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 작품 이야기 2016.11.20 03:52

  내셔널지오그래픽은 1888년 '인류의 지리지식 확장을 위하여'라는 기치 아래 만들어진 내셔널 지오그래픽 협회의 학술지이자, 이를 바탕으로 한 방송 채널입니다.


  과학, 탐구, 교육, 그리고 스토리텔링의 힘으로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것을 확신하며 세계 각지에서 다양한 활동을 진행하고 있죠. 하지만 지구 상의 많은 곳에 인류의 발길이 닿은 지금 내셔널 지오그래픽은 새로운 '지리적 지식 확장'을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바로 영원한 개척지(Final Frontier), 우주를 향하여...


  물론 내셔널지오그래픽은 이전에도 우주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소개했습니다. 아니, 여러 다큐멘터리 채널 중에서도 가장 많은 우주 관련 다큐멘터리를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주로 역사나 리얼리티 쇼에 치중한 히스토리 채널, 신기술과 현대 문화에 집중하는 디스커버리 채널과 비교할 때 내셔널지오그래픽의 우주 관련 다큐멘터리 양은 정말로 압도적이죠.


  하지만 근래에는 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만큼 그 밀도가 높아졌습니다. 단순히 '우주는 이런 곳이야'라는 수준에 머무르지 않고, '우주에 가보자. 가보자.'라고 재촉하는 듯 하거든요.


  그것이 극적으로 드러난 것은 아마도 2013년 "라이브 프롬 스페이스"라는 방송부터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역사상 최초로 우주정거장에서 생방송이라는 이 놀라운 기획은 전세계 동시 생방송으로 화제를 모았고, 수많은 시청자가 '우주의 시간'을 함께 나누는 경이로운 체험을 전해주었습니다.




  하지만 그것으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이듬해 내셔널지오그래픽은 우주에 대한 명작 다큐멘터리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를 리메이크하여 "코스모스 : 우주의 시공간을 초월한 빅히스토리"를 내놓았습니다.


  다큐멘터리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을 제작비가 들어간 이 작품을 선전하기 위하여 내셔널지오그래픽에서는 적지 않은 노력을 기울입니다. 한국에서도 SF 작가인 배명훈씨 같은 분이 광고로서 얼굴을 드러내기도 했지만, 전세계 공통으로 보여진 한 광고의 충격은 가히 상상을 초월했습니다.




  바로... 더락, 아니 버락 오바마가 출연한 겁니다. 한 TV 프로의 광고에, 미국의 현역 대통령이... 물론 닐 타이슨의 말에 따르면 오바마 자신이 이걸 추천하고 싶어서 나왔다고 하는데, 뭐, 유명한 트레키(스타트렉의 광팬)이자, IT전문 잡지의 외부 편집을 맡기도 한 그라면 당연한 일이겠죠.


  하지만 이는 동시에 오바마가 직접 광고로 출연할만큼, 내셔널지오그래픽의 우주 관련 기획이 매력적인 것이었다는 말이 될 겁니다.


  그 후에도 내셔널 지오그래픽은 우주에 관련한 다양한 기획을 보여주었습니다. 2015년 탑키워드 중 하나로 "화성탐사로봇의 위대한 모험"을 선정하여 보여주기도 했죠. 물론 화성탐사로봇 큐리오시티의 놀라운 가능성 덕분이겠지만, 우리는 이 방송을 통해 스리핏과 오퍼큐니티가 얼마나 대단한지를 더 잘 볼 수 있었습니다.


  자... 그러한 내셔널 지오그래픽이 새로운 도전을 시작했습니다. 바로 내셔널 지오그래픽 역사상 최초로 'SF 드라마'를 선보인 것입니다.


  과거에 내셔널지오그래픽은 중국의 역사를 바탕으로 한 팩츄얼 드라마(다큐멘터리와 드라마를 결합한 것) "초한지"를 방송한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실제의 역사가 아닌 가공의 가능성을 바탕으로 만든 일은 없습니다. 대정전이 일어날 가능성을 소재로 한 [블랙아웃]같은 게 있었지만, 엄연히 현실의 과학적 가능성에 기반한 내용이었고 드라마보다는 다큐멘터리에 약간의 드라마 요소를 넣은 정도에 불과했죠. 게다가 1편 짜리였고 말이죠.


  그런데 이번에는 다릅니다. 자그마치 6부작이에요(프리퀼을 포함하면 7부). 그것도 HBO의 명작 드라마 [지구에서 달까지]를 제작한 브라이언 그레이저와 [아폴로 13호]의 감독인 론 하워드가 함께 제작에 참여하여 진행하는 작품으로 말이죠.


  80부작인 "초한지"와 비교할 수는 없지만, 6편짜리 SF 드라마입니다. 그것도 나사나 제트추진연구소, 그리고 일론 머스크의 스페이스X 같은 회사가 적극적으로 협력한 작품. 당연히 기대하지 않을수 없죠.




  자... 그리고 본 방송... 내셔널지오그래픽은, 그리고 제작자들은 결코 실망시키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과학과 재미 두가지를 절묘하게 조화시킨 팩츄얼 드라마를 선보였습니다. 그것도 이제까지의 작품에서도 손꼽는 수준으로...



  우선 "마스 1부". 등장인물의 소개와 함께 화성에 도착하는 장면으로 엮어낸 이 이야기에서 굉장히 흥미로운 연출이 곳곳에 보여집니다.



  우선 이야기를 이끌어나가는 인물들. 잘 보시면 인종이나 국적이 다양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미국이 중심이 되는 건 어쩔 수 없지만, 동유럽계와 남유럽계, 그리고 아프리카계 남성과 동양계 여성이 눈에 띕니다.


  재미있는 것은 사실상의 주역은 바로 동양계(한국계 미국인인 김지혜) 여성인 "승하나". '하나'라는 이름만 봐도 한국계라는 것을 알 수 있는데, 여기에 관제실의 중심에는 그녀의 쌍둥이 누이인(1인 2역.^^) "승 준"이 있습니다.


  게다가 우주 개발을 이끄는 것은 미국의 NASA가 아닙니다. 세계 각지의 우주개발국이 손을 잡고, 여기에 스페이스 X 같은 민간 단체까지 함께 참여하여 구성한 "국제 화성 과학 재단(International Mars Science Federation, IMSF)"과 그 후원을 받아 설립된 "화성 탐사 연합(Mars Mission Corporation)"입니다.


  그 본부와 관제소는 각각 오스트리아의 비엔나(IMSF)와 런던에 자리잡고 있지요.


국제 화성 과학 재단 홈페이지

http://www.makemarshome.com/landing



2033년 5월 9일. 유인 화성 탐사 로켓 발사 성공을 알리는 비즈니스 와이어의 기사.

http://www.businesswire.com/news/home/20160509006208/en/International-Mars-Science-Foundation-Mars-Mission-Corporation


[ 화성에서 전송 중인 실시간 영상. 아쉽지만, 승무원들의 모습은 아직 보이지 않는다. http://www.makemarshome.com/landing?feed=live ]


  으음... 그래요. 그들은 실존하고 있습니다. 2033년의 미래에 말이죠. 홈페이지도, 언론 기사도 결코 거짓이 아닌 것입니다. ^^


  이처럼 내셔널지오그래픽은 이 작품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진심으로 2033년에 저와 같은 일이 벌어질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을만큼...


  드라마 '마스'는 그 같은 내셔널지오그래픽의 열정이 담긴 작품입니다. 제작에 참여한 한 사람, 한 사람이 모두 꿈을 꾸고 자신의 마음을 쏟아부었음을 느끼게 합니다.



  드라마는 2033년의 상황과, 2016년의 인터뷰를 번갈아 보여주며 진행됩니다. 2033년에 이야기가 펼쳐지고, 2016년에 수많은 전문가가 남긴 이야기를 통해 과학적인 가능성을 제시하는 것이지요.



  NASA와 제트추진 연구소, 그리고 일론 머스크의 스페이스 X가 진행한 무수한 시도의 결과물들도 함께 보여지면서 우주 여행이 결코 쉽지 않음을... 하지만 가치가 있음을 보여줍니다. 그것은 물론 2033년의 상황에서도 마찬가지죠.



  그들에게는 온갖 위험이 닥칠수 있음을, 그리고 실제로 다가옴을 보여주니까요.



  그럼에도 우리는 화성으로 가야 한다고 이 드라마는 이야기합니다.


  "우리는 화성에 가야 합니다. 멸종을 막기 위해서죠. 지구 상에서 인류는 여러가지 원인으로 멸종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하지만 두 행성에 나누어 산다면, 멸종 확률은 0에 가까워 지죠."



  우리나라에서도 인기높은 소설, "마션"의 작가인 앤디 위어가 출연하여 이렇게 말합니다.


 

  하지만 화성에 가려는 것은 오직 그 때문은 아닙니다. 그것은 바로 인류 역사상 최고의 모험이기 때문이며, 바로 화성이 거기에 있기 때문입니다. 케네디 대통령이 말했듯이, 그것이 쉽기 때문이 아니라 그것이 어렵기 때문입니다.


  "꿈 같은 일이잖아요."

  "아멜리아 이어하트가 말했죠. 모험은 그 자체로 가치가 있다고요."

  "실패하더라도, 다음 사람을 위한 길을 닦아놓을 수 있겠죠."





  대모험을 앞둔 조종사들의 인터뷰도 종종 이어지면서 이야기에 깊이를 더합니다.



  그리고 2033년. 드디어 인류는 화성에 발을 딛습니다.




  하지만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모험은 아직 끝난 것이 아닙니다. 이제 고작 시작의 문턱을 겨우 넘었을 뿐이지요.


  영화 [마션]에서 어디를 가던 자신이 최초로 그곳에 발을 디딘 사람이라고 했듯이, 이곳에서도 모든 것은 처음입니다.

 

  "화성에 처음 착륙하게 될 사람들을 만난다면 그 점을 기억하라고 해 주고 싶어요. 그들이 보게 되는 모든 것은 인류가 최초로 보는 것이고 우리가 최근까지도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던 그야말로 꿈 같은 경험을 하는 거라고요. 더 이상 SF 속 이야기가 아니에요."

  "이 세상에는 모험을 즐기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 사람들은 위험을 평가하면서 보상도 함께 평가합니다. 그 보상 때문에 위험을 감수할 가치가 있다고 판단되면, '그래, 위험한 일이고 어쩌면 죽을 수도 있지만 아무도 안 해 본 일을 하는 거잖아. 그렇다면 해볼 가치가 있나. 물론이지.'"



  그렇게 '마스'의 첫 이야기를 막을 내렸습니다. 이제 그들은 화성에 내렸고 다음 여정을 떠나야 할 때입니다. 밤이면 기온이 영하 70도 이하로 곤두박질치는 곳에서, 오직 저 멀리 보이는 파란 점만을 의지삼아서 하루 하루 살아나가야 합니다.


  과연 '마스'의 이야기는 어떻게 진행될까요? 잘은 알 수 없지만, 6편 하나하나의 이야기가 결코 놓칠 수 없는 순간이라는 것은 분명한 것 같습니다.



  내셔널 지오그래픽의 드라마 '마스'는 그들이 생각하는 이상을 펼쳐내는 이야기입니다. '인류의 지리지식 확장을 위하여'라는 그들의 모토는 바로 이 작품 속에 살아 숨쉬며 우리를 이끌어줍니다.


  "인간은 꿈을 꿉니다. 미지의 세계를 발견하고자 하는 욕망이 우리의 DNA에 새겨져 있죠. 우리는 대양을 건너고 하늘을 정복했습니다. 지구 상에 미개척지가 더 이상 남지 않았을 때, 우리는 별들을 향해 날아갔습니다."



  '마스'는 우주 저편을 향한 우리의 DNA를 자극하는 그런 작품입니다. 다음 토요일 11시 다음 이야기를 기대합니다.



추신) 마스는 내셔널 지오그래픽 채널에서 매주 토요일 11시에 방송합니다. 한번으로 끝나지 않고 재방송을 하며, 일요일 10시에도 다시 재방송하는 것 같습니다. 혹시라도 첫 방송을 놓치셨다면 꼭 재방송을 보시길 권합니다.

posted by 별을 좋아하는 표도기
SF 이야기 2016.11.09 17:10

미국 대선이 종식되었습니다.


참 충격적인 결말이지만, 이미 일어난건 어쩔 수 없죠.


중요한 것은 이 결말 이후입니다. 우리는 아직 몸과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았습니다.


[ 디트로이트의 현재. 기대하세요. 이제 세계 전역이 이렇게 바뀔 것입니다. ]



이에 대비하기 위한 작품을 소개해 봅니다.


- 소설 분야

1. 울

2. 더 로드

3. 루시퍼의 해머

4. 해변에서

5. 트리피드의 날

6. 핵전쟁 뒤 최후의 아이들

7. 최후의 날 그후


- 만화 분야

1. 생존게임

2. 드래곤 헤드

3. 브레이크 다운

4. 일본 침몰

5. 소년 표류 EX

6. 북두의 권

7. 모래돌이


- 영상 분야

1. 매드맥스

2. 나는 전설이다.

3. 그날 이후

4. 혹성 탈출

5. 뉴욕 탈출

6. 소년과 개

7. 설국 열차


- 게임 분야

1. 라스트 오브 어스

2. 스토커 트릴로지

3. 메트로 2033 시리즈

4. 폴아웃 시리즈

5. 웨이스트랜드 시리즈

6. 레이지

7. (아이 홀로 생존 게임을 진행하는...) 포켓몬스터.... 



그리고 무엇보다도..


Make America Great Again: The Trump Presidency


를 해 봅시다......-_-;;;;;;;;;;;;;;;;;;;;;;;;;;;;;;;;;;;;;;




posted by 별을 좋아하는 표도기
SF 이야기 2016.10.31 21:49

  저는 한국 SF에서 팬이나 작가, 그리고 시장도 부족하지만, 무엇보다도 '목소리'가 부족하다고 이야기했습니다.


  안타깝지만, 한국 SF 분야에서는 '전문가 풀'이라는 시스템이 존재하지 않으며(이걸 제시할만한 협회나 기관도 없습니다만.) 설사 있다고 해도 여기에 등록할 수 있는 분들은 많지 않습니다. 적어도 공공 기관에서 인정하는 방식을 적용한다면 말이죠.


[ SF 어워드 2015 행사. ]


  그러다보니 심사 위원으로서 항상 똑같은 분을 보게 됩니다. 안타깝지만, 현재 한국 SF 분야에서 이런 쪽에서 활동하시는 분들은 정말로 한정적이기 때문입니다. 적어도 대중이나 관청에서 바라볼 때는 말이죠.


  SF 어워드에 대한 논란은 바로 이러한 상황에서 나왔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왜 항상 같은 분들이 심사를 맡느냐?'

  '왜 다른 SF 작가 같은 분들은 심사를 맡지 않느냐?'

  '왜 SF를 모르는 분들이 심사를 맡느냐?'


  이 모든 문제는 결국 대중이나 관청, 아니면 기관에서 생각하는 SF 전문가의 폭이 매우 좁다는 점에서 나옵니다. 그 결과 심사는 항상 같은 분들이 맡고, 조금만 심사위원의 폭을 넓히려고 하면 뭔가 부족하게 느껴질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SF 어워드처럼 '기성 작가들의 작품'에 대한 대상은 어떻게 심사하는게 좋을까요?


  이에 대해 생각하기 위하여 저는 미국과 일본의 수상 시스템(물론 중국도 포함)에 대해서 한번 정리해 볼까 합니다.



  미국과 일본, 그리고 중국에는 SF에 대한 여러가지 상이 있습니다.


  크고 작은 상이 매우매우매우 많지만, 국내에서도 잘 알려진 것으로는 다음과 같은 것이 있습니다.


1. 미국 : 휴고상, 네뷸러상


2. 일본 : 성운상, SF 대상


3. 중국 : 중국성운상(중국인 성운상), 은하상


  이들 상을 선정하는 기관이나 단체, 그리고 자세한 내용은 다르지만, 이들의 선정 방식은 어느 정도 비슷합니다. SF 잡지(과환세계)에서 선정하는 '은하상'을 제외한 여러 상은 다음과 같은 단계로 진행합니다.



1) 특정 기관, 단체에서 투표로 후보작을 선정


2) 결선 투표, 또는 결선 심사로 최종 작품 선정



  예를 들어 네뷸러 상은 미국 SFWA(SF 작가 협회)의 협회원들이 투표로 선정합니다. 물론 작가 협회에 속하지 않은 작가 작품도 대상이 됩니다.


   네뷸러상과 비슷한 것이 일본의 SF 대상입니다. 일본 SF 작가 협회의 협회원들이 투표로 후보작을 선정합니다.


  성운상과 휴고상, 그리고 중국 성운상은 팬투표에 의해서 후보작이 선정됩니다.


  휴고상은 월드콘에 등록한 사람들이 1차 투표로 후보작을 선정합니다. 월드콘에 등록할 때 여러가지 형태가 있는데, 실제로 대회에 참가하지 않더라도 관련된 


  성운상은 일본의 '팬 그룹 연합회'에 소속된 팬 그룹에서의 투표로 후보작을 선정합니다.


  중국 성운상도 중국의 팬 투표를 거쳐서 후보작을 선정합니다.


  이렇듯, 대다수 상은 작가나 팬에 의한 단체 투표로 1차 후보작을 선정하는 시스템을 갖고 있습니다.



  최종적인 선정 방식에는 다소 차이가 있습니다.


  휴고상, 성운상은 모두 월드콘과 일본 SF 대회에 참가 신청을 한 사람을 대상으로 팬 투표가 진행됩니다. 각각의 행사는 참가비가 낮지 않습니다.(게스트는 예외) 다시 말해 그만큼 돈을 낼 수 있는 사람만 투표를 할 수 있습니다. 팬들이 중심이기 때문에 '인기상'의 성격이 가장 강하게 드러납니다.


  네뷸러상과 일본 SF 대상은 다시금 작가 협회 회원들의 투표로 최종 작품이 선정됩니다. 작가 협회는 보통, 소설가, 번역가, 평론가 등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인기상'보다는 '작품상' 성격이 더 강하다고 할 수 있겠군요.(물론 본인의 작품에 투표하는 건 금지됩니다.)


  중국 성운상은 뽑힌 후보 중에서 최종적으로 심사위원들에 의한 선정을 거쳐서 뽑힙니다. (한가지 특이한 것은 수상 대상이 매우매우매우 많다는 거죠. 이를테면 SF 단체에 수여하는 단체상이라던가, 신인상, 공로상에 특별 공로상이 따로 있습니다.)



  이렇게 볼때 중국 성운상과 은하상을 제외하면 대다수 SF 대상은 '단체 투표'에 의해서 선정되는 것이 특징입니다.


  '단체 투표' 방식에는 단점도 있습니다.


  이를테면 '작품성은 좋지만, 눈에 띄지 않는 작품'은 선정되기 어렵다는 것입니다.



  팬들이 좋아하는 작품을 선정하는 인기상 형태의 휴고상, 성운상은 그래도 좋다고 할 수 있겠지만, 그래서는 단순히 '베스트셀러상' 느낌에서 벗어나기 어렵습니다.


  이를 보완하고자 각각의 상은 모두 2차례 이상의 투표 과정을 거칩니다. 첫번째 투표는 1~3월 정도에 진행되고 후보 발표를 거쳐, 두번째 투표가 5월 정도에서 행사 당일까지 진행합니다.


  즉, 첫번째 투표를 통해서 후보작을 소개함으로써, 어떤 작품을 뽑을지 알릴 시간을 준다는 것입니다.



  어차피 SF 작가라고 해도, 그리고 10만원, 20만원씩 내면서 행사에 참여하는 SF 팬이라도 후보작 모두를 보지는 못했을 겁니다. 하지만, 후보작을 소개하면 그것만으로도 해당 작품들을 접하기 위해 노력하는 효과가 있습니다.


  적어도 10만원, 20만원씩 내면서 SF 행사에 참여하는 팬이라면 5~6작품의 후보작은 다 사볼 가능성이 높습니다.


  저는 여기에 휴고상이나 네뷸러, 성운상과 SF 대상 같은 상들의 개성과 장점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심사위원이 따로 없기 때문에(물론 투표가 공정하게 진행되도록 관리하는 관리 위원회도 있습니다.) 어느 한 두 사람에 의해서 작품이 선정되는 일이 없습니다. 인원이 제한되다보니 단체표에 의한 부정이 없다고 볼 수 없겠지만, 그게 수천명에 이르게 되면 아무래도 쉽지 않습니다.


  결과적으로 SF팬들이, 또는 SF 작가들이 좋다고 생각하는 작품이 선정될 가능성이 높아집니다.


  뿐만 아니라, 후보작 자체가 먼저 알려지게 되고, 이를 투표해야 하는 만큼, 사람들이 사전에 그 작품을 볼 가능성이 높아집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들 상은 '후보작'에 오른 것 만으로도 판매량이 대량으로 증가합니다. 휴고상이라면 3000여명의 팬들, 성운상이라도 1000여명의 팬들이 그 작품들의 구매 후보자들이니까요. 게다가 후보작이라는 이야기는 설사 행사에 참여하지 않아도 그 책을 살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말이 됩니다. (이 자체가 작가에게는 '인세'를 높여주는 효과가 있습니다. 물론 일본 SF 대상처럼 스폰서가 있는 상은 상금도 있습니다만.)


  하지만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이들 상을 '팬들'이나 '작가들'이 함께 뽑는 기분을 준다는점입니다. 우리가 뽑은 작품, 우리가 추천한 작품이 되는거죠.



[ 휴고상을 받고 기뻐하는 작가들. 왼쪽부터 데이브 하트웰, 찰스 N. 브라운, 코니 윌리스. ]


  휴고상이나, 네뷸러상, 그리고 성운상과 일본 SF 대상이 시작될 때 제각기 '공정성'에 대해서 고민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들은 심사위원이라는 소수의 권위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팬의 힘, 작가의 힘을 믿었습니다.


  SF를 진정으로 좋아한다면, 그 후보작을 모두 사서 보고 제대로 평가해 줄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리하여 이들 상은 각각 그 나라에서 SF 부문의 권위가 되었습니다.



  작가가 심사를 맡는게 마땅하다면, 한 두명의 권위있는 작가가 아니라, 수십 명의 작가가 함께 참여하는 것이 더 좋을 겁니다.


  팬이 심사를 맡는다면, 몇 명의 권위있는 팬이 아니라, 수백, 수천명의 팬이 함께 참여는 것이 더 좋을 겁니다.


[ 한명의 팬이 만들어낸 '암흑성운상' 시상식. 행사 그 자체에서 재미있는 무언가를 시상하는 것도 가능합니다. ]


  그럼으로서 SF 시상식은 축제가 됩니다. 여럿이 웃고 즐기며 함께 SF를 보고 노는 잔치가 됩니다.


  즐거운 자리가 될수록 사람들은 더욱 오래 머무르고, 더 새로 찾아오게 됩니다.



  좋은 SF를 고르는데, 권위가 필요하지 않습니다. SF는 심각하고 고민하며 보는게 아니라 즐겁고 재미있게 보는 것이니까요.


  성운상 처럼 라이트 노벨도 선정될 수 있고, 휴고상처럼 판타지도 -SF팬이 보기에 재미있다면- 뽑힐 수 있는 상.


  우리가 함께 만들어가는, 그런 상을 만들어야 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것이 진정한 의미에서의 '한국 SF 인기상'이 될 수 있을테니까요.

posted by 별을 좋아하는 표도기
SF 이야기 2016.10.30 15:59

  과천 과학관에서 SF 어워드가 끝나고 여러 가지 이야기가 있습니다. 특히 심사위원에 대한 논의가 눈에 띄는군요.


  과천 과학관 SF 어워드 심사 위원은 본래 5명이 진행했습니다. 하지만 올해는 15명으로 늘어났습니다. 심사위원에 부담이 많다는 문제(이를테면, 올해 단편상의 심사 대상은 100편이 넘습니다. 기존에 상을 받은 작품 같은 걸 모두 제외해도 말이죠.)도 있지만, 그보다는 심사위원의 숫자가 적으면 그만큼 의견이 편중될 가능성이 높다는 문제가 있습니다.


  전부터 이야기가 되었고, 작년 말과 올해 초 SF 어워드에 대한 자문 회의가 있을 때에도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그래서 올해는 15명이 되었습니다. 문제는 그 심사위원을 어떻게 구성할 것인가 하는 겁니다. 과천과학관의 상이기 때문에 제약이 많습니다. 특히 소설 부분의 심사 위원 선정에 어려움이 있습니다.


  우선 SF 작가나 출판 관계자는 어렵습니다. SF 어워드는 공모전이 아니라 실제 나오고 있는 작품에 관련된 상이기 때문입니다. 설사 그 해에 작품을 쓰지 않거나, 출판하지 않았다고 해도 가능한 제외해야 겠지요.(무엇보다도 심사위원이 선정되는 시점에서 대상 작품이 모두 선정되는 것도 아니니까요.) 작가들과 친분 관계가 깊은 사람들도 제외하는 게 좋을지도 모릅니다. 과학관이라는 공공기관인만큼 특히 이런 문제에 민감할 수 밖에 없습니다. 비슷한 뜻에서 서점 관계자도 제외하는게 좋을 겁니다. 번역만 하시는 분들이라면 어느 정도 가능하겠지만, 숫자가 적습니다.


  그러면 주로 평론가라던가, 해당 분야의 활동자로 한정됩니다. 그것도 과학관에서 인정할만한 경력이 필요합니다. 최소한 어느 정도의 단체에서 어느 정도 지위에 있거나, 대중언론(신문, 잡지)에 꾸준한 활동이 있는 사람이어야 할 것입니다. 아니면 대학교의 교수나, 관련된 박사 학위를 갖고 있거나...


  안타깝지만, 대한민국 SF 분야에서 이러한 분은 몇 안 됩니다. 1회부터 심사위원을 맡아온 박상준님, 고장원님 정도죠.(과거에는 홍인기님이나 김상훈님 같은 분도 계셨고, 교수나 박사 쪽으로 생각하면 좀 더 넓힐 수 있습니다만. 일단 활동이 별로 눈에 띄지 않습니다.)


  이 두 분을 빼고 SF 관련 책을 낸 분이 얼마나 있나요? 신문이나 잡지에 기고하는 분들은? 웹진을 포함해 SF 전문 사이트/블로그조차 거의 없고, 커뮤니티도 하나 뿐입니다.


[ 도서관에서 촬영. (출처 : http://mirror.pe.kr/index.php?mid=webzine6&category=28262&document_srl=28987 )

http://mirror.pe.kr/index.php?mid=webzine6&category=28262&document_srl=28987  ]


  박상준님은 오래 전부터 많은 활동을 해왔습니다. 오멜라스 출판사, 월간 판타스틱 등을 준비하기도 했고, 영화제 진행에도 많이 참여했습니다. SF 분야에서는 가장 발이 넓지만, 그만큼 활동도 많은 분입니다. SF 아카이브라는 이름으로 SF의 역사 자료를 충실하게 갖추신 분이기도 하죠. 대학교에서 대중과학 관련 강의도 하고 계시고요. 너무 활동이 많다보니 최근에는 잡지나 신문 기고 이외에는 저술 활동이 없으신 게 참 아쉽습니다만...


[ 발표 중인 고장원님. ( 출처 : http://imnews.imbc.com/fullmovie/fullmovie05/child/2665783_6631.html ) ]


  고장원님 역시 많은 활동을 한 분입니다. 이전부터 여러 강연, 강의에 참여하셨고, 일찍부터 다양한 책을 쓰셨으며, 지금도 책을 내고, 신문, 잡지 등에 SF 기사를 쓰고 계십니다. 적어도 저는 SF 소설 분야에서 고장원님만큼 깊이 아는 분은 별로 만나지 못했습니다. 하루는 이런 일이 있습니다. 어떤 분이 ‘이러이러한 이야기를 쓰고 싶어서 참고할만한 소설이 있나?’라고 물어보자, 그 자리에서 그와 관련한 여러 작품 얘기를 하면서 왜 그 작품이 좋은지 한참동안 이야기 하시더군요.


  요즘의 SF 팬들에게는 잘 알려져 있지 않을지도 몰라요. 하지만 인터넷만 검색해 보면 압니다. SF와 관련하여 최근 언론에 이름이 나오는 것은 –작가를 제외하면- 이 두 분, 아니면 저 뿐입니다.


  제 이야기가 나왔네요. 저는 PC 통신 시절 활동도 있었지만, 인터넷상의 SF 모임을 만든 지 20년 가까이 됩니다. SF&판타지 도서관을 만들어 운영한지는 8년째네요. 동인지를 몇 번 만들고, 미래경이라는 잡지를 4번째 출간. 단편집을 두 권 기획해서 냈습니다. 주로 게임 쪽 책을 냈지만, 최근에 판타지, 그리고 SF 쪽의 책을 냈고 양쪽 다 새로운 책들을 쓰고 있습니다.


  이만하면 충분하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저로서는 ‘최소한의 기준’ 밖에는 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SF 분야의 전문서는 고작 1권 밖에는 내지 못했고, 대중언론에 기고한 원고도 몇 개 안 되기 때문입니다.(사실 제 경우는 소설 부분의 심사위원으로는 맞지 않습니다. 개인적으로는 희망하지만, 저는 심사 대상이 될 수 있는 단편집 ‘조커가 사는 집’과 ‘미래경 4호’의 출판 관계자거든요. 그게 아니라도 여러 출판사와 협력 관계에 있거나 하다는 문제도 있습니다.)


  블로그나 커뮤니티에 글을 쓰는 것으로는 충분한 자격을 갖는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원고료를 받고 자기의 이름으로 책을 내고 돈을 내고 산 독자들에게 칭찬이나 욕을 들어봐야 합니다. 블로그에 평을 많이 쓴다고 해서 평론가가 되는 건 아닙니다. 블로그 운영을 몇 년씩 한다고 해서 프로로서 인정받는 것은 아닙니다. 원고료를 받고 글을 쓸 수 있게 되지 않으면, 프로라고 불릴 수 없습니다. 그것도 친분 관계가 아니라 전혀 모르는 사람이 글을 맡길 수 있을 만큼 이름이 있어야 합니다.


  안타깝게도 대한민국에는 그러한 사람이 거의 없습니다. 작가를 포함해도 한줌 밖에는 되지 않습니다.


  대한민국에는 더 많은 SF 전문가가 필요합니다. SF 팬들만, 친구들만 인정하는 전문가가 아니라 대중이 인정하고 대중 언론이나 공공기관에서도 믿고 일을 맡길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합니다.

  SF 어워드 심사 위원 후보가 너무 많아서 고민하게 만들어야 합니다.



  한국 SF는 많이 발전했습니다. 이번 SF 어워드에서 단편 심사 대상이 100편을 가볍게 넘고 있으며, 장편도 적지 않습니다. 만화나 드라마, 영화 같은 다른 미디어 작품이 많지 않은 건 아쉽지만, 그 역시 관심을 보이는 이들이 적지 않지요.


  그만큼 SF인들 사이에서 다양한 목소리가, 더 큰 목소리가 있어야 합니다.


  SF 블로그도 더 늘어나고, 커뮤니티도 많이 만들어지고, 잡지가 없다면 웹진이라도 많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다양한 목소리가 다채롭게 흘러나오고 서로 이야기를 나누며 즐기는 문화가 필요합니다.


  팬들이 모여서 떠들고 놀 수 있는 행사가 열리고, 모임이 진행되어야 합니다.


[ 북적대는 분위기의 SF 어워드 2014. 공공기관에서 이런 행사를 열 수도 있지만, 팬들 자신이 열 수 있어야 한다. ]


  그래서 다른 사람들이 ‘저 동네는 왜 저렇게 웃음이 가득한가?’라고 궁금하게 만들어야 합니다.



  SF는 재미있는 겁니다. 즐겁고 흥미로운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만 즐기고 혼자 노는 것보다는 여럿이 같이 할 때 더 좋은 것이죠?


  이를 위해서도 내년에는 더 많은 SF 이야기가 쏟아져 나올 수 있기를 바랍니다.

posted by 별을 좋아하는 표도기

  오래 전 한 롤플레잉 게임을 할 때의 일입니다. 당시 울티마나 바즈테일 같은 게임에 빠졌던 저는 화려한 그래픽과 스토리 연출을 제공하는 게임에 몰입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던전을 탐험하던 중, 갑자기 강제 전투가 벌어졌죠. 적은 그다지 강해 보이지 않았지만 쉬운 상황은 아니었습니다. 던전 안에서 생명력과 마력은 꽤 떨어진 상태였고 회복약은 많이 소비한 상태였거든요.


  하지만 투지에 불타는 저는 마음을 다잡고 전투에 돌입했습니다. 회복약으로 생명력을 회복하고 디버프를 걸고, 버프로 능력을 높이면서 맞서 싸웠죠. 분명히 효과를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게 왠 일입니까? 아무리 때려도 잘 맞지 않고 적이 때릴 때는 100발 100중. 게다가 한방에 죽기 일보 직전... 결국 회복약을 모두 써 버리고 회복시킬 마력도 떨어진 상태에서 전멸하고 말았습니다.


  으음... 분한 일입니다. 기어코 이기고 말겠다고 다짐한 저는 일단 데이터를 불러냈고(로딩), 레벨을 열심히 높였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지금으로서는 도저히 상대가 안 되어 보였으니까요. 그리고 던전의 몬스터 따위는 가볍게 물리치게 된 시점에서(당연히 잡아봐야 경험치도 거의 안 나오는 상태에서) 다시 도전했습니다.


  그러나 이번에도... 그렇게 두번쯤 반복했을까요? 결국 게임을 포기하고 말았습니다. "뭐 이런 개x 같은 난이도가 다 있어."라면서 말이죠.


  얼마 후, 저는 우연히 그 게임의 공략집을 보게 되었고 깨달았습니다. 그 전투는 설사 제가 최고 레벨로 높여도 이길 수 없는 전투라는 것을. 스토리상 무조건 패배하고 사로 잡힌 후에 탈출하여 특별한 아이템을 얻은 후에 다시 도전해야 하는, 그런 전투였던 것입니다. 보스보다도 더 강력한 존재. 그야말로 '절대 무적 보스'였던 것입니다.


  그 후 공략집을 보면서 다시 도전해서 완수하였고, 그후엔 비슷한 상황의 게임이 나올때마다 일단 스토리상 이길 수 있는지 아닌지를 확인하고 다시 도전했습니다. 조금 싸워보면 알긴 하지만, 어차피 이기지 못할 거 처음부터 포기하고 맞아 죽는게 훨씬 나았으니까요.


  왜 이렇게 질수 밖에 없는 존재를 등장시키는 것일까? 재미있게 즐기면서도 그런 의문은 가시지 않았습니다.


[ 그래요. 차라리 순순히 금을 바치고 말겠습니다. 어차피 이기지 못할거라면. ]


  그러던 중 한 글을 보게 되었습니다. 바로 ‘이야기를 재미있게 만들려면 주인공을 위기에 빠뜨리고 실패시키면 된다.’라는 내용이었습니다.


  흔히 실패는 패배이자 절망이라고 생각하지만, 주인공이 실패하고 위기에 빠지면서 그 상황을 극복하고자 노력할 때 좀 더 재미있는 이야기가 탄생할 수 있다는 거죠. 


  실패하지만 굴복하지 않고 다시 일어나는 장면을 통해서 우리는 더욱 주인공들을 응원하고 그들의 진정한 성공에 기뻐하게 됩니다. 


  무조건 성공하는 이야기는 재미가 없습니다. 아니 보는 동안 -대리만족이란 느낌으로- 재미있게 느낄지 모르지만, 다 보고난 후에 감동이 없고 공허한 느낌을 받습니다. 시련도 위기도 실패도 없는 이야기는 진실미가 없고 인간적이지 않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그렇다면 게임도 그런 것이 아닐까요? 확실히 게임에서도 주인공이 위기에 빠지거나 실패할 때 조마조마하고, 초조한 기분이 듭니다. 그리고 그 위기를 극복하고 성장했을 때 주먹을 쥐면서 기뻐하기도 하죠.


  ‘절대 무적 보스’는 분명 그런 목적에서 존재하는 것입니다. 주인공, 플레이어 캐릭터가 실패하고 극복하는 과정을 그려내기 위해서...



  그런데 정말로 그게 필요한 것일까요? 절대 무적 보스는 이름 그대로 절대로 이길 수 없는 존재입니다. HP가 무한대이거나, 방어력, 또는 회피율 무한대라서 설사 최종 보스를 이길만한 실력이 있어도 이기지 못합니다. 회복약을 사용하고 버프나 디버프로 능력을 높이는 건 죽는 시간을 연장시켜 줄 뿐. 가치가 없습니다.


  게임을 진행하는 플레이어는 그게 절대 무적 보스인지 아닌지 알 수 없습니다. 열심히 싸우고 죽은 뒤에, 스토리가 나온 다음에야 절대로 이길 수 없음을 알게 되죠. 아니면 저처럼 공략본을 보고 난 후에야 알 수 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시련을 극복하는 보람’을 느끼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닐 것입니다. 아마도 허탈함, 분노만 느끼게 되지 않을까요?


  그러니까 스토리로서의 매력이 아니라, 불편한 시스템, 혼란한 시스템이 되어 버리고 맙니다. 분명히 실패 후에 극복이라는 스토리텔링의 원칙을 적용한 것인데, 왜 그 매력을 느끼지 못하는 것일까요? 


  그건 게임이, 영화나 소설처럼 단순히 보는 것이 아니라, 직접 참여하는 것에서 나온다고 생각합니다.


  게임 플레이어는 관객처럼 가만히 있지 않습니다. 직접 캐릭터를 조종하여 시련에 맞서고 대결합니다. 플레이어의 입장에서 눈앞에 놓인 장애는 모두 극복할 수 있는 것, 극복해야 할 것입니다. 어떻게든 깨뜨릴 수 있고 넘어설 수 있게 마련이라고 생각합니다. 처음 보자마자 그것이 ‘불가능한 장벽’이라고는 그 누구도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어떻게든 뛰어넘으려 합니다. 한 번에 실패하면 다시, 다시, 그야말로 넘을 때까지 도전하거나 결국 포기합니다. 나중에 그것이 절대로 넘을 수 없는 시스템 상의 장벽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시련을 극복하는 보람’을 느끼기는 쉽지 않을 것입니다.


[ 지옥 같은 난이도로 유명한 마계촌. 물론 이걸 하는 건 플레이어의 선택이죠. ]


  설사 한번 그것을 체험하더라도 다음 번에 같은 경우라는 보장은 없습니다. 너무 힘들어서 포기했는데, 그냥 죽어 버리는 상황도 있을 겁니다. 분명히 절대 무적 보스라고 생각하여 포기했는데, 허무하게 게임 오버를 맞이했을 때 역시 기분이 좋지 않겠지요. 죽은 다음에 다시 도전한다고 해 봐야 ‘시련을 극복하는 캐릭터’는 되지 않을테니까요.


[ 이 상황에서 이어서한다고 해서 '실패의 극복'이 되진 않겠죠. ]



  그렇다면 이 문제를 극복할 수 있을까요? 오픈 월드 게임으로 유명한 GTA5에서 한가지 사례가 있습니다.


  여기서 주인공은 젊은 흑인 청년 플랭클린과 중년의 백인 남성 마이클입니다.(사실은 1명 더 있습니다만) 플랭클린이 어쩌다 마이클과 친해져서 그의 집을 찾아갔는데, 갑자기 누군가가 속옷 차림에 달아나고 마이클이 쫓아갑니다. 플랭클린에게 차를 운전하라면서 말이죠. 마이클이 자기 아내와 테니스 코치가 바람 피는 것을 발견하고 복수하러 쫓아가는 겁니다.

  그리고 코치를 추적하여 아주 과감한 짓을 벌이죠. 바로 벼랑 끝에 튀어나온 집의 기둥을 자동차로 당겨서 무너뜨려 버리는 겁니다. 그런데 사실 그 집은 코치의 집이 아니었습니다. 바로 마피아 카르텔의 보스 정부의 집이었던 것이지요. 부하들이 추격을 하고 총격전이 벌어집니다. 한 명은 운전하고, 한 명은 총으로 응사하며 도주에 성공. 집에 돌아오지만, 카르텔의 추격자는 결코 따돌리지 못했습니다.

  보스가 부하들과 함께 찾아온 것입니다. 자 이게 어떻게 할까요?


  어떻게 하고 자시고도 없습니다. 카르텔의 보스와 맞선다고 해서 이길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적어도 무기 하나 변변히 없는 상황에선 말이죠. 과감하게 싸워서 죽을 수도 있지만, 여기서 플레이어가 보스에 맞설 방법은 없습니다. 일방적으로 두들겨 맞고 ‘돈을 내놓으라.’라는 말을 듣게 되죠. 마이클은 도저히 갚을 수 없는 막대한 돈을... 이래서 GTA5의 이야기는 시작되는 것입니다.



[ 카르텔의 보스한테 덤비면 죽는다는건 싸워보지 않아도 알게 마련이죠. ]


  마이클에게 있어 보스는 ‘절대 무적 보스’입니다. 싸운다면 반드시 패할 적수죠. 하지만 그 사실을 확인하기 위해서 ‘플레이’를 할 필요는 없습니다. 어차피 패할 적수, 헛수고를 시험해 볼 필요는 없으니까요. 중요한건 여기서 일단 굴복한 마이클이 보스에게 엉망으로 깨지고 나중에 복수한다는 사실이지, 그에게 엉망으로 깨지는 과정이 아닙니다. 그걸 게임 플레이로 보여줄 필요는 없는 것입니다.


  롤플레잉 게임의 ‘절대 무적 보스’도 그렇게 하면 안 될까요? 그냥 스토리로 패배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끝내면 안 될까요?



  게임에는 두가지 실패가 있습니다. 하나는 플레이어의 패배, 또 하나는 캐릭터의 패배입니다.


  마피아 보스와 이길 수 없는 싸움 끝에 패배하는 것은 캐릭터가 아니라 플레이어의 잘못이자 패배입니다. 분명히 절대로 이길 수 없는 싸움이지만, 플레이어는 그 사실을 모릅니다. 결국 전투에 패했으니 -제 아무리 스토리상 정해진 것이라도- 플레이어는 자기가 실패했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상황을 마주했을 때 그것이 스토리상의 패배라고 납득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플레이어가 열심히 싸웠음에도 패배한 것이니까요. 아무리 그 뒤에 주인공이 사로잡히고 탈출하는 스토리를 둔다고 해도(또는 마왕이 ‘흥, 별거 아니군.’이라며 놔준다고 해도) 석연치 않은 느낌이 들고 찜찜하겠죠.


  반면 적의 보스에게 아군이 사로잡히거나 하는 것은 캐릭터의 실패입니다. 이건 이야기 흐름상 존재하는 것이고 플레이어가 잘못한 결과물이 아니죠.


  캐릭터는 대개 죽지 않으며(죽었다가 부활하기도 하지만) 플레이는 끊어지지 않고 계속됩니다. 플레이어 역시 실패한 사실에 대해 고민하지 않고 캐릭터 플레이를 이어갑니다.(물론 게임이 어렵다며 던져버리지도 않습니다. 가끔 '개X같은 스토리'라면서 욕하고 내던질 수는 있지만 말이죠.)


[ 스토리에 의해 갇히면 당연히 누군가가 구조하러 등장하게 마련이죠. ]



  스토리상 캐릭터가 실패하는 것은, 일시적으로 좌절하지만 결국 이를 극복하고 다시 도전하여 최종적으로 성공한다는 점에서 영화나 만화, 소설 등의 실패와 비슷합니다.


  흥미로운 점은 게임 캐릭터의 패배와 극복은 분명히 플레이어의 잘못이 아니며, 플레이 결과가 아님에도 플레이어는 자신이 직접 패배하고 극복한 것처럼 희열을 느낀다는 것입니다.


  물론 영화나 소설, 만화나 애니메이션에서도 그런 느낌은 존재하겠지만, 게임 캐릭터의 그것은 훨씬 더 강렬한 체험이며 더욱 몰입되게 합니다.


  그것은 게임의 캐릭터가 내 분신이기 때문입니다. 비록 내 잘못으로 실패한 것은 아니지만, 캐릭터의 실패는 내 실패처럼 여기며 안타까워하고 초조해하며 아쉬워합니다. 설사 그것이 스토리상 필요한 일이라는 것을 머리로는 알고 있다고 해도 말이죠. 그리고 실패를 극복하고 성장하면서 성공할 때 마치 내가 성공한 것처럼 기뻐합니다. 영화와 달리 내 선택에 의해서 진행하는 게임이기 때문에 얻을 수 있는 몰입감, 만족감입니다.



  다만 이를 잘 구성하려면 캐릭터의 실패와 플레이어의 실패가 완전히 다르다는 것을 이해하고 있어야 합니다.


  스토리상의 실패와 플레이의 실패가 다른 것이라는 점을 말이죠.


[ 이길 수 없는 보스는 그냥 스토리 요소입니다. ]


  패하게 되어 있는 전투를 굳이 할 필요는 없습니다. 아무리 해봐야 공격은 전혀 먹히지 않고(먹혀도 금방 부활하고) 허송 세월만 하는 거니까요. 아무런 보람이 없는 플레이, 그냥 시간만 죽이기 위한 플레이... 그럼에도 플레이어는 '혹시라도 이길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며 정신력을 낭비합니다.


  결국 '인터넷'이라는 반칙기를 쓰고서야 알게 되죠. 그건 원래 그렇다는 것을... (그래요. 사실은 예전에 제가 그런 적이 있었답니다.(그땐 인터넷이 아니라 공략집이라서 더 찾기 힘들었지만.) 그때의 허탈한 마음이란...)



  그럴 필요가 없습니다. 그건 정당한 플레이가 아니라 플레이어를 고문하고 불편하게 만드는 행위입니다. 


  어차피 패배가 확정되어 있다면, 회복약에 폭탄에 잔뜩 써가면서 싸우게 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냥 이벤트 장면으로 패배하게 만들면 되는 것이고, 플레이어도 훨씬 부담이 덜합니다. 여하튼 ‘내가 잘못한 것’은 아니게 되니까요.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뭔가 부족합니다. 좀 더 흥미롭게 만들어보죠.


  바로 "플레이에서는 승리하고 스토리에서 패배하게 하는 것"입니다.


  보스 전투는 벌어집니다. 분명히 강하고 힘들지만, 물리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전투에 승리한 직후(물론 경험치 같은 보상도 받은 이후) 갑자기 이벤트가 진행됩니다.


  "하하하. 나는 삼단 변신이다!"


  그리고 전투는 벌어지지도 않고 캐릭터가 쓰러져 버립니다. 물론 게임 오버는 되지 않고 계속 이어서 일행이 사로잡히거나 하는 장면이 보여지겠지요.


  플레이어는 승리했습니다. 하지만 캐릭터는 패배합니다. 그만큼 안타깝고 아쉽지만, 적어도 플레이어의 잘못은 아니기에 납득할 수 있습니다.



  또 다른 상황을 생각해 보죠. 보스가 등장했는데 너무도 강력합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지금 상황에서 이길 것 같지가 않죠.


  그때 갑자기 원군이 등장하고 보스가 쓰러집니다.



  이런 상황에서 많은 게임에서는 주인공이 전투를 해서 강제로 패배한 뒤에 아군이 도착해서 스토리로 물리치지만, 그보다는 스토리 이벤트로 위기에 빠지는 장면을 만들고, 아군이 도착해서 전투를 벌이게 하는 쪽이 더 좋습니다. 바로 다음과 같은 이유로 말이죠.


[ 혼자만 레벨도 MP도 보이지 않는 루시아. 뭔가 기묘한 느낌을 받기엔 충분하죠. 게다가 혼자만 자동 전투라면 더욱. ]



첫째, 원군이 얼마나 강하고 믿음직스러운지 직접 체험할 수 있습니다.


  원군은 분명히 NPC이고, 자동으로 전투를 벌일 겁니다. 리얼타임이건 턴방식이건 NPC의 전투를 묘사하는 건 어렵지 않습니다.

  전투는 벌어지고 있고, 우리 일행이 공격할 때는 10 정도 밖에는 줄지 않는 HP가 원군이 공격할 때는 200~300씩 줄어듭니다.

  우왕, 굿. 엄청나게 센 원군입니다. 그야말로 고마움이 100배. 그 위력을 직접 체험하면서 원군이 없으면 절대로 이길 수 없다는 사실을 절실하게 느끼게 됩니다.

  그리고 혹시 기대하죠. '이 전투가 끝나고 우리 편이 되지 않을까?'

  물론 그런 일은 없습니다. 지금 그가 우리 편이 되면 밸런스가 완전히 망가지니까요. 하지만 언젠가 그가 동료가 될 것을 기대하면 괜히 두근거립니다.


둘째, 스토리에서 패배하지만, 플레이로 승리하게 하여 성취감을 줍니다.


  분명히 원군이 없으면 승리하지 못할 전투입니다. 눈으로 직접 보니 더욱 절실하게 느끼겠지요. 하지만 제 아무리 약한 능력이라도 원군을 도와서 싸운 겁니다.

  그만큼 뭔가 해낸 성취감이 느껴지고, 언젠가는 원군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싸우기 위해서 성장해야 한다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원군과 함께 싸우는 전투 상황은 사실 스토리 이벤트로 처리해야 합니다.

  보스가 주인공 일행을 공격하지 않고(한방에 죽을테니) 원군만 공격하게 하거나, 원군이 보스의 공격을 다 막아주도록 설정해야 하고, 만에 하나라도 원군이 패하는 일은 없도록 해야 하니까요. (주인공 일행이 막타를 때리는 것도 피하는게 좋을 겁니다. 물론 원군의 희생으로 보스가 약해진 틈에 주인공이 물리치는 구성도 가능하지만, 조금 비겁하잖아요? ^^)


  하지만 플레이어는 그것이 스토리 이벤트라는 것을 모릅니다. 단지 살아남기 위해서 결사적으로 맞설 뿐이죠. 최소한 조금이라도 원군을 돕기 위해서 말입니다.


  그리고 강대한 적을 물리치면서 힘겨운 승리의 성취감을 맛봅니다.




  게임의 플레이에는 실패가 없어야 합니다. 적어도 플레이어가 잘못하지 않은 상태에서 강제로 실패하게 하면 안 됩니다.


  어떤 이유건 플레이의 실패를 맛볼때 플레이어는 그것을 자신이 ‘잘못 플레이했기 때문’이라고 여기고 자책하거나 무의미한 도전을 반복하게 됩니다.


  아니 실패만이 아니라 플레이어의 잘못이 아님에도 플레이어에게 불이익을 주어서는 안 됩니다. 일시적으로 불이익을 주더라도 그것을 되찾게 해주어야 합니다.



  가령 소매치기 이벤트로 소지금의 절반이 사라진다면 오래지 않아 소매치기를 잡음으로써 소지금을 되찾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노력한 만큼 더 큰 보상을 얻게 해야 합니다. 그래야 플레이어는 ‘불합리한 시스템’을 저주하지 않고 새롭게 도전 의욕을 불태울 것입니다.(물론 추격을 포기하는 선택기를 주고 소매치기 행위에 이유를 를 부여하는건 흥미로운 스토리 연출이 될 것입니다.)


[ 소매치기 막기 기술이 없는 상황에선 일방적으로 당하게 마련이죠? ]


  게임의 스토리에서는 실패가 필요합니다. 그럼으로써 캐릭터를 응원하고 싶은 마음이 더해지고 열심히 해서 캐릭터가 승리할 때 더욱 큰 성취감을 맛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게임의 실패는 게임 오버"라는 의문은 매우 타당하지만, 조금만 시점을 바꾸어 보면 더욱 즐거운 재미가 펼쳐질 수 있을 것입니다. 적어도 저처럼 인터넷을 뒤져보고 좌절하는 상황은 겪지 않아도 되겠지요. ^^

posted by 별을 좋아하는 표도기

  학교 수업 중 롤플레잉 게임에 대해서 이야기하다가 한 학생이 질문을 했습니다.


  "사냥하다보면 쥐 가죽처럼 쓸모없는 아이템이 나오잖아요? 그게 왜 필요한가요? 그게 없으면 리소스도 줄어들텐데. 차라리 그만큼 돈으로 주면 안 될까요?"


  타당한 의문입니다. 솔직히 쥐 가죽 같은 건 재료 아이템이 될만한 것도 아니고, 팔아봐야 얼마 받지도 못합니다. 아예 줍지도 않는 상황이 일어나기도 하죠.


[ 쥐 가죽 만든 신발? 음? 재료 아이템도 괜찮네요.^^ ]



  그렇다면 돈으로 더 주면 어떨까요? 가령 쥐가죽이 50원인데, 그대신에 100원의 돈을 더 준다면?


  이러한 의문으로부터 게임 디자인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우선 경제 시스템과 관련한 레벨 디자인 측면에서 생각해 볼때,[쥐 가죽] 같은 아이템은 그 가치를 조절함으로써 '게임 속의 경제'를 조정하는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특히 많은 플레이어가 함께 활동하는 MMORPG에서 화폐의 가치를 유지하는 건 게임 플레이어의 불만을 줄이는데 중요한 만큼, 가치를 맘대로 바꿀 수 없는 화폐가 아니라 아이템의 매매가를 통해서 경제를 조절하는 건 매우 좋은 방법입니다.



  하지만 '쥐가죽'을 사용하는데는 그보다도 중요한 이유가 있습니다. 바로 '게임에 대한 만족도'라는 측면이죠.


  생각해 봅시다. 여러분은 사냥을 할때 '경험치'나 '돈'이 떨어지는 양을 일일이 세보는 스타일인가요?


  적어도 저는 그렇게 플레이하지 않습니다. 게임을 분석하거나, 역기획 자료를 만들거나 할 때를 빼면 말이죠. 심지어 퀘스트에서 얻는 경험치도 신경쓰지 않는데 무수하게 많이 잡는 '쥐'의 경험치나 떨어지는 돈을 일일이 세어볼리가 없습니다.


  다시 말해 쥐를 잡아서 100원이 떨어지다가 200원이 떨어진다고 해도 플레이어들은 이를 인식하기 어렵다는 이야기입니다. 당연히 만족도도 별로 차이가 나지 않겠지요.


  반면 50원짜리 쥐가죽이 떨어진다면 '뭔가 얻었다.'라는 느낌이 확실히 납니다.


  게다가 쥐가죽을 잔뜩 얻어서 상점에 팔아 몫돈을 손에 넣을 때 다시 한번 '돈 벌었다.'라는 느낌이 들죠.



  '쥐'가 돈을 가지고 다닐리가 없다는 점도 생각해봐야 합니다. 산적이나 오크가 돈이나 귀금속을 가지고 다니는건 별로 이상하지 않겠지만, 쥐가 돈을 들고 다닌다?


  애니메이션 [드래곤 퀘스트]에서는 보석으로 몬스터를 만들어서 몬스터가 죽으면 보석이 떨어지는 개념이 있었습니다.(이는 소설 [던젼에서 만남을 추구하면 안될까?]에서도 마석을 중심으로 몬스터가 생성되는 개념으로 재활용했습니다.)


  소설 [로그 호라이즌]에선 아예 몬스터가 태어날때 동전이 주어진다는 것을 세상의 규칙으로 설정하기도 했죠. 그래서 지하엔 세상의 온갖 동전이 모여드는 거대한 샘 같은 곳이 있다는 개념으로 말입니다.


  이런 설정을 통해서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어떤 설정을 더하더라도 그건 뒷 설정에 불과하며, 상식적으로 볼때 쥐를 잡았는데 돈이 떨어지는 건 이상합니다. '쥐 가죽'이 떨어지는게 더 자연스럽습니다.


[ 돈이 쏟아져 내리는 던젼. 이런 설정을 부여하는건 좋지만, 그래도 쥐가 돈을 떨어뜨리는건 어색합니다. ]



  진정으로 중요한 것은 '쥐가죽'이라는 아이템을 모아서 파는 행위 자체가 게임 플레이. 바로 '게임과의 대화'라는 점입니다.


  '게임과의 대화'가 늘어날수록 플레이어는 내가 직접 뭔가를 하는 기분이 들고, 그만큼 게임에 몰입할 가능성도 높아집니다. 그만큼 게임이 단순히 시간 때우기가 아니라 내게 있어 또 다른 삶으로서 즐거움을 더합니다.


[ 필요할 때 만나는 상인만큼 고마운 존재도 없죠. 게임 플레이에 도움이 된다면 더욱. ]


  [몬스터 헌터] 게임에서는 사냥감을 잡고 나면 해체 칼을 들고 그 시체를 해체하여 고기나 가죽을 얻도록 함으로써 그 같은 '게임과의 대화'를 더하고 있습니다.


  어떤 분이 [크로우폴(Crowfall)]이란 게임을 소개해 주셨습니다. 광산에서 채광을 할 때, 광석 오브젝트를 클릭해서 단순히 얻는게 아니라, HP 개념을 두어 광석과의 사투를 벌이는 식으로 만들었다고 하더군요.


  [울티마 온라인]에서 광산 곳곳을 파면서 광석을 모으고 대장간으로 날라서 금속 덩어리를 만드는 개념도 있습니다.


  이 역시 게임을 단순한 사냥의 반복이나 노동, 숫적인 보상만으로 생각하지 않고, '플레이어와 게임의 대화'를 생각하며 고민한 디자인 방법일 것입니다.



  게임 플레이는 '게임과의 대화'이며, 대화는 더욱 유기적이고 상호적일때 훨씬 재미있는 법입니다.


  100원이라는 돈 대신에 [쥐가죽]이라는 아이템을 떨어뜨리는 디자인에는 바로 이 같은 고민이 담겨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곤 해도 '쥐가죽'보다는 훨씬 있어보이는 아이템을 얻게 하는게 나을 겁니다. 아니 솔직히 쥐하고 싸우는 것 자체가 조금 부끄럽지 않나요? ^^


  오래 전에 제가 게임 [울티마 온라인]을 할 때 열심히 키운 대장장이로 칼싸움을 벌이다 토끼에게 맞아죽고 쥐하고 10분 동안 열심히 싸운 경험이 있지만...(그래서 주변 사람들이 '쥐 이겨라!'라고 응원하는 사태가 벌어졌지만...) 칼을 든 전사라면 그래도 늑대 정도하고는 상대해야죠. 아니면 거대한 낫을 든 키 2미터짜리 거대 쥐라던가.


[ 토끼에게 맞아 죽은게 부끄러운건 아니죠. 부끄럽지는 않은데... ]


  그래도 돈 100원보다는 50원짜리 '쥐 가죽'이 좀 더 뭔가 얻은 느낌을 더합니다. 아이템을 얻었다는 느낌만이 아니라, '쥐 가죽'이 숫자만으로는 처리되지 않는 그 세계의 일부이기 때문에.


  더욱이 그것이 저 멀리 눈 덮인 산에서 이따금 발견된다는 전설적인 [스노우화이트 설표의 가죽] 같은 것이라면 뭔가 얻은 보람도 더 클 것입니다. 그것이 단순히 '판매용 드롭 아이템'에 불과하더라도.


이따금 마을에서 [쥐 가죽](아니 [스노우 화이트의 설표 가죽])으로 만든 물건이 발견되거나 한다면 더욱 그럴듯해 보일 겁니다. 왠지 내가 그 세계의 생활에 이바지한 느낌이 들테니까요.(더욱 이상적인 것은 유저들이 [스노우 화이트의 설표 가죽]을 많이 구해다 팔수록 그 물건이 더 늘어나 보이게 하는 것이겠지만, 아무래도 너무 복잡해지겠지요.^^)


  그것이 사람의 마음이고, 바로 그런 마음을 잘 생각하는게 훌륭한 게임 디자인. 게임을 단순히 반복 노동이나 작업이 아니라, 탐험할만한 세계로 느끼게 하도록 도와주는 디자인 방법입니다.


  "왜 쥐가죽이 필요한가요?"


  학생의 이 질문은 제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 주었고, 이제껏 막연하게 느끼고 있던 생각을 제 것으로 만드는데 도움을 주었습니다.


  누군가를 가르치면 그보다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는 것은 바로 이러한 것을 뜻하겠지요.

posted by 별을 좋아하는 표도기
분류없음 2015.06.25 21:18

  1993년에 공개된 “쥬라기 공원”은 세계에 큰 충격을 안겨 주며 인기를 끌었습니다. 티라노사우르스가 대중의 아이콘이 되고, 랩터가 관심을 끌며 공룡 붐을 일으켰죠. 그후 쥬라기 공원은 2편, 3편으로 이어지며 공룡 붐을 이어갔고 나름 인기를 끌었습니다.

  하지만 3편에 이르러 쥬라기 공원의 약발은 상당히 떨어져 버렸습니다. 무엇보다도 ‘공룡만 보여준다고 다가 아니다.’라는 것을 알게 되었죠. 그래서 2001년 이후 쥬라기 공원 시리즈는 중단되어 버립니다. 사실상 프랜차이즈의 종막이었다고 해야 겠군요. 유니버설 스튜디오에 쥬라기공원 놀이 기구는 항상 만원이었지만, 영화는 끝난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3편으로부터 자그마치 14년만에, 그리고 1편으로부터 22년만에 속편이 등장한 것입니다. “쥬라기 월드”라는 이름으로...


  “쥬라기 월드”는 번번히 실패하던 쥬라기 공원을 제대로 된 모습으로 완성시킨 ‘테마 공원’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완전히 망해버려서 테마공원이 아니라 지옥이 되어 버린 섬은 쥬라기 공원을 세웠던 해먼드의 유지를 이은 갑부의 손에 의해 부활하여 하루에 2만명이 넘는 관람객이 방문하는 테마 공원으로 성장합니다.


  그리고 수많은 공룡을 보여주며 인기를 끌게 되지요.


  쥬라기 월드를 운영하는 측에서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이대로는 `요즘 아이들은 공룡을 코뿔소 보듯 한다.`라면서 어떻게든 새로운 공룡을 만들어야만 관광객을 끌어들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결국 그로 인해 유전자 개조 공룡을 만들고 사건이 일어나는 것이지요.


  그러나 쥬라기 월드가 이렇게 될 이유는 없었습니다. 솔직히 쥬라기 월드가 운영 측의 생각만큼 폭발적인 성공을 거두지 못하는 것은 사람들이 공룡들에 익숙해져라기보다는 쥬라기 월드가 공룡 테마파크로서의 완성도가 미숙하기 때문이라고 보기 때문이지요.



[ 쥬라기 월드의 문이 열린다. 뭔가 재미있어야 할텐데... 별로 기대가 되지 않는건 왤까? ]


  영화 속의 테마파크, 쥬라기 월드는 공룡을 보여줌으로서 사람들을 끌어들입니다. 이를 위해 놀라운 기술을 잔뜩 도입하고 있지요. 하지만 테마공원에는 그 이상으로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바로 꿈과 모험의 세계를 탐험한다는 즐거움을 주고 유지하는 것이죠. 이는 놀이기구나 동물로만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세계의 환상을 지키기 위한 여러 가지 노력이 결합되어 이루어집니다. 무엇보다도 관람객들을 즐겁게 만들고 싶다는 마음에서 비롯되는 것입니다.


  쥬라기 월드에는 공룡이 있고 이를 위한 최첨단 기술이 있습니다. 투명 유리로 된 자이로스피어를 타고 공룡 사이를 지나는 경험은 쥬라기 월드에서만 할 수 있는 최고의 희열이겠지요. 하지만 그뿐... 쥬라기 월드에는 그 이상의 매력이 없습니다. 모사사우르스가 먹이를 먹는 장면은 분명히 놀랍지만, 그 하나로 땡, 이를 보기 전까지 기대감을 이끌어내는 연출도 없습니다.

  그 밖에도 많은 부분에서 쥬라기 월드는 테마공원이라기보다는 학술 동물원 같은 느낌으로 연출하고 끝냅니다. 마치 전시물만 잔뜩 늘어서 있는 대한민국의 국립과학관을 보는 기분이라고 해야 할까요?


  무엇보다 테마공원의 또 다른 주역인 직원들이 엉망입니다.


  최고의 볼거리 중 하나인 자이로스피어가 눈 앞에 도착한 순간 뭔가 멋진 디자인이 눈길을 끌고 기대를 가질까 하는데, 졸린 목소리로 "잘 놀다오세요"를 연발하는 직원 때문에 재미가 뚝 떨어져 버립니다. 너무 기대하다 실망할 수도 있지만, 기대는 대개 즐거움을 더하게 마련인데, 직원의 무관심과 무성의가 그 기대를 망칩니다.

  수익 우선이기 때문인지 쥬라기 월드에는 직원이 별로 보이지 않는데(어떻게 자이로 스피어 시설에 직원 하나 뿐?) 그 얼마 안 되는 직원은 테마공원의 직원으로서 필요한 최소한의 훈련도 안 되고, 마음도 없어서 쥬라기월드의 재미를 이끌기는 고사하고 죽이고 있죠.



[ 자이로스피어. 굉장한 놀이기구겠지만, 기대를 망치는 시작이 뭔가 영 아니다. ]


  공룡만 있으면 사람들은 쥬라기 월드를 가겠지만, 몇 번이고 다시 오게 하고 싶다면 그 이상의 것이 필요합니다. 값도 비싸고 거리도 멀어서 접근하기 힘든 상황, 주변에 놀 거리는 더 이상 없는 만큼 쥬라기 월드를 찾은 사람은 며칠 씩 머물게 마련인데, 그동안 지루하지 않게 그 세계를 즐기게 해주지 않는다면 다시 찾을 맛이 나지 않을 겁니다.


  거대하고 특이한 공룡을 내세운 신규 이벤트가 있어봐야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겁니다. 아무리 공룡이 멋지고 대단하면 뭘 하나요. 공룡을 보는 걸 제외하면 지루하기 짝이 없는걸.


  2만 명의 사람이 관람하려면 줄도 많이 서겠죠. 그럴수록 그 지루함을 덜어주는 뭔가가 필요하지만 쥬라기 월드에는 그게 없습니다. 


  하지만 영화를 보면 쥬라기 월드가 그모양 그꼴인게 이해됩니다. 쥬라기 월드를 운영하는 사람이 `방문객의 재미` 따윈 관심 없거든요. 공원이 어떤가라는 회장의 질문에 ‘이익률이 올라갔다.’란 대답 밖엔 떠오르지 않고 수년 만에 조카가 찾아와도 일 밖엔 생각하지 않는 사람이 전체 운영을 총괄하고 있으니 그 테마공원이 재미있을 리가 없습니다.


  공룡 테마 공원을 운영하는 사람이 공룡엔 거의 관심이 없고, 관광객은 돈 줄로 밖에 보지 않는 상황에서 그곳이 얼마나 매력을 줄 수 있을까요?



[ 더 크고 시끄럽고, 이빨이 더 많다... 오직 그것만으로 관객이 열광하고 감동할까? ]


  그러니 그냥 "무조건 크고 굉장한 새 공룡"만 생각하는 겁니다. 기존의 공룡만으로도 연출과 구성에 따라 얼마든지 재미를 줄 수 있을 텐데도 그들에겐 그게 떠오르지 않는 겁니다. (이건 `관광객이 즐기고 있냐?`라고 묻는 회장도 별 차이 없어 보입니다.)


  게다가 어떤 콘셉트인지도 전혀 알 수 없는 광장과 왜 있는지 모를 ‘이노베이션 센터’를 보면, 이건 그냥 시장 바닥이나 별 차이가 없습니다. 테마 공원엔 반드시 필요한 두근거림따윈 전혀 느껴지지 않습니다.


  그런 면에서 영화 속의 쥬라기 월드는 사람에 무관심한 과학만능주의 테마공원의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으며, 스토리에는 어울린다고 생각됩니다.(제작진이 의도했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하지만 현실에 그런 데가 있다면 솔직히 잘 될 것 같지 않습니다. `공룡`이라는, 다른 데서는 볼 수 없는 콘텐츠가 있으니 분명히 1번은 가보겠지만, 그 힘든 길을 딛고서 2번 가보고 싶은 설렘도 추억도 없으니까요.


  마치 공룡만 보여주면 된다고 생각하며 대충 만들어 실망을 준, 쥬라기 공원 3편과 같은 것이 아닐까요?



여담) 사실 이건 한국의 대다수 테마공원도 마찬가지일지 모릅니다. 롯데월드도 서울랜드도, 에버랜드도. 솔직히 갈데가 없으니 가긴 하지만, 별로 재미있지 않거든요.

  뭔가 테마공원이란 분위기가 아니라 그냥 놀이기구를 대충 모아놓은 야시장이란 느낌이에요. 놀이기구 타기 말고 할 만한 게 없습니다.

  일본에서 가 보았던 하우스텐보스, 디즈니랜드, 유니버설 스튜디오는 달랐습니다. 솔직히 놀이기구는 몇 개 안되지만, 세심한 부분까지 `테마공원`을 보여주다보니 거리를 다니는 것만으로도 즐겁거든요. 해리포터 구역에선 3시간이나 기다려야 탈 수 있지만, 기다리는 시간조차 주변을 구경하느라 정신없고 기대감에 가슴이 뜁니다.


  한국의 테마공원에는 그 같은 기대도, 설렘도 존재하지 않으며, 오직 놀이기구를 타는 그 순간의 희열 밖에는 없습니다. 지루한 기다림 끝에 잠깐 반짝하고 마니 추억엔 남지 않으며 다시 와야 겠다는 마음이 별로 들지 않습니다.


  한국의 민속촌 정도만이 상당히 테마 공원에 가깝다고 할 수 있습니다. NPC들도 잘 되어 있고 말이죠. 그건 민속촌이 어떻게 하면 관람객을 즐겁게 할까를 고민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트위터를 보아도, 민속촌을 돌아다녀도 그런 걸 잘 느끼게 되죠. 하지만 여러 외국의 테마 파크와에 비길 정도는 아닙니다.

  시설만 있지 사람이 없는 국립과학관 같은 덴 아예 논외라고 할 수 있겠군요. 기구가 낡았거나 아니거나가 문제가 아니라, 아예 관람객 자체에 관심이 없는 느낌이니까요.


  가상 세계의 테마공원이라 할 수 있는 게임을 제작하는 사람으로서, 그리고 게임 제작을 가르치는 사람으로서 그러한 테마공원의 재미를 느낄만한 데가 별로 없다는 사실이 정말로 안타깝습니다. 테마공원의 재미를 느껴야 가상 세계에서나마 그런 걸 살릴 수 있도록 노력할텐데 말이지요. 그리고 테마공원을 통해서 게임의 세계를 더욱 즐겁게 만드는 것도 느낄 수 있을텐데...



[ 불프로그의 테마파크 월드. 전작 테마파크에 이은 게임으로 그래픽도 향상되고 뭔가 달라졌지만, 어딘지 재미가 덜하다. 테마 공원을 운영한다는 느낌을 잘 살리지 못하고 게임으로서 뭔가 부족하기 때문? ]



posted by 별을 좋아하는 표도기
판타지 이야기 2015.06.25 04:14

이라고 할까요?


'산적 얼굴의 왕자'를 첫 등장시켜 충격을 주었던 "슬레이어즈!" 이래 일본에선 판타지의 이야기를 적당히 뒤집어서 재미를 주는 작품이 꾸준히 선보였습니다. 이른바 판타지의 전형이라 할만한 내용을 다르게 해석하거나 뒤집거나 해서 말이죠...


최근 눈에 띄는 작품으로 "던젼밥(ダンジョン飯)"이 있지요.



[ 참 재미있는 만화인데 번역본은 언제쯤 들어와 줄까요? ( ダンジョン飯 / (c) 九井諒子, Enterbrain ]


"위저드리" 설정을 바탕으로 한 것으로 보이는 던젼 탐험 판타지인데, 독특한 던젼에서의 일상, 특히 몬스터들을 어떻게 요리하는가가 흥미를 끄는, 그런 작품이죠.


근데 "던젼밥"에선 요리 기술만 특이한게 아닙니다.


몬스터들의 특성이나 몬스터에 맞서는 방법 등이 뭔가 현실적이면서도 흥미롭거든요.



그 중 한 대목...


바로 노래로 사람을 유혹해서 물 속으로 끌어들이는 적, 로렐라이나 세이렌 같은 인어와의 대결 장면이 눈에 띕니다.


오디세우스의 세이렌처럼 바다의 괴물이 노래로 사람을 유혹한다는 설정은 오래 전부터 나왔습니다. 그리고 그에 맞서는 방법으로는 대개 '귀를 막는다.'라는 것이 제시되죠. 실제로 오디세우스도 그렇게 해서 세이렌에 맞섰고 말입니다.



[ 세이렌에 맞서는 오디세이아. 일반적으로 노래를 부르는 바다 괴물은 이렇게 미인으로 그려지지만, 정작 오디세이아 일행은 세이렌을 보지 못했지요. ]


자... 근데 생각해 보면, 귀를 막는 것은 오디세우스처럼 배에 타고 있는 상황에서는 큰 문제가 없지만, 동료들과 함께 어떤 함정이나 적이 숨어있을지 모르는 던젼에서는 위험에 빠질 가능성도 있습니다.


소리를 듣지 못한다는 것은 말하자면 이어폰을 끼고 밤길을 걷는 상태. 뒤에서 누가 다가와도, 동료가 습격당해 죽어도 알기 어렵거든요.


너무 귀를 잘 막았다가는 동료가 비명을 질러도 들리지 않고...

 

자... 그렇다면 어떻게 할까요? "던젼밥"의 동료들은 바로 이런 방법을 사용합니다.





"또 마지막까지 부르지 못했네. (모처럼 외웠는데.)"

"모르는 사람이 갑자기 노래를 맞춰 부르는건 굉장히 무섭다고."



네... 인어의 노래를 따라 부르는 겁니다. 생각해 보면 인어의 노래에 유혹의 힘이 있다는 것이 어떤 방식일지는 몰라도 제대로 된 노래일때 성립하는 법. 바로 옆에서 동료가 큰 소리로 같은 노래를 따라 부를 때 그것이 제대로 작동할지는 아무도 모르죠.


인어도 얼마나 황당하겠습니까? 모처럼 즐겁게 노래하고 있는데, 엉뚱한 사람이 되지도 않는 목소리로 합창을 해대는 상황. 흥이 깨지고 말 건 뻔 합니다.


자이언(퉁퉁이) 수준의 음치라도 되었다간 유혹은 고사하고 도리어 고문을 당하는 상황이 펼쳐질지도 모르죠...



판타지에는 전형적인 이야기가 많지만, 생각에 따라선 뭔가 다른 이야기가 나올 수도 있습니다. 물론 그러한 것을 설정으로 잡는 것으로 끝내는건 별로일 것입니다.


"던젼밥" 같은 작품이 재미있는 것은 재미있는 발상이 아니라, 그것을 이야기에 녹여내었기 때문이죠.



posted by 별을 좋아하는 표도기

  게임 스토리텔링, 정확히는 '디지털 스토리텔링'의 가장 큰 매력은 '플레이어가 주도적으로 체험'한다는 것이고, 가장 큰 단점도 '플레이어가 주도적으로 체험'하는 것입니다.


  플레이어가 주도적으로 체험하기 때문에, 디지털 스토리텔링은 자칫 '완성도 높은 하나의 이야기'를 구성하는데 있어 장해로 생각될 수 있습니다.


  발단 부분에서 충격은 매우 약하고, 적의 위협도 어중간하게 느껴지고, 주인공의 행동을 이끌어내기에 당위성이 부족해 보일 수 있습니다.


  전개 부분에서는 계속 같은 과정이 반복되는데, '플레이'이기 때문에 항상 성공하게 됩니다.


  재미있는 스토리를 만들 때 "주인공이 시련을 겪으면서 실패할 때 그 실패를 극복하기 위해 발버둥치는 과정"이 재미있는 법인데, 게임에서는 플레이에 실패하게 되면 '게임 오버'가 되기 때문에 항상 성공해야 하고 결과적으로 위기감이나 재미가 떨어질 수 있습니다.


[ 루크의 대 실패! 이후 동료가 루크를 구한다. 이런 장면이 영화를 재미있게 만들지만, 게임에선 '게임 오버'로 연결되는 플레이 실패가 될 수도 있다. (스타워즈:제국의 역습) ]


  발단, 전개에서 이끌어온 이야기들이 절정 부분에서 극적인 충돌을 일으키게 하는데 있어서도 '게임 플레이'라는 측면이 장해가 될 수 있습니다. 보스를 무진장 세게 만들어서 위기감을 심어주려 했지만, 플레이어가 성 주변을 돌며 레벨 99까지 올리게 되면 레벨 58의 보스 따위는 한 주먹도 안 되거든요.



[ 레벨을 잔뜩 높이면, 중간 보스 따윈 적도 아니다. (마법진 구루구루) ]


  발단, 전개, 절정 부분에서 뭔가 흐릿하게 진행되었다면, 결말 부분에서 '여운'이 남을 수 없습니다. 게다가 '여운'을 남기겠다고 동영상을 잔뜩 넣어두었다가는 언제 끝날지도 알 수 없는 동영상 때문에 화장실도 못가고, 약속도 어기는 사태가 발생할 수도 있습니다.


  레벨 디자인 관점에서 보아도 플레이어에게는 정확한 정보를 주어야 하기 때문에 위기가 위기처럼 느껴지지 않을 수 있습니다. 아무리 봐도 뻔한 함정을 던져주면 그냥 피해버릴테니까요.


  이처럼 "게임 플레이"라는 특성은 기존의 스토리텔링 이론을 완전히 망가뜨리고, 게임의 '이야기'를 재미없게 만드는 요인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반대로 "게임 플레이"는 기존의 어떤 스토리텔링 작품에서도 느낄 수 없는 매력을 주는 작품을 만드는데 도움을 줄 수도 있습니다.


  스토리상 파티원이 빠져 버렸을 때 뭔가 아쉬움을 느끼게 함으로써 파티원의 소중함을 느끼게 하고, 보스의 파라미터 하나만으로도(아니, 이름의 색상만으로도) 뭔가 대단하다고 깨닫게 하기도 하죠. NPC들을 찾아다니면서 하나씩 단서를 얻어가며 범인을 찾아나가는 과정은 어떤 추리물보다도 흥미롭게 느끼게 할 수 있습니다. 제한된 시간 내에 답을 선택해야 하는 과정은 초조한 긴장감을 더해주죠. 수많은 플레이어와 함께 레이드를 마치면서 강대한 적에 맞서 힘을 합치는 재미를 줍니다.


  영화 등을 위한 비주얼 스토리텔링이 소설의 텍스트 스토리텔링과 다르고, 만화의 스토리텔링이 애니메이션과도 다르듯, 게임 스토리텔링, 디지털 스토리텔링은 기존의 어떤 스토리텔링과도 다릅니다.


  하지만 '매체'를 통해서 재미있는 이야기를 전달하고, 나아가 주제나 철학이라고 할만한 무언가를 전달한다는 점에서는 차이가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매체가 다른 만큼, 그 매체의 특성을 잘 이해하고 스토리텔링의 매력을 최대한 높이고자 노력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영화 제작자가 되길 바랬던 조던 매크너와 코지마 히데오는 영화의 기법을 게임에 도입하면서 디지털 스토리텔링의 폭을 넓혔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은 동시에 '게임'이라는 매체의 특성을 잘 이해하고 활용하고자 노력했기 때문이지요.



[ 단순한 액션 게임처럼 보이는 슈퍼 마리오. 하지만 게임 스토리텔링으로서의 매력도 전해주었습니다. ]


  마리오나 소닉처럼 대사가 없이도 세계를 구하는 스토리텔링의 매력을 줄 수 있는 것이 게임이며, 단순히 펭귄이 빠르게 돌아다니는 레이싱 게임(남극 탐험)에 약간의 매력을 더함으로써 '펭귄 왕자의 대모험'(꿈의 대륙)으로 완성할 수 있는 것이 게임입니다.



[ 독특한 레이싱 게임으로서 재미를 준, 남극 탐험 ]


[ 남극 탐험의 속편... 남극 탐험의 기본 시스템은 그대로 유지한 채 '펭귄 왕자(?)'의 대모험으로 완성된 몽대륙 어드벤쳐. 디지털 스토리텔링의 매력을 느끼게 한 이 작품은, 마리오에 빠져 게임을 만든 코지마 히데오가 참여한 첫 작품이기도 하다. ]


  게임 시나리오 작가라면, 아니, 게임 기획자, 아니 게임 제작자라면 이러한 점에 대해서 잘 생각하고 이해해야 합니다. 소설이나 영화나 만화 등을 제작하던 이들이 그들의 매체를 기준으로 게임 스토리텔링을 재단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게임 시나리오 작가는 게임 디자이너이며, 게임 제작자여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게임을 많이 해보고 그 특성을 이해해야 합니다.


  게임 시나리오 작가가 되고 싶은 분이 계시다면, 우선은 여러가지 다양한 게임을 보시길 권합니다. 영화 제작자가 되고 싶었던 코지마 히데오가 마리오를 보고 게임 제작사가 되어 대성했듯, 여러분은 게임을 통해 뭔가를 배울 수 있을 겁니다.


  물론 코지마 히데오가 대성하게 된 것은, 게임을 열심히 했기 때문만이 아니라, 소설, 영화 등의 스토리텔링에도 익숙했기 때문이라는 것도 기억해야 합니다.


  소설만 쓰다가 게임 스토리텔링을 할 수는 없지만, 게임만 하고서 게임 스토리텔링을 하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매체로서의 특성은 다르지만, "매체를 통해서 주제와 철학을 전달하고 재미를 준다."라는 스토리텔링의 기본은 다르지 않으니까요.


posted by 별을 좋아하는 표도기
SF 이야기 2015.06.08 22:51

다음 주 쥬라기 월드 개봉에 앞서 쥬라기 공원 1~3편을 도서관에서 보았습니다.


  1편이 가장 재미있다는 감상평에는 이의가 없고 3편은 뭔가 좀 허전하다는 인상도 여전하지만, 그럼에도 3편 모두 ‘공룡’이 등장한다는 사실만으로 즐겁게 감상할 수 있는 작품이었지요. 특히 공룡이 없음에도 진짜 있는 것처럼 연기했던 연기 솜씨 하나만으로도 만점을 주기에 부족함이 없습니다.


  쥬라기 공원은 공룡 붐을 일으키며 사람들에게 공룡에 대한 관심을 불러주었습니다. 공룡에 대한 대중의 인식을 고정시켜 버리고 여러 가지 해석이 가능한 과학적 가설을 ‘영화 속 이론’에만 고정하여 생각하게 만드는 등 문제도 있었다고 하지만(가령 실제의 벨로시랩터는 그처럼 큰 공룡도 아니었고, 근래에는 ‘깃털’이 달렸을 가능성이 대두되고 있죠.), 공룡이라는 존재는 문화 상품으로 이끌어내어 다양한 모습을 생각하게 해 준 것은 분명히 대단한 일입니다.



[ 최근의 랩터 추정도 중 하나 뭔가 포켓몬 보는 느낌도 있다. ]


  ‘나무의 수액이 굳어져서 만들어진 호박이라는 보석 속에 들어 있는 모기의 몸에서 공룡의 혈액을 추출하여 공룡을 부활시킨다.’라는 흥미로운 상상력은 과학적인 진위 여부는 별개로 사람들에게 그럴듯하다는 느낌을 심어주고 공룡 붐을 이끌었습니다.


  하지만 쥬라기 공원 시리즈를 볼수록 뭔가 납득하기 어려운 점이 있습니다. 바로 “쥬라기 공원은 정말로 불가능한가?”라는 것이지요.


  영화 속에서 말콤 박사는 말합니다.


  “자연과 같은 혼돈계를 통제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결국 통제는 무너지고 만다.”


  하지만 “쥬라기 공원 1”에서 공원을 통제 불능의 위기에 빠뜨린 것은 통제 시스템 자체를 파괴하는 행위가 존재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소설과는 완전히 다른 내용으로 바뀌어 버린 “쥬라기 공원 2”에서도 파괴 행위가 없었다면 인젠의 공룡 포획 작전이 실패하지 않았을 것이며, –영화 속에서는 도저히 드러나지 않는 의문의- 선원 참살 상황이 없었다면, 티라노사우르스가 대도시 한복판에서 날뛰는 상황은 오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리하여 “쥬라기 공원 3”로 연결(?)되는 일도 없었겠지요.


  물론 인사는 언제나 발생할 수 있습니다. 체르노빌이나 후쿠시마처럼 말이지요. 하지만 “쥬라기 공원”은 원자력 발전소가 아닙니다. 분명히 과거에 지상 최강의 동물이었다곤 해도, 여하튼 6500만년 전에 멸종한 동물... 적어도 지금의 견해로는 ‘문화’를 갖고 있지 않은 야수를 가둔 장소거든요.


  쥬라기 공원의 실패는 혼돈 이론이 아닙니다. 단지, 방향성이 잘못되었을 뿐이죠. 무엇보다도 공룡은 너무 강하게 설정했고, 반면 공룡에 쫓기는 인간들은 너무도 무력하게 설정되었습니다.

  영화 속 상황을 살펴볼 때 인간과 공룡이 만나는 상황은 대개 공룡이 훨씬 많거나 큰 쪽이었고, 인간은 맨손에 아무런 장비도 갖고 있지 않았습니다.


  아니, 장비를 갖고 있다손 쳐도 대개 혼자, 그것도 맹수라 할 수 있는 공룡 쪽이 압도적으로 유리한 상황에서만 만나게 됩니다. 인간이 자연스레 당할 수 밖에 없는 상황에 놓이게 되는 것이지요.


  “쥬라기 공원”을 만든 해먼드는 공룡을 부활시키는데 엄청난 돈과 시간을 쏟아 부었지만, 이들을 ‘안전하게’ 관리하는 데는 거의 투자를 하지 않았습니다. 소설은 좀 더 낫지만, 영화 쪽을 생각해 보면 그 넓은 시설을 관리하는 시스템을 제어하는 사람이 고작 2명. 안전 요원 1명. 그밖에는 한 명도 직원이 없습니다.


  처음에 랩터를 옮길 때부터 안전 관리가 최악이라는 것을 잘 보여주었습니다. 아니, 두 개의 철창을 연결해서 랩터를 옮기는데 두 철창을 제대로 고정하는 장치도 없고 손으로 격벽을 잡아서 올리다니요. 랩터보다 훨씬 작고 약할 것 같은 맹수를 옮길 때조차 그보다는 나을텐데 말이죠.


  “쥬라기 공원”은 공룡들을 바로 눈앞에서 볼 수 있다는 것이 장점인 곳입니다. 그것도 어린이를 포함한 대규모 투어 형태로 말이지요. 공룡은 아니지만, 동물들을 눈 앞에서 보는 곳이라면 현재도 있습니다. 바로 동물원이죠. 동물의 생태를 좀 더 가깝게 느끼는 것으로는 “사파리”가 있습니다.


  동물원과 사파리의 특징은 동물들을 격리하고 감시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점은, ‘그들 동물의 능력으로 쉽게 나올 수 없는 곳’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동시에 관람객들이 동물을 쉽게 볼 수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쥬라기 공원은 그렇지 않습니다. 쥬라기 공원은 구역과 장벽이 있긴 하지만, 사실상 밀림입니다. 넓이는 너무도 넓고 공룡은 여기저기 흩어져서 관광객들이 쉽게 볼 수 없습니다. (초반에 관광 투어를 진행했지만, 공룡을 기대했던 사람들은 아무 것도 보지 못하고 실망했죠.) 당연히 감시와 관리가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병이 나거나 어디서 죽어도 알 수 없는 상태이며, 단지 먹이를 이용해서 유인할 수 있을 뿐이죠.(그나마 공룡이 마음 내킬 때만)


  그렇게 생각할 때 쥬라기 공원은 해먼드 회장 자신이 말했듯, “케냐 국립공원” 같은 장소라고 볼 수 있습니다. 동물들이 자연 생태계에서 살고 있고, 그들을 살펴보고 싶은 이들은 많은 돈을 내고 찾아가서 가이드 겸 보호자와 함께 차량을 타고 돌아다니는 곳 말이죠.



[ 아프리카의 사파리 투어. 차 위는 열려 있지만, 안전을 준수하도록 한다. 물론 사고는 본인 책임... ]


  이것은 ‘아이들’과 함께 편하게 갈 수 있는 장소가 아닙니다. 하루 종일 달려서 겨우겨우 동물을 발견할지도 모르는 상태인데다, 굉장히 위험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자나 치타 정도라면 자동차 안에 있는 것으로 안전할 수 있겠지만, 코뿔소 정도라도 되면 차를 뒤집고 부수는 일도 충분히 가능하니...


  하물며 그 대상이 공룡이라면 실수로 전력이 끊어지면 무용지물이 되는 전기 철책 하나만 믿고, 허름한 자동차 한 대로 관광할 수는 없습니다. (전기 철책은 조심스레 만질 때나 통용되지 공룡이 잘 모르고 들이받으면 그냥 부서질 겁니다. 학습해도 죽지 않는 걸 안다면 들이받을지도 모르죠.)


  영화 속에선 티라노나 스피노사우루스가 철책을 간단하게 부수고 나오지만, 그들이 뚫고 나오지 못할 정도의 장벽은 그다지 어려운 게 아닙니다. 티라노의 몸무게는 2~7톤. 돌진력은 대형 트럭 정도입니다. 대형 트럭을 막는 장벽을 만들면 됩니다. 스피노도 8~9톤 정도로 티라노와 비교해서 대단한 수준이 아니죠. 하물며 랩터라면 더욱 어렵지 않습니다.


  쥬라기 공원의 실패 원인은, 먹이를 주어서 사육하는 동물원 같은 환경을 만들어두었으면서도 정작 국립공원 같은 장소로 완성했다는 겁니다. 게다가 사파리처럼 공룡을 가까이에서 볼 수 있게 했으면서, 티라노는 고사하고 랩터에게조차 무력한 자동차를 사파리용으로 사용했다는 것입니다.(심지어 잠금장치까지 없는!)


  처음부터 동물원이나 사파리 형태를 생각했다면 상황은 달라졌을 겁니다. 공룡들은 좀 더 좁은 장소에 눈에 잘 띄게 배치될 것이고, 관광객들은 쉽게 그들을 만날 수 있을 것입니다. 관광객들은 더욱 튼튼한 철창과 두꺼운 강화 유리 사이로 그들을 볼 수 있으며, 험비보다도 튼튼한(아마도 경장갑차 정도 될 만한) 사파리 차량을 타고 그들 사이를 지나갈 수 있겠지요.


  오키나와의 대형 수족관에는 자그마치 60cm에 달하는 아크릴 유리가 사용되어 있습니다. 높이 8.2m, 폭 22.5m로 유리가 있다는 걸 생각하지 않고 볼 수 있을 만큼 엄청나죠. 티라노사우루스의 전신을 보기에도 충분하고도 남습니다.



[ 거대한 고래 상어를 한 눈에 볼 수 있는 츄라우미 수족관. ]


  이 정도면 랩터 정도는 간단히 막을 수 있으며, 티라노도 쉽게 파괴하지 못합니다.(티라노가 7톤에 가까워도 7톤 트럭과는 다릅니다. 그만한 강도도 아니며, 최대 속도로 단단한 물체와 충돌하면 티라노도 무사하지는 못합니다.) 그래도 위험하다면 두께를 더 늘리면 되지요. 관객의 안전을 생각한다면 그 정도 쯤, 당연한 거 아니겠습니까? 만일 그 같은 벽을 만들기 힘들다면 땅을 파고 가두어 두는 것도 방법이죠. 동물원의 맹수관처럼 랩터나 티라노가 뛰어오르기 어려운 높이로 말이죠.


  사파리처럼 하고 싶었다면, 좀 더 튼튼한 차량을 사용하면 되었을 것입니다. 험비보다 튼튼한 정도로 말이죠. 경장갑차 정도라면 어떨까요? 물론 두꺼운 강화유리로 창을 내고, 안전할 때는 밖으로 나가서 볼 수 있도록. 경장갑차라도 중량 10톤은 가볍게 넘으니 티라노가 어찌할 수 있는 상대는 아닙니다.(여담으로, “쥬라기 공원 2”에서 나왔던 차량도 중량은 티라노보다 무거울 겁니다. 45인승 버스가 공차 중량이 12톤에 달합니다. 바퀴가 안 달렸다면 티라노가 움직이기에는 조금 힘들겠죠.)

  아니면 헬기를 타고 감상하는 건? 티라노가 눈앞에 나타났을 때 승용차 정도로 무사할거라 생각하는 관광객은 없을 테니 안심시키기 위해서도 그편이 나을 겁니다.


  결국 “쥬라기 공원”의 실패는 인간의 오만이나 자연의 힘이 아닙니다. 단지 동물을 다루는 공원으로서 기본적으로 지켜야 할 안전 수칙을 무시했던 공원 제작자의 잘못입니다.


  자연을 인간의 노력으로 통제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강한 힘을 가진 무언가를 제어하려면 그만한 힘이 필요하게 마련이며, 지나친 힘은 반작용을 가져올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공룡은 자연 재해와 같은 거대한 힘이 아니라, 지금 인간이 가진 문명의 힘으로 얼마든지 관리할 수 있는 존재입니다. 대다수 공룡은 인간보다 훨씬 작고, 대다수 공룡은 인간의 도구보다 연약합니다. 영화 속의 랩터는 인간보다 훨씬 크지만, 사실상 고양이과의 맹수와 비교해서 탁월하게 강력한 게 아닙니다. 그리고 아시는 바와 같이 그 고양이과의 맹수들은 대부분 멸종위기에 몰려 있습니다.


  이번에 개봉할 영화 [쥬라기 월드]에서 드디어 쥬라기 공원이 ‘쥬라기 월드’라는 이름으로 운영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관객들은 안전한 환경에서 공룡들을 감상하고 있죠. 이번의 위기는 ‘유전자 조작’에 의한 괴물인데...(사실 “쥬라기 공원” 속의 공룡들도 정확히는 공룡을 닮은 유전자 조작 괴물이지요.) 티라노보다 크고, 랩터보다 똑똑한 살인 괴수...라고 해야 할까요?



[ 쥬라기 월드의 한 장면. 투명한 창 밖으로 공룡을 감상한다는게 인상적이지만, 역시 얇팍한 강화유리일 뿐. ]


  하지만 공룡이 얼마든지 숨어 다닐 수 있는 국립공원 같은 환경에서 사파리처럼 감상할 수 있는 “쥬라기 공원”, 또는 “쥬라기 월드”라는 시설이기에 역시 위험한 것이지, 좀 더 안전한 시설이었다면, 훨씬 안전한 이야기가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했다면, “쥬라기 공원”이라는 영화가 인기를 끌 수는 없었겠지요. 


  영화적 연출, 또는 소설적 연출을 위해서 당연히 문제가 생길만한 상황을 배치하고 이야기를 이끌어 내는 건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그러니까 이 얘기는 단지 ‘이래도 되지 않을까’라는 상상일 뿐이죠. 그리고 가끔은 프랑켄슈타인 증후군(인간이 만들어낸 존재가 인간에게 해를 끼친다는 생각)이 아닌 기술이 펼쳐내는 밝은 미래를 다룬 이야기도 보고 싶은 마음입니다.



여담) 고 마이클 크라이튼은 일찍부터 프랑켄슈타인 증후군의 작품을 집필했습니다. ‘기술이 가져오는 무서운 결과’를 내세우는 작품으로서 테크노 스릴러라 불리죠. 분명히 이야기들은 재미있지만, 이를 위해서 지나치게 작위적인 상황을 만들어내는 것이 조금 아쉽습니다.

  마이클 크라이튼은 말콤이 자신의 대변자라고 했는데, 사실 영화나 소설 속 말콤도 쥬라기 공원을 안전하게 만드는 방법을 얘기하는게 아니라 무조건 '잘못되었다'라고만 말하죠. 수학자 쪽이라서 그렇다고 할 수 있을지도?


여담2) 영화적 연출이겠지만, 랩터나 티라노에게 살아있는 먹이를 주는 것도 사실은 이상했습니다. 살아있는 먹이를 주는 것은 맹수에게 사냥을 가르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가르치지 않아도 사냥은 할 수 있겠지만, 일부로 가르칠 필요는 없겠지요. 영화 속 설정에 따라 움직이지 않는 존재를 볼 수 없는 티라노라고 해도 먹이가 내는 냄새 정도는 맡지 않겠어요? 피 냄새라던가. 게다가 염소나 소를 기르다가 그대로 주기보다는 죽여서 보관해두었다가 주는 게 훨씬 편할 테고요. 

posted by 별을 좋아하는 표도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