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없음 2015.06.25 21:18

  1993년에 공개된 “쥬라기 공원”은 세계에 큰 충격을 안겨 주며 인기를 끌었습니다. 티라노사우르스가 대중의 아이콘이 되고, 랩터가 관심을 끌며 공룡 붐을 일으켰죠. 그후 쥬라기 공원은 2편, 3편으로 이어지며 공룡 붐을 이어갔고 나름 인기를 끌었습니다.

  하지만 3편에 이르러 쥬라기 공원의 약발은 상당히 떨어져 버렸습니다. 무엇보다도 ‘공룡만 보여준다고 다가 아니다.’라는 것을 알게 되었죠. 그래서 2001년 이후 쥬라기 공원 시리즈는 중단되어 버립니다. 사실상 프랜차이즈의 종막이었다고 해야 겠군요. 유니버설 스튜디오에 쥬라기공원 놀이 기구는 항상 만원이었지만, 영화는 끝난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3편으로부터 자그마치 14년만에, 그리고 1편으로부터 22년만에 속편이 등장한 것입니다. “쥬라기 월드”라는 이름으로...


  “쥬라기 월드”는 번번히 실패하던 쥬라기 공원을 제대로 된 모습으로 완성시킨 ‘테마 공원’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완전히 망해버려서 테마공원이 아니라 지옥이 되어 버린 섬은 쥬라기 공원을 세웠던 해먼드의 유지를 이은 갑부의 손에 의해 부활하여 하루에 2만명이 넘는 관람객이 방문하는 테마 공원으로 성장합니다.


  그리고 수많은 공룡을 보여주며 인기를 끌게 되지요.


  쥬라기 월드를 운영하는 측에서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이대로는 `요즘 아이들은 공룡을 코뿔소 보듯 한다.`라면서 어떻게든 새로운 공룡을 만들어야만 관광객을 끌어들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결국 그로 인해 유전자 개조 공룡을 만들고 사건이 일어나는 것이지요.


  그러나 쥬라기 월드가 이렇게 될 이유는 없었습니다. 솔직히 쥬라기 월드가 운영 측의 생각만큼 폭발적인 성공을 거두지 못하는 것은 사람들이 공룡들에 익숙해져라기보다는 쥬라기 월드가 공룡 테마파크로서의 완성도가 미숙하기 때문이라고 보기 때문이지요.



[ 쥬라기 월드의 문이 열린다. 뭔가 재미있어야 할텐데... 별로 기대가 되지 않는건 왤까? ]


  영화 속의 테마파크, 쥬라기 월드는 공룡을 보여줌으로서 사람들을 끌어들입니다. 이를 위해 놀라운 기술을 잔뜩 도입하고 있지요. 하지만 테마공원에는 그 이상으로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바로 꿈과 모험의 세계를 탐험한다는 즐거움을 주고 유지하는 것이죠. 이는 놀이기구나 동물로만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세계의 환상을 지키기 위한 여러 가지 노력이 결합되어 이루어집니다. 무엇보다도 관람객들을 즐겁게 만들고 싶다는 마음에서 비롯되는 것입니다.


  쥬라기 월드에는 공룡이 있고 이를 위한 최첨단 기술이 있습니다. 투명 유리로 된 자이로스피어를 타고 공룡 사이를 지나는 경험은 쥬라기 월드에서만 할 수 있는 최고의 희열이겠지요. 하지만 그뿐... 쥬라기 월드에는 그 이상의 매력이 없습니다. 모사사우르스가 먹이를 먹는 장면은 분명히 놀랍지만, 그 하나로 땡, 이를 보기 전까지 기대감을 이끌어내는 연출도 없습니다.

  그 밖에도 많은 부분에서 쥬라기 월드는 테마공원이라기보다는 학술 동물원 같은 느낌으로 연출하고 끝냅니다. 마치 전시물만 잔뜩 늘어서 있는 대한민국의 국립과학관을 보는 기분이라고 해야 할까요?


  무엇보다 테마공원의 또 다른 주역인 직원들이 엉망입니다.


  최고의 볼거리 중 하나인 자이로스피어가 눈 앞에 도착한 순간 뭔가 멋진 디자인이 눈길을 끌고 기대를 가질까 하는데, 졸린 목소리로 "잘 놀다오세요"를 연발하는 직원 때문에 재미가 뚝 떨어져 버립니다. 너무 기대하다 실망할 수도 있지만, 기대는 대개 즐거움을 더하게 마련인데, 직원의 무관심과 무성의가 그 기대를 망칩니다.

  수익 우선이기 때문인지 쥬라기 월드에는 직원이 별로 보이지 않는데(어떻게 자이로 스피어 시설에 직원 하나 뿐?) 그 얼마 안 되는 직원은 테마공원의 직원으로서 필요한 최소한의 훈련도 안 되고, 마음도 없어서 쥬라기월드의 재미를 이끌기는 고사하고 죽이고 있죠.



[ 자이로스피어. 굉장한 놀이기구겠지만, 기대를 망치는 시작이 뭔가 영 아니다. ]


  공룡만 있으면 사람들은 쥬라기 월드를 가겠지만, 몇 번이고 다시 오게 하고 싶다면 그 이상의 것이 필요합니다. 값도 비싸고 거리도 멀어서 접근하기 힘든 상황, 주변에 놀 거리는 더 이상 없는 만큼 쥬라기 월드를 찾은 사람은 며칠 씩 머물게 마련인데, 그동안 지루하지 않게 그 세계를 즐기게 해주지 않는다면 다시 찾을 맛이 나지 않을 겁니다.


  거대하고 특이한 공룡을 내세운 신규 이벤트가 있어봐야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겁니다. 아무리 공룡이 멋지고 대단하면 뭘 하나요. 공룡을 보는 걸 제외하면 지루하기 짝이 없는걸.


  2만 명의 사람이 관람하려면 줄도 많이 서겠죠. 그럴수록 그 지루함을 덜어주는 뭔가가 필요하지만 쥬라기 월드에는 그게 없습니다. 


  하지만 영화를 보면 쥬라기 월드가 그모양 그꼴인게 이해됩니다. 쥬라기 월드를 운영하는 사람이 `방문객의 재미` 따윈 관심 없거든요. 공원이 어떤가라는 회장의 질문에 ‘이익률이 올라갔다.’란 대답 밖엔 떠오르지 않고 수년 만에 조카가 찾아와도 일 밖엔 생각하지 않는 사람이 전체 운영을 총괄하고 있으니 그 테마공원이 재미있을 리가 없습니다.


  공룡 테마 공원을 운영하는 사람이 공룡엔 거의 관심이 없고, 관광객은 돈 줄로 밖에 보지 않는 상황에서 그곳이 얼마나 매력을 줄 수 있을까요?



[ 더 크고 시끄럽고, 이빨이 더 많다... 오직 그것만으로 관객이 열광하고 감동할까? ]


  그러니 그냥 "무조건 크고 굉장한 새 공룡"만 생각하는 겁니다. 기존의 공룡만으로도 연출과 구성에 따라 얼마든지 재미를 줄 수 있을 텐데도 그들에겐 그게 떠오르지 않는 겁니다. (이건 `관광객이 즐기고 있냐?`라고 묻는 회장도 별 차이 없어 보입니다.)


  게다가 어떤 콘셉트인지도 전혀 알 수 없는 광장과 왜 있는지 모를 ‘이노베이션 센터’를 보면, 이건 그냥 시장 바닥이나 별 차이가 없습니다. 테마 공원엔 반드시 필요한 두근거림따윈 전혀 느껴지지 않습니다.


  그런 면에서 영화 속의 쥬라기 월드는 사람에 무관심한 과학만능주의 테마공원의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으며, 스토리에는 어울린다고 생각됩니다.(제작진이 의도했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하지만 현실에 그런 데가 있다면 솔직히 잘 될 것 같지 않습니다. `공룡`이라는, 다른 데서는 볼 수 없는 콘텐츠가 있으니 분명히 1번은 가보겠지만, 그 힘든 길을 딛고서 2번 가보고 싶은 설렘도 추억도 없으니까요.


  마치 공룡만 보여주면 된다고 생각하며 대충 만들어 실망을 준, 쥬라기 공원 3편과 같은 것이 아닐까요?



여담) 사실 이건 한국의 대다수 테마공원도 마찬가지일지 모릅니다. 롯데월드도 서울랜드도, 에버랜드도. 솔직히 갈데가 없으니 가긴 하지만, 별로 재미있지 않거든요.

  뭔가 테마공원이란 분위기가 아니라 그냥 놀이기구를 대충 모아놓은 야시장이란 느낌이에요. 놀이기구 타기 말고 할 만한 게 없습니다.

  일본에서 가 보았던 하우스텐보스, 디즈니랜드, 유니버설 스튜디오는 달랐습니다. 솔직히 놀이기구는 몇 개 안되지만, 세심한 부분까지 `테마공원`을 보여주다보니 거리를 다니는 것만으로도 즐겁거든요. 해리포터 구역에선 3시간이나 기다려야 탈 수 있지만, 기다리는 시간조차 주변을 구경하느라 정신없고 기대감에 가슴이 뜁니다.


  한국의 테마공원에는 그 같은 기대도, 설렘도 존재하지 않으며, 오직 놀이기구를 타는 그 순간의 희열 밖에는 없습니다. 지루한 기다림 끝에 잠깐 반짝하고 마니 추억엔 남지 않으며 다시 와야 겠다는 마음이 별로 들지 않습니다.


  한국의 민속촌 정도만이 상당히 테마 공원에 가깝다고 할 수 있습니다. NPC들도 잘 되어 있고 말이죠. 그건 민속촌이 어떻게 하면 관람객을 즐겁게 할까를 고민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트위터를 보아도, 민속촌을 돌아다녀도 그런 걸 잘 느끼게 되죠. 하지만 여러 외국의 테마 파크와에 비길 정도는 아닙니다.

  시설만 있지 사람이 없는 국립과학관 같은 덴 아예 논외라고 할 수 있겠군요. 기구가 낡았거나 아니거나가 문제가 아니라, 아예 관람객 자체에 관심이 없는 느낌이니까요.


  가상 세계의 테마공원이라 할 수 있는 게임을 제작하는 사람으로서, 그리고 게임 제작을 가르치는 사람으로서 그러한 테마공원의 재미를 느낄만한 데가 별로 없다는 사실이 정말로 안타깝습니다. 테마공원의 재미를 느껴야 가상 세계에서나마 그런 걸 살릴 수 있도록 노력할텐데 말이지요. 그리고 테마공원을 통해서 게임의 세계를 더욱 즐겁게 만드는 것도 느낄 수 있을텐데...



[ 불프로그의 테마파크 월드. 전작 테마파크에 이은 게임으로 그래픽도 향상되고 뭔가 달라졌지만, 어딘지 재미가 덜하다. 테마 공원을 운영한다는 느낌을 잘 살리지 못하고 게임으로서 뭔가 부족하기 때문? ]



posted by 별을 좋아하는 표도기
판타지 이야기 2015.06.25 04:14

이라고 할까요?


'산적 얼굴의 왕자'를 첫 등장시켜 충격을 주었던 "슬레이어즈!" 이래 일본에선 판타지의 이야기를 적당히 뒤집어서 재미를 주는 작품이 꾸준히 선보였습니다. 이른바 판타지의 전형이라 할만한 내용을 다르게 해석하거나 뒤집거나 해서 말이죠...


최근 눈에 띄는 작품으로 "던젼밥(ダンジョン飯)"이 있지요.



[ 참 재미있는 만화인데 번역본은 언제쯤 들어와 줄까요? ( ダンジョン飯 / (c) 九井諒子, Enterbrain ]


"위저드리" 설정을 바탕으로 한 것으로 보이는 던젼 탐험 판타지인데, 독특한 던젼에서의 일상, 특히 몬스터들을 어떻게 요리하는가가 흥미를 끄는, 그런 작품이죠.


근데 "던젼밥"에선 요리 기술만 특이한게 아닙니다.


몬스터들의 특성이나 몬스터에 맞서는 방법 등이 뭔가 현실적이면서도 흥미롭거든요.



그 중 한 대목...


바로 노래로 사람을 유혹해서 물 속으로 끌어들이는 적, 로렐라이나 세이렌 같은 인어와의 대결 장면이 눈에 띕니다.


오디세우스의 세이렌처럼 바다의 괴물이 노래로 사람을 유혹한다는 설정은 오래 전부터 나왔습니다. 그리고 그에 맞서는 방법으로는 대개 '귀를 막는다.'라는 것이 제시되죠. 실제로 오디세우스도 그렇게 해서 세이렌에 맞섰고 말입니다.



[ 세이렌에 맞서는 오디세이아. 일반적으로 노래를 부르는 바다 괴물은 이렇게 미인으로 그려지지만, 정작 오디세이아 일행은 세이렌을 보지 못했지요. ]


자... 근데 생각해 보면, 귀를 막는 것은 오디세우스처럼 배에 타고 있는 상황에서는 큰 문제가 없지만, 동료들과 함께 어떤 함정이나 적이 숨어있을지 모르는 던젼에서는 위험에 빠질 가능성도 있습니다.


소리를 듣지 못한다는 것은 말하자면 이어폰을 끼고 밤길을 걷는 상태. 뒤에서 누가 다가와도, 동료가 습격당해 죽어도 알기 어렵거든요.


너무 귀를 잘 막았다가는 동료가 비명을 질러도 들리지 않고...

 

자... 그렇다면 어떻게 할까요? "던젼밥"의 동료들은 바로 이런 방법을 사용합니다.





"또 마지막까지 부르지 못했네. (모처럼 외웠는데.)"

"모르는 사람이 갑자기 노래를 맞춰 부르는건 굉장히 무섭다고."



네... 인어의 노래를 따라 부르는 겁니다. 생각해 보면 인어의 노래에 유혹의 힘이 있다는 것이 어떤 방식일지는 몰라도 제대로 된 노래일때 성립하는 법. 바로 옆에서 동료가 큰 소리로 같은 노래를 따라 부를 때 그것이 제대로 작동할지는 아무도 모르죠.


인어도 얼마나 황당하겠습니까? 모처럼 즐겁게 노래하고 있는데, 엉뚱한 사람이 되지도 않는 목소리로 합창을 해대는 상황. 흥이 깨지고 말 건 뻔 합니다.


자이언(퉁퉁이) 수준의 음치라도 되었다간 유혹은 고사하고 도리어 고문을 당하는 상황이 펼쳐질지도 모르죠...



판타지에는 전형적인 이야기가 많지만, 생각에 따라선 뭔가 다른 이야기가 나올 수도 있습니다. 물론 그러한 것을 설정으로 잡는 것으로 끝내는건 별로일 것입니다.


"던젼밥" 같은 작품이 재미있는 것은 재미있는 발상이 아니라, 그것을 이야기에 녹여내었기 때문이죠.



posted by 별을 좋아하는 표도기

  게임 스토리텔링, 정확히는 '디지털 스토리텔링'의 가장 큰 매력은 '플레이어가 주도적으로 체험'한다는 것이고, 가장 큰 단점도 '플레이어가 주도적으로 체험'하는 것입니다.


  플레이어가 주도적으로 체험하기 때문에, 디지털 스토리텔링은 자칫 '완성도 높은 하나의 이야기'를 구성하는데 있어 장해로 생각될 수 있습니다.


  발단 부분에서 충격은 매우 약하고, 적의 위협도 어중간하게 느껴지고, 주인공의 행동을 이끌어내기에 당위성이 부족해 보일 수 있습니다.


  전개 부분에서는 계속 같은 과정이 반복되는데, '플레이'이기 때문에 항상 성공하게 됩니다.


  재미있는 스토리를 만들 때 "주인공이 시련을 겪으면서 실패할 때 그 실패를 극복하기 위해 발버둥치는 과정"이 재미있는 법인데, 게임에서는 플레이에 실패하게 되면 '게임 오버'가 되기 때문에 항상 성공해야 하고 결과적으로 위기감이나 재미가 떨어질 수 있습니다.


[ 루크의 대 실패! 이후 동료가 루크를 구한다. 이런 장면이 영화를 재미있게 만들지만, 게임에선 '게임 오버'로 연결되는 플레이 실패가 될 수도 있다. (스타워즈:제국의 역습) ]


  발단, 전개에서 이끌어온 이야기들이 절정 부분에서 극적인 충돌을 일으키게 하는데 있어서도 '게임 플레이'라는 측면이 장해가 될 수 있습니다. 보스를 무진장 세게 만들어서 위기감을 심어주려 했지만, 플레이어가 성 주변을 돌며 레벨 99까지 올리게 되면 레벨 58의 보스 따위는 한 주먹도 안 되거든요.



[ 레벨을 잔뜩 높이면, 중간 보스 따윈 적도 아니다. (마법진 구루구루) ]


  발단, 전개, 절정 부분에서 뭔가 흐릿하게 진행되었다면, 결말 부분에서 '여운'이 남을 수 없습니다. 게다가 '여운'을 남기겠다고 동영상을 잔뜩 넣어두었다가는 언제 끝날지도 알 수 없는 동영상 때문에 화장실도 못가고, 약속도 어기는 사태가 발생할 수도 있습니다.


  레벨 디자인 관점에서 보아도 플레이어에게는 정확한 정보를 주어야 하기 때문에 위기가 위기처럼 느껴지지 않을 수 있습니다. 아무리 봐도 뻔한 함정을 던져주면 그냥 피해버릴테니까요.


  이처럼 "게임 플레이"라는 특성은 기존의 스토리텔링 이론을 완전히 망가뜨리고, 게임의 '이야기'를 재미없게 만드는 요인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반대로 "게임 플레이"는 기존의 어떤 스토리텔링 작품에서도 느낄 수 없는 매력을 주는 작품을 만드는데 도움을 줄 수도 있습니다.


  스토리상 파티원이 빠져 버렸을 때 뭔가 아쉬움을 느끼게 함으로써 파티원의 소중함을 느끼게 하고, 보스의 파라미터 하나만으로도(아니, 이름의 색상만으로도) 뭔가 대단하다고 깨닫게 하기도 하죠. NPC들을 찾아다니면서 하나씩 단서를 얻어가며 범인을 찾아나가는 과정은 어떤 추리물보다도 흥미롭게 느끼게 할 수 있습니다. 제한된 시간 내에 답을 선택해야 하는 과정은 초조한 긴장감을 더해주죠. 수많은 플레이어와 함께 레이드를 마치면서 강대한 적에 맞서 힘을 합치는 재미를 줍니다.


  영화 등을 위한 비주얼 스토리텔링이 소설의 텍스트 스토리텔링과 다르고, 만화의 스토리텔링이 애니메이션과도 다르듯, 게임 스토리텔링, 디지털 스토리텔링은 기존의 어떤 스토리텔링과도 다릅니다.


  하지만 '매체'를 통해서 재미있는 이야기를 전달하고, 나아가 주제나 철학이라고 할만한 무언가를 전달한다는 점에서는 차이가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매체가 다른 만큼, 그 매체의 특성을 잘 이해하고 스토리텔링의 매력을 최대한 높이고자 노력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영화 제작자가 되길 바랬던 조던 매크너와 코지마 히데오는 영화의 기법을 게임에 도입하면서 디지털 스토리텔링의 폭을 넓혔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은 동시에 '게임'이라는 매체의 특성을 잘 이해하고 활용하고자 노력했기 때문이지요.



[ 단순한 액션 게임처럼 보이는 슈퍼 마리오. 하지만 게임 스토리텔링으로서의 매력도 전해주었습니다. ]


  마리오나 소닉처럼 대사가 없이도 세계를 구하는 스토리텔링의 매력을 줄 수 있는 것이 게임이며, 단순히 펭귄이 빠르게 돌아다니는 레이싱 게임(남극 탐험)에 약간의 매력을 더함으로써 '펭귄 왕자의 대모험'(꿈의 대륙)으로 완성할 수 있는 것이 게임입니다.



[ 독특한 레이싱 게임으로서 재미를 준, 남극 탐험 ]


[ 남극 탐험의 속편... 남극 탐험의 기본 시스템은 그대로 유지한 채 '펭귄 왕자(?)'의 대모험으로 완성된 몽대륙 어드벤쳐. 디지털 스토리텔링의 매력을 느끼게 한 이 작품은, 마리오에 빠져 게임을 만든 코지마 히데오가 참여한 첫 작품이기도 하다. ]


  게임 시나리오 작가라면, 아니, 게임 기획자, 아니 게임 제작자라면 이러한 점에 대해서 잘 생각하고 이해해야 합니다. 소설이나 영화나 만화 등을 제작하던 이들이 그들의 매체를 기준으로 게임 스토리텔링을 재단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게임 시나리오 작가는 게임 디자이너이며, 게임 제작자여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게임을 많이 해보고 그 특성을 이해해야 합니다.


  게임 시나리오 작가가 되고 싶은 분이 계시다면, 우선은 여러가지 다양한 게임을 보시길 권합니다. 영화 제작자가 되고 싶었던 코지마 히데오가 마리오를 보고 게임 제작사가 되어 대성했듯, 여러분은 게임을 통해 뭔가를 배울 수 있을 겁니다.


  물론 코지마 히데오가 대성하게 된 것은, 게임을 열심히 했기 때문만이 아니라, 소설, 영화 등의 스토리텔링에도 익숙했기 때문이라는 것도 기억해야 합니다.


  소설만 쓰다가 게임 스토리텔링을 할 수는 없지만, 게임만 하고서 게임 스토리텔링을 하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매체로서의 특성은 다르지만, "매체를 통해서 주제와 철학을 전달하고 재미를 준다."라는 스토리텔링의 기본은 다르지 않으니까요.


posted by 별을 좋아하는 표도기
SF 이야기 2015.06.08 22:51

다음 주 쥬라기 월드 개봉에 앞서 쥬라기 공원 1~3편을 도서관에서 보았습니다.


  1편이 가장 재미있다는 감상평에는 이의가 없고 3편은 뭔가 좀 허전하다는 인상도 여전하지만, 그럼에도 3편 모두 ‘공룡’이 등장한다는 사실만으로 즐겁게 감상할 수 있는 작품이었지요. 특히 공룡이 없음에도 진짜 있는 것처럼 연기했던 연기 솜씨 하나만으로도 만점을 주기에 부족함이 없습니다.


  쥬라기 공원은 공룡 붐을 일으키며 사람들에게 공룡에 대한 관심을 불러주었습니다. 공룡에 대한 대중의 인식을 고정시켜 버리고 여러 가지 해석이 가능한 과학적 가설을 ‘영화 속 이론’에만 고정하여 생각하게 만드는 등 문제도 있었다고 하지만(가령 실제의 벨로시랩터는 그처럼 큰 공룡도 아니었고, 근래에는 ‘깃털’이 달렸을 가능성이 대두되고 있죠.), 공룡이라는 존재는 문화 상품으로 이끌어내어 다양한 모습을 생각하게 해 준 것은 분명히 대단한 일입니다.



[ 최근의 랩터 추정도 중 하나 뭔가 포켓몬 보는 느낌도 있다. ]


  ‘나무의 수액이 굳어져서 만들어진 호박이라는 보석 속에 들어 있는 모기의 몸에서 공룡의 혈액을 추출하여 공룡을 부활시킨다.’라는 흥미로운 상상력은 과학적인 진위 여부는 별개로 사람들에게 그럴듯하다는 느낌을 심어주고 공룡 붐을 이끌었습니다.


  하지만 쥬라기 공원 시리즈를 볼수록 뭔가 납득하기 어려운 점이 있습니다. 바로 “쥬라기 공원은 정말로 불가능한가?”라는 것이지요.


  영화 속에서 말콤 박사는 말합니다.


  “자연과 같은 혼돈계를 통제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결국 통제는 무너지고 만다.”


  하지만 “쥬라기 공원 1”에서 공원을 통제 불능의 위기에 빠뜨린 것은 통제 시스템 자체를 파괴하는 행위가 존재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소설과는 완전히 다른 내용으로 바뀌어 버린 “쥬라기 공원 2”에서도 파괴 행위가 없었다면 인젠의 공룡 포획 작전이 실패하지 않았을 것이며, –영화 속에서는 도저히 드러나지 않는 의문의- 선원 참살 상황이 없었다면, 티라노사우르스가 대도시 한복판에서 날뛰는 상황은 오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리하여 “쥬라기 공원 3”로 연결(?)되는 일도 없었겠지요.


  물론 인사는 언제나 발생할 수 있습니다. 체르노빌이나 후쿠시마처럼 말이지요. 하지만 “쥬라기 공원”은 원자력 발전소가 아닙니다. 분명히 과거에 지상 최강의 동물이었다곤 해도, 여하튼 6500만년 전에 멸종한 동물... 적어도 지금의 견해로는 ‘문화’를 갖고 있지 않은 야수를 가둔 장소거든요.


  쥬라기 공원의 실패는 혼돈 이론이 아닙니다. 단지, 방향성이 잘못되었을 뿐이죠. 무엇보다도 공룡은 너무 강하게 설정했고, 반면 공룡에 쫓기는 인간들은 너무도 무력하게 설정되었습니다.

  영화 속 상황을 살펴볼 때 인간과 공룡이 만나는 상황은 대개 공룡이 훨씬 많거나 큰 쪽이었고, 인간은 맨손에 아무런 장비도 갖고 있지 않았습니다.


  아니, 장비를 갖고 있다손 쳐도 대개 혼자, 그것도 맹수라 할 수 있는 공룡 쪽이 압도적으로 유리한 상황에서만 만나게 됩니다. 인간이 자연스레 당할 수 밖에 없는 상황에 놓이게 되는 것이지요.


  “쥬라기 공원”을 만든 해먼드는 공룡을 부활시키는데 엄청난 돈과 시간을 쏟아 부었지만, 이들을 ‘안전하게’ 관리하는 데는 거의 투자를 하지 않았습니다. 소설은 좀 더 낫지만, 영화 쪽을 생각해 보면 그 넓은 시설을 관리하는 시스템을 제어하는 사람이 고작 2명. 안전 요원 1명. 그밖에는 한 명도 직원이 없습니다.


  처음에 랩터를 옮길 때부터 안전 관리가 최악이라는 것을 잘 보여주었습니다. 아니, 두 개의 철창을 연결해서 랩터를 옮기는데 두 철창을 제대로 고정하는 장치도 없고 손으로 격벽을 잡아서 올리다니요. 랩터보다 훨씬 작고 약할 것 같은 맹수를 옮길 때조차 그보다는 나을텐데 말이죠.


  “쥬라기 공원”은 공룡들을 바로 눈앞에서 볼 수 있다는 것이 장점인 곳입니다. 그것도 어린이를 포함한 대규모 투어 형태로 말이지요. 공룡은 아니지만, 동물들을 눈 앞에서 보는 곳이라면 현재도 있습니다. 바로 동물원이죠. 동물의 생태를 좀 더 가깝게 느끼는 것으로는 “사파리”가 있습니다.


  동물원과 사파리의 특징은 동물들을 격리하고 감시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점은, ‘그들 동물의 능력으로 쉽게 나올 수 없는 곳’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동시에 관람객들이 동물을 쉽게 볼 수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쥬라기 공원은 그렇지 않습니다. 쥬라기 공원은 구역과 장벽이 있긴 하지만, 사실상 밀림입니다. 넓이는 너무도 넓고 공룡은 여기저기 흩어져서 관광객들이 쉽게 볼 수 없습니다. (초반에 관광 투어를 진행했지만, 공룡을 기대했던 사람들은 아무 것도 보지 못하고 실망했죠.) 당연히 감시와 관리가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병이 나거나 어디서 죽어도 알 수 없는 상태이며, 단지 먹이를 이용해서 유인할 수 있을 뿐이죠.(그나마 공룡이 마음 내킬 때만)


  그렇게 생각할 때 쥬라기 공원은 해먼드 회장 자신이 말했듯, “케냐 국립공원” 같은 장소라고 볼 수 있습니다. 동물들이 자연 생태계에서 살고 있고, 그들을 살펴보고 싶은 이들은 많은 돈을 내고 찾아가서 가이드 겸 보호자와 함께 차량을 타고 돌아다니는 곳 말이죠.



[ 아프리카의 사파리 투어. 차 위는 열려 있지만, 안전을 준수하도록 한다. 물론 사고는 본인 책임... ]


  이것은 ‘아이들’과 함께 편하게 갈 수 있는 장소가 아닙니다. 하루 종일 달려서 겨우겨우 동물을 발견할지도 모르는 상태인데다, 굉장히 위험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자나 치타 정도라면 자동차 안에 있는 것으로 안전할 수 있겠지만, 코뿔소 정도라도 되면 차를 뒤집고 부수는 일도 충분히 가능하니...


  하물며 그 대상이 공룡이라면 실수로 전력이 끊어지면 무용지물이 되는 전기 철책 하나만 믿고, 허름한 자동차 한 대로 관광할 수는 없습니다. (전기 철책은 조심스레 만질 때나 통용되지 공룡이 잘 모르고 들이받으면 그냥 부서질 겁니다. 학습해도 죽지 않는 걸 안다면 들이받을지도 모르죠.)


  영화 속에선 티라노나 스피노사우루스가 철책을 간단하게 부수고 나오지만, 그들이 뚫고 나오지 못할 정도의 장벽은 그다지 어려운 게 아닙니다. 티라노의 몸무게는 2~7톤. 돌진력은 대형 트럭 정도입니다. 대형 트럭을 막는 장벽을 만들면 됩니다. 스피노도 8~9톤 정도로 티라노와 비교해서 대단한 수준이 아니죠. 하물며 랩터라면 더욱 어렵지 않습니다.


  쥬라기 공원의 실패 원인은, 먹이를 주어서 사육하는 동물원 같은 환경을 만들어두었으면서도 정작 국립공원 같은 장소로 완성했다는 겁니다. 게다가 사파리처럼 공룡을 가까이에서 볼 수 있게 했으면서, 티라노는 고사하고 랩터에게조차 무력한 자동차를 사파리용으로 사용했다는 것입니다.(심지어 잠금장치까지 없는!)


  처음부터 동물원이나 사파리 형태를 생각했다면 상황은 달라졌을 겁니다. 공룡들은 좀 더 좁은 장소에 눈에 잘 띄게 배치될 것이고, 관광객들은 쉽게 그들을 만날 수 있을 것입니다. 관광객들은 더욱 튼튼한 철창과 두꺼운 강화 유리 사이로 그들을 볼 수 있으며, 험비보다도 튼튼한(아마도 경장갑차 정도 될 만한) 사파리 차량을 타고 그들 사이를 지나갈 수 있겠지요.


  오키나와의 대형 수족관에는 자그마치 60cm에 달하는 아크릴 유리가 사용되어 있습니다. 높이 8.2m, 폭 22.5m로 유리가 있다는 걸 생각하지 않고 볼 수 있을 만큼 엄청나죠. 티라노사우루스의 전신을 보기에도 충분하고도 남습니다.



[ 거대한 고래 상어를 한 눈에 볼 수 있는 츄라우미 수족관. ]


  이 정도면 랩터 정도는 간단히 막을 수 있으며, 티라노도 쉽게 파괴하지 못합니다.(티라노가 7톤에 가까워도 7톤 트럭과는 다릅니다. 그만한 강도도 아니며, 최대 속도로 단단한 물체와 충돌하면 티라노도 무사하지는 못합니다.) 그래도 위험하다면 두께를 더 늘리면 되지요. 관객의 안전을 생각한다면 그 정도 쯤, 당연한 거 아니겠습니까? 만일 그 같은 벽을 만들기 힘들다면 땅을 파고 가두어 두는 것도 방법이죠. 동물원의 맹수관처럼 랩터나 티라노가 뛰어오르기 어려운 높이로 말이죠.


  사파리처럼 하고 싶었다면, 좀 더 튼튼한 차량을 사용하면 되었을 것입니다. 험비보다 튼튼한 정도로 말이죠. 경장갑차 정도라면 어떨까요? 물론 두꺼운 강화유리로 창을 내고, 안전할 때는 밖으로 나가서 볼 수 있도록. 경장갑차라도 중량 10톤은 가볍게 넘으니 티라노가 어찌할 수 있는 상대는 아닙니다.(여담으로, “쥬라기 공원 2”에서 나왔던 차량도 중량은 티라노보다 무거울 겁니다. 45인승 버스가 공차 중량이 12톤에 달합니다. 바퀴가 안 달렸다면 티라노가 움직이기에는 조금 힘들겠죠.)

  아니면 헬기를 타고 감상하는 건? 티라노가 눈앞에 나타났을 때 승용차 정도로 무사할거라 생각하는 관광객은 없을 테니 안심시키기 위해서도 그편이 나을 겁니다.


  결국 “쥬라기 공원”의 실패는 인간의 오만이나 자연의 힘이 아닙니다. 단지 동물을 다루는 공원으로서 기본적으로 지켜야 할 안전 수칙을 무시했던 공원 제작자의 잘못입니다.


  자연을 인간의 노력으로 통제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강한 힘을 가진 무언가를 제어하려면 그만한 힘이 필요하게 마련이며, 지나친 힘은 반작용을 가져올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공룡은 자연 재해와 같은 거대한 힘이 아니라, 지금 인간이 가진 문명의 힘으로 얼마든지 관리할 수 있는 존재입니다. 대다수 공룡은 인간보다 훨씬 작고, 대다수 공룡은 인간의 도구보다 연약합니다. 영화 속의 랩터는 인간보다 훨씬 크지만, 사실상 고양이과의 맹수와 비교해서 탁월하게 강력한 게 아닙니다. 그리고 아시는 바와 같이 그 고양이과의 맹수들은 대부분 멸종위기에 몰려 있습니다.


  이번에 개봉할 영화 [쥬라기 월드]에서 드디어 쥬라기 공원이 ‘쥬라기 월드’라는 이름으로 운영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관객들은 안전한 환경에서 공룡들을 감상하고 있죠. 이번의 위기는 ‘유전자 조작’에 의한 괴물인데...(사실 “쥬라기 공원” 속의 공룡들도 정확히는 공룡을 닮은 유전자 조작 괴물이지요.) 티라노보다 크고, 랩터보다 똑똑한 살인 괴수...라고 해야 할까요?



[ 쥬라기 월드의 한 장면. 투명한 창 밖으로 공룡을 감상한다는게 인상적이지만, 역시 얇팍한 강화유리일 뿐. ]


  하지만 공룡이 얼마든지 숨어 다닐 수 있는 국립공원 같은 환경에서 사파리처럼 감상할 수 있는 “쥬라기 공원”, 또는 “쥬라기 월드”라는 시설이기에 역시 위험한 것이지, 좀 더 안전한 시설이었다면, 훨씬 안전한 이야기가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했다면, “쥬라기 공원”이라는 영화가 인기를 끌 수는 없었겠지요. 


  영화적 연출, 또는 소설적 연출을 위해서 당연히 문제가 생길만한 상황을 배치하고 이야기를 이끌어 내는 건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그러니까 이 얘기는 단지 ‘이래도 되지 않을까’라는 상상일 뿐이죠. 그리고 가끔은 프랑켄슈타인 증후군(인간이 만들어낸 존재가 인간에게 해를 끼친다는 생각)이 아닌 기술이 펼쳐내는 밝은 미래를 다룬 이야기도 보고 싶은 마음입니다.



여담) 고 마이클 크라이튼은 일찍부터 프랑켄슈타인 증후군의 작품을 집필했습니다. ‘기술이 가져오는 무서운 결과’를 내세우는 작품으로서 테크노 스릴러라 불리죠. 분명히 이야기들은 재미있지만, 이를 위해서 지나치게 작위적인 상황을 만들어내는 것이 조금 아쉽습니다.

  마이클 크라이튼은 말콤이 자신의 대변자라고 했는데, 사실 영화나 소설 속 말콤도 쥬라기 공원을 안전하게 만드는 방법을 얘기하는게 아니라 무조건 '잘못되었다'라고만 말하죠. 수학자 쪽이라서 그렇다고 할 수 있을지도?


여담2) 영화적 연출이겠지만, 랩터나 티라노에게 살아있는 먹이를 주는 것도 사실은 이상했습니다. 살아있는 먹이를 주는 것은 맹수에게 사냥을 가르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가르치지 않아도 사냥은 할 수 있겠지만, 일부로 가르칠 필요는 없겠지요. 영화 속 설정에 따라 움직이지 않는 존재를 볼 수 없는 티라노라고 해도 먹이가 내는 냄새 정도는 맡지 않겠어요? 피 냄새라던가. 게다가 염소나 소를 기르다가 그대로 주기보다는 죽여서 보관해두었다가 주는 게 훨씬 편할 테고요. 

posted by 별을 좋아하는 표도기

  저는 모 학교 게임 스토리텔링 학과를 맡고 있으며, 이를 하면서 가장 어려운 것은 학생들이 '스토리텔링'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사실은 "자기가 좋아하는 내용의 소설을 쓰는 것"이라는 것입니다.(또는 '스토리 보드 만들기')


  그나마 프로로서 이야기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소설을 쓰는지를 가르쳐 주었으면 하는 느낌인데, 이야기 만들기와 달리 소설 쓰기는 자신이 직접 경험을 하고 노력하는 수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게임 스토리텔링 학과에서 2개의 수업을 진행하면서 보드 게임도 만들고 TRPG도 플레이하고, 게임북도 제작하게 하고... 이야기 만들기를 가르치고, 퀘스트 플로우를 제작하게 하는 등 여러가지 작업을 했지만, 정작 "스토리텔링은 왜 안 가르쳐주나요."라는 질문을 받을 때는 당황할 수 밖에 없습니다.


  플롯이나 구조 등을 통해서, 또는 명제를 이용해서 이야기를 만드는 방법을 다양하게 가르쳐 주고, 세계관과 설정 문서를 작성하고, 이를 기획서로 옮기는 방법이나 실제로 적용하기 위해서 엑셀을 이용해 다이어그램을 작성하고 플래그 등을 구성하는 방법 등에 대해서 가르쳐 주었지만, 학생들에게는 이들이 "게임 스토리텔링"이라는 인식이 약한 것이지요.


  게임시나리오와 관련하여 `퀘스트DB`,`스크립트`,`플래그`,`레벨디자인`,`플로우다이어그램` 등을 얘기하면, 게임스토리에 그런게 필요하냐고 묻는 학생들이 종종 있습니다.


  그런데 학생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현역에서도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특히 "게임 시나리오 작가"라고 활동하시는 분들 상당 수가 소설 쓰기(그것도 아마추어적인 '동호인 소설 쓰기')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게임 시나리오 작가의 프로라면, 주어진 시스템이나 상황, 주제나 설정에 맞추어 이야기를 만들 수 있는 재주가 기본적으로 필요합니다.


  하지만 그보다 중요한 것은 게임 시나리오는 단순히 스토리가 아니라, 게임의 진행과 구성에 대한 흐름(플로우)과 설정을 정의하는 작업이라는 것입니다.


  게임 플레이를 하면서 느낄 수 없다면, 그건 게임 시나리오가 아닙니다. 이따금 "메탈기어 솔리드" 같은 작품을 예로 들어서 대사나 장면의 중요성을 얘기하는 분들이 계시지만, "메탈기어 솔리드"는 잠입 액션이라는 시스템이 뒷받침되어서 비로써 그 장면과 대사가 부각되는 것이라는 점을 잊고 있는 것이지요.




[ 타임즈에서 선정한 20세기 최고의 시나리오 작품인 메탈기어 솔리드. 비주얼 신도 중요하지만, 플레이를 통해 느낌을 전달하는 것에서의 완성도가 중요했다. ]


  이 같은 연출과 상황을 생각하려면 공간 레벨디자인이나 밸런스 디자인까지도 고려해야 하는 것을 생각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게임 시나리오는 게임 기획의 한 부분이며, 당연히 게임 플레이를 생각하고 만들어야 합니다. 무엇보다도 게임 플레이어가 '플레이'를 통해서 느끼게 만들어주어야 합니다.


  게임시나리오를 소설이나 영화대본처럼 생각하고 게임시스템과 플레이에 대한 이해없이 누구나 만들수 있다고 생각한 결과 게임을 모르는 시나리오 라이터가 양산되었고 게임 제작엔 별 도움이 안되는 시나리오(?) 문서가 나왔습니다.


  그리고 그 상태는 지금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도대체 문서가 나왔는데 제작에는 아무런 도움이 안 된다면 그걸 작업할 필요가 있을까요?


  특히 한국에서 게임 시나리오 작가가 무시되는 것은, 그 같은 상황이 계속되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게임 시장의 특성도 있겠지만, 게임 디자인이라는 것을 아예 모르고 생각조차 하지 않고 '자기가 쓰고 싶은 내용'만 쓰는 게임 시나리오 작가(지망생)가 넘쳐났고, 그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인 개발 환경에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정말로 스토리가 좋은 게임이라는 것은 플레이도 재미있는 게임입니다. 플레이만 하더라도, 지문을 모두 읽지 않더라도 그 분위기와 상황을 이해하고 즐길 수 있는 게임이어야 합니다.


  지문으로 정보를 제공하려면 플레이어가 스스로 찾아나서고 그렇게 정보를 얻는 '플레이 과정'이 즐겁고 좋은 게임이어야 합니다.


  "플레이어는 NPC에게 -어지간하면- 말을 걸지 않는다"라는 정도는 이해하고 있어야, NPC를 통해서 정보를 전하는 '플레이'를 구성할 수 있으며, 주변 상황만으로 내가 해야 할 일을 이해하도록 만들 수 있어야 스토리를 '체감'하게 할 수 있다는 점을 생각하면 좋겠습니다.


  NPC의 설정을 충실하게 엮어내고, 이들의 '행동 패턴'만 정리하여 시스템에 맞추어 만들어두기만 해도 플레이어가 NPC에 대해서 궁금하게 만들고 직접 NPC를 찾아가게 할 수 있습니다. 트리거, 플래그, 이벤트 시스템 등을 이해하고 이를 시스템으로 구현하는 기획서를 만들 수 있다면 말이죠.



  대사가 거의 없이 표정 연기 하나, 소품 하나만으로 상황을 전하고, 거대한 배경 세계를 느끼게 해 주는 영화 '매드맥스'처럼, 지문을 일일이 읽지 않고도 느낄 수 있는 게임 세계를 구성하고, 흐름을 만들고, 연출을 해야 한다는 것을 생각해야 합니다.



[ 핸들 하나만으로도 세계의 특성과 재미를 충실하게 엮어낸 매드맥스 시리즈. 좋은 영화일수록 대사가 적다는 것을 잘 인식시켜준다. ]


  훌륭한 영화에 많은 대사가 필요하지 않듯이, 훌륭한 게임도 대사가 많은 것이 아니라, 필요한 대사만 있어야 합니다.


  영화를 좋아하던 조던 매크너가 "카라테카"에서 도입한 비주얼 연출은 게임 스토리텔링의 폭을 넓혀주었지만, 조던 매크너 자신도 비주얼이 게임 플레이를 끊어버릴 수 있다는 것을 인식하고 최소한의 분량만 효율적으로 응용했듯이 무엇보다도 게임 플레이에 초점을 맞추어 시나리오를 작성해야 합니다.



[ 카라테카에서 들어간 연출 장면. 짧지만 플레이의 재미를 더해준다. ]


  제작하시는 분들 모두가 이러한 점을 공유하여, 개발에 도움이 되지 않는 시나리오 문서만 쌓이고, "게임 시나리오는 의미가 없어."라는 인식이 더는 늘어나지 않으면 좋겠습니다.


  게임 시나리오 작가는 게임 디자이너의 일종이며, 무엇보다도 게임의 시스템과 특성, 그리고 플레이에 대해서 잘 이해해야 합니다.



  주어진 상황과 플레이에 맞추어 다양한 이야기를 만들고 정리할 수 있어야 합니다.

  게임 시나리오 작가가 만든 문서는 -혼자 볼게 아니라면- 다른 팀원들이 공유하며 개발에 활용할 수 있어야 합니다.


  소설을 쓰고 싶다면, 게임이 완성된 뒤에 만들면 됩니다. 설사 처음부터 그런 걸 생각해 두었다고 해도 개발 중에는 '시나리오 기획서'가 만들어져야 합니다.


  그래픽 디자이너가 참고할 수 있고, 시스템 디자이너나 레벨 디자이너가 보고 활용할 수 있는 설정 문서, 레벨 디자이너가 구성에 활용할 수 있는 플로우 문서와 다이어그램, 그리고 비주얼 제작자들이 활용할 수 있는 대본과 연출 문서, 시스템 디자이너와 프로그래머가 확인할 수 있는 순서도와 구성 문서...


  당연히 시나리오 작가는 엑셀과 친숙해야 하고, 파워포인트로 기획서를 구성할 수 있어야 하며, 스크립트를 연출할 수 있고, 순서도를 만들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나서 필요하다면 단번에 몇 개의 서로 다른 이야기를 구성하고, 시스템에 맞추어 구성할 수 있어야 합니다.


  설사 내가 판타지 영웅 이야기를 좋아해도, 때로는 포스트아포칼립스의 반영웅적인 이야기를 쓸 수도 있어야 하며, 설정을 구성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 것을 만들지 못하는 게임 시나리오 작가는 게임 시나리오 작가로서 자격이 없으며, 그런 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은 게임 시나리오 작가를 고용하여 쓸 수가 없습니다.


  안타깝게도, 한국에서는 -미국이나 일본에서도 과거에는- 게임 시나리오 작가의 이러한 것에 대해서 생각하지 못하고 있으며, 그로 인해 게임 스토리텔링은 무시되어 왔습니다.


  소설 스토리텔링이 소설이라는 매체를 통해서 주제를 전달하고 즐거움을 주며, 비주얼 스토리텔링이 영상이라는 매체를 통해서 주제를 전하고 즐거움을 주듯, 게임 스토리텔링은 게임이라는 매체를 통해서 주제를 전하고 즐거움을 주어야 합니다.

지극히 당연한 이 사실을 조금이라도 많은 분이 인식하고, 진정한 의미에서의 '게임 스토리텔링'이 정착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소설 작가나 영화 각본가 지망생이 아닌, 진정한 의미에서의 게임 스토리텔링 작가가 많이 늘어나고 좋은 '게임 스토리텔링' 작품들이 늘어났으면 좋겠습니다.

posted by 별을 좋아하는 표도기
별 작품 이야기 2015.06.05 20:45

저는 포스트 아포칼립스 이야기를 좋아합니다.

 

그 중에서도 매드맥스나 폴아웃 같은 황폐한 세계를 무대로 펼쳐지는 모험의 이야기를 가장 좋아하는 편이죠.


그래서 매드 맥스 시리즈를 좋아하는데, 아시는 분도 계시겠지만 사실 매드맥스는 2가 진정한 포스트 아포칼립스이고 1은 로드무비, 3는 거의 판타지에 가까운 작품이라 뭔가 부족한 느낌이죠.


이번에 매드맥스가 새롭게 만들어지면서(전작과는 전혀 이어지지 않는 완전히 새로운 시작) 과연 이 세 작품 중 어느 형태를 따라가게 될지 조금 걱정했습니다. 특히 3편 비욘드 선더돔은 솔직히 2에 비해서 너무 부족했거든요.


다행히도 매드맥스 : 분노의 도로는 2의 느낌을 계승하는 작품, 즉 황폐한 세계를 무대로 하는 질주극이었습니다.



매드맥스 시리즈의 특징은 1편을 제외하면 사실상 맥스가 활약하는 일이 많지 않다는 겁니다. 영웅이라기보다는 어쩌다보니 동참하게 된 인물. 하지만 그가 더해짐으로써 이야기는 좀 더 흥미롭게 변해가고 무언가의 질서가 망가지면서 상황은 바뀌는 것입니다.


매드맥스 : 분노의 도로 역시 그 점은 마찬가지입니다. 영화 내내 맥스의 활약은 생각보다 많지 않습니다. 전형적인 할리우드 액션 영웅과는 너무도 다른 모습이죠. 하지만 그것이 좋은 의미에서의 배신으로서 관객을 즐겁게 해 줍니다.



이야기는 매우 단순합니다. 한 지역에 물을 장악하고 무기와 연료를 손에 넣으면서 지배하는 패자가 있습니다. 그 중 한 사람이 패자의 아내(라기보단 소유물이나 애 낳는 도구)들과 함께 도망치면서 이야기는 시작되죠. 추격자 중에 한 명이 맥스를 '피주머니(수혈용 도구)'로서 데리고 갔다가 그들과 합류하게 되고, 추격전이 벌어집니다.


영화의 전체 내용은 사실상 사흘 정도의 짧은 기간에 일어나는 일이며 90%가 자동차 추격전으로 진행됩니다.


정말로 쉴 틈이 하나도 없습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아주 사정없이 몰아치고 있거든요.


자동차가 자동차를 쫓고, 싸움이 벌어진다는 아주 단순한 내용이지만, 그러한 이야기가 매우 효과적인 연출과 전개로서 완벽하게 채워집니다. 그냥 아무 생각 없이 보고 있으면 됩니다. 그것만으로 이 세계의 모습이 흥미롭게 다가오고, 기대하게 하며, 그 기대를 만족시키게 되죠.


맥스 하나만을 보는 영화가 아닙니다. 볼거리가 넘쳐나고 활약이 넘쳐납니다. 그리고 조연들의 활약 하나하나도 부족하지 않고 즐거움을 줍니다. 엑스트라라 생각했던 인물들마저도 개성적이고 매력적이니까요.



2D로도 충분히 재미있지만, 영화는 3D에 적합하게 만들어졌습니다. 장면 하나하나 구도 하나하나 모두 3D를 상정하고 3D에서 최고의 만족을 주도록 만들어졌습니다. (4DX도 괜찮겠지만, 4DX에서 본 사람의 얘기론, 엄청나게 신나고 재미있지만, 무진장 피곤하다고 합니다. 실제로 그렇게 생겼어요.^^)



반드시 '극장'에서 봐야만 하는 영화. 절대로 놓쳐선 안 될 영화라는 말은 바로 그 때문입니다.


누군가가 얘기했습니다.


"어벤져스는 집에서 TV로 봐도 되지만, 매드맥스는 극장에서 봐야해."


제 개인적으로는 완전히 동의하기 어렵지만, 적어도 매드맥스는 극장에서 봐야 한다는 말에는 동감합니다.


아직 보지 못하셨다면, 편안한 마음으로 달려가서 매드맥스를 보세요. 결코 극장에 찾아간 일을 후회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처럼 부담없이 신나게, 그리고 지루하지 않게 만족할 수 있는 영화는 정말로 드물기 때문이죠.



여담) 포스트 아포칼립스 작품으로서의 매드맥스는 상당히 충실한 느낌입니다. 이리저리 끼워맞추어 개조한 자동차의 모습만으로도 이 세계가 '새로운 것을 만드는 세계'가 아님을 잘 보여주고 있지요.

  여기에 총 조차 흔치 않은 상황에서 화염병이나 창 같은 걸 무기로 사용하는 모습. 인간의 육체 노동으로 움직이는 승강기 등 정말로 작은 부분까지 충실하게 신경쓴 모습이 엿보입니다.


  제가 가장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수없이 쌓여 있는 '핸들'을 무기처럼 들고가는 장면이었지요. 자동차를 운전하는 것 자체가 '전사'라는 설정을 매우 잘 보여주는 장면...


  매드맥스라는 세계가 정말로 살아있다는 것을 느끼게 하는 부분은 그 밖에도 엄청나게 많으며 지극히 자연스럽게 느끼게 해 준다는 점이 더욱 매력적입니다.




posted by 별을 좋아하는 표도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