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전 한 롤플레잉 게임을 할 때의 일입니다. 당시 울티마나 바즈테일 같은 게임에 빠졌던 저는 화려한 그래픽과 스토리 연출을 제공하는 게임에 몰입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던전을 탐험하던 중, 갑자기 강제 전투가 벌어졌죠. 적은 그다지 강해 보이지 않았지만 쉬운 상황은 아니었습니다. 던전 안에서 생명력과 마력은 꽤 떨어진 상태였고 회복약은 많이 소비한 상태였거든요.


  하지만 투지에 불타는 저는 마음을 다잡고 전투에 돌입했습니다. 회복약으로 생명력을 회복하고 디버프를 걸고, 버프로 능력을 높이면서 맞서 싸웠죠. 분명히 효과를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게 왠 일입니까? 아무리 때려도 잘 맞지 않고 적이 때릴 때는 100발 100중. 게다가 한방에 죽기 일보 직전... 결국 회복약을 모두 써 버리고 회복시킬 마력도 떨어진 상태에서 전멸하고 말았습니다.


  으음... 분한 일입니다. 기어코 이기고 말겠다고 다짐한 저는 일단 데이터를 불러냈고(로딩), 레벨을 열심히 높였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지금으로서는 도저히 상대가 안 되어 보였으니까요. 그리고 던전의 몬스터 따위는 가볍게 물리치게 된 시점에서(당연히 잡아봐야 경험치도 거의 안 나오는 상태에서) 다시 도전했습니다.


  그러나 이번에도... 그렇게 두번쯤 반복했을까요? 결국 게임을 포기하고 말았습니다. "뭐 이런 개x 같은 난이도가 다 있어."라면서 말이죠.


  얼마 후, 저는 우연히 그 게임의 공략집을 보게 되었고 깨달았습니다. 그 전투는 설사 제가 최고 레벨로 높여도 이길 수 없는 전투라는 것을. 스토리상 무조건 패배하고 사로 잡힌 후에 탈출하여 특별한 아이템을 얻은 후에 다시 도전해야 하는, 그런 전투였던 것입니다. 보스보다도 더 강력한 존재. 그야말로 '절대 무적 보스'였던 것입니다.


  그 후 공략집을 보면서 다시 도전해서 완수하였고, 그후엔 비슷한 상황의 게임이 나올때마다 일단 스토리상 이길 수 있는지 아닌지를 확인하고 다시 도전했습니다. 조금 싸워보면 알긴 하지만, 어차피 이기지 못할 거 처음부터 포기하고 맞아 죽는게 훨씬 나았으니까요.


  왜 이렇게 질수 밖에 없는 존재를 등장시키는 것일까? 재미있게 즐기면서도 그런 의문은 가시지 않았습니다.


[ 그래요. 차라리 순순히 금을 바치고 말겠습니다. 어차피 이기지 못할거라면. ]


  그러던 중 한 글을 보게 되었습니다. 바로 ‘이야기를 재미있게 만들려면 주인공을 위기에 빠뜨리고 실패시키면 된다.’라는 내용이었습니다.


  흔히 실패는 패배이자 절망이라고 생각하지만, 주인공이 실패하고 위기에 빠지면서 그 상황을 극복하고자 노력할 때 좀 더 재미있는 이야기가 탄생할 수 있다는 거죠. 


  실패하지만 굴복하지 않고 다시 일어나는 장면을 통해서 우리는 더욱 주인공들을 응원하고 그들의 진정한 성공에 기뻐하게 됩니다. 


  무조건 성공하는 이야기는 재미가 없습니다. 아니 보는 동안 -대리만족이란 느낌으로- 재미있게 느낄지 모르지만, 다 보고난 후에 감동이 없고 공허한 느낌을 받습니다. 시련도 위기도 실패도 없는 이야기는 진실미가 없고 인간적이지 않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그렇다면 게임도 그런 것이 아닐까요? 확실히 게임에서도 주인공이 위기에 빠지거나 실패할 때 조마조마하고, 초조한 기분이 듭니다. 그리고 그 위기를 극복하고 성장했을 때 주먹을 쥐면서 기뻐하기도 하죠.


  ‘절대 무적 보스’는 분명 그런 목적에서 존재하는 것입니다. 주인공, 플레이어 캐릭터가 실패하고 극복하는 과정을 그려내기 위해서...



  그런데 정말로 그게 필요한 것일까요? 절대 무적 보스는 이름 그대로 절대로 이길 수 없는 존재입니다. HP가 무한대이거나, 방어력, 또는 회피율 무한대라서 설사 최종 보스를 이길만한 실력이 있어도 이기지 못합니다. 회복약을 사용하고 버프나 디버프로 능력을 높이는 건 죽는 시간을 연장시켜 줄 뿐. 가치가 없습니다.


  게임을 진행하는 플레이어는 그게 절대 무적 보스인지 아닌지 알 수 없습니다. 열심히 싸우고 죽은 뒤에, 스토리가 나온 다음에야 절대로 이길 수 없음을 알게 되죠. 아니면 저처럼 공략본을 보고 난 후에야 알 수 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시련을 극복하는 보람’을 느끼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닐 것입니다. 아마도 허탈함, 분노만 느끼게 되지 않을까요?


  그러니까 스토리로서의 매력이 아니라, 불편한 시스템, 혼란한 시스템이 되어 버리고 맙니다. 분명히 실패 후에 극복이라는 스토리텔링의 원칙을 적용한 것인데, 왜 그 매력을 느끼지 못하는 것일까요? 


  그건 게임이, 영화나 소설처럼 단순히 보는 것이 아니라, 직접 참여하는 것에서 나온다고 생각합니다.


  게임 플레이어는 관객처럼 가만히 있지 않습니다. 직접 캐릭터를 조종하여 시련에 맞서고 대결합니다. 플레이어의 입장에서 눈앞에 놓인 장애는 모두 극복할 수 있는 것, 극복해야 할 것입니다. 어떻게든 깨뜨릴 수 있고 넘어설 수 있게 마련이라고 생각합니다. 처음 보자마자 그것이 ‘불가능한 장벽’이라고는 그 누구도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어떻게든 뛰어넘으려 합니다. 한 번에 실패하면 다시, 다시, 그야말로 넘을 때까지 도전하거나 결국 포기합니다. 나중에 그것이 절대로 넘을 수 없는 시스템 상의 장벽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시련을 극복하는 보람’을 느끼기는 쉽지 않을 것입니다.


[ 지옥 같은 난이도로 유명한 마계촌. 물론 이걸 하는 건 플레이어의 선택이죠. ]


  설사 한번 그것을 체험하더라도 다음 번에 같은 경우라는 보장은 없습니다. 너무 힘들어서 포기했는데, 그냥 죽어 버리는 상황도 있을 겁니다. 분명히 절대 무적 보스라고 생각하여 포기했는데, 허무하게 게임 오버를 맞이했을 때 역시 기분이 좋지 않겠지요. 죽은 다음에 다시 도전한다고 해 봐야 ‘시련을 극복하는 캐릭터’는 되지 않을테니까요.


[ 이 상황에서 이어서한다고 해서 '실패의 극복'이 되진 않겠죠. ]



  그렇다면 이 문제를 극복할 수 있을까요? 오픈 월드 게임으로 유명한 GTA5에서 한가지 사례가 있습니다.


  여기서 주인공은 젊은 흑인 청년 플랭클린과 중년의 백인 남성 마이클입니다.(사실은 1명 더 있습니다만) 플랭클린이 어쩌다 마이클과 친해져서 그의 집을 찾아갔는데, 갑자기 누군가가 속옷 차림에 달아나고 마이클이 쫓아갑니다. 플랭클린에게 차를 운전하라면서 말이죠. 마이클이 자기 아내와 테니스 코치가 바람 피는 것을 발견하고 복수하러 쫓아가는 겁니다.

  그리고 코치를 추적하여 아주 과감한 짓을 벌이죠. 바로 벼랑 끝에 튀어나온 집의 기둥을 자동차로 당겨서 무너뜨려 버리는 겁니다. 그런데 사실 그 집은 코치의 집이 아니었습니다. 바로 마피아 카르텔의 보스 정부의 집이었던 것이지요. 부하들이 추격을 하고 총격전이 벌어집니다. 한 명은 운전하고, 한 명은 총으로 응사하며 도주에 성공. 집에 돌아오지만, 카르텔의 추격자는 결코 따돌리지 못했습니다.

  보스가 부하들과 함께 찾아온 것입니다. 자 이게 어떻게 할까요?


  어떻게 하고 자시고도 없습니다. 카르텔의 보스와 맞선다고 해서 이길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적어도 무기 하나 변변히 없는 상황에선 말이죠. 과감하게 싸워서 죽을 수도 있지만, 여기서 플레이어가 보스에 맞설 방법은 없습니다. 일방적으로 두들겨 맞고 ‘돈을 내놓으라.’라는 말을 듣게 되죠. 마이클은 도저히 갚을 수 없는 막대한 돈을... 이래서 GTA5의 이야기는 시작되는 것입니다.



[ 카르텔의 보스한테 덤비면 죽는다는건 싸워보지 않아도 알게 마련이죠. ]


  마이클에게 있어 보스는 ‘절대 무적 보스’입니다. 싸운다면 반드시 패할 적수죠. 하지만 그 사실을 확인하기 위해서 ‘플레이’를 할 필요는 없습니다. 어차피 패할 적수, 헛수고를 시험해 볼 필요는 없으니까요. 중요한건 여기서 일단 굴복한 마이클이 보스에게 엉망으로 깨지고 나중에 복수한다는 사실이지, 그에게 엉망으로 깨지는 과정이 아닙니다. 그걸 게임 플레이로 보여줄 필요는 없는 것입니다.


  롤플레잉 게임의 ‘절대 무적 보스’도 그렇게 하면 안 될까요? 그냥 스토리로 패배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끝내면 안 될까요?



  게임에는 두가지 실패가 있습니다. 하나는 플레이어의 패배, 또 하나는 캐릭터의 패배입니다.


  마피아 보스와 이길 수 없는 싸움 끝에 패배하는 것은 캐릭터가 아니라 플레이어의 잘못이자 패배입니다. 분명히 절대로 이길 수 없는 싸움이지만, 플레이어는 그 사실을 모릅니다. 결국 전투에 패했으니 -제 아무리 스토리상 정해진 것이라도- 플레이어는 자기가 실패했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상황을 마주했을 때 그것이 스토리상의 패배라고 납득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플레이어가 열심히 싸웠음에도 패배한 것이니까요. 아무리 그 뒤에 주인공이 사로잡히고 탈출하는 스토리를 둔다고 해도(또는 마왕이 ‘흥, 별거 아니군.’이라며 놔준다고 해도) 석연치 않은 느낌이 들고 찜찜하겠죠.


  반면 적의 보스에게 아군이 사로잡히거나 하는 것은 캐릭터의 실패입니다. 이건 이야기 흐름상 존재하는 것이고 플레이어가 잘못한 결과물이 아니죠.


  캐릭터는 대개 죽지 않으며(죽었다가 부활하기도 하지만) 플레이는 끊어지지 않고 계속됩니다. 플레이어 역시 실패한 사실에 대해 고민하지 않고 캐릭터 플레이를 이어갑니다.(물론 게임이 어렵다며 던져버리지도 않습니다. 가끔 '개X같은 스토리'라면서 욕하고 내던질 수는 있지만 말이죠.)


[ 스토리에 의해 갇히면 당연히 누군가가 구조하러 등장하게 마련이죠. ]



  스토리상 캐릭터가 실패하는 것은, 일시적으로 좌절하지만 결국 이를 극복하고 다시 도전하여 최종적으로 성공한다는 점에서 영화나 만화, 소설 등의 실패와 비슷합니다.


  흥미로운 점은 게임 캐릭터의 패배와 극복은 분명히 플레이어의 잘못이 아니며, 플레이 결과가 아님에도 플레이어는 자신이 직접 패배하고 극복한 것처럼 희열을 느낀다는 것입니다.


  물론 영화나 소설, 만화나 애니메이션에서도 그런 느낌은 존재하겠지만, 게임 캐릭터의 그것은 훨씬 더 강렬한 체험이며 더욱 몰입되게 합니다.


  그것은 게임의 캐릭터가 내 분신이기 때문입니다. 비록 내 잘못으로 실패한 것은 아니지만, 캐릭터의 실패는 내 실패처럼 여기며 안타까워하고 초조해하며 아쉬워합니다. 설사 그것이 스토리상 필요한 일이라는 것을 머리로는 알고 있다고 해도 말이죠. 그리고 실패를 극복하고 성장하면서 성공할 때 마치 내가 성공한 것처럼 기뻐합니다. 영화와 달리 내 선택에 의해서 진행하는 게임이기 때문에 얻을 수 있는 몰입감, 만족감입니다.



  다만 이를 잘 구성하려면 캐릭터의 실패와 플레이어의 실패가 완전히 다르다는 것을 이해하고 있어야 합니다.


  스토리상의 실패와 플레이의 실패가 다른 것이라는 점을 말이죠.


[ 이길 수 없는 보스는 그냥 스토리 요소입니다. ]


  패하게 되어 있는 전투를 굳이 할 필요는 없습니다. 아무리 해봐야 공격은 전혀 먹히지 않고(먹혀도 금방 부활하고) 허송 세월만 하는 거니까요. 아무런 보람이 없는 플레이, 그냥 시간만 죽이기 위한 플레이... 그럼에도 플레이어는 '혹시라도 이길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며 정신력을 낭비합니다.


  결국 '인터넷'이라는 반칙기를 쓰고서야 알게 되죠. 그건 원래 그렇다는 것을... (그래요. 사실은 예전에 제가 그런 적이 있었답니다.(그땐 인터넷이 아니라 공략집이라서 더 찾기 힘들었지만.) 그때의 허탈한 마음이란...)



  그럴 필요가 없습니다. 그건 정당한 플레이가 아니라 플레이어를 고문하고 불편하게 만드는 행위입니다. 


  어차피 패배가 확정되어 있다면, 회복약에 폭탄에 잔뜩 써가면서 싸우게 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냥 이벤트 장면으로 패배하게 만들면 되는 것이고, 플레이어도 훨씬 부담이 덜합니다. 여하튼 ‘내가 잘못한 것’은 아니게 되니까요.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뭔가 부족합니다. 좀 더 흥미롭게 만들어보죠.


  바로 "플레이에서는 승리하고 스토리에서 패배하게 하는 것"입니다.


  보스 전투는 벌어집니다. 분명히 강하고 힘들지만, 물리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전투에 승리한 직후(물론 경험치 같은 보상도 받은 이후) 갑자기 이벤트가 진행됩니다.


  "하하하. 나는 삼단 변신이다!"


  그리고 전투는 벌어지지도 않고 캐릭터가 쓰러져 버립니다. 물론 게임 오버는 되지 않고 계속 이어서 일행이 사로잡히거나 하는 장면이 보여지겠지요.


  플레이어는 승리했습니다. 하지만 캐릭터는 패배합니다. 그만큼 안타깝고 아쉽지만, 적어도 플레이어의 잘못은 아니기에 납득할 수 있습니다.



  또 다른 상황을 생각해 보죠. 보스가 등장했는데 너무도 강력합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지금 상황에서 이길 것 같지가 않죠.


  그때 갑자기 원군이 등장하고 보스가 쓰러집니다.



  이런 상황에서 많은 게임에서는 주인공이 전투를 해서 강제로 패배한 뒤에 아군이 도착해서 스토리로 물리치지만, 그보다는 스토리 이벤트로 위기에 빠지는 장면을 만들고, 아군이 도착해서 전투를 벌이게 하는 쪽이 더 좋습니다. 바로 다음과 같은 이유로 말이죠.


[ 혼자만 레벨도 MP도 보이지 않는 루시아. 뭔가 기묘한 느낌을 받기엔 충분하죠. 게다가 혼자만 자동 전투라면 더욱. ]



첫째, 원군이 얼마나 강하고 믿음직스러운지 직접 체험할 수 있습니다.


  원군은 분명히 NPC이고, 자동으로 전투를 벌일 겁니다. 리얼타임이건 턴방식이건 NPC의 전투를 묘사하는 건 어렵지 않습니다.

  전투는 벌어지고 있고, 우리 일행이 공격할 때는 10 정도 밖에는 줄지 않는 HP가 원군이 공격할 때는 200~300씩 줄어듭니다.

  우왕, 굿. 엄청나게 센 원군입니다. 그야말로 고마움이 100배. 그 위력을 직접 체험하면서 원군이 없으면 절대로 이길 수 없다는 사실을 절실하게 느끼게 됩니다.

  그리고 혹시 기대하죠. '이 전투가 끝나고 우리 편이 되지 않을까?'

  물론 그런 일은 없습니다. 지금 그가 우리 편이 되면 밸런스가 완전히 망가지니까요. 하지만 언젠가 그가 동료가 될 것을 기대하면 괜히 두근거립니다.


둘째, 스토리에서 패배하지만, 플레이로 승리하게 하여 성취감을 줍니다.


  분명히 원군이 없으면 승리하지 못할 전투입니다. 눈으로 직접 보니 더욱 절실하게 느끼겠지요. 하지만 제 아무리 약한 능력이라도 원군을 도와서 싸운 겁니다.

  그만큼 뭔가 해낸 성취감이 느껴지고, 언젠가는 원군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싸우기 위해서 성장해야 한다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원군과 함께 싸우는 전투 상황은 사실 스토리 이벤트로 처리해야 합니다.

  보스가 주인공 일행을 공격하지 않고(한방에 죽을테니) 원군만 공격하게 하거나, 원군이 보스의 공격을 다 막아주도록 설정해야 하고, 만에 하나라도 원군이 패하는 일은 없도록 해야 하니까요. (주인공 일행이 막타를 때리는 것도 피하는게 좋을 겁니다. 물론 원군의 희생으로 보스가 약해진 틈에 주인공이 물리치는 구성도 가능하지만, 조금 비겁하잖아요? ^^)


  하지만 플레이어는 그것이 스토리 이벤트라는 것을 모릅니다. 단지 살아남기 위해서 결사적으로 맞설 뿐이죠. 최소한 조금이라도 원군을 돕기 위해서 말입니다.


  그리고 강대한 적을 물리치면서 힘겨운 승리의 성취감을 맛봅니다.




  게임의 플레이에는 실패가 없어야 합니다. 적어도 플레이어가 잘못하지 않은 상태에서 강제로 실패하게 하면 안 됩니다.


  어떤 이유건 플레이의 실패를 맛볼때 플레이어는 그것을 자신이 ‘잘못 플레이했기 때문’이라고 여기고 자책하거나 무의미한 도전을 반복하게 됩니다.


  아니 실패만이 아니라 플레이어의 잘못이 아님에도 플레이어에게 불이익을 주어서는 안 됩니다. 일시적으로 불이익을 주더라도 그것을 되찾게 해주어야 합니다.



  가령 소매치기 이벤트로 소지금의 절반이 사라진다면 오래지 않아 소매치기를 잡음으로써 소지금을 되찾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노력한 만큼 더 큰 보상을 얻게 해야 합니다. 그래야 플레이어는 ‘불합리한 시스템’을 저주하지 않고 새롭게 도전 의욕을 불태울 것입니다.(물론 추격을 포기하는 선택기를 주고 소매치기 행위에 이유를 를 부여하는건 흥미로운 스토리 연출이 될 것입니다.)


[ 소매치기 막기 기술이 없는 상황에선 일방적으로 당하게 마련이죠? ]


  게임의 스토리에서는 실패가 필요합니다. 그럼으로써 캐릭터를 응원하고 싶은 마음이 더해지고 열심히 해서 캐릭터가 승리할 때 더욱 큰 성취감을 맛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게임의 실패는 게임 오버"라는 의문은 매우 타당하지만, 조금만 시점을 바꾸어 보면 더욱 즐거운 재미가 펼쳐질 수 있을 것입니다. 적어도 저처럼 인터넷을 뒤져보고 좌절하는 상황은 겪지 않아도 되겠지요. ^^

posted by 별을 좋아하는 표도기

  학교 수업 중 롤플레잉 게임에 대해서 이야기하다가 한 학생이 질문을 했습니다.


  "사냥하다보면 쥐 가죽처럼 쓸모없는 아이템이 나오잖아요? 그게 왜 필요한가요? 그게 없으면 리소스도 줄어들텐데. 차라리 그만큼 돈으로 주면 안 될까요?"


  타당한 의문입니다. 솔직히 쥐 가죽 같은 건 재료 아이템이 될만한 것도 아니고, 팔아봐야 얼마 받지도 못합니다. 아예 줍지도 않는 상황이 일어나기도 하죠.


[ 쥐 가죽 만든 신발? 음? 재료 아이템도 괜찮네요.^^ ]



  그렇다면 돈으로 더 주면 어떨까요? 가령 쥐가죽이 50원인데, 그대신에 100원의 돈을 더 준다면?


  이러한 의문으로부터 게임 디자인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우선 경제 시스템과 관련한 레벨 디자인 측면에서 생각해 볼때,[쥐 가죽] 같은 아이템은 그 가치를 조절함으로써 '게임 속의 경제'를 조정하는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특히 많은 플레이어가 함께 활동하는 MMORPG에서 화폐의 가치를 유지하는 건 게임 플레이어의 불만을 줄이는데 중요한 만큼, 가치를 맘대로 바꿀 수 없는 화폐가 아니라 아이템의 매매가를 통해서 경제를 조절하는 건 매우 좋은 방법입니다.



  하지만 '쥐가죽'을 사용하는데는 그보다도 중요한 이유가 있습니다. 바로 '게임에 대한 만족도'라는 측면이죠.


  생각해 봅시다. 여러분은 사냥을 할때 '경험치'나 '돈'이 떨어지는 양을 일일이 세보는 스타일인가요?


  적어도 저는 그렇게 플레이하지 않습니다. 게임을 분석하거나, 역기획 자료를 만들거나 할 때를 빼면 말이죠. 심지어 퀘스트에서 얻는 경험치도 신경쓰지 않는데 무수하게 많이 잡는 '쥐'의 경험치나 떨어지는 돈을 일일이 세어볼리가 없습니다.


  다시 말해 쥐를 잡아서 100원이 떨어지다가 200원이 떨어진다고 해도 플레이어들은 이를 인식하기 어렵다는 이야기입니다. 당연히 만족도도 별로 차이가 나지 않겠지요.


  반면 50원짜리 쥐가죽이 떨어진다면 '뭔가 얻었다.'라는 느낌이 확실히 납니다.


  게다가 쥐가죽을 잔뜩 얻어서 상점에 팔아 몫돈을 손에 넣을 때 다시 한번 '돈 벌었다.'라는 느낌이 들죠.



  '쥐'가 돈을 가지고 다닐리가 없다는 점도 생각해봐야 합니다. 산적이나 오크가 돈이나 귀금속을 가지고 다니는건 별로 이상하지 않겠지만, 쥐가 돈을 들고 다닌다?


  애니메이션 [드래곤 퀘스트]에서는 보석으로 몬스터를 만들어서 몬스터가 죽으면 보석이 떨어지는 개념이 있었습니다.(이는 소설 [던젼에서 만남을 추구하면 안될까?]에서도 마석을 중심으로 몬스터가 생성되는 개념으로 재활용했습니다.)


  소설 [로그 호라이즌]에선 아예 몬스터가 태어날때 동전이 주어진다는 것을 세상의 규칙으로 설정하기도 했죠. 그래서 지하엔 세상의 온갖 동전이 모여드는 거대한 샘 같은 곳이 있다는 개념으로 말입니다.


  이런 설정을 통해서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어떤 설정을 더하더라도 그건 뒷 설정에 불과하며, 상식적으로 볼때 쥐를 잡았는데 돈이 떨어지는 건 이상합니다. '쥐 가죽'이 떨어지는게 더 자연스럽습니다.


[ 돈이 쏟아져 내리는 던젼. 이런 설정을 부여하는건 좋지만, 그래도 쥐가 돈을 떨어뜨리는건 어색합니다. ]



  진정으로 중요한 것은 '쥐가죽'이라는 아이템을 모아서 파는 행위 자체가 게임 플레이. 바로 '게임과의 대화'라는 점입니다.


  '게임과의 대화'가 늘어날수록 플레이어는 내가 직접 뭔가를 하는 기분이 들고, 그만큼 게임에 몰입할 가능성도 높아집니다. 그만큼 게임이 단순히 시간 때우기가 아니라 내게 있어 또 다른 삶으로서 즐거움을 더합니다.


[ 필요할 때 만나는 상인만큼 고마운 존재도 없죠. 게임 플레이에 도움이 된다면 더욱. ]


  [몬스터 헌터] 게임에서는 사냥감을 잡고 나면 해체 칼을 들고 그 시체를 해체하여 고기나 가죽을 얻도록 함으로써 그 같은 '게임과의 대화'를 더하고 있습니다.


  어떤 분이 [크로우폴(Crowfall)]이란 게임을 소개해 주셨습니다. 광산에서 채광을 할 때, 광석 오브젝트를 클릭해서 단순히 얻는게 아니라, HP 개념을 두어 광석과의 사투를 벌이는 식으로 만들었다고 하더군요.


  [울티마 온라인]에서 광산 곳곳을 파면서 광석을 모으고 대장간으로 날라서 금속 덩어리를 만드는 개념도 있습니다.


  이 역시 게임을 단순한 사냥의 반복이나 노동, 숫적인 보상만으로 생각하지 않고, '플레이어와 게임의 대화'를 생각하며 고민한 디자인 방법일 것입니다.



  게임 플레이는 '게임과의 대화'이며, 대화는 더욱 유기적이고 상호적일때 훨씬 재미있는 법입니다.


  100원이라는 돈 대신에 [쥐가죽]이라는 아이템을 떨어뜨리는 디자인에는 바로 이 같은 고민이 담겨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곤 해도 '쥐가죽'보다는 훨씬 있어보이는 아이템을 얻게 하는게 나을 겁니다. 아니 솔직히 쥐하고 싸우는 것 자체가 조금 부끄럽지 않나요? ^^


  오래 전에 제가 게임 [울티마 온라인]을 할 때 열심히 키운 대장장이로 칼싸움을 벌이다 토끼에게 맞아죽고 쥐하고 10분 동안 열심히 싸운 경험이 있지만...(그래서 주변 사람들이 '쥐 이겨라!'라고 응원하는 사태가 벌어졌지만...) 칼을 든 전사라면 그래도 늑대 정도하고는 상대해야죠. 아니면 거대한 낫을 든 키 2미터짜리 거대 쥐라던가.


[ 토끼에게 맞아 죽은게 부끄러운건 아니죠. 부끄럽지는 않은데... ]


  그래도 돈 100원보다는 50원짜리 '쥐 가죽'이 좀 더 뭔가 얻은 느낌을 더합니다. 아이템을 얻었다는 느낌만이 아니라, '쥐 가죽'이 숫자만으로는 처리되지 않는 그 세계의 일부이기 때문에.


  더욱이 그것이 저 멀리 눈 덮인 산에서 이따금 발견된다는 전설적인 [스노우화이트 설표의 가죽] 같은 것이라면 뭔가 얻은 보람도 더 클 것입니다. 그것이 단순히 '판매용 드롭 아이템'에 불과하더라도.


이따금 마을에서 [쥐 가죽](아니 [스노우 화이트의 설표 가죽])으로 만든 물건이 발견되거나 한다면 더욱 그럴듯해 보일 겁니다. 왠지 내가 그 세계의 생활에 이바지한 느낌이 들테니까요.(더욱 이상적인 것은 유저들이 [스노우 화이트의 설표 가죽]을 많이 구해다 팔수록 그 물건이 더 늘어나 보이게 하는 것이겠지만, 아무래도 너무 복잡해지겠지요.^^)


  그것이 사람의 마음이고, 바로 그런 마음을 잘 생각하는게 훌륭한 게임 디자인. 게임을 단순히 반복 노동이나 작업이 아니라, 탐험할만한 세계로 느끼게 하도록 도와주는 디자인 방법입니다.


  "왜 쥐가죽이 필요한가요?"


  학생의 이 질문은 제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 주었고, 이제껏 막연하게 느끼고 있던 생각을 제 것으로 만드는데 도움을 주었습니다.


  누군가를 가르치면 그보다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는 것은 바로 이러한 것을 뜻하겠지요.

posted by 별을 좋아하는 표도기

  게임 스토리텔링, 정확히는 '디지털 스토리텔링'의 가장 큰 매력은 '플레이어가 주도적으로 체험'한다는 것이고, 가장 큰 단점도 '플레이어가 주도적으로 체험'하는 것입니다.


  플레이어가 주도적으로 체험하기 때문에, 디지털 스토리텔링은 자칫 '완성도 높은 하나의 이야기'를 구성하는데 있어 장해로 생각될 수 있습니다.


  발단 부분에서 충격은 매우 약하고, 적의 위협도 어중간하게 느껴지고, 주인공의 행동을 이끌어내기에 당위성이 부족해 보일 수 있습니다.


  전개 부분에서는 계속 같은 과정이 반복되는데, '플레이'이기 때문에 항상 성공하게 됩니다.


  재미있는 스토리를 만들 때 "주인공이 시련을 겪으면서 실패할 때 그 실패를 극복하기 위해 발버둥치는 과정"이 재미있는 법인데, 게임에서는 플레이에 실패하게 되면 '게임 오버'가 되기 때문에 항상 성공해야 하고 결과적으로 위기감이나 재미가 떨어질 수 있습니다.


[ 루크의 대 실패! 이후 동료가 루크를 구한다. 이런 장면이 영화를 재미있게 만들지만, 게임에선 '게임 오버'로 연결되는 플레이 실패가 될 수도 있다. (스타워즈:제국의 역습) ]


  발단, 전개에서 이끌어온 이야기들이 절정 부분에서 극적인 충돌을 일으키게 하는데 있어서도 '게임 플레이'라는 측면이 장해가 될 수 있습니다. 보스를 무진장 세게 만들어서 위기감을 심어주려 했지만, 플레이어가 성 주변을 돌며 레벨 99까지 올리게 되면 레벨 58의 보스 따위는 한 주먹도 안 되거든요.



[ 레벨을 잔뜩 높이면, 중간 보스 따윈 적도 아니다. (마법진 구루구루) ]


  발단, 전개, 절정 부분에서 뭔가 흐릿하게 진행되었다면, 결말 부분에서 '여운'이 남을 수 없습니다. 게다가 '여운'을 남기겠다고 동영상을 잔뜩 넣어두었다가는 언제 끝날지도 알 수 없는 동영상 때문에 화장실도 못가고, 약속도 어기는 사태가 발생할 수도 있습니다.


  레벨 디자인 관점에서 보아도 플레이어에게는 정확한 정보를 주어야 하기 때문에 위기가 위기처럼 느껴지지 않을 수 있습니다. 아무리 봐도 뻔한 함정을 던져주면 그냥 피해버릴테니까요.


  이처럼 "게임 플레이"라는 특성은 기존의 스토리텔링 이론을 완전히 망가뜨리고, 게임의 '이야기'를 재미없게 만드는 요인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반대로 "게임 플레이"는 기존의 어떤 스토리텔링 작품에서도 느낄 수 없는 매력을 주는 작품을 만드는데 도움을 줄 수도 있습니다.


  스토리상 파티원이 빠져 버렸을 때 뭔가 아쉬움을 느끼게 함으로써 파티원의 소중함을 느끼게 하고, 보스의 파라미터 하나만으로도(아니, 이름의 색상만으로도) 뭔가 대단하다고 깨닫게 하기도 하죠. NPC들을 찾아다니면서 하나씩 단서를 얻어가며 범인을 찾아나가는 과정은 어떤 추리물보다도 흥미롭게 느끼게 할 수 있습니다. 제한된 시간 내에 답을 선택해야 하는 과정은 초조한 긴장감을 더해주죠. 수많은 플레이어와 함께 레이드를 마치면서 강대한 적에 맞서 힘을 합치는 재미를 줍니다.


  영화 등을 위한 비주얼 스토리텔링이 소설의 텍스트 스토리텔링과 다르고, 만화의 스토리텔링이 애니메이션과도 다르듯, 게임 스토리텔링, 디지털 스토리텔링은 기존의 어떤 스토리텔링과도 다릅니다.


  하지만 '매체'를 통해서 재미있는 이야기를 전달하고, 나아가 주제나 철학이라고 할만한 무언가를 전달한다는 점에서는 차이가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매체가 다른 만큼, 그 매체의 특성을 잘 이해하고 스토리텔링의 매력을 최대한 높이고자 노력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영화 제작자가 되길 바랬던 조던 매크너와 코지마 히데오는 영화의 기법을 게임에 도입하면서 디지털 스토리텔링의 폭을 넓혔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은 동시에 '게임'이라는 매체의 특성을 잘 이해하고 활용하고자 노력했기 때문이지요.



[ 단순한 액션 게임처럼 보이는 슈퍼 마리오. 하지만 게임 스토리텔링으로서의 매력도 전해주었습니다. ]


  마리오나 소닉처럼 대사가 없이도 세계를 구하는 스토리텔링의 매력을 줄 수 있는 것이 게임이며, 단순히 펭귄이 빠르게 돌아다니는 레이싱 게임(남극 탐험)에 약간의 매력을 더함으로써 '펭귄 왕자의 대모험'(꿈의 대륙)으로 완성할 수 있는 것이 게임입니다.



[ 독특한 레이싱 게임으로서 재미를 준, 남극 탐험 ]


[ 남극 탐험의 속편... 남극 탐험의 기본 시스템은 그대로 유지한 채 '펭귄 왕자(?)'의 대모험으로 완성된 몽대륙 어드벤쳐. 디지털 스토리텔링의 매력을 느끼게 한 이 작품은, 마리오에 빠져 게임을 만든 코지마 히데오가 참여한 첫 작품이기도 하다. ]


  게임 시나리오 작가라면, 아니, 게임 기획자, 아니 게임 제작자라면 이러한 점에 대해서 잘 생각하고 이해해야 합니다. 소설이나 영화나 만화 등을 제작하던 이들이 그들의 매체를 기준으로 게임 스토리텔링을 재단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게임 시나리오 작가는 게임 디자이너이며, 게임 제작자여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게임을 많이 해보고 그 특성을 이해해야 합니다.


  게임 시나리오 작가가 되고 싶은 분이 계시다면, 우선은 여러가지 다양한 게임을 보시길 권합니다. 영화 제작자가 되고 싶었던 코지마 히데오가 마리오를 보고 게임 제작사가 되어 대성했듯, 여러분은 게임을 통해 뭔가를 배울 수 있을 겁니다.


  물론 코지마 히데오가 대성하게 된 것은, 게임을 열심히 했기 때문만이 아니라, 소설, 영화 등의 스토리텔링에도 익숙했기 때문이라는 것도 기억해야 합니다.


  소설만 쓰다가 게임 스토리텔링을 할 수는 없지만, 게임만 하고서 게임 스토리텔링을 하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매체로서의 특성은 다르지만, "매체를 통해서 주제와 철학을 전달하고 재미를 준다."라는 스토리텔링의 기본은 다르지 않으니까요.


posted by 별을 좋아하는 표도기

  저는 모 학교 게임 스토리텔링 학과를 맡고 있으며, 이를 하면서 가장 어려운 것은 학생들이 '스토리텔링'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사실은 "자기가 좋아하는 내용의 소설을 쓰는 것"이라는 것입니다.(또는 '스토리 보드 만들기')


  그나마 프로로서 이야기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소설을 쓰는지를 가르쳐 주었으면 하는 느낌인데, 이야기 만들기와 달리 소설 쓰기는 자신이 직접 경험을 하고 노력하는 수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게임 스토리텔링 학과에서 2개의 수업을 진행하면서 보드 게임도 만들고 TRPG도 플레이하고, 게임북도 제작하게 하고... 이야기 만들기를 가르치고, 퀘스트 플로우를 제작하게 하는 등 여러가지 작업을 했지만, 정작 "스토리텔링은 왜 안 가르쳐주나요."라는 질문을 받을 때는 당황할 수 밖에 없습니다.


  플롯이나 구조 등을 통해서, 또는 명제를 이용해서 이야기를 만드는 방법을 다양하게 가르쳐 주고, 세계관과 설정 문서를 작성하고, 이를 기획서로 옮기는 방법이나 실제로 적용하기 위해서 엑셀을 이용해 다이어그램을 작성하고 플래그 등을 구성하는 방법 등에 대해서 가르쳐 주었지만, 학생들에게는 이들이 "게임 스토리텔링"이라는 인식이 약한 것이지요.


  게임시나리오와 관련하여 `퀘스트DB`,`스크립트`,`플래그`,`레벨디자인`,`플로우다이어그램` 등을 얘기하면, 게임스토리에 그런게 필요하냐고 묻는 학생들이 종종 있습니다.


  그런데 학생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현역에서도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특히 "게임 시나리오 작가"라고 활동하시는 분들 상당 수가 소설 쓰기(그것도 아마추어적인 '동호인 소설 쓰기')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게임 시나리오 작가의 프로라면, 주어진 시스템이나 상황, 주제나 설정에 맞추어 이야기를 만들 수 있는 재주가 기본적으로 필요합니다.


  하지만 그보다 중요한 것은 게임 시나리오는 단순히 스토리가 아니라, 게임의 진행과 구성에 대한 흐름(플로우)과 설정을 정의하는 작업이라는 것입니다.


  게임 플레이를 하면서 느낄 수 없다면, 그건 게임 시나리오가 아닙니다. 이따금 "메탈기어 솔리드" 같은 작품을 예로 들어서 대사나 장면의 중요성을 얘기하는 분들이 계시지만, "메탈기어 솔리드"는 잠입 액션이라는 시스템이 뒷받침되어서 비로써 그 장면과 대사가 부각되는 것이라는 점을 잊고 있는 것이지요.




[ 타임즈에서 선정한 20세기 최고의 시나리오 작품인 메탈기어 솔리드. 비주얼 신도 중요하지만, 플레이를 통해 느낌을 전달하는 것에서의 완성도가 중요했다. ]


  이 같은 연출과 상황을 생각하려면 공간 레벨디자인이나 밸런스 디자인까지도 고려해야 하는 것을 생각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게임 시나리오는 게임 기획의 한 부분이며, 당연히 게임 플레이를 생각하고 만들어야 합니다. 무엇보다도 게임 플레이어가 '플레이'를 통해서 느끼게 만들어주어야 합니다.


  게임시나리오를 소설이나 영화대본처럼 생각하고 게임시스템과 플레이에 대한 이해없이 누구나 만들수 있다고 생각한 결과 게임을 모르는 시나리오 라이터가 양산되었고 게임 제작엔 별 도움이 안되는 시나리오(?) 문서가 나왔습니다.


  그리고 그 상태는 지금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도대체 문서가 나왔는데 제작에는 아무런 도움이 안 된다면 그걸 작업할 필요가 있을까요?


  특히 한국에서 게임 시나리오 작가가 무시되는 것은, 그 같은 상황이 계속되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게임 시장의 특성도 있겠지만, 게임 디자인이라는 것을 아예 모르고 생각조차 하지 않고 '자기가 쓰고 싶은 내용'만 쓰는 게임 시나리오 작가(지망생)가 넘쳐났고, 그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인 개발 환경에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정말로 스토리가 좋은 게임이라는 것은 플레이도 재미있는 게임입니다. 플레이만 하더라도, 지문을 모두 읽지 않더라도 그 분위기와 상황을 이해하고 즐길 수 있는 게임이어야 합니다.


  지문으로 정보를 제공하려면 플레이어가 스스로 찾아나서고 그렇게 정보를 얻는 '플레이 과정'이 즐겁고 좋은 게임이어야 합니다.


  "플레이어는 NPC에게 -어지간하면- 말을 걸지 않는다"라는 정도는 이해하고 있어야, NPC를 통해서 정보를 전하는 '플레이'를 구성할 수 있으며, 주변 상황만으로 내가 해야 할 일을 이해하도록 만들 수 있어야 스토리를 '체감'하게 할 수 있다는 점을 생각하면 좋겠습니다.


  NPC의 설정을 충실하게 엮어내고, 이들의 '행동 패턴'만 정리하여 시스템에 맞추어 만들어두기만 해도 플레이어가 NPC에 대해서 궁금하게 만들고 직접 NPC를 찾아가게 할 수 있습니다. 트리거, 플래그, 이벤트 시스템 등을 이해하고 이를 시스템으로 구현하는 기획서를 만들 수 있다면 말이죠.



  대사가 거의 없이 표정 연기 하나, 소품 하나만으로 상황을 전하고, 거대한 배경 세계를 느끼게 해 주는 영화 '매드맥스'처럼, 지문을 일일이 읽지 않고도 느낄 수 있는 게임 세계를 구성하고, 흐름을 만들고, 연출을 해야 한다는 것을 생각해야 합니다.



[ 핸들 하나만으로도 세계의 특성과 재미를 충실하게 엮어낸 매드맥스 시리즈. 좋은 영화일수록 대사가 적다는 것을 잘 인식시켜준다. ]


  훌륭한 영화에 많은 대사가 필요하지 않듯이, 훌륭한 게임도 대사가 많은 것이 아니라, 필요한 대사만 있어야 합니다.


  영화를 좋아하던 조던 매크너가 "카라테카"에서 도입한 비주얼 연출은 게임 스토리텔링의 폭을 넓혀주었지만, 조던 매크너 자신도 비주얼이 게임 플레이를 끊어버릴 수 있다는 것을 인식하고 최소한의 분량만 효율적으로 응용했듯이 무엇보다도 게임 플레이에 초점을 맞추어 시나리오를 작성해야 합니다.



[ 카라테카에서 들어간 연출 장면. 짧지만 플레이의 재미를 더해준다. ]


  제작하시는 분들 모두가 이러한 점을 공유하여, 개발에 도움이 되지 않는 시나리오 문서만 쌓이고, "게임 시나리오는 의미가 없어."라는 인식이 더는 늘어나지 않으면 좋겠습니다.


  게임 시나리오 작가는 게임 디자이너의 일종이며, 무엇보다도 게임의 시스템과 특성, 그리고 플레이에 대해서 잘 이해해야 합니다.



  주어진 상황과 플레이에 맞추어 다양한 이야기를 만들고 정리할 수 있어야 합니다.

  게임 시나리오 작가가 만든 문서는 -혼자 볼게 아니라면- 다른 팀원들이 공유하며 개발에 활용할 수 있어야 합니다.


  소설을 쓰고 싶다면, 게임이 완성된 뒤에 만들면 됩니다. 설사 처음부터 그런 걸 생각해 두었다고 해도 개발 중에는 '시나리오 기획서'가 만들어져야 합니다.


  그래픽 디자이너가 참고할 수 있고, 시스템 디자이너나 레벨 디자이너가 보고 활용할 수 있는 설정 문서, 레벨 디자이너가 구성에 활용할 수 있는 플로우 문서와 다이어그램, 그리고 비주얼 제작자들이 활용할 수 있는 대본과 연출 문서, 시스템 디자이너와 프로그래머가 확인할 수 있는 순서도와 구성 문서...


  당연히 시나리오 작가는 엑셀과 친숙해야 하고, 파워포인트로 기획서를 구성할 수 있어야 하며, 스크립트를 연출할 수 있고, 순서도를 만들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나서 필요하다면 단번에 몇 개의 서로 다른 이야기를 구성하고, 시스템에 맞추어 구성할 수 있어야 합니다.


  설사 내가 판타지 영웅 이야기를 좋아해도, 때로는 포스트아포칼립스의 반영웅적인 이야기를 쓸 수도 있어야 하며, 설정을 구성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 것을 만들지 못하는 게임 시나리오 작가는 게임 시나리오 작가로서 자격이 없으며, 그런 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은 게임 시나리오 작가를 고용하여 쓸 수가 없습니다.


  안타깝게도, 한국에서는 -미국이나 일본에서도 과거에는- 게임 시나리오 작가의 이러한 것에 대해서 생각하지 못하고 있으며, 그로 인해 게임 스토리텔링은 무시되어 왔습니다.


  소설 스토리텔링이 소설이라는 매체를 통해서 주제를 전달하고 즐거움을 주며, 비주얼 스토리텔링이 영상이라는 매체를 통해서 주제를 전하고 즐거움을 주듯, 게임 스토리텔링은 게임이라는 매체를 통해서 주제를 전하고 즐거움을 주어야 합니다.

지극히 당연한 이 사실을 조금이라도 많은 분이 인식하고, 진정한 의미에서의 '게임 스토리텔링'이 정착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소설 작가나 영화 각본가 지망생이 아닌, 진정한 의미에서의 게임 스토리텔링 작가가 많이 늘어나고 좋은 '게임 스토리텔링' 작품들이 늘어났으면 좋겠습니다.

posted by 별을 좋아하는 표도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