않는 세계 정복 작전’을 펼칠려고 하니 당연히 실패할 수 밖에 없습니다.
  게다가 이상 실현이라는 목적을 이루려면 단순히 세계를 정복하는 것 이상으로 엄청난 노력이 필요합니다. 치안을 정비하고 복지 제도를 갖추고, 재해에 대비하며 지역간의 갈등을 해소하는 등. 그야말로 초인적인 노력이 필요하게 마련이지요.
  그래서 ‘이상 실현’이라는 목적은 결국 꿈으로 끝나는게 보통입니다. 이러한 이상 국가가 세워진다면 그 시점에서 이야기는 재미없어질 수도 있으니까요.

  한편, 이상 실현이라고 해서 "모든 이가 행복하게"라는 조건만 존재하는건 아닙니다. 가령, [기동전사 건담]의 기렌 자비처럼 '우성 인류만을 남긴다.'라는 무시무시한 계획을 내세우는 상황도 존재할 수 있으니까요. (기렌 자비는 사상과 종교의 통일과도 관련되었다고 하겠습니다.)

[ 그의 아버지가 말했듯, 히틀러 짝퉁이라고 느껴졌던 기렌 자비. 그처럼 극단적 이상을 내세울 수도 있다. (c) sunrise ]



8. 또 다른 적에 대항하고자
  SF나 판타지 세계에서나, 특히 SF 세계에서 종종 등장하는 목적입니다. 때때로 세상이라는 것이 더 넓고 다양해서 그들 이외의 누군가가 이 세계를 노리는 상황이 찾아올 수도 있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작품이 [초시공요새 마크로스]입니다. 이 세계에서는 외계인의 우주전함이 지구에 도착하면서 시작됩니다. 지구인들은 이를 통해 외계에 뛰어난 기술력을 가진 세력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깨달았고, “하나로 뭉쳐야 한다.”라는 생각을 갖게 됩니다. 하지만, 모든 이가 이런 생각에 동의하는 것이 아니지요. 그리하여 10여년에 걸친 통합 전쟁이 벌어지게 됩니다. 물론 이 통합 전쟁은 인류의 전쟁 기술을 더욱 발전시키는 결과를 낳기도 했습니다만...

[ 초시공요새 마크로스. 이성인과의 싸움, 문화 충격 등을 통해서 재미있게 엮어냈다. (c) スタジオぬえ, アートランド ]


  또는 [대제국]처럼 정복 과정에서 ‘인류의 적’이라는 존재와 마주하게 되고 그로 인해 정복 전쟁의 속도가 빨라질 수도 있습니다.
  인류끼리의 전쟁, 인류 간의 싸움은 어느 한 쪽을 절멸시키는 상황까지 발전하지는 않게 마련입니다. 고대 세계에서는 카이사르의 갈리아 원정처럼 잔혹하기 이를데없는 정복 전쟁도 있었지만, 그럼에도 2천만에 달한다는 갈리아인을 말살하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인류와 공존할 수 없는 존재가 등장한다면, 인류가 손을 잡고 맞설 수 밖에 없는 상황이 찾아옵니다. [초시공요새 마크로스]에서의 통합 전쟁은 바로 그러한 사례입니다.

  이러한 통합은 반드시 인류끼리만 이루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스타트렉 : 딥 스페이스 나인]처럼 인류와 다른 종족이 손을 잡는 상황도 생각할 수 있습니다. (이건 정복은 아닙니다만...) 도미니온이라는 강대한 세계에 맞서서 본래는 적이었던 행성 연방과 클링곤, 그리고 로뮬란이 하나가 되어 맞서게 되지요. 물론, 또 다른 강대한 적수인 보그에 맞서서 여러 세력이 하나로 손을 잡은 것도 그렇습니다.
  물론 [초시공요새 마크로스] 시리즈에서도 본래 적이었던 젠트러디가 인류와 손을 잡고 대항하는 장면이 연출되기도 합니다만.

  이러한 사례에서는 대개 ‘동맹’ 정도로 진행되지만, 상황에 따라서는 동맹 이상으로 강력한 통합을 요구하기도 합니다. 그런 경우 ‘통합 전쟁’이 벌어지게 되는 것이지요. 적에 맞서기 위해 싸워서 통합한다는 게 이상하지만, 사람들 간의 이견이 벌어질 때 가장 쉽게 선택할 수 있는 것이 전쟁이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이처럼 세계 정복(세계 통합)에 나서는 데는 대단히 다양한 이유가 있는데, 이러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이 반드시 ‘전쟁’이나 ‘침략’만 존재하는 것은 아닙니다.

  시간을 여행할 수 있는 기술이나 세뇌 마법처럼 SF나 판타지 세계만의 특수한 무언가가 있다면 이것을 실현할 수 있게 됩니다. 물론 이러한 특수 기술을 쓰기 위해서 세계의 절반을 손에 넣어야 한다던가...하는 조건이 붙는 경우가 많습니다만...


  앞서 살펴보았듯, 세계 정복이나 통합이라고 해서 무조건 개인의 영달이나 정복욕만을 위한 것은 아닙니다. 평화를 위해서나 이상 실현을 위한 것일지도 모릅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세계 정복이나 통합은 바른 것일까요?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확실히 세계를 하나로 만들어서 평화로운 세상을 만든다거나, 이상 국가를 수립한다는 것은 목적 자체는 훌륭하고 멋집니다. 하지만, 이를 위해서 수많은 이의 피와 눈물이 흘러야 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게다가 이렇게 만들어진 평화와 이상이라는 것이 모든 이에게 좋은 것이라고는 장담하지 못합니다.

  게다가 하나의 나라에서도 지역 간의 분쟁이나 다툼, 차별과 학대가 존재합니다. 하나의 나라가 된다고 해서 모든 문제가 해결되리라 생각하는 것은 지나치게 이상적인 바람입니다.

  그렇다고 통합 정부가 생기지 말라는 법도 없습니다.

  역사를 살펴보면 -지금보다 거대한 제국이 생긴 일도 있었지만- 전반적으로 세계는 서로 협력하거나 통합하는 형태로 나아가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를테면 조선이나 고려라는 나라가 생기기 전에 한반도에는 4개의 국가가 있었고, 그 전에는 더 많은 부족국가로 나뉘어 있었습니다. 그보다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면 나라라고 하는 것은 사실상 한 마을 정도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그들이 전쟁이나 교섭 등을 통해서 더 큰 나라가 되고, 다시 전쟁이나 교섭으로 더 큰 나라가 되는 과정을 반복하여 고려나 조선이라는 나라가 생겨나 현재에 이르고 있습니다. 비록 현재의 한반도는 남북으로 갈라져 있지만, 이 역시 언젠가는 하나의 나라가 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현재의 유럽은 아직 하나의 나라가 아니지만, 서로 협력하는 공동 체제를 추구하고 있습니다. 완벽하게 ‘유럽 정부’가 탄생한 것도 아니고, 많은 진통이 있지만, 언젠가는 하나의 통치 체제로 완성될 가능성도 있습니다.

  설사 하나의 정부가 아니라도 서로 간에 동맹이나 조약 등을 통해 충돌하지 않고 협력하는 체제를 갖춘다면 그만큼 가까워질 수 있습니다. 이러한 과정이 반복되면 언젠가 싸움을 하지 않고도 세계 정부가 탄생하여 영향력을 발휘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세계 정부가 탄생한다고 해도 우리가 겪는 여러 가지 문제가 모두 해결되지는 않겠지만, 적어도 지금보다 나은 날이 찾아올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습니다. 수많은 나라가 존재하더라도 하나의 세계 정부 아래 서로 협력해서 문제를 극복할 수 있다면, 그것이야 말로 진정한 “세계 통합”이자 "세계 정복"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