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이야기 2015.03.01 22:40

  세계의 수많은 신화를 살펴보면, 인간은 신에 의해서 탄생되었고 이 세계에 존재하게 되었다. 절대적인 존재로서 신들은 인간을 만들어냈을 뿐만 아니라 그들의 삶을 마음대로 하게 되었다. 신에 대항하는 것은 용납되지 않았고, 세계의 수많은 전설 속에 그들의 슬픈 이야기들만이 창조주에 도전했던 이들의 슬픈 말로를 전해주고 있을 뿐...

  그렇지만 여기 한 가지 이야기가 있다. 신이 아닌 인간에 의해 탄생한 존재로서 그들의 창조주에 도전했던 용기 있는 이들의 이야기……. 그리고 이야기의 창조주로서 그들에게 의지를 불어넣은 사람의 이야기…….


SF 세계의 제페트 할아버지, 이시노모리 쇼타로(石ノ森章太郎)



이시노모리 쇼타로 일대기


  ‘가속 장치가 달린 만화가’, ‘사이보그의 창조주’, ‘초인전대물의 창시자’... 이시노모리 쇼타로는 참 다양한 이름으로 불린 일본을 대표하는 만화가 중 하나이다.

 1938년 1월 25일 미야기 현의 이시모리(그의 예명은 여기에서 나온 것으로 본명은 오노데라 쇼타로(小野寺章太郎)이다.)에서 태어난 그는 어릴 때부터 만화에 몰입하여 그야말로 적극적으로 뛰어들었던 지금으로 말하자면 오타쿠 소년이었다.

  아니, 단순히 자기 혼자 그리고 마는 것에 그치지 않고, 중학교 1학년 때 동네 친구들을 모아 [먹물 한 방울-墨汁一滴-]이라는 이름의 동인지를 만들기도 했고, 자신의 만화를 남들에게 보여주고 싶다는 마음을 억누르지 못하고 신문 등에 수없이 투고를 한 끝에 중학교 2학년 때는 “마이니치 중학생신문”에서 4컷 만화로 입선하기도 했을 정도.

  일찍부터 만화가로서의 가능성에 적극적으로 도전하던 그는 고교에 입학한 후에는 “만화 소년”에 투고한 동료들과 더불어 “동일본 만화 연구회”라는 모임을 만들고 역시 동인지 제작에 뛰어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러한 소문이 퍼진 덕분인지, 다음 해(1953년) 이미 [철완 아톰] 등을 통해 만화계에서 명성을 떨치고 있던 테즈카 오사무씨로부터 ‘일을 도와주었으면 좋겠다.’는 전보를 받고 그 즉시 학교를 휴학하고 도쿄로 진출, 문하생으로서 활동을 시작했다.(학교를 쉬고 만화가를 돕기 위해 뛰어간 오노데라 소년도 오노데라 소년이지만, 고등학생에게 도와달라고 연락을 한 테츠카씨도 역시 묘하다고 할지? 결국 둘 다 만화를 그리고 싶어 여념이 없는, 말 그대로 만화광(狂)이라고 할 것이다.)

  이듬해, 그는 “만화 소년 신년호”를 통해 [이급천사(二級天使)]라는 작품으로 연재를 개시. 고교 졸업도 하지 않은 상태로 프로로서의 데뷔에 성공했다.


[ 테즈카 오사무 캐릭터에 가까우면서도 독창성을 보여준 이급천사 (c) 石ノ森章太郎 ]

  56년에 고교를 졸업한 그는 그 즉시 다시 상경했고, 만화가로서의 생활을 시작했다. 특히, 두 번째로 옮겨간 숙소가 바로 테즈카 오사무를 중심으로 수많은 만화가들의 전국 시대가 펼쳐진 토키와장(トキワ荘). 그곳에서 그는 [불새 마타로]를 포함하여 수많은 작품을 탄생시켰지만, 같이 상경하여 생활을 돕던 누나를 잃는 비극을 겪기도 했다.

  테즈카 오사무 밑에서 활동하는 것은 그에게 큰 도움을 주었다. 1959년 그는 테즈카 오사무의 제안으로 토에이의 만화 영화 [서유기]의 제작에 참가했고, 이제껏 만화 밖에는 모르던 그가 영상이라는 새로운 가능성에 눈을 뜨게 된 것이다.

  1961년. 이시노모리 쇼타로는 해외여행이라는 새로운 체험을 갖게 되었다. 바로 슈에사의 취재 기자와 동반하여 시애틀의 “SF 컨벤션(세계SF대회)”에 참여한 것이다. 전세계 SF작가와 팬이 집결하는 이 행사가 그에게 어떤 역할로 다가왔는지는 알 수 없지만, 이날 이후 이시노모리씨의 작품 세계는 SF를 중심으로 돌아가기 시작한다.


  1963년 “스튜디오 제로”라는 애니메이션 회사를 공동 설립한 이시노모리 쇼타로는 다음해 테즈카씨의 중매로 결혼을 마치고, 바로 그 해(1964년), 자신의 대표작이자 일본 SF 만화를 상징하는 걸작, [사이보그 009(サイボーグ009)]를 탄생시켰다.


  일본 최초의 개조 초인 이야기라 할 수 있는 이 작품은, 무기상인 블랙 고스트라는 집단에 의해 탄생한 초인(병기)들을 주역으로 전쟁의 슬픔과 아픔을 충실하게 그리고 있으며, ‘세계를 좌우하는 무기상인’이라는 새로운 형식의 악당을 선보임으로서 깊은 인상을 주었다. 인간의 마음을 지니고 있지만, 전쟁 병기로서의 기계 몸을 지닌 사이보그들……. 그러한 기계 몸과 마음의 부조화로 인한 슬픔은 필립 k. 딕의 작품에 못지않게 일본의 사이버 펑크물에 영향을 주었다. (그만큼 수많은 팬들을 이끌기도 했지만 한편으로 난해하고 어두운 작품이었기에 몇 차례의 연재 중단을 겪어야 했는데, 결국 블랙 고스트와의 대결을 거쳐 괴물섬, 지하 제국, 그리고 마지막에서는 진정한 창조주인 신과의 대결에 돌입하는 부분까지 연재된 이래 미완으로 끝나 아쉬움을 남기기도 했다.)


[ 뮤턴트 사브. 이 작품을 시작으로 그의 세계는 초인들의 비극을 충실하게 다루게 된다. (c) 石ノ森章太郎 ]


  [사이보그 009]의 대 성공에 이어 이듬해(1965년) 소년 선데이에서 역시 어머니의 사고로 인해 초능력을 갖고 태어난 소년 사부의 활약을 그린 [뮤턴트 사부(ミュータントサブ)]라는 작품으로 그의 화려한 시대의 막이 올랐다. (이 작품은 단편으로 비정기 연재되면서도 꾸준히 계속된 [사이보그009]와 마찬가지로 이후에도 시리즈로 제작되었다.)


[ 환마대전. 당시로서는 드문, 공저 체제의 작품이었다. (c) 石ノ森章太郎 ]


  1967년. 소설사 히라이 카즈마사(平井和正)씨와 과거, 현재, 미래에 걸쳐서 전개 되는 요마와 인류의 대결을 그린 작품, 환마대전 외에도 여러 작품을 선보인 그는 1971년. 가면 라이더(仮面ライダー)를 통해 고지라, 울트라맨에 이은, 일본을 대표하는 변신 초인의 특촬물 시대를 여는데 이바지했다.



[ 40주년을 넘어... 지금도 라이더의 이야기는 계속된다. (c) 石ノ森章太郎 / 東映 ]


  [인조인간 키가이더](1972), [비밀 전대 고레인저(秘密戦隊ゴレンジャー)](1975) 등의 원작으로 다채로운 특촬물의 가능성을 선보인 그는 그 후에도 수많은 초인물로서 팬을 이끌었다.


[ 호텔. 이 작품으로 그는 일본 호텔 스쿨 교육 센터 평의원으로 취임했다. (c) 石ノ森章太郎 ]


  1980년 이후에는 상당한 명작으로 만화가 협회 만이 아니라 경제 협회에서도 인정받은 [호텔], [만화 일본 경제 입문] 등의 경제 만화를 선보였고, 1986년에 “이시노모리”로 개명한 후에는 일본 만화계의 발전을 위한 다양한 이벤트를 주최하고 협회를 발족하는 등 후진 양성 및 만화 산업의 성장에 많은 노력을 기울이기도 했다.(1997년 우리나라에서 열린 아시아 만화 대회에서 아카데미 대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그렇듯 마지막까지 만화의 가능성에 매진했던 그는 1998년 1월 28일. 도쿄 오차노미즈의 병원에서 영원한 잠에 빠져들었다. 그의 많은 활약을 기리는 뜻에서 그의 모든 작품에 대해 문부대신상을 비롯한 수많은 상이 수여되었고, 만화계에 대한 공헌을 기념하여 테즈카오사무 문화상 특별상을 수여했다.


  그렇게 그는 자신이 꿈꾸던 미래를 향해 여행을 떠났지만, 그를 사랑하는 수많은 팬들은 관심을 지금도 사라지지 않고 있다.

  지금도 많은 이에게 기억되고 있는 이시노모리 쇼타로. 그를 기념하는 뜻에서 고향 나카다쵸에는 “이시노모리 쇼타로 고향 기념관”이 세워졌고, 미야기현에서 “이시노모리 만화관”을 개설하여 많은 관심을 끌고 있다.

  지금도 “이시노모리팬”을 자처하는 여러 작가들에 의해 그의 작품이 리메이크되고 있는 가운데, 애니메이션 외에도 가면라이더 시리즈를 비롯한 특촬물 시리즈가 꾸준히 제작되어 그의 기억을 되살려주고 있다.


이시노모리 프로 공식사이트 : http://www.ishimoripro.com

이시노모리 만화관 사이트 : http://www.man-bow.com/manga


[ 그의 고향 이시노모리에서는 거리 곳곳에서 수많은 캐릭터를 만날 수 있다. ]


* 토키와장 - 1953년 테즈카 오사무의 입주를 시작으로 생겨난 일종의 인재 양성소. 이시노모리 쇼타로 외에도 [오바케Q타로]의 아카즈카 후지오, [도라에몽]의 후지코 후지오 등이 함께 입주하여 활동한 곳으로 유명하다.(입주하지 않은 이들도 때때로 그곳에 들러 그룹으로 활동했다.) 이곳에는 수많은 라이벌이 존재하고 있었으며 즐거운 이야기 속에서도 원고에 대한 정열을 서로 공유할 수 있었다고 한다. 게다가 때로는 서로 아이디어를 공유하기도 하고 나아가 함께 작품을 만들기도 하는 등 협력 체제 속에 수많은 명작을 남기고 있다. 토키와장 자체는 오래 전에 철거되어 사라진 작은 아파트에 지나지 않지만, 최근에도 “디지털 토키와장” 등의 프로젝트명으로 등장할 정도로 일본 만화계에선 중요한 위치를 점하고 있다.


SF 속에서 살아갔던 만화가


[ 009. 그는 아홉 명의 사이보그 중 최강을 자랑한다. (c) 石ノ森章太郎 ]


  이시노모리 쇼타로의 작품 [사이보그 009]의 주역인 사이보그 009(제로제로나인)은 다른 00 사이보그들의 장점을 함께 융합하고 있다는 설정을 갖고 있지만, 사실 유별나게 뛰어난 능력을 보유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는 001처럼 초능력을 갖고 있는 것도 아니고, 002처럼 하늘을 맘대로 날거나 003처럼 귀와 눈이 특출하게 좋은 것도 아니다. 물론 온 몸이 무기로 되어 있지도 않고(004), 힘도 유별나게 센 것은 아니며(005), 불을 뿜거나(006), 변신을 할 수도 없다.(007) 물론, 물속에서 숨이 막힐 일은 없지만, 물고기처럼 활약하는 것(008)도 불가능.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00 사이보그 중 최고로 군림할 수 있는 것은 그에게 남들과는 다른 한 가지 능력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가속 장치’라 불리는 그 능력은 009 자신을 남들보다 수 십 배 빠른 속도로 움직이게 해 준다. 남들 눈에는 그야말로 사라진 것처럼 보이게 되는 그 힘은 반대로 009의 눈에 남들이 정지된 것처럼 보이게 만들고, 이 상태에서는 그 누구도 009를 대항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상대 역시 가속 장치를 달고 있는 경우가 아니라면.)

  00 사이보그로 테스트를 마친 블랙 고스트는 그 후 가속 장치를 단 적수들을 꾸준히 그들에게 보내오는데, 009 만이 그들을 상대할 수 있다는 것은 말할 필요가 없는 것. 주역인 그의 활약으로 유명해진 가속장치는 이후 수많은 작품에 영향을 주어 오마주와 패러디가 양산되기에 이른다... 갑작스레 이 이야기를 꺼낸 것은, 도키와장에서 일할 당시(아니 그 이후에도) 이시노모리 쇼타로씨에게 붙어 다니는 별명이 바로 그것이었기 때문이다.


  “가속 장치가 달린 만화가”


  그 별명 그대로 그는 남들은 상상할 수 없는 속도로 수많은 작품을 양산하고 엄청난 업적을 이루어 놓았다.

  1960~70년대라는 짧은 시간 동안 그가 이룬 일은 그야말로 한 두 가지 아니다. 이를테면 [가면 라이더]의 원작을 쓰고 있을 당시, 그는 다른 잡지에서 [이나즈맨]이라는 작품을 연재하고 있었고, 동시에 [인조인간 키카이다]를 연재하고 있기도 했던 것이다.(그로서는 [이나즈맨]에 신경쓰느라 [키카이더]는 문하생들에게 상당 부분 맡기곤 했다.)

  이렇듯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활동이 가능하게 된 것은 어째서일까? 물론 그가 미래에서 온 존재이고 진정으로 ‘가속 장치’를 갖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보다는 그가 진정한 만화광이고 그만큼 창작 욕구로 가득 차 있기 때문이 아닐까? 그리고 이시노모리 팬을 자처하는 수많은 이들은 바로 그의 그런 창작 욕구에 이끌린 것이 아닐까 한다.




창조주에 도전하는 존재들, 초인들의 세계

[ 이시노모리의 여러 캐릭터. 초인없이 그의 작품을 논할 수 없다.  (c) 石ノ森章太郎 ]


  [철인 28호], [바벨2세] 등으로 잘 알려진 만화가 요코야마 미츠데루와 마찬가지로 이시노모리 쇼타로도 초인을 주역으로 하는 작품들이 많지만, 그의 작품은 능력을 갖고 태어나거나 혹은 닌자처럼 수련에 의해서 초인으로 성장/변화하는 요코야마의 작품과는 달리, 다른 이들에 의해 강제적으로 힘이 주어지는 사례가 많다.

  말하자면 그의 작품에 등장하는 초인들은 누군가에 의해 창조되었다는 것. 그것이 사이보그인지 초능력자인지, 아니면 개조 인간인지는 상관없이 그들은 특정한 목적을 지닌 누군가에 의해 만들어져 새로운 생을 얻게 된다.

  하지만, 인간이 신에게 생을 받았음에도 신의 뜻을 부정하고 거절하는 경우가 있듯, 이시노모리의 작품에서 등장하는 ‘창조된 초인’들은 그들을 만들어준 누군가를 부정하고 저항한다. 그들 자신이 인간으로서의 마음을 갖고 있기 때문에…….

  그의 작품 속에서 선한 주역과 악당은 결코 동등한 존재가 아니다. 한쪽은 창조주이고 다른 쪽은 창조된 존재. 말하자면, 그들은 자신을 만들어준 창조주를 향해 도전장을 던진 것이다. 당연히 창조주는 주역에 비해 압도적으로 강할 수밖에 없지만, 그들은 저항을 포기하지 않는다. 

[ 이시노모리 작품에선 가면 라이더 시리즈를 빼놓을 수는 없는 법. (c) Masato Hayase ]


[ 이시노모리씨가 없었다면, 이런 히로쇼도 존재하지 않았을지 모른다. ]


  [사이보그 009]를 시작으로 [가면라이더]를 통해서 꾸준히 제작된 이들 초인 시리즈는 인간의 마음을 갖고 있기에 자신을 만든 창조주의 명령에 따르지 않는 주역들. 그리고 인간이면서도 인간이 아니게 된 그들의 괴로움을 충실하게 표출하고 있다.


  악과 대결하기 위해서 그 힘을 필요로 하지만, 그 힘은 동시에 자신이 인간이 아니라는 것을 의미하기에 그들의 괴로움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 초기의 009. 지금과는 다른 외형을 갖고 있다. ]


  뿐만 아니라, 인간을 인간이 아니게 만든 그들 조직. 그들에 의해서 펼쳐지는 미래에는 희망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이시노모리씨는 소개하고 있다. [사이보그009]에서 펼쳐지는 블랙 고스트와의 최종 대결에서 그들은 인간이 존재하는 한 자신들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을 이야기해 준다. 블랙 고스트의 존재에 상관없이 세계에서 전쟁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블랙고스트의 리더라고 생각되었던 ‘스카르’조차 단지 누군가의 뜻을 대변하는 인형에 지나지 않을 뿐. 그리고 슬픈 운명은 그렇게 계속된다. 선을 추구하는 누군가의 희생을 밟고 일어서면서……. 하지만, 그런 희생은 또 다른 희망을 불러온다.

  블랙 고스트의 마신상을 파괴한 009. 그러나 그를 구하고자 했던 002의 힘도 완전히 빠져 버리고 두 사람은 지상을 향해 떨어져 내려간다. 마치 유성처럼 빛을 발하면서…….

  먼 곳에서 또 다른 누군가가 그들을 바라보며 소원을 빈다.


  “세계가 늘 평화롭기를…….”


  인간이 존재하는 한 악은 항상 존재할 것이다. 그러나 동시에 인간의 마음은 희생을 통해 새로운 희망을 불러오는 것이다. 그것이 아무리 작고 초라한 것이라 해도…….



피노키오의 꿈, 키가이더의 전설


[ 나무 인형 피노키오. 그는 생명을 갖고 움직이게 되었다. ]


  수많은 작품이 그렇듯, 이시노모리 쇼타로의 작품도 권선징악적인 면을 갖고 있다. 정의의 용사 가면라이더는 악의 조직을 물리치고, 사이보그009도 블랙고스트와 대결한다. 하지만, 그의 작품은 세상이 단순히 선과 악의 대결로만 이루어진 것이 아님을 잘 보여준다.

  수없이 리메이크되고 인기를 끌었던 이시노모리씨의 작품 중에 당초 일본에서는 그다지 눈에 띄지 않았던 작품(아니 정확히 말하면 이시노모리씨 자신이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아, 중요한 장면을 빼고는 모두 어시들에게 맡겨서 작업하게 했던 작품)이 있다.


  [인조인간 키카이더(人造人間キカイダー)]라는 제목의 이 작품은 1972년 특촬물로 제작되었는데 인조인간이라는 말을 쓰고 있지만, 사실 그는 사이보그가 아닌 로봇. 키카이더(일본어로 '기계다')라는 말 그대로 기계로 만들어진 존재이다.(그 밖에도 적의 로봇에는 ‘하카이마(파괴마)’, ‘비진다(미인이다)’ 등이 등장한다.)


[ 기형적인 외형의 키가이더. 그의 작품은 이런 느낌의 캐릭터가 넘쳐난다. (c) 石ノ森章太郎 ]


  가면 라이더나 사이보그009가 그렇듯 세상을 정복하려는 악의 조직에 의해서 탄생되었지만, 그는 인간이 아닌 로봇이기에 마음이 없이 명령에 충실하게 따른다. 다시 말해 악당이 내린 나쁜 명령에도 순수하게 따르며 파괴활동을 하도록 제작되었다. 그러나 개발 당시 키가이더는 피노키오에서 따온 '제미니'란 이름의 양심 회로라는 장치를 내장하게 되었고 나쁜 명령을 듣지 않게 되었다.

  말하자면 아이작 아시모프의 로봇 3원칙처럼 인간을 해치거나 하는 명령에는 따르지 않는 제한을 걸어둔 것이다. 하지만, 그가 가진 양심 회로는 완전한 것이 아니었다. 사고로 죽은 자신의 아들을 대신하여 지로(키가이더02)라는 이름의 그 로봇을 개발한 코묘지 박사는 결국 양심 회로를 완벽하게 만들지 못하고 살해되었기 때문이다. 그 스스로가 악당에게 속았다는 것을 깨닫고 그에게 탈출을 지시하고 난 후…….


[ 기타를 맨 소년. 인간에 대한 이해가 없는 채로 그는 자신의 행동에 괴로워한다. (c) 石ノ森章太郎/Mad House ]


[ 당신은 단순한 기계에요! 자신을 죽이려 하는 지로에게 미츠코는 이렇게 외친다. (c) 石ノ森章太郎/Mad House ]


  명령에 충실한 로봇으로서의 키가이더. 그러나 불완전한 양심 회로는 그를 혼란에 빠뜨렸고, 적의 로봇을 조종하는 명령(전파를 발생시키는 피리)이 들어올 때 그는 자신의 상황을 추스르지 못하고 그 명령에 따라 주변의 사람들을 해치려 한다.

  불완전한 마음을 가진 인형도 아니고 인간도 아닌 존재. 그렇듯 기묘한 상황은 로봇으로서의 그의 외형을 매우 추하게 바꾸고 말았다. 인간도 아니고 기계로 아닌 존재로서…….


  “착한 애로 있으면, 사람이 될 수 있다.”


  피노키오의 전설에 따르면 선한 일을 행함으로서 그는 사람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양심 회로에 따라 행동하는 것만으로는 인간 같은 행동은 할 수 없다. 단지 회로의 명령에 따라 움직일 뿐…….


[ 힘은 책임을 필요로 한다. 막대한 힘으로 키가이더는 적을 물리친다. (c) 石ノ森章太郎/Mad House ]


  작은 몸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힘을 갖고 활동하는 키가이더. 박사의 딸 미츠코를 구하기도 했지만 그럼에도 자신의 존재에 대해 의문을 풀지 못한다. 그리고, 자신과 같은 시스템으로 개발되었지만 양심 회로를 갖지 않은 형제, 이치로(키가이더01)와 제로(키가이더00)를 만나 악의 조직과 싸우다, 중과부적의 상황에서 적에게 사로잡힌 채 ‘엣사’라고 불리는 악의 회로를 장치하게 된다. 그것은 양심 회로와는 반대로 사악한 행동을 하게 만드는 회로. 더 정확히는 사악한 조직의 명령을 충실하게 따르는 시스템이었다. 엣사를 내장하고 붙들린 지로. 그는 역시 엣사를 내장한 과거의 동료 비진다를 속여서 탈출한다. 그리고 그는 가차 없이 자신의 형제들인 이치로와 제로를, 그리고 인간인 기르 교수를 살해한다.


[ 동생이라 불렀던 키카이더(지로)를 공격하는 이치로. 그는 단지 명령을 따를 뿐인 존재이다.(c) 石ノ森章太郎/Mad House ]


  불완전한 양심 회로의 제약에서 벗어나 보다 큰 선을 위해 거짓말도 할 수 있고 한편으로 형제도 살해할 수 있게 된 지로. 그는 기계의 마음에서 벗어나 인간의 그것을 갖게 되었다. 그와 맞바꾸어 죄책감이라는 무거운 짐, 양심의 싸움이라는 원죄를 짊어지면서...


  "나는, 나는 이걸로... 인간과 똑같게 되었다."

  "하지만 그 대신에 나는... 영원히 악과 양심의 마음의 싸움으로 괴로워하겠지."


  아이작 아시모프의 로봇 공학 3원칙에선 인간을 살해하지 않고 인간의 명령을 듣는 것이 '선'이라고 정의한다. 테즈카 오사무는 아톰에게 마음이라는 것을 주어 인간의 친구가 되게 해 주었다.


  하지만 아이작 아시모프의 로봇도 테즈카 오사무의 아톰도, 결국 인간의 설계, 창조주의 의지에서 벗어난 행동을 하는 것은 아니다. 단지 주어진 명령에 충실하게 행동한 결과 의지를 가진 것처럼 보일 뿐.


  하지만 피노키오가 제미니(양심)의 말에 무조건 따르지 않고 자신의 의지로서 행동한 결과 인간이 되었듯이, 키카이더는 주어진 명령, 제미니와 엣사 어느 쪽에도 따르지 않고 자신의 의지로서 행동함으로써 인간이 된다.

  사이보그 009나 가면라이더와는 달리 인간에 의해 모든 것이 만들어졌지만, 인간처럼 마음을 갖고 자신의 의지로 행동하게 된 키카이더. 그 결과 로봇임에도 동료, 형제를 속이고 죽일 수 있는... 인간으로서 다시 태어나게 된 존재. 그리고 그로 인해서 악을 증오하는 마음으로 더욱 강해져서 싸울 수 있게 되었지만, 그로 인해 선과 악의, 마음의 틈새에서 영원히 고뇌하며 괴로워하게 된 존재...

  그런 키카이더의 모습은 이시노모리 쇼타로 작품 속 '인간'의 모습을 잘 보여준다.

  설사 누군가에 의해 힘을 얻고 만들어졌을지는 모르지만, 결국 자신의 의지로서 길을 선택하고 나아가는 인간의 모습. 누군가의 명령에 의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결정으로 길을 선택했기에 고뇌하고 괴로워하며 때로는 후회하는 인간의 모습.
  그것은 키카이더의 외형처럼 추하게 보일지도 모르지만, 그 같은 추한 모습에야 말로 인간의 진실이 담겨 있다는 것을, 그런 추한 현실에 마주하여 고통과 고뇌 속에서도 올바른 길을 선택함으로써 비로써 진정한 인간으로 태어난다는 것을 이시노모리 쇼타로는 보여준다. 악과 선이 아닌, 악과 양심... 결국 내 마음에 따르지 않는 것은 그 결과가 어떻든 '악'이라는 것을...

  ‘이렇게 피노키오는 인간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피노키오는 인간이 되어서 정말로 행복해진 걸까요?’

  누군가의 뜻에 따르면 결코 괴롭지 않겠지만, 그럼에도 '악(순종)'과 '양심(의지)'사이에 고뇌하며 양심을 따르고자 노력하는 것. 그것이야말로 행복하지 않고 괴롭더라도 결국은 걸어가야만 하는 길... 가시밭길로 가득하지만 묵묵히 걸어야 하는, '인간의 길'이라는 것을...


 

[ 이시노모리 쇼타로의 주제 의식을 잘 보여주는 '키카이더 01 애니메이션' ]


 (* [키카이다]는 특촬물로 제작되어 최초 방영 당시 그다지 큰 인기를 끌지 못했지만, 바다 건너 하와이에서는 지금도 주제가가 불리어질 정도로 엄청난 인기(2001년 재방영시 시청율 70%)를 끌었으며, 인간적인 괴로움을 가진 로봇이라는 독특한 개념은 근래에 들어 다시금 부각되며, 만화, 애니메이션으로 리메이크되고 2014년엔 실사 영화로도 제작되었다.)


[ 2014년에 제작된 키카이더 REBOOT. 작품 자체는 별로 호평받지 못했지만, 추한 외형에서도 정의를 위해 행동하는 그 모습이야 말로 이시노모리 작품의 성격을 잘 보여준다. (c) 石ノ森章太郎 / 東映 ]


게임과 영상으로서의 이시노모리 시리즈


[ 슈퍼 패미콤으로 제작된 사이보그 009 ]  


  전 세계에 수많은 이시노모리 팬이 존재하고 있기에, 그리고 그 자신이 만화가만이 아니라 영화감독도 되기를 바랐기 때문에 그의 작품은 상당수가 영상으로서 재탄생되곤 했다. 그 중에서 특히 애니메이션보다는 특촬물이나 드라마, 다시 말해 실화로 제작된 경우가 많은 편.(특촬물에 국한하지 않고 일반적인 드라마도 많다.)


[ 가면라이더의 게임 시리즈는 무수하게 발매되고 있다. ]


[ 실사에 가까운 느낌 그대로. 가면라이더의 대결이 시작된다.  ]


  [가면라이더]를 시작으로 [키카이다], [고레인저] 등 수많은 특촬물이 제작되었고, 그 중에서도 [가면라이더] 시리즈는 일본의 특촬물을 대표하는 인기 시리즈로서 지금도 꾸준하게 제작되고 있을 정도. 그와 동시에 가면 라이더를 주역으로 한 게임도 꾸준하게 제작되고 있다. PS2에 이르러 [가면라이더 히비키], [파이즈], [555(고고고)] 등이 계속 선보였고, PS3, PS4에 이르기까지 [가면라이더] 게임 시리즈는 계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가면라이더 시리즈의 게임은 매우 다양하지만, 그들 대부분은 실사 분위기로서 가면라이더와 개조 인간이 싸우는 격투 대전 게임으로서 연출된다. 그 유명한 라이더킥을 비롯하여 수많은 필살기들이 난무하고 다채로운 시점으로 변화된 연출이 전개되기도…….

  어디까지나 특촬물이라는 분위기에 맞추어 연출되는 이들 게임은 격투 게임으로서 [철권]이나 [버추어파이터즈] 등의 작품 정도의 완성도는 없지만, 가면라이더의 팬들에게는 멋진 작품으로서 기대할만 하다.

  가면라이더 시리즈 외에 이시노모리씨의 작품을 바탕으로 한 게임은, 대부분 슈퍼패미콤 이전의 고전 게임으로서만 존재한다. 사이보그 009 등이 바로 그것. 근래에는 이시노모리 작품의 리메이크와 함께 리메이크 만화와 애니, 만화, 게임, 영화 등이 꾸준히 나오는 만큼 앞으로도 이시노모리의 세계는 더욱 넓어질 것으로 생각된다.


* 이시노모리 쇼타로 작품집


  많다. 너무 많다……. 직접 만든 작품만으로 3자리를 가볍게 뛰어넘고 관련 작품을 따지면 4자리에 이른다는 테즈카 오사무나 요코야마 미츠데루에 비길 정도는 아닐지 모르지만, “가속 장치의 소유자”로서 이시노모리 쇼타로는 오리지날의 장편만으로도 너무도 많은 작품을 선보이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지금 이 순간에도 제작되고 또 만들어지고 있다. 때문에 여기서는 만화, 애니 등 극히 일부만을 소개해 본다.(아이들과 어른용을 포함 드라마 종류만도 수 십 편에 달하지만, 여기서는 특촬물 중에서도 일부 만 소개해 본다.)


1. 만화

이급천사(二級天使) - 1954. 연재 데뷔작.

괴걸 하리마오(怪傑ハリマオ) - 1960. 소설 원작의 만화화.

사루토비 엣짱(おかしなあの子さるとびエッちゃん) - 1964. 소녀 개그 만화.(닌자물)

사이보그 009(サイボーグ009) - 1964. 그 후 시리즈 다수.

뮤턴트 사부(ミュータントサブ) - 1965. 그 후 시리즈 다수.

사부와 이치토리모노히카에(佐武と市捕物控) - 1966. 검객물.

환마대전(幻魔大戦) - 1967. 

스카르맨(スカルマン) - 1970. 1998년 시마모토 카츠히코씨에 의해 속편 출간.

가면라이더(仮面ライダー ) - 1971. 특촬물의 만화판으로 출간.

변신닌자 아라시(変身忍者 嵐) - 1972. 

인조인간 키카이다(人造人間キカイダー) - 1972. 특촬물의 만화판으로 출간.

로봇형사(ロボット刑事) - 1973.

이나즈만(イナズマン) - 1973.

힘내라!! 로보콘(がんばれ!!ロボコン) - 1974

가면라이더 아마존(仮面ライダーアマゾン) - 1974

철면 크로스(鉄面クロス) - 1974

비밀전개 고레이저(秘密戦隊ゴレンジャー) - 1975

길가메쉬(ギルガメッシュ) - 1976.

마법세계의 쥰(魔法世界のジュン) - 1977

킥쿤타쿤(チックンタックン) - 1984

호텔(HOTEL) - 1984

만화 일본경제입문(マンガ 日本経済入門) - 1986

만화 초전도 입문(マンガ・超電導入門) - 1987

가면라이더 블랙(仮面ライダーBlack) - 1987

이시노모리 쇼타로의 만화가 입문(石ノ森章太郎のマンガ家入門) - 1988

만화 일본의 역사(マンガ日本の歴史) - 1989


2. 애니

사부와 이치토리모노히카에(佐武と市捕物控) - 1968. 총52화 흑백판.

사이보그 009(サイボーグ009) - 1968. 흑백판

사이보그 009(サイボーグ009) - 1979. 컬러판

사루토비 엣짱(さるとびエッちゃん) - 1971.

인조인간 키카이다(人造人間キカイダー) - 2000 총 13화

인조인간 키카이다01(人造人間キカイダー01) - 2000. 총 4화

사이보그 009(サイボーグ009) - 2001. 총 51화

환마대전-신화전야의 장-(幻魔大戦-神話前夜の章-) - 2002. 

길가메쉬(ギルガメッシュ) - 2003. 26화


[ [공각기동대]로 잘 알려진 Production I.G.에서 2012년에 제작한 009 Re:Cyborg. 작품은 꽤 괜찮았지만, 이시노모리 스타일과 너무 다른 분위기가 어색했다. (c) 石ノ森章太郎 / Production I.G. ]



3. 드라마

사부와 이치토리모노히카에(佐武と市捕物控) - 1966. 

가면 라이더(仮面ライダー) - 1971~1973. 98화

인조인간 키카이다(人造人間キカイダー) - 1972~1973. 43화

이나즈만(イナズマン) - 1973~1974. 25화 

힘내라!! 로보콘(がんばれ!!ロボコン) - 1974~1977. 118화

비밀 전대 고레인저(秘密戦隊ゴレンジャー) - 1975~1977. 84화

쟈카 전격대(ジャッカー電撃隊) - 1977. 35화

성운가면 머신맨(星雲仮面マシンマン) - 1984. 36화

가면 라이더 블랙(仮面ライダーBLACK) - 1987~1988. 51화

보이스랙거(ボイスラッガー) - 1999. 12화

가면라이더 아키토(仮面ライダー アギト) - 2000~2001. 51화

가면라이더 블레이드(仮面ライダー剣) - 2004~2005. 49화

가면라이더 카부토(仮面ライダーカブト) - 2006. 현재 방송 중


[ 아이들을 위한 특촬물, 힘내라 로보콘. 이런 것도 나쁘지는 않겠지?  (c) 石ノ森章太郎 / 東映 ]


posted by 별을 좋아하는 표도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