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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타지 이야기

끝없이 자유로운 판타지 세계

  '판타지' 작품을 쓰려는 이 중에는 이야기에 앞서 배경 세계를 만드는 이들이 많습니다.


  그런데 그들 세계관은 하나 같이 닮았지요. 뭐, 종족이니 마법이니 하는 것이 아니라 모두다 "지구처럼 평범한 세계"라는 점에서 말입니다.


  많은 이들은 세계를 만들 때 '지구 같은 행성'을 떠올리는 것부터 시작합니다. 태양(그 세계에선 다른 이름이 될 수도 있겠네요.)이 있고 그 '지구' 주변을 도는 달이 있을 것이고, 육지와 바다가 있고...


  이따금 태양이 2개가 되기도 하고 달이 8개나 10개가 될 수도 있지만, 여하튼 그들이 살아가는 세계가 진공의 우주에 떠 있는 둥근 행성이라는 점은 차이가 없습니다.


  판타지가 '환상', '공상'의 세계라는 걸 생각하면 딱히 그럴 필요는 없어보이는데 말이지요.


  생각해 보세요. 판타지의 세계는 대개 '신'이 만든 것입니다. 신이 만들었다면 그 모양은 어떻든 상관이 없지 않을까요?


  가령 이집트에서 이야기했듯 거대한 신이 하늘을 둘러싸더라도 상관없을 겁니다.


[ 하늘의 신과 땅의 신. 그리고 그들 사이에서 태어난 신이 세상을 받치고 있는 이집트 세계 ]


  인도 신화에서처럼 4마리 코끼리 위에 땅떵어리가 올려있는 것은 어떨까요?


[ 세상을 질주하는 거북이와 등 위의 코끼리. 그리고 그 위에 펼쳐진 세계 ]


  혹은 북 유럽 신화처럼 거대한 나무가 둘러싼 세계도 재미있겠네요.


[ 노르드 신화 속의 세계. 세계수인 이그드라실을 중심으로 다양한 세계가 존재한다. ]

   

  게다가 지형도 지구처럼 만들 필요 없습니다.

  중세 시대의 T-O 지도 같은 지형으로 이루어진 세계가 등장하지 말란 법도 없지요.


[ 중세의 T-O 지도.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펼쳐진 세계. 중세 사람들은 이것을 진실이라 믿었다. ]


  실례로 오노 후유미의 소설 <십이국기>에서는 아래와 같은 황당한 지도로 눈길을 끌기도 했습니다.


[ 제목 그대로 12개의 나라가 존재하는 세계. 중앙엔 세상의 섭리와 관련된 또 하나의 세계가 존재한다. ]


  이렇게 대칭형으로 생긴 세계... 당연히 땅은 판판하고 여기에 총 12개의 나라가 존재합니다.


  "말도 안돼! 이런 지형이 어떻게 존재할 수 있어?"라고 말할지도 모르지만, 어차피 여기는 신이 만든 세계. 복잡 기괴한 지형이 꼭 필요한 건 아니지요.  (이 작품에서는 그 밖에도 왕이나 신하들은 수명이 거의 영원하다던가, 사람이 열매처럼 나무에서 열리는 등 독특한 내용이 많았습니다.)


  위와 같은 구조는 하늘의 섭리(신의 뜻)에 따라 운영되는 12개 국가를 표현하기 위한 세계이기도 합니다. 이 세계의 신은 질서를 매우 중요하게 여기는지, 그런 질서(섭리) 하나만 잘못 깨도 나라가 혼란에 빠지곤 하죠.


  한편 일본 앨리스사의 게임 <란스> 시리즈에서는 이런 세계가 등장하기도 합니다.



  4마리의 동물이 떠받치고 있는 세계... 인도 신화를 연상케하는 황당한 세계인데(이 세계에 JAPAN이라는 나라는 고작 다리 하나로 떠받치고 있습니다.) 이 세계의 신은 도리어 '무질서와 혼돈, 파괴와 전쟁'을 좋아해서 전쟁이 일어나는 걸 즐기죠. (그 모습은 마치 도시를 세워두고 각종 재난을 떨어뜨리며 즐거워 하는 <심시티> 게임의 시장을 보는 듯 합니다.)


  한편 일본 만화 <흑발의 캡쳐드>라는 작품에선 우주 전체가 공기로 가득찬 세계가 등장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별과 별 사이를 비행선 같은 기구를 이용해서 간단히 넘나들죠. 그런 세계도 재미있지 않을까요?


  태양과 달이 있고, 적당한 크기의 둥근 지구가 진공의 우주에 떠 있고 지구에는 적당한 양의 육지와 바다가 있고 사람들은 부모에게서 태어나고... 이런 법칙들은 모두 우리 세계의 질서에 지나지 않습니다. 평범한 물리, 화학 법칙이 지배하고 진화론이 대세를 이루고(사실상 정설이고) 지동설이 지배하며 신의 창조론은 거의 들러리가 되어가는 바로 이 세계만의 이야기죠.


  때로는 신들과 함께 공존하는 판타지 세계에서 꼭 필요한 '정형화된 규칙'은 아닙니다.


  위에서 예로 들은 세계는 언뜻 바보 같을 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십이국기>나 <란스> 같은 작품이 이러한 독특한 세계를 통해 흥미로운 이야기를 이끌어나가듯, 우리만의 완전히 새로운 독창적인 세계에서 뭔가 흥미로운 이야기들이 쏟아져 나올 수도 있을 것입니다. 


  판타지란 결국 '꿈과 환상', 낭만의 이야기니까요.